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Regular price
$22.47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기존의 질서구조와 주체 형태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는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저서로, 그는 이 책에서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포스트 담론’이란 프랑스의 구조주의ㆍ포스트구조주의, 혹은 이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각종 담론을 총칭하는 말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이 비판만 해왔지 극복 방법은 사유할 수 없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라고 일축하며, 그들의 권력 이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이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따라서 이 네 사상사가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저항의 이론가’였음을 입증한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는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저서로, 그는 이 책에서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포스트 담론’이란 프랑스의 구조주의ㆍ포스트구조주의, 혹은 이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각종 담론을 총칭하는 말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이 비판만 해왔지 극복 방법은 사유할 수 없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라고 일축하며, 그들의 권력 이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이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따라서 이 네 사상사가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저항의 이론가’였음을 입증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l 권력이 만들어낸 주체는 과연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가? l
요시유키 덕분에 우리는 '저항'이 확실히 문제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물음을 제기하기 위해 이토록 멀리서, 그
렇지만 이토록 가까이서 요시유키가 우리에게 다가온 데 감사드린다. (에티엔 발리바르 l 파리10대학교 명예교수).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포스트 담론'이란 프랑스의 구조주의ㆍ포스트구조주의, 혹은 이 조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각종 담론을 총칭하는 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던 와중에 소개된 이 '포스트 담론'은 그동안 국내 진보 학자들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추상적인 이론적 유희에 머물러 실천적 무능함을 조장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포스트 담론'의 공과를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라는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앝튀세르 는 바로 이런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을 비판만 해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요시유키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의 권력 이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는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이들의 이론에 근거해, 이들의 이론 안에서 분석한다. 이런 '내재적'방식으로 요시유키는 (포스트)구조주의, 더 나아가 포스트 담론의 혁명적 성과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즉, 요시유키는 이 네 사상가가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저항의 이론가'였음을 입증한다.
1980년대에 사람들은 잘못된 세상을 바꾸자며 '혁명'을 얘기했다. 그러나 강고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1990년대에 사람들은 이대로 순응할 수는 없다며 '저항'을 얘기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저항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기존의 현실을 바꾸려 했던 많은 사람들을 철저히 체념하게 만들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를 통해 기존의 질서구조와 주체 형태가 일종의 '운명'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하는 권력과 저항 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l 권력에 저항하는 두 가지 전략, 그리고 또 다른 제안 l
권력이 있는 곳, 거기에는 저항이 있다. 그리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재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저항의 지점들은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도처에 현전한다. (미셸 푸코)
흔히 연구자들은 푸코와 알튀세르를 짝짓고, 그 맞은 편에 데리다와 들뢰즈라는 짝을 놓아두곤 했다. '권력'과 '갈등'의 철학자들(푸코-알튀세르)을 '차이'의 철학자들(데리다-들뢰즈)과 대치시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토 요시유키는 권력과 저항 에서 새로운 짝짓기를 주장한다. 푸코와 들뢰즈를 짝짓고, 알튀세르와 데리다를 짝짓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특히 자크 라캉의 사유)의 공과를 냉정히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이 두 짝패가 '대치'의 관계가 아니라 '상보'의 관계임을 읽어낸다.
요컨대 푸코-알튀세르와 데리다-들뢰즈라는 두 짝패는 저항의 두 가지 전략을 대표한다. 한편으로 푸코-들뢰즈는 권력에 의해 특정한 형태(가령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만들어진 기존의 주체가 스스로를 바꿔나갈 수 있는 특이성의 구축을 저항의 전략으로 내세운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르와 데리다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우발성(혹은 '사건')을 통해 권력구조의 변화를 사유하는 저항의 전략을 제시한다.
푸코나 들뢰즈ㆍ가타리에게 저항이란 권력에 의해 '복종하는 주체'가 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 자체를 말한다. 물론 이 둘의 차이점도 있다. 푸코는 '판옵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권력'을 강조한다. 즉, 외부의 힘이 주체를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와 달리 들뢰즈ㆍ가타리는 이미 주체 안에 내면화된 권력을 강조하며, 이처럼 주체에 권력을 내면화시키는 기제를 '오이디푸스적 가족'이라고 부른다. 즉, 오이디푸스적 가족에 속한 주체가 능동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푸코는 저항을 '자기로의 생성변화'(자신만의 특이성을 구축하는 것)로, 들뢰즈ㆍ가타리는 '타자로의 생성변화'(비인칭적 특이성들[즉, '생산하는 욕망'의 흐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바꾸는 것)라고 명명했지만, "저항이란 주체의 양상, 사유와 삶의 양식을 변용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이들은 동일하다.
