아름다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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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아버지 강태원 회장. 그의 일대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해마다 세밑이면 자선냄비에 1천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는 총총히 사라지던 사람, 꽃동네에 나타나 점심 한 끼를 먹고는 백미 100가마를 선뜻 내놓고 홀연히 자리를 뜨던 사람, 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난치병 아이의 병원비를 아무 조건 없이 선뜻 내주던 사람, 그것도 모자라 행여 당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거액을 병원에 맡기던 사람. 이 책은 2002년 당시 개인으로는 최고의 금액을 기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고 강태원 회장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해마다 세밑이면 자선냄비에 1천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는 총총히 사라지던 사람, 꽃동네에 나타나 점심 한 끼를 먹고는 백미 100가마를 선뜻 내놓고 홀연히 자리를 뜨던 사람, 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난치병 아이의 병원비를 아무 조건 없이 선뜻 내주던 사람, 그것도 모자라 행여 당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거액을 병원에 맡기던 사람. 이 책은 2002년 당시 개인으로는 최고의 금액을 기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고 강태원 회장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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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당시 건국 이래 개인으로는 최고의 금액 기부한 고 강태원 회장의 일대기
지난 2002년 당시 건국 이래 개인으로는 최고의 금액을 기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고 강태원 회장의 일대기 『아름다운 선택』이 나왔다. 분단으로 만석꾼 자손에서 졸지에 혈혈단신 빈털터리로 전락해 부두노동자, 노점상을 거쳐 포목점, 운수업, 건설업 등을 통해 모은 수백억 원대의 전 재산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고인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평소 가난하고 병든 노인이나 아이들을 보면 눈물지었던 그는 오랫동안 이름없는 독지가로 선행을 해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해마다 세밑이면 자선냄비에 1천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는 총총히 사라지는가 하면 의지가지없는 이들의 쉼터인 꽃동네에 나타나 점심 한 끼를 먹고는 백미 100가마를 선뜻 부려놓고, 또 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난치병 어린이의 병원비를 아무 조건 없이 내주는 등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왔던 것. 그는 가진 자가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다.
방송과 연계된 최초의 사회복지재단 'KBS강태원복지재단' 탄생
그런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충북 음성 꽃동네에 당시 시가로 100억 원대(현재 시가로는 400억 이상)의 부동산을 기탁하면서였다. 이유는 단 하나. 이를 계기로 나눔을 실천하는 일들이 널리 퍼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에는 KBS-1TV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고 감동받아 현금과 주식 170억, 부동산 30억(현재 시가로는 350억 웃돎) 도합 200억 원을 기탁,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전 재산 기증에 감동받은 KBS는 복지재단 설립을 서둘러 2002년 12월 21일 KBS강태원복지재단을 만들고 추가로 30억 원을 출연했다. 방송과 연계된 최초의 사회복지재단인 KBS강태원복지재단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한편 꽃동네측은 현재 빌딩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선생의 유지를 따라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 전문인재 양성기금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한다.
대대로 춘궁기만 되면 '만인죽 끓였던'집안 내력
1924년 평양에서 부농인 신천 강씨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강태원 선생은 평남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일제의 하수인 역할이나 하는 세상을 개탄해 더 이상 신학문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조부의 뜻을 따라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그때부터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춘궁기가 되면 '만인죽'을 끓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돌보았을 정도로 구휼의 내력이 있었는데, 특히 조부는 해방 직후 선생 형제에게 줄 논밭 백 마지기만 빼고 만석이나 되는 전답을 소작인과 가난한 이웃들에게 다 나눠주었을 정도로 현대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천했던 인물이다.
청년 거상을 꿈꾸며 평양?개성?서울?대구?부산 등지를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던 선생은 1948년 여름 남북이 갑자기 가로막히는 바람에 졸지에 고향을 잃고 빈털터리 신세가 되지만, 그야말로 안 쓰고 안 먹고 열심히 일해서 커다란 시내버스 회사 세 개를 거느리고 동대문 직물상가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거상이자 사업가로 우뚝 서게 된다. 타고난 성실함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업 안목, 과감한 결단, 그리고 정직과 신용으로 일궈 낸 부(富)였다.
