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전남편)
Regular price
$24.72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사람의 향기가 담긴 오롯이 담긴 남도 폐사지 아홉 곳의 진경!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는 오랜 세월이 자아내는 절터의 이야기를 시적인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한국 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돌아본 이지누가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여행한 찰나의 감상을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쌍계사터, 무인 총지사터 등 맑은 선풍이 맹렬한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낸다. 가녀린 진달래꽃이 현화공양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비롯하여 운주사 산신각 뒤 명당탑에서 보이는 바위 벽에 새겨진 마애불,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 혜심의 부도탑비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미려한 풍경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시도하고 있다.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는 오랜 세월이 자아내는 절터의 이야기를 시적인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한국 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돌아본 이지누가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여행한 찰나의 감상을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쌍계사터, 무인 총지사터 등 맑은 선풍이 맹렬한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낸다. 가녀린 진달래꽃이 현화공양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비롯하여 운주사 산신각 뒤 명당탑에서 보이는 바위 벽에 새겨진 마애불,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 혜심의 부도탑비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미려한 풍경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시도하고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국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섬세하게 기록하는 작가 이지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남도의 절터로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다
전라남도의 특별한 폐사지 아홉 곳을 가다
사실 폐사지廢寺址는 중요성에 비해 그렇게 인기 있는 답사지는 아니다. '폐허'라는 이미지가 답사객들의 발길을 막기 때문이다. 잘해야 석조 유물 몇 점, 아니면 텅 빈 터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중시하는 이 스펙터클의 공백을 저자 이지누는 가볍게 넘어선다. 그는 그것이 공백이라고도 생각지 않고 오히려 폐사지만이 지닌 미적 가치에 주목한다.
폐허란 그저 지저분해서 반드시 정리하고 깔끔하게 정돈해야 할 공간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폐허의 스산한 풍경이 혐오감이나 두려움만 발생시키던가.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이란 음양陰陽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그중 어느 하나가 다른 어떤 것에 비해 우월하거나 우선하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은 비단 폐사지를 다니면서 얻은 것만은 아니다. 그 이전,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DMZ와 민통선 지역을 다녔던 적이 있다. 또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이후 문을 닫기 시작했던 태백과 사북 그리고 고한 지역의 무수한 폐광은 물론, 서해안의 염전, 도시의 재개발지역들에 대한 사진 작업을 10여 년 넘게 하고 난 후 비로소 깨달았다. 폐허가 인간의 본성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톺아보지 못하는 눈과 마음으로 어찌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_240쪽
그는 이 특별한 아름다움에 취해 전국에 산재한 폐사지를 수도 없이 찾아갔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갈무리로서, 전라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답사해 길어 올린 기록이다. 모두 여덟 권으로 기획된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는 앞으로 전북, 충청, 경기, 경주, 강원, 경남, 경북으로 차례차례 이어질 것이다. 이번 책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이하 《마음과 짝하지 마라》)는 맑은 선풍이 맹렬했던 남도의 폐사지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오롯이 담았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용암사터,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 무안 총지사터 등 신중하게 선별한 아홉 곳의 폐사지는 하나하나 눈여겨볼 만하다. 그런데 저자는 왜 전국 5,400여 곳의 폐사지 가운데에서도 전라남도를 그 첫 번째로 택했을까?
남도는 불교문화가 활발히 꽃을 피우던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앙정부인 경주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고려의 개경, 조선의 한양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사정거리 안에 단 한 차례도 있지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경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낙후되었지만 오히려 사상은 분방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불교사상은 물론 불교미술 또한 여타 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기존 질서와는 다른 불교문화는 우리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남도는 아름답다._8쪽
전라남도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한반도 안에서도 독특한 불교문화의 흔적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라남도는 수차례 한반도에 새로운 사상적 기운을 불어넣었다. 나말여초에 완도 청해진을 통해 선종 불교를 받아들이는가 하면, 고려시대에는 수정결사와 정혜결사 등 선종과 교종을 아우르는 결사운동의 진원지였다. 또 조선 후기에는 두륜산 대흥사를 중심으로 유교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러한 사상적 역동성은 불교미술의 새로움으로도 이어져 전라남도의 불교문화 전반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 흔적이 폐사지에 아련하고 신비하게 남아 있기에 저자는 첫 발걸음을 전라남도로 향한 것이다.
