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약속과 골고다의 새(양장본 HardCover)
정랑 엄창섭 시선집
정랑 엄창섭 시선집 『눈부신 약속과 골고다의 새』. 엄창섭 교수의 정년에 붙여 그동안 그가 발표한 시를 전집으로 묶어낸 책이다. 정랑 엄창섭 교수의 약력을 소개하고, 그의 시를 총 3부로 나눠 수록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격랑에 부딪낀", "피곤한 일상의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와 이젠 "안식의 닻을 내리"며 긴 휴식의 시간을 가지는 엄창섭 시인의 작품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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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끊임 없이 격랑에 부딪낀
피곤한 내 일상의 향해는
안식의 닻을 내리고
엄 교수는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와 창작생활을 거듭하고 한편으로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 오더니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맞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그의 시 <세월>에서처럼 그동안 "끊임없이 격랑에 부딪낀", "피곤한 일상의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와 이젠 "안식의 닻을 내리"며 긴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될 때가 된듯하다.
그 동안 엄교수는 1968년의 『비탈』을 비롯해서 『바다와 해』,『땅에 쓴 장시』,『눈부신 약속』,『생명의 나무』등 9권의 시집을 남겨 왔다. 문단생활 40여년 동안 참으로 하루도 쉼이 없는 "피곤한 내 일상의 항해"를 그렇게 거듭하며 한국시단에 큰 업적을 남겨 온 것이다. 시집은 이밖에도 다른 분들과 함께 엮은 공동시집도 많고 아직 시집에 묶이지 않은 작품들도 많다.
엄 교수는 그 동안 시집만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학문적 연구서와 함께 평론가로서의 비평적 저서들을 남겼다. 『김동명 연구』,『문예사조의 이론과 실제』,『현대시의 현상과 존재론적 해석』 그리고 후반기에는 심연수 시인의 업적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중후한 연구서로 저술해내며 그 작업은 무한궤도를 달리듯 한도 끝도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는 그를 따르는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키우고 인재를 온 나라에 심어왔다. 또 그는 고교 국어교사에서부터 시작하여 학문적 연구와 지식인 양성의 최고 학부인 대학에서 최고의 행정직을 맡으며 이 나라 지식인으로서의 최고의 지도적 역할을 해 나갔으며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 시문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문단을 이끌며 한국시문학 발전을 위한 혁혁한 공로를 남겨 왔다.
이렇게 그가 시인으로서 교수로서 남겨 온 모든 업적은 <생명의 나무>로 우거진 숲처럼 이 땅을 살아 숨쉬게 하고, 경포대 앞바다의 아침풍경처럼 기쁨과 용기와 축복이 넘치는 <바다와 해>의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들 마음속에 그리며 살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 김우종(평론가, 전 한국평론가협회 회장), 축사 <순수의 긴 항해와 아름다운 재출발> 중에서
아직도 정정해 보이고 패기가 흘러넘치는 엄창섭 교수가 어느덧 정년을 맞게 되었다고 하니, 어쩐지 섭섭한 마음 한편으로는 소임을 다하고 명예롭게 물러서는 그에게, 나 또한 시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속 깊은 축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찍이 관동대를 나와 경희대와 성균관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회귀본능이라고나 할까 모교에서 후진을 앙성하는 데 평생을 보내는 동안, 교무처장,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대학원장,그리고 총장 직무대행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관동대학교로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던 셈이다.
77년에 이원섭, 문덕수 두 시인의 추천으로 월간《시문학》으로 등단한 엄 시인은 오늘에 이르도록, 수많은 시집과 논문집을 간행, 강릉과 서울을 바쁘게 오르내리면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지속해 온, 강릉의 보배요 관동대학교의 자랑이라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한 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시절, 나는 그러한 그에게 이사(理事)로 선임한 일로 인연이 닿았고, 특히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이곳 강원도 평창으로 옮겨온 후로는, 같은 강원도민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더 더욱 엄 교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부단한 학문탐구와 학자로서의 소임을 누구보다도 충실히 이루워냈기 때문이다.
- 김시철(시인, 전 국제팬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축사 <문학에서만은 정년이 없으시기를> 중에서
1980년 2월 하순, 나는 관동대 교수연구실에서 엄창섭 교수님과 첫 인사를 나누며, 청솔 위에 앉은 '한 마리의 학'을 보았습니다. 그때 만난 엄 교수님의 인상은 나에게 학과 같은 고결한 선비의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나는 엄창섭 교수님과 같은 연구실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엄 교수님은 오로지 가르치고 창작하는 일에만 열정을 쏟는 이 나라의 존경받는 교육자로 우뚝 서 계셨습니다. 항상 올곧게 나아가시는 '부드러우면서도 꼿꼿한 선비', 엄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엄창접 교수님은 그러한 나의 첫 인상을 깨뜨리지 않고, 대학의 강단에서 3백여 편의 우수한 논문과 20여 권의 저서, 13권의 시집을 남기셨습니다. 강의와 연구, 시 창작에서 큰 성과를 보여주신 교수님은 교무처장, 사범대학장, 대학원장, 총장직무대행 등 대학의 중요보직을 맡아 성실한 업무처리로 관동대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학사행정가로서도 존경받으셨습니다.
