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광대
김명곤 자전
Regular price
$15.73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광대 김명곤의 꿈과 열정을 그리다!
김명곤의 자전적 에세이『꿈꾸는 광대』. 이 책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잡지사 기자로, 독일어 교사로,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 소리꾼으로, 연출가, 작가, 기획자, 제작자, 극장 경영자, 장관으로 살아온 저자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며 예술가로서 초석을 다지던 시기부터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저자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줬던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과 소설과 이청준과의 인연,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와 함께 문화행정가의 고뇌를 보여준다. 더불어 다시 자유인이자 유랑민으로 돌아와 예마藝魔를 만나기 위해 기를 쓰고 싸우고, 몸부림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명곤의 자전적 에세이『꿈꾸는 광대』. 이 책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잡지사 기자로, 독일어 교사로,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 소리꾼으로, 연출가, 작가, 기획자, 제작자, 극장 경영자, 장관으로 살아온 저자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며 예술가로서 초석을 다지던 시기부터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저자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줬던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과 소설과 이청준과의 인연,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와 함께 문화행정가의 고뇌를 보여준다. 더불어 다시 자유인이자 유랑민으로 돌아와 예마藝魔를 만나기 위해 기를 쓰고 싸우고, 몸부림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꿈과 삶에 대한 김명곤의 자전적 기록이다. 막연히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청소년시절을 거쳐 서울사대에 입학한 후 운명처럼 찾아온 연극에 미치고, 지리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의 울림을 따라 박초월 명창의 애제자가 되면서 소리꾼이 되었으며, 탐미적 예술관을 가졌던 그에게 불온한 영향을 끼쳤던 남민전 사건. 이후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전위인 연극 연출가, 작가, 제작자,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영화에 진출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 사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재임 시의 영광과 고뇌.
여고 1년생 제자와의 부적절한(?) 로맨스, 김명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작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 버린 정치인 이재오와의 애매한 인연, 김명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는 지적을 당하고도 그를 장관으로 기용한 대인배 노무현과의 인연.
한 번도 시대정신을 외면한 적이 없는, 스스로 한없이 낮아지려는 사람, 그는 광대다. 꿈꾸는 광대! 김명곤이다.
책의 내용
제1부는 날개 단 김명곤이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준 것은 영화 <서편제>다. 그는 서편제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 소설가 이청준과의 인연이 소개된다. 작가 이윤기와 영화감독 이장호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과 노무현과의 일화는 김명곤의 강단을 알게 해 준다.
제2부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대 입학까지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넣어준 분들이다. 고전을 가르치던 고교시절 은사는 김명곤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3부는 청년 김명곤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박초월 명창을 만나고,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고 1년생 제자는 아내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보여준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연극판 앞자리에는 늘 김명곤이 있었다. 여고 1년생 제자는 '거지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제5부는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등 문화행정가의 고뇌를 보여주고, 다시 자유인, 유랑민으로 돌아온 예술가 김명곤의 꿈을 얘기한다.
출판사 리뷰
전천후 엔터테이너 김명곤
독일어 교사, <뿌리깊은 나무> 기자, 소리꾼, 희곡 작가, 연극연출가,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김명곤이다. 내년에 60세가 되는 이 사내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그의 꿈은 오로지 예술이다.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예술. '불후의 명작'에 대한 꿈.
故 이윤기(소설가, 번역가)는 1991년에 나온 김명곤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에서 김명곤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나와도 자기 저서에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안 쓰는 지독한 바지저고리. 판소리꾼인가 하면 영화배우로도 뛰고, 연극 평론을 하는가 하면 소설도 써내는 팔방미인. 20대의 카오스에서 자기를 건져준 문학과 연극에 공양미 시주 대신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더 섬기겠노라 약속한 큰 광대 김명곤이 온몸으로 부르는 소리가락!
김명곤의 삶을 만나면, 우리가 산 삶은 지우개로 북북 지우고 싶어진다! 그가 살아온 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들으면 문득 그를 닮고 싶어진다!
무대에 서면 청산유수같이 대사를 뱉어내는 김명곤도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게 어눌할 수가 없다. 그의 인생에는 대본이 없기 때문인가?
