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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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홍경래를 향한 사랑과 충절 그리고 야망과 배반의 서사시!
이공복 대하소설『홍경래』제2권. 200여 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조선시대의 혁명군 홍경래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다시 조명한 작품이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민초들의 삶이 피폐하게 된 당시 상황에서 변화를 꿈꾸었던 한 영웅의 야망과 사랑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실제 이야기와는 달리 홍경래의 아내 정순을 비롯한 명옥과 선희 등 세 명의 여인을 가공의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더했다.
이공복 대하소설『홍경래』제2권. 200여 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조선시대의 혁명군 홍경래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다시 조명한 작품이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민초들의 삶이 피폐하게 된 당시 상황에서 변화를 꿈꾸었던 한 영웅의 야망과 사랑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실제 이야기와는 달리 홍경래의 아내 정순을 비롯한 명옥과 선희 등 세 명의 여인을 가공의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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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0년만에 부활한 홍경래!
그가 미국에서 걸어와 우리 앞에 섰다.
"나라를 바꾸는 것은 불만계층이 아니라 민중이다"
사랑과 야망, 그리고 배반의 대서사시
미국에 있는 팔순의 저자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썼다. 200여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영웅 홍경래. 횃불처럼 타올랐던 그의 웅혼한 애민정신과 불굴의 항쟁정신이 우리의 역사속에서 사라져가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를 단지 반란에 실패한 비운의 영웅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홍경래가 대업을 도모하며 얻은 깨달음을 우리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유년시절 평양에 살다가 태평양 건너 먼 이국 땅으로 이민해 살고 있는 노옹(老翁)이 그의 영웅 정신을 늘 마음속으로 그리다 소설속의 인물로 부활시켰다. 이제 홍경래가 미국에서 뚜벅 뚜벅 걸어와서 우리 앞에 선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남북으로 갈린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6월에 읽어야할 책
10년간 연필로 꾹꾹 눌러 쓴 A4용지 120장에 담아낸 인간 홍경래 이야기 !
"나라가 부패할 때 백성의 삶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세상을 꿈꾼 영웅 홍경래의 이야기 !
그를 둘러싼 이들의 배신 그리고 홍경래의 인간애와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민초들의 삶이 피폐하게 된 상황에서 불현듯 일어나 변화를 꿈꾼 영웅의 야망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를 둘러싼 배신과 음모.
200여년 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슬며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생각케 하는 소설. 진정한 지도자와 백성의 통합을 되묻게 하는 이 소설은, 국토 분단과 양핵화 현상이 깊어가는 우리 시대에 적절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혁명군 홍경래의 일대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통합의 문제를 생각케 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부터 10년간 연필로 꾹꾹 눌러 집필한 뒤 책상 서랍에 쳐박아놓았다가 다시 글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은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태어난 주인공인 '홍경래'가 시골마을에서 글공부에 여념이 없는 모습과 빈한한 살림살이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홍경래는 도량이 크고 사내다운데다 문무에도 능하고 의협심 역시 강했다. 이후 홍경래는 문장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이 만연한 과거에서 낙방하고 전국을 떠돌며 민중들의 억눌림과 곤궁함을 보고 부조리에 반기를 든다. 홍경래는 백성 모두가 평등하고 억울한 사람 없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꿈꾼다.
이를 위해 홍경래는 이름난 장사 김사용, 서얼출신의 우군칙, 시문에 능한 김창시, 평안도 만석꾼 이희저등 과 피를 나누기로 하고 가산군 다복동에 병사와 대장간을 마련한 뒤 무기제조와 군사훈련을 하며 거사 준비에 들어간다. 특히 홍경래는 많은 백성들을 혁명단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냇가에 금가루를 뿌려놓고 마치 사금이 잘 나는 곳으로 소문나게 한 뒤 굶주림에 허덕이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갈구하는 백성들을 단원들로 모집해 세력를 키우게 된다.
이 책은 실제 이야기와는 달리 그의 아내 정순을 비롯 명옥과 선희 등 세 명의 여인을 가공의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홍경래가 이끄는 혁명단은 박천읍내와 가산군을 접수하며 승승장구 한다. 그리고 각처에서 몰려든 지원자들과 함께 동림산성과 서림산성을 한꺼번에 점령한 가운데 안주성만 빼앗으면 평안도는 손에 다 들어온거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부하장수 이인배가 참혹하게 가산군 부자를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보고 받은 홍경래가 "그들이 한 짓을 우리도 똑같이 되풀이한다면 ...우리가 그들 보다 나은 게 무언가?"라며 이인배를 질타하고 직위을 박탈하자 이인배는 이에 반발해 이무경 형제와 함께 홍경래를 죽여 관에 바쳐 공을 세울 것을 모의한다. 이들로 부터 갑작스럽게 습격을 받은 홍경래는 머리를 크게 다쳐 하루를 남겨둔 안주성 공격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때문에 혁명군은 공격의 시기를 놓쳤으나 여러 곳에서 관군과의 공방전을 벌이며 선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이에 관군의 군세가 더 커지게 되면서 정주성에 주둔한 혁명군을 둘러싸며 점점 조여오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혁명단은 관군과의 싸움에서 전승을 거두곤 한다. 그러던 와중에 혁명단은 정주성을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나와 먼저 성을 나가 포수대를 데리러 먼저 성을 나간 동지들과 합류하기로 한다. 이런 결정에 따라 혁명단은 무기를 들고 성밖으로 나가 일대 전투를 벌이고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띠우고 있던 중에 군자금을 가지고 포수대를 데리고 오기로 한 동지 송지렴이 배반자로 돌변해 총을 쏘아 댐으로써 정주성 탈출의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만다. 이후 관군은 새로운 작전으로 홍경래가 지키고 있던 정주성의 성곽을 화약으로 폭발시켜 무너뜨리며 성으로 공격해 옴으로써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혁명단은 갑작스런 공격에 참담한 결말을 맺게 된다. 홍경래는 달려오는 관군의 무리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다. 소설은 홍경래를 흠모하던 명옥이 따라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역사 속의 인물 홍경래를 그대로 소설 속에 부활시켜 우리 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홍경래가 살던 시대의 사회적 갈등 구조나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야만 했던 이유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홍경래가 큰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실패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누구나 동등한 세상을 꿈꾸는 민중이 아닌 기득권을 빼앗겨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 주축을 삼았던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민심이라는 이유로 정권 투쟁에만 혈안이 되는 정치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차별대우 받는 평안도와 서북지역을 위한 혁명에 그쳤을 뿐 전국적인 민초들의 열망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남북이 갈려져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 던져주는 시사점 또한 적지 않다 하겠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부터 한국근대에 이르기 까지 일어난 3대 민중운동(1811년의 홍경래란, 1862년의 임술민란, 그리고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의 으뜸인 홍경래란이 어떻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나에 대한 궁금증을 딱딱한 역사서가 아닌 재미있는 소설책을 통해 풀고 있어 여름 휴가철의 심심함을 달래줄 듯 하다.
