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사서학(동아시아한국학 번역총서 2)(양장본 HardCover)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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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진, 일본의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와 비교하며 집대성한 역작!
다산학의 중요한 개척자로 알려진 대만학자 차이전펑 교수의 『다산의 사서학』.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수많은 1차 사료를 분석하여 다산 정약용 사서학의 전체적인 이론구조와 해석 방법을 집대성한 책이다. 동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해 다산의 사서 해석을 대진 등의 중국학자의 연구와 비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고학파의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의 해석과도 대조하여 다산의 사서해석의 특출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론적 차원에서 다산의 사서학과 주자학, 일본 고학파와의 차이를 밝힌다. 또 다산의 서학에 대한 수용, 다산학 가운데 근대 의식 및 조선중화주의에 대해서도 실증하고 있다.
다산학의 중요한 개척자로 알려진 대만학자 차이전펑 교수의 『다산의 사서학』.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수많은 1차 사료를 분석하여 다산 정약용 사서학의 전체적인 이론구조와 해석 방법을 집대성한 책이다. 동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해 다산의 사서 해석을 대진 등의 중국학자의 연구와 비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고학파의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의 해석과도 대조하여 다산의 사서해석의 특출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론적 차원에서 다산의 사서학과 주자학, 일본 고학파와의 차이를 밝힌다. 또 다산의 서학에 대한 수용, 다산학 가운데 근대 의식 및 조선중화주의에 대해서도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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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다산 정약용의 사서학은
'기학 또는 반주자학'이 아닌 '포스트-주자학'이다
중국의 대진, 일본의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와 비교하며 집대성한 역작
이 책은 다산학의 중요한 개척자로 알려진 대만학자 차이전펑(蔡振?, 국립대만대) 교수가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수많은 1차 사료를 분석하여 다산 정약용(1762~1836) 사서학의 전체적인 이론구조와 해석 방법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산학의 면모를 동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학자들이 착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진(1724~1777) 등의 중국학자와 일본 고학파 이토 진사이(1627~1705), 오규 소라이(1666~1728)의 사서 해석과 대조하여 다산 정약용 사서학의 특출한 점을 부각시킨 것이 압권이다.
동아시아에서 주자(1130~1200)의 사서 체제는 유학의 권위를 재건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지식인의 기본적인 교양이 되었다. 하지만 명·청 교체를 경계로 전환을 맞이한 주자학은 17세기 이후 점차 그 지위가 흔들리며 중국과 일본, 조선의 많은 학자들에게 비판 대상이 되었다. 정약용의 사서학도 이전에는 반(反)주자학 진영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차이전펑의 연구에 따르면, 다산은 비록 주자의 '이-기' 구조를 반대했지만 주자의 '인심-도심' 구분은 반대하지 않았고, 사서의 지위에 대해서도 주자의 견해를 따랐다. 따라서 다산의 사서학은 '기학氣學' 혹은 '반주자학'으로 분류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 '포스트-주자학'의 대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책은 이론적 차원에서 다산의 사서학과 주자학, 일본 고학파와의 차이를 밝힌다. 또한 다산의 서학에 대한 수용, 다산학 가운데 근대 의식 및 조선중화주의에 대해서도 실증하고 있다.
"일본의 유학은 근거도 없이 방자했다"
조선 후기 유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다산의 사서에 관한 저술은 20대 중반 때 『중용강의』와 『대학강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사서를 주해한 것은 강진 유배기간(1801~1818)이었다. 유배 12년째인 1813년에 당시 52세의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저술하였고, 그 다음해부터 차례로『맹자요의』 『중용자잠』『중용강의보』『대학공의』를 썼다. 정약용의 사서학은 경학의 원류를 두루 섭렵한 후 저술한 인생 성숙기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주희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사서(四書)로 칭하고 사서를 해설한『사서장구집주』를 저술하여 주자학을 성립하였듯이 다산도 사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사서학에 대한 다산의 자신감은 중국과 일본의 학술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1764년 전후 조선은 통신사를 통하여 일본 '고학파'의 발전 상황을 알게 되었다. 다산도 처음에는 저서 『일본론』에서 그들의 유학을 칭송하며 "일본은 걱정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강진 유배 시기 사서 주해를 진행한 끝에 다산은 일본 유학에 대해 "어그러지고 약삭빠르다, 방자하다."고 비평하며 일본의 유학자가 하는 것은 '정학(正學)'이 아니며 그 결과 "경전을 더럽혔다."고 지적한다.
