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주자어류소분 1(양장본 HardCover)
『주자어류소분』은 우암 송시열이『주자어류』를 교감하고 항목을 재분류하여 편집한 책이다.『주자어류』는 사서오경, 성리설, 역사, 정치, 문학 등에 관한 주자의 학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주자학을 제대로 알려면『주자어류』를 정독해야 한다.『주자어류소분』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우암학파의 연구 역량이 결집된 학문적 결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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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주자어류』는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설, 역사, 정치, 문학 등에 관한 주자(朱子, 1130~1200)의 학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주자학을 제대로 알려면 『주자어류』를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자어류』는 주자 사후 70년이 지나서 1270년 여정덕(黎靖德)이 편집하여 140권으로 출판한 것이다. 주자의 제자 97인이 기록한 것을 종합한 것이기에 그 가운데는 번잡한 것과 잘못된 것이 적지 않았으며 일부 재료는 산실(散失)되기도 하고 주자의 초년설이 말년에 수정된 것도 있었다. 또한 『주자어류』는 본래 주자가 그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자유롭고 진지한 태도가 엿보이는 반면에 문어체로 잘 정리된 『주자대전(朱子大全)』과 달리 그 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우암 송시열은 이러한 『주자어류』를 교감하고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그의 나이 73세 때인 1679년 거제도 유배시절에 그의 손자 송주석과 함께 『주자어류』를 집중적으로 교감하여, 그 가운데 주자 문인들의 뒤섞인 기록을 정돈하고 번거롭고 중복되는 내용을 산삭(刪削)하며 류(類)에 맞게 문목(問目)을 재분류하여 편집하였다. 이는 그 본지를 포착하기 힘든 『주자어류』가 우암 선생에 의해 비로소 온전하게 이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체계화를 주체적으로 진행할 만큼 주자학 연구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드러낸 학문적 결실로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연구한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와 더불어 주자를 절대적 표준으로 정립하는 우암 주자학 연구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우암 선생은 자신의 작업을 권상하(權尙夏)와 이희조(李喜朝) 등의 제자들에게 계승하도록 당부했고, 그 유지에 따라 구시경(具時經), 이기홍(李箕洪), 홍치상(洪致祥), 조인수(趙仁壽), 김유(金?), 김간(金幹), 홍우익(洪禹翊) 등의 제자들이 참여하여 스승이 30책으로 정리한 『주자어류소분』 정본(淨本)을 교정하면서 부첨지(附籤紙)를 붙였으나, 산실되어 18세기부터는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현존하는 유일한 필사본이 송병선(宋秉璿)의 문충사(文忠祠)에서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주자어류소분』의 「어류소분 권수목록(卷數目錄)」에 의하면, 전30책은 원본(原本/元本) 20책(3책, 4책, 5책, 6책, 7책, 8책, 9책, 10책, 11책, 12책, 13책, 14책, 15책, 17책, 20책, 21책, 22책, 23책, 28책, 30책)과 보본(補本) 10책(1책, 2책, 16책, 18책, 19책, 24책, 25책, 26책, 27책, 29책)의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첨지가 원본에만 붙어있는 걸로 보아 원본은 우암과 직전제자들의 작품인 반면, "보본은 원계(遠溪)에서 완성된 것"이라는 목록의 기록으로 보아 보본은 고종 22(1885)년 3월에 원계로 이사해서 살았던 송병선이 제자들과 함께 산실된 자료를 수집하여 필사하고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존 필사본 『주자어류소분』은 우암과 직전제자들이 기초작업을 했던 17세기 후반부터 송병선과 제자들이 보완작업을 했던 20세기 말엽까지 우암학파의 『주자어류』 연구가 결집된 학문적 소산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목차
卷第 二
卷第 三
卷第 四
卷第 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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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第 二十六
卷第 二十七
卷第 二十八
卷第 二十九
卷第 三十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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