절터를 가득 담은 인문학적 카메라와 펜
이지누는 한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 불리던 계간지 〈디새집〉을 만들며 보여줬던 실력을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디새집〉은 2000년대 초 한 일간지에서 '잡지' 형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그만큼 사진과 기사의 퀄리티가 웬만한 일반 단행본 못지않고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폐사지는 여백이 많은 까닭에 어설픈 사진과 글 실력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초라한 풍경만을 더해 기존의 폐사지에 대한 편견만 더할 것이다. 다행히 이지누는 《마음과 짝하지 마라》에서 이를 온전히 감당해낸다. 관련 인문학적 자료를 섭렵한 후에 그의 렌즈와 펜 끝이 향하는 지점은 적확하고 아름답다. 이 책에 실린 100컷의 사진은 저마다 소장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폐사지는 주변의 자연과 잘 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비록 화려한 전각이나 탱화 따위는 없을지언정 남루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은 겨우내 미뤘던 단청불사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며, 탑 주변을 에워싼 돌은 여느 우람한 외호신장 부럽지 않다. 이지누의 폐사지 사진이 특별한 것은 그가 자연과 절터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오히려 푸른 하늘을 지붕으로 하는 거대한 불전도량으로 이곳을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 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하실까"(310쪽)라는 탄성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땅과 인간, 그리고 불교에 뿌리박은 시적 표현들은 힘이 넘친다. 독특한 비유와 빛나는 상상력이 곳곳에 수놓아져 있다. 관념적 불교 용어는 자연의 대상물이나 현상과 짝지어지면서 살아 숨 쉬는 용어로 탈바꿈된다. 또 비유가 비유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봄의 해가 돈오頓悟라면 오늘 해는 점수漸修에 가깝다. 지난봄에 마주친 해는 솟아오르는 것도 금세였지만 떠올라서도 이내 발끈하며 대지를 밝히고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오늘 해는 오래도록 산등성이를 달구는 것은 물론 점차 하늘을 물들인 후, 차츰차츰 산하대지로 번져나가며 자연이 지닌 본연의 색을 되찾아주고 있었다._24쪽
꽃으로 탑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잠시 눈길을 빼앗기는가 싶었지만, 눈길은 얼른 산다화에게로 돌아왔다. 붉디붉은 산다화 몇 송이가 홀연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툭, 자유낙하의 쏜살같음. 그뿐이다. 뒤이어 꽃들이 더러 떨어졌지만, 그들은 아주 떠나버린 것이 아니다. 제 몸을 던져 깨달음을 구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인가. 새벽의 적막을 깨트리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꽃들은 제 몸을 던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베풀었다. 산다화는 나뭇가지에서뿐 아니라 땅에서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마치 떨어진 그곳이 제자리인 양 자리를 잡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두고 어찌 꽃이 피었을 때만 꽃이며 졌을 때는 꽃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들은 이미 꽃이었으며 아직 꽃이다. 그러니 꽃 피는 것만 좋아할 일이 아니며 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일이 아니다._268쪽
이지누는 단지 단발성 방문으로 교묘하게 책을 짜 맞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폐사지와 마주하며 그곳 스스로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같은 장소라도 여러 차례 발걸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기다림 속에서 농익어 터져 나온 표현이기에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웃자라기 쉬운 말의 속성을 경계하며, 시간을 두고 끈질기게 삭이고 삭여 일구어낸 글들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묘하게도 시간이 적층된 폐사지를 닮았다.
'절터인문학', 폐사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단지 개인적인 감상만이 이 책의 글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미학적, 인문학적으로 알찬 지식들이 글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가히 '절터인문학'이라고 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그 시대 민초나 천대 받던 스님들의 애환이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종이 부역'이다.
당시 각 사찰마다 만들어 바쳐야 할 종이의 할당량이 해마다 정해져 있었으며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할 때는 대신 돈으로 갚아야 했다. 하지만 돈으로 갚을 능력이 없는 절에서는 죽도록 일을 해서 부과된 할당량을 채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수행정진이나 불전을 돌보기는커녕 종일 종이 뜨는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리하여 승려의 길을 버리거나 앞다투어 종이 부역이 없는 다른 절을 찾아 떠나고 말았으니, 부역이 극심한 절은 황폐해지고 폐사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_118쪽
이 책의 3장에 소개되어 있는 벌교 징광사는 쟁쟁한 스님들이 거쳐 간 도량이었지만 지금은 폐사되어 웃자란 풀들만 가득하다. 경판을 찍어낼 설비를 갖춘 것이 빌미가 되어 극심한 종이 부역이 주어졌던 것이다. 종이 부역은 조선시대에 수많은 절들을 폐사시키는 원인이었는데, 심지어 양산 통도사에는 종이 부역을 탕감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비석까지 세웠다. 저자 이지누는 이처럼 폐사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백성들의 애환까지 가슴 속에 담아 절터인문학을 구성해나간다. 한편 유물에 대한 치밀한 불교미학적 분석과 고문서 상의 흥미로운 기록들도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 마애불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이 있다. 먼저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 작은 보살상 혹은 선재동자나 동자상으로 보이는 인물상을 더불어 새겨 놓은 것이다. 양쪽에 모두 있다면 협시脇侍로 볼 수 있겠으나 덜렁 혼자뿐이어서 무엇이라 규정하기가 난감하다. 다음으로 광배의 화려함이다.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이 모두 표현되었고, 신광은 바깥쪽으로 화염문을, 안쪽에는 당초문을 새겼다. 머리 뒤의 두광은 안쪽에 단엽연화문을 새기고 당초문을 그 둘레에 다시 새겼으며, 바깥에는 화염문까지 새겨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_217쪽
