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힘숨 3(요한복음 강해 3)
『빛 힘 숨』은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 교수를 역임한 저자의 요한복음 강해서다. 1993년 3월 7일부터 1995년 6월 25일까지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강의했던 것으로 총 2년 반, 다섯 학기 동안 해온 81회의 강의들을 엮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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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저자 김흥호 선생이 1993년 3월 7일부터 1995년 6월 25일까지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강의했던 것으로 총 2년 반, 다섯 학기 동안 해온 81회의 강의들이다. 이 강의들을 학기 별로 나누어 전5권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 『빛 힘 숨: 십자가 부활 승천』은 저자가 지은 것이다. 제목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머리말 앞에 실었고, 요한복음 강해 서문을 본문 앞에, 요한복음의 목적 및 후기를 본문 뒤에 실었다.
저자는 요한복음이 우리 동양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한다. 동양인이 제일 이해하기 쉬운 복음서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다른 세 복음서와 다른 것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동양에서는 진리, 도道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어서 동양인에게 친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육신"은 세상에 와서 사람의 형상으로 살고 있는 인간을 말한다. 하나님 아들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와서 살았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가 되었다. 아니 그는 원래 그리스도였다. "말씀"의 "육신"이 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말씀의 육화, 화신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밝힌 복음서는 없을 것이다.
또한 "말씀"은 진리이고, "육신"은 행동이다. 혹은 실천이다. 실천이나 행동은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관념이나 말은 소용없다. 지知와 행行의 일치라는 대명제가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저자는 실천하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한다.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땅에 온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우리들, 모든 인류 역시 사람의 아들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이다. 그것이 본연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본래 말씀으로부터 육화된 존재인 것을 망각했다.
그것을 되찾는 방법을 예수는 이렇게 제시한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 길밖에 없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본향을 떠난 우리들은 돌아가야 할 길이 한없이 멀고 고달픈 여정으로 남아 있다.
유영모 선생은 요한복음을 참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은 요한복음 강의를 여러 번 하셨다고 한다. 저자 김흥호 선생은 그 강의를 여러 번 들었고, 그 역시 이 요한복음을 좋아한다.
그도 요한복음을 많이 강의했고 글도 썼다. 그 중 하나가 2010년에 출간된 『신의 아들 예수ㆍ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예수 평전이다. 이 책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를 쓴 것이다. 예수를 체득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 책은 1984년 『영원을 사는 사람』이라는 설교집 2부에 수록되어 있던 글이다. 이 글은 설교가 아니고 저자가 직접 쓴 글이다.
이번 『빛 힘 숨: 십자가 부활 승천』은 1993년부터의 강의이니 약 1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사상에는 변함이 없다. 『신의 아들 예수ㆍ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간 글이지만 이번 책은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책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예수라는 인물과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종교인의 궁극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런 거듭나는 경험을 통해야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지 왜 이런 신비가 인생에 있는지 이런 생각들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는 십자가를 통해서 빛이 되고, 부활을 통해서 힘이 되고, 승천을 통해 숨(생명)을 얻는다고 한다. 그것을 "빛-십자가-본질직관, 힘-부활-근본경험, 숨-승천-인간구원"이란 등식으로 풀어간다.
저자는 서양의 기독교 신앙과 동양의 유불선, 즉 석가와 노자, 장자, 그리고 공자를 함께 말한다. 기독교는 믿음을 강조하는 타력종교이다. 동양종교는 고행을 바탕으로 하는 자력종교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21세기 또 앞으로 이 지구에서 우리가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길은 서로 자기만 옳다 하고 남을 무시하는 자세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믿음도 중요하고 고행도 중요하다. 예수의 피와 살도 필요하지만 내 피, 내 살도 필요하다. 그것이 십자가일 것이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김흥호에게 하나님이 계시를 내렸다. 저자에게 내린 하나님의 계시는 바로 이것이다.
단단무위자연성斷斷無爲自然性
즉심여구토성불卽心如龜兎成佛
삼위부활영일체三位復活靈一體
천원지방중용인天圓地方中庸仁
이 네 구절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천명天命이다. 그 이후 그는 일식一食 일좌一坐 일인一仁 일언一言을 수행하면서 12년 동안 노장사상과 불교, 기독교, 유교를 깊이 파들어 갔다. 그 사상들은 『사색』이라는 개인 철학 잡지로 12년 동안 144호를 통해 발표 되었다.
