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하고 성스러운 55가지 이야기(서정문학대표수필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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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같은 부부 생활, 소설같은 부부 생활을 꿈꾸는 55가지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
『짭짤하고 성스러운 55가지 이야기』는 적나라한 性적 담론이 가득한 저자의 고백서이며, 부부 성생활 안내서이다. 이 정도까지 솔직한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해야 할 性이지만 인습과 편견에 물들어 부부 사이조차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윤송석 작가는 그 터부를 부수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에 나온 이 책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편집부).
『짭짤하고 성스러운 55가지 이야기』는 적나라한 性적 담론이 가득한 저자의 고백서이며, 부부 성생활 안내서이다. 이 정도까지 솔직한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해야 할 性이지만 인습과 편견에 물들어 부부 사이조차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윤송석 작가는 그 터부를 부수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에 나온 이 책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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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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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자신 앞에 솔직한 만남
이훈식(서정문학 발행인ㆍ시인)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먼저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며 내 이웃을 만나고 연인도 만나며 학문과 이 시대의 역사도 만나고 내 자신과도 만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그 무수한 인연들 속에 진정한 그 만남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를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잣대로 전혀 사실과는 다르게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한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정당한 이해와 평가 받기를 원한다. 더욱이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사유를 분명하게 알아주기를 원하는 존재들이기에, 그 욕망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神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참 자아自我를 만나는 일이다. 나라는 주체를 제대로 모른다면 우린 절대로 객체인 남을 이해할 수도 없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보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이 있다. 그 물음은 '아담아 너는 누구냐? 너는 뭐하는 놈이며 왜 태어난 줄 아느냐?' 하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최초로 던진 질문이다. 그 대답이 바로 성경이다. 사실 우리의 아픔은 참다운 자아自我가 무엇인가 하는 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늘 안고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성전에서 무릎 꿇었을 때 "너 자신을 알라" 했던 신의 음성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음성이요, 질문인 것이다.
성경에 38년 된 병자 얘기가 나온다. 베데스다 연못에 물이 솟구치는 날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모든 육신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병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중증환자였다. 그러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예수님의 꾸짖음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을 때 죽음에서 생명으로 객체에서 주체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문학은 첫째, 작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통해 스스로를 질문하고 대답해 가며 자아를 알아가는 구도救道의 길이다. 그래서 시인 구상은 문학(시)은 언어를 통한 구도의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참된 자아와의 만남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때 묻은 외식의 껍질을 먼저 벗어버리는 일이요, 허울뿐인 관념들의 낡은 옷을 찢어버리는 일이요, 선입견과 편견들을 헌신짝처럼 걷어치워야만 순수한 그 모습, 벌거벗은 알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그래서 자기 자신의 알몸과 대면하는 일이다.
주체와 객체의 대립이나 분리가 아니라 서로 투명한 관계 속에서 객체가 거울로서 주체를 비춰줄 때 흠 많은 자아를 보게 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린 먼저 사전적이고 교과서적 사고의 틀을 거부하며 주관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아를 객관화시켜 보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의 효용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게 되면 이율배반적이고 모순투성이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이미 세속에 길들여진 시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얼마나 치졸했던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쓴 글은 아마 설익은 독자들에겐 낯설고 단세포적인 발상이라고 가볍게 취급당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누구냐 하는 자아 발견이다.
서양사의 주류가 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 의한 철학적 명상만이 진실이라는 스승인 플라톤의 논리를 반박하며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이데아Idea와 선善을 갈구하지만 그 또한 피안의 일이며 현실이 될 수 없는 세계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차라리 인간과 현실의 불완전한 모습을 발견하고 좀 더 겸허해지며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감성으로 환원하는 자아의 정서가 먼저라고 얘기했다.