(창주滄洲 정상은) 하늘이 흐린 28일에 용암사에 다다라 그 어떤 유사들도 표현하지 않은 내용을 남겼다. "5층석탑이 있는데 동탑과의 사이에 몹시 기이한 미륵상을 새겨 놓았다有石塔五層與東塔對立間巨崖刻彌勒像甚奇"가 그것이다. 더불어 그곳에서 산등성이를 돌자 석굴이 나왔는데, 아흔 살의 노승이 머물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 노승은 "용암 아래로 금돼지가 아침저녁 오갔는데, 부처를 다 그릴 때까지 말을 타고 호위했다고 한다于此龍巖下 金猪朝夕來 護騎行竟寫佛去云"고 말했다. 물론 이는 노승이 직접 본 것은 아니며 예전에 공부를 할 당시 전해들은 이야기다._210쪽
폐사지 연구의 어려운 점은 자료의 부족이다. 유물도 많지는 않거니와 기록도 드문드문하다. 이지누는 아홉 곳의 폐사지와 관련된 고문서 자료를 기본적으로 망라하고, 거기에 본인의 불교 미학적ㆍ역사적 지식을 동원해 폐사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때에 따라서는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할배요 여 부처는 희안하이 생기싯네요?" 대뜸 그렇게 묻자 어디서 무슨 볼일로 이런 마을까지 찾아 왔느냐고 꼬치꼬치 물으시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당동리에서 태어나 줄곧 그 자리에서 살았다는 그이는 "이게 뭔지 안다요. 부처가 부처를 업은 것이여, 할매 부처가 아그 부처를 업고 어데를 간다 이거여" "그래요, 어디를 가시는데요?"라고 다시 묻자 빙긋이 웃음 머금은 얼굴로 "거그가 어덴지는 우덜도 모르제, 그래도 가기는 어데 좋은 데를 가는 갑소. 그릉께 저 팔 옆에도 아그들이 안 달라붙었소"라고 했다._314~315쪽
절터는 보통의 관광지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깊은 세월에 깎여 주변의 꽃과 돌을 닮은 석조 유물들은 그 자체로 '무심無心'을 강론하는 듯하며, 동이 틀 때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돌부처는 거룩한 법열을 절로 일으킨다. 이지누 작가는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오롯이 글과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여러 차례 반복해 순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로지 '터'와 빈약한 유물들만 남았을 거라는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그가 확인한 절터에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스님ㆍ선비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그득그득했다. 오랜 세월이 자아내는 절터의 이야기를 시적인 글과 사진을 통해 접하며 인문학적 감수성의 진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4장 화순 운주사터
그 때문이다. 운주사가 생각날 때마다 이곳에 있는 무엇이 날카롭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형체도 불분명한 것이 짓누르듯이 무겁게 다가온 까닭 말이다. 그것은 전체였다. 그래서 불쑥 이곳에 대한 생각에 휩싸이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 있는 불상과 탑 그리고 바람과 햇살 모든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곁에 있는 다른 것들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록 크기는 다를지언정 그들은 서로 계급도 없고 계층도 나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들은 평등했으며 부처인 듯 아닌 듯 선정에 들어 화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밤새 모진 바람에 휘날리던 눈이 울퉁불퉁한 들판에 고른 두께로 쌓이듯, 그들 또한 서로 생김새는 다를지언정 두께와 깊이는 같았다._140쪽
5장 영암 용암사터
힘겹게 동탑에서 고개 돌리면 산벚꽃 만발한 산을 등지고 선 서탑이 또 눈길을 붙들었으니, 마음은 더욱 벅차오르기만 할 뿐 숨 고를 겨를조차 없다. 탑은 다듬지 않은 긴 호박과도 같은 자연석을 기단으로 삼고 한껏 아침 햇살을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서탑은 월출산을 수놓은 그 많은 바위 중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수더분했다. 주위에 화려한 단청을 입힌 전각 한 칸 없었지만, 그는 초라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거져 드러나지 않으니 그 두루뭉술한 자태가 풍기는 맵시 또한 빼어났다. 탑 뒤, 먼 산에는 새잎이 찬란한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하얀 산벚꽃들까지 무리지어 피어났으며, 갓 움을 틔운 새잎들이 빚어내는 여린 색들이 찬란해 겨우 일으킨 마음은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_194~195쪽
6장 영암 쌍계사터
길이 좋아진 덕분에 험하던 때와는 달리 수월하게 오르는가 싶었는데 금세 돌장승이 눈앞에 서 있었다. 다행이었다. 길은 달라졌을지언정 그와 주변은 그대로였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 퉁방울눈과 주먹코를 하고서도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 것인지 어깨를 웅크린 채 서 있었다. 때로는 뻐드렁니를 뽐내거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입 밖으로 꺼내 놓은 채, 제 딴에는 한껏 험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섭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표정은 돌장승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 매력에 빠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들을 찾아 다녔으니, 이곳 쌍계사터의 돌장승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사찰장승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빼어나다._241쪽
7장 강진 월남사터
그랬다. 드문드문 동박새의 지저귐이 고즈넉함을 일깨우는 새벽의 절터는 그 자체로 이미 시詩다. 산다화 붉은빛 가득 드리운 탑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나마 말하지 않음은 차를 마실 때 굳이 해야 할 일이다. 홀로 앉아 마시는 차가 풍기는 향은 차향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사람의 향일 것이기 때문이다. 명선茗禪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는 선과 차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홀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입선入禪과도 같다. 초의선사 의순은 《다신전茶神傳》에서 말한다. "차를 마실 때에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고귀하다飮茶以客少爲貴." 차를 마시는 것은 자연을 호흡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본디의 자신을 보는 행위다. 더구나 홀로 마시는 차임에랴. 혼탁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맑고 고요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 아니던가. 비록 찻잔이 손 안에 쏙 들어오지만 그것이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_274쪽
