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노자익 강해 5(무지 무위 무욕)(김흥호 사상 전집 노장사상 1)
교재 노자권재구의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무위 무욕』후편 5권~8권(전 4권)이 출간되었다. 이로써 『노자 · 노자익 강해』 전 8권이 완간된 것이다. 『노자 · 노자익 강해』는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2004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주 일요일 일반인들 상대로 47회 강의한 내용이다. 교재는 『노자권재구의』이고, 부교재로는 초횡의 『노자익』과 저자의 보충자료들이다. 책의 구성은 노자 도덕경의 해석과 권재 임희일(중국 남송시대인)의 노자구의에 대한 해석, 그리고 저자가 발췌한 『노자익』(초횡)에 나오는 주해들 및 기타 자료들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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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교재 『노자권재구의』 제5~8권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무위 무욕』후편 5권~8권(전 4권)이 출간되었다(김흥호 사상전집 17~20권). 이로써 『노자 · 노자익 강해』 전 8권이 완간된 것이다.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는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2004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주 일요일 일반인들 상대로 47회 강의한 내용이다. 교재는 『노자권재구의』이고, 부교재로는 초횡의 『노자익』과 저자의 보충자료들이다.
책의 구성은 노자 도덕경의 해석과 권재 임희일(중국 남송시대인)의 노자구의에 대한 해석, 그리고 저자가 발췌한 『노자익』(초횡)에 나오는 주해들 및 기타 자료들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노자의 주해가 집대성되어 해석되기는 국내에서 유일하며,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자권재구의』와 초횡의 『노자익』의 주해가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이된 것도 처음이며, 조선시대 박세당의 주해도 전부는 아니지만 함께 다루었다는 것도 큰 의의가 될 것이다.
『노자권재구의』는 조선왕조 세종대왕 때 경자자庚子字로 출판(세종 2년 1420년 금속활자 인쇄본, 보물 제1655호)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혀졌던 책이다. 특히 권재 임희일의 노자, 장자, 열자의 〈삼자권재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그들의 노장사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책은, 현재 김흥호 선생이 한문교재들을 한 줄 한 줄씩 읽고 풀이하며 강의해나간 내용을 녹취하여 강의의 현장감이 드러나도록 편집되었다. 한문을 전혀 몰라도 이야기 듣듯이 편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전집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제8권의 부록들은 노자사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본 전집은 총 8권으로서 분량으로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나름대로 골라서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다. 제1권에서 〈권재구의〉의 '노자사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길게 느껴지면, 2권, 3권 등 다른 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어도 되고, 중간 중간 1권을 참고서 삼아서 읽어도 된다. 또 제8권은 대단원에 해당하므로 전체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
간단히 각권의 특징을 소개한다.
5권: 제37장부터 제48장까지 수록되어있다.
제38장에서는 〈노자의 종교와 공자의 도덕〉이라는 설명이 들어있다.
6권: 제49장에서 제60장이다. '절대자, 철인, 이상세계'에 대한 해석과 진리의 체득, 노자의 정치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들이 풍부하다.
7권: 제61장에서 제72장까지이다. 이 책에서는 '질적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범신론', '무위 · 무사 · 무미', '신즉자연'을, 빙상경기 선수, 축구 선수들을 예로 들 어 해석했다.
또 제70장을 원리, 제71장을 진리, 제72장을 실존으로 정의하여 과학, 철학, 종교의 세계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8권: 제73장에서 제81장까지이며, 마지막 책으로서 선생의 노자사상 강의의 대단원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인 〈노자 강의를 끝내며: 노자, 오천 언의 열매〉가 있고, 편집후기가 있다. 부록으로 〈전 8권의 차례〉와 〈주해자 및 관련 인물〉, 〈참고문헌〉, 〈노자 1~81 장 전체 찾아보기〉, 제8권의 〈찾아보기〉로 끝을 맺었다.
현재 김흥호 선생은 2012년 12월 5일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노자익을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배웠고, 이 노자를 무척 사랑했다. 선생은 생전에 이 책의 서문들을 쓰고 원고를 읽어가면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제 이 책이 완간이 되어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사상을 누구든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선생의 손에 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세월이 갈수록 커진다. 2015년 12월에는 추모 3주기를 맞았다.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
출판사 서평
노자老子, 권재齋, 현재鉉齋의 무無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 무위 · 무욕』, 전 8권
교재 『노자권재구의』 사색출판사 2016년 2월 5일 출간
이윤식(작가)
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김흥호 선생의 사상 전집 중에『노자 · 노자익 강해』가 지난 2013년, 노자老子 5천 자, 총 81장 중에서 36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고, 2016년 2월, 37장부터 마지막 81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다.
현재鉉齋 김흥호 선생은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서도 강의를 놓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2012년 93세로 돌아가시면서 선생의 강의 모습은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이 힘을 모아 그동안 연경반에서 강의한 주역周易, 원각경圓覺經,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등이 이미 출간되었고, 다음 강의들도 제자들이 모두 녹음해 두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글로 살려, 한 권씩, 한 권씩 계속해서 발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노자ㆍ노자익 강해: 무지ㆍ무위ㆍ무욕』도 그 일환이다.