타고난 성실함과 정직, 신용,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수백억대의 재산 모아
선생의 예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빛났는데 당시 나일론의 실용성을 간파하고 시중에 나일론 열풍을 일으킨 일이나 당시 신분 비하의 뜻을 내포하고 있던 운수업 종사자들의 호칭을 바꾼 일(운전수→운전기사, 조수→보조기사, 수리공→정비기사, 차장→안내양) 등이 대표적 예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수회사 경영에서 보여준 선생의 경영철학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차량의 노후와 정비 불량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정비에 대혁신을 감행, 사용 연도가 지난 차량은 과감히 폐기하고 교체되는 부속품도 정품이 아닌 것은 엄격히 금했다. 또한 운전자가 과로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작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비율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피로가 겹치는 연일 근무도 금했다.
또 안내양들의 열악한 숙소를 보고는 충격을 받아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를 새로 짓고는 여자대학교 기숙사를 본떠 2층 침대를 놓아주고 네 사람이 한 방을 쓰게 하는가 하면 종합복지관을 세워 취미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선생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부 열의가 있는 안내양들에게는 학비까지 보조해 주며 학원에 등록시켜 일년이 지났을 때는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생이 10여 명이나 나왔다. 이 학습장의 미담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가 '일하면서 배우는' 산업체 중?고등학교 설립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해 초겨울 안내원 전원에게 당시 있는 집 아이들만 입는다는 오리털 파커를 유니폼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아편을 주는 것과 같아
이처럼 사업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돈이 얼마가 들든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집안에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어서 아이들은 어려서 자기 집이 부자는커녕 가난한 줄 알고 자랐을 정도였다. 기름값이 아까워 추운 겨울 한밤중에 잠깐씩만 보일러를 돌리는 바람에 겨울이면 온 식구가 외투까지 입고 자야 했는가 하면, 하수구에 빠진 5원짜리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토관을 들어내고 맨홀 속으로 들어가 30분 넘게 뒤지고, 사과가 먹고 싶다는 막내딸의 청에 저녁때 사과 하나 달랑 사가지고 오는 등 구두쇠도 보통 구두쇠가 아니었다. 또한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다 해서 씀씀이가 헤프거나 마음 한구석에 오만이나 나태, 의타심이 들지 않도록 엄격히 가르쳤다.
선생은 말년에 지병인 폐섬유증을 치료할 겸 선조들의 선영이 모셔져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 요양을 했는데, 제주도로 굳이 간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서였다. 일생일대의 결단을 앞두고 마음을 다지는 데 행여나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서였다. 선생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아편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전 재산 내놓고 나서 "오늘 밤 잠이 잘 올 것 같다"는 선생
움켜쥐려고만 들지 도무지 베풀려고 하지 않는 세상, 제 몸뚱어리와 제 식구 챙길 줄만 알았지 이웃에는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 세상에서 가진 것 다 퍼주고 나서 "전 재산을 주고 나니까 기분이 상쾌해요. 오늘밤에는 잠이 잘 올 것 같아요"라고 말한 선생은 가히 시대의 스승이요 대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아직 서구 선진국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나눔의 문화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이파리를 뻗어 가고 있는 것은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훈훈한 날갯짓을 시작한 강태원 선생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푸른 세상』을 꿈꾸었던 선생의 뜻은 오늘도 KBS강태원복지재단을 통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많아 읽는 재미 쏠쏠
이밖에도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아 감동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포 황 부자와의 인연이라든지 서울시 개발 과정에서 1970년대 『불도저 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책속으로
선생은 열여덟 살 때부터 처음 장사를 시작해서 만 60년 동안 돈버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그 사이 걷는 시간보다는 뛰는 시간이 많았고,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두 발이 성할 수가 있겠는가. 언제나 헐렁한 작업복에 밑창을 수도 없이 갈아댄 낡은 신발을 신고 다니던 선생. 뿐만 아니라 한창 힘들게 일할 때는 열 손가락이 성한 곳이 없었다. 손톱 밑이 갈라지고 염증이 생기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또 박이고……. -315쪽
지난 2002년 당시 건국 이래 개인으로는 최고의 금액을 기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고 강태원 회장의 일대기 『아름다운 선택』이 나왔다. 분단으로 만석꾼 자손에서 졸지에 혈혈단신 빈털터리로 전락해 부두노동자, 노점상을 거쳐 포목점, 운수업, 건설업 등을 통해 모은 수백억 원대의 전 재산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고인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평소 가난하고 병든 노인이나 아이들을 보면 눈물지었던 그는 오랫동안 이름없는 독지가로 선행을 해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해마다 세밑이면 자선냄비에 1천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는 총총히 사라지는가 하면 의지가지없는 이들의 쉼터인 꽃동네에 나타나 점심 한 끼를 먹고는 백미 100가마를 선뜻 부려놓고, 또 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난치병 어린이의 병원비를 아무 조건 없이 내주는 등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왔던 것. 그는 가진 자가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다.
