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세계숨은시인선 3: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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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타인이라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타인이 될 수 있다!
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애,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시인들을 소개하는 「세계숨은시인선」 제3권 폴란드편『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해당 언어권 문학가와 연구자는 알고 있지만, 시를 쓰거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의 시인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세계 어느 곳에나 최고의 시가 있고 최고의 시인들이 있다는 전제 아래 해당 언어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제3권은 폴란드 문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에프스키의 96편의 시를 묶었다. 시인이기 이전에 20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유대인이자 이방인 또는 방랑자(여행자)라는 특징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작품세계를 펼쳐나가는 저자의 ‘일인칭 복수형으로’, ‘고요’, ‘세 개의 음성’, ‘나는 아직 시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 등의 시편들과 함께 일상성에서 근원적 아픔을 발견해내는 자가예프스키에 대한 박형준 시인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애,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시인들을 소개하는 「세계숨은시인선」 제3권 폴란드편『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해당 언어권 문학가와 연구자는 알고 있지만, 시를 쓰거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의 시인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세계 어느 곳에나 최고의 시가 있고 최고의 시인들이 있다는 전제 아래 해당 언어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제3권은 폴란드 문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에프스키의 96편의 시를 묶었다. 시인이기 이전에 20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유대인이자 이방인 또는 방랑자(여행자)라는 특징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작품세계를 펼쳐나가는 저자의 ‘일인칭 복수형으로’, ‘고요’, ‘세 개의 음성’, ‘나는 아직 시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 등의 시편들과 함께 일상성에서 근원적 아픔을 발견해내는 자가예프스키에 대한 박형준 시인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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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고독이 아편처럼 느껴질지라도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한 폴란드의 시성詩聖,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세계숨은시인선3)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6월의 긴 날들을/ 산딸기와 로제 와인 방울과 이슬을/ 쫓겨난 사람들의 농장 위를 빈틈없이 뒤덮는 쐐기풀을 기억하라/ 너는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네가 본 멋진 요트와 배들,/ 이들 중 하나만 먼 여행을 앞두고 있고/ 나머지에겐 소금기 가득한 망각만이 기다린다/ 너는 갈 곳도 없이 걷고 있는 난민들을 보았고/ 처형자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하얀 방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라/ 커튼은 펄럭이고 있었다/ 음악이 폭발하던 콘서트의 기억으로 돌아가라/ 가을이면 너는 공원에서 도토리를 주웠고/ 나뭇잎들은 땅의 흉터 위에 소용돌이쳤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라/ 개똥지빠귀가 잃어버린 회색의 깃털을/ 흩어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부드러운 빛들을 _아담 자가예프스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전문
미국 9·11 테러 직후 상처 입은 전 세계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한 편의 시가 2001년 9월 24일자 <뉴요커>에 실렸다. 바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라는 작품으로, 9·11 테러가 발생하기 1년 반 전에 예감처럼 쓰인 시다.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성을 이으며 현재 폴란드 문단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예프스키는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번에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 세 번째 시집으로 출간된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시집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학과장인 최성은 교수와 같은 학교 이지원 강사가 번역을 맡아 총 96편의 시를 묶었다. 그리고 박형준 시인이 일상성에서 근원적 아픔을 발견해내는 자가예프스키에 대한 에세이를 써 주었다.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코트에 의하면 자가예프스키는 "오든보다 내밀하지만 미워시나 첼란, 브로츠키보다는 더욱 코스모폴리탄한 목소리"를 가졌다. 월코트의 정확한 지적처럼 자가예프스키는 범세계적인 시 세계를 선보인다. 최성은 교수는 그가 이런 특징을 보이는 이유로 유년 시절에 고향을 상실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도시, 한 나라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살아 온 사적 이력을 꼽는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20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유대인이자 이방인 또는 방랑자(여행자)라는 특징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자가예프스키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직후인 1945년 6월 21일,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르부프'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으로 인해 국경선이 조정되면서 폴란드는 패전국인 독일에 속했던 서부 지역을 할양받는 조건으로 국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동부 지역을 소비에트에 빼앗기게 된다. 