노자가 주나라에서 서역으로 떠나던 중 함곡관에서 당시 관령 윤희尹喜의 요청으로 남긴 81장으로 구성된 5천 자가 노자가 썼다는 글의 전부라고 한다. '노자'는 중국에서는 '스승 중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호칭이기도 하다. 서기전 6세기경의 인물이라 베일에 싸인 부분도 많다. 공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나 서역으로 넘어가 백 년, 2백 년 장수했다는 것도 사실 확인되지 않은 신화적 이야기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천 자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춘추전국시절 초나라 태생이다.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노자의 5천 자와 이 5천 자를 주해한 권재齋의 해석, 그리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 등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재 임희일(齋 林希逸, 1193∼1271)은 중국 남송시대 사람이며, 유불도의 사상을 섭렵하여, 노자의 5천 자를 강의한 『노자권재구의老子齋口義』를 남겼다. '구의'는 '강의'라는 뜻이다.
노자사상과 그 주석들에 대한 해석서는 이미 국내에도 많이 나와 있고, 대학 철학과에서도 많은 강의가 있어왔다. 그러면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 특징들이란 김흥호 선생의 철학세계와 직결되기에 간략하게나마 이와 함께 언급해야겠다.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무극 · 태극 · 음양'으로 보고, 이를 노자 5천 자, 81장 내용을 꿰뚫는 핵심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자의 원문을 김흥호 선생 특유의 누구나 알기 쉬운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그다음 권재의 해석, 그 외 여길보, 정구, 이식재, 소자유, 박세당 등 역대 주석들을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김흥호 선생의 철학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선생은 정인보 선생으로부터 양명학을,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일좌일식의 철학을, 지식이 아닌 지행합일, 체득으로 배움을 이어온 철학자이면서 유교, 불교, 기독교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섭렵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노자 강해의 결정적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자의 자구해석에서 지엽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기독교사상, 동서양 철학을 꿰뚫는(일이관지一以貫之) 해석에 있다. 따라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풍요로움을 느끼는 독서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불교와 노자사상, 기독교사상 등이 본질적으로 핵심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점을 책 전편에서 많은 비유를 들어 강조하고 있다. 노자의 무無는 서양에서 말하는 '절대자'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眞空'으로, 그 무를 직관으로 체득한 자를, 성인 혹은 철인으로 보고 있다. 유영모 선생은 이것을 '없이 존재하는 분'으로 표현한 바 있다.
노자의 무사상은 참으로 어렵다. 말로 표현하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해서 노자의 5천 자에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주석에서도 상징과 비유적 표현이 많다. 김흥호 선생도 비유적 표현을 많이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무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는 '얼음'으로, 에베레스트 산은 절대자를 만난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등 성인, 철인으로, 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만인, 만물을 먹여 살리는 '말씀'(성경, 팔만대장경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결국 노자사상은 '형이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고, 노자는 이것을 '도道'라고 했지만 결코 설명할 수 있거나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으로 보지 않았다.
김흥호 선생은 '무'라는 절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자의 자구적 해석 등 지식의 습득에 머물기보다는 일좌일식 등 실천적인 체득을 강조했다. 노자는 육체(욕망)의 삶에서 정신의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절대(무無)를 만나야 하고, '나'를 알자는 것이 5천 자를 남긴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노자의 '진신眞身' 개념을, 불교에서의 '법신法身', 기독교에서의 '도신道神', 유교에서의 '성신誠身'으로 대비하고 있다.
선생은 노자의 글, 81장의 전체내용이 도, 철인, 이상세계(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등 세 개의 핵심 내용이 반복해서 설명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원문을 분석, 풀이하면서 분별지에서 통일지로 나아가는 노자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노자의 원본 자구字句의 직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원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가령, 제5장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拘"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직역하면 "천지는 어질지 못해서 만물(백성)을 꼴과 개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직역을 하면 노자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뜻이 된다. 왜 노자는 이렇게 말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仁이란 세상이 어질지 못하니 억지로라도 실천해야 되는 유위有爲에 해당한다. 김흥호 선생은 이 구절에서 '천지'는 '자연'으로, '불인'을 인위적인 사랑이 아닌 무위적 행위, 즉 저절로 하는 사랑으로 풀이한다. 그러므로 추구芻拘는 "꼴과 개" 혹은 "꼴로 만든 개"가 아니라 맹자가 언급한 "추환芻?"이 된다. 즉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맹자는 "마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진리와 정의라. 눈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고, 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고, 입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추환이라" 하였다. 김흥호 선생은 위 구절의 '추구'를 맹자가 이렇게 언급한 '추환'으로 보고, "가장 행복한 존재"로 해석한다. 따라서 위 구절의 의미는 "천지는 인위적인 사랑을 하지 않고, 저절로 하는 사랑이라 만물을 행복한 존재로 만든다"라는 것이 된다고 선생은 풀이하고 있다. 이 5장에 대한 권재의 주석을 보면 선생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구의 좁은 해석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수많은 비유들이 노자의 핵심사상을 이해시키고도 남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노자의 '무'니, '자연'이니 '무위'니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는 돼도 이를 체득을 하기 위해서는 '일좌일식'이라는 실천적 덕목이 필요하다. 