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 교회
오승재 단편집
『급매물 교회』는 교회, 목사,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저자의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되돌아보며 평생 모시고 산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는 참회의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을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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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가의 삶에서 많은 부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교회 주변의 이야기들, 교회· 목사·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바라보며, 또한 자신의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되돌아보면서 평생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욕 되게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참회의 심정을 담은 글이다.
풍자의 관점에서 그린 이 기독교 소설들은 작가의 첫 번째 창작집《神 없는 神 앞에》 이후 9년 만에 펴낸 창작집으로 첫 소설집에 이은 한층 더 기독교 문학적인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풍자적 수법으로 간접적인 현실 비판의 작품 활동을 하며 교회의 부조리를 작품화해 우회적 교회 비판의 작품이 된 이 소설집 속의 단편들 중 <급매물 교회>와 <목갈치 교회의 목사>, <제사장과의 대화> 등 전반적으로 작품들은 풍자의 틀을 지니고 있고 이 작품들은 내재적 의미의 풍자가 뜻있는 풍자가 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문학평론가 임영천 교수의 작품 해설은 그의 이러한 소설 세계가 기독교 세계관 속기독교 소설들이 지닌 의미를 해석해 주고 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 흐름과 작품의 의미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
작품 해설 속 소설가 오승재의 제2창작집 <급매물 교회>를 중심으로 본 단편들
이제 우리는 새 창작집 속의 <급매물 교회>와 <목갈치 교회의 목사>에 대하여 살펴볼 차례에 이르렀다. 먼저 말하기로 하면 이 두 작품은 그 풍자의 특성으로 보아 첫 번째 창작집 안의 <제일교회> 쪽의 것이 아니라 <대성리교회> 쪽의 것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리라고 생각한다. 즉 강력하고 직접적 적극적인 풍자 쪽이라고 하기보다는 미세하고 간접적 소극적인 풍자의 성격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노골적인 풍자보다는 은근한 풍자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말로도 이해되는 그런 성격의 풍자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해 보자면, 밖으로 드러난 요란한 풍자보다는 내적인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그윽한 풍자, 즉 내재적 풍자라고 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재적 의미의 풍자는 그 나름으로 은근하고도 뜻있는 풍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차제에 강조되어야만 할 것 같다. 왜냐면 그런 풍자가 요즈음엔 훨씬 더 업투데이트up-to-date한 풍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목갈치 교회->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가를 살펴보면 위의 판단이 무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사 자주 바꾼다고 천당 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목갈치 교회->란 작품의 이 마지막 문장에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풍자가 깃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사 갈아 치우는 데 이골이 난 교회의 교인들이 그 일-목사 갈아 치우는 일-로 천당 가는 데 무슨 큰 불리할 일은 없으리라는 타산을 하고 있는 형식주의적 신앙인에 불과함을 이보다 더 날카롭게 지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풍자의 대상이 목사 쪽이 아닌 평신도 군群이 되고 있다. 내재적 풍자의 대상이 이처럼 평신도 군으로 이동하고 있음에 유의할 일이다.
그들은 극도의 타산적인 신앙을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적인 신도들이다. 극도의 보수적 신앙을 지니고 있는 그들은 일반 사회에서 왕 노릇하며 살듯이 교회 안에서도 늘 왕 노릇하며 살려고 한다. 그 때문에 교회 내에서 누구[목사?]에게도 결코 지려고 하지 않는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목사를 갈아 치우는 것이 아니라 근무 연한 7년이 찼기 때문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갈아 치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 7년의 목사 연한제年限制란 얼마나 큰 무기인가.
'천 목사는 신학교 교수나 할 일이지 목회자가 아니다. 책만 많고 책만 많이 읽으면 뭐하냐? 교인들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우는데……, 성령 안 받고 목회하는 목사가 목사냐?'
'목사는 자기 교만을 버리고 이 교회를 떠나라. 훌륭한 성경 교재도 많은데 왜 자기가 개발한 교재만 고집하는가? 예수님을 자기가 만든 현미경을 통해 보고 있으란 말인가?'