그 결과 르부프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은 새로이 폴란드 영토가 된 실롱스크(슐레지엔)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자가예프스키 또한 가족과 함께 실롱스크 지방의 탄광 도시인 글리브체에 정착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잃어버린 고향 '르부프'는 이중적인 이미지, 즉 신화적인 이미지와 현실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시인의 기억 속에 신화화되어 남아 있는 '과거'의 르부프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노스탤지어의 대상, 존재의 원형과 신비가 보존되어 있는 시원의 공간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부모에게 헌정된 <르부프로 간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장해서는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의 야기옐론스키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폴란드의 권위 있는 문예지 《오드라》의 편집부에서 일하며 문단과 인연을 맺고 1967년 문예지 《문학 생활》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율리안 코른하우저, 스타니스와프 바라인착, 리샤르드 크리니츠키 등의 동료 시인들과 함께 이른바 '68세대'로 불리는 '노바 팔라(새로운 물결)' 그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선동적인 정치 선전 문구를 시의 소재로 삼아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획일성을 과감히 거부하고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청년 운동을 주도했다. '르부프'가 자가예프스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유토피아이면서 동시에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산실이라면, 대학 시절 지성에 눈을 뜨고 청춘을 불태웠던 도시, 문단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크라쿠프'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자 동시에 '감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크라쿠프에 대한 자가예프스키의 각별한 애정은 여러 편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와의 마찰로 고국을 등진 뒤, 자가예프스키는 파리와 휴스턴을 오가며 낯선 땅에서 또다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만 했다. 르부프와 글리브체, 크라쿠프와 파리, 휴스턴, 그리고 외국의 낯선 도시들을 떠도는 방랑자, 혹은 여행자의 이미지는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모티브라고 최성은 교수는 진단한다. 모국인 폴란드에서조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살아야 했던 자가예프스키는 스스로를 어떤 공간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영원한 '타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설한다. 낯선 타향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내게 '타자'라면, 나 또한 상대에게 '타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타자'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임을. 그는 자기 자신의 타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타자와 세계를 끌어안는 것이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전문
"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을 쓰는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이전에 진실을 추구하는 아담 자가예프스키,
'역사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를 접목하다
낯선 도시들에 살면서 가끔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이제 나는 젊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늙은 이들도 아직 있다./ (중략)/ 내 나라는 한 가지 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그다음의 해방도 오길 바란다./ 내가 거기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 알 수 없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자화상> 부분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의 고독한 여정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자아는 시시각각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자가예프스키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라고 최성은 교수는 말한다. 유독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은 그는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존재론적인 고민, 불안과 좌절,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극복과 화해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놀라운 점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스스로의 영적인 근원에 대한 내밀한 탐구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 문화의 고전과 걸작들을 작품 속에 다양한 코드로 접목시킨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서양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와 지적인 소양, 그리고 감수성이 요구된다. 자가예프스키가 유럽의 고전을 자주 인용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시키는 이유는 예술이 지닌,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 때문이다. 서양 문화의 유구한 전통에서 시인으로서의 영적인 근원을 발견하려는 자가예프스키는 고전의 미학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어제'와 '오늘'의 만남을,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운 접목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을 쓰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새소리를 매우 사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세계'를 뒷전으로 놓을 정도는 아니다. 내게는 '역사의 세계' 또한 새소리 못지않게 흥미롭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의 세계'에다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주의 세계'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서로 할퀴고, 싸우면서 그렇게 서로를 채워주고 있는 두 세계―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대상이다.
위의 글은 자가예프스키가 폴란드 문예지 《문학 노트》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역사의 세계'란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의미하며, '우주의 세계'란 보다 넓은 의식의 지평으로 바라본 카오스의 세계, 만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존재의 시원, 철학과 예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로버트 핀스키가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가리켜 "고유하고 독특한 방식을 통해 역사적 현실이 인간의 삶과 예술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라고 평가한 것은 꽤 적절하다. '자연의 세계'나 '우주의 세계' 못지않게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역사의 세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자가예프스키는 역사의 이름으로 함몰된 개인의 존재론적 위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인간과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시인의 고찰은 개인의 인성과 자유를 억압했던 사회주의 체제, 즉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1970년대에 발표된 초기작들에서 폴란드 현대사의 험난한 질곡을 생생하게 그려 낸 여러 편의 작품들이 발견된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사람의 손바닥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아직 이중 연애의 기술을 몰랐다/ (중략)/ 어떤 이들은 글쓰기를 그만뒀고 다른 이들은/ 물이 찬 유럽의 심장을 건너며 편지를 보내왔다/ 막사의 벽들과 신도시의 아파트들에/ 겨우살이가 장식되고 겨울이 가까워 온다/ 신세계가 시작된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신세계> 부분
