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년
김성희 만화집 『몹쓸 년』. 나이 찬 딸에게 옷을 사줄 테니 선보러 나가라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예술을 하는 동생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끝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응원을 보내는 오빠. 결혼에 이어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치르며 현실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친구까지 만화가로 한 길을 걷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소한 삶과 풍경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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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내가 내 엄마에게 몹쓸년이었고, 내 스스로에게 몹쓸년이었던 기억들의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서른 살을 맞는 그녀가 있다. 결혼하지 않았고, 만화를 그리지만 앞날이 그리 튼튼한 것만은 아니다. 서른은 조금 설레는 맘으로 맞이했던 스무 살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부모는 더 나이 들어가고, 오빠와 여동생도 결혼을 하고, 또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친구도 결혼을 하고 아기 엄마가 된다.
만화는 그녀의 자잘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가운데 그 속의 미세한 흔들림을 포착하고 있다. 나이 찬 딸에게 옷을 사줄 테니 선보러 나가라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예술을 하는 동생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끝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응원을 보내는 오빠, 그리고 결혼에 이어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치르며 현실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친구…….
그녀는 훌쩍 서른 맞이 여행을 떠난다. 아릿한 어린 시절이 기억들은 현실의 시간들과 교차되는 가운데…… 푸른 빛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조금 단단해졌고, 좀 더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제 결혼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꼭 만나야 할 사랑을 기다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꿈을 향해 질주를 시작한다.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붓으로 그린 진정성이 담긴 그림체와 아담한 손글씨가 보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동시에 높은 흡인력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애정 어린 관심으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작가이다.
<작가의 말>
서른은, 대답을 듣기를 원했다.
정말이지! 서른을 맞이하기 전엔 몰랐다. 이미 존재했던 '간격'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지금의 내 나이의 엄마와 아빠는 세 아이와 매일 살아남아야 했고, 80년대 고도성장의 노동일꾼으로 자신의 꿈조차 '내 아이의 꿈'으로 꾸었다. 처음으로 내 부모와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당혹스러움. '나를 낳고 키운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된 나 자신. 나는 어제처럼 서른을 먹었지만, 내 부모와 사회에서는 '서른'의 도달 지점에서 나를 맞았다.
그 엄마의 딸은 '그 자신의 이유'로만 꿈을 꾸었다.
그것이 우리 세대의 자의식이었다. 그건 내 부모 세대가 우리에게 마련해준 소중한 무언가 이었지만, '그 자신의 이유'가 사회와 부모가 듣기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꿈이 초라한 형태로 눈앞에 있음만을 확인하는 형국이었을 것이다. 속상하고 답답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희생만 하고 산 자신들의 삶이 아깝지 않았었을까. 그러나 그건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또 다른 방식에서의 긍정되는 일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그 자신이 살아온 여자로서의 삶, 가부장의 권위 속에서, 사회에 적응하고 안정된 삶을 취하는 방식을 자신의 아이에게 제안하기에, 자신의 삶은 충분히 책임을 다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이 옳다고 말이다. 세대 차이의 갈등은 서로의 옳음이 다른 시간에 확인될 일이니, 화해될 일도 아니고 답답할 노릇일 뿐이다.
딸이어서 힘들었다. 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생각이 앞섰기에 불편했다.
내 부모의 노동의 대가가 만들어준 자의식이기에, 보답해도 모자랄 일인데, 행여나 그런 말과 시선을 피하기만도 조급했다. 참 못났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옳은 것은 있었다. 스스로에게 자연스런 이유로 오지 않는, 통과의례는 현재의 몫이 아닐 것이라는 되뇌임이었다. 나잇값도, 딸 값도 못 치른 서른의 통과의례들이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도 멋쩍은 동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몹쓸년'이라는 호명으로 시작된다.
내가 내 엄마에게 몹쓸년이었고, 내 스스로에게 몹쓸년이었던 기억들의 이야기여서 그렇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만, 시차를 둔 우리의 시간을 이해 못 해 서로 꽤나 '몹쓸' 사람들 좀 되지 않았나. 그래도 '몹쓸년', 이 어감에는 애틋한 무언가가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나 싶다. 후회스러워, 못 지워 그런 걸까. 스스로도 떠올리고 싶지 않아 그런 걸까. 그 시간들이 지금도 오늘의 나에게로 흘러온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의 나와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참 애썼다고 안아주고 싶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행복했던 촉감은 그날의 만족으로 모두 소비되었다. 기억의 자리에 일상의 불행이 더 많은 것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 기억이 우리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더 많기 때문 아닐까. "더 사랑하라고, 매일매일 더 사랑하라고. 또 다른 내일이 지금의 나를 안아줄 테니. 견디라고."
