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의료의 풍경(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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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를 키워드로 복원한 한국 근대인들의 삶!
격동기 근대 의료의 인문학적 탐사 『근대 의료의 풍경』.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2010년 3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그리고 2011년 5월 2일부터 6월 20일까지 주 2회, 총 101회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한 책이다. 철저한 사료 비판과 충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1876년 개항 즈음부터 1910년의 경술국치 무렵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한국 근현대 의학, 의술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과 1000여 장에 가까운 사진을 통해 우리 의료계를 되짚어본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 의료의 태동과 전개, 도전과 발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제1부에서는 개국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에 대해, 제2부에서는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을 둘러싼 역사에 대해 정리한다. 제3부에서는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한 발걸음을 면밀히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식민지 의료 기관이었던 대한의원과 제국의 의사들을 다룬다.
격동기 근대 의료의 인문학적 탐사 『근대 의료의 풍경』.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2010년 3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그리고 2011년 5월 2일부터 6월 20일까지 주 2회, 총 101회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한 책이다. 철저한 사료 비판과 충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1876년 개항 즈음부터 1910년의 경술국치 무렵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한국 근현대 의학, 의술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과 1000여 장에 가까운 사진을 통해 우리 의료계를 되짚어본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 의료의 태동과 전개, 도전과 발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제1부에서는 개국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에 대해, 제2부에서는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을 둘러싼 역사에 대해 정리한다. 제3부에서는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한 발걸음을 면밀히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식민지 의료 기관이었던 대한의원과 제국의 의사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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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서구화ㆍ전쟁ㆍ제국주의… 격동기 근대 의료의 인문학적 탐사
-'의료'를 키워드로 한국 근대인들의 삶을 그린 세밀한 조감도-
요즘 진주의료원 사태로 한국의 공공 의료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진주의료원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원의 전신인 자혜원은 1909년 순종의 칙령으로 1910년 함흥, 전주, 청주에 시범적으로 세워진 서양식 병원이었다. 그 후 1932년에는 진주 중심에 당시로써는 최대 규모인 연건평 2000여 평의 건물을 짓고 경남도립 진주의원으로 개명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진주의료원 문제는 존폐 여부를 떠나 한국 보건의료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양 근대의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인 1876년 개항 즈음부터 1910년의 경술국치 무렵까지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룬 책 ≪근대 의료의 풍경≫(황상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 출간됐다. 그간 비슷한 주제들로 출간된 책들과 달리 저자는 철저한 사료 비판과 충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글쓰기로 그 방향을 달리한다. 당시 보건의료를 다룬 논문이나 책 가운데 사실이 부정확하거나 근거가 미약한 것, 사건과 인물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적지 않아 이 시기 역사에 대한 왜곡된 지식과 역사상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됐다는 게 그 이유다. 이 책은 당시 시대상에 대한 주도면밀한 관찰로 부족한 자료의 빈 공간을 채운다. 한국 근현대 의학, 의술, 의학교육, 의료행정, 의문화사, 의생활사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시켜 볼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과 함께 1000여 장에 가까운 사진을 펼쳐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 의료계가 돌아보는 역사이자 조감도라 할 수 있다.
호환 마마가 두렵던 시절, 근대 의료를 꿈꾸다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 의료의 태동과 전개, 도전과 발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양 의학을 중심으로 정립된 근대의 보편의학은 19세기말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다. 조선 지식인들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록한 책자를 통해서나 개항장, 개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의사를 통해서, 또는 정부가 파견한 시찰단을 통해서 근대의학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입수했다.
두창 치료를 위해 굿을 벌이던 민간 처방과 ≪동의보감≫으로 대별되는 전통의학이 서양 근대의학의 도입으로 서서히 변화를 겪는다. 의학은 서양 근대 과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개화 정책 초기 단계부터 그를 습득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의 근대 의학 도입 시도는 광혜원 설립으로 일차 결실을 맺는다.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처형당한 홍영식의 저택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건물로 내정됐다. 1885년 4월 10일 개원했다. 고종은 4월 12일 광혜원이란 공식 명칭을 하사했다.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이다. 광혜원의 개원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쪽이다. 또한 의학사, 교회사, 근대 교육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다. 광혜원은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 사용됐고,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저자는 그간 아무런 이유 없이 광혜원에서 제중원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 각종 사료를 들어 그 내력을 파헤친다.