이런 시도들을 통해 자가예프스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 한 지점은 어디일까.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자가예프스키의 시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지향점이 진실의 포착에 있음을 강조한다. "자가예프스키는 탐미주의자가 아니다. 시의 세계에서는 그보다 높은 가치 기준이 존재한다. 작가가 진실보다 아름다움을 우위에 두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미국의 평론가인 찰스 시믹은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가리켜 "우리가 모든 표식이 벗겨진 세상의 일부를 엿보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드문 순간들을 절묘하게 잡아내고 있다"라고 평한다. 또 다른 평론가 게일 마주르 또한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다.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진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이 보이듯 자가예프스키의 시에 어둠과 그림자가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그의 시가 궁극적으로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이 그 빛을 발하고, 예술의 의미와 존재 가치가, 변치 않는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아르카디아Arcadia임에 분명하다. _최성은, 해설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해설 열망하는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에서
나는 자가예프스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에 태어나 폴란드의 국경선이 변경되는 바람에 소비에트에 고향 땅을 빼앗기면서 이주와 반체제 저항 운동 등 영욕의 삶을 살아 온 인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그가 살아 온 시대는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무거운 역사를 그는 시에 다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역사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이 그것을 시에 담아내면 아무런 느낌이 없게 된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사진기에 담으려고 하면 모든 것이 개성을 잃고 똑같아지는 사진처럼 말이다. 때로는 역사에 대해 세계에 대해 모두 알려고 하기보다는 모르고자 할 때 그 사물의 본질과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자가예프스키의 시에는 그런 게 있다. 더하기보다는 뺄 때 드러나는 진실이……. 그것이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역사의 세계'와 개인의 내밀한 '존재론적 고민'이 맞닿아 있는 자리일 것이다. _박형준, 에세이 <뒤늦게 오는 아픔>에서
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애,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 시인들을 소개하는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 시리즈
이란의 포루그 파로흐자드, 러시아의 오시프 만델슈탐으로 시작하는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은 해당 언어권 문학가와 연구자는 알고 있지만, 시를 쓰거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조차 여전히 낯선 이름의 시인과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소개된 해외 시의 대부분은 영미 시와 프랑스?독일의 근대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시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세계숨은시인선> 시리즈는, 세계 어느 곳에나 최고의 시가 있고 최고의 시인들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시작되었다. 시인들이 읽고 싶은 시집들을 펴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려는 시인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첫째, 뛰어난 문학적 성취가 있을 것. 비록 우리에게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언어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제외한다.
둘째, 극적인 생애의 작가. 시인의 삶 또한 드라마틱하고, 사상적?철학적으로 특별함과 깊이가 있는 경우.
셋째, 작가가 살아가는(또는 살아간) 시대와 역사, 지역의 특성이 작품에 반영되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영미 문학의 거장 셰익스피어는 다수의 희곡을 남겼지만, 그 원천은 소네트로 대표되는 '시'였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근대 소설가의 절대적 우위 속에서도 여전히 러시아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다.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구루 타고르는 시를 통해 구도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송되며 사랑받는 장르다. 시는 사물과 의식, 물질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도로 집약된 언어 세계를 다루지만 심장 박동처럼 인간에게 친숙한 '리듬'을 타고 전해진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 점에서 물질주의가 만연한 현대에도 '시'의 가치는 쉽게 교환가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희소하기에 가치가 있고, 소수에 의해 창작되기에 고유한 세계를 보여 준다. 시안詩眼이 열린 소수만이 시를 향유하지만, 그 소수에 의해 쓰인 훌륭한 시는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문학의숲'에서 새롭게 펴내는 <세계숨은시인선>은 뛰어난 문학성을 보였고 작가로서 극적인 생애를 살았으나 아직도 우리에게 생소한, '세계의 숨어 있는 시인'을 발굴하여 세계 어디에나 좋은 시, 좋은 시인이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영미 문학에 편중된 우리의 세계 시 읽기의 편식을 지양하고, 터키, 몽골, 네팔 등 제3세계 언어권의 시인도 적극 소개할 예정이다.
첫 시인은 이란의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파로흐자드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만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영감을 준 시인으로 한국에는 처음 소개된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이란을 움직이는 그녀의 강렬한 시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두 번째 시인은 러시아의 릴케라 불리는 오시프 만델슈탐. 그의 부인 나데쥬다 만델슈탐의 회상록이 없었다면 시집 한 권 제대로 남지 못했을, 스탈린 시대에 감옥에 갇혀 비극적 생애를 살다 간 만델슈탐의 서정시 세계를 주목한다.
세 번째 시인은 폴란드의 시성 아담 자가예프스키. 체스와프 미워시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성을 이으며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그의 시 세계가 처음 소개된다.