방송과 연계된 최초의 사회복지재단 'KBS강태원복지재단' 탄생
그런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충북 음성 꽃동네에 당시 시가로 100억 원대(현재 시가로는 400억 이상)의 부동산을 기탁하면서였다. 이유는 단 하나. 이를 계기로 나눔을 실천하는 일들이 널리 퍼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에는 KBS-1TV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고 감동받아 현금과 주식 170억, 부동산 30억(현재 시가로는 350억 웃돎) 도합 200억 원을 기탁,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전 재산 기증에 감동받은 KBS는 복지재단 설립을 서둘러 2002년 12월 21일 KBS강태원복지재단을 만들고 추가로 30억 원을 출연했다. 방송과 연계된 최초의 사회복지재단인 KBS강태원복지재단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한편 꽃동네측은 현재 빌딩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선생의 유지를 따라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 전문인재 양성기금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한다.
대대로 춘궁기만 되면 '만인죽 끓였던'집안 내력
1924년 평양에서 부농인 신천 강씨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강태원 선생은 평남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일제의 하수인 역할이나 하는 세상을 개탄해 더 이상 신학문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조부의 뜻을 따라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그때부터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춘궁기가 되면 '만인죽'을 끓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돌보았을 정도로 구휼의 내력이 있었는데, 특히 조부는 해방 직후 선생 형제에게 줄 논밭 백 마지기만 빼고 만석이나 되는 전답을 소작인과 가난한 이웃들에게 다 나눠주었을 정도로 현대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천했던 인물이다.
청년 거상을 꿈꾸며 평양?개성?서울?대구?부산 등지를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던 선생은 1948년 여름 남북이 갑자기 가로막히는 바람에 졸지에 고향을 잃고 빈털터리 신세가 되지만, 그야말로 안 쓰고 안 먹고 열심히 일해서 커다란 시내버스 회사 세 개를 거느리고 동대문 직물상가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거상이자 사업가로 우뚝 서게 된다. 타고난 성실함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업 안목, 과감한 결단, 그리고 정직과 신용으로 일궈 낸 부(富)였다.
타고난 성실함과 정직, 신용,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수백억대의 재산 모아
선생의 예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빛났는데 당시 나일론의 실용성을 간파하고 시중에 나일론 열풍을 일으킨 일이나 당시 신분 비하의 뜻을 내포하고 있던 운수업 종사자들의 호칭을 바꾼 일(운전수→운전기사, 조수→보조기사, 수리공→정비기사, 차장→안내양) 등이 대표적 예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수회사 경영에서 보여준 선생의 경영철학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차량의 노후와 정비 불량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정비에 대혁신을 감행, 사용 연도가 지난 차량은 과감히 폐기하고 교체되는 부속품도 정품이 아닌 것은 엄격히 금했다. 또한 운전자가 과로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작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비율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피로가 겹치는 연일 근무도 금했다.
