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마음의 고향)(한옥시리즈 1)(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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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집이, 집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긍정적 순환의 관계를 이루는 한옥
마음의 고향 『한옥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을 포함한 24곳의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 소개에서부터 그 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의 소개, 역사적인 사실, 인물, 철학 등 마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자연의 일부로 체화되어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한옥, 한옥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옛 고향의 그윽한 정취나 멋을 표현했다. 한옥마을의 다양한 측면과 구성요소를 1,000여 컷의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어 도면과 함께 제공한다.
마음의 고향 『한옥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을 포함한 24곳의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 소개에서부터 그 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의 소개, 역사적인 사실, 인물, 철학 등 마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자연의 일부로 체화되어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한옥, 한옥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옛 고향의 그윽한 정취나 멋을 표현했다. 한옥마을의 다양한 측면과 구성요소를 1,000여 컷의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어 도면과 함께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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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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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우리의 심성 속에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는 특성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 특성 중에는 서두름과 느긋함도 포함되어 있다. 그 발원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자연주의가 뿌리 깊게 곳곳에 침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특성들이 한국인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고, 그러한 요소들을 건축물에 담아낸 것이 바로 한옥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건축양식에 나타난 특질들을 역추적하여 우리 마음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마음의 고향...
한옥마을 한옥시리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을 포함한 24곳의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 소개에서부터 그 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의 소개, 역사적인 사실, 인물, 철학 등 마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연의 일부로 체화되어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한옥, 한옥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옛 고향의 그윽한 정취나 멋을 표현했다. 한옥마을의 다양한 측면과 구성요소를 1,000여 컷의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어 도면과 함께 게재하였다. 한국건축 분야에 종사하거나 한옥마을에 관심을 두고 계신 분, 한옥을 마련하고자 하는 실수요자, 직접 탐방을 원하는 여행가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01. 서울 북촌마을 :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는 마을이다. 퇴적층처럼 흐르는 시간이 쌓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지존의 왕궁과 서민들의 애환이 함께 하는 공간이 북촌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한옥 보존지구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고도 한다. 북촌은 고관대작들과 왕족, 사대부들이 모여서 거주해온 고급 살림집터로 한옥은 모두 조선시대의 기와집이다. 조선의 수도인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한국의 전통 거주지역이다. 조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전통 한옥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02. 남한산성 마을 : 남한산성은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은 성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견고하고 요새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가장 큰 치욕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스스로 항복을 선언한 조선의 왕 인조가 청나라의 태종에게 직접 머리를 조아린 장소이기도 하다. 남한산성마을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행궁이 다시 복원되고 마을은 한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마을은 한옥이지만 생활에 편리한 현대적인 공법과 재료를 들여 지어졌다. 한옥이 가진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새로운 창조적인 변화를 가졌다.
03. 무안 약실마을 : 농사지을 농토가 없어 마을 주민들이 취와 더덕 도라지 등 산나물과 산약초를 캐서 생계를 꾸리던 빈촌이었다. 마을 이름도 산 주변에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 해서 약실(藥實)이라 했다. 실지로 산초와 하수오가 자생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한옥시범마을 조성사업에 약실마을이 지정되었다. 현재 약실마을 한옥 주택은 22가구의 한옥단지로 조성된다. 한옥집에는 반드시 한 칸은 게스트하우스로 조성, 민박집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다시 태어나는 한옥마을은 또 다른 전통마을이 될 것이다.
04. 함평 오두마을 : 오두마을은 한옥 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마을이다. 약초를 캐며 살던 빈촌에서 한옥을 지어 생활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오두마을은 지명도 재미있다. 함평(咸平)은 조선 태종 9년, 1409년에 함풍현과 모평현을 합치면서 함풍에서 '함(咸)'자를, 모평에서 '평(平)'자를 따와 붙여진 이름이다. 오두마을은 함평군에 속한 '해보면'이다. 지명 이름대로 무엇이든 '해보면' 그 맛을 알게 된다. 마을 내 야생화공원인 '황토와 들꽃세상'과 한옥촌 조성이 마을을 다시 살리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뜻밖에 귀농·귀촌의 발길이 줄을 잇게 됐다.
05. 거창 황산마을 :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규모와 형식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는 시도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 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06. 경주 양동마을 : 신라 속에 조선마을, 이렇게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천년의 고도 경주에 조선의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양동마을이다. 무려 500년을 조선의 이름으로 살아왔음에도 경주는 왠지 신라의 마을로 남는데 확연하게 조선의 얼굴로 살아왔고 살아있는 마을이 양동마을이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는 특별한 모습의 마을이다. 양반가와 외거하인들이 살던 가립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이 3∼5채씩 딸려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을이다. 또한 이씨와 손씨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화합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속내를 들여다보기에 호기심이 가는 마을이다.
07. 고령 개실마을 : 개실마을은 무오사화때 화를 입은 김종직선생의 5대손이 1650년경에 이 마을에 피신하여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아름다운 골짜기라 하여 아름다울 가(佳), 골곡(谷)을 써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한다. 또 하나는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 하여 개화실 (開花室)이라고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개에실이 되고 개애실로 변한다. 개애실 마을 중 아랫마을이라 하여 개실하가 또는 하가곡이라 하다가 지금은 개실마을로 되었다. 죽은 사람을 또 한 번 죽이는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의 후손이 다시 영광을 찾아 터를 일군 복권된 마을이다.