이후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모네다, 일본의 나나오 사카키, 아르헨티나의 후안 헬만, 몽골의 라그와슈렌, 네팔의 드르갈 랄 슈레스타 등이 뒤를 이을 예정이다. 해당 언어권의 전문가를 번역자로 선정하여 원시에 충실한 번역을 하되 가독성을 고려했고, 각 권마다 박형준, 이장욱, 진수미, 김경주 등 영향력 있는 한국 시인의 에세이를 따로 실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인 또는 시집을 읽어 나가는 데 이들의 해설과 에세이가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며, 시를 본격적으로 창작하거나 공부하는 독자들에게는 보다 유익한 부록이 될 것이다.
- 아담 자가예프스키에 쏟아진 찬사
자가예프스키의 시들은 당신을 고요히 소유한다. 제자리에 서 있는 기차의 고요함, 하지만 엔진은 맥박처럼 뛴다. 그의 시 속에는 언제나 음악, 아니면 음악의 잔향이 있다. 그것은 황폐화된 이 추악한 세기의 한 구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목소리이다. _데릭 월코트(세인트루시아 시인이자, 극작가,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
네루다와 밀로즈,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놀라운 목소리는 이 둘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얻게 되었다. 산뜻하고 서정적인 명징성에만 치중하게 된 시문학에서, 그는 이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관점 모두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보건대 그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진정성 있는 대표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가장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시인이다. _메리 올리버(미국 시인)
엇비슷한 동시대의 시인들에서 벗어나 나의 언어권 시를 주도하는 대단한 시인을 보는 일이란 이다지도 기쁜 것인가! 내가 느낀 경이를 자가예프스키의 말로 표현하련다. '오직 타인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 안에 위안이 있다.' _체스와프 미워시(폴란드 시인·198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늘날 어떻게 시인이, 그것도 지적이고 진지한 시인이 신비스러운 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_애덤 키어시(미국 시인), <뉴리퍼블릭> 서평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처럼 시의 뮤즈가 이렇게나 명료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 클리오(역사의 뮤즈)와 에우테르페(서정시의 뮤즈)의 강렬한 대화를 두 귀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다. _조지프 브로드스키(러시아 태생 미국 시인·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자가예프스키는 탐미주의자가 아니다. 시에는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된다. 아름다움을 진실보다 우선시하는 작가에게 화 있을진저! _수전 손택(미국 평론가)
자가예프스키의 시는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놀라우리만치 신선하다. 그의 시문학과 사고는 제대로 보는 법에 대한 앎과 관련된다. 그의 시는 저마다의 고유한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세계를 언뜻 엿보는 귀중한 순간을 찬양한다. 없어서는 안 될 시인이다. _찰스 시미치(세르비아 시인)
자가예프스키의 시는 우리를 둔감하게 만드는 모든 일상적인 위협에서, 우리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끌어내 준다. _필립 보엠(미국 번역가), <뉴욕타임스> 서평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한 폴란드의 시성詩聖,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세계숨은시인선3)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6월의 긴 날들을/ 산딸기와 로제 와인 방울과 이슬을/ 쫓겨난 사람들의 농장 위를 빈틈없이 뒤덮는 쐐기풀을 기억하라/ 너는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네가 본 멋진 요트와 배들,/ 이들 중 하나만 먼 여행을 앞두고 있고/ 나머지에겐 소금기 가득한 망각만이 기다린다/ 너는 갈 곳도 없이 걷고 있는 난민들을 보았고/ 처형자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하얀 방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라/ 커튼은 펄럭이고 있었다/ 음악이 폭발하던 콘서트의 기억으로 돌아가라/ 가을이면 너는 공원에서 도토리를 주웠고/ 나뭇잎들은 땅의 흉터 위에 소용돌이쳤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라/ 개똥지빠귀가 잃어버린 회색의 깃털을/ 흩어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부드러운 빛들을 _아담 자가예프스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전문
미국 9·11 테러 직후 상처 입은 전 세계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한 편의 시가 2001년 9월 24일자 <뉴요커>에 실렸다. 바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라는 작품으로, 9·11 테러가 발생하기 1년 반 전에 예감처럼 쓰인 시다.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성을 이으며 현재 폴란드 문단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예프스키는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번에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 세 번째 시집으로 출간된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시집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학과장인 최성은 교수와 같은 학교 이지원 강사가 번역을 맡아 총 96편의 시를 묶었다. 그리고 박형준 시인이 일상성에서 근원적 아픔을 발견해내는 자가예프스키에 대한 에세이를 써 주었다.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코트에 의하면 자가예프스키는 "오든보다 내밀하지만 미워시나 첼란, 브로츠키보다는 더욱 코스모폴리탄한 목소리"를 가졌다. 월코트의 정확한 지적처럼 자가예프스키는 범세계적인 시 세계를 선보인다. 최성은 교수는 그가 이런 특징을 보이는 이유로 유년 시절에 고향을 상실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도시, 한 나라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살아 온 사적 이력을 꼽는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20세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유대인이자 이방인 또는 방랑자(여행자)라는 특징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자가예프스키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직후인 1945년 6월 21일,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르부프'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으로 인해 국경선이 조정되면서 폴란드는 패전국인 독일에 속했던 서부 지역을 할양받는 조건으로 국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동부 지역을 소비에트에 빼앗기게 된다. 