또 안내양들의 열악한 숙소를 보고는 충격을 받아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를 새로 짓고는 여자대학교 기숙사를 본떠 2층 침대를 놓아주고 네 사람이 한 방을 쓰게 하는가 하면 종합복지관을 세워 취미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선생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부 열의가 있는 안내양들에게는 학비까지 보조해 주며 학원에 등록시켜 일년이 지났을 때는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생이 10여 명이나 나왔다. 이 학습장의 미담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가 '일하면서 배우는' 산업체 중?고등학교 설립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해 초겨울 안내원 전원에게 당시 있는 집 아이들만 입는다는 오리털 파커를 유니폼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아편을 주는 것과 같아
이처럼 사업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돈이 얼마가 들든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집안에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어서 아이들은 어려서 자기 집이 부자는커녕 가난한 줄 알고 자랐을 정도였다. 기름값이 아까워 추운 겨울 한밤중에 잠깐씩만 보일러를 돌리는 바람에 겨울이면 온 식구가 외투까지 입고 자야 했는가 하면, 하수구에 빠진 5원짜리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토관을 들어내고 맨홀 속으로 들어가 30분 넘게 뒤지고, 사과가 먹고 싶다는 막내딸의 청에 저녁때 사과 하나 달랑 사가지고 오는 등 구두쇠도 보통 구두쇠가 아니었다. 또한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다 해서 씀씀이가 헤프거나 마음 한구석에 오만이나 나태, 의타심이 들지 않도록 엄격히 가르쳤다.
선생은 말년에 지병인 폐섬유증을 치료할 겸 선조들의 선영이 모셔져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 요양을 했는데, 제주도로 굳이 간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서였다. 일생일대의 결단을 앞두고 마음을 다지는 데 행여나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서였다. 선생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아편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전 재산 내놓고 나서 "오늘 밤 잠이 잘 올 것 같다"는 선생
움켜쥐려고만 들지 도무지 베풀려고 하지 않는 세상, 제 몸뚱어리와 제 식구 챙길 줄만 알았지 이웃에는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 세상에서 가진 것 다 퍼주고 나서 "전 재산을 주고 나니까 기분이 상쾌해요. 오늘밤에는 잠이 잘 올 것 같아요"라고 말한 선생은 가히 시대의 스승이요 대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아직 서구 선진국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나눔의 문화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이파리를 뻗어 가고 있는 것은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훈훈한 날갯짓을 시작한 강태원 선생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푸른 세상』을 꿈꾸었던 선생의 뜻은 오늘도 KBS강태원복지재단을 통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많아 읽는 재미 쏠쏠
이밖에도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아 감동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포 황 부자와의 인연이라든지 서울시 개발 과정에서 1970년대 『불도저 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책속으로
선생은 열여덟 살 때부터 처음 장사를 시작해서 만 60년 동안 돈버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그 사이 걷는 시간보다는 뛰는 시간이 많았고,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두 발이 성할 수가 있겠는가. 언제나 헐렁한 작업복에 밑창을 수도 없이 갈아댄 낡은 신발을 신고 다니던 선생. 뿐만 아니라 한창 힘들게 일할 때는 열 손가락이 성한 곳이 없었다. 손톱 밑이 갈라지고 염증이 생기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또 박이고……. -315쪽
목차
목차
『아름다운 선택』 발간에 부치는 글|손봉호
내가 기억하는 강태원 거사님|혜국 스님
1부 빈털터리가 된 만석꾼 자손
쉰 떡으로 끼니 잇는 만석꾼 자손
기차는 더 이상 북으로 가지 않는다
천속 바보를 인정한 마포 황 부자
맨주먹으로 떠난 피난길
피난지에서 만난 귀한 연인
시래기 보리죽과 간장 한 종지
방산시장에 벌인 노점상
'평양상회' 강씨는 별난 사람
"혈혈단신 강태원이가 아바지가 됐다구!"
2부 부자의 비결-정직.성실.신용
나일론 열풍을 일으키다
진실과 성실, 철저한 고객서비스가 만든 성공
"난 돈 많은 부자보다 자식 많은 애비 되는 게 더 좋아"
부르면 눈물부터 앞서는 이름, 고향
덕수궁으로 간 성묘
버스회사 사장이 되다
사고를 줄이려면 근무환경이 좋아야
"당신 딸이라면 그런 데서 재울 수 있소?"
바퀴만 굴린다고 돈이 되는 건 아니다
상계동 아파트와 서울시장 김현옥
전국으로 퍼진 강원직물상사
3부 강남 개발로 접은 대농장주의 꿈
만석꾼 농장주 꿈꾸며 산 강남 돌무지 땅
강남에 불어닥친 개발 열풍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정주영 회장
"난 농장주 팔자는 못 되는가 봐"
아파트 신축에 도전한 로얄주택
자동차 시대에 자전거로도 돈 벌고
"손에서 일 놓는 날이 죽는 날이야"
4부 엄격하면서 따뜻한 구두쇠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부자간에도 셈은 셈이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그 소주 반 병 날 다구"
"차에 낚싯대는 왜 꽂고 다녀?"