당시 고려원 편집주간이던 마흔네 살의 이윤기가 서른아홉 살 김명곤을 이렇게 평했다. 이때 김명곤은 극단 아리랑 대표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에서 가난한 민중연극을 이끌고 있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
1993년 영화 <서편제>는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면서 김명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연극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는 작가였으며 배우였고 연출가였다. 2000년에 국립극장장, 2006년에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지만, 그는 다시 예술의 자리로 돌아와 연극, 뮤지컬,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천상 예술인이다.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을 희롱하는 광대들의 탈춤이 있었다.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사회시스템은 소셜테이너를 탄생시켰다. 광대와 소셜테이너 사이에 김명곤이 있다. 김명곤이 유일하지는 않지만 김명곤이 대표적이다. 한결 같이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광대'임을 자랑스레 여긴다. 하여 그는 개념 광대이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민전 사건에는 지금 진보신당 대표가 된 홍세화, 고인이 된 시인 김남주 등과 함께 보우수익 정치인으로 크게 성장한 이재오가 있었다. 이재오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이민'이라는 가명으로 교사극단을 이끌었고, 김명곤도 독일어교사 시절 이 극단의 멤버였다. 독일 희곡에 심취하며 탐미적 예술을 지향했던 김명곤은 이재오 등 극단 동료교사들의 구속을 보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시인 김용택의 말대로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었다. 80년대 그는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외로운, 꿈꾸는 광대였다
김명곤이 국립극장장이 되고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그의 변신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은 '남산의 소나무가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며 김명곤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대 길 없는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였기에 / 그대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였기에 /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어도 / 외로운 광대임을 잊지 않으리라 믿는다… -p248
극장장, 장관 등 공익근무를 마친 김명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늘 꿈꿔 온 예술판으로 돌아왔다. 천연덕스럽게 다시 광대가 되었다. 다시 연극을 기획하고, 영화에 출연하며,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연극과 판소리의 기초를 다졌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사골 출신 장남의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타협적으로 <뿌리깊은나무> 기자가 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연극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부모님까지 상경한 터에 생활은 그를 연극판에 둘 수 없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연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생부터 불량교사였던 셈인데 그 마저도 2년 만에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故 이윤기 표현대로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섬기겠노라는 큰 광대", 참 광대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서편제>로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곧바로 연극무대로 돌아와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연기를 하였다. 국립극장장을 지내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 곧바로 광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온 생애를 꿈꾸는 일에 의탁하고, 한 편의 영화나 연극에 바칠 때 예마는 찾아올 것이다. 나는 예마를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고"(p291) 있는 것이다.
추천사
김명곤은 늘 숨 가쁜 시대의 현장에 있었다. 1980년대 그가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고 마당극의 마당을 훨훨 날며 구호를 외치면 모두 숨이 막혔다. 그는 부활한 전봉준이 되었다. 판소리 가락에 따라 춤추며 남도의 먼지 나는 들길을 걸으면 그는 민족의 한을 품은 뛰어난 가객이었다. 영화든 연극이든 판소리든 그가 있는 곳은 늘 시대의 중심이었다. 한때 그는 우리나라 문화를 책임지는 수장이었다. 관리자의 탁월함까지 갖춘 것이다. 요새 말로 타고난 전천후 엔터테인먼트다.
어느 날 그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를 듣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달리던 차를 멈췄다는 기사를 보았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 노래를 듣고 나도 머릿속이 노랗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현대적인 청춘의 감성, 감각을 잃지 않고 사는 새파란 청춘이다. 그의 어깨는 스무 살 청년처럼 싱그럽다.
김용택(시인)
김명곤, 그는 운명적으로 광대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의 내력을 소상히 들여다보고 나니 그가 〈서편제〉와 만난 것은 우연한 캐스팅이 아니라 운명적인 결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문학을 하려다 연극에 빠진 것도 운명이었으며, 연극 때문에 폐병에 걸려 낙향했다가 판소리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그가 판소리와 만나 전통과 화해하고, 소리꾼의 예술에 매혹당하고, 그들의 삶에서 받은 감동이 그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염된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 그의 운명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로 살게 했으며, 국립극장장을 거쳐 문화부장관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광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운명이란 이름의 열정은 그를 다시 광대가 되게 하여 광대무변한 기획을 맡길 것이다.
도종환(시인)
여고 1년생 제자와의 부적절한(?) 로맨스, 김명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작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 버린 정치인 이재오와의 애매한 인연, 김명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는 지적을 당하고도 그를 장관으로 기용한 대인배 노무현과의 인연.
