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여행(양장본 HardCover)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 남독일 이탈리아 아시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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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
『헤세의 여행』는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보여준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을 방랑자로 이해하는 헤세는 남쪽으로 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헤세의 여행』는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보여준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을 방랑자로 이해하는 헤세는 남쪽으로 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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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여행을 떠나고 이틀만 지나면 사람, 특히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는 자신의 의무, 이해관계, 걱정 및 전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일상생활로부터 아련히 멀어지게 된다." -토마스 만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헤세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헤세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의 여행과 사색 그리고 글쓰기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책.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난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늘 남쪽으로 간다. 알프스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향하면서 남쪽과 북쪽의 경계를 무시하는 그의 생각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헤세의 눈에서는 높고 낮은 것, 귀하고 천한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만물이 평등해진다. 경계와 대립이 완전히 소멸되는 곳에 열반과 해탈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방랑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방랑일지도 모른다. 헤세에겐 도달한 목표는 이미 목표가 아니었고, 모든 길은 우회로였다. 휴식은 매번 새로운 그리움을 낳았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자신을 스스로에게 이끌어가는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책속으로 추가-
내일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뜨거운 방랑벽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밤은 나의 것이었다. 나는 밤을 단호히 거절하려 하지 않았다. 밤이 기다리며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네거리에서 생각에 잠겨 머뭇거리자 강한 향수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숲과 언덕의 넓은 풀밭 뒤에 둥근 탑들이 있는 오래된 도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한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내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한 자락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내게 회한과 향수를 안기기 위해 나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는 밤 시간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숲과 초지를 지나 아름다운 산길을 걸었다. 도시의 성문 앞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분수에 귀 기울였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또 친숙한 집들을 잠에서 깨우기 전에 다시 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나간 시절이며 둥근 탑들이 있는 옛 도시, 한때 그곳에서 겪은 것을 생각하노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시커먼 밤의 세계를 지나 내 마을을 향해 컴컴한 호수 위의 높은 언덕을 꿈꾸듯이 걸었다. 비몽사몽간에 온갖 생각이 나래를 폈다. 젊은 시절 내가 무릎을 꿇었던 온갖 여성 형상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것과 최상의 것을 선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삶의 내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내 안에서 막연히 묻고 있는 목소리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75쪽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의 안전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일이다. 머리 위의 지붕은 안전하고, 주전자에는 믿을 만한 포도주가 들어 있다. 기름을 가득 채운 큰 등은 불타오르고 있다. 열린 문 옆에서는 한 여자가 피아노 옆에 앉아 촛불을 받으며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불현듯 비눗방울처럼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른다. 넌 정말 행복한가?
그렇다, 물론이다. 하지만 좀 기다려라. 아니,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아니, 먼저 곰곰 생각해봐야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행복에 관해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의 단어이자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질문이 변한다. 이제 나의 가장 기쁜 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지 불현듯 알고 싶다. -82쪽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작열하고 찌는 듯이 더운 누런색 밭들, 높고 시원하며 말없는 숲, 그리고 많은 노 젓는 날들. 노 젓는 날 말이다! 난 호수와 산 너머 푸른 하늘이 찬란히 빛나는 날, 대기가 더위에 떨리고 태양의 열기에 배의 목재가 삐거덕거리는 그런 날을 생각한다. 그런 날 사람들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반나체로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의 만으로 나가, 자주 멱을 감거나 호숫가의 짙은 수풀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하늘이 구름에 뒤덮이고 상쾌한 바람이 불 때 순전히 은색인 물 위를 가르며 노 젓는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커멓게 끓어오르는 물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질주하던 날, 산 위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해 도망치던 날을 생각한다. 그때는 어둡고 거무스레한 수면 위에 하얀 포말이 일었고, 후려치는 강풍은 아주 가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크게 자극받은 무더운 대기 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였다. -91쪽
어른이 아이가 되고 삶이 다시 기적이 될 시간이다. 하루하루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 잠깐 초원을 산책할 때마다 하나의 놀라움이자 동화기 때문에. 위엄 있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낮엔 곡식이 익고 밤엔 뇌우가 친다. 자, 난 여태까지 겪지 못한 일을 또 한 번 체험하고, 과잉과 넘쳐흐르는 화려함의 날들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 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농부가 너무 일찍 마차에 화환을 두르고, 탐욕스런 낫이 익은 곡식을 베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기 전에는. -93쪽
집에 돌아와 보니 책과 편지가 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마지못해 일하기 시작한다. 15분 후에는 다시 이 모든 일을 내려놓는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직 들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맹렬히 쏟아졌고, 마을 골목은 누런 개울이 된다. 지붕은 쏟아지는 호우로 인해 하얀 빛으로 반짝인다. 호수 너머 저쪽에는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하고 천둥소리 울린다. 나는 이런 미쳐 날뛰는 광경에 소년 시절처럼 불손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긴 장화와 로덴 천으로 만든 비옷을 입는다.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는 크게 노한 시끄러운 뇌우 속으로 걸어 나간다. -100쪽