8장 곡성 당동리 절터
해가 비쳐들자 마지摩旨를 올리려는지 바람이 찾아왔다. 그 바람에 정신을 추슬러 바라보니 댓잎은 밤새 머금은 이슬을 털어내려 자꾸만 뒤채고, 부처님은 햇살과 바람 그리고 이슬로 공양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앞의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 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 하실까"라고 말이다. 푸른 하늘을 닫집으로 삼았으며 대밭을 후불탱화로 두르고 보성강을 구품연지九品蓮池로 앞에 두었으니, 그 아니 행복하실까. 겨우내 미뤘던 단청불사를 새롭게 시작한 것인지 땅에는 초록빛이 배어나고, 이 꽃 저 꽃 덩달아 피어나고 있으니 탑이 없으면 또 어떨까. 아직 잎이 나지 않아 깡마른 대추나무 세 그루면 탑으로 충분하고 생뚱맞지만 훤칠하게 키가 큰 전봇대는 금당 앞 석등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_310쪽
9장 무안 총지사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계신 그 많은 부처님들 중, 유독 우리나라의 부처님만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리 옛사람들의 마음이며 그 순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장승 또한 다르지 않다. 불상은 그 상호나 자세와 같은 것들이 정형화되어 있지만 장승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있다면 부릅뜬 퉁방울눈과 남자의 경우 턱 아래에 채수염이 달리고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 정도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것은 얼굴만 강조해 조각하고 몸체는 밋밋한 돌기둥 그대로를 두되 거기에 장승의 역할을 알리는 글씨를 새기는 정도다._347쪽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남도의 절터로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다
전라남도의 특별한 폐사지 아홉 곳을 가다
사실 폐사지廢寺址는 중요성에 비해 그렇게 인기 있는 답사지는 아니다. '폐허'라는 이미지가 답사객들의 발길을 막기 때문이다. 잘해야 석조 유물 몇 점, 아니면 텅 빈 터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중시하는 이 스펙터클의 공백을 저자 이지누는 가볍게 넘어선다. 그는 그것이 공백이라고도 생각지 않고 오히려 폐사지만이 지닌 미적 가치에 주목한다.
폐허란 그저 지저분해서 반드시 정리하고 깔끔하게 정돈해야 할 공간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폐허의 스산한 풍경이 혐오감이나 두려움만 발생시키던가.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이란 음양陰陽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그중 어느 하나가 다른 어떤 것에 비해 우월하거나 우선하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은 비단 폐사지를 다니면서 얻은 것만은 아니다. 그 이전,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DMZ와 민통선 지역을 다녔던 적이 있다. 또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이후 문을 닫기 시작했던 태백과 사북 그리고 고한 지역의 무수한 폐광은 물론, 서해안의 염전, 도시의 재개발지역들에 대한 사진 작업을 10여 년 넘게 하고 난 후 비로소 깨달았다. 폐허가 인간의 본성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톺아보지 못하는 눈과 마음으로 어찌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_240쪽
그는 이 특별한 아름다움에 취해 전국에 산재한 폐사지를 수도 없이 찾아갔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갈무리로서, 전라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답사해 길어 올린 기록이다. 모두 여덟 권으로 기획된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는 앞으로 전북, 충청, 경기, 경주, 강원, 경남, 경북으로 차례차례 이어질 것이다. 이번 책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이하 《마음과 짝하지 마라》)는 맑은 선풍이 맹렬했던 남도의 폐사지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오롯이 담았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용암사터,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 무안 총지사터 등 신중하게 선별한 아홉 곳의 폐사지는 하나하나 눈여겨볼 만하다. 그런데 저자는 왜 전국 5,400여 곳의 폐사지 가운데에서도 전라남도를 그 첫 번째로 택했을까?
남도는 불교문화가 활발히 꽃을 피우던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앙정부인 경주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고려의 개경, 조선의 한양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사정거리 안에 단 한 차례도 있지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경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낙후되었지만 오히려 사상은 분방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불교사상은 물론 불교미술 또한 여타 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기존 질서와는 다른 불교문화는 우리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남도는 아름답다._8쪽
전라남도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한반도 안에서도 독특한 불교문화의 흔적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라남도는 수차례 한반도에 새로운 사상적 기운을 불어넣었다. 나말여초에 완도 청해진을 통해 선종 불교를 받아들이는가 하면, 고려시대에는 수정결사와 정혜결사 등 선종과 교종을 아우르는 결사운동의 진원지였다. 또 조선 후기에는 두륜산 대흥사를 중심으로 유교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러한 사상적 역동성은 불교미술의 새로움으로도 이어져 전라남도의 불교문화 전반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 흔적이 폐사지에 아련하고 신비하게 남아 있기에 저자는 첫 발걸음을 전라남도로 향한 것이다.