그 결과 르부프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은 새로이 폴란드 영토가 된 실롱스크(슐레지엔)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자가예프스키 또한 가족과 함께 실롱스크 지방의 탄광 도시인 글리브체에 정착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잃어버린 고향 '르부프'는 이중적인 이미지, 즉 신화적인 이미지와 현실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시인의 기억 속에 신화화되어 남아 있는 '과거'의 르부프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노스탤지어의 대상, 존재의 원형과 신비가 보존되어 있는 시원의 공간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부모에게 헌정된 <르부프로 간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장해서는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의 야기옐론스키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폴란드의 권위 있는 문예지 《오드라》의 편집부에서 일하며 문단과 인연을 맺고 1967년 문예지 《문학 생활》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율리안 코른하우저, 스타니스와프 바라인착, 리샤르드 크리니츠키 등의 동료 시인들과 함께 이른바 '68세대'로 불리는 '노바 팔라(새로운 물결)' 그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선동적인 정치 선전 문구를 시의 소재로 삼아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획일성을 과감히 거부하고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청년 운동을 주도했다. '르부프'가 자가예프스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유토피아이면서 동시에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산실이라면, 대학 시절 지성에 눈을 뜨고 청춘을 불태웠던 도시, 문단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크라쿠프'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자 동시에 '감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크라쿠프에 대한 자가예프스키의 각별한 애정은 여러 편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와의 마찰로 고국을 등진 뒤, 자가예프스키는 파리와 휴스턴을 오가며 낯선 땅에서 또다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만 했다. 르부프와 글리브체, 크라쿠프와 파리, 휴스턴, 그리고 외국의 낯선 도시들을 떠도는 방랑자, 혹은 여행자의 이미지는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모티브라고 최성은 교수는 진단한다. 모국인 폴란드에서조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살아야 했던 자가예프스키는 스스로를 어떤 공간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영원한 '타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설한다. 낯선 타향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내게 '타자'라면, 나 또한 상대에게 '타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타자'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임을. 그는 자기 자신의 타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타자와 세계를 끌어안는 것이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전문
"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을 쓰는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이전에 진실을 추구하는 아담 자가예프스키,
'역사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를 접목하다
낯선 도시들에 살면서 가끔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이제 나는 젊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늙은 이들도 아직 있다./ (중략)/ 내 나라는 한 가지 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그다음의 해방도 오길 바란다./ 내가 거기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 알 수 없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자화상> 부분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의 고독한 여정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자아는 시시각각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자가예프스키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라고 최성은 교수는 말한다. 유독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은 그는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존재론적인 고민, 불안과 좌절,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극복과 화해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놀라운 점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스스로의 영적인 근원에 대한 내밀한 탐구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 문화의 고전과 걸작들을 작품 속에 다양한 코드로 접목시킨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서양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와 지적인 소양, 그리고 감수성이 요구된다. 자가예프스키가 유럽의 고전을 자주 인용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시키는 이유는 예술이 지닌,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 때문이다. 서양 문화의 유구한 전통에서 시인으로서의 영적인 근원을 발견하려는 자가예프스키는 고전의 미학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어제'와 '오늘'의 만남을,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운 접목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을 쓰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새소리를 매우 사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세계'를 뒷전으로 놓을 정도는 아니다. 내게는 '역사의 세계' 또한 새소리 못지않게 흥미롭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의 세계'에다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주의 세계'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서로 할퀴고, 싸우면서 그렇게 서로를 채워주고 있는 두 세계―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대상이다.