나는 젊은이로서 성년 남자와 전혀 다른 상상을 했었다. 이제 다시 기다림, 질문과 불안함이, 성취보단 그리움이 문제가 된다. 보리수꽃이 향내를 풍긴다. 방랑하는 도제, 꽃 따는 여인네들, 아이들과 연인들은 모두 하나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나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노는 아이들의 까닭 없이 행복한 상태도 방랑자의 무심한 지나감도, 연인들의 몽롱하게 취한 상태도 보리수꽃 따는 여인들의 조심스러운 채집도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란 사실 뿐이다. 내게 주어진 몫은 삶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다. 그 목소리는 내 안에서 그것을 따르라고 외치고 있다. 비록 내가 그 목소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능력이 없다 해도. 비록 그 목소리가 나를 흥겨운 거리로부터 어둠과 불확실성 속으로 점점 이끌어가려 해도. -106쪽
당시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조그만 수첩을 지니고 다녔고, 거의 저녁마다 그 안에 기록하곤 했다. 수첩에 그러한 여행의 여운을 담아 고향에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첫 베네치아 여행기를 담은 두 권의 조그만 수첩을 손에 들고 있다. 방수포로 만든 수첩이다. 바야흐로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하려는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과 그 여행의 놀라운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 그때 내 형편이 얼마나 옹색했으며, 돈에 얼마나 의존했던가! 이따금 이탈리아 여행 일수를 남은 현금과 얼마나 불안하게 계산해보았던가! 그렇지만 여전히 한 주가 흘러갔다. 아끼며 살수록 나는 더욱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그때 나는 베네치아를 형편이 좋은 곤돌라 선원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7쪽
내 생각에 여행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은 좀 더 지적으로 된 우리 같은 사람이 더욱 창백하게 체험하는 삶의 한 조각을 일반적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은 우리 여러 민족들에게 거의 완전히 사라진 순전히 미적인 충동에 의한 활동도 대체하는 것 같다. 위대한 시기의 그리스인이나 독일인, 이탈리아인에겐 그런 미적인 충동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도 어디서나 아직 그런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일본에서는 유치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은 목판화, 나무나 암석, 정원이나 하나하나의 꽃을 관찰하면서 우리에겐 흔치 않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떤 감각의 훈련, 원숙함과 전문적 지식을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직관, 어떤 목적 추구나 의욕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관찰, 자체적으로 흡족한 눈과 귀, 코와 촉각의 훈련, 그것은 우리들 중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이 짙은 향수를 느끼는 하나의 천국인 셈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가장 잘 또한 가장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천국이다. 미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집중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은 적어도 속박에서 벗어난 이런 날과 순간에나 그것이 가능하다. -131쪽
나는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여러 생각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 수백 번의 여행에 대한 추억들과 합류했다. 내게는 다음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빼앗고, 아무리 늙게 되고 피곤해지며 좀 더 약해진다 해도, 우리 여행 충동의 진정한 의미인 체험은 자신의 광채를 결코 완전히 잃지는 않으리라. 내가 10년이나 20년이 지나 지금과는 다른 견해나 체험, 다른 삶의 감정으로 세상을 여행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 일어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온갖 차이나 매력적인 대립성을 넘어서 모든 인간성의 통일적인 의미는 내게 점점 더 많이 또 점점 더 분명히 다가올 것이다. -134쪽
날씨가 좋을 때 싱가포르에서 즐기는 드라이브보다 더 멋진 일이 있으랴! 릭샤에 타고 앉아 다른 풍경 외에도 움직이는 일꾼의 등을 계속 마음 편히 바라본다. 그 등은 박자에 맞춰 총총걸음을 하며 위아래로 출렁인다. 중국인의 구릿빛 등이다. 그 아래로 역시 구릿빛 두 다리가 보인다. 운동선수처럼 잘 발달된 튼튼한 다리다. 등과 다리 사이에 푸른 린넨 천으로 만든 빛바랜 수영 팬티를 입었다. 그 푸른색은 구릿빛 몸, 갈색 거리, 도시 전체, 대기, 그리고 세상과 매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부분의 거리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제대로 옷을 입고 다닐 줄 아는 중국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푸른색, 흰색, 검은색 옷을 입고 골목을 가득 메운다. -167쪽
사업상의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말레이 군도에 오는 유럽인은 자신의 소원 성취를 희망하지는 않더라도 반 찬테 섬의 풍경과 원시적인 낙원 같은 순진무구함을 자신의 상상과 소망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순수한 낭만주의자라면 이런 낙원도 가끔 발견할 것이고, 대다수 말레이인들의 선량한 어린이다움에 매료되어 자신도 잠시 원시 상태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그런 자기기만을 완전히 즐기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세상과 멀리 떨어진 조그만 마을을 발견해서 그곳의 원시림에 한동안 손님으로 초대되어 고향집에서 지내는 것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내 기억 속에서 그곳은 수마트라 섬의 모든 밀림과 강의 결정체이자 표현이었다. -198쪽
나는 어리둥절해서 비틀거리며 번갯불에 흔들거리는 창문 구멍 쪽으로 다갔다. 구멍의 모서리는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기차의 연이어진 창문들처럼 밀려갔다. 거기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밀림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형태, 복잡한 가지, 무성한 나뭇잎과 줄기들이 얽힌 마구 휘저어진 바다였다. 바다는 물결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번갯불이 스치자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하는 검은 심장부까지 상처입고 절규하며 격앙되어 있었다. 난 창가에 서서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응시했다. 눈이 어질어질 했고 몸이 마비되었다. 나는 대지의 광분하는 생명이 쏟아지고 낭비되는 것을 또렷한 의식으로 느꼈다. 난 그 사이에 서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고, 내 인생의 수많은 밤과 낮을 생각했다. 지켜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에 끌리고 유혹되어, 이곳에서처럼 지구 어디서엔가 서서 낯선 사물과 현상을 관찰했던 모든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수마트라 섬 늪지 원시림의 남쪽에서 열대의 야간 뇌우를 바라보는 것은 한순간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예감이 들었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쓸쓸히 호기심을 갖고 불가해한 것을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었다. 내 안의 불가해한 것과 불합리한 것이 그에 대한 답을 주었으며 서로 친교를 맺었다. 이처럼 감동받아 무책임하게 지켜볼 때와 똑같은 느낌으로 나는 어린 시절 동물이 죽거나 나비가 나방에서 깨어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와 같은 느낌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눈이나 꽃받침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사물들을 설명하려는 바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으려는 욕구, 다시 말해 위대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고 나와 내 인생이며 감각이 사라져서 무가치하게 되는 진기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구일 뿐이었다. 그냥 가는 고음이 심한 천둥을 일으키거나 또는 불가해한 일에 대해 더 심한 침묵을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14쪽
팔렘방은 강과 수백 개의 잔잔하고 운하 같은 지류들 가에 위치하고 있다. 강과 지류들은 아침에는 모두 저녁때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매우 평평한 이 지역은 70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보다 2미터밖에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조 때는 매일 바다가 멀리까지 역류해 올라오므로 강물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때 늪지는 호수로, 더러운 도시는 근사한 동화의 나라로 바뀐다. 그제야 도시 전체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된다.