광혜원이 제중원으로 개칭된 날짜는 4월 26일(음력 3월 12일)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고종실록≫ 4월 26일자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칭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왕의 재가라기보다 외아문의 보고로 제중원이라는 새 병원 명칭이 확정되었다.
제중원으로 이름을 고친 것은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소급 개칭한 것이며, '개부표改付標'가 그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4월 14일 국왕의 재가를 얻어 광혜원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지만, 같은 날짜로 소급해 제중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4월 26일까지 쓰였지만, 형식상(법률상)으로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들도 많았고 고종의 신임도 컸다. 하지만 일반 시민 모두가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감의 대표적인 예로 '영아소동'이 흔히 거론된다. 영아소동은 1888년 6월 10일 서울에서 표면화돼 지방으로 확산됐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삶아먹고 눈은 빼내 약이나 사진 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 노예로 팔고 있다는 것도 있었다. 소문은 민중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고 일부 과격한 대중들의 폭력사태로 이어졌고, 조선 정부와 외국 공관들이 적극 나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곧 영아소동은 끝났다. 제중원은 개원 후 1년 동안 1년 동안 발진티푸스를 포함한 전염성 질병에 걸린 외래 환자 19명을 치료했고, 4일열에 시달리는 713명을 포함해 말라리아 환자 1061명을 치료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세브란스 병원의 제중원의 계승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한 사료를 바탕으로 반론을 든다. 그리고 저자는 20년 동안 조선(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으로 존립하면서 근대 서양 의학이 이 땅에 도입되고 발전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제중원은 역사 속으로 물러난 뒤에도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제중원은 역사 속으로 물러난 뒤에도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세브란스 병원을 통한 것이었다. 제중원에서 일했던 여러 선교의사들의 경험은 선교부가 설립한 세브란스 병원의 발전뿐만 아니라 의사 양성 등을 통해 한국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대한제국 정부의 의학교와 광제원을 통한 것이다. 제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얻은 정부의 경험은 의학교와 광제원 등 국립 의료기관의 건립과 운영, 나아가 의사 양성 등을 통해 한국 의학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
자주적 의료 근대화와 제국의 의사들
한국사는 한국인들만의 배타적, 폐쇄적 역사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공간에서 한국인들뿐 아니라(물론 한국인들 자체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울려서 삶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연출해 온 것이 바로 한국사이고, 19세기 후반의 문호개방 이래 그러한 점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또한 무대가 되는 공간도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었고 그에 따라 세계사 속의 한국사로 변모, 발전하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사의 주역이라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제도들을 받아들여 점차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기존의 전통적 요소들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왔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제3부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하여-의학교와 광제원》에서
1870년대부터 근대 서양 의술을 접해 온 조선 사회는 초기의 피동적 체험에서부터 점차 능동적인 선택과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중원뿐만 아니라 일본인 병원과 선교병원 들이 그러한 변화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데에 의사의 국적과 피부색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집행하는 데에서는 자국인 의사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의사들이 아무리 헌신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목표가 조선 정부의 그것과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 정부는 1880년대부터 의료인 양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국가사업으로 우두의사를 배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제중원 학당에서의 의학 교육은 의사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이후 지석영의 건의로 1899년 의학교가 설립된다. 의학교는 1902년, 3년간의 근대식 의학 교육을 받고 법령으로 의사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사 19명을 배출한 점에서도 의학사와 한국 근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의학교가 민중의 참여와 우리 정부와 선각자들의 주도로 설립,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윽고 한국인 의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익남, 김교준, 유병필 등 비롯한 수많은 의학 선각자들이 의학 연구, 의료인 양성, 환자 진료 등 각 분야에 걸쳐 이루어낸 성과는 눈부시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교 출신 의사들의 행적을 자료가 허하는 범위에서 좇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자주저거 의료사의 한 단면을 찾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동안 통사적으로 한국 근현대 의료 문화사를 기술한 책은 있었지만, 너무 학문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펼쳐볼만한 의학사는 없었다. 그런가 하면 독자의 접근을 면목으로 사료적 근거와 해석은 무시한 채 흥미만을 목적으로 독자들에게 잘못된 역사상을 만들어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 ≪근대 의료의 풍경≫은 독자들에게 정확한 자료와 사료를 보여주면서도 사회적, 생활사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의료 문화 전반을 쉽고 명쾌한 필치로 '의료'를 키워드로 한 근대의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생생한 지식을 전달한다.