위의 글은 자가예프스키가 폴란드 문예지 《문학 노트》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역사의 세계'란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의미하며, '우주의 세계'란 보다 넓은 의식의 지평으로 바라본 카오스의 세계, 만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존재의 시원, 철학과 예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로버트 핀스키가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가리켜 "고유하고 독특한 방식을 통해 역사적 현실이 인간의 삶과 예술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라고 평가한 것은 꽤 적절하다. '자연의 세계'나 '우주의 세계' 못지않게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역사의 세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자가예프스키는 역사의 이름으로 함몰된 개인의 존재론적 위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인간과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시인의 고찰은 개인의 인성과 자유를 억압했던 사회주의 체제, 즉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1970년대에 발표된 초기작들에서 폴란드 현대사의 험난한 질곡을 생생하게 그려 낸 여러 편의 작품들이 발견된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사람의 손바닥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아직 이중 연애의 기술을 몰랐다/ (중략)/ 어떤 이들은 글쓰기를 그만뒀고 다른 이들은/ 물이 찬 유럽의 심장을 건너며 편지를 보내왔다/ 막사의 벽들과 신도시의 아파트들에/ 겨우살이가 장식되고 겨울이 가까워 온다/ 신세계가 시작된다 _아담 자가예프스키, <신세계> 부분
이런 시도들을 통해 자가예프스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 한 지점은 어디일까.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자가예프스키의 시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지향점이 진실의 포착에 있음을 강조한다. "자가예프스키는 탐미주의자가 아니다. 시의 세계에서는 그보다 높은 가치 기준이 존재한다. 작가가 진실보다 아름다움을 우위에 두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미국의 평론가인 찰스 시믹은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가리켜 "우리가 모든 표식이 벗겨진 세상의 일부를 엿보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드문 순간들을 절묘하게 잡아내고 있다"라고 평한다. 또 다른 평론가 게일 마주르 또한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다.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진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이 보이듯 자가예프스키의 시에 어둠과 그림자가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그의 시가 궁극적으로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이 그 빛을 발하고, 예술의 의미와 존재 가치가, 변치 않는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아르카디아Arcadia임에 분명하다. _최성은, 해설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해설 열망하는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에서
나는 자가예프스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에 태어나 폴란드의 국경선이 변경되는 바람에 소비에트에 고향 땅을 빼앗기면서 이주와 반체제 저항 운동 등 영욕의 삶을 살아 온 인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그가 살아 온 시대는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무거운 역사를 그는 시에 다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역사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이 그것을 시에 담아내면 아무런 느낌이 없게 된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사진기에 담으려고 하면 모든 것이 개성을 잃고 똑같아지는 사진처럼 말이다. 때로는 역사에 대해 세계에 대해 모두 알려고 하기보다는 모르고자 할 때 그 사물의 본질과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자가예프스키의 시에는 그런 게 있다. 더하기보다는 뺄 때 드러나는 진실이……. 그것이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 '역사의 세계'와 개인의 내밀한 '존재론적 고민'이 맞닿아 있는 자리일 것이다. _박형준, 에세이 <뒤늦게 오는 아픔>에서
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애,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 시인들을 소개하는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 시리즈
이란의 포루그 파로흐자드, 러시아의 오시프 만델슈탐으로 시작하는 문학의숲 <세계숨은시인선>은 해당 언어권 문학가와 연구자는 알고 있지만, 시를 쓰거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조차 여전히 낯선 이름의 시인과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소개된 해외 시의 대부분은 영미 시와 프랑스?독일의 근대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시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세계숨은시인선> 시리즈는, 세계 어느 곳에나 최고의 시가 있고 최고의 시인들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시작되었다. 시인들이 읽고 싶은 시집들을 펴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려는 시인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첫째, 뛰어난 문학적 성취가 있을 것. 비록 우리에게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언어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제외한다.
둘째, 극적인 생애의 작가. 시인의 삶 또한 드라마틱하고, 사상적?철학적으로 특별함과 깊이가 있는 경우.
셋째, 작가가 살아가는(또는 살아간) 시대와 역사, 지역의 특성이 작품에 반영되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영미 문학의 거장 셰익스피어는 다수의 희곡을 남겼지만, 그 원천은 소네트로 대표되는 '시'였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근대 소설가의 절대적 우위 속에서도 여전히 러시아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다.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구루 타고르는 시를 통해 구도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송되며 사랑받는 장르다. 시는 사물과 의식, 물질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도로 집약된 언어 세계를 다루지만 심장 박동처럼 인간에게 친숙한 '리듬'을 타고 전해진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 점에서 물질주의가 만연한 현대에도 '시'의 가치는 쉽게 교환가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희소하기에 가치가 있고, 소수에 의해 창작되기에 고유한 세계를 보여 준다. 시안詩眼이 열린 소수만이 시를 향유하지만, 그 소수에 의해 쓰인 훌륭한 시는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문학의숲'에서 새롭게 펴내는 <세계숨은시인선>은 뛰어난 문학성을 보였고 작가로서 극적인 생애를 살았으나 아직도 우리에게 생소한, '세계의 숨어 있는 시인'을 발굴하여 세계 어디에나 좋은 시, 좋은 시인이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영미 문학에 편중된 우리의 세계 시 읽기의 편식을 지양하고, 터키, 몽골, 네팔 등 제3세계 언어권의 시인도 적극 소개할 예정이다.
