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투쟁단: 역사를 잇는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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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투쟁단 총대장인 전농 김영호 의장은 26일 광화문 농민대회와 제5차 범국민대회에서 '역사투쟁'을 천명했다. 농민들이 단순히 쌀값이나 올려받자고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전봉준 투쟁단이 천명한 ‘역사투쟁’은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이래 지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 사대주의적 개방농정을 철폐하고 식량주권에 기반한 민족자주 농정을 실현하는 투쟁으로 된다. 갑오년 조선 천지를 진감케 한 전봉준 장군의 호령소리가 전봉준 투쟁단의 활동으로 되살아나 메아리쳤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것은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 사대주의적 개방농정을 철폐하고 식량주권에 기반한 민족자주 농정을 실현하는 투쟁으로 된다. 갑오년 조선 천지를 진감케 한 전봉준 장군의 호령소리가 전봉준 투쟁단의 활동으로 되살아나 메아리쳤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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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전농의 발기로 성사된 2015년 민중총궐기에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13만여 투쟁군중이 집결했다. "못살겠다 갈아엎자!"는 구호 아래 구름처럼 모여든 각계 민중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간 축적된 분노를 끓어오르는 투쟁의 열기로 발산해냈다. 이 투쟁에서 평생을 농민운동에 바쳐온 백남기 농민이 정권의 살인 물대포에 쓰러졌다. 그이는 다만 "밥쌀수입 중단"과 "쌀값보장"이라는 절실하면서도 초보적인 농민들의 요구를 손에 들었을 뿐이다. 이는 민중들의 초보적인 생존에 대한 요구조차 수용할 수 없었던 박근혜 정권의 반민중성과 야수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그 날로부터 전농은 병상에 계신 백남기 동지와 함께 싸우며 새로운 투쟁, 2016년 민중총궐기를 향한 더욱 힘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노한 민심은 이듬해 4월 총선에서 16년만의 '여소야대 국회'로 전세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2016년 9월 백남기 농민이 끝내 영면에 들었다. 박근혜 정권은 부검을 빌미로 시신탈취 의도를 노골화했다. 분노한 농민들은 육탄으로 동지의 시신을 지키며 결사전을 벌였다. 농민들의 분노는 국민적 분노로 번져나갔다. 서울대병원 영안실은 박근혜 정권과 진보민중간의 첨예한 대결장이 되었다. 시신탈취를 목적으로 한 박근혜 정권의 무모한 도발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으로 되었다. 농민들의 헌신적 투쟁을 기반으로 형성된 진보민중진영의 연대투쟁은 박근혜 정권의 마수로부터 백남기 농민을 지켜냈다
.
마침내... 때를 같이하여 박근혜 정권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백남기 투쟁의 승리는 반격의 신호탄이 되었다.
민중들은 대반격을 개시하였다.
전농을 비롯한 진보민중진영이 준비해온 민중총궐기를 뛰어넘는 범국민적 촛불항쟁이 시작되었다. 농민들이 뿌린 투쟁의 씨앗, 백남기 농민의 고귀한 희생이 항쟁을 불러왔다.
"전봉준투쟁단',
농민들은 왜 전봉준 장군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가?
조선 말기 부패무능한 봉건왕조의 타락상은 극에 달했고, 헐벗은 백성들의 참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없었다.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 서구 열강과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의 발톱은 호시탐탐 조선 침략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명운을 다한 조선왕조, 우리 민족은 운명의 갈림길에 놓였다. 바로 이때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농민군이 일어났다. 반제 반봉건의 기치 높이 백성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가렴주구와 사대주의에 물젖은 봉건통치배들은 외세의 힘을 빌어 농민군 토벌에 나섰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청나라를 불러들여 청일전쟁의 불집을 터뜨렸고, 2차 봉기에는 관군의 작전 지휘권을 일본군에 맡겨 농민군 토벌전을 전개했다. 농민군은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조일 연합군의 대대적인 토벌전에 처참하게 희생, 소멸하고 말았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실패 이후 자신의 민족적 역량을 스스로 허물어버린 조선왕조는 급격한 쇠락 끝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12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외세에 빌붙어 자신의 명줄을 유지코자 했던 봉건통치배들은 일제강점기, 해방정국을 거치는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고스란히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최상층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백일하에 드러난 이명박 박근혜 등 수구보수 정권과 그 부역자들의 부패타락한 몰골이 조선말기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봉준 투쟁단 총대장인 전농 김영호 의장은 26일 광화문 농민대회와 제5차 범국민대회에서 '역사투쟁'을 천명했다. 농민들이 단순히 쌀값이나 올려받자고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전봉준 투쟁단이 천명한 '역사투쟁'은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이래 지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 사대주의적 개방농정을 철폐하고 식량주권에 기반한 민족자주 농정을 실현하는 투쟁으로 된다. 갑오년 조선 천지를 진감케 한 전봉준 장군의 호령소리가 전봉준 투쟁단의 활동으로 되살아나 메아리쳤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 날로부터 전농은 병상에 계신 백남기 동지와 함께 싸우며 새로운 투쟁, 2016년 민중총궐기를 향한 더욱 힘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노한 민심은 이듬해 4월 총선에서 16년만의 '여소야대 국회'로 전세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2016년 9월 백남기 농민이 끝내 영면에 들었다. 박근혜 정권은 부검을 빌미로 시신탈취 의도를 노골화했다. 분노한 농민들은 육탄으로 동지의 시신을 지키며 결사전을 벌였다. 농민들의 분노는 국민적 분노로 번져나갔다. 서울대병원 영안실은 박근혜 정권과 진보민중간의 첨예한 대결장이 되었다. 시신탈취를 목적으로 한 박근혜 정권의 무모한 도발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으로 되었다. 농민들의 헌신적 투쟁을 기반으로 형성된 진보민중진영의 연대투쟁은 박근혜 정권의 마수로부터 백남기 농민을 지켜냈다
.