다른 한편, 알튀세르와 데리다에게 저항이란 (주체 이전에) 구조의 생성변화, 즉 주체를 복종하는 주체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권력장치들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들이 구조를 뒤흔들 우발성=사건을 사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발성=사건은 그냥 오지 않는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정치적 심급과 경제적 심급의 갈등 관계에 주목한다. 두 심급의 모순이 충돌해 구조가 일탈되는 '복합상황,' 국면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데리다는 구조의 '타자'(가령 이방인) 자체에 주목한다. 기존의 구조가 배제한 타자를 그 구조 안에 무제한으로 수용함으로써 구조의 변형을 꾀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증여, 용서, 환대 같은 무저항의 저항을 제안한다. 설령 이런 타자의 '무제한' 진입이 사회에 무질서라는 위험을 가져올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운명적으로' 결정되고, '무시간적으로' 재생산된 구조의 변형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운명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사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시유키도 지적하듯이, 푸코-들뢰즈와 데리다-들뢰즈의 저항 전략은 서로 다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사실 주체를 바꿔야 할지 구조를 바꿔야 할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으로서, 이에 제일 좋은 답변은 당연히 주체와 구조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현재성의 이론 속에서 '동적인 생성'의 가능성을 탐구해야만 한다"라는 요시유키의 제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항에 관한 이 가능한 방향성을 탐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시유키 덕분에 우리는 '저항'이 확실히 문제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물음을 제기하기 위해 이토록 멀리서, 그
렇지만 이토록 가까이서 요시유키가 우리에게 다가온 데 감사드린다. (에티엔 발리바르 l 파리10대학교 명예교수).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포스트 담론'이란 프랑스의 구조주의ㆍ포스트구조주의, 혹은 이 조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각종 담론을 총칭하는 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던 와중에 소개된 이 '포스트 담론'은 그동안 국내 진보 학자들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추상적인 이론적 유희에 머물러 실천적 무능함을 조장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포스트 담론'의 공과를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라는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앝튀세르 는 바로 이런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을 비판만 해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요시유키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의 권력 이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는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이들의 이론에 근거해, 이들의 이론 안에서 분석한다. 이런 '내재적'방식으로 요시유키는 (포스트)구조주의, 더 나아가 포스트 담론의 혁명적 성과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즉, 요시유키는 이 네 사상가가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저항의 이론가'였음을 입증한다.
1980년대에 사람들은 잘못된 세상을 바꾸자며 '혁명'을 얘기했다. 그러나 강고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1990년대에 사람들은 이대로 순응할 수는 없다며 '저항'을 얘기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저항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기존의 현실을 바꾸려 했던 많은 사람들을 철저히 체념하게 만들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를 통해 기존의 질서구조와 주체 형태가 일종의 '운명'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하는 권력과 저항 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l 권력에 저항하는 두 가지 전략, 그리고 또 다른 제안 l
권력이 있는 곳, 거기에는 저항이 있다. 그리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재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저항의 지점들은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도처에 현전한다. (미셸 푸코)
흔히 연구자들은 푸코와 알튀세르를 짝짓고, 그 맞은 편에 데리다와 들뢰즈라는 짝을 놓아두곤 했다. '권력'과 '갈등'의 철학자들(푸코-알튀세르)을 '차이'의 철학자들(데리다-들뢰즈)과 대치시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토 요시유키는 권력과 저항 에서 새로운 짝짓기를 주장한다. 푸코와 들뢰즈를 짝짓고, 알튀세르와 데리다를 짝짓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특히 자크 라캉의 사유)의 공과를 냉정히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이 두 짝패가 '대치'의 관계가 아니라 '상보'의 관계임을 읽어낸다.
요컨대 푸코-알튀세르와 데리다-들뢰즈라는 두 짝패는 저항의 두 가지 전략을 대표한다. 한편으로 푸코-들뢰즈는 권력에 의해 특정한 형태(가령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만들어진 기존의 주체가 스스로를 바꿔나갈 수 있는 특이성의 구축을 저항의 전략으로 내세운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르와 데리다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우발성(혹은 '사건')을 통해 권력구조의 변화를 사유하는 저항의 전략을 제시한다.
푸코나 들뢰즈ㆍ가타리에게 저항이란 권력에 의해 '복종하는 주체'가 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 자체를 말한다. 물론 이 둘의 차이점도 있다. 푸코는 '판옵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권력'을 강조한다. 즉, 외부의 힘이 주체를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와 달리 들뢰즈ㆍ가타리는 이미 주체 안에 내면화된 권력을 강조하며, 이처럼 주체에 권력을 내면화시키는 기제를 '오이디푸스적 가족'이라고 부른다. 즉, 오이디푸스적 가족에 속한 주체가 능동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푸코는 저항을 '자기로의 생성변화'(자신만의 특이성을 구축하는 것)로, 들뢰즈ㆍ가타리는 '타자로의 생성변화'(비인칭적 특이성들[즉, '생산하는 욕망'의 흐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바꾸는 것)라고 명명했지만, "저항이란 주체의 양상, 사유와 삶의 양식을 변용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이들은 동일하다.