정약용의 일본 유학에 대한 정면 비판은 오규 소라이와 다자이 준의 '우민론(愚民論)'에 대한 반박을 예로 볼 수 있다. 논어 주석에서 소라이는 "백성은 우매한 것이다."라 말한 바 있고 무사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자이 준은 "만약 천하 사람이 모두 배워 군자가 되면 천하에는 백성이 없을 것이다"며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정약용은 이런 사상에 찬동할 수 없었다. 정약용이 보기에 공맹의 도는 "사람을 가려서 가르치지 않았고, 지극히 공적이고 사심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교화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백성에게 예악을 안 가르치고 왕권을 수호하려고 한다면 나라는 망할 것이고, 진(秦)의 멸망이 바로 좋은 예라고 정약용은 지적한다.
"정약용의 『중용』 해석은 『맹자』의 '성선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성기호설'을 세웠지만 그의 이론 유형은 기본적으로 맹자의 심성론과 같다. 그와 일본 고학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맹자의 심성론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다. 정약용과 일본 고학파는 예악형정과 육경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도덕적 주체성 혹은 성선설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위정자와 하민(下民)의 관계를 논할 때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하게 되었다. 정약용은 일본 고학파의 다자이 준과 오규 소라이의 우민 경향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의 『대학』 해석에서는 군주는 자수(自修) 및 신교(身敎)로 백성을 이끌어야지 백성에게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본문 373쪽
다산의 사서학은 조선 중화주의의 결과, 서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정약용이 당시 사상계의 신흥세력이었던 일본 고학파의 사서 주해를 비판한 배경은 무엇인가? 저자는 17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탈중심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명'의 멸망 이후 일본과 조선에는 중국 중심의 화이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싹트고 있었다. 일본은 '일본형 화이 의식'을 기초로 하여 스스로 '화'라고 자칭하였던 반면, 조선은 중화 문명의 승계자로 자임하여 소위 '조선 중화주의'가 나타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전개 과정을 보면 '사서 해석'과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학파가 '탈주자학'의 발전을 보였다면, 정약용의 사서학은 주자학을 수정하여 조선 중화주의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산의 사서학이 일본의 고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간 학계의 통설을 반박하는 것으로, 오히려 일본의 고학파를 상대로 진정한 고학의 깊이를 보여준 것으로 저자는 본다.
한편 이 책은 정약용이 흔히 서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산 사서학의 기본은 천주교 교리와 거리가 멀다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반박한다. 17세기 이후 서학이 전래되면서 동아시아 학자들이 기독교 문화를 접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경전을 해석할 때 간혹 서학 혹은 서교(西敎)의 사상이 나타난다. 다산은 천주교를 받아들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저술에서 나타난 '천(天)', '상제(上帝)' 개념은 천주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이것은 한국 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다산의 이론 중에서 가장 높은 관념은 '상제'가 아니라 심성을 가진 주체성으로,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덕성의 수양에 따른 결과이며 결코 수양의 전제나 기초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다산의 이론은 '심성론'적 체계에 가까우며, 서학의 형이상학 체계와는 구별된다고 한다.
차이전펑 교수는 이 책에서 다산 사서학의 이론 체계와 원본 텍스트를 분석한 후 다산의 사서학은 수사학(洙泗學)에 가깝고 천주교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이 결론은 다산의 사상 중 서학의 역할을 규명하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의 말
다산 정약용의 유학적 견해는 조선 한 국가만의 유학으로 보면 안 되고 동아시아적 시각을 갖춘 중요한 학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약용의 유학 저술은 유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이 서양 문명을 어떻게 상대했는가를 탐구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옮긴이의 말- 김호
다산은 도덕성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산에게 '인(仁)'이란, 홀로 지식을 익히고 수양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직접 행했을 때에야 비로소 도덕성으로서의 '인'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기학 또는 반주자학'이 아닌 '포스트-주자학'이다
중국의 대진, 일본의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와 비교하며 집대성한 역작
이 책은 다산학의 중요한 개척자로 알려진 대만학자 차이전펑(蔡振?, 국립대만대) 교수가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수많은 1차 사료를 분석하여 다산 정약용(1762~1836) 사서학의 전체적인 이론구조와 해석 방법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산학의 면모를 동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학자들이 착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진(1724~1777) 등의 중국학자와 일본 고학파 이토 진사이(1627~1705), 오규 소라이(1666~1728)의 사서 해석과 대조하여 다산 정약용 사서학의 특출한 점을 부각시킨 것이 압권이다.