08. 고성 왕곡마을 : 19세기를 전후하여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남한에서 유일하게 밀집되어 보존되어 있다. 왕곡마을은 국가중요민속자료 제 235호로 지정됐다. 북방식 한옥은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한옥이다. 불을 지피는 부엌의 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외풍을 피할 수 있도록 집안에서 의식주가 해결되도록 한 가옥구조다. 소를 기르는 외양간도 부엌 옆에 두어 한기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왕곡마을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마을에 우물이 없다. 이는 마을 모양이 배의 형국이어서 마을에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다. 둘째는 어머니의 제사는 반드시 차남이 모시는 풍습이 있다. 마을사람들의 사연이 풍습을 만드는 현장이 왕곡마을이다.
09. 나주 도래마을 : 마을의 맥이 세 갈래로 갈라져 내 천(川)자 형국을 이룬다하여 '도천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고려 때는 남평문씨, 조선 세조 때는 한성우윤 최거가 살았으나,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가 기묘사화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풍산홍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도 절기마다 집안을 가리지 않고 마을 공동 잔치가 벌어진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 기와집과 현대가옥들이 어울려 있고 집들 사이로 돌담길이 있어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나주 도래마을 옛집은 안채와 문간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이전의 전통한옥에서 볼 수 없는 안채와 사랑채가 통합된 한 채의 복합형 살림집 형태다. 이는 전통한옥에서 근대한옥으로 변화해 가는 특징으로 건축사에서도 가치가 있어 등록문화재나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
10. 보성 강골마을 :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한 강골마을의 소재지인 득량면의 '득량'은 이순신 장군이 식량이 떨어졌을 ? 최초로 식량은 구한 곳이라 하여 득량이라 하였다 한다. 강골마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큰 가옥마다 앞뜰에 연못을 만든 것이다.
보성마을에는 민속촌처럼 살지도 않으면서 그냥 전시해 놓은 집들이 아니라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 온기가 남아 있는 한옥이다. 마을에 남아 있는 가옥들은 19세기 이후 광주이씨 집안에서 지었다. 보성마을은 담길이 인상적이다. 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토석담으로 마치 빗살무늬토기처럼 돌을 비스듬히 얹고 흙을 짓이겨 놓음으로써 최대한 튼튼하게 담을 쌓았다. 담과 길이 만들어내는 협연을 감상하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11. 보성 예동마을 : 남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루 갖춘 한옥이 있어 가치가 있다. 남도의 정취 중 대나무가 주는 소리와 빛 그리고 시원한 맛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대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정취는 크다. 바람이 지나갈 때 내는 특유의 소리는 남도인 가슴 안에서 꿈이 되기도 하고 회귀의 본능을 일깨우게도 하는 소리다. 속을 비워 악기가 되기도 하고, 마디를 가져 정리하는 절제를 가진 대나무는 예동마을에서도 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의 중심이 동심원을 그린 한 가운데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자리가 중심이 된다. 마을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이고 마을 사람들의 경조사뿐만이 아니라 작은 집안 이야기부터 살림살이에 대한 소식까지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곳이 중심이다.
12. 봉화 닭실마을 : 다섯 가지 보물이 전해오는데 특이하다.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책이나 문서다. 근사록, 충재일기 7책, 중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책, 호적단자 등의 문서류, 서첩과 글씨. 사상적인 깊이와 문향이 깊은 선비의 종택다운 보물들이다. 봉화는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자리 잡아 예로부터 오지로 불리던 곳이다. 봉화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옛 선인들은 이곳을 수도와 정진의 장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 인 장소가 청량산이다. 선비들의 수도장이던 청량산이다. 청량산에 자리한 마을이 닭실마을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정자는 연못 가운데 큰 돌 위에 있어 섬과 같으며, 사방은 냇물이 고리처럼 둘러 제법 아늑한 경치가 있다"고 한 청암정이 있다.
13. 산청 남사마을 : 지리산 길목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는 18-20세기의 전통 한옥 40여 호가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인 남사(南沙)마을이 있다. 고풍이란 퇴락되어 가는 맛이 아니라 세월을 끌어안은 만큼 깊고 그윽한 맛을 가진 것을 말하는데 남사마을이 그렇다.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안으로 품은 것을 이내 훔쳐볼 수 있다. 남사마을의 특이한 점은 마을 생김새가 반달 모양으로 생겼으니 반월을 메우면 안 된다고 믿어 중심부에는 집을 들이지 않고 농지로 남겨두었고, 상사마을에서도 마을이 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우물 파기를 금해왔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전통 역사박물관에 비견될 정도로 한국의 미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이 하회마을이라면 경남에는 남사마을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남사마을의 위상은 가볍지 않다.
14. 산청 단계마을 : 단계마을을 흐르는 물이름이 단계다. 단계는 이 지역이 황토흙으로 붉은 물이 흘러간다 해서 단계(丹溪)라고 했다. 산청의 황매산 자락에 위치하며 단계천을 끼고 있는 준 평야지대에 속하는 마을이다. 단계가 있는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다. 280여 세대 69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50여 채의 한옥이 있다. 제법 큰 마을이다. 그 중에서 단계박씨고가와 안동권씨 고가 등이 둘러볼 만하다. 마을 앞쪽에 자리한 박씨고가는 지어진 지 380년 되었다.
15. 성주 한개마을 :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자리잡은 후 대를 이어 살아왔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100여 채의 전통 고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영남 최고 길지로 꼽히며,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 조선말의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하였다.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으려 뒤주에 갇히는 현장에서 후일 정조가 되는 세손을 업고 들어가 육탄으로 영종에게 호소하였으나 무위로 끝나고 곤장을 맞고 파직까지 당한다. 집으로 낙향하여 문을 떼어내 북쪽을 향하여 문을 새로이 낸다. 그 문이 북비고택이라는 일각문이다. 이석문은 죽을 때까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아침마다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고 한다.