한 번도 시대정신을 외면한 적이 없는, 스스로 한없이 낮아지려는 사람, 그는 광대다. 꿈꾸는 광대! 김명곤이다.
책의 내용
제1부는 날개 단 김명곤이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준 것은 영화 <서편제>다. 그는 서편제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 소설가 이청준과의 인연이 소개된다. 작가 이윤기와 영화감독 이장호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과 노무현과의 일화는 김명곤의 강단을 알게 해 준다.
제2부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대 입학까지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넣어준 분들이다. 고전을 가르치던 고교시절 은사는 김명곤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3부는 청년 김명곤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박초월 명창을 만나고,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고 1년생 제자는 아내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보여준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연극판 앞자리에는 늘 김명곤이 있었다. 여고 1년생 제자는 '거지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제5부는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등 문화행정가의 고뇌를 보여주고, 다시 자유인, 유랑민으로 돌아온 예술가 김명곤의 꿈을 얘기한다.
출판사 리뷰
전천후 엔터테이너 김명곤
독일어 교사, <뿌리깊은 나무> 기자, 소리꾼, 희곡 작가, 연극연출가,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김명곤이다. 내년에 60세가 되는 이 사내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그의 꿈은 오로지 예술이다.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예술. '불후의 명작'에 대한 꿈.
故 이윤기(소설가, 번역가)는 1991년에 나온 김명곤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에서 김명곤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나와도 자기 저서에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안 쓰는 지독한 바지저고리. 판소리꾼인가 하면 영화배우로도 뛰고, 연극 평론을 하는가 하면 소설도 써내는 팔방미인. 20대의 카오스에서 자기를 건져준 문학과 연극에 공양미 시주 대신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더 섬기겠노라 약속한 큰 광대 김명곤이 온몸으로 부르는 소리가락!
김명곤의 삶을 만나면, 우리가 산 삶은 지우개로 북북 지우고 싶어진다! 그가 살아온 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들으면 문득 그를 닮고 싶어진다!
무대에 서면 청산유수같이 대사를 뱉어내는 김명곤도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게 어눌할 수가 없다. 그의 인생에는 대본이 없기 때문인가?
당시 고려원 편집주간이던 마흔네 살의 이윤기가 서른아홉 살 김명곤을 이렇게 평했다. 이때 김명곤은 극단 아리랑 대표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에서 가난한 민중연극을 이끌고 있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
1993년 영화 <서편제>는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면서 김명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연극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는 작가였으며 배우였고 연출가였다. 2000년에 국립극장장, 2006년에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지만, 그는 다시 예술의 자리로 돌아와 연극, 뮤지컬,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천상 예술인이다.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을 희롱하는 광대들의 탈춤이 있었다.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사회시스템은 소셜테이너를 탄생시켰다. 광대와 소셜테이너 사이에 김명곤이 있다. 김명곤이 유일하지는 않지만 김명곤이 대표적이다. 한결 같이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광대'임을 자랑스레 여긴다. 하여 그는 개념 광대이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민전 사건에는 지금 진보신당 대표가 된 홍세화, 고인이 된 시인 김남주 등과 함께 보우수익 정치인으로 크게 성장한 이재오가 있었다. 이재오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이민'이라는 가명으로 교사극단을 이끌었고, 김명곤도 독일어교사 시절 이 극단의 멤버였다. 독일 희곡에 심취하며 탐미적 예술을 지향했던 김명곤은 이재오 등 극단 동료교사들의 구속을 보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시인 김용택의 말대로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었다. 80년대 그는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외로운, 꿈꾸는 광대였다
김명곤이 국립극장장이 되고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그의 변신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은 '남산의 소나무가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며 김명곤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대 길 없는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였기에 / 그대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였기에 /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어도 / 외로운 광대임을 잊지 않으리라 믿는다… -p248
극장장, 장관 등 공익근무를 마친 김명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늘 꿈꿔 온 예술판으로 돌아왔다. 천연덕스럽게 다시 광대가 되었다. 다시 연극을 기획하고, 영화에 출연하며,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연극과 판소리의 기초를 다졌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사골 출신 장남의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타협적으로 <뿌리깊은나무> 기자가 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연극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부모님까지 상경한 터에 생활은 그를 연극판에 둘 수 없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연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생부터 불량교사였던 셈인데 그 마저도 2년 만에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故 이윤기 표현대로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섬기겠노라는 큰 광대", 참 광대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서편제>로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곧바로 연극무대로 돌아와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연기를 하였다. 국립극장장을 지내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 곧바로 광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온 생애를 꿈꾸는 일에 의탁하고, 한 편의 영화나 연극에 바칠 때 예마는 찾아올 것이다. 나는 예마를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고"(p291) 있는 것이다.