선생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금지유고以今之猶古 즉지고지유금則知古之猶今, 금今이 오히려 고古가 되면, 고古가 또 금今이 되는 거고, 그래서 원리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우리가 지금 노자를 읽는 것도 옛날의 이치를 배우자는 거죠. 이치를 배워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건가? 현실적인 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지요. 이것을 소위 도기道記라고 그런다. 도의 핵심이라고 그런다. (…) 도기자道記者, 도기라는 원리는 무거래야無去來也 고금지위야古今之謂也.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진리지, 과거에는 진리인데, 지금은 진리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 노자, 이런 고전은 무슨 특별히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글자 그대로 뜻이 있는 게 아니죠. 이걸 전체로 직관해서 핵심을 붙잡아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2천 5백여 년 전에 남긴 노자의 글은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쟁의 참화가 비일비재했던 춘추전국시대였다. 무례함이 판을 치니, 예를 강조하게 되고, 무법이 판을 치니 법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인仁이니 예禮라는 것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유위有爲보다 무위無爲가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고, 세상을 더 세상답게 만들고 있음을 노자는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무위사상을 요임금, 순임금의 경우로 비유하고 있다. 세상이 풍요롭지만 백성들이 왕이 잘해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백성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잘 살게 되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백성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무위의 정치를 펼치는 왕이 진정한 왕이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대로 절대자(무無)를 만난 철인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인에 대한 언급도 결국 절대자의 무위無爲를 설명하기 위한 예인 것이다.
노자의 원문에 나오는 수레바퀴 30개의 살이 도는 것도 축이 들어가는 바퀴의 빈 공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예도 그렇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도 모두 무와 무위에 대한 설명이다.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심오한 사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빈 공간'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無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서 무無라는 게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생은 이 무無를 '절대자'로 보았다. 선생은 노자의 글은 이 절대자, 절대자를 만난 철인, 철인에 의한 이상세계를 전편에서 다루는 핵심이라고 하였다. 제37장에 나오는 글을 보자.
"도상무위道常無爲 이무불위而無不爲"
"절대자를 만나면 무위, 언제나 철인이 되는 거다. 철인이 되면 거기가 이상세계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절박하게 와닿는 구절이 다음에 나온다.
"후왕약능수候王若能守 만물장자화萬物將自化."
"이 세상 왕들도 이 말을 이해하면 모든 왕들이 철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저절로 철인의 덕을 감화를 받아서 스스로 다스리고, 그래서 자유가 생기고,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 온 세상이 이상세계가 된다."
이 37장의 권재구의나 육희성陸希聲의 주, 여길보呂吉甫의 주를 보면 왕에 국한되지 않는다. 왕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모든 만물이 잘 자란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식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 각 가정의 부모들이 제 자리를 지켜야 이 세상이 바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나'가 무엇이 되었든, 어느 지위에 있든지 '나'가 먼저 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절대자와 만났다고 표현하든, 철인이 되었다고 표현하든 같은 뜻이라고 선생은 해석한다. 여길보의 주 마지막에는 "동지천하同之天下 이선지후왕而先之候王 의야義也"라는 말로 장을 맺는다.
"천하 사람들하고 같이 살겠다 하기 전에 먼저 왕이 철이 들어야 한다. 그것을 의義라 한다."
정치처럼 시끄러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정치는 왜 하나? 우리는 매일 같이 일하러 나간다고 하는데, 일은 왜 하나? 선생의 표현방식으로 풀이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이고, "하루하루의 삶이 깨끗하게(깨달아 끝을 맺는)" 되기 위해서인 것이다. 수천 년 전 노자가 오천 자를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일이 다 소개하기 어려운 보석 같은 이 고전의 마지막 장, 제81장에서는 "신언불미信言不美 선자불변善者不辯 지자불박知者不博"으로 압축될 수 있다. 선생은 "참된 말은 듣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깨달은 자는 변명하지 않으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말한다.
"노자가 하고 싶은 소리는 생명을 얻어야 되고, 도에 통해야 되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고, 이것이 노자의 전 내용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하면 진리를 깨닫나? 어떻게 하면 도에 통하나?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나? 내가 늘 말하던 빛과 힘과 숨이라는 거죠."
'생명, 도, 진리' 혹은 '빛과 힘과 숨'을 선생은 '통일, 독립, 자유'라고 쉽게 풀이하기도 하고 "눈을 뜨고 일어서서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노자사상에 대한 선생의 핵심이기도 하다. 노자의 '무無'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노자 오천 자의 해석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생은 노자의 철학에서 과학, 철학, 예술, 종교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뚫어 해석해 나아갔고, 그 하나의 관점이란 '참 존재' 즉 '절대자와의 만남'이고, 이것이 노자 해석의 원점이면서 귀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 선생의 글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노자 6장에서는 하나님을 곡신谷神이라고 한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란 말이다. 노자는 이것을 무극이라고 한다. 없고 없는 하나님, 절대무다. 마치 어머니가 주고주고 주다가 자기는 숨어버리는 것과 같다. 무위자연이다. 그것을 하이데거는 에르아이그니스(Ereignis)라 한다. 절대무다. 인간은 절대무에서 걸려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본질직관이다. 이때 인간의 영성이 깨어난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영성이 깨어난 사람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노자는 우주를 허이불굴虛而不屈 동이유출動而愈出이라 한다. 텅 비어 있지만 계속 솟아나오는 것이 무위자연이다. 노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권재의 주석을 설명한 김흥호 선생의 글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기로 한다.