16. 순천 낙안읍성 : 서민마을을 찾아가고 싶다면 낙안읍성 마을만한 곳이 없다.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 안에 있는 마을이다. 전통마을과 함께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있다. 돌담과 싸리문에 안온하게 집들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에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로서, 낙안읍성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현재에도 마을은 활력을 가진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85세대 229명이 살고 있는 의젓한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17. 아산 외암마을 :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청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돌담이 총 5.3km에 달한다. 예안이씨의 집성촌이다. 외암마을의 기와와 초가가 만남은 양반과 상인의 만남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대부의 기와지붕과 일반 상인이나 노비의 집은 초가다. 그들의 갈등과 협력이 시대상이었지만 풍경으로 만나는 조화로움은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외암리마을은 물과 돌의 마을이다. 물을 돌담에 만들어 놓은 물문으로 집으로 끌어들여 지형에 의한 낙차를 이용하여 흘러가도록 했다. 외암마을에서 물은 생명이고 돌은 정착을 상징하는 듯하다.
18. 안동 군자마을 : 군자마을의 풋굿축제를 아시는가. 풋굿은, 굿하면 흔히 무당을 연상하지만 농경사회에서 농한기 때 쉬면서 다 같이 모여 익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여는 행사다. 여기서 '풋'이란 '익지 않은 음식'을 말한다. 바쁜 농사일을 마치고 이제 한시름 놓았기 때문에 마을잔치를 벌이며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 풋굿은 한문으로는 초연(草宴)이라 하는데 익지 않은 날 것을 먹는 것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풋굿을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호미씻이란 논매기를 마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로 지방에 따라서는 풋구·머슴날·장원례(壯元禮)라고 한다. 전남 진도에서는 길꼬냉이, 경북 선산에서는 꼼비기라고도 한다. 군자마을 현장에서는 풋굿 또는 '풋구먹는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풋굿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군자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다.
군자마을에는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여럿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요리책인『수운잡방』이 그것이다. 『수운잡방』은 김유공의 손으로 된 우리나라 최고의 요리서 가운데 하나다.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살아온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19. 안동 하회마을 : 안동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류운룡과 이순신을 천거했고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간다. 물이 돌아간다고 해서 하회(河回)다. 오른편 안동시에서 흘러나와 왼편으로 흘러간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있다.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 영덕 인량마을 : 대한민국의 종택마을이다. 인량마을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묵중한 중량감을 가진 마을이다. 무려 여덟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종택이 한 마을에 하나 있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덟 종택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옛날 부족국가 시절의 도읍이었음을 반증해 주는 결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마을에서도 꿈 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종가만이 가진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음식을 발굴해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가진 종가에 있다. 요리나 음식도 처음 시작하게 된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야 문화로 완성된다. 인량마을의 전통을 연구하면 한국적인 맛과 향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 영양 주실마을 : 주실 마을에는 예부터 삼불차를 지켰다한다. 삼불차(三不借)란 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안의 삼불차 원칙의 가훈이 정신적 토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인불차(人不借), 재불차(財不借), 문불차(文不借)가 그것이다. 사람을 빌리지 않고, 재물을 빌리지 않고,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인물을 빌리지 않고, 재물을 빌리지 않고, 그리고 남에게 문장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주실마을 선조들의 삶은 지조 높은 것을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에서 찾기보다 독자적인 자존의 길을 걸었다.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이 바로 민족시인 조지훈을 길러낸 밑거름이 아닐까싶다.
주실마을에는 우물을 파지 않고 멀리 낙동강 물을 끌어다 먹는다. 주실은 배 모양의 형국이므로 우물을 파거나 지하수를 파면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다는 믿음 때문이다. 구멍이 뚫리면 배는 침몰한다. 우물을 파면 인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연유이다.
22. 영주 무섬마을 : 우리말로 '물섬'에서 받침이 탈락하여 무섬마을이라 한다. 무섬마을은 물 위의 섬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나무로 기둥을 하천에 박고 그 위에 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얹은 나무다리가 유일한 외지로 통하는 길이었다. 지금도 만들어 놓았지만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생겨 외나무다리의 역할은 쉬러온 사람들의 유흥을 위해 몸을 내 줄 뿐이다. 교통이 불편한 외지임에도 무섬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경상도 동해안의 해산물들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특산품들이 모여들 정도로 번성했다. 풍수지리학에서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는 인재가 이어서 나온다고 한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면서 고립된 마을이었음에도 인재가 나왔다. 그것이 풍수의 원리다. 외나무다리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23. 대구 옻골마을 : 옻골은 마을 남쪽을 뺀 나머지 3면의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 칠계(漆溪)라고 했다. 경주최씨 종가 및 보본당사당을 비롯해 20여 채의 조선시대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구지방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주최씨 종가 및 보본당사당은 풍수지리설과 음양오행설을 반영해 지은 가옥이다.
옻골마을 담장은 우리나라의 돌담이 자연스럽게 경사를 받아들이고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모습과는 다른 직선을 고집하고 있다. 토석담으로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정연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24. 제주 성읍마을 : 제주도에서 가장 토속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산골 마을이면서 도읍지였다는 특이성을 갖추고 있다. 산촌이면서 도읍지였다는 이중적 성격은 성읍리가 민속마을다운 바탕을 이루게 하는 원천이다. 아늑한 터에, 주변으로는 마을을 둘러싼 키재기 하듯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길들이 자연형세를 따라 굽이돌고 휘어지며 만난다. 성읍마을의 민가는 뭍과는 다른 독특한 건축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개 一자형 평면을 가진 집 2채를 중심으로 몇 가지 배치방식으로 짜여있어 제주도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주 민가는 돌과 새가 주재료이다. 구멍이 난 검은 돌로 지은 집은 충분히 특별하다. 돌로 벽을 쌓고 새로 지붕을 덮어 건물을 만든다. 이국적인 정취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인을 닮은 미학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한옥,
한옥마을
머무르지 못하는 유목에서는 바람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정착을 그리워하지만, 유목민에게는 꿈이었다. 사람이 가진 모든 살림과 사랑마저도 등짐으로 지고 이동해야만 했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안정과 평화 그리고 정주의 상징물인 항아리로 가득한 장독대도 마련되었다. 오래오래 발효되어야 깊은맛을 내는 장맛처럼 사람도 삶의 역사가 길고 깊어짐에 따라 나눔과 온기를 갖게 되었다. 바로 한옥마을이다. 우리 한옥마을의 장독대엔 여전히 장맛이 들어가고 구들장엔 장작을 땐 온기가 아직 그대로다.