-'의료'를 키워드로 한국 근대인들의 삶을 그린 세밀한 조감도-
요즘 진주의료원 사태로 한국의 공공 의료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진주의료원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원의 전신인 자혜원은 1909년 순종의 칙령으로 1910년 함흥, 전주, 청주에 시범적으로 세워진 서양식 병원이었다. 그 후 1932년에는 진주 중심에 당시로써는 최대 규모인 연건평 2000여 평의 건물을 짓고 경남도립 진주의원으로 개명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진주의료원 문제는 존폐 여부를 떠나 한국 보건의료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양 근대의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인 1876년 개항 즈음부터 1910년의 경술국치 무렵까지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룬 책 ≪근대 의료의 풍경≫(황상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 출간됐다. 그간 비슷한 주제들로 출간된 책들과 달리 저자는 철저한 사료 비판과 충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글쓰기로 그 방향을 달리한다. 당시 보건의료를 다룬 논문이나 책 가운데 사실이 부정확하거나 근거가 미약한 것, 사건과 인물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적지 않아 이 시기 역사에 대한 왜곡된 지식과 역사상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됐다는 게 그 이유다. 이 책은 당시 시대상에 대한 주도면밀한 관찰로 부족한 자료의 빈 공간을 채운다. 한국 근현대 의학, 의술, 의학교육, 의료행정, 의문화사, 의생활사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시켜 볼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과 함께 1000여 장에 가까운 사진을 펼쳐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 의료계가 돌아보는 역사이자 조감도라 할 수 있다.
호환 마마가 두렵던 시절, 근대 의료를 꿈꾸다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 의료의 태동과 전개, 도전과 발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양 의학을 중심으로 정립된 근대의 보편의학은 19세기말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다. 조선 지식인들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록한 책자를 통해서나 개항장, 개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의사를 통해서, 또는 정부가 파견한 시찰단을 통해서 근대의학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입수했다.
두창 치료를 위해 굿을 벌이던 민간 처방과 ≪동의보감≫으로 대별되는 전통의학이 서양 근대의학의 도입으로 서서히 변화를 겪는다. 의학은 서양 근대 과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개화 정책 초기 단계부터 그를 습득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의 근대 의학 도입 시도는 광혜원 설립으로 일차 결실을 맺는다.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처형당한 홍영식의 저택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건물로 내정됐다. 1885년 4월 10일 개원했다. 고종은 4월 12일 광혜원이란 공식 명칭을 하사했다.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이다. 광혜원의 개원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쪽이다. 또한 의학사, 교회사, 근대 교육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다. 광혜원은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 사용됐고,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저자는 그간 아무런 이유 없이 광혜원에서 제중원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 각종 사료를 들어 그 내력을 파헤친다.
광혜원이 제중원으로 개칭된 날짜는 4월 26일(음력 3월 12일)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고종실록≫ 4월 26일자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칭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왕의 재가라기보다 외아문의 보고로 제중원이라는 새 병원 명칭이 확정되었다.