한편 엄 교수님은 한국문단의 중진으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상의 깊이와 신의 소리를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언어감각으로 형상화한 교수님의 시는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믿습니다.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엄 교수님을 무척 따랐습니다. 국어교육학과 제자들과 자주 만나서 시 한편 한편을 세심하게 지도하여, 문단진출의 길을 열어주신 엄 교수님의 제자 사랑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뒷날 《문예중앙》·《창작과 비평》·《심상》·《문학정신》등의 문학지와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하여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박세현 · 강세환 · 박용재 · 염상국 · 박수찬 · 박명희 시인 등이 그때 엄 교수님이 지도한 학생들입니다.
특정한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적일 수 있습니다. 관동대학교에 같은 날 함께 부임하여 한 연구실에서 근무한 것은 매우 소중한 인연입니다. 30년간 교수, 문인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기독교 장로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것도 역시 끊어질 수 없는 운명의 끈입니다.
관동대학교에 첫 부임할 때 만난 엄 교수님은 3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벌써 정년퇴임을 하신다니 세월이 무척 빠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 장윤익(문학평론가, 전 인천대·경주대 총장), 賀書 <청솔 위에 앉은 학> 중에서
봄날 아침, 하서(賀書)의 울림만큼이나 낯설고 급하게, 나는 정랑 엄창섭 교수님 정년 소식의 수신자가 되었다. 무디게 살아진 세월의 물살이 왈칵 내게로 넘쳐흐른다. 시선집 간행위에서는 내게 하서(賀書)를 청탁했다. 시선집과 퇴임, 그것은 각각의 완결태다. 삶이 지나온 그 부분을 더 이상 손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창섭 선생님으로부터 내게 밀려온 첫 밀물은 강릉고등학교 국어교실에서 시를 가르치시던 모습이다. 그 장면이 세월 타지 않고 붙박인 내 기억의 고정점이다. 수업의 세부는 망실되었으나 수업을 지탱했던 배경만은 꿈 조각처럼 생생하고 다정하다. 이를테면 젊은 학도들에게 문학이 존재한다는 풍문을 누설하는 전도의 풍경이 그것이다.
1968년 아련한 그 사춘의 봄, 중고생으로 구성된 시동인지《한여울》의 멤버였고 김소월, 한용운으로 이어지는 근대시인들의 시를 필사하던 내 눈앞에 등장한 청년시인의 상징성은 곧 그것이자 그것을 넘어서는 매혹이었다. 선생님의 상징적 원죄는 문학을 가르쳤다는데 있지 않고 영문 모르는 까까머리 제자들의 환상 공간에 문학의 피를 뿌렀다는 데 있다.
선생님께서 주도하신 것으로 알려진 동인지《지평선》을 한 번도 알현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책은 내 상상 속에 소장된 문학의 원형으로 존중되고 있다. 그런 터무니 없는 허영이 내 또래 문청들에게 문학적 지평을 소유하게 만든 헛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문학적 기억은 너무 오랜 간극이어서 어쩌면 원본과 다를 수도 있다.
관동대 국어교육과 시절의 장면은 또 다른 맛이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전반기까지 내곡동을 스쳤던 문학적 온도는 지금도 미열로 남아 있다. 국어교육과는 가슴에 문학을 품은 청춘들로 붐볐고 그들에 의해 내곡동 캠퍼스에 문학의 풋풋한 진정성이 전시되는 시절을 맞았다. 관동대 국어교육과의 체온이 가히 기록적으로 덥고 습했던 연대다.
내곡동에 불시착한 헐벗고 외로웠던 새터민 같았던 문청들은 정신의 한 줌 온기가 그리웠을 것이다. 가고 없는 시절이지만, 가쁜 그 젊은날의 떨림과 쓰림이 엄창섭 교수님의 응시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긴 인연의 물결이요 물살의 반짝임이다. 한 사람의 생은 몇글자로 요약되지 않고 그렇게 축약될 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 박세현(시인, 상지영서대 교수), 賀書 <속 들 넓은 전집
잠시 분망하게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면 덧없이 흘려버린강물과 같은 세월이었지만, 이름 모를 낯선 항구에 조용히 닻을 내릴 시간이 이마를 섬뜩하게 합니다. 나름대로 소박한 지론이라면 아침 식탁에서 접하는 자잘한 사유의 편린들이 따뜻한 감성으로 살아나 일상의 감동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물음표로 사는 삶이 역사를 변화·발전시키지만, 주위 정황이 각박하고 힘겨울수록 느낌표로 사는 지혜를 내 자신 겸허하게 절감할 때, 비로소 대니엘 고들립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조카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네모나게 태어나서 둥글게 죽는다."라는 교시적 의미를 새삼 되뇌이게 됩니다.