만조가 되는 시간은 날이 가면서 바뀐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정오에 시작되었다. 만조 때가 되면 수천의 수상 가옥들은 갈색을 띤 잔잔한 수면 위에 은은하고도 매혹적으로 비친다. 무척 작은 운하 같은 지류 위에는 수백 척의 날렵하고 그림 같은 범선들이 조용히 생동감 있게 놀랄 만치 능숙하게 뒤섞여 우글거리고 있다. 벌거벗은 사내들, 몸을 가린 여자들이 가파른 나무 계단의 발치에서 멱을 감는다. 집집마다 그 계단에서 강물로 연결되어 있다. 뗏목 위를 떠다니는 깔끔한 중국인 수상가게의 호롱불이 아시아의 저녁생활과 수상생활의 놀라운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219쪽
악취와 모기에 시달리고 깨끗한 물에서 목욕할 기회도 없이 팔렘방의 시커멓고 조그만 운하 뒤편 뉴커크 호텔 뒤쪽에서 한동안 살아본 사람이라면 결국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간절한 갈망을 하게 된다. 다음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편물을 받지 못한 지 한 달이 되었고 불면증으로 머리에 열이 났다. 특이한 도시에서의 삶과 더위에 지치고 목욕을 하지 못해 몸이 축 늘어졌다. 때문에 중국 증기선 마라스 호에 좌석을 예약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입항해서 토요일 중에 싱가포르로 떠나는 배였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모기장 아래 누워 금요일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큰 상자를 싱가포르에 두고 왔기에 진작부터 더 이상 읽을거리도 없었다. 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지도 어언 이주일이 되어 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지면 몇 시간씩 누워 기다리며 메모장을 들춰보고 말레이어 어휘를 익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제 배가 들어온다니 하루나 이틀 뒤면 떠날 수 있으리라. 그간의 위안을 주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내 나날의 못마땅한 온갖 일이 기억 속에 오그라들어 사라지고 많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일과 즐거웠던 체험만이 남으리라. -228쪽
어느 날 오후 나직이 비가 내리는 중에 나는 시골 같은 말라바르 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웃통을 벗어젖힌 싱갈인 청년을 보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무런 걱정 없는 원시적인 자연인을 볼 때마다 격세유전의 편안함과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망스럽게도 열대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면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우리가 보통 '남국의 순결함'을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보다 이곳 인도에서 아름다움과 진지함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동방에는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신문팔이와 성냥팔이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끔찍한 소음 공해가 전혀 없다. 인도인, 말레이인, 중국인이 강도 높고 다채로운 힘찬 삶을 살아가며 인구가 많은 도시들의 수없이 많은 거리를 메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마치 개미의 움직임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어 남유럽의 모든 도시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싱갈인은 평소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진 않지만 다들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온순함과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로 단순하고 가벼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생활을 해나간다. -235쪽
체험된 것이 추억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명백해지며 사라지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얼마 뒤에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체험의 영상이 그 체험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 나타났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가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동양을 떠올려보면 여행의 개별적인 구체적 영상이 약간 흐릿해지고 일반화되어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콜롬보와, 쿠알라룸푸르는 이포와, 바탕 하리 강은 모에시 강과 대략적인 개성 면에서 더 이상 그리 선명하게 구별되거나 다르지 않다. 그 대신 몇 개의 커다란 연관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내게 오늘날 팔렘방이나 페낭 또는 잠비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세부 사항을 묻는다면 나는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끄집어내기 위해 약간 애를 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의 전체 여행의 가치나 주된 인상에 대해 묻는다면 그 당시 귀국한 직후보다 더 잘 더 빨리 대답을 할 수 있다. -257쪽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긴 하지만, 모든 유럽인에게 뭔가 공통되고 서로를 묶어주는 요소가 있듯이, 모든 아시아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게 더 멋지고 엄청나게 더욱 중요한 것은 때때로 온갖 감각 속에서 선명하게 되풀이되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즉 유럽과 아시아가 단일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류라는 하나의 소속이자 공동체가 있다는 경험이었다.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전혀 낯선 민족과 서로 눈을 맞대고 체험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무한히 새롭고 소중하게 된다. -269쪽
나는 메모지에 그 집을 그려본다. 내 눈은 독일식 지붕, 독일식 들보, 독일식 박공, 친숙한 것과 고향 같은 많은 것과 작별을 고한다. 이것으로 작별이기에 이런 고향 같은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사랑한다. 내일은 다른 지붕, 다른 오두막을 사랑하리라. 연애편지에서처럼 내 마음을 이곳에 남겨두지 않으리라. 오, 아니야, 내 마음을 함께 가져가야지. 산 너머 저쪽에 가서도 내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겠지. 난 농부가 아니라 유목민이니까. 난 불충과 변화, 환상의 숭배자다. 내 사랑을 지구의 어느 지점에 붙잡아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늘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나의 사랑이 한곳에 머물러 성실과 덕목이 된다면 그 사랑은 내게 미심쩍어진다. -282쪽
알프스 남쪽 발치의 이 축복받은 지역을 볼 때마다 유형지에서 귀향해 드디어 산의 진면목을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태양이 더욱 진심으로 내리쬐고, 산은 더욱 붉은 빛을 띤다. 밤과 포도, 아몬드와 무화과가 이곳에서 자란다. 사람들은 가난하긴 해도 선량하고 예의바르며 친절하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모두 원래 자연 그대로인 듯 좋고 옳으며 친근해 보인다. 집과 담벼락, 포도원 계단, 길과 농작물, 테라스, 이 모든 것은 새 것도 낡은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노력하거나 머리로 짜내어 자연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바위나 나무, 이끼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 같다. 포도원 담벼락, 집과 지붕, 이 모든 것은 갈색 편마암으로 만들어졌고, 모두 형제처럼 잘 어울린다. 어느 것도 낯설고 적대적이거나 억지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303쪽
나무는 내게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설교자였다. 나무가 대중과 가족 속에서, 숲과 정원 숲 속에서 자라면 그것을 존경한다. 그런데 나무가 한 그루씩 따로 자라고 있을 때는 더욱 존경한다. 나무는 고독한 사람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몰래 도망친 은둔자가 아닌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면서도 고독한 사람 같다. 우듬지에서는 세상 소리 살랑거리고, 뿌리는 무한함 속에 쉬고 있다. 하지만 나무는 쉬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하나만을 얻으려 애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법칙을 실현하고 자신의 형상을 완성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 애쓴다.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7쪽
우리가 슬픔에 빠져 삶을 더 이상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한 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잠자코 있어! 잠자코 있어! 나를 봐라! 삶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 그건 어린애 같은 생각이지. 네 안의 신이 말하도록 해봐. 그런 생각이 잠잠해질 거야. 네가 불안해하는 것은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야. 하지만 발걸음 하나하나와 나날이 너를 새로이 어머니에게 다가가게 하는 거야. 고향은 여기나 저기에 있는 게 아니야. 고향은 네 안에 있지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린애 같은 생각에 불안해할 때면 나무는 밤에 너무도 살랑거린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래 사는 만큼 생각도 길어 긴 호흡으로 차분히 생각한다.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무는 우리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면 우리 생각의 짧음과 신속함, 어린애 같은 성급함은 비할 데 없이 기쁨을 얻는다.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이는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고향이고 행복이다. -309쪽