제중원으로 이름을 고친 것은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소급 개칭한 것이며, '개부표改付標'가 그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4월 14일 국왕의 재가를 얻어 광혜원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지만, 같은 날짜로 소급해 제중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4월 26일까지 쓰였지만, 형식상(법률상)으로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들도 많았고 고종의 신임도 컸다. 하지만 일반 시민 모두가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감의 대표적인 예로 '영아소동'이 흔히 거론된다. 영아소동은 1888년 6월 10일 서울에서 표면화돼 지방으로 확산됐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삶아먹고 눈은 빼내 약이나 사진 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 노예로 팔고 있다는 것도 있었다. 소문은 민중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고 일부 과격한 대중들의 폭력사태로 이어졌고, 조선 정부와 외국 공관들이 적극 나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곧 영아소동은 끝났다. 제중원은 개원 후 1년 동안 1년 동안 발진티푸스를 포함한 전염성 질병에 걸린 외래 환자 19명을 치료했고, 4일열에 시달리는 713명을 포함해 말라리아 환자 1061명을 치료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세브란스 병원의 제중원의 계승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한 사료를 바탕으로 반론을 든다. 그리고 저자는 20년 동안 조선(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으로 존립하면서 근대 서양 의학이 이 땅에 도입되고 발전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제중원은 역사 속으로 물러난 뒤에도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제중원은 역사 속으로 물러난 뒤에도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세브란스 병원을 통한 것이었다. 제중원에서 일했던 여러 선교의사들의 경험은 선교부가 설립한 세브란스 병원의 발전뿐만 아니라 의사 양성 등을 통해 한국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대한제국 정부의 의학교와 광제원을 통한 것이다. 제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얻은 정부의 경험은 의학교와 광제원 등 국립 의료기관의 건립과 운영, 나아가 의사 양성 등을 통해 한국 의학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
자주적 의료 근대화와 제국의 의사들
한국사는 한국인들만의 배타적, 폐쇄적 역사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공간에서 한국인들뿐 아니라(물론 한국인들 자체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울려서 삶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연출해 온 것이 바로 한국사이고, 19세기 후반의 문호개방 이래 그러한 점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또한 무대가 되는 공간도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었고 그에 따라 세계사 속의 한국사로 변모, 발전하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사의 주역이라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제도들을 받아들여 점차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기존의 전통적 요소들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왔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제3부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하여-의학교와 광제원》에서
1870년대부터 근대 서양 의술을 접해 온 조선 사회는 초기의 피동적 체험에서부터 점차 능동적인 선택과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중원뿐만 아니라 일본인 병원과 선교병원 들이 그러한 변화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데에 의사의 국적과 피부색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집행하는 데에서는 자국인 의사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의사들이 아무리 헌신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목표가 조선 정부의 그것과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 정부는 1880년대부터 의료인 양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국가사업으로 우두의사를 배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제중원 학당에서의 의학 교육은 의사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이후 지석영의 건의로 1899년 의학교가 설립된다. 