사람 사는 마을에는 사람을 닮고, 산을 닮고, 바람을 닮은 집이 지어졌다. 한옥이다. 한옥은 독특한 내면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유목하면서 정착을 그리워했듯, 사람은 머무르면서 유목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집, 한옥은 자연을 받아들였다. 한옥에 자연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조선 후기이지만, 애초 민족성에는 자연의 바람이 들어 있었다. 우리 한옥이 아름다운 것은 이런 자연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독특함에 있다.
배흘림기둥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모두 사용하는 건축기법이지만, 우리 한옥에는 자연성을 확대하는 요소가 더 들어 있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천연덕스러움이다. 돌의 자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체화하는 그렝이기법이나 기둥을 받치는 초석으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덤벙주초가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부분적으로 질서를 파괴하여 더 큰 자연과의 화합을 이루려는 기질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성정이다. 모두 잘 다듬어진 기둥을 세우다가 어느 하나는 나무가 생긴 모습 그대로 세워 놓는 능청스러움도 보이는데 이것은 도랑주이다. 도랑주의 특성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인위 속에 무위를 천진스럽게 도입하고 있다. 작위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의 질서에 무작위의 자연성을 끌어들여 우리의 삶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앙곡, 안허리곡, 귀솟음, 안쏠림과 같이 자연주의에 적응하려는 한옥의 기법들은 우리의 마음과 닮은 데가 많다. 우리의 뿌리가 유목민족 이어서일까, 아니면 북방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피를 이어받아서일까. 그 근원은 알 수 없으나, 한옥이 우리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분명하다. 인위적인 것에도 자연을 들이는 큰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인은 미학을 다루는 솜씨가 여간 깊은 것이 아니다. 한국미의 특징은 단순미와 자연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성정에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시선 안쪽의 심연을 에돌려 보여 주는 탁월한 자연주의 기질이다. 언뜻 보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심오한 철학과 미학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한옥이 모여 있는 한옥마을. 그곳에는 북방의 웅혼함을 지닌 조선의 마음과 조선의 산하를 닮은 집들이 있었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땅에 한옥이 지어지고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고 다시 지어졌다. 지금까지 남은 한옥과 새로 지어진 한옥들이 있는 마을을 찾아다녔다. 우리의 선조는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지만, 집들은 장독대를 품은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역사와 애환, 노동이 함께하는 사람 사는 곳에는 정주의 안락으로 방향을 튼 한옥마을이 있었다. 마을의 집들을 취재하는 동안 더 없이 행복했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이 더욱 좋아졌다. 가파른 세상보다 자연을 더 닮은 사람들이었다. 추상같은 선비정신은 누그러졌고 집은 퇴락해 가고 있었지만 반가웠다. 우리를 가장 닮은 한옥을 다시 보고, 한옥이 모여 있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주는 한옥마을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의 호흡을 닮은 한옥과 한옥마을, 그리고 한국의 산하는 모두 다 아름다웠다.
마음의 고향...
한옥마을 한옥시리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을 포함한 24곳의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 소개에서부터 그 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의 소개, 역사적인 사실, 인물, 철학 등 마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연의 일부로 체화되어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한옥, 한옥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옛 고향의 그윽한 정취나 멋을 표현했다. 한옥마을의 다양한 측면과 구성요소를 1,000여 컷의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어 도면과 함께 게재하였다. 한국건축 분야에 종사하거나 한옥마을에 관심을 두고 계신 분, 한옥을 마련하고자 하는 실수요자, 직접 탐방을 원하는 여행가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01. 서울 북촌마을 :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는 마을이다. 퇴적층처럼 흐르는 시간이 쌓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지존의 왕궁과 서민들의 애환이 함께 하는 공간이 북촌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한옥 보존지구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고도 한다. 북촌은 고관대작들과 왕족, 사대부들이 모여서 거주해온 고급 살림집터로 한옥은 모두 조선시대의 기와집이다. 조선의 수도인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한국의 전통 거주지역이다. 조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전통 한옥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02. 남한산성 마을 : 남한산성은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은 성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견고하고 요새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가장 큰 치욕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스스로 항복을 선언한 조선의 왕 인조가 청나라의 태종에게 직접 머리를 조아린 장소이기도 하다. 남한산성마을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행궁이 다시 복원되고 마을은 한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마을은 한옥이지만 생활에 편리한 현대적인 공법과 재료를 들여 지어졌다. 한옥이 가진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새로운 창조적인 변화를 가졌다.
03. 무안 약실마을 : 농사지을 농토가 없어 마을 주민들이 취와 더덕 도라지 등 산나물과 산약초를 캐서 생계를 꾸리던 빈촌이었다. 마을 이름도 산 주변에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 해서 약실(藥實)이라 했다. 실지로 산초와 하수오가 자생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한옥시범마을 조성사업에 약실마을이 지정되었다. 현재 약실마을 한옥 주택은 22가구의 한옥단지로 조성된다. 한옥집에는 반드시 한 칸은 게스트하우스로 조성, 민박집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다시 태어나는 한옥마을은 또 다른 전통마을이 될 것이다.