둘째, 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행위이며 인간이라는 물음에 끝없는 탐구가 허용되는 것이기에 어떤 사상이나 철학, 종교, 정치가 아니다. 문학은 그냥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문학으로서 독특한 빛깔과 의미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 존재의 의미가 다 다른 것처럼 문학은 언제나 그 개체로서 존재이며 감성적이고 주관적이며 너와 내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눌린 자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서로 융해되고 화해와 그 기쁨의 정서가 함께하는 세계이다. 문학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다."(최재서)
익히 알려진 이러한 교과서적 문학의 정의는 시대가 변할수록 다양한 기준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흥미 추구의 이야기도 아니며 인생의 진리를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이면서도 허구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유를 내재화 내지 육화incarnation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창조 작업이다.
"문학은 사회의 비판적 기록과 생활 경험의 표현이며 육신으로 그린 생각의 그림인 동시에 길거리에 세워둔 거울이며 과학의 위를 나는 새요, 인간의 정신적 유토피아, 인생의 제조기, 인생에 공기와 물의 가치를 지닌 종교요, 음악이며 인생의 미래를 예측하는 그 무엇"이라고 모 평론가는 밝혔다. "무슨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사상이나 철학을 독자에게 감동시켜 그로 하여금 생의 가치 있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언어 행위일 뿐이다."(오세영 시인)
셋째, 사실주의에서 말하듯 문학은 거울처럼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회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낼 수는 없다. 한 개인에게 인생 경험이 남달리 풍부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함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학은 작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 반영된 쾌락성이 문학의 대표적 기능임을 우리는 안다. 문학의 쾌락성에 대해선 자유로움과 부드러움이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문학은 정서적인 언어를 통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며 표현에서 정치, 사회, 역사, 종교, 문화 등의 복잡한 대상에 대한 지적인 인식보단 정서적 인식을 지향한다. 보편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와는 달리 문학은 구체적이며 감각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정서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이 문학적 흥미를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의 쾌락성은 인간이 주체가 된 인간사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모습을 반영하기에 인간의 사유세계를 다루는 철학,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등을 비롯해서 현실에서 그대로 발생한 사건만을 다루는 논픽션, 역사 기록 등과도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가 실지 인물과 거의 비슷하게 그려진 초상화를 익숙하게 들여다보길 즐기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하길 문학이란 탈persona을 쓴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옹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윤송석 작가가 이번에 쓴 작품은 일단 성性을 통한 쾌락 그 기쁨을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낸 작업이 흥미롭다. 인간은 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덴의 동쪽에는 두 개의 상반된 질서가 있었다. 어둠이 있는가 하면 밝음이 있었고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생명이 있었으며 사랑이 있는가 하면 증오가 있었던 세계. 물질이 있었는가 하면 정신이 있었던 그곳은 이원적 논리가 난무했고 지성이니 인식의 가치니 하는 걸로 포장된 세계이기도 했다. 어쩌면 윤송석 작가는 이처럼 상반된 가치를 성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통해 무엇이 나와 다르고 무엇이 정신이고 무엇이 물질이며 그 결핍과 충족해서 오는 그 차별성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숨겨왔던 노골적인 성을 통해 상대적 우월감과 열등감, 오만과 편견이 어디서 오는가를 변별해 보고 싶었던 욕망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6천 번 이상 만남이 있어야 이생에서 옷깃을 스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 번 맺어진 인연들 앞에 공통분모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윤송석 작가는 알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놓으며 겉으로는 화려하게 꾸며진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감히 하늘도 우러러 보지 못하고 제 가슴을 치며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죽을 놈입니다" 하고 짓눌려온 성性에 대해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이나 군자들도 알고 보면 우리와 성정性情이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필부필녀匹夫匹女에 지나지 않으며 절대자 앞에서는 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만천하에 소리 지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뿐인 생애에 이 상태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삭막하고 너무나 왜곡된 성이라는 진실 앞에 늘 허기진 가슴이었기에 더러는 부끄럽고 더러는 미안한 성性의 비밀을 가감 없이 용기 있게 표현했나 보다.