우울증을 치료하는 좋은 약제가 있다. 노래, 경건한 마음가짐, 음주, 음악 연주, 시 짓기, 방랑이 그것이다. 은둔자가 성무聖務 일과로 살아가듯 나는 그런 약제로 살아간다. 때로는 저울의 접시가 아래로 기울었고, 나쁜 순간과 균형을 맞추기에는 좋은 순간이 너무 드물며, 너무 적게 좋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와 반대로 내가 발전을 해서 좋은 순간이 늘어났고 나쁜 순간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악의 순간이라 해도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좋음과 나쁨 사이의 중간 상태, 즉 견딜만한 미지근한 중간이다. 아니, 차라리 굴곡이 더 심한 것이 낫고, 차라리 고통이 더 지독한 것이 낫다. 그러면 복된 순간은 더욱 광채가 더할 테니. -334쪽
이 구름 낀 하늘, 자체 내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이 다채로운 하늘이 내 영혼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이 하늘로부터 내 내면의 상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말하기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지상의 어떤 인간도 대기나 구름의 어떤 분위기, 색채의 어떤 음향, 어떤 향내, 습도의 변화를 작가나 방랑자의 오래되고 신경질적 감각을 지닌 나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며 충실하게 관찰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드는 날들이 있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무언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맡았는지, 내가 지각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내 내면의 삶이 외부로 투사된 상에 불과한지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335쪽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 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 그들은 매일 8시나 2시에 일을 시작하는 데, 전보를 받고 최단시간 내에 먼 여행을 떠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오후는 조그만 천국을 의미한다. 그들은 손목시계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물론 의무에 충실하며 나름의 규칙성과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일정한 아침 시간에 일을 시작해 끈질기게 책상에 붙어 있다. 그들은 날씨나 주변의 소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분이나 태만에도 동요되지 않도록 교육 받았다. 그런 영웅적이고 고귀한 사람들의 신발 끈이라도 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는 것 은 아예 시작부터 가망 없는 일이리라. -388쪽
내가 공개적인 낭송회를 꺼리는 것은 홀로 은둔해 지내는 사람으로서 사교적인 행사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만 은 아니다. 그런 것은 경우에 따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오히려 꺼리는 이유는 그런 데서 원칙적이고 깊이 뿌리박힌 무질서와 분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아주 간단히 말해 그런 무질서와 분열은 문학 일반에 대한 나의 불신에 근거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낭송할 때뿐만 아니라 작업할 때 훨씬 더 나를 괴롭힌다. 나는 우리 시대 문학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정치와 이상, 자신의 유행을 지녀야 하듯이 자신의 문학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문학이 덧없고 절망적인 것이며, 제대로 경작되지 않은 빈약한 토양에서 자라난 씨앗이란 확신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문학은 사실 재미있고 문제성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성숙하고 완전하며 장기간 지속되는 결과는 얻을 수 없다. 따라 서 실질적인 형상화나 진정한 작품을 이루기 위한 현대 독일 작 가들(당연히 나 자신을 포함해서)의 시도가 언제나 다만 왠지 불충분하고 아류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어디서나 천편일률적 인 낌새, 생명력을 잃은 모형이 감지되는 것 같다. -435쪽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 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 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 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기포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우리의 문 어文語나 학교 언어는 그런 표현을 제공해주지 못하며, 우리의 필체는 이전부터 틀에 갇혀 있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절망으로 가득 찬 개별적인 책들은 하나의 길을 가리켜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길이 없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437쪽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헤세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헤세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의 여행과 사색 그리고 글쓰기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책.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난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늘 남쪽으로 간다. 알프스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향하면서 남쪽과 북쪽의 경계를 무시하는 그의 생각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헤세의 눈에서는 높고 낮은 것, 귀하고 천한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만물이 평등해진다. 경계와 대립이 완전히 소멸되는 곳에 열반과 해탈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방랑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방랑일지도 모른다. 헤세에겐 도달한 목표는 이미 목표가 아니었고, 모든 길은 우회로였다. 휴식은 매번 새로운 그리움을 낳았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자신을 스스로에게 이끌어가는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책속으로 추가-
내일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뜨거운 방랑벽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밤은 나의 것이었다. 나는 밤을 단호히 거절하려 하지 않았다. 밤이 기다리며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네거리에서 생각에 잠겨 머뭇거리자 강한 향수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숲과 언덕의 넓은 풀밭 뒤에 둥근 탑들이 있는 오래된 도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한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내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한 자락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내게 회한과 향수를 안기기 위해 나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는 밤 시간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숲과 초지를 지나 아름다운 산길을 걸었다. 도시의 성문 앞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분수에 귀 기울였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또 친숙한 집들을 잠에서 깨우기 전에 다시 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나간 시절이며 둥근 탑들이 있는 옛 도시, 한때 그곳에서 겪은 것을 생각하노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시커먼 밤의 세계를 지나 내 마을을 향해 컴컴한 호수 위의 높은 언덕을 꿈꾸듯이 걸었다. 비몽사몽간에 온갖 생각이 나래를 폈다. 젊은 시절 내가 무릎을 꿇었던 온갖 여성 형상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것과 최상의 것을 선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삶의 내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내 안에서 막연히 묻고 있는 목소리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75쪽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의 안전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일이다. 머리 위의 지붕은 안전하고, 주전자에는 믿을 만한 포도주가 들어 있다. 기름을 가득 채운 큰 등은 불타오르고 있다. 열린 문 옆에서는 한 여자가 피아노 옆에 앉아 촛불을 받으며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불현듯 비눗방울처럼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른다. 넌 정말 행복한가?
