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코
정영희 장편소설『아키코』.이 소설의 주인공 아키코는 일본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명자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 운하와 헤어진 지 15년 만에 다시 만난다. 그들의 재회는 첫사랑의 연장이다. 운하는 운하대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키코 역시 결혼한 상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마치, 맺힌 회한을 풀기라도 하듯 서로를 향해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스며든다. 그러나 종국에는 아키코의 죽음으로 다시 헤어지게 된다. 다시 태어나면 부부로 태어날 것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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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소설의 주인공 아키코는 일본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명자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 운하와 헤어진 지 15년 만에 다시 만난다. 그들의 재회는 첫사랑의 연장이다. 운하는 운하대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키코 역시 결혼한 상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마치, 맺힌 회한을 풀기라도 하듯 서로를 향해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스며든다. 그러나 종국에는 아키코의 죽음으로 다시 헤어지게 된다. 다시 태어나면 부부로 태어날 것을 기약하면서......
소설에서 이들 두 사람의 사랑은 절절하고 순정하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사랑만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정이 빠진 부부, 즉 '현대 가정의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외면 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대답하기 두려운, 아니 생각조차 하기 싫은 대답을 요구한다.'사랑이 식어버린 부부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작품해설>
아름답고 치명적인 사랑의 시간
김별아(소설가)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손으로 잡듯이 심장으로 잡을 것입니다.
심장이 멎게 하세요, 그러면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피가 흘러 당신을 실어 나르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연인인 루 살로메에게 바친 연시 <내 눈을 감기세요>를 떠올리게 하는, 정영희는 정녕 사랑의 작가다. 이런 시대에, 이런 세태에 또 다시 사랑이라니! '이런'이란 바로 좀처럼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바야흐로 때는 거리거리에 사랑의 노래가 넘치고, 낭만적인 사랑의 이벤트로 가득 찬 짝짓기 프로그램이 브라운관을 메우는 연애의 시대다. 또한 세태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부터 노인정을 오가는 노옹들까지 '남친'과 '여친'이 없으면 서럽고 억울한 판국이다.
하지만 마치 물난리 속에 식수 곤란을 겪는 것처럼 사랑이란 말이 범람할수록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은 더해진다.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웬 사랑타령이냐는 타박도 있지만, 먹고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랑이 더 절실해진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수록 사랑이 아니라면 견딜 수 없기에, 아니 사랑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이므로. 나는 사랑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질시와 냉소가 넘치는 '이런' 지경에, 정공법으로 사랑에 맞서 사랑의 본질을 파고드는 정영희의 집요한 열정을 옹호한다.
그리하여 여기,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마흔다섯에 다시 만난 연인을 열두 살의 빛나는 소년으로 바라보며 그를 '산양아, 나의 존재야, 외로움아!'라고 부르는 여인 홍명자와, 어린 날 그리워 서성대던 담장 너머의 꽃을 기억하며 그 수국 집 아이를 '나비야, 내 안의 생명체야, 영혼아, 고향아, 내 따뜻한 품아!'라고 부르는 사내 장운하.
무릇 연애소설의 독법은 응당 그러해야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주인공들의 간절한 열망을 도덕의 잣대로 재단하거나 감상적이고 유치하다고 비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나 '내 것은 로망, 네 것은 노망'이라는 견강부회와 아전인수 따윈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타인의 사랑은 언제나 유치하다.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타인이 되면 내가 상상했던 최대치를 넘어 기꺼이 마땅히 유치해질 것이므로.
그런데 진정한 사랑을 의심하는 만큼이나 연애소설에 냉소적인 독자들을 슬며시 어루꾀어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정영희의 솜씨는 만만찮다. '순혈'만을 강조하는 험궂은 시절에 '현지처'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혀 태어난 명자-야마모토 아키코-와, 어이없는 사랑의 복수로 잉태되어 버려진 운하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태생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연인이기 이전에 영혼의 쌍생아와 같은 상대이다. '인생을 배울 시간도 없이, 너무 일찍 운명과 만나버린' 불행한 삶의 데칼코마니. 그럼에도 '운명의 장난'이라는 클리셰(cliche)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을 사십 년 이상 살아낸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인연의 엇갈림에 의해 오랫동안 서로를 잃고 살아오다가 중년이 되어 재회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우연이자 필연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그들은 서로를 향해 폭죽 같은 메일을 쏘아 올린다. 오로지 사랑으로 빛나는, 빛이 사라지고 나면 다만 '긴긴 사슬 같은' 일상처럼 누추해져버릴 고백들.
