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필천추(양장본 Hardcover)
몽무 최재석의 전각과 벼루 이야기
『철필천추』는 오래된 형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에서 길어 올린 생명력은 무한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른바 ‘씀(書寫)’과 ‘새김(刻)’, ‘모필(毛筆)’과 ‘철필(鐵筆)’ 사이의 고민이 전통과 융합된 힘의 발로여야 하며, 어떤 형식을 취하건 그 본원이 되는 절대 가치로의 귀환을 전제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책이며 여기에 더해 생활 속의 깊은 체득으로부터 불거져 나와야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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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우리는 가끔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있다. 이미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오늘, 전통적인 사유방식은 이해하기 쉽지 않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메말라졌으며 어느새 물질의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전각과 벼루가 실생활과 많이 떨어져 있는 시대가 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선명히 새겨 있는 소중한 체험은 그래서 여전히 유용하다. 일상에서 버려진 것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잊혀 가는 것들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잊힌 손, 생각하는 손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손의 복원은 자기존재의 회복이다.
전각과 벼루에 새겨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몽무 최재석은 이러한 작업이 의미 있는 것인가를 자문자답한다. 하지만 수집하고 소장한 인재와 벼루를 어루만지고 감상할 때면 그런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다. 작품을 할 때 일종의 두려움과 산고와 맞먹는 창작의 고통 따위도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인재와 벼루를 완상하고, 새기는 행위는 휴식이며 위안이고 즐거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전각과 벼루에 대한 그의 집착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혁신에는 새로운 형식을 낳는 개념을 만드는 것이 있고, 기존의 형식 안에서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형식 안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발굴하는 방식이다. 오래된 형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에서 길어 올린 생명력은 무한한 것이다. 그는 늦되고 어리석을지라도 아직은 이 오랜 형식에 더 마음이 간다. 이른바 '씀(書寫)'과 '새김(刻)', '모필(毛筆)'과 '철필(鐵筆)' 사이의 고민이 전통과 융합된 힘의 발로여야 하며, 어떤 형식을 취하건 그 본원이 되는 절대 가치로의 귀환을 전제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생활 속의 깊은 체득으로부터 불거져 나와야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속성의 기술이 아니라, 내재적 본질을 성찰하며 그 내재적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인내를 필요로 하는 숙성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만일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창조해 나가려면, 기다림의 미학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지혜는 진지하고 성실한 탐구를 통해 무르익는 것이다. 그는 전통에 뿌리를 둔 폭넓은 소양과 예술적 기량이 예술가 특유의 강렬한 개성과 융합되어 표출되어야만 이른바 상승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사방 한 치의 돌과, 각양각색의 벼루는 긴 역사를 갖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칼과 돌의 치열한 겨룸으로 인해 만들어진 조화로운 화합이 있다.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칼과 돌의 속성에 의해 의도치 않은 조합이 얼기설기 얽히며 궁극엔 조화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에게 있어 전각과 벼루의 공간은 의도함과 의도치 않음의 간극이 사라지는 조화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책속으로 추가
전각사를 살펴보면, 충도와 절도는 본래 하나의 원류로서 그 발단은 하진(何震)이며, 주간(朱簡)으로부터 분류되기 시작했다. 절도는 충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주간(朱簡)에서 시작해 정경(丁敬)의 손을 거쳐 더욱 발전되었다. 절도에서 표현되는 파절(波折)된 도흔(刀痕)으로 금석(金石)의 맛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서령팔가(西?八家)는 절도를 주요한 도법(刀法)으로 전각을 창작하였다. 하지만 이는 고정된 법칙은 아니었으며, 끊임없이 발전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주간은 절도법(刀法)이 정형화되지 않은 시기에 처음으로 세세하게 부서지는 절도로서 필의을 표현하였으며, 등석여(鄧石如)는 "인장은 서예에서 나온 것이다(印從書出)"는 이념을 제기한 후에 산뜻하고 유려한 충도(沖刀)로서 풍부한 자태의 전서(篆書)의 필의가 펼쳐진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오양지(吳讓之)와 조지겸(趙之謙)은 철필의(筆意) 성숙한 기교를 더욱 발전시켰다. 오창석(吳昌碩)의 도법은 충도와 절도를 겸해 운용하였고, 도흔을 힘써 숨겼다. 이는 칼을 운용하는 가장 높은 경지가 필의를 전달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백석(齊白石) 전각은 충도법을 주요한 것으로 자신의 서풍(書風)과 인풍(印風)의 통일에 기초하고 있다. -23쪽