'목갈치 교회'의 담임인 천 목사는 이제 7년이란 연한이 다 찼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내세운 이런저런 억지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이 교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아마 그가 교인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더라면, 아니, 요구 조건을 들어주겠노라고 약속을 할 마음만 먹었더라도 그곳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 목사는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교인들을 자신이 제대로 지도해 나갈 처지가 되지 못할 때 굳이 그 교회에 눌어붙어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유레카 발견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끝으로 며칠 뒤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급매물 교회>에서의 상황도 오십보백보다. 이 교회에서의 풍자 대상은 평신도 대표인 이인식 장로라고 보아야겠다. 이李 장로는 이 교회에서 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세를 지니고 있다. 교회가 월세도 못 낼 정도의 부도 상태에 이르자 '급매물'교회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서 담임을 맡겠다고 응한 새 목사를 받아들이면서 옛 목사를 쫓아냈다. 새로 들어온 천 목사는 아예 사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목회 시무視務를 시작했는데, 그 목사는 그만큼 자기중심적인 목회를 지향한다. 단순히 고집불통의 목회를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서 중심의 목회, 하나님 중심의 목회, 곧 바른 목회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는 교회를 물량적으로 키우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경고하면서 결국 아래와 같은 방향의 목회를 지향하였다.
"만일 전도가 교인수를 늘리는 것이라면 중단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수나, 일 년 예산을 자랑하는 것이면 이것은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시면서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가족이나 종이나 가축까지도 쉬라는 날에 왜 이렇게 많은 행사를 가지고 들어옵니까?"
사례도 받지 않고 시무해 온 천 목사였지만, 그리고 세속에 물든 교회가 아닌 참[眞正한] 교회를 지향한 그였지만 이미 세속화된 교회를 더 편하게 여기는 교인들과의 견해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2년의 목회 기간을 다 채우려던 즈음에 미국의 친구 목사가 암에 걸려 2개월만 도와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도미한 것이 결국은 그의 현장 목회의 종말이 되고 말았다. 이인식 장로가 목사 부재 시에 교회를 '급매물'로 다시 내놓아 이미 그 교회는 다른 목사에게 넘어간 뒤였다. 귀국한 천 목사가 이 장로에게 교회 매매의 불법성을 추궁했으나 이 장로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다 보니 그리 되었다"고 얼버무렸다. 이 급매물 교회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고 말았다.
오승재의 첫 창작집에 실린 <제일교회>에서는 원목사가 강자였다. 그 목사를 중심으로 장로까지 합세해 결속된 당회가 마치 유재용의 <위대한 환상> 속의 '주님영광교회'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김장수 목사처럼 공고한 아성을 형성한 채 외부의 도전에 대해 철저한 박멸책을 쓰는 강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풍자[공격]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같은 첫 창작집의 <대성리교회>에서는 세 명의 교역자들을 자꾸 갈아 치우는 교회 회중들 달리 말해 평신도들에게 은근한 풍자의 화살이 날아갔었다. '대성리교회'에 대한 풍자의 정도만큼 오 작가의 제2창작집에 실린 <급매물 교회>란 작품에도 유사한 열도熱度의 풍자가 가해지고 있다. 교회의 위기 때마다 교회를 '급매물'로 내놓아 능수능란하게(?) 사태를 처리·해결하는 이 작품 속의 평신도 대표 이인식 장로에 대한 풍자의 열도만큼, 평신도들이 거의 쥐락펴락하다시피 한 <목갈치 교회->의 실상에 대해서도 유사한 풍자의 열도가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앞서 이미 살펴보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창작집 속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제사장과의 대화>가 일단 우리의 유다른 관심을 끈다고 보아야겠다. 목회자 신분인 정 목사에 대한 풍자가 매우 강한 작품이라는 뜻에서이다. 제1창작집 속의 <제일교회>와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판단에서이다. <제일교회>에서 목회자에 대한 풍자가 강했듯이 <제사장과의 대화>에서도 목회자 신분인 정 목사에 대한 풍자가 의외로 강한 편이다.