의학교는 1902년, 3년간의 근대식 의학 교육을 받고 법령으로 의사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사 19명을 배출한 점에서도 의학사와 한국 근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의학교가 민중의 참여와 우리 정부와 선각자들의 주도로 설립,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윽고 한국인 의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익남, 김교준, 유병필 등 비롯한 수많은 의학 선각자들이 의학 연구, 의료인 양성, 환자 진료 등 각 분야에 걸쳐 이루어낸 성과는 눈부시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교 출신 의사들의 행적을 자료가 허하는 범위에서 좇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자주저거 의료사의 한 단면을 찾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동안 통사적으로 한국 근현대 의료 문화사를 기술한 책은 있었지만, 너무 학문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펼쳐볼만한 의학사는 없었다. 그런가 하면 독자의 접근을 면목으로 사료적 근거와 해석은 무시한 채 흥미만을 목적으로 독자들에게 잘못된 역사상을 만들어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 ≪근대 의료의 풍경≫은 독자들에게 정확한 자료와 사료를 보여주면서도 사회적, 생활사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의료 문화 전반을 쉽고 명쾌한 필치로 '의료'를 키워드로 한 근대의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생생한 지식을 전달한다.
목차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_ 근대 의료의 풍경
⊙ 제1부 개국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
1장 한국 근대 의료와 지석영
지석영과 우두술∥최초의 우두의사∥국가의 우두 사업∥두창 퇴치의 숨은 공로자 김인제 ∥역병과의 전쟁-무당과 의사∥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한 지석영
2장 근대식 보건의료 개혁과 좌절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보건의료 부서∥1890년대 종두의사 양성 교육∥잊혀진 의사, 코죠 바이케이∥종두의양성소 졸업생∥왕비 암살 사건에 연루된 이겸래∥전통과 근대를 넘나든 의사들
3장 근대 의료를 꿈꾼 사람들
한국계 미국인 의사 필입 졔손 서재필∥최초의 개업의 박일근과 염진호∥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학 열풍∥일본 유학생들의 장래 희망∥곤궁한 처지에 빠진 일본 유학생들∥일본 유학생 신해영과 안국선∥일본 유학생들의 기구한 운명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
1장 제중원을 둘러싼 쟁점
제중원의 실체∥알렌 신화-신데렐라 스토리∥제중원과 고종의 외교 전략∥《제중원 규칙》의 제정과 특징∥《제중원 규칙》을 둘러싼 오해∥제중원의 설립일∥백송에 얽힌 사연
2장 제중원과 의료진
알렌은 제중원의 '정식 의사'였나?∥제중원 의사들의 월급∥제중원 의사를 둘러싼 진실∥'최초 여의사'의 정체
3장 제중원과 의학 교육
제중원 학당의 탄생∥제중원 학당의 학생들∥제중원 학당의 귀결
4장 제중원의 변화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알렌이 '소공동 남별궁'을 요구한 까닭∥제중원의 '구리개' 이전 ∥재동 제중원의 뒷이야기∥제중원 의사의 권세∥외국인 의사를 보는 조선인의 시선-영아 소동
5장 제중원의 환자 진료
정말로 제중원에 말라리아 환자가 많았나?∥제중원의 성병 환자∥두창 이야기∥기생충과 동거는 일상생활∥수술에 대한 열광, '마취'가 없었다면∥종기와의 전쟁∥제중원의 입원 환자와 사망 환자∥입원 환자들의 치료 양상∥제중원 의사들의 윤리 의식
6장 제중원 운영권을 둘러싸고
제중원을 둘러싼 막후 경쟁∥에비슨이 사표를 낸 이유∥제중원 운영권의 이관∥세브란스 병원의 탄생∥제중원 환수의 진실
⊙ 제3부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하여-의학교와 광제원
1장 100년 전 한국인들의 건강과 질병
재한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재한 일본인들의 사망 원인∥한국인들의 건강과 질병 상태 475∥일본 내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 ①∥일본 내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 ②∥대한제국 정부의 전염병 대책 ①∥대한제국 정부의 전염병 대책 ②
2장 최초의 근대식 의학 교육기관 의학교
의학교의 역사적 의의∥근대 의학 교육에 대한 열망∥의학교의 설립과 《의학교 관제》∥의학교의 운영
3장 의학교 교수진
첫 의과대학 교수 김익남∥남순희와 전봉규∥유세환·최규익·장도∥의학교 1회 출신의 첫 교관 김교준∥의학교 1회 출신의 두 번째 교관 유병필∥의학교의 일본인 교사 코죠와 고다케
4장 의학교 졸업생
의학교 제1회 졸업생∥의학교 제2회 졸업생∥의학교 제3회 졸업생∥의학교 졸업생들의 위생계몽활동∥의학교는 어디에 있었나?∥세브란스 병원 의학교∥이토 히로부미의 일석삼조∥최초의 의사 단체 의사연구회
5장 광제원-전통과 근대의 절충