전철 삯은 1달러 20센트, 신발 닳는 건 30센트
"먹을 거 다 먹고 언제 돈 모아 고향 갈래?"
고향 잃고 나라도 떠난 친구와의 이별
평양이 아니면 제주도라도
세월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통일 소를 보며 품은 희망
"지금 이 배는 북방한계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고향 삼아
5부 평생 모은 재산으로 끓인 '만인죽'
"저 아이 치료비는 내가 내겠소"
자선냄비 속 거액 수표와 40년 된 소파
무의탁 노인들의 보금자리, 꽃동네를 위하여
마지막 유업으로 남은 무료 양로원
가진 자가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불쌍한 노인과 가난한 아이 위해 전 재산 아낌없이
KBS강태원복지재단이 만들어지다
누워서 받은 훈장
자신에게 인색하고 남에게 관대하던 시대의 거인
헌시|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 _ 김수민
내가 기억하는 강태원 거사님|혜국 스님
1부 빈털터리가 된 만석꾼 자손
쉰 떡으로 끼니 잇는 만석꾼 자손
기차는 더 이상 북으로 가지 않는다
천속 바보를 인정한 마포 황 부자
맨주먹으로 떠난 피난길
피난지에서 만난 귀한 연인
시래기 보리죽과 간장 한 종지
방산시장에 벌인 노점상
'평양상회' 강씨는 별난 사람
"혈혈단신 강태원이가 아바지가 됐다구!"
2부 부자의 비결-정직.성실.신용
나일론 열풍을 일으키다
진실과 성실, 철저한 고객서비스가 만든 성공
"난 돈 많은 부자보다 자식 많은 애비 되는 게 더 좋아"
부르면 눈물부터 앞서는 이름, 고향
덕수궁으로 간 성묘
버스회사 사장이 되다
사고를 줄이려면 근무환경이 좋아야
"당신 딸이라면 그런 데서 재울 수 있소?"
바퀴만 굴린다고 돈이 되는 건 아니다
상계동 아파트와 서울시장 김현옥
전국으로 퍼진 강원직물상사
3부 강남 개발로 접은 대농장주의 꿈
만석꾼 농장주 꿈꾸며 산 강남 돌무지 땅
강남에 불어닥친 개발 열풍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정주영 회장
"난 농장주 팔자는 못 되는가 봐"
아파트 신축에 도전한 로얄주택
자동차 시대에 자전거로도 돈 벌고
"손에서 일 놓는 날이 죽는 날이야"
4부 엄격하면서 따뜻한 구두쇠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부자간에도 셈은 셈이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그 소주 반 병 날 다구"
"차에 낚싯대는 왜 꽂고 다녀?"
전철 삯은 1달러 20센트, 신발 닳는 건 30센트
"먹을 거 다 먹고 언제 돈 모아 고향 갈래?"
고향 잃고 나라도 떠난 친구와의 이별
평양이 아니면 제주도라도
세월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통일 소를 보며 품은 희망
"지금 이 배는 북방한계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고향 삼아
5부 평생 모은 재산으로 끓인 '만인죽'
"저 아이 치료비는 내가 내겠소"
자선냄비 속 거액 수표와 40년 된 소파
무의탁 노인들의 보금자리, 꽃동네를 위하여
마지막 유업으로 남은 무료 양로원
가진 자가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불쌍한 노인과 가난한 아이 위해 전 재산 아낌없이
KBS강태원복지재단이 만들어지다
누워서 받은 훈장
자신에게 인색하고 남에게 관대하던 시대의 거인
헌시|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 _ 김수민
저자
저자
고영훈
TV 드라마 <객주>, <암행어사> 외 장단막 400여 편과 라디오 드라마 정치실록 <그때 그 사건> 외 장단막 500여 편을 썼다. 그 밖에도 일간신문 <동양신문>에 정치비사 『군청 30년, 베일을 벗기다』를 7년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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