오늘날의 전각 작품을 보면, 순수하게 절도를 운용하는 사람은 줄고, 갈수록 충도를 운용하고, 충도와 절도를 겸하는 전각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도 특유의 자연스럽고 대담한 특징은 통쾌하며 정감 표현에 보다 유리하다 하겠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새김으로 인해 심사숙고해야 할 세부적인 부분이 생략된 결과 가벼워진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생략과 실수는 더욱 많은 정취의 변화로 보상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단지 우연성과 즉흥성이 강해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보다 높은 수준의 도법은 착실한 기초 훈련으로 배양된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절도와 충도의 운용에 대해 충분한 인식과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피상적인 도법만을 견지한다면 신채(神采)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23쪽
전각은 문자를 해석하고 읽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맹목적으로 잔파하는 경우는 지양해야 하고 신운을 상하게 하거나 자형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미세한 차이가 있는 전서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잔파는 단지 보충하는 수단일 뿐이다. 과도한 인위적임은 격(格)이 떨어짐을 면키 어렵다. 방촌(方寸)의 공간에서 어떻게 잔파를 하느냐 하는 것은 대담하고도 세세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장이 잔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25쪽
서예 창작의 주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일회성이다. 그러나 전각 창작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만들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창작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수정 보완하는 것이 가능해 백문인(白文印)은 더욱 굵게 만들 수 있고, 주문인(朱文印)은 가늘게 복도(復刀), 혹은 보도(補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朱)와 백(白)에 변화를 줄 수 있고, 글자의 형태 역시 일정한 범위 내에서 과장과 변형이 가능하며, 장법(章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서예에서 사용되는 붓과 화선지는 모두 부드러운 성질을 가진 것으로 그에 따른 가변성(可變性)이 매우 크며, 재료를 제어하고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에 비하면 전각은 일반적으로 인고(印稿)를 구상하고, 새기는 과정에서 전각도와 인재의 강함과 강함이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일회성을 벗어난 시간의 보장과 재료의 특성으로 인해 "만든다"는 것은 전각 창작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6쪽
고대부터 전해지는 인장 재료의 종류는 다양하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인장은 대부분 동(銅) 재질이며, 부분적으로 돌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위에 따라 금, 은, 옥 재질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철, 상아, 뿔, 비취, 수정, 마노, 대나무 뿌리, 자기, 심지어 과일의 꼭지에 새기기도 하였다. 원(元)의 전선(錢選), 조맹부(趙孟?), 오구연(吾丘衍)을 시작으로 왕면(王冕)이 화유석(花乳石)을 발견하고 문팽(文彭), 하진(何震) 등을 거치며 석인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는 금석학(金石學)을 연구하는 풍조와 함께 고인(古印)을 연구하고 완상(玩賞)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전각 예술로 자각하고 진입하는 계기가 된다. 석인재는 전각 예술의 "도필(刀筆)의 맛"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충실하고도 기본적인 성질을 제공해 주었다. "돌은 말을 못하니 가장 맘에 든다(石不能言最可人)"고 할 수 있다. -28쪽
서예 작품에 관식이 없다면 서예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변관이 없다면 완성된 의미에서의 전각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변관이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인면을 잘 새겨 놓고 변관을 어떻게 새겨야 될지 망설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작자의 이름이나 호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다른 내용과 형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몇몇 전각가들이 뛰어난 변관을 구사하고 있고, 오늘날의 미의식을 융합해 탐색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총체적 수준으로 보자면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현대 전각가들의 인보집을 보더라도 인면만 날인해서 출품하는 경우가 많고 변관을 했더라도 인면과 비교해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변관을 등한시한 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 전각의 편향적 발전을 가져올 뿐이다. 변관은 중시되어야 하고 반드시 이에 대한 연구와 창작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각의 예술성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끌어 올릴 수 있다. -30쪽