"독자불오기의讀者不悟基義, 독자는 그런 말에 끌려 다니지 말고 노자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노자의 근본 뜻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노자의 근본이 무엇인지, 그걸 깨달아야 한다. 이불견타문자기처而不見他文字奇處, 만일 글자에 끌려 다니게 되면 우다견강지설又多牽强之說, 억지로 갖다 붙이는 억지투성이가 되고 만다. 억지로 해석하고, 억지로 끌어다대고 그렇게 되고 만다. 요는 득이망어지得而亡語之이죠. 근본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먹어도 좋다. (…)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근본 뜻을 깨달았으면 그만 아닌가."
* 책속으로 추가 *
석지득일자昔之得一者, 옛날에 하나를 얻었다. 요 '하나'라고 하는 건 말하자면 통일이라는 거지요. 통일지죠. 이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통일지統一知니까. 철학 그러면 철학이 뭔가? 통일지란 말이지요.
통일지, 철학은 언제나 관觀을 얻는 것을 말해요. 관은 뭔가? 통째로 꿰뚫어보는 거죠. 우주관 그러면 뭐 별들을 본다, 그 소리가 아니고 우주 전체를 꿰뚫어보는 걸 말해요.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이게 철학이거든. 그리고 이 철학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통일이에요.
지금 우리나라가 제일 부족한 게 이 철학이죠. 생각하는 게 아주 부족해요. 생각하려 그러질 않아요. 생각하면 자꾸 골치 아프다고 하죠. 대신 뭘 제일 좋아하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부족한 게 이 생각하는 거니까 통일하는 게 제일 부족하다 이렇게 되죠. 그러니 자꾸 당파 싸움이 나오고, 이게 다 어디서 나오나 하면 철학이 부족해서 그래요.
여기서 일一은 통일한다, 이 소리죠. 이걸 글자로 말하면 도道고, 통일하는 게 결국은 도지요. 도라는 게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 이거거든. 이걸 도라 그러고, 또 다르게 말하면 통일, 그저 쉽게 말하면 뿌리라고 하면 되죠. 뿌리를 찾는 거지요.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결국은 득일得一이죠. 그러니까 천득일이청天得一以淸, 하늘도 뿌리가 있어야 깨끗해진다.(39장)
그러니까 철학이라는 건 뭔가? 국가를 어떻게 하자는 게, 이게 철학이거든요. 플라톤의 철학이란 뭔가? 이상국가를 만들자는 거니까. 서양 사람들이 제일 강한 건 뭔가? 국가관이 강해요. 우리는 국가라고 하는 의식이 참 약하다. 그리고 뭐가 강한가? 가족의식이 강하다. 누가 간다 그러면 인천까지 나가는 건 문제도 아니란 말이지. 누구 한 사람이 앓는다 그러면 병원에 온 식구가 다 들어가서 야단치거든. 그러나 우리는 국가라고 하는 의식은 참 약해요.
우선 제일 문제가 군대는 통 안 갈라 그런다. 조금이라도 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군대를 안 가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이 국가의식이 강한 나라에서는 군대라는 건 제일 먼저거든. 왜? 그 사람들은 나라가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 사람들은 굉장히 법을 잘 지키지. 왜?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나라가 되지 않으니까.
우리는 법이라는 걸 아주 형편없이 생각해요. 어떻게 하건 법을 안 지키려 그러고, 국가를 자꾸 멀리 하려 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제일 약한 것이 국가고, 제일 강한 것이 가족이고. 제일 약한 것이 법이고, 제일 강한 것이 정情이고. 전부 다 정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자꾸 야단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약한 것이 뭔가 그러면 국가관이다. 오늘 여기에 심즉리 그러는 건 국가를 어떻게 하자는 거지요. 성즉리 하는 것은 가족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고.
하늘 그러면 셋이고, 땅 그러면 넷이죠. 땅은 가족에 해당하는 거고, 하늘은 국가에 해당하죠. 나라하고 집하고는 결국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늘 그러면 언제나 셋이에요. 무극·태극·양의, 이 셋은 하늘에 속한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건 집에 속하죠. 집이라는 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런 식이죠. 그 하나라도 빠지면 안 돼요. 하늘은 언제나 셋으로 돼있는데 이 셋으로 돼있다는 게 뭔가 하면 통일·독립·자유죠. 이게 국가죠. 나라는 언제나 통일이 돼야 하고, 독립이 돼야 하고, 자유가 있어야 돼. 그런데 이 통일·독립·자유가 없으면 나라가 되질 않아요.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이 있으면 그다음에 아들 김정일이, 그다음에 또 정남이라나 누구라나, 또 지금 가족주의로 나오려고 그러니까. 가족주의로 나오면 통일이 안 되는 거지요.