그렇다, 물론이다. 하지만 좀 기다려라. 아니,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아니, 먼저 곰곰 생각해봐야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행복에 관해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의 단어이자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질문이 변한다. 이제 나의 가장 기쁜 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지 불현듯 알고 싶다. -82쪽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작열하고 찌는 듯이 더운 누런색 밭들, 높고 시원하며 말없는 숲, 그리고 많은 노 젓는 날들. 노 젓는 날 말이다! 난 호수와 산 너머 푸른 하늘이 찬란히 빛나는 날, 대기가 더위에 떨리고 태양의 열기에 배의 목재가 삐거덕거리는 그런 날을 생각한다. 그런 날 사람들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반나체로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의 만으로 나가, 자주 멱을 감거나 호숫가의 짙은 수풀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하늘이 구름에 뒤덮이고 상쾌한 바람이 불 때 순전히 은색인 물 위를 가르며 노 젓는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커멓게 끓어오르는 물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질주하던 날, 산 위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해 도망치던 날을 생각한다. 그때는 어둡고 거무스레한 수면 위에 하얀 포말이 일었고, 후려치는 강풍은 아주 가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크게 자극받은 무더운 대기 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였다. -91쪽
어른이 아이가 되고 삶이 다시 기적이 될 시간이다. 하루하루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 잠깐 초원을 산책할 때마다 하나의 놀라움이자 동화기 때문에. 위엄 있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낮엔 곡식이 익고 밤엔 뇌우가 친다. 자, 난 여태까지 겪지 못한 일을 또 한 번 체험하고, 과잉과 넘쳐흐르는 화려함의 날들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 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농부가 너무 일찍 마차에 화환을 두르고, 탐욕스런 낫이 익은 곡식을 베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기 전에는. -93쪽
집에 돌아와 보니 책과 편지가 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마지못해 일하기 시작한다. 15분 후에는 다시 이 모든 일을 내려놓는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직 들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맹렬히 쏟아졌고, 마을 골목은 누런 개울이 된다. 지붕은 쏟아지는 호우로 인해 하얀 빛으로 반짝인다. 호수 너머 저쪽에는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하고 천둥소리 울린다. 나는 이런 미쳐 날뛰는 광경에 소년 시절처럼 불손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긴 장화와 로덴 천으로 만든 비옷을 입는다.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는 크게 노한 시끄러운 뇌우 속으로 걸어 나간다. -100쪽
나는 젊은이로서 성년 남자와 전혀 다른 상상을 했었다. 이제 다시 기다림, 질문과 불안함이, 성취보단 그리움이 문제가 된다. 보리수꽃이 향내를 풍긴다. 방랑하는 도제, 꽃 따는 여인네들, 아이들과 연인들은 모두 하나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나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노는 아이들의 까닭 없이 행복한 상태도 방랑자의 무심한 지나감도, 연인들의 몽롱하게 취한 상태도 보리수꽃 따는 여인들의 조심스러운 채집도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란 사실 뿐이다. 내게 주어진 몫은 삶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다. 그 목소리는 내 안에서 그것을 따르라고 외치고 있다. 비록 내가 그 목소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능력이 없다 해도. 비록 그 목소리가 나를 흥겨운 거리로부터 어둠과 불확실성 속으로 점점 이끌어가려 해도. -106쪽
당시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조그만 수첩을 지니고 다녔고, 거의 저녁마다 그 안에 기록하곤 했다. 수첩에 그러한 여행의 여운을 담아 고향에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첫 베네치아 여행기를 담은 두 권의 조그만 수첩을 손에 들고 있다. 방수포로 만든 수첩이다. 바야흐로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하려는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과 그 여행의 놀라운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 그때 내 형편이 얼마나 옹색했으며, 돈에 얼마나 의존했던가! 이따금 이탈리아 여행 일수를 남은 현금과 얼마나 불안하게 계산해보았던가! 그렇지만 여전히 한 주가 흘러갔다. 아끼며 살수록 나는 더욱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그때 나는 베네치아를 형편이 좋은 곤돌라 선원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7쪽
내 생각에 여행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은 좀 더 지적으로 된 우리 같은 사람이 더욱 창백하게 체험하는 삶의 한 조각을 일반적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은 우리 여러 민족들에게 거의 완전히 사라진 순전히 미적인 충동에 의한 활동도 대체하는 것 같다. 위대한 시기의 그리스인이나 독일인, 이탈리아인에겐 그런 미적인 충동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도 어디서나 아직 그런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일본에서는 유치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은 목판화, 나무나 암석, 정원이나 하나하나의 꽃을 관찰하면서 우리에겐 흔치 않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떤 감각의 훈련, 원숙함과 전문적 지식을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직관, 어떤 목적 추구나 의욕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관찰, 자체적으로 흡족한 눈과 귀, 코와 촉각의 훈련, 그것은 우리들 중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이 짙은 향수를 느끼는 하나의 천국인 셈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가장 잘 또한 가장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천국이다. 미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집중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은 적어도 속박에서 벗어난 이런 날과 순간에나 그것이 가능하다. -131쪽
나는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여러 생각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 수백 번의 여행에 대한 추억들과 합류했다. 내게는 다음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빼앗고, 아무리 늙게 되고 피곤해지며 좀 더 약해진다 해도, 우리 여행 충동의 진정한 의미인 체험은 자신의 광채를 결코 완전히 잃지는 않으리라. 내가 10년이나 20년이 지나 지금과는 다른 견해나 체험, 다른 삶의 감정으로 세상을 여행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 일어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온갖 차이나 매력적인 대립성을 넘어서 모든 인간성의 통일적인 의미는 내게 점점 더 많이 또 점점 더 분명히 다가올 것이다. -134쪽