1부 [낯 뜨거운 사연들]에서부터 마지막 4부 [性이 별거냐]까지 줄곧 성性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구겨진 표정 없이 그려내고 있다. 성을 통해 대화하고 성을 통해 서로를 용서하고 성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그 절대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또 다른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삶이란 정지할 수 없는 것이며 분명히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이다. 회한과 모멸로 점철된 어두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 땅에선 다시 그려낼 수 없는 달콤하고 황홀했던 시간을 저마다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처뿐인 패배의 상흔을 문신처럼 간직하고 사는 게 인생이다. 물론 인간의 삶을 너와 나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눈다는 것이 또 삶을 과거와 현재로 나눈다는 것이 뭔 의미가 있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체의 가식과 허세를 털고 알몸으로 신神 앞에 독자 앞에 내 던져진 자아 속에 진정한 성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보인다. 진부한 세속에 얽매이면서도 적당히 변명하지 않고 덧칠하고픈 유혹을 벗어버린 자유인이 바로 윤송석 작가가 아닐까?
무릇 글 쓰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자유인이며, 오직 자유라는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흔히 '성性'이라 하면 'SEX'를 생각한다. 'SEX'라 하면 또 무엇이 연상되는가? 남녀의 알몸과 성행위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성性은 성기와 행위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성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는 3대 본능 식욕, 수면욕, 성욕 중 하나이다. 본능은 정신 작용에서 언제나 방향을 제시하는 인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성 본능은?인체 속에 흥분 된 성 에너지를 소비하는 목적 아래서 어떤 특정한 수로를 따라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성은 인류사이다. 성은 귀천이 없다. 성은 감출수록 지저분해진다. 가장 인간적인 성을 주제로 펼쳐낸 부분에 관해 혹자는 고개를 돌릴지도 모른다. 허나 다원화 시대 다양한 시대에 나와 다름은 다른 것일 뿐 나와 다름은 무조건 틀렸다는 사고를 가진 분들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
이번에 윤송석 작가가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전적 얘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그 몫은 독자의 것이다. 좀 어눌하고 서툰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아방가르드(첨병)Avant-garde처럼 앞서 가는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들은 얼굴의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만나야 한다. 그리하여 진짜 내가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다. 너와 만나는 밀실의 가식을 버린 자만이 존재하는 투명한 공간. 서투른 표현이 오히려 공감도를 높이는 그 반작용의 의미를 아는 작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쯤 성性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2017년 여름 용인에서
자신 앞에 솔직한 만남
이훈식(서정문학 발행인ㆍ시인)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먼저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며 내 이웃을 만나고 연인도 만나며 학문과 이 시대의 역사도 만나고 내 자신과도 만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그 무수한 인연들 속에 진정한 그 만남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를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잣대로 전혀 사실과는 다르게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한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정당한 이해와 평가 받기를 원한다. 더욱이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사유를 분명하게 알아주기를 원하는 존재들이기에, 그 욕망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神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참 자아自我를 만나는 일이다. 나라는 주체를 제대로 모른다면 우린 절대로 객체인 남을 이해할 수도 없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보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이 있다. 그 물음은 '아담아 너는 누구냐? 너는 뭐하는 놈이며 왜 태어난 줄 아느냐?' 하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최초로 던진 질문이다. 그 대답이 바로 성경이다. 사실 우리의 아픔은 참다운 자아自我가 무엇인가 하는 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늘 안고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성전에서 무릎 꿇었을 때 "너 자신을 알라" 했던 신의 음성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음성이요, 질문인 것이다.
성경에 38년 된 병자 얘기가 나온다. 베데스다 연못에 물이 솟구치는 날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모든 육신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병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중증환자였다. 그러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예수님의 꾸짖음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을 때 죽음에서 생명으로 객체에서 주체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문학은 첫째, 작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통해 스스로를 질문하고 대답해 가며 자아를 알아가는 구도救道의 길이다. 그래서 시인 구상은 문학(시)은 언어를 통한 구도의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참된 자아와의 만남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때 묻은 외식의 껍질을 먼저 벗어버리는 일이요, 허울뿐인 관념들의 낡은 옷을 찢어버리는 일이요, 선입견과 편견들을 헌신짝처럼 걷어치워야만 순수한 그 모습, 벌거벗은 알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그래서 자기 자신의 알몸과 대면하는 일이다.