<추천사>
작년 가을, 내가 있는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마당에 어느 날 텐트 하나가 쳐졌다. 당시 고통스런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학교가 온통 힘들었던 시기이다. 황지우 전 총장이 사표를 낸 뒤 시간 강사 위촉이 취소되자 학생 중 하나가 황 교수의 강의를 듣고 싶다며 일인 텐트 농성이 시작된 것이다. 외로운 텐트의 노란 창. 하지만 날이 갈수록 텐트는 하나 둘 늘어나 작은 마을을 이루어버렸다. 텐트 하나의 힘.
그 텐트의 창 앞에 작품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펼쳐보았다. 만화였다. 읽어 나가니 좀 맹맹하다. 특별히 매력적인 그림체도 아니고 예리한 연출도 아니어서 심심한 채로 그만 볼까 하다가 이왕 집은 것이니 하고 넘겨보았다. 역시 파도 같은 짜릿한 작품도 아니고 천둥 번개가 치는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인 작품도 아니었다. 그런데 묘한 여운이 남는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잊을 수 없는 그림자를 마음에 남기는데 이게 뭐지?
기승전결도 굳이 없는 이야기는 30대 미혼 여성으로 사는 일을 마치 싱크대 앞 도마 위에 저녁거리 고등어를 툭 반 토막 내어 놓은 것처럼 그냥 보여준다. 아니 고등어 째로 그냥 던져놓은 것 같다. 그러나 세숫대야 안의 물같이 평범하고 작은 일렁거림이 점점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림도 묘한 자유로움과 매력을 더하고 기승전결을 넘어버린 연출 또한 그 담담함이 심상찮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솜처럼 느껴지던 것이 무언가에 한 방울 두 방울 젖어들어 점점 눅눅해지더니 나중엔 물에 젖은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우리의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마침내 가슴을 시리게 하고 마는 것이다.
이 시대 여성의 삶. 우리의 삶. 그 긴 그림자.
그리고 다시 텐트의 창을 바라본다. 그래서 텐트의 주인, 이 몹쓸년의 작품을 들고 오랫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나는 서 있었다.
- 박재동(만화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 어느 몹쓸년의 창 앞에서
내가 살지 않았던 삶에 대해 듣는 것은 생경하고 뭉클한 경험이다. "내가 하지 않은 것들 안에 어떤 행복이나 삶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라는 작가의 말은 우리가 느끼는 생경함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이 뭉클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살지 않았던 삶에서 내 삶의 근원을 보는 듯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것은 누구나의 삶이 근본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낯선 삶에 비추어 보니 내 삶이 비로소 보이더라는 깨달음일 수도 있을 것이고, 삶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같은 언어를 가진 이로서의 공감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언어. 그것은 한국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을 클로즈업 시킬 때, 풍경 속의 외로운 등을 지울 것처럼 드러낼 때, 아무도 없는 거리에 늘어진 전봇대의 그림자를 꾸물꾸물 그려 넣을 때, 그 풍경 속에서 그녀가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숨소리이거나 알아듣기 힘든 끊어진 단어일 수도 있지만, 또한 힘이기도 하다. "이해받고 싶다. 아니, 이해하게 하는 게 힘인 거 같다"라며 작가 스스로가 갈망하는 힘. 힘없어서 역설적으로 가능한 힘. 귀 기울이게 하는, 그런 힘. 그 힘으로 이 한 권의 책이 채워졌다. 이 책 안의 수많은 말줄임표를 헤아리는 것 또한, 생경하고 뭉클한 경험이 될 것이다.
- 박사(북 칼럼니스트,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지도는 지구보다 크다》저자)
내가 가장 객관적이라며 손을 번쩍 들어 모두가 아웅대는 시끄러운 세상 위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직한 것들은 대개 치열한 주관으로부터 발견된다. 그래서 나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한다. 《몹쓸년》은 작가 자신과 주변의 풍경을 담은 이야기다. 그저 막연히 기록되기보다 꼼꼼히 사유되고 있는 이 풍경들은 언뜻 아름답지만, 사실 무언가를 규명해내려는 분투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 끝에서 우리는 '나'에 대한 이야기란 결국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소박하지만 세심하고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글과 그림을 만난 게 기쁘고 다행스럽다.
- 허지웅(칼럼니스트, 《대한민국 표류기》저자)
목차
목차
마지막 순간, 유한양행
소풍
이기적이고 속 좁은 트라이앵글
몹쓸년
여자 친구들
어머니의 텃밭
아빠를 위하여
이대로 팔려 갈 수 없다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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