▶▶주요 등장인물
홍경래 : 주인공. 평안도 용강 출신. 몰락한 양반집 아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등지를 돌아보며 거사를 도모. '청운도사'라는 이름으로 인물들을 모음. 평서대원수.
김사용 : 기운과 용맹이 뛰어난 혁명단의 부원수.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잡았다고 소문난 장사로 역사들을 혁명단에 가입시킴.
우군칙 : 홍삼 밀무역과 금광업에 종사해 크게 부를 축적했으나 서얼 출신이라는 부 당한 대우를 받는데에 불만을 품고 절에 들어가 중이 됨. 풍수와 관상, 사주에 밝음. 공인과 상인들의 협조를 구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지혜와 학식이 많은 혁명단의 군사.
김창시 : 혁명단의 주동자 시와 문에 능한 평안도의 명문장가. 하지만 고향이 곽산이라는 이유로 진사 벼슬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함. 낚시를 하며 허송세월을 하다 홍경래를 만남. 혁명단의 군사.
이희저 : 평안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으로 덕과 부를 지닌 인물. 혁명단의 무기제조 책임자로 혁명단의 도총.
백성두 : 백정. 평안도의 명포수로 이름을 날림. 홍경래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줌.
이정식 : 도적 두목. 홍경래에게 수만냥의 군자금을 냄.
이인배 : 한 때 홍경래의 영관이었으나 나중에 배신을 해 홍경래의 목을 노림.
송지렴 : 홍경래의 장수이었으나 산포수들을 합류시키겠다 군자금을 받아 성을 나간 뒤 흥청망청 쓰고 나중에는 관군에게 붙어 혁명단에 총을 겨눔.
정순 : 농부의 딸.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처녀로 홍경래의 백년가약을 맺음.
명옥 : 백성두의 딸로 홍경래를 사모하는 여인. 하지만 다른 데로 시집간 뒤 남편과의 사별로 혼자가 됨. 희고 갸름하고 예쁜 얼굴이며 명랑한 성격. 깔깔 거리고 잘 웃음. 남장으로 변장해 홍경래 혁명단에 종군함.
선희 : 도적 이정식에게 납치되어온 미모의 젊은 여인. 홍경래를 좋아함.
명석 : 백성두의 아들이자 명옥의 남동생로 홍경래가 이끄는 혁명단에 들어감.
▶▶줄거리
1. 기-홍경래의 분노
대접받지 못한 양반 집 아들로 태어난 홍경래는 어려서부터 유교와 풍수지리 및 총칼을 자유자재로 다루었으며 문무에도 출중했다. 사냥 중 포수 백성두를 만나 그의 딸 명옥과 첫사랑을 나누고 그녀의 아버지 백성두에게 사격술까지 배우고 포수들과도 교류를 쌓는다. 과거를 보러가던 중 산중에서 이정식의 산적 떼를 만나 그들과도 친분을 쌓는다. 명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 낙방 후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와 지역차별의 벽을 깨닫고 조상이 태어난 신분으로 대대로 살고 조상이 지은 죄의 대가를 대대로 치르는 연좌제에 분노한다. 그릇된 사회구조로 빚어진 공공연한 죄악이 만연한 병을 고치려면 살 속 깊이 고인 고름부터 빼야하고 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칼은 무력밖에 없다고 본다.
2. 승 - 간부 모집과 혁명 단 조직
진정한 백성의 소리를 듣기위해 팔도 탐방에 나선 그는 전국을 돌며 백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더욱 결심을 굳힌다. 서얼 우군칙을 비롯해 호걸 김창시, 만석꾼 이희저 등 농민, 상인, 부호 등 동지를 규합하며 혁명군은 조직하고 군자금을 마련에 나선다. 본부를 다복 동으로 정하고 지도자들을 모아 혁명 단을 조직한 후 양반이 아닌 정순과 혼인한 후 단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준비기간에 돌입한다. 그와 뜻에 동의한 도적 두목 이정식은 평생 모은 재물을 내놓고 자신이 아끼던 보검(寶劍)까지 선물한다.
3. 전 - 단원 확보와 군자금 마련
혁명 단이 결성되자 혁명의 본거지 다복 동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모으기 위해 강가에 금가루를 뿌려 사금장으로 만들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동지로 규합하고 군사훈련장을 위장한다. 동지들의 가족을 모두 성안으로 불러들이고 거사 전에 민심을 혼란시킬 것과 기병한 후의 민심을 생각해서 계획적으로 동요를 만들어 유행시키고 군자금을 위해 동전을 주조한다. 산포수대를 모집을 위해 송지렴에게 막대한 금액을 주어 보낸다. 단원들에게 살인, 도적, 강간 세 가지를 가장 중한 죄로 규정하고 어기면 사형에 처할 것을 선포한다. 혁명단은 안주성을 공격하기 위한 기병날짜를 8일 후로 정했다가 명옥을 겁탈하려던 송동순이 밤새 옥문을 부수고 도망감으로써 선천군과 박천군 등지에서 일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관가에 체포되는 바람에 다음 날을 기병일로 결정한다.
4. 전2 - 격문 선포와 출병 일 결정
관서지방의 원로들과 공사노비 천민들에게 격문을 통해 혁명의도를 선포한다. 출병 일을 결정하고 육천오백 명이 태풍같이 내려가 서울을 점령하고 궁성과 왕족들을 손 안에 넣고 간악한 위정자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대군사가 청색으로 된 군복을 입고 머리에는 홍건을 쓰고 장엄하게 출병하는데 수많은 깃발들이 높이 휘날리는 광경이 웅장하다. 아전들이던 파락 난당들이 홍경래군이 점령하면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고을을 점령을 한 후에는 몰락한 양반과 그리고 상인과 농민들이 무더기로 가담해 홍경래 군의 수는 날로 늘어갔다. 고을을 점령하면 관아의 무기를 확보하고 수령과 관리에게 정식 격문을 보내 항복 선서를 받고 전의 행실을 살펴서 유죄, 무죄를 결정지었다. 무죄이고 인물이 뛰어나면 다시 쓰고 죄가 있으면 공공연하게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난리가 나면 민심이 소동치고 피신할 것을 염려할 텐데 백성들은 오히려 길에 황토를 깔며 홍경래 군을 환영하고 홍경래가 그곳에 진을 치고 각종 명령을 내리는 동안, 그 마을 장정들이 몇 명씩 무리지어 와서 낫이나 도끼 같은 것을 들고 종군시켜달라고 간청한다. 홍경래를 흠모하던 명옥은 남장을 하고 남자만 있는 진중으로 몰래 들어간다.