첫 시인은 이란의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파로흐자드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만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영감을 준 시인으로 한국에는 처음 소개된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이란을 움직이는 그녀의 강렬한 시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두 번째 시인은 러시아의 릴케라 불리는 오시프 만델슈탐. 그의 부인 나데쥬다 만델슈탐의 회상록이 없었다면 시집 한 권 제대로 남지 못했을, 스탈린 시대에 감옥에 갇혀 비극적 생애를 살다 간 만델슈탐의 서정시 세계를 주목한다.
세 번째 시인은 폴란드의 시성 아담 자가예프스키. 체스와프 미워시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성을 이으며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그의 시 세계가 처음 소개된다.
이후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모네다, 일본의 나나오 사카키, 아르헨티나의 후안 헬만, 몽골의 라그와슈렌, 네팔의 드르갈 랄 슈레스타 등이 뒤를 이을 예정이다. 해당 언어권의 전문가를 번역자로 선정하여 원시에 충실한 번역을 하되 가독성을 고려했고, 각 권마다 박형준, 이장욱, 진수미, 김경주 등 영향력 있는 한국 시인의 에세이를 따로 실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인 또는 시집을 읽어 나가는 데 이들의 해설과 에세이가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며, 시를 본격적으로 창작하거나 공부하는 독자들에게는 보다 유익한 부록이 될 것이다.
- 아담 자가예프스키에 쏟아진 찬사
자가예프스키의 시들은 당신을 고요히 소유한다. 제자리에 서 있는 기차의 고요함, 하지만 엔진은 맥박처럼 뛴다. 그의 시 속에는 언제나 음악, 아니면 음악의 잔향이 있다. 그것은 황폐화된 이 추악한 세기의 한 구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목소리이다. _데릭 월코트(세인트루시아 시인이자, 극작가,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
네루다와 밀로즈,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놀라운 목소리는 이 둘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얻게 되었다. 산뜻하고 서정적인 명징성에만 치중하게 된 시문학에서, 그는 이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관점 모두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보건대 그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진정성 있는 대표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가장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시인이다. _메리 올리버(미국 시인)
엇비슷한 동시대의 시인들에서 벗어나 나의 언어권 시를 주도하는 대단한 시인을 보는 일이란 이다지도 기쁜 것인가! 내가 느낀 경이를 자가예프스키의 말로 표현하련다. '오직 타인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 안에 위안이 있다.' _체스와프 미워시(폴란드 시인·198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늘날 어떻게 시인이, 그것도 지적이고 진지한 시인이 신비스러운 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_애덤 키어시(미국 시인), <뉴리퍼블릭> 서평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처럼 시의 뮤즈가 이렇게나 명료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 클리오(역사의 뮤즈)와 에우테르페(서정시의 뮤즈)의 강렬한 대화를 두 귀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다. _조지프 브로드스키(러시아 태생 미국 시인·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자가예프스키는 탐미주의자가 아니다. 시에는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된다. 아름다움을 진실보다 우선시하는 작가에게 화 있을진저! _수전 손택(미국 평론가)
자가예프스키의 시는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놀라우리만치 신선하다. 그의 시문학과 사고는 제대로 보는 법에 대한 앎과 관련된다. 그의 시는 저마다의 고유한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세계를 언뜻 엿보는 귀중한 순간을 찬양한다. 없어서는 안 될 시인이다. _찰스 시미치(세르비아 시인)
자가예프스키의 시는 우리를 둔감하게 만드는 모든 일상적인 위협에서, 우리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끌어내 준다. _필립 보엠(미국 번역가), <뉴욕타임스> 서평
목차
목차
일인칭 복수형으로
독자에게 온 편지
신세계
철학자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다수에 대한 찬가
. . .