신라 그러면 신라 때도 박씨인가, 석씨인가, 김씨인가 이러지. 조선왕조라 해서 이씨가, 김씨가 세도하고, 다 이거 가족이죠. 나라라는 의식이 없거든. 신라 때도 나라라는 의식이 없었단 말이지. 백제도 그렇지. 그렇게 전부 다 가족 위주니까 통일하기가 참 어려운 거죠. 밤낮 삼국, 삼한, 이렇게 갈라 있는 거지. 이것이 하나의 국가로 돼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아요.
조선조 때도 제일 안 된 것이 통일이에요. 밤낮 당파 싸움이지. 또 고려 때 제일 안 된 것은 독립이지. 원나라에 속하나, 청나라에 속하나, 명나라에 속하나? 이러고 살았어요. 그래서 고구려 때 을지문덕이 중국을 쳤다고 을지문덕을 아주 나쁜 놈이라고 한 사람도 많다는 거지. 어떻게 중국을 치느냐 우리 조국인데, 이렇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독립정신이 가장 희박할 때가 고려 때라.
그러고 자유가 가장 없는 때가 신라죠. 왜? 당나라를 끌어다가 백제를 쳤으니까. 백제 사람들 밤낮 원수지. 그러다가 또 고구려를 쳤으니까. 고구려하고도 원수지. 나중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잡아먹고 마니까. 그만 만주, 북한 다 빼앗기고 말거든. 그러고 신라는 겨우 어디에 머물러 있나 하면 청천강 이남, 거기에 갇혀서 살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신라 땐 하나의 말하자면 포로, 하나의 포로생활이지, 자유라는 게 일체 없는 거죠.
우리가 자유를 제일 많이 느낀 때는 만주, 고구려, 이때죠. 수나라하고도 싸우고, 당나라하고도 싸우고, 이럴 때죠. 그런데 신라 때부터는 당나라하고 싸운다, 수나라하고 싸운다, 이런 생각을 못했거든. 밤낮 그저 잡아먹으시오, 이러고 꼭 엎드려 있는 거지. 더구나 고려 때가 되면 그저 꼼짝 못하고 송나라면 송나라, 원나라면 원나라, 명나라면 명나라에 밤낮 그저 굴복하고 산 거지. 조선왕조 때는 더 말할 거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자유도 못 누리고, 독립도 못하고, 통일도 못하고, 이 세 가지를 다 못해. 왜 못했나? 국가의식이 없다.
서울에서 압록강, 두만강 국경비 갖다가 세우라 그러면 두만강에 갖다 놓든지, 만주 어디다 란 말이지요.무슨 강인가에 갖다 놓든지 하라 그랬는데 이거 백두산 남쪽에다 갖다 놓고 왔더래. 나중에 중국하고 국경이 문제가 돼서, 중국이 너희 국경비 세운 거 그걸로 하자, 그래서 보니까 함경도 절반이 없어지더라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이 그 꼴이야. 될 수 있는 대로 만주 복판 가운데 좀 갖다 놨으면 얼마나 좋아. 그땐 뭐 아무도 없는 때 아니야. 저 발해에 갖다 놓든지 말이야. 그런데 함경도 가운데쯤 갖다놓고 왔다. 그래서 나중에는 중국하고 국경 어떻게 따져보자 그러니까 이거 함경도 다 내주게 됐다 이거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두만강으로 하자 그래서 두만강이 국경이 되고 마는 거죠. 그래 그만큼 우리는 국가의식이라는 게 통 없어요.
이순신이 제일 좋다 그러는 건 국가의식이 강했다. 그러니까 집안 다 무시하고 그냥 백의종군하면서도 나라를 위해서 그런 거죠.
우리나라가 지금 제일 약한 것이 뭔가 하면 국가의식이 없다는 거지. 국가의식이 없다는 걸 다른 말로 하면 뭔가? 철학이 부족하다. 철학이라는 건 뭔가? 국가의식을 만들자는 거지, 가족의식을 만들자 그런 게 아니다. 철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통일·독립·자유, 이게 철학의 내용이니까.
그러니까 왕양명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뭔가 하면 통일·독립·자유, 이거거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왕양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지요. 퇴계도 왕양명을 읽긴 읽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밤낮 주자학만 하다가 결국은 망하고 마는 거지. 그래 이 가족의식이라고 하는 건 국가의식한테 이길 수가 없어요. 서양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국가니까. 그 국가의 힘을 가지고 밀고 들어오는데, 우리는 가족 가지고 밀고 간다, 이것도 말이 안 되죠.