5. 전 3-배반과 홍경래의 부상
전군은 기세를 올리고 북군 김사용은 서북 팔군을 점령하고 의주성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점령지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잘려 죽이는 등 포악한 대장 이인배를 규율에 의해 징계하자 이무경 형제 등 세 명의 배반자들이 암살을 기도해 홍경래는 출병 하루 전날 머리를 크게 다친다. 난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순조와 조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긴급회의를 열고 관군을 전적으로 지원한다. 홍경래의 부상으로 출병날짜가 지연되는 동안 관군은 사방에서 원조를 받고 병력을 키운다. 남장을 하고 그를 따라 종군하던 첫사랑 명옥의 지극한 간호로 회복은 되지만 완쾌되지 못한 몸으로 안주성 공격을 하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후퇴한다.
6. 전 4 - 혁명군의 정주성 탈출 실패
후퇴하여 정주성에서 농성을 벌이던 홍경래는 혁명군을 이끌고 나가 전투마다 승리한다. 그러나 북군 김사용의 일부가 패배하고 포수를 구하러 간 김창시가 친구의 배반으로 목이 잘리는 비극을 당한다. 혁명군에게 항복했던 선천부사였던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그 공을 빼앗으려다 발각되어 처형을 당한다. 관군의 방화로 식량이 부족하게 된 혁명군은 관군과 합의하에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부녀자를 성 밖으로 내보낸 후 관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다. 관군 유효원이 거의 패배할 즈음 혁명군의 군자금을 가지고 포수대를 데리고 오기로 한 송지렴이 혁명군을 배반하고 관군을 구출한다. 그 바람에 혁명군은 정주성 탈출에 실패하고 성안으로 후퇴하나 형세가 그리 유리하지 않았던 관군도 새로운 작전을 편다.
7. 결 - 성벽 폭파와 전사
정주 성벽까지 굴을 파고 굴 안에 화약 5천근을 설치해 성벽을 폭파시킨 관군은 성내로 들어와 총공격을 가해 혁명군은 마지막까지 그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홍경래는 자신의 실패원인을 신흥 상공업세력과 정치권력에서 배제됐던 몰락한 양반에 의해 추진되었던 반봉건 투쟁이 민중이 아닌 불만세력을 가진 부호나 지역에 국한되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 기아와 수적 열세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혁명군은 마지막 전투에서 대패한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끝까지 목숨을 다해 싸우던 홍경래는 성안으로 떼지어 쳐들어 오는 관군들의 총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홍경래와의 첫사랑을 못 잊어 남장까지 하고 종군했던 명옥은 그의 임종을 지키다 그녀 마저 포수대의 총을 맞고 홍경래의 옆에 쓰러진다.
<에필로그 - 야망과 사랑의 종말>
순조 십이 년 4월 19일 밤, 병력의 수나 군비에 있어서 몇 배나 우세한 중앙과 지방군 그리고 민간의병 등의 진압군과 맞서 홍경래군의 장장 4개월간 공방전이 끝났다. 그 혁명은 지방행정권이나 세도정권에 대해 저항했던 항쟁을 도화선으로 하층농민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때 농성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람 수는 모두 2983명으로 그중에 10세 이하의 소년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나머지 1917명이 23일에 모두 참수됐다. 가족들 중 남자아이와 여자는 노비가 되고 살아남은 자는 삼천리 밖으로 유배가 됐다.
홍경래가 죽던 날, 혼자만 살 생각으로 도망친 우군칙은 친척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은 뒤 도망치려다 관군에게 붙잡혔다. 지도자들은 전사하거나 서울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는데 그들 중 두목 홍이팔과 우군칙은 서울까지 끌려가서 오월 육일 서대문 앞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능지처참을 당했다. 또한 더러운 흉계를 꾸미다가 실패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일족은 천민으로 양반행세를 못하게 됐다. 전국을 떠돌며 해학과 풍자로 자유와 시대비판의 상징이 된 유명한 시인 김립(김삿갓)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갓을 못 쓰고 평생 자신을 감추는 삿갓을 쓰고 방랑한 이유도 그가 김익순을 조부로 두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 후의 사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봉건사회체제 붕괴를 가속화시킨 홍경래의 거사가 전국 민중을 얼마나 자극했나 하는 점이다. 홍경래는 죽었지만 그 뒤에도 정감록이나 해도진인, 미륵신앙과 함께 홍경래가 죽지 않고 섬에 살아있다는 '경래생존설'과 홍경래가 배를 타고 전라도로 왔다는 '경래래선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민중이 얼마나 혁명을 원했고, 홍경래라는 인물을 얼마나 존경했으며 혁명의 지도자로 받들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이다.
불과 사십 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바꿔보려던 홍경래, 그는 전형적인 저항 지식인으로 군사적 지식과 지도력으로 시대에 맞서 항쟁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이름은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과 한국 자유혁명사위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와의 일문일답
1. 미국 땅에서 어떻게 역사적 자료를 구해 소설화할 수 있었는지?
1952년부터 37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美국방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스탠포드 대학<미국 최대의 동양학 도서관>등에서 필요한 역사적 재료를 얻었습니다. 여기에다 평양에 육년간 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소설화 작업을 했습니다.
2. 집필기간은?
실제로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한 것은 1985년경부터 시작해서 7년 정도 걸렸지요. 1990년대 중반 이전에 탈고는 했지만 서랍에 놔두고 있었죠. 그런 후에 제가 소설가 출신이 아닌 탓에 다시 3년 동안 더 썼죠.
3. 홍경래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홍경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국 이름까지 잃고 일본 이름으로 창시를 강요당할 때였습니다. 이 때 모 신문사에서 3권으로 된 조선 명인전이라는 책이 발간됐지요. 거기에는 당시 유명한 한국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영웅, 위인, 학자 등 20여명을 골라 그들의 전기를 소개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홍경래 전기인데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현상윤씨가 쓴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읽고 만일 그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들었어요. 그가 혁명에 실패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홍경래>를 쓰게 된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4. 홍경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홍경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그의 의도는 좋았으나 방책이 틀렸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평안도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때 전국 백성들이 그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 잘못으로 그 대가로 결국은 혁명에 실패해 목숨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 남쪽 사람이나 북쪽 사람이나 힘을 합쳐야 살 수 있다는 겁니다.
5. <홍경래>에서 애착이 가는 인물은?
홍경래의 아내 정순과 첫사랑 명옥입니다.
6. 이 책을 누구에게 읽히고 싶은가?
나이든 세대로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져 나갈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올해가 6.25 60주년을 맞는 해인데 큰 마음으로 서로의 과거를 용서하고 서로 포용해서 남북통일을 달성할 것을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7. 집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컴퓨터를 못해 손으로 한 자 한 자를 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8. 평안도의 생활 모습은 어떻게 상상했나?
평안도는 어린시절 내가 6년동안 생활하며 직접 본 것으로 상상이 아니지요.
9. 홍경래 당시와 지금 시대의 공통점이 있다면?
악정에 해매던 홍경래 때의 조선이나 지금의 북한이나 같지요. 이천만의 백성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중노동에 신음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홍경래가 기병하던 당시와의 공통점입니다. 홍경래가 살아있으면 가만있지 않을거예요. 남한 사람들은 눈 감고 모른 척 할 것이 아니라고 봐요.