절터를 가득 담은 인문학적 카메라와 펜
이지누는 한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 불리던 계간지 〈디새집〉을 만들며 보여줬던 실력을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디새집〉은 2000년대 초 한 일간지에서 '잡지' 형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그만큼 사진과 기사의 퀄리티가 웬만한 일반 단행본 못지않고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폐사지는 여백이 많은 까닭에 어설픈 사진과 글 실력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초라한 풍경만을 더해 기존의 폐사지에 대한 편견만 더할 것이다. 다행히 이지누는 《마음과 짝하지 마라》에서 이를 온전히 감당해낸다. 관련 인문학적 자료를 섭렵한 후에 그의 렌즈와 펜 끝이 향하는 지점은 적확하고 아름답다. 이 책에 실린 100컷의 사진은 저마다 소장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폐사지는 주변의 자연과 잘 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비록 화려한 전각이나 탱화 따위는 없을지언정 남루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은 겨우내 미뤘던 단청불사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며, 탑 주변을 에워싼 돌은 여느 우람한 외호신장 부럽지 않다. 이지누의 폐사지 사진이 특별한 것은 그가 자연과 절터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오히려 푸른 하늘을 지붕으로 하는 거대한 불전도량으로 이곳을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 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하실까"(310쪽)라는 탄성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땅과 인간, 그리고 불교에 뿌리박은 시적 표현들은 힘이 넘친다. 독특한 비유와 빛나는 상상력이 곳곳에 수놓아져 있다. 관념적 불교 용어는 자연의 대상물이나 현상과 짝지어지면서 살아 숨 쉬는 용어로 탈바꿈된다. 또 비유가 비유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봄의 해가 돈오頓悟라면 오늘 해는 점수漸修에 가깝다. 지난봄에 마주친 해는 솟아오르는 것도 금세였지만 떠올라서도 이내 발끈하며 대지를 밝히고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오늘 해는 오래도록 산등성이를 달구는 것은 물론 점차 하늘을 물들인 후, 차츰차츰 산하대지로 번져나가며 자연이 지닌 본연의 색을 되찾아주고 있었다._24쪽
꽃으로 탑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잠시 눈길을 빼앗기는가 싶었지만, 눈길은 얼른 산다화에게로 돌아왔다. 붉디붉은 산다화 몇 송이가 홀연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툭, 자유낙하의 쏜살같음. 그뿐이다. 뒤이어 꽃들이 더러 떨어졌지만, 그들은 아주 떠나버린 것이 아니다. 제 몸을 던져 깨달음을 구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인가. 새벽의 적막을 깨트리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꽃들은 제 몸을 던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베풀었다. 산다화는 나뭇가지에서뿐 아니라 땅에서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마치 떨어진 그곳이 제자리인 양 자리를 잡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두고 어찌 꽃이 피었을 때만 꽃이며 졌을 때는 꽃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들은 이미 꽃이었으며 아직 꽃이다. 그러니 꽃 피는 것만 좋아할 일이 아니며 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일이 아니다._268쪽
이지누는 단지 단발성 방문으로 교묘하게 책을 짜 맞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폐사지와 마주하며 그곳 스스로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같은 장소라도 여러 차례 발걸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기다림 속에서 농익어 터져 나온 표현이기에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웃자라기 쉬운 말의 속성을 경계하며, 시간을 두고 끈질기게 삭이고 삭여 일구어낸 글들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묘하게도 시간이 적층된 폐사지를 닮았다.
'절터인문학', 폐사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단지 개인적인 감상만이 이 책의 글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미학적, 인문학적으로 알찬 지식들이 글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가히 '절터인문학'이라고 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그 시대 민초나 천대 받던 스님들의 애환이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종이 부역'이다.
