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주자학 양명학을 만나다(학술총서 32)(양장본 HardCover)
명종 선조 시대에 활동한 저명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소재 노수신의 양명학 사유와 이와 유관한 문학적 특징을 고찰한 책이다. 퇴계는 소재의 사상을 선학, 상산학으로 규정하여 엄중하게 비판하였는데, 소재는 퇴계의 비판에 맞서 자신의 학문적 관점을 철회하지 않았기에, 후대에 그는 ‘주자의 시대에 홀연 나타난 육상산’에 비유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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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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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퇴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던 걸출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宣祖 代 詩壇의 영수이기도 했다. 선조 대는 宋詩, 특히 江西詩派를 배우려는 시적 지향이 계속되는 가운데 道學詩를 활발하게 창작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宋詩의 산문성?기교주의?이성주의에 반발하여, 唐詩를 배워 시의 서정성?음악성?형상성을 회복하려는 지향이 李達?白光勳?崔慶昌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소재는 중국 江西詩派의 영향을 받은 湖陰 鄭士龍?芝川 黃廷彧과 함께 館閣三傑로 일컬어지면서,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시인이다. 그는 삼당파 시인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하였는데, 특히 최경창과 백광훈은 진도의 유배지에 찾아와 소재에게 학문을 물었던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소재는 자신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많은 양의 哲理詩를 창작하여 문학사에서 퇴계와 더불어 사림 계열의 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처럼 소재는 선조 대의 多岐한 시적 지향들을 융섭하여 높은 경지에 오른 일급 시인이었다.
소재가 이룩한 사상 문학 방면에서의 성취에 비해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미한 상태이다. 그에 대한 연구는 사상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소재는 明儒 羅欽順(1465~1547)의 『困知記』를 수용하여 人心道心體用說을 주장한 학자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흠순은 王守仁(1472~1529)과 동시대 인물로 당시 양명학을 비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朱子學者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陽明學과 禪學을 비판하면서 心과 性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객관 사물의 理를 탐구하는 정주의 格物說을 지지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理氣一物說과 人心道心體用說을 주장하였고 欲望을 긍정하였다. 이러한 나흠순의 사상은 明代 氣哲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자학과는 이질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상사에서 소재는 羅欽順의 사상을 수용하여 主氣論과 人心道心體用說을 주장한 학자로만 인식되었는데, 이는 그의 대표적인 철학 논문인 「人心道心辨」과 「執中說」에 의거하여 그의 사상을 究明한 결과이다. 소재는 일생 많은 양의 산문과 漢詩를 창작하였는데, 전 저작을 시기별로 통독해보면 그의 만년 사상에 양명학의 특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퇴계는 소재를 禪學?陽明學에 물든 학자로 규정하였는데, 澤堂 李植 또한 소재를 陽明學者로 언급한 바 있다. 택당은 소재를 양명학자로 지명하면서, "소재가 『大學章句』를 개정하였는데 그 말이 모두 陸象山, 王陽明의 뜻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택당이 언급한 『대학장구』를 개정한 소재의 저작은 『?齋集』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학계에 逸失된 典籍으로만 알려져 왔다.
필자는 소재 종가에 보존된 여러 전적을 열람하는 가운데에 『?齋先生大學集錄』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齋先生大學集錄』은 주희의 『대학』 개정 작업을 부정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자들의 글을 모아 편찬한 책이었다. 소재의 제자인 康復誠은 「年譜」에서 소재가 "선조 16년(1583)에 『改正大學』을 찬집하였다."고 기록하였고, 『개정대학』에 대하여 "『대학』의 錯簡에 대해 程朱부터 明의 여러 유자에 이르기까지 각기 개정한 것이 있어 서로 같지 않기에 선생이 이를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배우는 이들이 참고하기 편하게 하셨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연보」의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보면 택당이 언급한 『대학장구』를 개정한 소재의 저술이나 「연보」에서 말한 『改正大學』은 바로 종가에 소장된 『?齋先生大學集錄』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大學集錄』에는 王守仁의 「古大學」, 「大學問」, 「大學古本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大學問」과 「大學古本序」은 양명학의 핵심을 전하는 왕수인의 중요한 저작이다. 소재가 이 책을 편찬한 때는 퇴계가 양명학을 적극적으로 변척한 직후였고, 퇴계를 따르는 사류들을 중심으로 양명학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시기였다. 陽明學을 배척하던 조선의 유자들에게 이 『대학집록』은 異端邪說을 유포하는 不穩書籍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대학집록』은 소재 사후 점차 정주학에 대한 맹신으로 경직되어 갔던 학문적 경향 때문에 사류들 사이에 유통되지 못하고 『문집』에도 수록되지 못한 채 소재 宗家에만 전하는 秘書가 되었다.
『大學集錄』과 함께 소재의 전 저작을 통독해 보면 그의 유배기 이전의 사상과 유배기, 그리고 만년의 사상이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소재 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이 시기별로 변화해간 경로를 따라가면서 궁극적으로 그의 사상이 어디로 귀결하였는지 밝히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소재의 초기 저술과 만년의 저술을 비교해보면 그의 사상은 朱子學에서 陽明學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소재의 사상이 전변해간 양상을 고찰하여 그가 만년에 양명학을 수용하여 주자학과는 이질적인 새로운 심성론과 수양론을 주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陽明學者임을 究明하려고 한다.
목차
목차
제2장 聖人에의 篤實한 志向
제3장 ?暴한 현실에 대한 抵抗
제4장 精神的 危機와 模索
제5장 陽明學의로의 전환
제6장 陽明學의 적극적인 闡發
제7장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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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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