10. 역사책에서 홍경래의 거사를 난이라고 기술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역사책에 나오는 '난'이라는 말은 전쟁이라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조선시대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이기든 지든 전쟁을 난이라고 불렀습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홍경래난 등이 대표적입니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태조가 대군 10만을 이끌고 쳐들어 왔는데 조선왕 인조는 견디다 못해 청 태조 앞에가서 무릎 꿇고 절하고 항복서를 써서 바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은 병자호(오랑캐)란이라 해요. 왕권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발해 일어나는 전쟁은 다 '난'이라 부른 것입니다.
11. 오늘날 홍경래의 의미는?
남한은 민주주의가 성립되어 있고 북한은 독재주의 치하에 있으니까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홍경래의 의미는 깊습니다.
12. 인간 홍경래인가, 영웅 홍경래인가?
양면을 다 지니고 있지요. 한 인간이면서 대아를 위해 소아를 버리는 영웅, 그리고 영웅이면서 사랑과 슬픔에 속절없는 인간, 바로 그 모습이죠.
13. 미국에 살면서 한국이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늘 그립습니다. 그럴 때는 한국의 스포츠선수들이 골프나 피켜스케이팅 등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요즈음은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선수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며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추천의 글
'새 삶!'을 외치는 소리 - 윤후명(소설가, 국민대 문예창착대학원 겸임교수)
새삼스럽게 홍경래인 뜻을 읽는다. 그 인간과 활약상이 남다른 애착으로 다가온다. 홍경래와 함께 작가도 이상주의자의 모습이다. 삶이란 본래 좌절이지만, 비상(飛翔)의 의지에 따라 성취가 달라진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순간, 개인과 왕조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감연히 일어선 홍경래는 새로운 삶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가 비장하게 사라져간다. 작가의 인생 어느 부분이, 이 한 날개 꺾인 영웅에 닿아 있을까. 작가에 의해 그는 다시 살아나 '새 삶!'을 외치는 소리를 들려준다.
사실과 상상의 조화가 생생하게 어우러진 한 편의 서사시를 읽으며, 삶의 뜻을 되새기게 된다.
'패자 부활전'은 재미있다. - 이호철(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소설가)
역사를 헤쳐나간 민초들의 잊혀져가는 이야기 '홍경래의 난'을 200주년에 즈음해 소설로 재조명해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승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회적 모순에 고뇌하며 시대를 열어 세상을 밝혀보려던 의지, 사회구현에 대한 명분과 희망으로 봉건체제에 저항해 나라를 반석위에 세우려던 뜨거운 열정, 그들은 죽음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작가는 언어로 패자부활전을 선포한다. 목숨을 바친 '민중'의 힘과 의지로 오늘날 우리의 역사는 발전해 왔다는 것을, 저자는 사랑과 배반의 서사로 혼신을 다해 항변하고 있다.
▶▶역사속의 홍경래
출처 : 브리태니커
홍경래는 조선 후기 농민반란의 지도자다. 1771(영조 47)년 평남 용강의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세도정권의 부패정치, 삼정(三政)의 문란 등 사회적 모순에 저항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목표로 농민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전국을 유랑하는 동안 지배층의 부패상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게 됐다. 1800년(순조 즉위) 박천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서자 출신인 우군칙(禹君則)을 만나 시국을 논하는 가운데 당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는 우군칙과 함께 변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면서 향촌에서 부를 축적하여 지방유력자로 등장한 계층과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사상인(私商人) 및 조선정부의 지방차별정책으로 관로가 막혀 불만을 품고 있던 양반지식층들에게 접근, 이들을 포섭했다. 그결과 가산역(嘉山驛)의 관리 이희저(李禧著), 곽산의 진사 김창시(金昌始), 장사 홍총각(洪總角) 이제초(李濟初), 태천의 김사용(金士用) 등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 외에도 각지의 기인(奇人) 도사(道士) 술사(術士) 무인(武人) 등을 계속 규합하는 한편, 가산의 다복동(多福洞)을 근거지로 삼아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의 유력자 김재찬(金載鑽)을 통해 평안감영에서 공납금 2,000냥을 차용하기도 하고, 의주의 인삼상인 임상옥(任尙沃), 정주의 부호 이침(李琛) 김약하(金若河), 안주 상인 나대곤(羅大坤), 송상(松商) 박광유(朴光有) 홍용서(洪龍瑞) 등과도 손을 잡았다. 한편 운산 촉대봉에 광산을 개설하고 광산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구실로 유랑민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각종 물자와 무기를 구입 제작해 다복동에 비축해두었다.
1811년 10월경 비밀 거점으로 삼은 가산의 신도(薪島)에서 이듬해 정월에 거병할 것을 결정하고, 주축 세력을 다복동에 결집시켜 군사지도부를 선정했다. 그러나 12월 중순경 움직임이 탄로나자, 마침내 12월 18일 거병을 한다. 농민군은 우선 가산 군아를 습격해 군수 정시(鄭蓍)를 죽이고, 군대를 남북으로 나누어 각 군읍을 공략했다. 향반층의 내응을 받는 가운데, 북진군은 곽산 정주 선천 태천 철산 용천 등을 점령했고, 남진군은 박천을 점령했다. 그러나 진격목표를 놓고 지도부 내에서 의견이 갈려 4일간 지체하는 사이에 평안도병마절도사 이해우(李海愚) 등의 군사 1,000명이 안주로 들어오고, 중앙에서 파견된 양서순무사(兩西巡撫使) 이요헌(李堯憲)의 정예군도 합세한다. 홍경래는 박천 송림리(松林里)에 진을 치고 군사를 3진으로 나누어 싸웠으나 관군의 초토작전에 밀려 참패하고 정주성으로 물러난다.
1812(순조 12)년 1월 중순경 다른 지역들이 관군에게 점령되어 고립된 상태에서 끈질긴 항전과 인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4개월가량 버티었으나, 4월 19일 관군이 성 밑에 굴을 파고 화약을 폭파시켜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옴으로써 농민군은 진압되고 만다. 그도 교전중에 총에 맞아 바꿔 보고 싶은 세상을 그대로 놓아둔 채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끝>
그가 미국에서 걸어와 우리 앞에 섰다.
"나라를 바꾸는 것은 불만계층이 아니라 민중이다"
사랑과 야망, 그리고 배반의 대서사시
미국에 있는 팔순의 저자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썼다. 200여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영웅 홍경래. 횃불처럼 타올랐던 그의 웅혼한 애민정신과 불굴의 항쟁정신이 우리의 역사속에서 사라져가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를 단지 반란에 실패한 비운의 영웅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홍경래가 대업을 도모하며 얻은 깨달음을 우리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유년시절 평양에 살다가 태평양 건너 먼 이국 땅으로 이민해 살고 있는 노옹(老翁)이 그의 영웅 정신을 늘 마음속으로 그리다 소설속의 인물로 부활시켰다. 이제 홍경래가 미국에서 뚜벅 뚜벅 걸어와서 우리 앞에 선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남북으로 갈린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6월에 읽어야할 책
10년간 연필로 꾹꾹 눌러 쓴 A4용지 120장에 담아낸 인간 홍경래 이야기 !