어젯밤에도 KBS에서 무슨 중국 사람 화상이 나왔어요. 그 사람들 아직도 집안끼리 하더라고. 그걸 넘어가지 못하는 거지. 왜? 중국도 국가의식이 약하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자, 그래서 일一이라고 하는 게 뭔가? 국가의식, 통일·독립·자유, 이런 거란 말이죠. (39장)
약자弱者, 약弱이라는 것은 유약柔弱이라 해서 에베레스트에서 흘러내려오는 강물, 메콩 강이니, 인더스 강이니, 하는 그 강물, 그게 아주 유약이죠. 부드러운 거야. 그 물이 도지용道之用이에요. 도道의 용用이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든 만물을 살리고 있다. 도가 물론 모든 만물을 살리지. 살리는데 무엇을 가지고 만물을 살리나? 물을 가지고 모든 만물을 살린다. 물이라고 하는 게 도道의, 말하자면 도의 심부름꾼이지. 물이 도지용道之用이야.(제40장)
반자反者 도지동道之動, 반反이라는 것은 반대라는 뜻이 아니고 돌아간다는 뜻이에요. 그럼 어디로 돌아가나? 뿌리로 돌아가는 거죠. 기독교로 말하면 그리스도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는 거죠. 이 반이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뜻이지,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 뿌리가 뭔가? 그게 도라는 거지요. 동양에서는 형이상자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라 이거거든. 그러니까 도 그럴 때는 하나님도 도고, 그리스도도 도고, 성령도 도고, 동양에서는 그게 다 도예요. 결국은 뿌리라는 거지요. 형이상이라는 게 뭔가? 형이하의 뿌리라 이거거든요. 거기가 뿌리라. 우리가 보통 철학에서 실재라 그렇게 말하는 거지요. 왜? 거기가 뿌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뿌리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뿌리고, 성령이 우리의 뿌리죠. 우리가 실재라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도라고 하는 게 뿌리에요.
도지동道之動은 도가 움직인다는 게 아니죠. 도는 움직일 수가 없지. 뿌리니까. 도는 가만있는데 모든 만물이 도를 향해 움직여서 돌아오는 거죠. 여기(칠판에) '부동이동不動以動' 그랬는데, 도는 움직이지 않아. 자기는 움직이지 않아. 그러면서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거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이란 무엇인가 하면,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라 했어요. 그건 뭐하고 같은가? 언제나 에베레스트 산하고 같다. 산은 꼼짝 안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꾸 산으로 올라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올라가나? 그거 모르지요. 산이 그렇게 올라가도록 만들겠지요. 산이 너무 장엄하니까. 사람은 그 장엄함 때문에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는 거지요. 꽃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벌이 날아들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까 산이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도지동道之動이라 이렇게 되죠.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게 뭔가? 산이 그렇게 움직이게 한다. 산은 어떤 건가? 산은, 자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있다.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일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라 그러는데, 하나님이 신이라. 그러니까 신은 존재야. 존재라는 게 뭔가? 자기는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러면서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거야. 이 도지동道之動이라는 말은, 도가 움직인단 말이 아니라 도가 모든 만물을 움직인다, 그런 뜻이에요. 여기서는 산이, 지금 에베레스트가 도인 거죠.(40장)
상사문도上士聞道, 정말 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근이행지勤而行之,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말 믿음 있는 사람이다.
중사문도中士聞道, 보통 사람들은 문도聞道, 하나님에 대해서 들으면 약존약망若存若亡, 하나님이 있을까, 하나님이 없을까,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하사문도下士聞道, 그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문도聞道, 하나님에 대해서 들으면 대소지大笑之, 그 하나님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고 아주 웃어버리고 만다. 불소不笑, 웃지 않으면 부족이위도不足以爲道, 그걸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 하사들이 웃어야 하나님이지, 웃지 않으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고故, 그렇기 때문에 건언유지建言有之, 옛날부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정말 우뚝 선 말들이 있다. 고전이라는 거지요. 성경말씀이 있다. 이런 말씀들은 정말 알기가 어렵다. 이건 상사라야 알지, 중사나 하사가 되면 알기 어렵다. 왜? 전부 다 반대로 표현되니까.(제41장)
명도약매明道若昧, 밝은 것이 어두운 거라,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거든. 이런 걸 소위 모순이라 그러지요. 모순의 자기 통일, 그런 말을 우리가 많이 쓰는데, 생즉사,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에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이렇게 써 붙였어요.2 다 같은 말이죠. 그건 이순신이나 알지, 보통 사람은 몰라. 전부 그렇게 모순으로 표현된다. 이걸 '모순의 자기통일'이라 그러는데 그 모순된 것을 자기가 알아야 한다.
기독교로 말하면 생즉사라 할 때 '어떻게 사는 것이 죽는 건가'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뭐라고 하죠? 바울로 말하면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고, 죽는 것이 곧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는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린 죽으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그러니까 우리는 생즉사라 그런다. 사는 거나 죽는 거나 우리는 꼭 같다 그런 뜻이지요.