04. 함평 오두마을 : 오두마을은 한옥 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마을이다. 약초를 캐며 살던 빈촌에서 한옥을 지어 생활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오두마을은 지명도 재미있다. 함평(咸平)은 조선 태종 9년, 1409년에 함풍현과 모평현을 합치면서 함풍에서 '함(咸)'자를, 모평에서 '평(平)'자를 따와 붙여진 이름이다. 오두마을은 함평군에 속한 '해보면'이다. 지명 이름대로 무엇이든 '해보면' 그 맛을 알게 된다. 마을 내 야생화공원인 '황토와 들꽃세상'과 한옥촌 조성이 마을을 다시 살리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뜻밖에 귀농·귀촌의 발길이 줄을 잇게 됐다.
05. 거창 황산마을 :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규모와 형식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는 시도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 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06. 경주 양동마을 : 신라 속에 조선마을, 이렇게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천년의 고도 경주에 조선의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양동마을이다. 무려 500년을 조선의 이름으로 살아왔음에도 경주는 왠지 신라의 마을로 남는데 확연하게 조선의 얼굴로 살아왔고 살아있는 마을이 양동마을이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는 특별한 모습의 마을이다. 양반가와 외거하인들이 살던 가립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이 3∼5채씩 딸려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을이다. 또한 이씨와 손씨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화합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속내를 들여다보기에 호기심이 가는 마을이다.
07. 고령 개실마을 : 개실마을은 무오사화때 화를 입은 김종직선생의 5대손이 1650년경에 이 마을에 피신하여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아름다운 골짜기라 하여 아름다울 가(佳), 골곡(谷)을 써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한다. 또 하나는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 하여 개화실 (開花室)이라고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개에실이 되고 개애실로 변한다. 개애실 마을 중 아랫마을이라 하여 개실하가 또는 하가곡이라 하다가 지금은 개실마을로 되었다. 죽은 사람을 또 한 번 죽이는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의 후손이 다시 영광을 찾아 터를 일군 복권된 마을이다.
08. 고성 왕곡마을 : 19세기를 전후하여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남한에서 유일하게 밀집되어 보존되어 있다. 왕곡마을은 국가중요민속자료 제 235호로 지정됐다. 북방식 한옥은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한옥이다. 불을 지피는 부엌의 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외풍을 피할 수 있도록 집안에서 의식주가 해결되도록 한 가옥구조다. 소를 기르는 외양간도 부엌 옆에 두어 한기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왕곡마을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마을에 우물이 없다. 이는 마을 모양이 배의 형국이어서 마을에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다. 둘째는 어머니의 제사는 반드시 차남이 모시는 풍습이 있다. 마을사람들의 사연이 풍습을 만드는 현장이 왕곡마을이다.
09. 나주 도래마을 : 마을의 맥이 세 갈래로 갈라져 내 천(川)자 형국을 이룬다하여 '도천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고려 때는 남평문씨, 조선 세조 때는 한성우윤 최거가 살았으나,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가 기묘사화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풍산홍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도 절기마다 집안을 가리지 않고 마을 공동 잔치가 벌어진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 기와집과 현대가옥들이 어울려 있고 집들 사이로 돌담길이 있어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나주 도래마을 옛집은 안채와 문간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이전의 전통한옥에서 볼 수 없는 안채와 사랑채가 통합된 한 채의 복합형 살림집 형태다. 이는 전통한옥에서 근대한옥으로 변화해 가는 특징으로 건축사에서도 가치가 있어 등록문화재나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
10. 보성 강골마을 :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한 강골마을의 소재지인 득량면의 '득량'은 이순신 장군이 식량이 떨어졌을 ? 최초로 식량은 구한 곳이라 하여 득량이라 하였다 한다. 강골마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큰 가옥마다 앞뜰에 연못을 만든 것이다.
보성마을에는 민속촌처럼 살지도 않으면서 그냥 전시해 놓은 집들이 아니라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 온기가 남아 있는 한옥이다. 마을에 남아 있는 가옥들은 19세기 이후 광주이씨 집안에서 지었다. 보성마을은 담길이 인상적이다. 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토석담으로 마치 빗살무늬토기처럼 돌을 비스듬히 얹고 흙을 짓이겨 놓음으로써 최대한 튼튼하게 담을 쌓았다. 담과 길이 만들어내는 협연을 감상하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11. 보성 예동마을 : 남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루 갖춘 한옥이 있어 가치가 있다. 남도의 정취 중 대나무가 주는 소리와 빛 그리고 시원한 맛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대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정취는 크다. 바람이 지나갈 때 내는 특유의 소리는 남도인 가슴 안에서 꿈이 되기도 하고 회귀의 본능을 일깨우게도 하는 소리다. 속을 비워 악기가 되기도 하고, 마디를 가져 정리하는 절제를 가진 대나무는 예동마을에서도 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의 중심이 동심원을 그린 한 가운데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자리가 중심이 된다. 마을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이고 마을 사람들의 경조사뿐만이 아니라 작은 집안 이야기부터 살림살이에 대한 소식까지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곳이 중심이다.