"나라가 부패할 때 백성의 삶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세상을 꿈꾼 영웅 홍경래의 이야기 !
그를 둘러싼 이들의 배신 그리고 홍경래의 인간애와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민초들의 삶이 피폐하게 된 상황에서 불현듯 일어나 변화를 꿈꾼 영웅의 야망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를 둘러싼 배신과 음모.
200여년 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슬며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생각케 하는 소설. 진정한 지도자와 백성의 통합을 되묻게 하는 이 소설은, 국토 분단과 양핵화 현상이 깊어가는 우리 시대에 적절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혁명군 홍경래의 일대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통합의 문제를 생각케 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부터 10년간 연필로 꾹꾹 눌러 집필한 뒤 책상 서랍에 쳐박아놓았다가 다시 글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은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태어난 주인공인 '홍경래'가 시골마을에서 글공부에 여념이 없는 모습과 빈한한 살림살이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홍경래는 도량이 크고 사내다운데다 문무에도 능하고 의협심 역시 강했다. 이후 홍경래는 문장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이 만연한 과거에서 낙방하고 전국을 떠돌며 민중들의 억눌림과 곤궁함을 보고 부조리에 반기를 든다. 홍경래는 백성 모두가 평등하고 억울한 사람 없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꿈꾼다.
이를 위해 홍경래는 이름난 장사 김사용, 서얼출신의 우군칙, 시문에 능한 김창시, 평안도 만석꾼 이희저등 과 피를 나누기로 하고 가산군 다복동에 병사와 대장간을 마련한 뒤 무기제조와 군사훈련을 하며 거사 준비에 들어간다. 특히 홍경래는 많은 백성들을 혁명단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냇가에 금가루를 뿌려놓고 마치 사금이 잘 나는 곳으로 소문나게 한 뒤 굶주림에 허덕이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갈구하는 백성들을 단원들로 모집해 세력를 키우게 된다.
이 책은 실제 이야기와는 달리 그의 아내 정순을 비롯 명옥과 선희 등 세 명의 여인을 가공의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홍경래가 이끄는 혁명단은 박천읍내와 가산군을 접수하며 승승장구 한다. 그리고 각처에서 몰려든 지원자들과 함께 동림산성과 서림산성을 한꺼번에 점령한 가운데 안주성만 빼앗으면 평안도는 손에 다 들어온거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부하장수 이인배가 참혹하게 가산군 부자를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보고 받은 홍경래가 "그들이 한 짓을 우리도 똑같이 되풀이한다면 ...우리가 그들 보다 나은 게 무언가?"라며 이인배를 질타하고 직위을 박탈하자 이인배는 이에 반발해 이무경 형제와 함께 홍경래를 죽여 관에 바쳐 공을 세울 것을 모의한다. 이들로 부터 갑작스럽게 습격을 받은 홍경래는 머리를 크게 다쳐 하루를 남겨둔 안주성 공격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때문에 혁명군은 공격의 시기를 놓쳤으나 여러 곳에서 관군과의 공방전을 벌이며 선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이에 관군의 군세가 더 커지게 되면서 정주성에 주둔한 혁명군을 둘러싸며 점점 조여오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혁명단은 관군과의 싸움에서 전승을 거두곤 한다. 그러던 와중에 혁명단은 정주성을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나와 먼저 성을 나가 포수대를 데리러 먼저 성을 나간 동지들과 합류하기로 한다. 이런 결정에 따라 혁명단은 무기를 들고 성밖으로 나가 일대 전투를 벌이고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띠우고 있던 중에 군자금을 가지고 포수대를 데리고 오기로 한 동지 송지렴이 배반자로 돌변해 총을 쏘아 댐으로써 정주성 탈출의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만다. 이후 관군은 새로운 작전으로 홍경래가 지키고 있던 정주성의 성곽을 화약으로 폭발시켜 무너뜨리며 성으로 공격해 옴으로써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혁명단은 갑작스런 공격에 참담한 결말을 맺게 된다. 홍경래는 달려오는 관군의 무리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다. 소설은 홍경래를 흠모하던 명옥이 따라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역사 속의 인물 홍경래를 그대로 소설 속에 부활시켜 우리 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홍경래가 살던 시대의 사회적 갈등 구조나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야만 했던 이유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홍경래가 큰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실패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누구나 동등한 세상을 꿈꾸는 민중이 아닌 기득권을 빼앗겨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 주축을 삼았던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민심이라는 이유로 정권 투쟁에만 혈안이 되는 정치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차별대우 받는 평안도와 서북지역을 위한 혁명에 그쳤을 뿐 전국적인 민초들의 열망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남북이 갈려져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 던져주는 시사점 또한 적지 않다 하겠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부터 한국근대에 이르기 까지 일어난 3대 민중운동(1811년의 홍경래란, 1862년의 임술민란, 그리고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의 으뜸인 홍경래란이 어떻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나에 대한 궁금증을 딱딱한 역사서가 아닌 재미있는 소설책을 통해 풀고 있어 여름 휴가철의 심심함을 달래줄 듯 하다.
▶▶주요 등장인물
홍경래 : 주인공. 평안도 용강 출신. 몰락한 양반집 아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등지를 돌아보며 거사를 도모. '청운도사'라는 이름으로 인물들을 모음. 평서대원수.
김사용 : 기운과 용맹이 뛰어난 혁명단의 부원수.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잡았다고 소문난 장사로 역사들을 혁명단에 가입시킴.
우군칙 : 홍삼 밀무역과 금광업에 종사해 크게 부를 축적했으나 서얼 출신이라는 부 당한 대우를 받는데에 불만을 품고 절에 들어가 중이 됨. 풍수와 관상, 사주에 밝음. 공인과 상인들의 협조를 구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지혜와 학식이 많은 혁명단의 군사.
김창시 : 혁명단의 주동자 시와 문에 능한 평안도의 명문장가. 하지만 고향이 곽산이라는 이유로 진사 벼슬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함. 낚시를 하며 허송세월을 하다 홍경래를 만남. 혁명단의 군사.
이희저 : 평안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으로 덕과 부를 지닌 인물. 혁명단의 무기제조 책임자로 혁명단의 도총.
백성두 : 백정. 평안도의 명포수로 이름을 날림. 홍경래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줌.
이정식 : 도적 두목. 홍경래에게 수만냥의 군자금을 냄.
이인배 : 한 때 홍경래의 영관이었으나 나중에 배신을 해 홍경래의 목을 노림.
송지렴 : 홍경래의 장수이었으나 산포수들을 합류시키겠다 군자금을 받아 성을 나간 뒤 흥청망청 쓰고 나중에는 관군에게 붙어 혁명단에 총을 겨눔.
