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로나(반양장)
동행과 섬김의 편지
『디어 로나』는 로나 박사와 나눈 편지, 그리고 대화와 답변 등을 토대로 더블린한인교회 설립 과정, 아일랜드에서의 경험과 해외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고자 애쓴 흔적들을 기록한 책이다. 더블린한인교회 주보에 연재한 단상을 모아서 정리했으며, 유럽에서의 문화적 경험과 이곳에서 배운 새로운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또한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관련된 글과 더블린한인교회를 섬기다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동한 교우들의 글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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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은 2006년 부활절 무렵이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개신교회가 매우 소수인 더블린의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더블린은 이민자보다는 유학생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더블린한인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과 많은 신선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 있었던 일들은 우리가 누렸던 큰 은혜였고 기쁨이었다.
교회의 첫 구성원은 목회자 가정을 제외하고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래서 재정부, 선교부, 예배부, 관리부, 문화부의 장들이 청년들이었으며, 소위 말하는'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교회로 첫 여정을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함께 더블린한인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함께 승선한 이가 로나 박사다.
로나 카슨(Lorna Carson), 아일랜드 최고의 대학인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 University)의 언어학 교수다. 이미 40세 이전 에 언어학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게다가 유럽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리스도인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저 마음씨
착한 젊은 대학 선생님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요란한 신앙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을 여행하거나 거쳐 간 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럽 교회는 죽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실 우리도 그 물결의 대세를 내심 인정했었다. 그러나 더블린한인교회를 지난 7년 동안 거쳐간 천여 명의 유학생들은 로나 박사의 믿음과 실천을 목도하고 체
험하면서 유럽의 기독교가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한인 청년들을 위해 나와 함께 병원 응급실에 달려간 날을 다 헤아릴 수 없고,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다 상처나 화상을 입으면, 그녀는 직접 매니저를 찾아가서 그들의 월급을 대신 받아 주었다. 로나 박사는 주일 오전이면 현지 예배를 드리고, 오후 2시
에 시작하는 한인 예배에 참석하고 셀 리더로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한인 교회의 임원으로 성실하고 아름답게 함께했다.
로나! 하고 부르면 더블린한인교회를 거쳐 간 천여 명의 교우들의 마음은 저마다 그녀가 베풀어준 사랑과 관심과 위로로 마음이 따스해진다.
로나 박사의 집에는 전기 밥솥이 있고, 10킬로그램짜리 쌀자루가 떨어지질 않는다. 해외 생활에 지치고 허기진 한국 유학생들에 게 밥상을 차려주는 이가 로나 박사다.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이면 김치찌개가 생각난다며 전화하는 그녀! 바쁜 강의와 연구 일정에도 늘 성경 읽는 습관을 멈추지 않는 그녀!
이 책의 1부는 로나 박사와 나눈 편지, 그리고 대화와 답변 등을 토대로 더블린한인교회 설립 과정, 아일랜드에서의 경험과 해외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고자 애쓴 흔적들을 기록했다.
2부는 더블린한인교회 주보에 연재한 단상을 모아서 정리했으며, 유럽에서의 문화적 경험과 이곳에서 배운 새로운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이 목회 단상은 주중에는 모이기 어려운 해외에서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해 보고자, 삶과 단절되지 않은 믿음의 길에 대해 고민하고 묵상한 내용이다.
3부는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관련된 글을 모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서적인 수줍음과 서정적인 장소들, 그 장소들에 얽힌 기억들을 중심으로 풀어 보았다.
4부는 더블린한인교회를 섬기다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동한 교우들의 글이다.
목차
목차
작은 가능성을 찾아서 | 첫 크리스마스 만찬 | 천국의 아이들 | 첫 예배를 드린 후에 | 전기 밥솥 | 어려운 시절은 지나가리니 | 친절한 로나 씨 | 일 년에 한번, 아일랜드의 새벽 예배 | 아남카라 | 쉘부르의 우산 | 영어 개인 레슨 | 드디어 한국 방문 | 두 가지 거짓말 | 담아야 할 만큼을 담는 그릇 | 한국어 강좌 개설 | 청소하는 교수님 | 새로운 찬양팀 리더 | 또 하나의 시작에 감사하며
2부 | 동행
저도 압니다 | 쿵푸 팬더 | 워커스를 먹으며 | 아버지의 전축, 그리고 어린 DJ | 웨일즈의 작은 마을에서 | 끝내 울고 마는 | 그리운 선생님 | 스파게티의 추억 |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 우리들의 잃어버린 교회 | 존재의 목자 | 相馬失之瘦 相士失之貧| 어느 감사절의 기억 | 위대하고 자유로운 객관성 | 저기는 한국인 교회야 | 우표 한 장 | 토마스 엔진을 보며 | 첫 운동회, 달려라 하니 | 동산에 올랐던 영국 남자 산에서 내려오다 | 늦은 밤 그랜드 캐니언에서 온 전화 | 임 떠나시는 날 | 아버지의 정원 | 고장 난 차 안에서 만난 사람 | 요즘 젊은이들 | 붓을 내려놓으며 | 아주 오래된 프라하의 연인 | 갈릴리에서 막내가 해준 밥 | 제 값을 받으려면
3부 | 아일랜드 더블린 그리고 나
미인은 자전거를 탄다 | 이상한 유언, 도심 한복판의 에어필드 농장 | 킬데어에서 저녁을 | 틴 휘슬과 아일랜드 뮤지션들 | 하페니 다리를 건너며 | 파티마 맨션 | 옥스팜에 간 모녀 | 다포딜 데이 | 길에서 만나는 기억들 | 탈봇을 생각하며 탈봇 스트리트를 걷다 | 아직 낯선 더블린의 길거리 식사 | 러프보 근처의 작은 시골 가게 | 바리스타와 함께한 커피 수업 | 무엇을 안고 돌아가는가 | 로나의 졸업식과 알 파치노 | 노스 월 부두에서 | 아일랜드 시골 교회에서 마주친 코리안 크로스 |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지요 | 줄리아와 지영이의 어학연수 비용 | 글렌크리 화해센터 | 프라이팬에서 오븐으로 | 에스더 아주머니 | 잊혀진 장소를 찾아서 | 한국 찬송가에는 아일랜드 ○○도 들어 있다 | 고도를 기다리며 | 콘트랄토에 반하다 | 한 교실에서 만난 배관공과 대통령
4부 | 길에서 만난 친구들
피터팬의 나라, 네버랜드 | 내 음악의 일부가 된 더블린 | 내 마음속의 더블린 | 천국에서 온 말씀 | <오뚝이> 시평 | 일본에서 온 편지 | Life in Ireland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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