동아시아에서 주자(1130~1200)의 사서 체제는 유학의 권위를 재건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지식인의 기본적인 교양이 되었다. 하지만 명·청 교체를 경계로 전환을 맞이한 주자학은 17세기 이후 점차 그 지위가 흔들리며 중국과 일본, 조선의 많은 학자들에게 비판 대상이 되었다. 정약용의 사서학도 이전에는 반(反)주자학 진영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차이전펑의 연구에 따르면, 다산은 비록 주자의 '이-기' 구조를 반대했지만 주자의 '인심-도심' 구분은 반대하지 않았고, 사서의 지위에 대해서도 주자의 견해를 따랐다. 따라서 다산의 사서학은 '기학氣學' 혹은 '반주자학'으로 분류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 '포스트-주자학'의 대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책은 이론적 차원에서 다산의 사서학과 주자학, 일본 고학파와의 차이를 밝힌다. 또한 다산의 서학에 대한 수용, 다산학 가운데 근대 의식 및 조선중화주의에 대해서도 실증하고 있다.
"일본의 유학은 근거도 없이 방자했다"
조선 후기 유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다산의 사서에 관한 저술은 20대 중반 때 『중용강의』와 『대학강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사서를 주해한 것은 강진 유배기간(1801~1818)이었다. 유배 12년째인 1813년에 당시 52세의 다산은 『논어고금주』를 저술하였고, 그 다음해부터 차례로『맹자요의』 『중용자잠』『중용강의보』『대학공의』를 썼다. 정약용의 사서학은 경학의 원류를 두루 섭렵한 후 저술한 인생 성숙기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주희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사서(四書)로 칭하고 사서를 해설한『사서장구집주』를 저술하여 주자학을 성립하였듯이 다산도 사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사서학에 대한 다산의 자신감은 중국과 일본의 학술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1764년 전후 조선은 통신사를 통하여 일본 '고학파'의 발전 상황을 알게 되었다. 다산도 처음에는 저서 『일본론』에서 그들의 유학을 칭송하며 "일본은 걱정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강진 유배 시기 사서 주해를 진행한 끝에 다산은 일본 유학에 대해 "어그러지고 약삭빠르다, 방자하다."고 비평하며 일본의 유학자가 하는 것은 '정학(正學)'이 아니며 그 결과 "경전을 더럽혔다."고 지적한다.
정약용의 일본 유학에 대한 정면 비판은 오규 소라이와 다자이 준의 '우민론(愚民論)'에 대한 반박을 예로 볼 수 있다. 논어 주석에서 소라이는 "백성은 우매한 것이다."라 말한 바 있고 무사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자이 준은 "만약 천하 사람이 모두 배워 군자가 되면 천하에는 백성이 없을 것이다"며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정약용은 이런 사상에 찬동할 수 없었다. 정약용이 보기에 공맹의 도는 "사람을 가려서 가르치지 않았고, 지극히 공적이고 사심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교화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백성에게 예악을 안 가르치고 왕권을 수호하려고 한다면 나라는 망할 것이고, 진(秦)의 멸망이 바로 좋은 예라고 정약용은 지적한다.