엘렌 워츠의 "원을 그려 놓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원이라고 대답한다. 벽에 뚫린 구멍이라 답하지 않는다. 바깥보다 안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지적을 다시금 공씹으며 사적인 견해이지만, 오랜 날 나름대로 언어공해의 심각성과 모국어의 속살과 항변을 통한 보다 느림의 시학이라는 차원에서 삶의 잠언을 부단히 일깨워 왔습니다. 가끔은 인어에 대한 분별력을 지니며 "승려와 시인이 살이 찐다는 것은 그 시대가 불행한 것을 의미한다."는 세계고의 교시로 가슴앓이도 종종 하였습니다.
소중한 일상의 삶에서 감동을 회복하는 행위는 비정한 우리의 사회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인자가 되기에, 거듭 태어나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눈물겹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닭에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감동을 회복하여 상처 받은 영혼을 밝게 치유하는 감미로운 감성을 통해 삶의 활력이 되는 다이돌핀을 무리 없이 쏟아내는 데 열중해야 할 것입니다.
?프 왈도 에머슨의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 일이다."라는 경계는 우리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에, 시대를 앞서 숨져간 이들이 그토록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만 더 살았으면..." 하던 그 끝자락의 시간 앞에서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 앞에 자신을 놓아보면 가슴 저며 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아울러 지금껏 내 주위에 맴돌며 운명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실로 고맙고 감사한 분-이 땅의 시문학과 좋은 신앙의 멘토(mentor)이신 이성교 장로님, 나의 학문과 정신적 큰 스승이신 김우종 교수님, 강원도 문인들의 자긍심을 새삼 일깨워주신 김시철 전 국제팬클럽한국본부 이사장님, 문학과 학문의 인연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게 하신 장윤익 전 인천대학교 총장님, 지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함께 열어가는 박세현 교수님, 특히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예술의 혼이 각인된 소중한 작품을 축화로 도움을 주신 김동호, 김형대, 노주환, 신종섭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아울러 살아온 날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면서 자존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현실에 충실하며, 비록 힘겨울지라도 영혼을 치유하는 정신작업을 포기하지 아니 할 것입니다.
특히 언어에 대한 분별력이나 배려 없이 금속성이며 파괴적이고 동물적인 언어를 자정 없이 쏟아내는 무모함은 경계하며, 보다 식물성인 푸르고도 생명적인 언어사용에 힘쓰고 열중할 것입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꿈이며, 현재는 선물'이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울러 나약한 패배주의에 발목이 잡혀 매사를 부정하지 아니하고, 지금껏 부족한 저를 위해 도움올 주고 기도하여주신 고마운 분들에 대한 소박한 관심과 애정의 보답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더 생명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뜨거운 가슴과 긍정적 사고로 실천궁행할 것을 다짐할 뿐입니다.
끝으로 청송의 캠퍼스에서 각별한 애정으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하는 이충우 교수님, 이렇게 부족한 사람의 시선집이 땅 끝 모퉁이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어려움을 담당하여준 이진모, 유지연 박사와 「亞松」출판사의 송병훈 발행인님께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엄창섭, 自敍 <삶의 일상과 감동의 회복> 중에서
시인 정랑 엄창섭 교수님께서 교수직 정년을 맞으셨다. 정년이란 제도상으로 정해진 것일 뿐이지 엄 교수님께서 이제까지 하시던 일을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정지하는 停年이 아니라 제도상으로 定해진 定年일 뿐이다.
고요한 물결마냥 조용한 성품을 지니시고 동안인 엄창섭 교수님이 만 65세가 되어 정년을 맞아 퇴임하신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항상 밝게 웃으시며 학생들로부터 사회 저명인사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와도 겸손하고 따스한 교류를 유지하시는 엄창섭 교수님은 시인으로, 문학 교수로, 사회 지도 인사로 활동하셨으며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기독교 장로로도 활동하셨다.
교수님께서 비록 정년을 맞이하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꾸준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리라 믿으며, 교수님에 대한 추억은 교수님을 아는 모두의 가슴속 깊이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우리 제자들은 교수님께서 학교를 떠나셔야한다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고심하던 중 교수님께서 그간 발표하신 시를 전집으로 묶기로 하였다. 우리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시의 양이 적지 않음에 놀라고, 이루신 업적의 많음에 다시 놀랐다. 강의에, 학교 보직에, 예술 단체 활동에, 문학 강연과 창작까지 다방면에 걸쳐 이루신 업적은 한 분야만 하려해도 일반인에겐 불가능할 만큼 많은 업적이고 훌륭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위하여 원고 정리 및 출판에 대한 노고를 아끼지 않은 출판 준비위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특히 이진모 박사와 유지연 박사에게 깊이 감사한다.
- 이충우(정랑 엄창섭 교수 시선집 간행위원장,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간행사 <시선집을 엮으며>
목차
목차
축화 | 김동호 노주환 신종섭
축시 | 이성교
축사 | 김우종 김시철
하서 | 장윤익 박세현
自敍 | 엄창섭
刊行辭 | 이충우
정랑 엄창섭 교수 약력
제1부 | 내적 충만과 정신풍경
제2부 | 젊은 날의 초상과 예감의 새
제3부 | 천상을 향한 시학과 소통
찾아보기(제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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