이순신은 나라를 위해서 살고, 나라를 위해서 죽으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오직 영광은 어디 있나? 나라에 있다. 나라만 일어서면 난 백 번 죽어도 좋고, 천 번 죽어도 좋다, 그런 생각이거든요. 그러니까 생즉사가 되는 거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아. 십자가도 좋고, 부활도 좋고 다 좋지, 십자가는 좋고, 부활은 나쁘다, 그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모순되는 것을 이해할 줄 알아야지, 그걸 이해 못하면 안 되죠. (제41장)
선생님이 닭의 역할을 하는 거지요. 닭의 역할을 하는데, 이 닭에게는 시간이 있어야 된단 말이지. 어미닭 품안이 공간이고, 이 스무하루가 시간이고, 이 시간하고 공간하고 곱해져야 병아리가 돼요. 그래서 시간 공간을 곱한 이것이 사차원이라 이렇게 되는 거죠.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지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속에 스무하루 동안 있어서 깨어 나오나 하는 거죠. 깨어 나올 때를 보통 실존이라 말해요. 스무하루가 됐다, 실존이야. 스무하루가 되기 전엔 뭔가? 현존재야. 현존재가 스무하루가 됐다 그러면 실존이 되는 거지. 어미닭 속에 들어가면 벌써 현존재야. 존재라고 하는 게 어머니야. 어미닭 품에 안기면 현존재야. 고 놈이 스무하루가 됐다 하면 깨어 나오니까. 깨어 나오면 그걸 실존이라 해요.
동양철학에서는 이 계란으로 있다, 이것을 보통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 그래. 계란 밖으로 깨어 나왔다, 병아리가 됐다, 천지지성天地之性이라 그래. 기질지성에서 어떻게 천지지성이 되냐? 이것이 동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지. 이게 주자니, 양명이니 야단치는 게 이거란 말이지 결국.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되는가? 그렇게 되려면 결국은 선생님을 만나야 돼. 다른 길은 없어. 선생님 품에 오래 있노라면 언젠가는 스무하루가 된다. 스무하루가 됐다는 건, 계란도 자기가 스무하루가 됐는지 모르고 어미닭도 몰라. 누구만이 아나. 사람만이 알아. 성경으로 말하면 하나님만이 알지 다른 이는 모른다. 어미닭도 제가 얼마나 오래 품어야 할지 모르고, 계란도 얼마나 오래 있어야 될지 몰라. 사람은 스무하루 만에 깨어 나온다 그걸 안단 말이지. 그런 관계.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여기서(계란) 어떻게 이게(병아리) 나오는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 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거지. 기질지성氣質之性에서 어떻게 천지지성天地之性이 되느냐? 이게 제일 중요한 거지. 그걸 기독교에서는 거듭났다 그래. 그것이 거듭난 거야. 거듭나면 어떻게 되나?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된다.(42장)
천하지지유天下之至柔,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 물이죠. 물이 치빙천하지지견馳騁天下之至堅, 천하의 지극히 굳은 바위를 움직일 수가 있다.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 예를 들면 빛 같은 것, 빛은 입무간入無間, 유리 속 같은 데로도 꿰들어간다.
오시이지吾是以知, 그래서 나는 안다. 무위지유익無爲之有益,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게 사랑이라고 하는 거다. 사랑이 가장 유익하다. 불언지교不言之敎는 지혜라고 해둡시다. 지혜가 또 가장 슬기롭다. 무위지익無爲之益, 이 사랑의 유익함은 천하희급지의天下希及之矣, 온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정말 사랑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드물다 그랬어요.
더구나 우리 조선왕조 때는 당파 싸움하느라고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으니까. 이 사랑을 안다는 것이 참 드문 일이다. 거기에 미치기가 참 어렵다. 남을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그 소리지요. 이것은 정말 철든 사람이 하는 거지, 철없는 사람은 안 된다, 지금 그 소리지요.(43장)
탐이다장貪而多藏, 욕심을 내어 많이 가지고 있게 되면 일단이실지一旦而失之, 일단 잃게 되면 기망야필후其亡也必厚, 그만 그 망하는 게 아주 더해. 그래서 돈 잃었다 그러면 한강에 뛰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단 말이지. 자기 자신도 잃게 되고 말거든. 돈하고 자기는 딴 거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같이 생각하고 말거든. 자기가 그만 하나의 돌멩이가 되고 말아. 그래서 돌멩이 한강에 던지는 것처럼 자기 몸을 물속에 땅 던지고는 뒈지고 말거든.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거지. 언제나 사람은 기체가 돼서 한강에 뛰어 들어가도 붕붕 뜨게 돼야지. 몰두하면 붕 뜬다 이거 아니에요. 사람은 언제나 붕 떠서 살아야지. 그걸 소위 기체라 그러는 거지.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며. 언제나 붕 떠서 살아야 돼.
내가 늘 그러지만 유영모 선생님은 무릎을 굴하고 열 시간도 앉아 있어. 그러고 또 걸어서 인천도 가. 개성도 가. 어떻게 그런가 했더니 선생님이 배를 주먹으로 쳐보라는 거지. 주먹으로 쳐보니까 요 밑 배, 아랫배가 축구공 같이 됐어. 팡팡 이렇게 튀어. 그 속에 있는 걸 소위 기해氣海라 그러거든. 기운이 꽉 차있는 바다라. 그 가운데가 단전이라는 거지. 기해단전氣海丹田이죠. 중들이 밤낮 참선하고 있으면 그 기해단전이 생기거든. 아마 죽은 다음에 사리가 나온다는 것도 그것이 나오는 거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해요. 사리 나온다 그러잖아요. 단전이 고 숯 덩어리거든. 숯 덩어리가 오래 되면 금강석도 되는 거거든. 땅 속에 들어가면 금강석도 되지만 사람에 있어선 사리가 된단 말이지. 그래서 절간이라는 건 언제나 산 높은 데 있는데, 아래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해도 별로 힘든 줄 모르거든.