당시 각 사찰마다 만들어 바쳐야 할 종이의 할당량이 해마다 정해져 있었으며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할 때는 대신 돈으로 갚아야 했다. 하지만 돈으로 갚을 능력이 없는 절에서는 죽도록 일을 해서 부과된 할당량을 채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수행정진이나 불전을 돌보기는커녕 종일 종이 뜨는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리하여 승려의 길을 버리거나 앞다투어 종이 부역이 없는 다른 절을 찾아 떠나고 말았으니, 부역이 극심한 절은 황폐해지고 폐사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_118쪽
이 책의 3장에 소개되어 있는 벌교 징광사는 쟁쟁한 스님들이 거쳐 간 도량이었지만 지금은 폐사되어 웃자란 풀들만 가득하다. 경판을 찍어낼 설비를 갖춘 것이 빌미가 되어 극심한 종이 부역이 주어졌던 것이다. 종이 부역은 조선시대에 수많은 절들을 폐사시키는 원인이었는데, 심지어 양산 통도사에는 종이 부역을 탕감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비석까지 세웠다. 저자 이지누는 이처럼 폐사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백성들의 애환까지 가슴 속에 담아 절터인문학을 구성해나간다. 한편 유물에 대한 치밀한 불교미학적 분석과 고문서 상의 흥미로운 기록들도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 마애불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이 있다. 먼저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 작은 보살상 혹은 선재동자나 동자상으로 보이는 인물상을 더불어 새겨 놓은 것이다. 양쪽에 모두 있다면 협시脇侍로 볼 수 있겠으나 덜렁 혼자뿐이어서 무엇이라 규정하기가 난감하다. 다음으로 광배의 화려함이다.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이 모두 표현되었고, 신광은 바깥쪽으로 화염문을, 안쪽에는 당초문을 새겼다. 머리 뒤의 두광은 안쪽에 단엽연화문을 새기고 당초문을 그 둘레에 다시 새겼으며, 바깥에는 화염문까지 새겨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_217쪽
(창주滄洲 정상은) 하늘이 흐린 28일에 용암사에 다다라 그 어떤 유사들도 표현하지 않은 내용을 남겼다. "5층석탑이 있는데 동탑과의 사이에 몹시 기이한 미륵상을 새겨 놓았다有石塔五層與東塔對立間巨崖刻彌勒像甚奇"가 그것이다. 더불어 그곳에서 산등성이를 돌자 석굴이 나왔는데, 아흔 살의 노승이 머물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 노승은 "용암 아래로 금돼지가 아침저녁 오갔는데, 부처를 다 그릴 때까지 말을 타고 호위했다고 한다于此龍巖下 金猪朝夕來 護騎行竟寫佛去云"고 말했다. 물론 이는 노승이 직접 본 것은 아니며 예전에 공부를 할 당시 전해들은 이야기다._210쪽
폐사지 연구의 어려운 점은 자료의 부족이다. 유물도 많지는 않거니와 기록도 드문드문하다. 이지누는 아홉 곳의 폐사지와 관련된 고문서 자료를 기본적으로 망라하고, 거기에 본인의 불교 미학적ㆍ역사적 지식을 동원해 폐사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때에 따라서는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할배요 여 부처는 희안하이 생기싯네요?" 대뜸 그렇게 묻자 어디서 무슨 볼일로 이런 마을까지 찾아 왔느냐고 꼬치꼬치 물으시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당동리에서 태어나 줄곧 그 자리에서 살았다는 그이는 "이게 뭔지 안다요. 부처가 부처를 업은 것이여, 할매 부처가 아그 부처를 업고 어데를 간다 이거여" "그래요, 어디를 가시는데요?"라고 다시 묻자 빙긋이 웃음 머금은 얼굴로 "거그가 어덴지는 우덜도 모르제, 그래도 가기는 어데 좋은 데를 가는 갑소. 그릉께 저 팔 옆에도 아그들이 안 달라붙었소"라고 했다._314~315쪽
절터는 보통의 관광지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깊은 세월에 깎여 주변의 꽃과 돌을 닮은 석조 유물들은 그 자체로 '무심無心'을 강론하는 듯하며, 동이 틀 때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돌부처는 거룩한 법열을 절로 일으킨다. 이지누 작가는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오롯이 글과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남도의 폐사지 아홉 곳을 여러 차례 반복해 순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로지 '터'와 빈약한 유물들만 남았을 거라는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그가 확인한 절터에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스님ㆍ선비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그득그득했다. 오랜 세월이 자아내는 절터의 이야기를 시적인 글과 사진을 통해 접하며 인문학적 감수성의 진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4장 화순 운주사터
그 때문이다. 운주사가 생각날 때마다 이곳에 있는 무엇이 날카롭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형체도 불분명한 것이 짓누르듯이 무겁게 다가온 까닭 말이다. 그것은 전체였다. 그래서 불쑥 이곳에 대한 생각에 휩싸이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 있는 불상과 탑 그리고 바람과 햇살 모든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곁에 있는 다른 것들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록 크기는 다를지언정 그들은 서로 계급도 없고 계층도 나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들은 평등했으며 부처인 듯 아닌 듯 선정에 들어 화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밤새 모진 바람에 휘날리던 눈이 울퉁불퉁한 들판에 고른 두께로 쌓이듯, 그들 또한 서로 생김새는 다를지언정 두께와 깊이는 같았다._140쪽