새로운 국립병원∥광제원의 운영 상황∥광제원의 변천∥광제원의 의료진∥광제원의 진료 실적∥일제의 광제원 장악
⊙ 제4부 식민지 의료기관 대한의원
1장 대한의원
이완용의 그날 일기∥이토 히로부미의 병원∥서울대병원 '시계탑 건물'의 내력∥한국인은 홀대한 대한의원 ∥대한의원 의학생
2장 제국의 의사들
식민지 의사의 두 가지 길-김용채와 이만규∥나도향 스토리∥을사늑약에 맞선 마지막 항거∥세 번 찔리고 살아난 이완용∥대한의원의 최대 수혜자 이완용∥이재명의 순국∥이재명과 이완용∥3·1운동과 의학도∥친일파 의사들의 생존법∥의학과 제국주의
에필로그 _'주문 맞춤형 연구'는 이제 그만
한국 근대 의료 연표(1876~1910)∥참고문헌∥찾아보기
프롤로그 _ 근대 의료의 풍경
⊙ 제1부 개국과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
1장 한국 근대 의료와 지석영
지석영과 우두술∥최초의 우두의사∥국가의 우두 사업∥두창 퇴치의 숨은 공로자 김인제 ∥역병과의 전쟁-무당과 의사∥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한 지석영
2장 근대식 보건의료 개혁과 좌절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보건의료 부서∥1890년대 종두의사 양성 교육∥잊혀진 의사, 코죠 바이케이∥종두의양성소 졸업생∥왕비 암살 사건에 연루된 이겸래∥전통과 근대를 넘나든 의사들
3장 근대 의료를 꿈꾼 사람들
한국계 미국인 의사 필입 졔손 서재필∥최초의 개업의 박일근과 염진호∥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학 열풍∥일본 유학생들의 장래 희망∥곤궁한 처지에 빠진 일본 유학생들∥일본 유학생 신해영과 안국선∥일본 유학생들의 기구한 운명
⊙ 제2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
1장 제중원을 둘러싼 쟁점
제중원의 실체∥알렌 신화-신데렐라 스토리∥제중원과 고종의 외교 전략∥《제중원 규칙》의 제정과 특징∥《제중원 규칙》을 둘러싼 오해∥제중원의 설립일∥백송에 얽힌 사연
2장 제중원과 의료진
알렌은 제중원의 '정식 의사'였나?∥제중원 의사들의 월급∥제중원 의사를 둘러싼 진실∥'최초 여의사'의 정체
3장 제중원과 의학 교육
제중원 학당의 탄생∥제중원 학당의 학생들∥제중원 학당의 귀결
4장 제중원의 변화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알렌이 '소공동 남별궁'을 요구한 까닭∥제중원의 '구리개' 이전 ∥재동 제중원의 뒷이야기∥제중원 의사의 권세∥외국인 의사를 보는 조선인의 시선-영아 소동
5장 제중원의 환자 진료
정말로 제중원에 말라리아 환자가 많았나?∥제중원의 성병 환자∥두창 이야기∥기생충과 동거는 일상생활∥수술에 대한 열광, '마취'가 없었다면∥종기와의 전쟁∥제중원의 입원 환자와 사망 환자∥입원 환자들의 치료 양상∥제중원 의사들의 윤리 의식
6장 제중원 운영권을 둘러싸고
제중원을 둘러싼 막후 경쟁∥에비슨이 사표를 낸 이유∥제중원 운영권의 이관∥세브란스 병원의 탄생∥제중원 환수의 진실
⊙ 제3부 자주적 의료 근대화를 향하여-의학교와 광제원
1장 100년 전 한국인들의 건강과 질병
재한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재한 일본인들의 사망 원인∥한국인들의 건강과 질병 상태 475∥일본 내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 ①∥일본 내 일본인들의 건강과 질병 ②∥대한제국 정부의 전염병 대책 ①∥대한제국 정부의 전염병 대책 ②
2장 최초의 근대식 의학 교육기관 의학교
의학교의 역사적 의의∥근대 의학 교육에 대한 열망∥의학교의 설립과 《의학교 관제》∥의학교의 운영
3장 의학교 교수진
첫 의과대학 교수 김익남∥남순희와 전봉규∥유세환·최규익·장도∥의학교 1회 출신의 첫 교관 김교준∥의학교 1회 출신의 두 번째 교관 유병필∥의학교의 일본인 교사 코죠와 고다케
4장 의학교 졸업생
의학교 제1회 졸업생∥의학교 제2회 졸업생∥의학교 제3회 졸업생∥의학교 졸업생들의 위생계몽활동∥의학교는 어디에 있었나?∥세브란스 병원 의학교∥이토 히로부미의 일석삼조∥최초의 의사 단체 의사연구회
5장 광제원-전통과 근대의 절충
새로운 국립병원∥광제원의 운영 상황∥광제원의 변천∥광제원의 의료진∥광제원의 진료 실적∥일제의 광제원 장악
⊙ 제4부 식민지 의료기관 대한의원
1장 대한의원
이완용의 그날 일기∥이토 히로부미의 병원∥서울대병원 '시계탑 건물'의 내력∥한국인은 홀대한 대한의원 ∥대한의원 의학생
2장 제국의 의사들
식민지 의사의 두 가지 길-김용채와 이만규∥나도향 스토리∥을사늑약에 맞선 마지막 항거∥세 번 찔리고 살아난 이완용∥대한의원의 최대 수혜자 이완용∥이재명의 순국∥이재명과 이완용∥3·1운동과 의학도∥친일파 의사들의 생존법∥의학과 제국주의
에필로그 _'주문 맞춤형 연구'는 이제 그만
한국 근대 의료 연표(1876~1910)∥참고문헌∥찾아보기
저자
저자
황상익
저자 황상익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교수.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의학과 의술의 발전 과정, 질병의 변천과 그에 대한 대응, 북한의 보건의료, 환자-의사 관계, 문명 간의 교섭이 주된 관심 분야이다. 대한의사학회大韓醫史學會, 한국과학사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과 제1대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겸 서울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첨단의학시대에는 역사시계가 멈추는가≫, ≪인물로 보는 의학의 역사≫, ≪문명과 질병≫, ≪역사 속의 보건의료≫ 등 20여 권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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