"정약용의 『중용』 해석은 『맹자』의 '성선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성기호설'을 세웠지만 그의 이론 유형은 기본적으로 맹자의 심성론과 같다. 그와 일본 고학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맹자의 심성론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다. 정약용과 일본 고학파는 예악형정과 육경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도덕적 주체성 혹은 성선설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위정자와 하민(下民)의 관계를 논할 때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하게 되었다. 정약용은 일본 고학파의 다자이 준과 오규 소라이의 우민 경향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의 『대학』 해석에서는 군주는 자수(自修) 및 신교(身敎)로 백성을 이끌어야지 백성에게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본문 373쪽
다산의 사서학은 조선 중화주의의 결과, 서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정약용이 당시 사상계의 신흥세력이었던 일본 고학파의 사서 주해를 비판한 배경은 무엇인가? 저자는 17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탈중심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명'의 멸망 이후 일본과 조선에는 중국 중심의 화이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싹트고 있었다. 일본은 '일본형 화이 의식'을 기초로 하여 스스로 '화'라고 자칭하였던 반면, 조선은 중화 문명의 승계자로 자임하여 소위 '조선 중화주의'가 나타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전개 과정을 보면 '사서 해석'과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학파가 '탈주자학'의 발전을 보였다면, 정약용의 사서학은 주자학을 수정하여 조선 중화주의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산의 사서학이 일본의 고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간 학계의 통설을 반박하는 것으로, 오히려 일본의 고학파를 상대로 진정한 고학의 깊이를 보여준 것으로 저자는 본다.
한편 이 책은 정약용이 흔히 서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산 사서학의 기본은 천주교 교리와 거리가 멀다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반박한다. 17세기 이후 서학이 전래되면서 동아시아 학자들이 기독교 문화를 접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경전을 해석할 때 간혹 서학 혹은 서교(西敎)의 사상이 나타난다. 다산은 천주교를 받아들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저술에서 나타난 '천(天)', '상제(上帝)' 개념은 천주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이것은 한국 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다산의 이론 중에서 가장 높은 관념은 '상제'가 아니라 심성을 가진 주체성으로,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덕성의 수양에 따른 결과이며 결코 수양의 전제나 기초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다산의 이론은 '심성론'적 체계에 가까우며, 서학의 형이상학 체계와는 구별된다고 한다.
차이전펑 교수는 이 책에서 다산 사서학의 이론 체계와 원본 텍스트를 분석한 후 다산의 사서학은 수사학(洙泗學)에 가깝고 천주교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이 결론은 다산의 사상 중 서학의 역할을 규명하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의 말
다산 정약용의 유학적 견해는 조선 한 국가만의 유학으로 보면 안 되고 동아시아적 시각을 갖춘 중요한 학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약용의 유학 저술은 유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이 서양 문명을 어떻게 상대했는가를 탐구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옮긴이의 말- 김호
다산은 도덕성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산에게 '인(仁)'이란, 홀로 지식을 익히고 수양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직접 행했을 때에야 비로소 도덕성으로서의 '인'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추천의 글
1장 문제와 방법
1. 사서학의 방법 개념
2. 시대의 전환과 주희 사서학의 변화
3. 동아시아 학술에서 정약용의 의미
2장 주희와 정약용, 사서 해석의 차이
1. 주해의 내용과 해석의 방향
2. 『논어』의 관중에 대한 평가
3. 의리 지향과 의의 지향의 해석 체계
4. 사서의 텍스트 구조 내에 포함된 두 가지 해석 체계
3장 정약용의 인성론과 수사학, 주자학 및 서학의 차이
1. 정약용의 입장에 대한 두 가지 견해
2. 정약용 성기호설의 연원과 특색
3. 정약용의 심성론과 상제에 대한 이해
4. 정약용 사서학 중 성삼품설의 이론적 위치
5. 맹자의 심성론으로 회귀하는 정약용의 인성론
4장 정약용의 사서 해석 중 '인, 심, 성, 천'의 이론적 의미
1. 공자의 인학설에 들어 있는 중요한 개념들
