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의 시간(나녹시선 2)
『無風의 시간』은 강신주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2004년 첫 시집 『가을일기』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오월 숲에서』를 발간했고, 이제 다시 목청을 다듬어 총 50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간 평범한 하루하루가 주는 소소한 행복과 평안을 노래해온 시인은, 이번에도 역시 조곤조곤한 어조로 삶의오묘한 갈피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시는 이순(耳順)에서 종심(從心)을 향해 가는 시인의 성정처럼 좀 더 순하고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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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강신주의 시 속에서 가장 먼저 호명되는 대상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어머니, 라고 부르기만 해도 코끝이 먼저 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사람. 내 몸의 일부처럼 늘 내 곁에 있다 믿어 의심치 않기에 깜빡깜빡 잊고살아가기 일쑤인 존재.
그러다가 사는 일이 고되고 힘들 때면 오래 챙겨둔 비상금처럼 갑자기 간절해지는 사람. 그의 이름이 바로 어머니이다. 오랜만에 마주앉아 들여다본 어머니의 얼굴엔 켜켜이 세월이담겨 있다.
그 속에 젊은 날의 어머니가 있고, 곧 마주할 내 얼굴이 있다. 나는 어머니의 과거이고, 어머니는 내 삶의 살아있는 미래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여러 차례 '어머니'를 부른다.
1집과 2집에서 각각 한 번씩만 호명했던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1집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인가.
비 내리는
새벽
바다는
아련한 연록빛.
순결한 파도의
흰 빛으로
손을 모으고
깊은 가슴에
기도를 담은
어머니,
당신 얼굴.
「해운대(4)」(2004)
「해운대(4)」의 어머니는 새벽바다의 순결한 파도를 모아 기도하는, 성스럽고 고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시 속의 어머니는 우리 곁에 있는 현실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머리 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신적인 존재, 자체의 향기로 시적 화자를 보호하는 구원자, 그것이 1집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2집 「어머니」(2014)에 와서는 '감기로 누워 있는'(74쪽), '빛살무늬 주름진', '나무 등걸 같은'(75쪽)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이미 문 앞까지 온 '노년'을 맞을 채비를 하는 듯 보인다.
1집에서 2집으로 건너오는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또 그보다 4년이 더 지난 지금, 어머니의 모습은어떠한가. 이번 시집의 화두는 그 세월의 흐름을 어머니 육신에서 확인하는 가슴아픈 존재 증명이 될 것이다.
1부 '無風의 시간'에는 총 9편의 시가 자리했다. 이곳에 오신 어머니는 '걸음이 편치 않은'(「기다림」), '잠든'(「바느질」), '無風의 시간'(「無風의 시간」) 속 어머니, '마른 낙엽처럼 야윈'(「야간 응급실」), '세월의더께'가 쌓여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어머니발톱을 깎으며」) 속 '늙으신'(「꽃구경」) 어머니들이
다. 그중 표제작인 「無風의 시간」을 보자.
한시도 쉴틈없던 어머니에게
노년이 찾아왔다.
장미꽃더미 흐드러진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렇게 밥만 먹고 살면 뭐하니"
혼잣말처럼 한마디 건넨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일, 모레, 일주일
아니 일 년의 계획이
당신의 시간표에 들어있던 날들
빛나는 지혜
아름다운 열정으로 벅차던 날들
어느덧
흐릿한 기억이 되고
지금은
無風의 시간.
어머니는 노년 속에서
이제야 평안하지만
그 평안이 힘겹다 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무채색의 시간이
힘겹다 한다.
「無風의 시간」 전문
2집에서 언뜻 보인 '노년'은 이제 본격적으로 어머니와의 동거를 선언했다. 지금 어머니는 바람도 없고,빛깔도 없는 세상 속에 살고 계신다.
무풍(無風)과 무채(無彩)의 세상에서 혼잣말처럼 되뇌이는 "이렇게밥만 먹고 살면 뭐하니", …… 이 구절이 주는 쓸한 울림은 시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젊은 시절 꿈꾸던 '평안'이 더 이상 평안이 되지 못하는 역설적 시간들, 그것이 바로 '노년'의 삶이다. 사실 그 삶의 쓸쓸함에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시인은 그의 시 속에서 '과거'의 어머니와 '현재'의어머니를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그때', '그 시절', '그 어느 날'의 어머니는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구멍 뚫린 양말을 꿰매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한 자세로 주무'시곤 했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것을 삶의 유일한 낙이자 의미로 환원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는 노인대학이나 응급실을 오가면서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밥만 먹고'사는 잉여인간으로 자책하며 힘겹게 '無風의 시간'을 견디는 중이다.