--나비야, 나 돌림병에 걸린 것 같다. 가슴에 꽃잎을 한 아름 안았다가 뗀 후처럼 네 향기가 내 코끝을 맴 도는 것 같다. 이 떨림 무섭다. (운하의 메일)
--네가 꿈꾸어오던 거였으면 샴페인을 터트릴 일이고, 전혀 꿈도 꾸지 않았다면 그건 네 인생의 선물이겠지. 이 떨림 나도 무섭다. (명자의 메일)
그들은 예전처럼 어리거나 젊지 않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젊고 어리다. 그러하기에 운하와 명자의 사랑은 옛사랑도 불륜의 사랑도 아닌 고스란한 첫사랑이다. 그 첫사랑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세상의 시선을 대변하는 명자의 어머니와 그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명자의 의견이 갈린다.
--첫사랑은 화인(火印) 같은 기다. 그건 그냥 두는 기 좋다.(엄마의 말)
--첫사랑이란 가장 오래된 사랑이다. 명자와 운하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 보낸 시간의 강이 있다. 그 시간의 강을 누군들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명자의 생각)
그런데 정영희는 이 지고지순한 고전적 순애보에 현실적 생기를 더하는 인물을 과감히 등장시킨다. '쇼윈도 부부'로 운하와 함께 살며 '결혼은 비즈니스'이고 '주부는 서비스 업종'이라고 말하는 봉미옥이 바로 그 문제적 인물이다. 그녀는 운하의 책임감과 동정심을 자극해 결혼이라는 '비즈니스'에 성공하지만, 그 성공의 결과물은 대형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만이 아니라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어제 같은 아득한 나날'과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다.
'비즈니스 우먼'인 미옥은 권태롭다. 그리고 지독하게 외롭다. 그래서 그 권태와 외로움을 욕망의 소비와 위태로운 연애 놀이로 채우려 한다.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을 전전하며 스러져가는 젊음과 감각적인 성(性)에 집착하는 미옥은 운하와 명자의 이성과 감성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리고 소비사회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 미옥의 눈과 입을 통해 정영희는 '먹이 걱정 없이 허공의 둥지에 터를 잡고 사는 여자들은 어디에 마음을 걸고 살아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금호강변의 가난하지만 따뜻한 바람과 억새와 갈대의 아름답고 슬픈 전설을 이야기하던 작가의 펜이 중산층 여성들의 헛된 욕망과 위선을 그릴 때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득인다.
--남편에게 온통 제 인생을 거는 여자. 남편의 배에 동승했다고 굳게 믿는 여자. 그게 동반자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그런 여자는 자신의 배는 없다. 그런 여자는 대개 불행하다. 남편을 부속물처럼 여기거나 자신을 종처럼 여긴다. 일심동체란 사악한 미신이다.
--자식에게 온통 제 인생을 거는 여자 또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결혼까지 한 자식을 일일이 간섭하는 바람에 아들은 '마마보이'가 되고, 엄마 사주를 받는 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다 산 마녀처럼 변해 남편의 등골을 뺀다.
--부동산 투기에 혼을 빼고 사는 여자 당연히 불행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금물을 들이켜는 아귀들 같다. 오십이 넘으면 얼굴도 그렇게 변해 있다. 탐욕이 볼 살에 붙어 사창가의 포주처럼 변해 있다. 죽을 때까지 '돈, 돈' 하다 간다. 많이 벌어 놓고 조금 일찍 왔던 곳으로 돌아가 준다면 '멋진 년'이 된다.
--자신의 얼굴이나 몸뚱이에 혼을 팔고 사는 여자 엄청 불행하다. 병이다. (중략) 그런 여자들은 '자존'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스스로의 존엄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명품에 혼을 빼고 사는 여자 역시 불쌍하다. (중략)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기'라는 걸 모른다. 그녀의 주인은 명품이다. 명품을 ?아가는 하녀로 평생 살다 죽는다.
