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저잣거리의 목소리들』는 16년 동안 100여 년 전 세상을 연구해온 문화학자 이승원이 한국 최초의 시사만평과 신문 3면 기사로 대한제국의 풍경을 펼쳐보인다. 저자는 저잣거리 풍경을 다루면서도 오늘날 한국이 시작된 시공간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끓어넘친 1900년대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의 일상을 구성하는 제도와 규율, 풍속과 문화, 습속들이 어디서부터 잉태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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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대한제국이 파국으로 치닫던 무렵의 풍경은 어땠을까.
제국의 멸망을 목전에 둔 이들의 세상살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대가 암울하다 해서 모두 애국자가 된 것은 아니요,
일본 제국의 협력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나 한 몸 잘살기 위해 기회주의자의 길을 택한 것도 아니요,
권력자의 다툼쯤으로 여기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살아간 것 또한 아니었다.
대한제국 인민은 정치와 일상을 따로 또 같이 살아냈다.
혼돈과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대한제국 사람들,
한 몸으로 여러 겹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
주자학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온몸으로 견딘
그때 그 사람들의 사소하지만 절박한 외침과 몸부림 속으로 들어가보자.
1. 한국 최초의 시사만평과 신문 3면 기사로 보는 대한제국의 풍경
16년 동안 100여 년 전 세상을 연구해온 문화학자 이승원의 마지막 풍속사
― 이 책이 말하다
우리에게 각인된 조선 말 혹은 대한제국의 모습은 명성황후 시해, 마지막 황태자비 등 황실 인물 비사라든가 소수의 정치인과 친일 세력, 러일전쟁과 항일운동 같은 굵직한 사건과 관계 깊다. 대한제국은 패망에 이르기 전 잠시 스쳐간 단계에 불과하다는 인식 속에 역사학자들은 내재적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틀로 당시를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역사는 커다란 사건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상의 작은 소란과 소동들이 모여 생성된다는 것을.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은 익숙하고 전형화된 대한제국의 장면들을 부수고 뒤집고 파고든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학교의 탄생》, 《사라진 직업의 역사》 등을 통해 꾸준히 100여 년 전 세상을 묘파해온 문화학자 이승원의 마지막 미시사?풍속사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대한민보》 시사만평과 당시 발행된 여러 신문의 3면 기사를 겹쳐 읽으며, 거시적 그물망에 걸리지 않은 절대다수 장삼이사의 세상살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저자가 한국 최초의 시사만평에 처음 매료된 때는 16년 전이다. 신문 제1면에 당당히 제 위용을 뽐내는 이도영 화백의 그림은 당대 사회적 이슈와 세태를 예리하게 포착해 한 칸의 공간 속에 녹여냈다. 문명개화, 부국강병, 친일 협력 단체와 일제 통감부 정책 비판 등으로 그 자장이 폭넓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의 그림만으로 그 시기를 재단하거나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1999년 봄부터 《대한민보》, 《한성순보》,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문》, 《만세보》와 같은 근대 초기 신문과 정교의 《대한계년사》(전9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펴낸 《고종시대사》(전6권) 그리고 당시 문학 작품과 잡지 등 방대한 자료를 읽고 정리하며 공부해왔다. 1차 텍스트인 만큼 자료 읽기의 속도는 더뎠고 사라진 과거를 더듬는 작업은 고되었으며 인내를 요구했지만, 1900년대를 움직이는 사회적?역사적 동력을 치밀하게 파헤치는 자신만의 관점을 생산해낼 수 있었다.
십수 년 동안 이어온 이 과정은 《저잣거리의 목소리들》로 결실을 맺었다. 오랜 시간 컴퓨터 속 파일로 잠들어 있던 쪽글과 이미지들이 저자의 손길을 거쳐 되살아났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29컷의 시사만평을 골라 뼈대를 다듬고 살과 근육을 붙였다. 시사만평과 궤를 같이하는 구체적 현장을 글로 풀어냈다. 흩어졌던 저잣거리 소문과 유언비어, 일상과 문화는 한데 모였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다루고, 사소하고 때로 비루해 보이는 현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저자의 섬세한 눈은 독자로 하여금 당시를 함께 탐사하는 기분에 젖게 한다. 곁들여진 64컷의 사진 자료는 당대를 조망하는 데 쓰이는 탐조등이다. 이제야 대한제국 숱한 무명씨들이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 청한다. 그들이 생경하면서도 친숙하다면, 과거를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지금 발 디딘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애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3면에 실린 기사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자 욕망의 무늬이다. 그것은 제도적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분명 우리의 역사이자 현재 모습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장작불을 지피고 국밥을 나눠먹고, 초등학생의 연설이 집회장을 감동의 물결 속으로 몰아넣었던 1898년 만민공동회 모습은 오늘날 '촛불집회' 풍경과 다르지 않다. 이념의 실천만으로 인민의 삶이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개화파와 국민의 살림살이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권력에 줄을 대는 사이비 보수파는 어쩐지 닮아 있다. 한일병합이라는 어수선한 틈을 타 난립했던 각종 단체의 이권 챙기기는 지금의 선거철 풍경과 멀지 않다. ―본문 31쪽
2. 우울과 절망이 아니라 생동감으로 끓어넘친 1900년대 사람들을 만나다
자율적인 것, 경쾌한 것, 시끌벅적한 것
― 이 책을 보다
그동안 우리는 재미없는 근대를 접해왔다. 하지만 저자가 스케치한 대한제국은 사람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욕망이 부딪친 시기였다. 특히 1898년은 평범한 인민의 입장에서 귀중한 전환점이었다. 이 해 일어난 만민공동회는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기 위한 격정적 축제의 현장이자 통과제의였다. 천한 신기료장수마저 세상을 향해 정치적 목소리를 과감하게 내뱉었다. 수동적이고 맹목적으로 국가에 복종하지 않았다. 황제가 순행하는 길에 일본 국기를 들지 않으려 시위한 학생들, 삼십육계라는 도박의 광풍에 휩싸인 사람들, 문명개화를 일종의 패션이자 놀이로 여기며 애국계몽의 굴레에서 미끄러져 살아간 '얼개화꾼(겉개화꾼)', 신문지상에 근대식 교육에 대해 쓴소리를 남기며 일본 유학을 가겠다는 기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불안하지만 삶의 변화 가능성을 믿었다.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시끌시끌하고 묘한 열기와 광풍에 사로잡혀 있었다.