주체와 객체의 대립이나 분리가 아니라 서로 투명한 관계 속에서 객체가 거울로서 주체를 비춰줄 때 흠 많은 자아를 보게 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린 먼저 사전적이고 교과서적 사고의 틀을 거부하며 주관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아를 객관화시켜 보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의 효용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게 되면 이율배반적이고 모순투성이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이미 세속에 길들여진 시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얼마나 치졸했던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쓴 글은 아마 설익은 독자들에겐 낯설고 단세포적인 발상이라고 가볍게 취급당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누구냐 하는 자아 발견이다.
서양사의 주류가 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 의한 철학적 명상만이 진실이라는 스승인 플라톤의 논리를 반박하며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이데아Idea와 선善을 갈구하지만 그 또한 피안의 일이며 현실이 될 수 없는 세계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차라리 인간과 현실의 불완전한 모습을 발견하고 좀 더 겸허해지며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감성으로 환원하는 자아의 정서가 먼저라고 얘기했다.
둘째, 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행위이며 인간이라는 물음에 끝없는 탐구가 허용되는 것이기에 어떤 사상이나 철학, 종교, 정치가 아니다. 문학은 그냥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문학으로서 독특한 빛깔과 의미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 존재의 의미가 다 다른 것처럼 문학은 언제나 그 개체로서 존재이며 감성적이고 주관적이며 너와 내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눌린 자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서로 융해되고 화해와 그 기쁨의 정서가 함께하는 세계이다. 문학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다."(최재서)
익히 알려진 이러한 교과서적 문학의 정의는 시대가 변할수록 다양한 기준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흥미 추구의 이야기도 아니며 인생의 진리를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이면서도 허구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유를 내재화 내지 육화incarnation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창조 작업이다.
"문학은 사회의 비판적 기록과 생활 경험의 표현이며 육신으로 그린 생각의 그림인 동시에 길거리에 세워둔 거울이며 과학의 위를 나는 새요, 인간의 정신적 유토피아, 인생의 제조기, 인생에 공기와 물의 가치를 지닌 종교요, 음악이며 인생의 미래를 예측하는 그 무엇"이라고 모 평론가는 밝혔다. "무슨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사상이나 철학을 독자에게 감동시켜 그로 하여금 생의 가치 있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언어 행위일 뿐이다."(오세영 시인)
셋째, 사실주의에서 말하듯 문학은 거울처럼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회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낼 수는 없다. 한 개인에게 인생 경험이 남달리 풍부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함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학은 작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 반영된 쾌락성이 문학의 대표적 기능임을 우리는 안다. 문학의 쾌락성에 대해선 자유로움과 부드러움이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문학은 정서적인 언어를 통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며 표현에서 정치, 사회, 역사, 종교, 문화 등의 복잡한 대상에 대한 지적인 인식보단 정서적 인식을 지향한다. 