마침내... 때를 같이하여 박근혜 정권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백남기 투쟁의 승리는 반격의 신호탄이 되었다.
민중들은 대반격을 개시하였다.
전농을 비롯한 진보민중진영이 준비해온 민중총궐기를 뛰어넘는 범국민적 촛불항쟁이 시작되었다. 농민들이 뿌린 투쟁의 씨앗, 백남기 농민의 고귀한 희생이 항쟁을 불러왔다.
"전봉준투쟁단',
농민들은 왜 전봉준 장군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가?
조선 말기 부패무능한 봉건왕조의 타락상은 극에 달했고, 헐벗은 백성들의 참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없었다.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 서구 열강과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의 발톱은 호시탐탐 조선 침략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명운을 다한 조선왕조, 우리 민족은 운명의 갈림길에 놓였다. 바로 이때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농민군이 일어났다. 반제 반봉건의 기치 높이 백성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가렴주구와 사대주의에 물젖은 봉건통치배들은 외세의 힘을 빌어 농민군 토벌에 나섰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청나라를 불러들여 청일전쟁의 불집을 터뜨렸고, 2차 봉기에는 관군의 작전 지휘권을 일본군에 맡겨 농민군 토벌전을 전개했다. 농민군은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조일 연합군의 대대적인 토벌전에 처참하게 희생, 소멸하고 말았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실패 이후 자신의 민족적 역량을 스스로 허물어버린 조선왕조는 급격한 쇠락 끝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12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외세에 빌붙어 자신의 명줄을 유지코자 했던 봉건통치배들은 일제강점기, 해방정국을 거치는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고스란히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최상층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백일하에 드러난 이명박 박근혜 등 수구보수 정권과 그 부역자들의 부패타락한 몰골이 조선말기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봉준 투쟁단 총대장인 전농 김영호 의장은 26일 광화문 농민대회와 제5차 범국민대회에서 '역사투쟁'을 천명했다. 농민들이 단순히 쌀값이나 올려받자고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전봉준 투쟁단이 천명한 '역사투쟁'은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이래 지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 사대주의적 개방농정을 철폐하고 식량주권에 기반한 민족자주 농정을 실현하는 투쟁으로 된다. 갑오년 조선 천지를 진감케 한 전봉준 장군의 호령소리가 전봉준 투쟁단의 활동으로 되살아나 메아리쳤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목차
목차
인사말씀
전봉준투쟁단의 기록
들어가며
전봉준투쟁단이 발족하기까지
2015년 민중총궐기, 백남기 투쟁
9월 투쟁, 백남기 농민 사망 ·
한남대교 투쟁
운명의 10월 25일
11월 6일 금남로 전농 활동가 토론회
2016년 민중총궐기
전봉준투쟁단 1차 궐기
전봉준투쟁단, 시동 걸다
안성투쟁
양재IC 투쟁
광화문결의대회
전봉준투쟁단 2차 궐기
평택·수원 투쟁
대장 트랙터 국회 진격 투쟁
별동대 국회 진격 투쟁
'박근혜 즉각퇴진
응답하라 국회 2차 비상국민행동
7차 범국민대회
전봉준투쟁단 3차 궐기
전봉준투쟁단이 남긴 것
전봉준투쟁단 투쟁 경로
전봉준 투쟁단,
촛불혁명의 불꽃이 되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전봉준투쟁단의 기록
들어가며
전봉준투쟁단이 발족하기까지
2015년 민중총궐기, 백남기 투쟁
9월 투쟁, 백남기 농민 사망 ·
한남대교 투쟁
운명의 10월 25일
11월 6일 금남로 전농 활동가 토론회
2016년 민중총궐기
전봉준투쟁단 1차 궐기
전봉준투쟁단, 시동 걸다
안성투쟁
양재IC 투쟁
광화문결의대회
전봉준투쟁단 2차 궐기
평택·수원 투쟁
대장 트랙터 국회 진격 투쟁
별동대 국회 진격 투쟁
'박근혜 즉각퇴진
응답하라 국회 2차 비상국민행동
7차 범국민대회
전봉준투쟁단 3차 궐기
전봉준투쟁단이 남긴 것
전봉준투쟁단 투쟁 경로
전봉준 투쟁단,
촛불혁명의 불꽃이 되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저자
저자
이대종
1966년 고창 성내면 출생, 휘문고 졸업, 동국대학 사범대학 중퇴, 1989 고창으로 귀향하여 농사와 함께 농민운동을 시작했으며 고창군농민회 사무국장, 전농 전북도연맹 사무처장, 정책위원장을 거쳐 전농 정책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창군농민회장을 맡아 농사와 함께 농민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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