5장 영암 용암사터
힘겹게 동탑에서 고개 돌리면 산벚꽃 만발한 산을 등지고 선 서탑이 또 눈길을 붙들었으니, 마음은 더욱 벅차오르기만 할 뿐 숨 고를 겨를조차 없다. 탑은 다듬지 않은 긴 호박과도 같은 자연석을 기단으로 삼고 한껏 아침 햇살을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서탑은 월출산을 수놓은 그 많은 바위 중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수더분했다. 주위에 화려한 단청을 입힌 전각 한 칸 없었지만, 그는 초라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거져 드러나지 않으니 그 두루뭉술한 자태가 풍기는 맵시 또한 빼어났다. 탑 뒤, 먼 산에는 새잎이 찬란한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하얀 산벚꽃들까지 무리지어 피어났으며, 갓 움을 틔운 새잎들이 빚어내는 여린 색들이 찬란해 겨우 일으킨 마음은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_194~195쪽
6장 영암 쌍계사터
길이 좋아진 덕분에 험하던 때와는 달리 수월하게 오르는가 싶었는데 금세 돌장승이 눈앞에 서 있었다. 다행이었다. 길은 달라졌을지언정 그와 주변은 그대로였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 퉁방울눈과 주먹코를 하고서도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 것인지 어깨를 웅크린 채 서 있었다. 때로는 뻐드렁니를 뽐내거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입 밖으로 꺼내 놓은 채, 제 딴에는 한껏 험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섭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표정은 돌장승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 매력에 빠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들을 찾아 다녔으니, 이곳 쌍계사터의 돌장승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사찰장승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빼어나다._241쪽
7장 강진 월남사터
그랬다. 드문드문 동박새의 지저귐이 고즈넉함을 일깨우는 새벽의 절터는 그 자체로 이미 시詩다. 산다화 붉은빛 가득 드리운 탑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나마 말하지 않음은 차를 마실 때 굳이 해야 할 일이다. 홀로 앉아 마시는 차가 풍기는 향은 차향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사람의 향일 것이기 때문이다. 명선茗禪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는 선과 차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홀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입선入禪과도 같다. 초의선사 의순은 《다신전茶神傳》에서 말한다. "차를 마실 때에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고귀하다飮茶以客少爲貴." 차를 마시는 것은 자연을 호흡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본디의 자신을 보는 행위다. 더구나 홀로 마시는 차임에랴. 혼탁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맑고 고요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 아니던가. 비록 찻잔이 손 안에 쏙 들어오지만 그것이 호수보다 더 넓고 깊은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_274쪽
8장 곡성 당동리 절터
해가 비쳐들자 마지摩旨를 올리려는지 바람이 찾아왔다. 그 바람에 정신을 추슬러 바라보니 댓잎은 밤새 머금은 이슬을 털어내려 자꾸만 뒤채고, 부처님은 햇살과 바람 그리고 이슬로 공양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앞의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 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 하실까"라고 말이다. 푸른 하늘을 닫집으로 삼았으며 대밭을 후불탱화로 두르고 보성강을 구품연지九品蓮池로 앞에 두었으니, 그 아니 행복하실까. 겨우내 미뤘던 단청불사를 새롭게 시작한 것인지 땅에는 초록빛이 배어나고, 이 꽃 저 꽃 덩달아 피어나고 있으니 탑이 없으면 또 어떨까. 아직 잎이 나지 않아 깡마른 대추나무 세 그루면 탑으로 충분하고 생뚱맞지만 훤칠하게 키가 큰 전봇대는 금당 앞 석등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_310쪽
9장 무안 총지사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계신 그 많은 부처님들 중, 유독 우리나라의 부처님만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리 옛사람들의 마음이며 그 순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장승 또한 다르지 않다. 불상은 그 상호나 자세와 같은 것들이 정형화되어 있지만 장승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있다면 부릅뜬 퉁방울눈과 남자의 경우 턱 아래에 채수염이 달리고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 정도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것은 얼굴만 강조해 조각하고 몸체는 밋밋한 돌기둥 그대로를 두되 거기에 장승의 역할을 알리는 글씨를 새기는 정도다._347쪽