12. 봉화 닭실마을 : 다섯 가지 보물이 전해오는데 특이하다.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책이나 문서다. 근사록, 충재일기 7책, 중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책, 호적단자 등의 문서류, 서첩과 글씨. 사상적인 깊이와 문향이 깊은 선비의 종택다운 보물들이다. 봉화는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자리 잡아 예로부터 오지로 불리던 곳이다. 봉화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옛 선인들은 이곳을 수도와 정진의 장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 인 장소가 청량산이다. 선비들의 수도장이던 청량산이다. 청량산에 자리한 마을이 닭실마을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정자는 연못 가운데 큰 돌 위에 있어 섬과 같으며, 사방은 냇물이 고리처럼 둘러 제법 아늑한 경치가 있다"고 한 청암정이 있다.
13. 산청 남사마을 : 지리산 길목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는 18-20세기의 전통 한옥 40여 호가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인 남사(南沙)마을이 있다. 고풍이란 퇴락되어 가는 맛이 아니라 세월을 끌어안은 만큼 깊고 그윽한 맛을 가진 것을 말하는데 남사마을이 그렇다.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안으로 품은 것을 이내 훔쳐볼 수 있다. 남사마을의 특이한 점은 마을 생김새가 반달 모양으로 생겼으니 반월을 메우면 안 된다고 믿어 중심부에는 집을 들이지 않고 농지로 남겨두었고, 상사마을에서도 마을이 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우물 파기를 금해왔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전통 역사박물관에 비견될 정도로 한국의 미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이 하회마을이라면 경남에는 남사마을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남사마을의 위상은 가볍지 않다.
14. 산청 단계마을 : 단계마을을 흐르는 물이름이 단계다. 단계는 이 지역이 황토흙으로 붉은 물이 흘러간다 해서 단계(丹溪)라고 했다. 산청의 황매산 자락에 위치하며 단계천을 끼고 있는 준 평야지대에 속하는 마을이다. 단계가 있는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다. 280여 세대 69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50여 채의 한옥이 있다. 제법 큰 마을이다. 그 중에서 단계박씨고가와 안동권씨 고가 등이 둘러볼 만하다. 마을 앞쪽에 자리한 박씨고가는 지어진 지 380년 되었다.
15. 성주 한개마을 :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자리잡은 후 대를 이어 살아왔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100여 채의 전통 고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영남 최고 길지로 꼽히며,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 조선말의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하였다.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으려 뒤주에 갇히는 현장에서 후일 정조가 되는 세손을 업고 들어가 육탄으로 영종에게 호소하였으나 무위로 끝나고 곤장을 맞고 파직까지 당한다. 집으로 낙향하여 문을 떼어내 북쪽을 향하여 문을 새로이 낸다. 그 문이 북비고택이라는 일각문이다. 이석문은 죽을 때까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아침마다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고 한다.
16. 순천 낙안읍성 : 서민마을을 찾아가고 싶다면 낙안읍성 마을만한 곳이 없다.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 안에 있는 마을이다. 전통마을과 함께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있다. 돌담과 싸리문에 안온하게 집들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에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로서, 낙안읍성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현재에도 마을은 활력을 가진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85세대 229명이 살고 있는 의젓한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17. 아산 외암마을 :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청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돌담이 총 5.3km에 달한다. 예안이씨의 집성촌이다. 외암마을의 기와와 초가가 만남은 양반과 상인의 만남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대부의 기와지붕과 일반 상인이나 노비의 집은 초가다. 그들의 갈등과 협력이 시대상이었지만 풍경으로 만나는 조화로움은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외암리마을은 물과 돌의 마을이다. 물을 돌담에 만들어 놓은 물문으로 집으로 끌어들여 지형에 의한 낙차를 이용하여 흘러가도록 했다. 외암마을에서 물은 생명이고 돌은 정착을 상징하는 듯하다.
18. 안동 군자마을 : 군자마을의 풋굿축제를 아시는가. 풋굿은, 굿하면 흔히 무당을 연상하지만 농경사회에서 농한기 때 쉬면서 다 같이 모여 익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여는 행사다. 여기서 '풋'이란 '익지 않은 음식'을 말한다. 바쁜 농사일을 마치고 이제 한시름 놓았기 때문에 마을잔치를 벌이며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 풋굿은 한문으로는 초연(草宴)이라 하는데 익지 않은 날 것을 먹는 것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풋굿을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호미씻이란 논매기를 마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로 지방에 따라서는 풋구·머슴날·장원례(壯元禮)라고 한다. 전남 진도에서는 길꼬냉이, 경북 선산에서는 꼼비기라고도 한다. 군자마을 현장에서는 풋굿 또는 '풋구먹는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풋굿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군자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다.
군자마을에는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여럿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요리책인『수운잡방』이 그것이다. 『수운잡방』은 김유공의 손으로 된 우리나라 최고의 요리서 가운데 하나다.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살아온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19. 안동 하회마을 : 안동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류운룡과 이순신을 천거했고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간다. 물이 돌아간다고 해서 하회(河回)다. 오른편 안동시에서 흘러나와 왼편으로 흘러간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있다.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 영덕 인량마을 : 대한민국의 종택마을이다. 인량마을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묵중한 중량감을 가진 마을이다. 무려 여덟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종택이 한 마을에 하나 있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덟 종택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옛날 부족국가 시절의 도읍이었음을 반증해 주는 결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마을에서도 꿈 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종가만이 가진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음식을 발굴해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가진 종가에 있다. 요리나 음식도 처음 시작하게 된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야 문화로 완성된다. 인량마을의 전통을 연구하면 한국적인 맛과 향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 영양 주실마을 : 주실 마을에는 예부터 삼불차를 지켰다한다. 삼불차(三不借)란 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안의 삼불차 원칙의 가훈이 정신적 토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인불차(人不借), 재불차(財不借), 문불차(文不借)가 그것이다. 사람을 빌리지 않고, 재물을 빌리지 않고,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인물을 빌리지 않고, 재물을 빌리지 않고, 그리고 남에게 문장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주실마을 선조들의 삶은 지조 높은 것을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에서 찾기보다 독자적인 자존의 길을 걸었다.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이 바로 민족시인 조지훈을 길러낸 밑거름이 아닐까싶다.