1부의 시편들 속에는 시적 화자도,어머니도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시간들, 그 덧없는 시간의 야속함이 가득 차 있다.
2. 옹이의 추억
2부 '별사탕'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시간이 그러하듯, 시적 화자의 시간도 돌이킬 수 없다. 누군들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마음속에 간직한 '어리디 어린 시간'(「꽃밥」), '아득한 기억'(「이름」)들을 소환하고추억하는 것뿐이다.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아득한 기억의 창문이 열린다.
한여름처럼 뜨겁던
혼란한 열정들
밀물처럼 가슴에 차오른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옹이로 박혀
시시로
걷잡을 수 없는 어둠을 던지는
너의 이름
아직도
차마 지울 수 없다.
「이름」 전문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 그것이 이별이든 열정이든 상처든, 그 시절을 이미 통과했기에 그립고 또 아름답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 옹이로 박혀' 있는 너의 이름과, '인사도 없이 헤어진 얼굴'들은 '이제야 /서로가 모르는 길에서'(「이별」) '아름다운 노래가'(「가을길」) 된다.
시적 화자는 젊은 날의 열정과절실했던 만남과 잊히지 않는 그대를 가슴속에 묻고 '이제는 / 빈 손 / 아름다워라 / 깃털처럼 가벼워진 육신'(「세모」)으로 시간을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 속에 두고 온 / 열정들 / 아직도 저렇게 붉어 / 걸음이 자꾸 뒤로만 가는 날들'(딸기밭에서)은 어찌할 것인가. 기억 속 순간들은 아직도 붉디붉어 시시때때로 마음의 정처를 잃게 하지만, 육신은 이미 늙어 그리워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를 어찌할 것인가.
2부의 시편들에는 물리적으로는 지나갔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완전히 떠나지 못한 과거 기억의 편린들이 '옹이'가 되어 현재의시간 속에서 주춤거리고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있다.
3. 일상의 풍경
3부 '가을 선물'과 4부 '봄소식'은 주로 가을과 봄에 관한 계절적 단상과 시인의 일상을 스냅사진을 찍듯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시인 곁에서 시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은 석류, 모과, 비둘기, 나비, 나무, 장미, 새싹, 박물관, 전기포트 등 일상의 소소한 물건과동식물 등 다채롭다.
시적 화자는 계절이 오고 가는길목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등 자연의 섭리를 지켜보며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노래한다.
또 그 속에서 낡고 소멸했으나 '흔적'으로 남은것들을 추억한다. 시적 화자가 박물관이나 문학기행지를 찾는 이유도 이와 같으리라.
한때는 빛나던 삶이
지금
시간의 한 귀퉁이에
허름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문학기행지에서」 중에서
시적 화자는 이제 '빈 손'(「세모」), '빈 마음'(「떠돌이별」), '깃털처럼 가벼워진 육신'(「세모」)으로 세상의 한복판에 서있다. 삶이란 살수록 웅숭깊고 단단해져, 슬픔도 아름답게 품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된다.
가을길을 걸으면
슬픔도 아름답다. (중략)
잊히지 않는 그대 생각도
꿈빛깔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가을길」 중에서
'흔적', '옹이',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한때의 열정을 확인하는 일, 그것은 니힐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꾸기 위함이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에게 '봄'은 새로운 것을 꿈꾸며 설레게 하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차마 버리지 못한 애증의 끈 / 옹이로 안고'서라도 '또 / 수묵색 겨울을'(「오월의 나무를 보며」) 견뎌야 하는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딘 후에야 '뿌리 움직이는 소리'(「봄나무에게」), '나뭇잎에 순 돋는 소리 / 흙더미 몸 푸는 소리'(「봄 향기」)를 내며 기지개를 켜는 식물들처럼, 이제 시적 화자에게도 '생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어둠도 어쩌지 못할 삶의 욕망이
붉으레한 열매로 맺어지기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
푸른 생명의 줄을 이어 놓는다.