날씨가 좋을 때 싱가포르에서 즐기는 드라이브보다 더 멋진 일이 있으랴! 릭샤에 타고 앉아 다른 풍경 외에도 움직이는 일꾼의 등을 계속 마음 편히 바라본다. 그 등은 박자에 맞춰 총총걸음을 하며 위아래로 출렁인다. 중국인의 구릿빛 등이다. 그 아래로 역시 구릿빛 두 다리가 보인다. 운동선수처럼 잘 발달된 튼튼한 다리다. 등과 다리 사이에 푸른 린넨 천으로 만든 빛바랜 수영 팬티를 입었다. 그 푸른색은 구릿빛 몸, 갈색 거리, 도시 전체, 대기, 그리고 세상과 매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부분의 거리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제대로 옷을 입고 다닐 줄 아는 중국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푸른색, 흰색, 검은색 옷을 입고 골목을 가득 메운다. -167쪽
사업상의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말레이 군도에 오는 유럽인은 자신의 소원 성취를 희망하지는 않더라도 반 찬테 섬의 풍경과 원시적인 낙원 같은 순진무구함을 자신의 상상과 소망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순수한 낭만주의자라면 이런 낙원도 가끔 발견할 것이고, 대다수 말레이인들의 선량한 어린이다움에 매료되어 자신도 잠시 원시 상태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그런 자기기만을 완전히 즐기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세상과 멀리 떨어진 조그만 마을을 발견해서 그곳의 원시림에 한동안 손님으로 초대되어 고향집에서 지내는 것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내 기억 속에서 그곳은 수마트라 섬의 모든 밀림과 강의 결정체이자 표현이었다. -198쪽
나는 어리둥절해서 비틀거리며 번갯불에 흔들거리는 창문 구멍 쪽으로 다갔다. 구멍의 모서리는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기차의 연이어진 창문들처럼 밀려갔다. 거기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밀림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형태, 복잡한 가지, 무성한 나뭇잎과 줄기들이 얽힌 마구 휘저어진 바다였다. 바다는 물결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번갯불이 스치자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하는 검은 심장부까지 상처입고 절규하며 격앙되어 있었다. 난 창가에 서서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응시했다. 눈이 어질어질 했고 몸이 마비되었다. 나는 대지의 광분하는 생명이 쏟아지고 낭비되는 것을 또렷한 의식으로 느꼈다. 난 그 사이에 서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고, 내 인생의 수많은 밤과 낮을 생각했다. 지켜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에 끌리고 유혹되어, 이곳에서처럼 지구 어디서엔가 서서 낯선 사물과 현상을 관찰했던 모든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수마트라 섬 늪지 원시림의 남쪽에서 열대의 야간 뇌우를 바라보는 것은 한순간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예감이 들었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쓸쓸히 호기심을 갖고 불가해한 것을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었다. 내 안의 불가해한 것과 불합리한 것이 그에 대한 답을 주었으며 서로 친교를 맺었다. 이처럼 감동받아 무책임하게 지켜볼 때와 똑같은 느낌으로 나는 어린 시절 동물이 죽거나 나비가 나방에서 깨어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와 같은 느낌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눈이나 꽃받침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사물들을 설명하려는 바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으려는 욕구, 다시 말해 위대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고 나와 내 인생이며 감각이 사라져서 무가치하게 되는 진기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구일 뿐이었다. 그냥 가는 고음이 심한 천둥을 일으키거나 또는 불가해한 일에 대해 더 심한 침묵을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14쪽
팔렘방은 강과 수백 개의 잔잔하고 운하 같은 지류들 가에 위치하고 있다. 강과 지류들은 아침에는 모두 저녁때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매우 평평한 이 지역은 70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보다 2미터밖에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조 때는 매일 바다가 멀리까지 역류해 올라오므로 강물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때 늪지는 호수로, 더러운 도시는 근사한 동화의 나라로 바뀐다. 그제야 도시 전체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된다.
만조가 되는 시간은 날이 가면서 바뀐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정오에 시작되었다. 만조 때가 되면 수천의 수상 가옥들은 갈색을 띤 잔잔한 수면 위에 은은하고도 매혹적으로 비친다. 무척 작은 운하 같은 지류 위에는 수백 척의 날렵하고 그림 같은 범선들이 조용히 생동감 있게 놀랄 만치 능숙하게 뒤섞여 우글거리고 있다. 벌거벗은 사내들, 몸을 가린 여자들이 가파른 나무 계단의 발치에서 멱을 감는다. 집집마다 그 계단에서 강물로 연결되어 있다. 뗏목 위를 떠다니는 깔끔한 중국인 수상가게의 호롱불이 아시아의 저녁생활과 수상생활의 놀라운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219쪽
악취와 모기에 시달리고 깨끗한 물에서 목욕할 기회도 없이 팔렘방의 시커멓고 조그만 운하 뒤편 뉴커크 호텔 뒤쪽에서 한동안 살아본 사람이라면 결국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간절한 갈망을 하게 된다. 다음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편물을 받지 못한 지 한 달이 되었고 불면증으로 머리에 열이 났다. 특이한 도시에서의 삶과 더위에 지치고 목욕을 하지 못해 몸이 축 늘어졌다. 때문에 중국 증기선 마라스 호에 좌석을 예약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입항해서 토요일 중에 싱가포르로 떠나는 배였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모기장 아래 누워 금요일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큰 상자를 싱가포르에 두고 왔기에 진작부터 더 이상 읽을거리도 없었다. 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지도 어언 이주일이 되어 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지면 몇 시간씩 누워 기다리며 메모장을 들춰보고 말레이어 어휘를 익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제 배가 들어온다니 하루나 이틀 뒤면 떠날 수 있으리라. 그간의 위안을 주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내 나날의 못마땅한 온갖 일이 기억 속에 오그라들어 사라지고 많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일과 즐거웠던 체험만이 남으리라. -228쪽