이 작품 속에서는 정 목사와 박 권사가 일종의 정면 대결을 한다. 평신도인 박 권사가 자신의 교회 담임인 정 목사와 어느 면에서 정면 대결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짙은 안개 속 길 가운데서 우연히 만나게 된 제사장과의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고 보겠다. 박 권사는 그 제사장과 만나서 대화하기 이전엔 소위 제사장 직분과 목사 직분에 대해서 제대로 구분해 설명할 줄 몰랐었다. 그러다가 그 제사장을 만나 대화를 해 보고 난 뒤, 목사가 평소 자신을 제사장으로 알고 그렇게 행세하는 일에 대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분명히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특히 목사가 자주 일천 번제一千燔祭에 대하여 강조해 온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고 비기독교적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제사장은 박 권사와 대화하는 가운데 신랄하게 목사라는 직분에 대해 비판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그 제사장은, 목사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며 또 드릴 필요도 없으니, 목사가 스스로 제사장입네 행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단 하나님께서 맡긴 양 무리를 치고 고난의 증인으로 사는 본이 될 책임을 지닌 이가 바로 목사라고 그 제사장은 박 권사에게 설명한다. 그러면 목사를 선지자로 볼 수는 있겠는가 하고 묻는 박 권사의 질문에 제사장은 "지금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말하기만 한다면 그는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해, 박 권사에게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는 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제사장과의 대화가 있은 뒤, 박 권사는 또 길가에서 우연히 담임목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정 목사는 이번에 자기가 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가게 되었는데 박 권사가 동행해 주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목사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박 권사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이번에도 몇 사람 동원해서 분위기 좀 띄워 주시오." 정 목사는 박 권사를 이번 부흥회에서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로 써먹겠다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과거엔 담임목사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제사장과의 대화가 있은 뒤론 전혀 달라진 박 권사였다.
"목사님, 사실 저는 최근에 시끄러운 악기와 CCM 성가, '주여!' 삼창 후 통성 기도, 그리고 '할렐루야', '아멘' 등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차분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일천 번제의 서원은 좀 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신도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아무리 박수부대라도 목사님이 이번에도 일천 번제 예물을 바치라는 설교를 하신다면 가고 싶지 않습니다.…… 번제물 대신 돈을 낸다는 것 자체가 좀 무당에게 복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일천 번제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요."
완곡하면서도 단호한 박 권사의 거절에 정 목사도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일천 번제라는 구약 시대의 관습을 신약 시대에 와서 견강부회로 적용시켜 교회 재정을 불려 보려는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된 관행에 연약한 여성 신도가 반기를 듦으로써 담임목사를 굴복시킨 셈이었다. 일종의 꼼수에 저항하는 박 권사의 언동에서 날카로운 풍자가 엿보이며, 이를 개신교권 전체에까지 확장시켜 비판하는 작가 화자의 필치에서 섬찍한 풍자를 느끼게 된다.
특히 작품의 말미에서 병원에 입원한 박 권사와 그녀의 남편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른바 비빔밥 일화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래 행동은 불교식이나 유교식으로 하고, 믿기는 무당 믿듯 하더라도 출석은 교회로 열심히 나가 봅시다"라고 한 남편의 말에 박 권사가 "그래요 빨리 퇴원해서 비빔밥이나 맛있게 해 먹읍시다"라고 응수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한국 교회의 샤머니즘화에 대한 은근한 풍자이면서, 동시에 이를 확대 해석할 때, 일천 번제와 같은 유태교식 행사를 끌어들인 기독교의 비빔밥식 신앙을 신랄하게 비판한 풍자라고도 볼 수 있겠다.
- 작품 해설 중에서
* 임영천 -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조선대학교(국문학과) 명예교수. (사)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장. 평론집: 《기독교와 문학의 세계》, 《땅의 문학과 하늘의 문학》, 《기독교 역사 소설의 이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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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활을 좀 해온 교인이라면 이것이 픽션이 아니고 사실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내용임을 알아챌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기도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전적으로 동감했기 때문이다.
본서는 각 편마다 꼬리 부분에서 전갈처럼 한 방씩 침을 놓는다. 이 부분이 일품이다. 한심한 교회 현실을 너무도 재미있게 써서 부담 없이 읽었는데 꼬리 부분에 가서 갑자기 전갈의 공격 침이 꽂힌다. 그래서 웃었던 일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화들짝 깨닫는다. 전갈의 침은 독침이다. 그러나 여기 실린 각 단편의 꼬리침은 약침이다.
- 플로리다 올랜도 새길교회 이중수 목사
목차
목차
급매물 교회
지옥 이야기
낙원 이야기
암 덩어리
2부 목사
목갈치 교회의 목사
임종예배
제사장과의 대화
한 마리 양
3부 교인
장로 노이로제
외계인 전도
새벽기도
말썽 많은 며느리
방언 기도와 아멘
4부 그리고 나
넘을 수 없는 벽
기도 응답
구원의 소나기
겉사람과 속사람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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