보편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와는 달리 문학은 구체적이며 감각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정서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이 문학적 흥미를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의 쾌락성은 인간이 주체가 된 인간사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모습을 반영하기에 인간의 사유세계를 다루는 철학,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등을 비롯해서 현실에서 그대로 발생한 사건만을 다루는 논픽션, 역사 기록 등과도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가 실지 인물과 거의 비슷하게 그려진 초상화를 익숙하게 들여다보길 즐기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하길 문학이란 탈persona을 쓴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옹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윤송석 작가가 이번에 쓴 작품은 일단 성性을 통한 쾌락 그 기쁨을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낸 작업이 흥미롭다. 인간은 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덴의 동쪽에는 두 개의 상반된 질서가 있었다. 어둠이 있는가 하면 밝음이 있었고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생명이 있었으며 사랑이 있는가 하면 증오가 있었던 세계. 물질이 있었는가 하면 정신이 있었던 그곳은 이원적 논리가 난무했고 지성이니 인식의 가치니 하는 걸로 포장된 세계이기도 했다. 어쩌면 윤송석 작가는 이처럼 상반된 가치를 성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통해 무엇이 나와 다르고 무엇이 정신이고 무엇이 물질이며 그 결핍과 충족해서 오는 그 차별성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숨겨왔던 노골적인 성을 통해 상대적 우월감과 열등감, 오만과 편견이 어디서 오는가를 변별해 보고 싶었던 욕망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6천 번 이상 만남이 있어야 이생에서 옷깃을 스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 번 맺어진 인연들 앞에 공통분모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윤송석 작가는 알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놓으며 겉으로는 화려하게 꾸며진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감히 하늘도 우러러 보지 못하고 제 가슴을 치며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죽을 놈입니다" 하고 짓눌려온 성性에 대해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이나 군자들도 알고 보면 우리와 성정性情이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필부필녀匹夫匹女에 지나지 않으며 절대자 앞에서는 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만천하에 소리 지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뿐인 생애에 이 상태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삭막하고 너무나 왜곡된 성이라는 진실 앞에 늘 허기진 가슴이었기에 더러는 부끄럽고 더러는 미안한 성性의 비밀을 가감 없이 용기 있게 표현했나 보다.
1부 [낯 뜨거운 사연들]에서부터 마지막 4부 [性이 별거냐]까지 줄곧 성性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구겨진 표정 없이 그려내고 있다. 성을 통해 대화하고 성을 통해 서로를 용서하고 성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그 절대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또 다른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삶이란 정지할 수 없는 것이며 분명히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이다. 회한과 모멸로 점철된 어두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 땅에선 다시 그려낼 수 없는 달콤하고 황홀했던 시간을 저마다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처뿐인 패배의 상흔을 문신처럼 간직하고 사는 게 인생이다. 물론 인간의 삶을 너와 나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눈다는 것이 또 삶을 과거와 현재로 나눈다는 것이 뭔 의미가 있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체의 가식과 허세를 털고 알몸으로 신神 앞에 독자 앞에 내 던져진 자아 속에 진정한 성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보인다. 진부한 세속에 얽매이면서도 적당히 변명하지 않고 덧칠하고픈 유혹을 벗어버린 자유인이 바로 윤송석 작가가 아닐까?