--늘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 주변의 번지르르한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입에 올리며, 조용조용 '엘레강스'하게 말하는 여자들을 보면 전혀 아픔이 없는 것 같다. 그녀들은 혼자 있을 때 잠시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라치면 마치 불행이라도 만난듯 화들짝 놀라며 그런 생각을 떨쳐낸다. 그녀들은 존재를 응시할 틈도 없이 모르핀을 맞듯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난 복이 많은 여자라고. 그녀들은 쓸쓸하거나 외롭다고 생각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옥중기>를 통해 예술세계에서의 유일한 창작의 비결은 '추상적인 연민의 정'이라고 했던가. 이 모두를 정확히 꿰뚫어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허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미옥에게 작가는 연민의 면죄부를 슬며시 내민다. 미옥은 외로워서 아프고, 아파서 누군가를 뜨겁게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 상대가 남편이 아닐 뿐. 종교 활동에도, 봉사 활동에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부동산에도, 외모에도, 명품에도 마음을 걸 수가 없는 미옥은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날개옷인 '연금보험'에 의지하며 시간을 견디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첫사랑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다. 그러하기에 첫사랑 돈규와 만났다 헤어지는 순간, 미옥의 독백은 사랑에 대한 냉소라기보다 차라리 지독한 찬미에 가깝다.
--안녕, 잘 가라, 내 첫사랑. 그동안 고마웠다. 거짓말로 날 견디게 해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위대한 거짓말을 찬양하라. 거짓말은 곧 희망일지니.
사랑해서 아프고 사랑할 수 없어서 슬픈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작품은 아슬아슬하게 신파를 피해 주인공들을 각자의 삶으로 정갈히 떠나보낸다. 아픔이 있으나 그것이 남은 삶을 무너뜨릴 만큼은 아니고, 슬픔이 있으나 그것의 힘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어설픈 작품 해설에 너무 많은 지면을 허비한 듯하여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작품을 읽기에 앞서 읽은 인상적인 '작가의 말'에 이미 감동을 받은 터였다. 정영희는 슬픔과 외로움도 재산이라고,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는 데 쓰이는 큰 밑천이라고 했다. 그 길지 않은 '작가의 말'에서 슬픔의 힘으로 외로움을 딛고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축복이자 저주일지라도 끝내 걸어내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결기가 느껴져 새삼 숙연하고 소연했다.
지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에 머문다. 이 작품에는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린 작가의 독백이 몇 번 등장하는데, 그중 인상적인 상징 혹은 비유는 가상의 영화인 <소림사의 복수>와 실제 영화 <길(la Strada)>에 들어 있다. 복수를 다짐하며 심산유곡에서 무예를 닦고 나온 소림사의 고수는 그 봉두난발의 상거지 꼬락서니 때문에 저자에 나오자마자 아이들의 돌팔매에 맞아 죽고, 곡마단에서 독립해 막 길을 떠나려던 곡예사는 속물인 남주인공을 놀려 먹다가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참으로 허탈하다 못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릇 선과 악, 생과 사, 성(聖)과 속(俗), 구원과 갈망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예술가는 영원히 비기를 써먹어보지 못한 무림의 고수나 외줄타기 곡예사에 다름 아니다. 기꺼이 슬픔과 외로움의 돌팔매질을 받으며 위태로운 외줄을 비틀비틀 걸어가리라. 외로운 만큼 슬픈 만큼 더욱 자유로워지리니.
그리하여 정영희는 '존재의 아름다움은 삶의 슬픔과 사랑의 아픔을 먹고 깊어진다'는 증거를 명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아마도 자신조차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명징하게 증명하고 있다.
생명 가진 것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 베풀면서 사는 것, 모든 집착과 망상에서 놓여나는 것, 뭐 그런 거 아닐까? 마음을 비우는 거 말이야. 그러나 일에 대한 열정까지 놓아서는 안 되겠지. 그 일이라는 게 꼭 먹고살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 일 혹은 사랑을 하면서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인간은 조금씩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잖아. 그 깨달음이 곧 영혼을 깨끗이 닦는 일이란 생각을 해. 내가 글을 쓰는 일에 끝까지 힘쓰다 죽으면, 다음 생에선 지금보다 조금 더 글을 잘 쓰는 인간으로 태어날 거야. 그 다음 생에선 더 잘 쓰는 인간, 그 다음에는 더 더 잘 쓰는 인간으로 말이야.
목차
목차
Ⅰ 수국집 아이, 아키코 ·9
Ⅱ 나의 산양, 나의 beman ·48
Ⅲ 선녀와 나무꾼 ·106
Ⅳ 소림사의 복수 ·137
Ⅴ 잘 자라, 나의 외로움아 ·192
Ⅵ 채집된 율리시스 제비나비 ·244
Ⅶ 아지 사이가 핀 집 ·287
해설 ·아름답고 치명적인 사랑의 시간 · 338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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