관념상 많은 사의 전각가들은 "같음과 같지 않음의 사이(似與不似之間)", "정신을 전함(傳神)"을 추구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 전각은 구체적 기법과 추구하는 바가 따라 각양각색의 풍격을 형성하였다. 현대 중국 사의전각의 대표 작가인 한티엔헝, 왕융, 스카이, 마스따(馬士達), 천꿔빈(陳國斌) 등은 모두 다른 풍격을 띠고 있다. 이들 모두 성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모두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어떠한 심미관에서 살펴보면, 결코 그들의 작품을 모두 다 좋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창작 경향은 예술이 궁극적으로 표방하는 더 높은 경지를 지향하기 위한 실마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과하면 알 될 것이 이들의 풍격은 전통과 맞닿아 있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종의 관습에 의해 정통이 아니라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인해 보다 깊고 넓은 전통을 파악하지 못해서 생긴 관점일 것이다. 오늘날, 비교적 획일화된 인풍에 머물러 있는 감이 있는 한국 전각계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 전각은 작품의 질은 논외로 하더라도 다양화의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다소 규격화된 듯 보이는 한인풍격(漢印風格)의 형식에 익숙한 한국 전각가들에게 현대 중국의 사의인풍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다 올바르게 그것을 파악하고 사고하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32쪽
사의인풍을 구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창작하는 데 있어, 임의대로의 성질,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하지만 일부 전각가들을 제외하고 전통의 정확한 파악이 부족하고 진중한 예술 태도가 결여 되어 있다는 비평을 자주 접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을 빌려 우연한 효과에 기탁한다면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없을뿐더러 전각 예술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저해할 뿐이다. 이러한 깊이 없는 가벼움은 많은 전각 학습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며 전각을 매우 간단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 같다. 또한 성실하게 과거의 성숙한 성과를 돌아보지 않고 새롭고 기이한 효과가 있어야 만이 옛사람을 초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과도한 도필의 구사가 천성의 자연스러움을 헤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확한 파악을 근간으로 누적된 경지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일필의 사의(寫意)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기가 있다하더라도 이를 초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오창석, 제백석, 현대의 한티엔헝, 왕융, 스카이의 초년의 전각 작품을 살펴보면 모두 원만하고 수려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른바 "교묘하지 않음(不工)"은 "교묘함(工)"의 바탕 하에 이루어졌으며, "교묘하지 않음"은 일종의 "지극한 교묘함(工之極)"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쪽
전통을 등한시하고, 반전통적인 사람들은 현대에 기거하면서 전통은 보수적이며, 지난 것이고 새로운 의미가 결핍되어 있다고 여긴다. 또한 스스로 대담하고 용감하게 전위적으로 탐색하는 것을 표방한다. 물론 전통을 표방하는 사람들 역시도 드넓은 전통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고,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힌 전통에 대한 약속된 사고 체계가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전위적인 작가라고 해서 모두 전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탄해 마지않기도 한다. 또한 깊이 있는 전통의 이해와 함께 현대 미술의 중심에서 주목받는 작가들도 있다. 무엇을 지향하든, 전통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고대 예술품의 풍부한 함축성과 고대 예술가의 정련된 기예와 정신을 마주하고, 당연히 예술가로서 갖춰야 할 민감함과 깊이를 잃고 이상하게 둔하고 무감각하게 느낀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생각보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34쪽
목차
목차
도판목록
1부 전각, 사방 한 치의 세계로 들어가며
전각 창작에 있어서 서예의 중요성
왜 한인(漢印)인가?_인지종한(印之宗漢)
고새인풍(古璽印風)의 유혹
무리를 떠남을 생각하다(思離群)_유파인(流派印) 전각의 개성
도법(刀法)_철필(鐵筆)의 운용
전각의 주요 기법_잔파(殘破)
만듦과 만들지 않음의 사이
전각 창작과 석인재(石印材)
작은 비석(袖珍碑刻)_변관(邊款)
사의인풍(寫意印風)
전각 예술의 전통(古)과 현대(今)
2부 전각_방촌지경(方寸之境) 1
3부 전각_방촌지경(方寸之境) 2
4부 벼루_연전낙사(硯田樂事)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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