무릇 글 쓰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자유인이며, 오직 자유라는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흔히 '성性'이라 하면 'SEX'를 생각한다. 'SEX'라 하면 또 무엇이 연상되는가? 남녀의 알몸과 성행위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성性은 성기와 행위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성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는 3대 본능 식욕, 수면욕, 성욕 중 하나이다. 본능은 정신 작용에서 언제나 방향을 제시하는 인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성 본능은?인체 속에 흥분 된 성 에너지를 소비하는 목적 아래서 어떤 특정한 수로를 따라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성은 인류사이다. 성은 귀천이 없다. 성은 감출수록 지저분해진다. 가장 인간적인 성을 주제로 펼쳐낸 부분에 관해 혹자는 고개를 돌릴지도 모른다. 허나 다원화 시대 다양한 시대에 나와 다름은 다른 것일 뿐 나와 다름은 무조건 틀렸다는 사고를 가진 분들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
이번에 윤송석 작가가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전적 얘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그 몫은 독자의 것이다. 좀 어눌하고 서툰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아방가르드(첨병)Avant-garde처럼 앞서 가는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들은 얼굴의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만나야 한다. 그리하여 진짜 내가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다. 너와 만나는 밀실의 가식을 버린 자만이 존재하는 투명한 공간. 서투른 표현이 오히려 공감도를 높이는 그 반작용의 의미를 아는 작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쯤 성性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2017년 여름 용인에서
목차
목차
추천사
자신 앞에 솔직한 만남
작가의 말
부부 생활의 소설화
1부
낯뜨거운 사연들
울보의 숙제
조모의 총애
불타는 고뇌
신선을 꿈꾸다
비탈에 선 청춘
수타면
포경수술 실험
첫사랑
금연
공부, 한의 미학
쏠쏠한 각시
내 인생의 스승
마침내 일어서다 1
마침내 일어서다 2
2부
부부의 희열
똘똘이는 똘똘하다
신유의 정사
선악교체 정사
부부 생활의 예의
부부의 관건은 스킨십
부부 사이엔 백지장도 벽이다
생존의 가치는 그리움이다
동시에 폭발하기
재미를 보다
그냥 잘 수 없잖아
구강성교
월출산 모텔
그대의 향수
3부
부부 탐구
가시를 누그러뜨리고 춤을 추는 '고슴도치 사랑'
야옹 야옹 소리 나는 '고양이 사랑'
저돌적인 '돼지 사랑'
가슴 벅찬 '말 사랑'
십년을 기다린 '매미 사랑'
양기의 상징 '뱀 사랑'
건강과 장수의 대표 '사슴 사랑'
밀림의 왕 '사자 사랑'
여성이 주도하는 '염소 사랑'
소곤소곤 속삭이는 '참새 사랑'
하루뿐이기에 더욱 간절한 '하루살이 사랑'
장단과 어울려 한배를 이루는 '학 사랑'
정글의 왕 '호랑이 사랑'
제4부
성이 별거냐
남성 성기에 뼈가 없는 이유
귀두의 사명
불알의 가치
요분질에 관한 단상 1
요분질에 관한 단상 2
결혼식은 성개방식이다
부부 관계를 해야 하는 이유
부부 예절
사랑 탐지기
부부 마사지
부부 함께 목욕하기
사랑의 배터리
성희롱 예방교육
왜 입덧을 하는가?
고통보다 더 큰 보람
자신 앞에 솔직한 만남
작가의 말
부부 생활의 소설화
1부
낯뜨거운 사연들
울보의 숙제
조모의 총애
불타는 고뇌
신선을 꿈꾸다
비탈에 선 청춘
수타면
포경수술 실험
첫사랑
금연
공부, 한의 미학
쏠쏠한 각시
내 인생의 스승
마침내 일어서다 1
마침내 일어서다 2
2부
부부의 희열
똘똘이는 똘똘하다
신유의 정사
선악교체 정사
부부 생활의 예의
부부의 관건은 스킨십
부부 사이엔 백지장도 벽이다
생존의 가치는 그리움이다
동시에 폭발하기
재미를 보다
그냥 잘 수 없잖아
구강성교
월출산 모텔
그대의 향수
3부
부부 탐구
가시를 누그러뜨리고 춤을 추는 '고슴도치 사랑'
야옹 야옹 소리 나는 '고양이 사랑'
저돌적인 '돼지 사랑'
가슴 벅찬 '말 사랑'
십년을 기다린 '매미 사랑'
양기의 상징 '뱀 사랑'
건강과 장수의 대표 '사슴 사랑'
밀림의 왕 '사자 사랑'
여성이 주도하는 '염소 사랑'
소곤소곤 속삭이는 '참새 사랑'
하루뿐이기에 더욱 간절한 '하루살이 사랑'
장단과 어울려 한배를 이루는 '학 사랑'
정글의 왕 '호랑이 사랑'
제4부
성이 별거냐
남성 성기에 뼈가 없는 이유
귀두의 사명
불알의 가치
요분질에 관한 단상 1
요분질에 관한 단상 2
결혼식은 성개방식이다
부부 관계를 해야 하는 이유
부부 예절
사랑 탐지기
부부 마사지
부부 함께 목욕하기
사랑의 배터리
성희롱 예방교육
왜 입덧을 하는가?
고통보다 더 큰 보람
저자
저자
윤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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