추천사
김명곤은 늘 숨 가쁜 시대의 현장에 있었다. 1980년대 그가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고 마당극의 마당을 훨훨 날며 구호를 외치면 모두 숨이 막혔다. 그는 부활한 전봉준이 되었다. 판소리 가락에 따라 춤추며 남도의 먼지 나는 들길을 걸으면 그는 민족의 한을 품은 뛰어난 가객이었다. 영화든 연극이든 판소리든 그가 있는 곳은 늘 시대의 중심이었다. 한때 그는 우리나라 문화를 책임지는 수장이었다. 관리자의 탁월함까지 갖춘 것이다. 요새 말로 타고난 전천후 엔터테인먼트다.
어느 날 그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를 듣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달리던 차를 멈췄다는 기사를 보았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 노래를 듣고 나도 머릿속이 노랗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현대적인 청춘의 감성, 감각을 잃지 않고 사는 새파란 청춘이다. 그의 어깨는 스무 살 청년처럼 싱그럽다.
김용택(시인)
김명곤, 그는 운명적으로 광대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의 내력을 소상히 들여다보고 나니 그가 〈서편제〉와 만난 것은 우연한 캐스팅이 아니라 운명적인 결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문학을 하려다 연극에 빠진 것도 운명이었으며, 연극 때문에 폐병에 걸려 낙향했다가 판소리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그가 판소리와 만나 전통과 화해하고, 소리꾼의 예술에 매혹당하고, 그들의 삶에서 받은 감동이 그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염된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 그의 운명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로 살게 했으며, 국립극장장을 거쳐 문화부장관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광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운명이란 이름의 열정은 그를 다시 광대가 되게 하여 광대무변한 기획을 맡길 것이다.
도종환(시인)
목차
목차
머리말 : 꿈을 쏘는 사수
제1부 나의 꿈에 날개를 달다
한 통의 전화, "나 임권택이오"
―〈서편제〉, 오정해 그리고 소리꾼 유봉
그 대신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마음대로 각색하라던 시대의 문호 이청준
나를 인정해준 영화감독, 이장호
―〈바보선언〉 그리고 이보희의 정권 타도(?)
나의 첫 수필집을 간택(?)해준 작가 이윤기
―그의 신명과 따뜻한 배려가 그립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마지막 길 배웅
아름다운 말들
―김제동 그리고 선배 광대들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 DJ
―문화 대통령의 자세
제2부 꿈의 씨앗이 자라다
세월을 낚던 아버지
-낚시와 족보와 장미울타리 공주
음악을 사랑했던 가족
-나의 '수호천사',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키운 세상
-나를 매혹시킨 비밀의 정원들
내 가슴에 불을 지른 스승
-박시중 선생님
새벽 4시 30분 기상, 도시락 두 개
―서울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하다
제3부 꿈의 회전목마를 타다
엉겁결에 연극배우가 되다
-전투경찰이 때려 부순 첫 무대
질풍노도의 청춘시절
-병과 우울과 시와 판소리
지리산 상선암에서 다시 태어나다
-장고항 바닷가와 지리산 상선암의 기이한 인연
판소리 명창 박초월을 만나다
-어머니 같은 스승,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아, 한창기 사장님
-평생 인연 맺어진 첫 직장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 부르는 독일어 선생님
-배화여고 철부지들과 연극하며 지낸 사연
총각 선생님에게 반한 여고생
-교사와 제자의 사랑이야기
내게 새 생명을 준 사람, 아내
-내 인생의 자문위원들
제4부 꿈의 퉁수쟁이가 되다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의 현장으로
-남민전 사건으로 해산된 '극단 상황'과 「장사의 꿈」
연극의 바다 위를 항해하다
-'극단 아리랑'의 창단과 이어지는 연극 행진
아시아·태평양의 예술가들이 뭉쳤다
-유럽을 순회하며「아시아의 외침」을 외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
-「파업전야」와 「격정만리」 사건
남사당패 '삐리'에서 무용 인간문화재가 된 노예술가의 기구한 이야기
-아직도 못 다 푼 남사당의 생명력 「유랑의 노래」
제5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해도 달도 별도 국립극장에 있다
-48세에 국립극장장이 되다
"하루 5분 창밖을 바라봐라."