5월에
새로운 경험
이민자의 노래
힘
저녁 무렵, 이성理性에게 띄우는 엽서
미래
과거에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잘 모르던 어느 여인의 죽음에 부쳐
과일
프란츠 슈베르트의 기자 회견
나방
책을 읽으며
한밤에 부는 바람
고딕
르부프로 간다
나
집중을 흩뜨리지 말라
델프트 풍경
고요
세 개의 음성
프리드리히 니체와의 대화
밤
실재實在
역사 소설
캔버스
돌
나는 아직 시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
낯선 도시들에서
자장가
사물들의 삶에서
일렉트릭 엘레지
카르멜리츠카 거리
삼왕
암스테르담 공항
세 천사
중국 시
열대식물원
베르메르의 어린 소녀
야만인
어느 피아니스트의 죽음
초보자를 위한 신비주의
방
긴 오후들
여름의 절정
장학생 숙소
천천히 말해도 돼
자화상
두우가 거리
포텡가 극장
무지개
가치가 있었을까
별
그대와 함께 듣던 음악
불가능한 우정
대화
영혼
저녁 무렵 새가 노래한다
미워시를 읽다
늙은 마르크스
거대한 배들
균형
평범한 인생
낯선 도시에서
2004년의 마지막 날
함께 듣던 음악
누군가 오르간을 조율하고 있다
왕국들에 관해
피아노 레슨
가족이 살던 집
벙어리 도시
비행기에서의 자화상
불가능한
1월 27일
종점
당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위대한 시인이 세상을 떠나다
메타포
사진 찍힌 시인들
얼굴
시를 쓴다는 것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피아노 조율사
자화상
사진을 본다
어머니에 대하여
추억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해설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열망하는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ㆍ최성은
에세이 뒤늦게 오는 아픔ㆍ박형준
출전
독자에게 온 편지
신세계
철학자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다수에 대한 찬가
. . .
5월에
새로운 경험
이민자의 노래
힘
저녁 무렵, 이성理性에게 띄우는 엽서
미래
과거에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잘 모르던 어느 여인의 죽음에 부쳐
과일
프란츠 슈베르트의 기자 회견
나방
책을 읽으며
한밤에 부는 바람
고딕
르부프로 간다
나
집중을 흩뜨리지 말라
델프트 풍경
고요
세 개의 음성
프리드리히 니체와의 대화
밤
실재實在
역사 소설
캔버스
돌
나는 아직 시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
낯선 도시들에서
자장가
사물들의 삶에서
일렉트릭 엘레지
카르멜리츠카 거리
삼왕
암스테르담 공항
세 천사
중국 시
열대식물원
베르메르의 어린 소녀
야만인
어느 피아니스트의 죽음
초보자를 위한 신비주의
방
긴 오후들
여름의 절정
장학생 숙소
천천히 말해도 돼
자화상
두우가 거리
포텡가 극장
무지개
가치가 있었을까
별
그대와 함께 듣던 음악
불가능한 우정
대화
영혼
저녁 무렵 새가 노래한다
미워시를 읽다
늙은 마르크스
거대한 배들
균형
평범한 인생
낯선 도시에서
2004년의 마지막 날
함께 듣던 음악
누군가 오르간을 조율하고 있다
왕국들에 관해
피아노 레슨
가족이 살던 집
벙어리 도시
비행기에서의 자화상
불가능한
1월 27일
종점
당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위대한 시인이 세상을 떠나다
메타포
사진 찍힌 시인들
얼굴
시를 쓴다는 것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피아노 조율사
자화상
사진을 본다
어머니에 대하여
추억들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
해설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열망하는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ㆍ최성은
에세이 뒤늦게 오는 아픔ㆍ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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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자가예프스키
저자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고향을 배반한다. 한번 잃어버린 고향은 결국 어느 장소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자가예프스키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가축 운반차에 실려 새로운 땅으로 추방당한다. 그 이후 그는 영원한 이방인, 자기 자신까지도 타인으로 느끼는 삶에 지배당한다. 고향 상실과 독재 정치는 자가예프스키의 시 세계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공산 사회의 실체를 폭로한 '크라쿠프 뉴웨이브', 곧 1968년 전후로 등단한 작가 단체인 '68세대'의 중심인물로 유명해지지만 그의 작품은 곧 금서 목록에 오른다. 그러나 자가예프스키는 정치적인 상황보다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에 더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억압받는 자의 고독에 깊이 천착한다. "나는 시가 내 국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감정, 의견, 기쁨, 슬픔으로부터 커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자가예프스키는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체스와프 미워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잇는 대표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의 고은 시인과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렬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다. 시를 읽는 사람이 적어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는 시의 열렬한 옹호자이다. "당신은 시를 쓴다. 당신은 살아 있다. 당신이 시를 쓴다면 그것은 그저 슬퍼하기보다 더 큰 전체적인 무언가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 당신은 어떤 인간성 같은 것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인간성은 웃음과 울음의 혼합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이 기꺼이 내놓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 안에 그리고 다른 물건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보편적인 선, 우리 내부에 저마다 존재하는 신, 깊은 곳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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