주실마을에는 우물을 파지 않고 멀리 낙동강 물을 끌어다 먹는다. 주실은 배 모양의 형국이므로 우물을 파거나 지하수를 파면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다는 믿음 때문이다. 구멍이 뚫리면 배는 침몰한다. 우물을 파면 인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연유이다.
22. 영주 무섬마을 : 우리말로 '물섬'에서 받침이 탈락하여 무섬마을이라 한다. 무섬마을은 물 위의 섬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나무로 기둥을 하천에 박고 그 위에 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얹은 나무다리가 유일한 외지로 통하는 길이었다. 지금도 만들어 놓았지만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생겨 외나무다리의 역할은 쉬러온 사람들의 유흥을 위해 몸을 내 줄 뿐이다. 교통이 불편한 외지임에도 무섬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경상도 동해안의 해산물들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특산품들이 모여들 정도로 번성했다. 풍수지리학에서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는 인재가 이어서 나온다고 한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면서 고립된 마을이었음에도 인재가 나왔다. 그것이 풍수의 원리다. 외나무다리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23. 대구 옻골마을 : 옻골은 마을 남쪽을 뺀 나머지 3면의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 칠계(漆溪)라고 했다. 경주최씨 종가 및 보본당사당을 비롯해 20여 채의 조선시대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구지방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주최씨 종가 및 보본당사당은 풍수지리설과 음양오행설을 반영해 지은 가옥이다.
옻골마을 담장은 우리나라의 돌담이 자연스럽게 경사를 받아들이고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모습과는 다른 직선을 고집하고 있다. 토석담으로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정연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24. 제주 성읍마을 : 제주도에서 가장 토속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산골 마을이면서 도읍지였다는 특이성을 갖추고 있다. 산촌이면서 도읍지였다는 이중적 성격은 성읍리가 민속마을다운 바탕을 이루게 하는 원천이다. 아늑한 터에, 주변으로는 마을을 둘러싼 키재기 하듯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길들이 자연형세를 따라 굽이돌고 휘어지며 만난다. 성읍마을의 민가는 뭍과는 다른 독특한 건축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개 一자형 평면을 가진 집 2채를 중심으로 몇 가지 배치방식으로 짜여있어 제주도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주 민가는 돌과 새가 주재료이다. 구멍이 난 검은 돌로 지은 집은 충분히 특별하다. 돌로 벽을 쌓고 새로 지붕을 덮어 건물을 만든다. 이국적인 정취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인을 닮은 미학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한옥,
한옥마을
머무르지 못하는 유목에서는 바람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정착을 그리워하지만, 유목민에게는 꿈이었다. 사람이 가진 모든 살림과 사랑마저도 등짐으로 지고 이동해야만 했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안정과 평화 그리고 정주의 상징물인 항아리로 가득한 장독대도 마련되었다. 오래오래 발효되어야 깊은맛을 내는 장맛처럼 사람도 삶의 역사가 길고 깊어짐에 따라 나눔과 온기를 갖게 되었다. 바로 한옥마을이다. 우리 한옥마을의 장독대엔 여전히 장맛이 들어가고 구들장엔 장작을 땐 온기가 아직 그대로다.
사람 사는 마을에는 사람을 닮고, 산을 닮고, 바람을 닮은 집이 지어졌다. 한옥이다. 한옥은 독특한 내면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유목하면서 정착을 그리워했듯, 사람은 머무르면서 유목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집, 한옥은 자연을 받아들였다. 한옥에 자연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조선 후기이지만, 애초 민족성에는 자연의 바람이 들어 있었다. 우리 한옥이 아름다운 것은 이런 자연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독특함에 있다.
배흘림기둥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모두 사용하는 건축기법이지만, 우리 한옥에는 자연성을 확대하는 요소가 더 들어 있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천연덕스러움이다. 돌의 자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체화하는 그렝이기법이나 기둥을 받치는 초석으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덤벙주초가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부분적으로 질서를 파괴하여 더 큰 자연과의 화합을 이루려는 기질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성정이다. 모두 잘 다듬어진 기둥을 세우다가 어느 하나는 나무가 생긴 모습 그대로 세워 놓는 능청스러움도 보이는데 이것은 도랑주이다. 도랑주의 특성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인위 속에 무위를 천진스럽게 도입하고 있다. 작위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의 질서에 무작위의 자연성을 끌어들여 우리의 삶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앙곡, 안허리곡, 귀솟음, 안쏠림과 같이 자연주의에 적응하려는 한옥의 기법들은 우리의 마음과 닮은 데가 많다. 우리의 뿌리가 유목민족 이어서일까, 아니면 북방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피를 이어받아서일까. 그 근원은 알 수 없으나, 한옥이 우리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분명하다. 인위적인 것에도 자연을 들이는 큰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인은 미학을 다루는 솜씨가 여간 깊은 것이 아니다. 한국미의 특징은 단순미와 자연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성정에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시선 안쪽의 심연을 에돌려 보여 주는 탁월한 자연주의 기질이다. 언뜻 보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심오한 철학과 미학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한옥이 모여 있는 한옥마을. 그곳에는 북방의 웅혼함을 지닌 조선의 마음과 조선의 산하를 닮은 집들이 있었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땅에 한옥이 지어지고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고 다시 지어졌다. 지금까지 남은 한옥과 새로 지어진 한옥들이 있는 마을을 찾아다녔다. 우리의 선조는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지만, 집들은 장독대를 품은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역사와 애환, 노동이 함께하는 사람 사는 곳에는 정주의 안락으로 방향을 튼 한옥마을이 있었다. 마을의 집들을 취재하는 동안 더 없이 행복했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이 더욱 좋아졌다. 가파른 세상보다 자연을 더 닮은 사람들이었다. 추상같은 선비정신은 누그러졌고 집은 퇴락해 가고 있었지만 반가웠다. 우리를 가장 닮은 한옥을 다시 보고, 한옥이 모여 있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주는 한옥마을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의 호흡을 닮은 한옥과 한옥마을, 그리고 한국의 산하는 모두 다 아름다웠다.