정순 : 농부의 딸.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처녀로 홍경래의 백년가약을 맺음.
명옥 : 백성두의 딸로 홍경래를 사모하는 여인. 하지만 다른 데로 시집간 뒤 남편과의 사별로 혼자가 됨. 희고 갸름하고 예쁜 얼굴이며 명랑한 성격. 깔깔 거리고 잘 웃음. 남장으로 변장해 홍경래 혁명단에 종군함.
선희 : 도적 이정식에게 납치되어온 미모의 젊은 여인. 홍경래를 좋아함.
명석 : 백성두의 아들이자 명옥의 남동생로 홍경래가 이끄는 혁명단에 들어감.
▶▶줄거리
1. 기-홍경래의 분노
대접받지 못한 양반 집 아들로 태어난 홍경래는 어려서부터 유교와 풍수지리 및 총칼을 자유자재로 다루었으며 문무에도 출중했다. 사냥 중 포수 백성두를 만나 그의 딸 명옥과 첫사랑을 나누고 그녀의 아버지 백성두에게 사격술까지 배우고 포수들과도 교류를 쌓는다. 과거를 보러가던 중 산중에서 이정식의 산적 떼를 만나 그들과도 친분을 쌓는다. 명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 낙방 후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와 지역차별의 벽을 깨닫고 조상이 태어난 신분으로 대대로 살고 조상이 지은 죄의 대가를 대대로 치르는 연좌제에 분노한다. 그릇된 사회구조로 빚어진 공공연한 죄악이 만연한 병을 고치려면 살 속 깊이 고인 고름부터 빼야하고 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칼은 무력밖에 없다고 본다.
2. 승 - 간부 모집과 혁명 단 조직
진정한 백성의 소리를 듣기위해 팔도 탐방에 나선 그는 전국을 돌며 백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더욱 결심을 굳힌다. 서얼 우군칙을 비롯해 호걸 김창시, 만석꾼 이희저 등 농민, 상인, 부호 등 동지를 규합하며 혁명군은 조직하고 군자금을 마련에 나선다. 본부를 다복 동으로 정하고 지도자들을 모아 혁명 단을 조직한 후 양반이 아닌 정순과 혼인한 후 단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준비기간에 돌입한다. 그와 뜻에 동의한 도적 두목 이정식은 평생 모은 재물을 내놓고 자신이 아끼던 보검(寶劍)까지 선물한다.
3. 전 - 단원 확보와 군자금 마련
혁명 단이 결성되자 혁명의 본거지 다복 동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모으기 위해 강가에 금가루를 뿌려 사금장으로 만들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동지로 규합하고 군사훈련장을 위장한다. 동지들의 가족을 모두 성안으로 불러들이고 거사 전에 민심을 혼란시킬 것과 기병한 후의 민심을 생각해서 계획적으로 동요를 만들어 유행시키고 군자금을 위해 동전을 주조한다. 산포수대를 모집을 위해 송지렴에게 막대한 금액을 주어 보낸다. 단원들에게 살인, 도적, 강간 세 가지를 가장 중한 죄로 규정하고 어기면 사형에 처할 것을 선포한다. 혁명단은 안주성을 공격하기 위한 기병날짜를 8일 후로 정했다가 명옥을 겁탈하려던 송동순이 밤새 옥문을 부수고 도망감으로써 선천군과 박천군 등지에서 일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관가에 체포되는 바람에 다음 날을 기병일로 결정한다.
4. 전2 - 격문 선포와 출병 일 결정
관서지방의 원로들과 공사노비 천민들에게 격문을 통해 혁명의도를 선포한다. 출병 일을 결정하고 육천오백 명이 태풍같이 내려가 서울을 점령하고 궁성과 왕족들을 손 안에 넣고 간악한 위정자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대군사가 청색으로 된 군복을 입고 머리에는 홍건을 쓰고 장엄하게 출병하는데 수많은 깃발들이 높이 휘날리는 광경이 웅장하다. 아전들이던 파락 난당들이 홍경래군이 점령하면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고을을 점령을 한 후에는 몰락한 양반과 그리고 상인과 농민들이 무더기로 가담해 홍경래 군의 수는 날로 늘어갔다. 고을을 점령하면 관아의 무기를 확보하고 수령과 관리에게 정식 격문을 보내 항복 선서를 받고 전의 행실을 살펴서 유죄, 무죄를 결정지었다. 무죄이고 인물이 뛰어나면 다시 쓰고 죄가 있으면 공공연하게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난리가 나면 민심이 소동치고 피신할 것을 염려할 텐데 백성들은 오히려 길에 황토를 깔며 홍경래 군을 환영하고 홍경래가 그곳에 진을 치고 각종 명령을 내리는 동안, 그 마을 장정들이 몇 명씩 무리지어 와서 낫이나 도끼 같은 것을 들고 종군시켜달라고 간청한다. 홍경래를 흠모하던 명옥은 남장을 하고 남자만 있는 진중으로 몰래 들어간다.
5. 전 3-배반과 홍경래의 부상
전군은 기세를 올리고 북군 김사용은 서북 팔군을 점령하고 의주성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점령지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잘려 죽이는 등 포악한 대장 이인배를 규율에 의해 징계하자 이무경 형제 등 세 명의 배반자들이 암살을 기도해 홍경래는 출병 하루 전날 머리를 크게 다친다. 난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순조와 조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긴급회의를 열고 관군을 전적으로 지원한다. 홍경래의 부상으로 출병날짜가 지연되는 동안 관군은 사방에서 원조를 받고 병력을 키운다. 남장을 하고 그를 따라 종군하던 첫사랑 명옥의 지극한 간호로 회복은 되지만 완쾌되지 못한 몸으로 안주성 공격을 하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후퇴한다.
6. 전 4 - 혁명군의 정주성 탈출 실패
후퇴하여 정주성에서 농성을 벌이던 홍경래는 혁명군을 이끌고 나가 전투마다 승리한다. 그러나 북군 김사용의 일부가 패배하고 포수를 구하러 간 김창시가 친구의 배반으로 목이 잘리는 비극을 당한다. 혁명군에게 항복했던 선천부사였던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그 공을 빼앗으려다 발각되어 처형을 당한다. 관군의 방화로 식량이 부족하게 된 혁명군은 관군과 합의하에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부녀자를 성 밖으로 내보낸 후 관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다. 관군 유효원이 거의 패배할 즈음 혁명군의 군자금을 가지고 포수대를 데리고 오기로 한 송지렴이 혁명군을 배반하고 관군을 구출한다. 그 바람에 혁명군은 정주성 탈출에 실패하고 성안으로 후퇴하나 형세가 그리 유리하지 않았던 관군도 새로운 작전을 편다.