목차
목차
1장 진도 금골산 토굴터∥새벽하늘에 피어난 하얀 꽃|선비가 읊은 게偈|마애불 앞에서 해원을 빌다|⊙ 금골산 삼굴
2장 장흥 탑산사터∥동살에 물든 아육왕 탑, 구름이 뒤덮고|설화는 설화일 때 가장 아름다운 법|바람 소리마저 천관보살의 설법 같구나|화엄이 은빛 억새가 되어 온 산에 가득하네|⊙ 천관산 탑산사터
3장 벌교 징광사터∥수조엽락이면 체로금풍이라|백대의 원수가 되려면 나를 다비하시오|철감국사가 쉬면서 선법을 닦던 곳|맑은 선풍이 에워쌌던 선종 사찰|염불이나 선은 같은 것이라네|가혹한 종이 부역과 절을 떠나는 스님들|유불은 서로 다르지만 또 같은 것|중도 선비도 아닌 초의선사|⊙ 금화산 징광사터
4장 화순 운주사터∥절인가 하면 절터이고, 절터인가 하면 절이네|진한 여운이 넘실거리는 현재진행형|법당이 된 쌍배불감과 추석 때의 난장|운주사의 두 축, 천불천탑과 쌍배불감|전체가 하나를 이뤄 큰 너울이 되었네|⊙ 천불산 운주사터
5장 영암 용암사터∥누가 눈물겨운 그곳에 절집을 지었는가|먼 곳에서만 보이는 절터의 본래면목|애써 모른 척해도 이내 그리워지는 정경|산중에 은거 중인 절터와 마애불|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곧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유성이 흐르듯, 불꽃이 튀듯 해야 하는 수행|높이 계신 까닭은 구름을 타고 하생하려는 것인가|특이한 1마애불 쌍탑의 가람 구조|모질게도 잊히지 않는 붉은 노을빛|⊙ 월출산 용암사터
6장 영암 쌍계사터∥퉁방울눈과 주먹코를 지닌 순박한 돌장승|화엄의 종장들이 모여든 그윽한 골짜기|땀을 흘린 불상과 탑에 묻은 햇살|⊙ 영암 쌍계사터와 성풍사터
7장 강진 월남사터∥공명이란 하나의 깨질 시루이네|저 위, 저 건너 혹은 고개 너머|전체로 살고 전체로 죽다|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 월출산 월남사터
8장 곡성 당동리 절터∥젓갈처럼 짭짤한 보성강 풍경|이것이 강인가, 아니면 술인가|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하실까|"거그가 어덴지는 우덜도 모르제"|⊙ 곡성 당동리 절터
9장 무안 총지사터∥무뚝뚝하게 서로의 연꽃 방죽을 거닐다|옴 마니 반메 홈|촌옹의 분개, 그리고 권세가들의 탐욕|사람이나 사물이나 지켜야 할 제자리가 있다|민간신앙과 불교의 만남, 돌장승|"묵고 살라고 안 그랬소, 땅이라도 파 묵어야지."|⊙ 무안 총지사터
2장 장흥 탑산사터∥동살에 물든 아육왕 탑, 구름이 뒤덮고|설화는 설화일 때 가장 아름다운 법|바람 소리마저 천관보살의 설법 같구나|화엄이 은빛 억새가 되어 온 산에 가득하네|⊙ 천관산 탑산사터
3장 벌교 징광사터∥수조엽락이면 체로금풍이라|백대의 원수가 되려면 나를 다비하시오|철감국사가 쉬면서 선법을 닦던 곳|맑은 선풍이 에워쌌던 선종 사찰|염불이나 선은 같은 것이라네|가혹한 종이 부역과 절을 떠나는 스님들|유불은 서로 다르지만 또 같은 것|중도 선비도 아닌 초의선사|⊙ 금화산 징광사터
4장 화순 운주사터∥절인가 하면 절터이고, 절터인가 하면 절이네|진한 여운이 넘실거리는 현재진행형|법당이 된 쌍배불감과 추석 때의 난장|운주사의 두 축, 천불천탑과 쌍배불감|전체가 하나를 이뤄 큰 너울이 되었네|⊙ 천불산 운주사터
5장 영암 용암사터∥누가 눈물겨운 그곳에 절집을 지었는가|먼 곳에서만 보이는 절터의 본래면목|애써 모른 척해도 이내 그리워지는 정경|산중에 은거 중인 절터와 마애불|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곧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유성이 흐르듯, 불꽃이 튀듯 해야 하는 수행|높이 계신 까닭은 구름을 타고 하생하려는 것인가|특이한 1마애불 쌍탑의 가람 구조|모질게도 잊히지 않는 붉은 노을빛|⊙ 월출산 용암사터
6장 영암 쌍계사터∥퉁방울눈과 주먹코를 지닌 순박한 돌장승|화엄의 종장들이 모여든 그윽한 골짜기|땀을 흘린 불상과 탑에 묻은 햇살|⊙ 영암 쌍계사터와 성풍사터
7장 강진 월남사터∥공명이란 하나의 깨질 시루이네|저 위, 저 건너 혹은 고개 너머|전체로 살고 전체로 죽다|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 월출산 월남사터
8장 곡성 당동리 절터∥젓갈처럼 짭짤한 보성강 풍경|이것이 강인가, 아니면 술인가|그 어느 근사한 대웅전의 부처님이 이만하실까|"거그가 어덴지는 우덜도 모르제"|⊙ 곡성 당동리 절터
9장 무안 총지사터∥무뚝뚝하게 서로의 연꽃 방죽을 거닐다|옴 마니 반메 홈|촌옹의 분개, 그리고 권세가들의 탐욕|사람이나 사물이나 지켜야 할 제자리가 있다|민간신앙과 불교의 만남, 돌장승|"묵고 살라고 안 그랬소, 땅이라도 파 묵어야지."|⊙ 무안 총지사터
저자
저자
이지누
저자 이지누는, 한국 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톺아보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구산선문 답사를 하며 불교문화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1992년에 발간된 《나말여초의 선종사상사 연구》(이론과 실천, 추만호)에 사진작업을 했다. 그리고 퇴옹 성철스님 다비식을 시작으로 지금껏 큰 스님들의 다비식을 기록해 오고 있다. 2001년에는 한국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계간지인 《디새집》(열림원)의 편집인으로써 창간을 주도했다. 그 후 〈불교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나라 안 폐사지에 대한 기록은 물론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산재한 마애불의 기록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불교문화 외에 민통선 지역이나 비무장지대 그리고 한강에 대한 인문학적인 조사와 사진기록을 하고 있으며, 이 땅의 순정한 민초들에 대한 작업도 이어 오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샘터),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 《잃어버린 풍경 1.2》(호미), 《이지누의 집 이야기》(삼인), 《관독일기》(호미) 들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