2. 정약용의 인학설 중 '상호 주체'의 동태적?정태적 측면
3. 주체성에서 상호 주체성으로, 기호의 '성'과 인을 할 수 있는 '이'
4. '성, 도, 교'의 해석 구조하의 '천인' 관계와 정약용 사상 중 '천'의 이론적 지위
5. 인학설과 사천철의 주체성, 상호 주체성 그리고 초월성에 대한 탐구
5장 주체성과 상호 주체성의 전개, 정약용의 문질론
1. '예악형정'을 중심으로 하는 유학 해석과 정약용의 논술 경향
2. '문질' 문제에 대한 조선 학자의 세 가지 해석 경향
3. 성호 이익의 '충, 질, 문'에 대한 고찰과 그 영향
4. 정약용의 문질론
5. 정약용의 문질론의 가치
6장 정약용 『중용』 해석의 특색, 일본 고학파와의 비교
1. 『중용』에 대한 질의와 위치 설정
2. 일본 고학파의 『중용』에 대한 해석
3.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중용』 해석의 사상사적 의미
4. 비교의 관점에서 본 정약용의 『중용』 해석
5. 정약용과 일본 고학파의 해석상의 차이
6. 정약용의 일본 고학파에 대한 태도
7장 정약용의 『대학』 해석과 사서학 구조
1. 『대학』의 가치와 일본 고학파의 견해
2. 정약용의 『대학』 해석
3. 정약용의 『대학』 해석으로 본 『사서』 해석 구조
4. 정약용ㅇ의 사서학에 대한 전체적 구상
8장 결론
1. 정약용 사서학의 출현이 지닌 의미
2. 정약용의 사서학은 '포스트 주자학'이다
3. 정약용의 사서학의 조선 중화주의와 근대 의식
옮긴이 후기
참고 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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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문제와 방법
1. 사서학의 방법 개념
2. 시대의 전환과 주희 사서학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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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주희와 정약용, 사서 해석의 차이
1. 주해의 내용과 해석의 방향
2. 『논어』의 관중에 대한 평가
3. 의리 지향과 의의 지향의 해석 체계
4. 사서의 텍스트 구조 내에 포함된 두 가지 해석 체계
3장 정약용의 인성론과 수사학, 주자학 및 서학의 차이
1. 정약용의 입장에 대한 두 가지 견해
2. 정약용 성기호설의 연원과 특색
3. 정약용의 심성론과 상제에 대한 이해
4. 정약용 사서학 중 성삼품설의 이론적 위치
5. 맹자의 심성론으로 회귀하는 정약용의 인성론
4장 정약용의 사서 해석 중 '인, 심, 성, 천'의 이론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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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약용의 인학설 중 '상호 주체'의 동태적?정태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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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학설과 사천철의 주체성, 상호 주체성 그리고 초월성에 대한 탐구
5장 주체성과 상호 주체성의 전개, 정약용의 문질론
1. '예악형정'을 중심으로 하는 유학 해석과 정약용의 논술 경향
2. '문질' 문제에 대한 조선 학자의 세 가지 해석 경향
3. 성호 이익의 '충, 질, 문'에 대한 고찰과 그 영향
4. 정약용의 문질론
5. 정약용의 문질론의 가치
6장 정약용 『중용』 해석의 특색, 일본 고학파와의 비교
1. 『중용』에 대한 질의와 위치 설정
2. 일본 고학파의 『중용』에 대한 해석
3.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중용』 해석의 사상사적 의미
4. 비교의 관점에서 본 정약용의 『중용』 해석
5. 정약용과 일본 고학파의 해석상의 차이
6. 정약용의 일본 고학파에 대한 태도
7장 정약용의 『대학』 해석과 사서학 구조
1. 『대학』의 가치와 일본 고학파의 견해
2. 정약용의 『대학』 해석
3. 정약용의 『대학』 해석으로 본 『사서』 해석 구조
4. 정약용ㅇ의 사서학에 대한 전체적 구상
8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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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약용의 사서학은 '포스트 주자학'이다
3. 정약용의 사서학의 조선 중화주의와 근대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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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차이전펑
저자 차이전펑蔡振?은 1962년에 태어나 국립대만대학교 중국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대만대학교 중국문학과 교수 겸 동대학 인문사회고등연구원 특약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중국철학사, 유불도 3교의 사상 및 동아시아 유학이 주된 연구 분야이다. 2004년 이후 다산 정약용의 창조적인 유학 해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다산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중국학자로서 다산학의 중요한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王弼的言意理論與玄學方法』, 『魏晉名士與玄淸談』, 『魏晉佛學格義問題的考察 : 以道安爲中心的硏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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