7. 결 - 성벽 폭파와 전사
정주 성벽까지 굴을 파고 굴 안에 화약 5천근을 설치해 성벽을 폭파시킨 관군은 성내로 들어와 총공격을 가해 혁명군은 마지막까지 그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홍경래는 자신의 실패원인을 신흥 상공업세력과 정치권력에서 배제됐던 몰락한 양반에 의해 추진되었던 반봉건 투쟁이 민중이 아닌 불만세력을 가진 부호나 지역에 국한되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 기아와 수적 열세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혁명군은 마지막 전투에서 대패한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끝까지 목숨을 다해 싸우던 홍경래는 성안으로 떼지어 쳐들어 오는 관군들의 총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홍경래와의 첫사랑을 못 잊어 남장까지 하고 종군했던 명옥은 그의 임종을 지키다 그녀 마저 포수대의 총을 맞고 홍경래의 옆에 쓰러진다.
<에필로그 - 야망과 사랑의 종말>
순조 십이 년 4월 19일 밤, 병력의 수나 군비에 있어서 몇 배나 우세한 중앙과 지방군 그리고 민간의병 등의 진압군과 맞서 홍경래군의 장장 4개월간 공방전이 끝났다. 그 혁명은 지방행정권이나 세도정권에 대해 저항했던 항쟁을 도화선으로 하층농민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때 농성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람 수는 모두 2983명으로 그중에 10세 이하의 소년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나머지 1917명이 23일에 모두 참수됐다. 가족들 중 남자아이와 여자는 노비가 되고 살아남은 자는 삼천리 밖으로 유배가 됐다.
홍경래가 죽던 날, 혼자만 살 생각으로 도망친 우군칙은 친척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은 뒤 도망치려다 관군에게 붙잡혔다. 지도자들은 전사하거나 서울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는데 그들 중 두목 홍이팔과 우군칙은 서울까지 끌려가서 오월 육일 서대문 앞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능지처참을 당했다. 또한 더러운 흉계를 꾸미다가 실패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일족은 천민으로 양반행세를 못하게 됐다. 전국을 떠돌며 해학과 풍자로 자유와 시대비판의 상징이 된 유명한 시인 김립(김삿갓)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갓을 못 쓰고 평생 자신을 감추는 삿갓을 쓰고 방랑한 이유도 그가 김익순을 조부로 두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 후의 사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봉건사회체제 붕괴를 가속화시킨 홍경래의 거사가 전국 민중을 얼마나 자극했나 하는 점이다. 홍경래는 죽었지만 그 뒤에도 정감록이나 해도진인, 미륵신앙과 함께 홍경래가 죽지 않고 섬에 살아있다는 '경래생존설'과 홍경래가 배를 타고 전라도로 왔다는 '경래래선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민중이 얼마나 혁명을 원했고, 홍경래라는 인물을 얼마나 존경했으며 혁명의 지도자로 받들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이다.
불과 사십 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바꿔보려던 홍경래, 그는 전형적인 저항 지식인으로 군사적 지식과 지도력으로 시대에 맞서 항쟁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이름은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과 한국 자유혁명사위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와의 일문일답
1. 미국 땅에서 어떻게 역사적 자료를 구해 소설화할 수 있었는지?
1952년부터 37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美국방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스탠포드 대학<미국 최대의 동양학 도서관>등에서 필요한 역사적 재료를 얻었습니다. 여기에다 평양에 육년간 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소설화 작업을 했습니다.
2. 집필기간은?
실제로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한 것은 1985년경부터 시작해서 7년 정도 걸렸지요. 1990년대 중반 이전에 탈고는 했지만 서랍에 놔두고 있었죠. 그런 후에 제가 소설가 출신이 아닌 탓에 다시 3년 동안 더 썼죠.
3. 홍경래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홍경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국 이름까지 잃고 일본 이름으로 창시를 강요당할 때였습니다. 이 때 모 신문사에서 3권으로 된 조선 명인전이라는 책이 발간됐지요. 거기에는 당시 유명한 한국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영웅, 위인, 학자 등 20여명을 골라 그들의 전기를 소개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홍경래 전기인데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현상윤씨가 쓴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읽고 만일 그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들었어요. 그가 혁명에 실패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홍경래>를 쓰게 된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4. 홍경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홍경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그의 의도는 좋았으나 방책이 틀렸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평안도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때 전국 백성들이 그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 잘못으로 그 대가로 결국은 혁명에 실패해 목숨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 남쪽 사람이나 북쪽 사람이나 힘을 합쳐야 살 수 있다는 겁니다.
5. <홍경래>에서 애착이 가는 인물은?
홍경래의 아내 정순과 첫사랑 명옥입니다.
6. 이 책을 누구에게 읽히고 싶은가?
나이든 세대로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져 나갈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올해가 6.25 60주년을 맞는 해인데 큰 마음으로 서로의 과거를 용서하고 서로 포용해서 남북통일을 달성할 것을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7. 집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컴퓨터를 못해 손으로 한 자 한 자를 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8. 평안도의 생활 모습은 어떻게 상상했나?
평안도는 어린시절 내가 6년동안 생활하며 직접 본 것으로 상상이 아니지요.
9. 홍경래 당시와 지금 시대의 공통점이 있다면?
악정에 해매던 홍경래 때의 조선이나 지금의 북한이나 같지요. 이천만의 백성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중노동에 신음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홍경래가 기병하던 당시와의 공통점입니다. 홍경래가 살아있으면 가만있지 않을거예요. 남한 사람들은 눈 감고 모른 척 할 것이 아니라고 봐요.
10. 역사책에서 홍경래의 거사를 난이라고 기술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역사책에 나오는 '난'이라는 말은 전쟁이라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조선시대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이기든 지든 전쟁을 난이라고 불렀습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홍경래난 등이 대표적입니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태조가 대군 10만을 이끌고 쳐들어 왔는데 조선왕 인조는 견디다 못해 청 태조 앞에가서 무릎 꿇고 절하고 항복서를 써서 바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은 병자호(오랑캐)란이라 해요. 왕권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발해 일어나는 전쟁은 다 '난'이라 부른 것입니다.
11. 오늘날 홍경래의 의미는?
남한은 민주주의가 성립되어 있고 북한은 독재주의 치하에 있으니까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홍경래의 의미는 깊습니다.
12. 인간 홍경래인가, 영웅 홍경래인가?
양면을 다 지니고 있지요. 한 인간이면서 대아를 위해 소아를 버리는 영웅, 그리고 영웅이면서 사랑과 슬픔에 속절없는 인간, 바로 그 모습이죠.
13. 미국에 살면서 한국이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늘 그립습니다. 그럴 때는 한국의 스포츠선수들이 골프나 피켜스케이팅 등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요즈음은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선수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며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추천의 글
'새 삶!'을 외치는 소리 - 윤후명(소설가, 국민대 문예창착대학원 겸임교수)
새삼스럽게 홍경래인 뜻을 읽는다. 그 인간과 활약상이 남다른 애착으로 다가온다. 홍경래와 함께 작가도 이상주의자의 모습이다. 삶이란 본래 좌절이지만, 비상(飛翔)의 의지에 따라 성취가 달라진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순간, 개인과 왕조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감연히 일어선 홍경래는 새로운 삶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가 비장하게 사라져간다. 작가의 인생 어느 부분이, 이 한 날개 꺾인 영웅에 닿아 있을까. 작가에 의해 그는 다시 살아나 '새 삶!'을 외치는 소리를 들려준다.