어느 날 오후 나직이 비가 내리는 중에 나는 시골 같은 말라바르 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웃통을 벗어젖힌 싱갈인 청년을 보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무런 걱정 없는 원시적인 자연인을 볼 때마다 격세유전의 편안함과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망스럽게도 열대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면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우리가 보통 '남국의 순결함'을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보다 이곳 인도에서 아름다움과 진지함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동방에는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신문팔이와 성냥팔이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끔찍한 소음 공해가 전혀 없다. 인도인, 말레이인, 중국인이 강도 높고 다채로운 힘찬 삶을 살아가며 인구가 많은 도시들의 수없이 많은 거리를 메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마치 개미의 움직임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어 남유럽의 모든 도시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싱갈인은 평소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진 않지만 다들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온순함과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로 단순하고 가벼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생활을 해나간다. -235쪽
체험된 것이 추억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명백해지며 사라지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얼마 뒤에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체험의 영상이 그 체험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 나타났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가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동양을 떠올려보면 여행의 개별적인 구체적 영상이 약간 흐릿해지고 일반화되어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콜롬보와, 쿠알라룸푸르는 이포와, 바탕 하리 강은 모에시 강과 대략적인 개성 면에서 더 이상 그리 선명하게 구별되거나 다르지 않다. 그 대신 몇 개의 커다란 연관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내게 오늘날 팔렘방이나 페낭 또는 잠비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세부 사항을 묻는다면 나는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끄집어내기 위해 약간 애를 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의 전체 여행의 가치나 주된 인상에 대해 묻는다면 그 당시 귀국한 직후보다 더 잘 더 빨리 대답을 할 수 있다. -257쪽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긴 하지만, 모든 유럽인에게 뭔가 공통되고 서로를 묶어주는 요소가 있듯이, 모든 아시아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게 더 멋지고 엄청나게 더욱 중요한 것은 때때로 온갖 감각 속에서 선명하게 되풀이되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즉 유럽과 아시아가 단일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류라는 하나의 소속이자 공동체가 있다는 경험이었다.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전혀 낯선 민족과 서로 눈을 맞대고 체험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무한히 새롭고 소중하게 된다. -269쪽
나는 메모지에 그 집을 그려본다. 내 눈은 독일식 지붕, 독일식 들보, 독일식 박공, 친숙한 것과 고향 같은 많은 것과 작별을 고한다. 이것으로 작별이기에 이런 고향 같은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사랑한다. 내일은 다른 지붕, 다른 오두막을 사랑하리라. 연애편지에서처럼 내 마음을 이곳에 남겨두지 않으리라. 오, 아니야, 내 마음을 함께 가져가야지. 산 너머 저쪽에 가서도 내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겠지. 난 농부가 아니라 유목민이니까. 난 불충과 변화, 환상의 숭배자다. 내 사랑을 지구의 어느 지점에 붙잡아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늘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나의 사랑이 한곳에 머물러 성실과 덕목이 된다면 그 사랑은 내게 미심쩍어진다. -282쪽
알프스 남쪽 발치의 이 축복받은 지역을 볼 때마다 유형지에서 귀향해 드디어 산의 진면목을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태양이 더욱 진심으로 내리쬐고, 산은 더욱 붉은 빛을 띤다. 밤과 포도, 아몬드와 무화과가 이곳에서 자란다. 사람들은 가난하긴 해도 선량하고 예의바르며 친절하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모두 원래 자연 그대로인 듯 좋고 옳으며 친근해 보인다. 집과 담벼락, 포도원 계단, 길과 농작물, 테라스, 이 모든 것은 새 것도 낡은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노력하거나 머리로 짜내어 자연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바위나 나무, 이끼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 같다. 포도원 담벼락, 집과 지붕, 이 모든 것은 갈색 편마암으로 만들어졌고, 모두 형제처럼 잘 어울린다. 어느 것도 낯설고 적대적이거나 억지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303쪽
나무는 내게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설교자였다. 나무가 대중과 가족 속에서, 숲과 정원 숲 속에서 자라면 그것을 존경한다. 그런데 나무가 한 그루씩 따로 자라고 있을 때는 더욱 존경한다. 나무는 고독한 사람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몰래 도망친 은둔자가 아닌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면서도 고독한 사람 같다. 우듬지에서는 세상 소리 살랑거리고, 뿌리는 무한함 속에 쉬고 있다. 하지만 나무는 쉬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하나만을 얻으려 애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법칙을 실현하고 자신의 형상을 완성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 애쓴다.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7쪽
우리가 슬픔에 빠져 삶을 더 이상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한 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잠자코 있어! 잠자코 있어! 나를 봐라! 삶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 그건 어린애 같은 생각이지. 네 안의 신이 말하도록 해봐. 그런 생각이 잠잠해질 거야. 네가 불안해하는 것은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야. 하지만 발걸음 하나하나와 나날이 너를 새로이 어머니에게 다가가게 하는 거야. 고향은 여기나 저기에 있는 게 아니야. 고향은 네 안에 있지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린애 같은 생각에 불안해할 때면 나무는 밤에 너무도 살랑거린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래 사는 만큼 생각도 길어 긴 호흡으로 차분히 생각한다.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무는 우리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면 우리 생각의 짧음과 신속함, 어린애 같은 성급함은 비할 데 없이 기쁨을 얻는다.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이는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고향이고 행복이다. -309쪽