목차
목차
|한옥, 한옥마을에 대하여 |
|현대 한옥마을|
01. 서울 북촌마을 : 락고재, 청원산방
02. 남한산성 마을 : 김태식가옥 , 주일성가옥, 고향산천
03. 무안 약실마을 : 박광일가옥 , 박석문가옥
04. 함평 오두마을 : 박선숙가옥 , 청도김씨 명가고택
|전통 한옥마을|
05. 거창 황산마을 : 신씨고가
06. 경주 양동마을 : 무첨당, 서백당, 향단
07. 고령 개실마을 : 점필재종택
08. 고성 왕곡마을
09. 나주 도래마을 : 홍기응가옥, 홍기헌가옥
10. 보성 강골마을 : 이식래가옥 , 이용욱가옥
11. 보성 예동마을 : 이범재가옥 , 이용우가옥
12. 봉화 닭실마을 : 권충재
13. 산청 남사마을 : 사양정사
14. 산청 단계마을 : 권씨고가
15. 성주 한개마을 : 한주종택, 북비고택 , 하회댁, 교리택
16. 순천 낙안읍성 : 곽형두가옥, 최창우가옥
17. 아산 외암마을 : 감찰댁
18. 안동 군자마을 : 종택 사랑채 , 후조당
19. 안동 하회마을 : 충효당
20. 영덕 인량마을 : 갈암종택, 충효당
21. 영양 주실마을 : 호은종택, 옥천종택
22. 영주 무섬마을 : 만죽재 , 해우당
23. 대구 옻골마을
24. 제주 성읍마을 : 한봉일가옥
|현대 한옥마을|
01. 서울 북촌마을 : 락고재, 청원산방
02. 남한산성 마을 : 김태식가옥 , 주일성가옥, 고향산천
03. 무안 약실마을 : 박광일가옥 , 박석문가옥
04. 함평 오두마을 : 박선숙가옥 , 청도김씨 명가고택
|전통 한옥마을|
05. 거창 황산마을 : 신씨고가
06. 경주 양동마을 : 무첨당, 서백당, 향단
07. 고령 개실마을 : 점필재종택
08. 고성 왕곡마을
09. 나주 도래마을 : 홍기응가옥, 홍기헌가옥
10. 보성 강골마을 : 이식래가옥 , 이용욱가옥
11. 보성 예동마을 : 이범재가옥 , 이용우가옥
12. 봉화 닭실마을 : 권충재
13. 산청 남사마을 : 사양정사
14. 산청 단계마을 : 권씨고가
15. 성주 한개마을 : 한주종택, 북비고택 , 하회댁, 교리택
16. 순천 낙안읍성 : 곽형두가옥, 최창우가옥
17. 아산 외암마을 : 감찰댁
18. 안동 군자마을 : 종택 사랑채 , 후조당
19. 안동 하회마을 : 충효당
20. 영덕 인량마을 : 갈암종택, 충효당
21. 영양 주실마을 : 호은종택, 옥천종택
22. 영주 무섬마을 : 만죽재 , 해우당
23. 대구 옻골마을
24. 제주 성읍마을 : 한봉일가옥
저자
저자
신광철
저자 신광철 시인 · 작가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현 한국문화콘텐츠개발연구소 소장으로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살아 있음이 축제라고 주장하는 사람, 나무가 생애 전체를 들여 온몸으로 일어서는 것을 경이라 하고, 사람에게 영혼의 직립을 주장한다. 저서로 시집 『사람, 그래도 아름다운 이름』,『늑대의 사랑』,『삶아, 난 너를 사랑한다』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땅의 아들』, 『강궁』이 있다. 인생개발서로는 『칭기즈칸 리더십』, 『장보고 리더십』이 있으며, 시평집으로 『시에서 길을 찾다』 등이 있다. 한국인의 심성과 미학적인 독특함, 기발함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국보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써왔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나라의 길에 대한 애환과 정서를 담은 『옛길을 걷다』가 출간되고, 아울러 민가건축의 집합체인 『한옥마을』과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의 한옥을 망라하여 『전통소형한옥』, 『한옥설계집』을 발표하였다.
현 한국문화콘텐츠개발연구소 소장으로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살아 있음이 축제라고 주장하는 사람, 나무가 생애 전체를 들여 온몸으로 일어서는 것을 경이라 하고, 사람에게 영혼의 직립을 주장한다. 저서로 시집 『사람, 그래도 아름다운 이름』,『늑대의 사랑』,『삶아, 난 너를 사랑한다』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땅의 아들』, 『강궁』이 있다. 인생개발서로는 『칭기즈칸 리더십』, 『장보고 리더십』이 있으며, 시평집으로 『시에서 길을 찾다』 등이 있다. 한국인의 심성과 미학적인 독특함, 기발함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국보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써왔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나라의 길에 대한 애환과 정서를 담은 『옛길을 걷다』가 출간되고, 아울러 민가건축의 집합체인 『한옥마을』과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의 한옥을 망라하여 『전통소형한옥』, 『한옥설계집』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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