그는 광야의 세례 요한처럼 외친다. 기독교는 이제부터 동양문명의 세계로 올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앞으로 기독교가 살기 위해서는 공자나 석가, 노자 같은 동양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 만들어 동양 사람들을 먹이고 살려가야만 한다. 앞으로 기독교가 살아서 무성한 숲을 이루어 온 세상을 덮고, 생명의 샘이 땅 끝까지 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독교가 동양을 살려내는 세계적 기독교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 기독교로는 희망이 없다. 이제까지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기독교가 왔지만 이제는 동양과 한국의 기독교가 서양을 구원할 때가 올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의 각성, 그리스도교인의 참회, 모든 한국인의 거듭남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이 깨닫고 보고 걸어갔던 길을 우리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우리도 빛과 힘과 숨을 가질 수 있도록 그의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 하여튼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우리도 이상을 가지고 살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꼭 물질적인 이상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정말 정신적인 이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태극의 원리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 원리를 가지고 이상을 찾지 못하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를 가지고 싸움만 하게 된 것이다. 이퇴계의 이발기발理發氣發이 옳다, 이율곡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이 옳다, 그렇게 300여년을 싸우다가 세월만 허송하고 만 것이다. 그 원리를 가지고 더 깊이 생각하여 그 원리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시비만 따지고 싸움만 하는데 써 먹고 만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불교도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의 소위 화엄법계라고 하는 그런 큰 이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래서 여기저기에 화엄사니 해인사니 해서 큰절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러한 이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그곳에 가서 절만 하는 절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큰 이상을 자기에게 구체화 시켜야 하는데 그 이상 앞에 절만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말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도 우리에게 큰 이상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러한 이상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이상은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기껏해야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이 교회당 짓는데 세월을 다 보내고 있다. 어떤 목사가 큰 예배당 지었다고 하면 그것이 대 성공인양 야단이다. 이 근방에 있는 대신교회도 지금 큰 2층 교회가 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9층짜리로 짓는다고 한다. 우리의 이상인 하늘나라는 다 집어치우고 교회당 건물 짓는데 골몰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대형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신도가 만 명이니 몇 십만이니 하고 자랑한다. 우리 민족 전체가 이상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자꾸 현실주의로만 흐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큰 집단이 되어서는 결국은 요사이 말하는 집단이기주의로 빠지게 되고 만다. 그래서 교인들이 내는 헌금은 거의 그 집단의 이기주의에 다 쓰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44. 부활과 생명> p.247~48)
* 부활이란 이천 년 전에 예수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그것이 부활이 아니다. 내가 지금 부활이 되어야 그것이 부활의 참 뜻이다. 내가 바로 부활이요가 되어야지 이천 년 전에 예수가 부활한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내가 부활이 되어야 예수의 부활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내가 부활되지 않고는 예수의 부활은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44. 부활과 생명> p.252)
* 예수만이 부활이 있다, 라고 알고 있는 교회에다가 이런 말을 했다가는 매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네가 무엇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 그것은 예수만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야단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도 그 당시에 그런 말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맞아 죽게 된 것이다. 지금 사람들도 그런 말은 예수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예수를 모독하는 것이다. 네가 예수와 같으냐 하고 난리를 칠 것이다.
내가 요전에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1시간 반 강의를 하러 갔다가 10분만에 쫓겨 나온 적이 있었는데, 목사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와 비슷한 얘기를 시작한지 10분도 안되어 곧 그것은 예수에 대한 모독이 아니냐, 라고 소란이 생겨 결국 강의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리스도는 나하고는 다른 특별한 존재다, 라고 해야 하고 그저 나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라고 해야 문제가 없지 조금이라도 나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내세우게 되면 큰일이 난다.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고백은 밤낮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 주님하고 찾는 데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벽기도도 하고 산기도도 찾아가고 평생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탄식으로 일생을 살게 된다.
'내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만 부활이 아니요 내가 부활이다. 자기가 자기 마음속에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명이다. (<44. 부활과 생명> p.252~53)
* 알려고 애쓰지 않고 믿음만 강조하다보면 샤머니즘이 되고 만다. 알고 믿어야 되고 믿으면 또 알도록 애써야 한다. 역시 지적인 것을 포함시켜야지 지적인 것이 없어지면 신비주의가 되고 말고 위험한 믿음이 되고 만다. (<45. 죽음과 삶> p.278-79)
목차
목차
머리말
요한복음 강해 서문
제8장 진리란 무엇인가
31. 진리란 무엇인가(요한 8:30~32)
32. 진리와 자유(요한 8:30~36)
33. 하나님: 근거根據의 근거根據(요한 8:37~47)
34. 예수님: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요한 8:48~59)
제9장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35.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요한 9:1~7)
36. 안식일의 주인(요한 9:8~17)
37. 메시아(요한 9:18~34)
38. 그이(요한 9:35~41)
제10장 밑힘
39. 목자牧子와 도둑(요한 10:1~6)
40. 제삼第三의 개념槪念(요한 10:7~21)
41. 하나님과 하나(요한 10:22~30)
42. 밑힘(요한 10:31~42)
제11장 인생은 죽음으로부터
43. 관계의 관계(요한 11:1~16)
44. 부활과 생명(요한 11:17~27)
45. 죽음과 삶(요한 11:28~44)
46. 인생은 죽음으로부터(요한 11:45~54)
47. 해방, 독립, 통일(요한 11:55~57)
부록 1 요한복음의 목적
후기
부록 2 차례(제1~2, 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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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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