우울증을 치료하는 좋은 약제가 있다. 노래, 경건한 마음가짐, 음주, 음악 연주, 시 짓기, 방랑이 그것이다. 은둔자가 성무聖務 일과로 살아가듯 나는 그런 약제로 살아간다. 때로는 저울의 접시가 아래로 기울었고, 나쁜 순간과 균형을 맞추기에는 좋은 순간이 너무 드물며, 너무 적게 좋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와 반대로 내가 발전을 해서 좋은 순간이 늘어났고 나쁜 순간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악의 순간이라 해도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좋음과 나쁨 사이의 중간 상태, 즉 견딜만한 미지근한 중간이다. 아니, 차라리 굴곡이 더 심한 것이 낫고, 차라리 고통이 더 지독한 것이 낫다. 그러면 복된 순간은 더욱 광채가 더할 테니. -334쪽
이 구름 낀 하늘, 자체 내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이 다채로운 하늘이 내 영혼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이 하늘로부터 내 내면의 상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말하기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지상의 어떤 인간도 대기나 구름의 어떤 분위기, 색채의 어떤 음향, 어떤 향내, 습도의 변화를 작가나 방랑자의 오래되고 신경질적 감각을 지닌 나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며 충실하게 관찰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드는 날들이 있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무언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맡았는지, 내가 지각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내 내면의 삶이 외부로 투사된 상에 불과한지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335쪽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 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 그들은 매일 8시나 2시에 일을 시작하는 데, 전보를 받고 최단시간 내에 먼 여행을 떠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오후는 조그만 천국을 의미한다. 그들은 손목시계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물론 의무에 충실하며 나름의 규칙성과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일정한 아침 시간에 일을 시작해 끈질기게 책상에 붙어 있다. 그들은 날씨나 주변의 소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분이나 태만에도 동요되지 않도록 교육 받았다. 그런 영웅적이고 고귀한 사람들의 신발 끈이라도 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는 것 은 아예 시작부터 가망 없는 일이리라. -388쪽
내가 공개적인 낭송회를 꺼리는 것은 홀로 은둔해 지내는 사람으로서 사교적인 행사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만 은 아니다. 그런 것은 경우에 따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오히려 꺼리는 이유는 그런 데서 원칙적이고 깊이 뿌리박힌 무질서와 분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아주 간단히 말해 그런 무질서와 분열은 문학 일반에 대한 나의 불신에 근거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낭송할 때뿐만 아니라 작업할 때 훨씬 더 나를 괴롭힌다. 나는 우리 시대 문학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정치와 이상, 자신의 유행을 지녀야 하듯이 자신의 문학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문학이 덧없고 절망적인 것이며, 제대로 경작되지 않은 빈약한 토양에서 자라난 씨앗이란 확신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문학은 사실 재미있고 문제성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성숙하고 완전하며 장기간 지속되는 결과는 얻을 수 없다. 따라 서 실질적인 형상화나 진정한 작품을 이루기 위한 현대 독일 작 가들(당연히 나 자신을 포함해서)의 시도가 언제나 다만 왠지 불충분하고 아류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어디서나 천편일률적 인 낌새, 생명력을 잃은 모형이 감지되는 것 같다. -435쪽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 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 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 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기포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우리의 문 어文語나 학교 언어는 그런 표현을 제공해주지 못하며, 우리의 필체는 이전부터 틀에 갇혀 있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절망으로 가득 찬 개별적인 책들은 하나의 길을 가리켜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길이 없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437쪽
목차
목차
머리말: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1부 여행과 소풍
1. 여행에 대해
2. 머나먼 푸른 하늘
3. 한낮에 본 유령
4. 겨울 소풍
2부 보덴 호
1. 속물의 땅에서
2. 저녁이 되면
3. 여름을 향하여
4. 한여름
5. 보리수꽃
3부 이탈리아
1. 아네모네
2. 석호 연구
3. 크레모나의 저녁
4. 코모 호숫가 산책
5. 베르가모
4부 인도
1. 밤에, 수에즈 운하에서
2. 아시아의 저녁
3. 드라이브
4. 눈요깃거리
5. 어릿광대
6. 싱가포르에서 꾸는 꿈
7. 도항(渡航)
8. 펠라양
9. 갑판 위의 밤
10. 숲 속의 밤
11. 팔렘방
12. 물의 동화
13. 마라스 호
14. 캔디에서의 산책
15. 캔디에서 쓴 일기장
16. 페드로탈라갈라 산
17. 귀로
18. 아시아에 대한 추억
19. 인도에 대한 추억
20. 인도에서 온 손님
5부 방랑
1. 농가
2. 산길
3. 마을
4. 다리
5. 목사관
6. 농장
7. 나무
8. 비 오는 날
9. 예배당
10. 정오의 휴식
11. 호수, 나무와 산
12. 구름 낀 하늘
13. 빨간 집
6부 테신
1. 남쪽의 여름날
2. 남쪽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3. 테신의 여름밤
4. 조그만 길
5. 테신의 성모 마리아 축제
6. 몬타뇰라에서 보낸 40년 세월
7부 뉘른베르크 여행
헤르만 헤세 연보
1부 여행과 소풍
1. 여행에 대해
2. 머나먼 푸른 하늘
3. 한낮에 본 유령
4. 겨울 소풍
2부 보덴 호
1. 속물의 땅에서
2. 저녁이 되면
3. 여름을 향하여
4. 한여름
5. 보리수꽃
3부 이탈리아
1. 아네모네
2. 석호 연구
3. 크레모나의 저녁
4. 코모 호숫가 산책
5. 베르가모
4부 인도
1. 밤에, 수에즈 운하에서
2. 아시아의 저녁
3. 드라이브
4. 눈요깃거리
5. 어릿광대
6. 싱가포르에서 꾸는 꿈
7. 도항(渡航)
8. 펠라양
9. 갑판 위의 밤
10. 숲 속의 밤
11. 팔렘방
12. 물의 동화
13. 마라스 호
14. 캔디에서의 산책
15. 캔디에서 쓴 일기장
16. 페드로탈라갈라 산
17. 귀로
18. 아시아에 대한 추억
19. 인도에 대한 추억
20. 인도에서 온 손님
5부 방랑
1. 농가
2. 산길
3. 마을
4. 다리
5. 목사관
6. 농장
7. 나무
8. 비 오는 날
9. 예배당
10. 정오의 휴식
11. 호수, 나무와 산
12. 구름 낀 하늘
13. 빨간 집
6부 테신
1. 남쪽의 여름날
2. 남쪽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3. 테신의 여름밤
4. 조그만 길
5. 테신의 성모 마리아 축제
6. 몬타뇰라에서 보낸 40년 세월
7부 뉘른베르크 여행
헤르만 헤세 연보
저자
저자
헤르만 헤세
저자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는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고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고 탑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질풍노도의 청춘기가 투영되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레바퀴 밑에》《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늑대》 등을 발표해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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