-외발 자전거로 외줄 타는 극장경영
'광대'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예술이냐, 벼슬이냐?
나를 버려야 나를 얻는다
-중국 여도사의 가르침 '사아공작(捨我工作)'
나는 다시 광대다
-유랑민의 자유로움과 창작생활의 희열에 빠진 요즘 생활
제1부 나의 꿈에 날개를 달다
한 통의 전화, "나 임권택이오"
―〈서편제〉, 오정해 그리고 소리꾼 유봉
그 대신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마음대로 각색하라던 시대의 문호 이청준
나를 인정해준 영화감독, 이장호
―〈바보선언〉 그리고 이보희의 정권 타도(?)
나의 첫 수필집을 간택(?)해준 작가 이윤기
―그의 신명과 따뜻한 배려가 그립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마지막 길 배웅
아름다운 말들
―김제동 그리고 선배 광대들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 DJ
―문화 대통령의 자세
제2부 꿈의 씨앗이 자라다
세월을 낚던 아버지
-낚시와 족보와 장미울타리 공주
음악을 사랑했던 가족
-나의 '수호천사',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키운 세상
-나를 매혹시킨 비밀의 정원들
내 가슴에 불을 지른 스승
-박시중 선생님
새벽 4시 30분 기상, 도시락 두 개
―서울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하다
제3부 꿈의 회전목마를 타다
엉겁결에 연극배우가 되다
-전투경찰이 때려 부순 첫 무대
질풍노도의 청춘시절
-병과 우울과 시와 판소리
지리산 상선암에서 다시 태어나다
-장고항 바닷가와 지리산 상선암의 기이한 인연
판소리 명창 박초월을 만나다
-어머니 같은 스승,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아, 한창기 사장님
-평생 인연 맺어진 첫 직장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 부르는 독일어 선생님
-배화여고 철부지들과 연극하며 지낸 사연
총각 선생님에게 반한 여고생
-교사와 제자의 사랑이야기
내게 새 생명을 준 사람, 아내
-내 인생의 자문위원들
제4부 꿈의 퉁수쟁이가 되다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의 현장으로
-남민전 사건으로 해산된 '극단 상황'과 「장사의 꿈」
연극의 바다 위를 항해하다
-'극단 아리랑'의 창단과 이어지는 연극 행진
아시아·태평양의 예술가들이 뭉쳤다
-유럽을 순회하며「아시아의 외침」을 외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
-「파업전야」와 「격정만리」 사건
남사당패 '삐리'에서 무용 인간문화재가 된 노예술가의 기구한 이야기
-아직도 못 다 푼 남사당의 생명력 「유랑의 노래」
제5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해도 달도 별도 국립극장에 있다
-48세에 국립극장장이 되다
"하루 5분 창밖을 바라봐라."
-외발 자전거로 외줄 타는 극장경영
'광대'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예술이냐, 벼슬이냐?
나를 버려야 나를 얻는다
-중국 여도사의 가르침 '사아공작(捨我工作)'
나는 다시 광대다
-유랑민의 자유로움과 창작생활의 희열에 빠진 요즘 생활
저자
저자
김명곤
저자 김명곤은 1952년 전북 전주 출생.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학과와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마쳤다. 사대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간 뒤 연극에 푹 빠졌고, 이 무렵 박초월 명창의 제자가 되어 판소리를 배웠다. 졸업한 뒤 《뿌리깊은 나무》 기자, 배화여고 독어 교사를 거쳐 본격적인 연극의 길에 들어섰다. 1983년 〈바보선언〉으로 영화에 데뷔했으며, 이후 각본까지 쓴 〈서편제〉에 출연하여 1993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했으며, 2000년부터 6년간 국립극장장을 지냈고,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현재는 연극, 영화, 뮤지컬을 개발하는 기획사 '아리 인터웍스' 대표이자 동양대학교 석좌교수.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