유영모 선생님은 언제나 이 배는 밥 먹는 배가 아니고 타는 배다, 늘 그런 말을 했어요. 배를 타고 다니는 거지. 이 배는 항공모함, 항공선 같아서 타고 다니면 아주 둥둥 떠다니니까 개성 갔다 와도, 인천 갔다 와도 아무치도 않다는 거지. 산에 올라가도 아무치도 않다는 거지. 그리고 열 시간을 앉아 있어도 둥둥 떠 있으니까 아무치도 않지. 이게 소위 전기치유專氣致柔라는 거지. 기운을 꽉 채운다. 자, 그것이 정말 건강의 핵심이지. 살이 찌지 않는 대신에 기운으로 꽉 채워야 되거든. 그래서 기체, 이런 것이 상당히 중요한 거지. 기망야其亡也 필후必厚, 멸망하는 게 아주 무섭게 멸망할 거라.(44장)
유도지청정惟道之淸淨, 자, 이것도 청정淸靜이라고 고요할 정靜 자로 고쳐서 써야 돼요. 도라고 하는 건 언제나 물 같고 산 같아. 불유불무不有不無, 유무를 초월해야 돼. 불不은 언제나 초월한다는 거지. 생사를 초월하고, 유무를 초월하고, 지행을 초월하고. 지행일치 그러면 지와 행이 하나다 그런 소리가 아니지요. 지와 행을 초월해야지. 부동부정不動不靜, 동정을 초월해야지. 초월해야 에베레스트가 되는 거지. 에베레스트가 돼야 천하지정天下之正이지. 천하의 중심이다. 소이위천하지정所以爲天下之正 유왈위천하지식야猶曰爲天下之式也, 거기가 천하의 중심이 된다. 같은 말이에요.(45장)
연然, 그러나 자비성인自非聖人, 성인이 아닌 다음에는 불능무욕不能無欲, 욕심이 없어진다 하는 것은 참 어렵다. 욕欲, 욕심을 가지면 즉불능무구則不能無求, 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구이부지족求而不知足, 구해서 족한 줄을 알지 못하면 화지심자禍之甚者,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한 결과하다.
차호嗟呼, 아! 범비진성凡非眞性, 범凡, 무릇 비진성非眞性, 자기 자신이 아니면 개외물皆外物, 다 남인데, 자기 자신을 구해야 되는데 자꾸 남을 구한다. 물건이라 하는 건 나가 아니다. 외물外物이지. 진성眞性이 나다. 진성이 아니면 다 외물인데, 다 헛것인데, 쓸데없는 건데, 죽어서 갖고 가는 것 아니지.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진짜 내 것이지요. 죽어서 가져갈 수 없는 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진성이 아니면 다 남의 건데.
언득유지焉得有之, 그건 왜 자꾸, 어찌 언焉 자, 어째서 득유지得有之, 그걸 자꾸 가지려고 하는가. 그거 내가 가지면 도로 내게 손해지, 이로운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자꾸 가지려고 하는가. 인유지족자人有至足者, 사람은 언제나 족한 줄을 알아야, 족에 이르러야, 지족한 사람은 능지지족能知至足, 언제나 지족한 줄을 안다. 그래야 무소부족無所不足, 부족한 바가 전연 없다. 언제나 족하다.
인유지족人有至足, 요거 아주 중요한 거지요. 사람은 언제나 족한 데 도달해야 돼. 족한 데 도달해야 된다는 건 쉽게 말하면 도를 체득해야 된다, 그렇게 말해도 되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된다, 그렇게 말해도 되고, 다 같은 말이지요. 지족자至足者
목차
목차
권재의 노자
일러두기
노자 · 권재 · 현재
제37장 절대자를 만나야
제38장 도와 덕
제39장 국가의식
제40장 뿌리로 돌아가다
제41장 실력 있는 사람
제42장 선생님 품에 안겨서
제43장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것
제44장 금강석
제45장 천하의 중심
제46장 정신적인 충만
제47장 성인지도
제48장 근본경험
찾아보기
저자
저자
1919 2월 26일 목사인 아버지 김성항, 어머니 황성룡의 다섯째 아들로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 평양과 용강에서 성장.
1937 평양고보 졸업.
1944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1947 국학대학 철학교수.
1948 스승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을 만나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스승으로부터 현재鉉齋라는 호를 받음.
1956 이화여대 철학교수 취임.
1965 미국 버틀러 대학 종교사학 석사.
미국 인디아나 주 감리교회의 정목사로 안수 받음.
1975~1984 이화여대의 교목 역임.
1984 이화여대 정년퇴임.
1986 감리교 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 취임(15년 재직).
1996 이화여대 명예철학박사.
1965~2009 이화여대에서 학생, 교수, 일반인을 상대로 45년간 고전강독을 함.
2012 12월 5일 별세. 향년 9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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