「고구마순을 심으며」 중에서
시적 화자는 고구마순을 심으며 '어둠도 어쩌지 못할 삶의 욕망'이 결국은 '푸른 생명의 줄'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4. 생(生)의 중심
시인이 삶에 부여하는 경건한 희망의 염원은 절대자를 우러르며 절정에 이른다. '부서지지 않'고 '흘러가지 않는 시간'을 헤매다 '시든 영혼을 일으켜 세워준'열린 세상의 '한가운데 빛'(「빛」), 그것은 바로 '당신', 절대자의 품안이다.
마음
한가운데로
생각을 모은다.
잔잔한 바람들
지나가고
깊은 곳에 고이는
맑은 고요.
당신이
있는 곳.
「중심」 전문
당신 앞에 '나'는 그저 '여린 생명'일 뿐, 모든 실행은 '당신 몫'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비로소 '당신이 /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 시적 화자는 '묵은 근심'도 '기쁨'(「고해소」)이 되는 충만한 정서를 느낄 수 있고, 결국은 '세상을 향해/ 저렇게 당당하게 펄럭'(「항구에서」)이는 깃발이 될수 있는 것이다.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많이 남은 까닭이다.
5. 묵상하는 산책자, 강신주
강신주의 세 번째 시집 「無風의 시간」에는 시인 '강신주'가 들어 있다.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이 말은 시인을 알거나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가 시인을 알게 된 지도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둘 다 이제 홍안은 사라지고 백발이 희끗거리는 나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참 한결같다. 이순(耳順)에서 종심(從心) 사이, 그는 여전히 온유하고 고요하다.
언제 봐도 방금 호수의 산책을 마친 듯, 긴 묵상에서 깨어난 듯 맑고 깨끗하다. 그의 시역시 마음 가는 대로 써도 세상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순하고 단정하다.
이 시집에는 그런 시인의 시 총 50편이 실렸다. 우선 노년에 접어든 어머니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들어있다. 안타깝지만 세월이란 어찌할 수 없기에 시인은 호들갑을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 곁을 지키며 바라볼 뿐이다.
행간과 시어들마다 '無風'과 '無彩' 속 어머니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인의 심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 읽는 이의 가슴도 함께 먹먹해진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지나간 것들의 흔적을 뒤적이고, 옹이로 남은 상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했던가. 한때의 열정이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이 한 편의 시가 되는 과정, 시인은이처럼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을 솜털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기록해 두었다.
그러다가 시인이 평안을 얻는 곳은 결국 절대자의 품안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긍정의 힘, 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온전히 귀의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순(문학평론가,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목차
목차
1 무풍의 시간
야간응급실 ㆍ 13
기다림 ㆍ 14
바느질 ㆍ 16
어머니 ㆍ 18
무풍의 시간 ㆍ 20
어머니 발톱을 깎으며 ㆍ 22
꽃구경 ㆍ 24
카네이션 ㆍ 25
밥 한그릇 ㆍ 26
2 별사탕
길 ㆍ 29
꽃밥 ㆍ 30
이름 ㆍ 31
별사탕 ㆍ 32
첫눈 ㆍ 34
이별 ㆍ 35
가을길 ㆍ 36
눈 ㆍ 37
세모 ㆍ 38
딸기밭에서 ㆍ 39
3 가을선물
가을선물 ㆍ 43
석류 ㆍ 44
반성 ㆍ 46
편안한 잠 ㆍ 48
벚꽃길 ㆍ 49
오월의 나무를 보며 ㆍ 50
장미의 꿈 ㆍ 51
떠돌이별 ㆍ 52
문학기행지에서 ㆍ 53
비 내리는 날 ㆍ 54
조화 ㆍ 55
꿈 ㆍ 56
4 봄소식
1월, 기다림 ㆍ 61
3월 ㆍ 62
봄,새순 ㆍ 64
봄소식 ㆍ 65
봄나무에게 ㆍ 66
봄-기다림 ㆍ 68
봄향기 ㆍ 69
아침바다 ㆍ 70
고구마순을 심으며 ㆍ 71
11월의 은행나무 ㆍ 72
12월, 첫눈 ㆍ 73
5 중심
빛 ㆍ 77
중심 ㆍ 78
새해 ㆍ 79
항구에서 ㆍ 80
폭우 쏟아지는 날 ㆍ 81
고해소 ㆍ 82
근황 ㆍ 83
장미화관 ㆍ 84
해설 85
저자
저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현재 한국육필문학회 회장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저서]
시집 『가을일기』 (영언문화사,2004)
『오월 숲에서』 (새가람출판사,2014)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연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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