사실과 상상의 조화가 생생하게 어우러진 한 편의 서사시를 읽으며, 삶의 뜻을 되새기게 된다.
'패자 부활전'은 재미있다. - 이호철(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소설가)
역사를 헤쳐나간 민초들의 잊혀져가는 이야기 '홍경래의 난'을 200주년에 즈음해 소설로 재조명해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승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회적 모순에 고뇌하며 시대를 열어 세상을 밝혀보려던 의지, 사회구현에 대한 명분과 희망으로 봉건체제에 저항해 나라를 반석위에 세우려던 뜨거운 열정, 그들은 죽음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작가는 언어로 패자부활전을 선포한다. 목숨을 바친 '민중'의 힘과 의지로 오늘날 우리의 역사는 발전해 왔다는 것을, 저자는 사랑과 배반의 서사로 혼신을 다해 항변하고 있다.
▶▶역사속의 홍경래
출처 : 브리태니커
홍경래는 조선 후기 농민반란의 지도자다. 1771(영조 47)년 평남 용강의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세도정권의 부패정치, 삼정(三政)의 문란 등 사회적 모순에 저항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목표로 농민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전국을 유랑하는 동안 지배층의 부패상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게 됐다. 1800년(순조 즉위) 박천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서자 출신인 우군칙(禹君則)을 만나 시국을 논하는 가운데 당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는 우군칙과 함께 변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면서 향촌에서 부를 축적하여 지방유력자로 등장한 계층과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사상인(私商人) 및 조선정부의 지방차별정책으로 관로가 막혀 불만을 품고 있던 양반지식층들에게 접근, 이들을 포섭했다. 그결과 가산역(嘉山驛)의 관리 이희저(李禧著), 곽산의 진사 김창시(金昌始), 장사 홍총각(洪總角) 이제초(李濟初), 태천의 김사용(金士用) 등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 외에도 각지의 기인(奇人) 도사(道士) 술사(術士) 무인(武人) 등을 계속 규합하는 한편, 가산의 다복동(多福洞)을 근거지로 삼아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의 유력자 김재찬(金載鑽)을 통해 평안감영에서 공납금 2,000냥을 차용하기도 하고, 의주의 인삼상인 임상옥(任尙沃), 정주의 부호 이침(李琛) 김약하(金若河), 안주 상인 나대곤(羅大坤), 송상(松商) 박광유(朴光有) 홍용서(洪龍瑞) 등과도 손을 잡았다. 한편 운산 촉대봉에 광산을 개설하고 광산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구실로 유랑민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각종 물자와 무기를 구입 제작해 다복동에 비축해두었다.
1811년 10월경 비밀 거점으로 삼은 가산의 신도(薪島)에서 이듬해 정월에 거병할 것을 결정하고, 주축 세력을 다복동에 결집시켜 군사지도부를 선정했다. 그러나 12월 중순경 움직임이 탄로나자, 마침내 12월 18일 거병을 한다. 농민군은 우선 가산 군아를 습격해 군수 정시(鄭蓍)를 죽이고, 군대를 남북으로 나누어 각 군읍을 공략했다. 향반층의 내응을 받는 가운데, 북진군은 곽산 정주 선천 태천 철산 용천 등을 점령했고, 남진군은 박천을 점령했다. 그러나 진격목표를 놓고 지도부 내에서 의견이 갈려 4일간 지체하는 사이에 평안도병마절도사 이해우(李海愚) 등의 군사 1,000명이 안주로 들어오고, 중앙에서 파견된 양서순무사(兩西巡撫使) 이요헌(李堯憲)의 정예군도 합세한다. 홍경래는 박천 송림리(松林里)에 진을 치고 군사를 3진으로 나누어 싸웠으나 관군의 초토작전에 밀려 참패하고 정주성으로 물러난다.
1812(순조 12)년 1월 중순경 다른 지역들이 관군에게 점령되어 고립된 상태에서 끈질긴 항전과 인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4개월가량 버티었으나, 4월 19일 관군이 성 밑에 굴을 파고 화약을 폭파시켜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옴으로써 농민군은 진압되고 만다. 그도 교전중에 총에 맞아 바꿔 보고 싶은 세상을 그대로 놓아둔 채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끝>
목차
목차
제 1 장 : 점령
제 2 장 : 암살음모
제 3 장 : 조정 긴급회의
제 4 장 : 배반자의 기습
제 5 장 : 불운
제 6 장 : 공방과 후퇴
제 7 장 : 농성
제 8 장 : 전승
제 9 장 : 분대의 함몰
제 10 장 : 회군평 심리작전
제 11 장 : 야망과 몰락
제 12 장 : 관군의 대패
제 13 장 : 밀사의 살해
제 14 장 : 야습
제 15 장 : 생이별
제 16 장 : 통쾌한 복수
제 17 장 : 배반의 교훈
제 18 장 : 위험한 작전
제 19 장 : 팽팽한 대결
제 20 장 : 굴속의 화약
제 21 장 : 이슬 맞은 보검
추록(追錄)
제 2 장 : 암살음모
제 3 장 : 조정 긴급회의
제 4 장 : 배반자의 기습
제 5 장 : 불운
제 6 장 : 공방과 후퇴
제 7 장 : 농성
제 8 장 : 전승
제 9 장 : 분대의 함몰
제 10 장 : 회군평 심리작전
제 11 장 : 야망과 몰락
제 12 장 : 관군의 대패
제 13 장 : 밀사의 살해
제 14 장 : 야습
제 15 장 : 생이별
제 16 장 : 통쾌한 복수
제 17 장 : 배반의 교훈
제 18 장 : 위험한 작전
제 19 장 : 팽팽한 대결
제 20 장 : 굴속의 화약
제 21 장 : 이슬 맞은 보검
추록(追錄)
저자
저자
이공복
충남 공주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49년 도미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수학 후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2년 뉴욕 한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5년부터 10년 간 Chapman 대학에서 정교수로 지냈고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se 에서도 가르쳤다. 1952년부터 37년 간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 소재한 미 국방외국어대학교(DLI)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어학과 과장, 독일어대학 학장, 연구부장, 교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International Cultural Language Foundation을 창설하고 이사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굴지의 출판사 'Praeger Publisher New York, London'이 1997에 출판한 『Korea and East Asia』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황제가 한국인이라는 학설을 처음 주장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 책은 한국과 아시아의 학문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자료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Who's who'에 기록되었으며 2006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개최한 세계학자들 학회에서 일 년에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인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다. 지금은 은퇴하여 국방외국어대학교에서 35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부인 최 길순 여사와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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