다른 한편, 알튀세르와 데리다에게 저항이란 (주체 이전에) 구조의 생성변화, 즉 주체를 복종하는 주체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권력장치들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들이 구조를 뒤흔들 우발성=사건을 사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발성=사건은 그냥 오지 않는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정치적 심급과 경제적 심급의 갈등 관계에 주목한다. 두 심급의 모순이 충돌해 구조가 일탈되는 '복합상황,' 국면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데리다는 구조의 '타자'(가령 이방인) 자체에 주목한다. 기존의 구조가 배제한 타자를 그 구조 안에 무제한으로 수용함으로써 구조의 변형을 꾀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증여, 용서, 환대 같은 무저항의 저항을 제안한다. 설령 이런 타자의 '무제한' 진입이 사회에 무질서라는 위험을 가져올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운명적으로' 결정되고, '무시간적으로' 재생산된 구조의 변형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운명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사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시유키도 지적하듯이, 푸코-들뢰즈와 데리다-들뢰즈의 저항 전략은 서로 다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사실 주체를 바꿔야 할지 구조를 바꿔야 할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으로서, 이에 제일 좋은 답변은 당연히 주체와 구조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현재성의 이론 속에서 '동적인 생성'의 가능성을 탐구해야만 한다"라는 요시유키의 제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항에 관한 이 가능한 방향성을 탐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론
내면화란 무엇인가? l 텍스트의 전개
제1부. 장소론과 경제론
1장. 장소론 I
제1부의 서론 l 경험적-초월론적 이중성 l 니체와 바깥의 사유 l 푸코 권력 이론이 맞닥뜨린 아포리아
2장. 경제론
기관 없는 신체와 죽음의 본능 l 타자로의 생성변화 l 비인칭적 역량
3장. 장소론 II, 또는 이질성의 사유
저항 전략으로서의 생존의 기법 l 윤리의 문제계로의 전회 l 혼은 신체의 감옥이다 l 윤리적 주체화와 특이
성 l 내재성 l 제1부의 결론: 타자로의 생성변화와 자기로의 생성변화
제2부. 구조의 생성변화
4장. 죽음충동, 우발성, 저항
제2부의 서론 l 라캉적 '사물' l 차연의 경제 l 마조히즘의 일차성 l 충동의 우회 l 무저항의 저항은 무엇인
가? l 데리다적 단절
5장. 이데올로기
라캉 이론과의 '단절' l 국지적 이론에서 일반 이론으로 l 담론 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론 l 정신분석 이
론에서 구조변화의 이론으로 l 구조적 인과성과 우발성 l 보론: '거울상적 중심화'에 관하여
6장. 구조
사회구성체의 탈중심화 l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l 구조변동과 우발성 l 제2부의 결론: 우발성, 물질성
결론: 저항이란 무엇인가? l 일본어판 후기 l 해설(에티엔 발리바르) l 옮긴이의 말 l 찾아보기
서론
내면화란 무엇인가? l 텍스트의 전개
제1부. 장소론과 경제론
1장. 장소론 I
제1부의 서론 l 경험적-초월론적 이중성 l 니체와 바깥의 사유 l 푸코 권력 이론이 맞닥뜨린 아포리아
2장. 경제론
기관 없는 신체와 죽음의 본능 l 타자로의 생성변화 l 비인칭적 역량
3장. 장소론 II, 또는 이질성의 사유
저항 전략으로서의 생존의 기법 l 윤리의 문제계로의 전회 l 혼은 신체의 감옥이다 l 윤리적 주체화와 특이
성 l 내재성 l 제1부의 결론: 타자로의 생성변화와 자기로의 생성변화
제2부. 구조의 생성변화
4장. 죽음충동, 우발성, 저항
제2부의 서론 l 라캉적 '사물' l 차연의 경제 l 마조히즘의 일차성 l 충동의 우회 l 무저항의 저항은 무엇인
가? l 데리다적 단절
5장. 이데올로기
라캉 이론과의 '단절' l 국지적 이론에서 일반 이론으로 l 담론 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론 l 정신분석 이
론에서 구조변화의 이론으로 l 구조적 인과성과 우발성 l 보론: '거울상적 중심화'에 관하여
6장. 구조
사회구성체의 탈중심화 l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l 구조변동과 우발성 l 제2부의 결론: 우발성, 물질성
결론: 저항이란 무엇인가? l 일본어판 후기 l 해설(에티엔 발리바르) l 옮긴이의 말 l 찾아보기
저자
저자
사토 요시유키
저자 사토 요시유키는 츠쿠바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과학연구과 현대어-현대문화 전임 강사. 1994년 교토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2001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경제시스템분석전공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 뒤 프랑스로 건너가 2004년 파리10대학교(인식-문화연구과)에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지도 아래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루이 알튀세르부터 자크 데리다에 이르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주목받으며 2004년 미셸 푸코의 유고집 『말과 글』 일본어판(전10권/2001~04)에 공역자로 참여했고, 주디스 버틀러의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공역/2008)도 일본어로 옮겼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권력과 저항』 이외에도 『신자유주의와 권력: 푸코에서 현재성의 철학으로』(2009), 『들뢰즈/가타리의 현재』(공저/2008) 등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