관람객 중에는 공연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연극장이 '부킹' 장소로 활용된 것이다. 성을 탐닉할 수 있는 새 공간으로 연극장이 인기를 끌었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남녀 간 건전한 교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성 간 만남을 위해 연극장이 활용된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시된 시대였다. 더군다나 이성 간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로 주목받자, 성매매를 알선하는 뚜쟁이들이 연극장에 득시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이를 구매하려는 남성들도 연극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연극장이 문명개화의 상징이 아니라 어린 학생과 남성이 "갈보"를 구경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결국 사복경찰들이 연극장에 잠입하여 성매매를 단속했다. 그렇다고 연극장의 성매매가 근절되지는 않았다. ―본문 99쪽
3. 현대 한국의 기원이 싹튼 시간
시대는 다르지만 이것은 당신과 나의 이야기다
― 이 책에서 듣다
저자는 저잣거리 풍경을 다루면서도 오늘날 한국이 시작된 시공간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포착한 대한제국은 주자학적 세계에서 서구 중심의 근대 세계로 이동하는 전환기였다. '야만-문명'이라는 이분법 아래 서구 문명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프로젝트, 일제 버전의 식민지 근대화 프로젝트, 자주독립을 위한 근대화 프로젝트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다. 교육, 문화, 산업, 풍속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서구 문물의 유입과 함께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위해 옛것들이 새것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이러한 혼돈과 격랑의 시기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념, 성의 국가적 지배,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강박이 태어났다. 또한 저자는 정신병자는 언제부터 감시와 처벌을 받게 되었는가, 복지 정책과 자선사업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이발소와 세탁소의 시초는 무엇이었는가 등을 추적한다.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인식, 박물관이나 박람회 같은 스펙터클에 사로잡히는 인간 군상은 현재에 그 모습만 달리할 뿐 여전히 남아 있다. 곧 지금의 일상을 구성하는 제도와 규율, 풍속과 문화, 습속들이 어디서부터 잉태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초창기 장발과 상투를 단속한 체두관에게 단발은 국법을 어긴 자들의 머리카락을 바리캉으로 밀어버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발령에 대한 집단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발을 문명의 패션이자 서구식 최첨단 헤어스타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단발은 구시대와 차별된 신시대의 것이었다. 이왕 단발할 바에야 멋지게 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이발소였다. 이발사는 단발령과 함께 등장한 신종 직업이었으며, 이발소는 조선의 문명화 과정에서 나타난 근대적 공간이었다. ―본문 156쪽
한 세기가 흐른 후 오늘날은 어떻게 기억될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억조차 남겨지지 않을 일들이 될 테지만 아무려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힘껏 더 많이 웃고 사랑할 것,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할 것, 조금 더 우리의 절실한 목소리를 낼 것. 그것이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속 100여 년 전 우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시사만평으로 읽는 대한제국 사람들의 목소리
1장 무당과 점쟁이―권모술수의 달인들
시사만평 1. 혼란한 시대, 백성들은 신神을 원한다
2장 스캔들―권력자의 성적 문란과 도덕적 해이
시사만평 2. 이완용과 며느리의 불륜, 민중의 상상력이 빚어낸 스캔들
3장 사생활―나는 부끄럽지 않다?
시사만평 3. 마귀 신문을 처단할지어다
4장 성병―성생활도 국가가 관리해드립니다
시사만평 4. 연극장, 화류계의 메카
5장 통변―인명살상, 재산탈취, 동포학대, 뇌물토색
시사만평 5. 법률 브로커가 등장하다
6장 만민공동회―백정과 신기료장수가 꿈꾼 세상
시사만평 6. 동포여, 소년 한국을 건설하자
7장 도박―화투를 치다 삼십육계 줄행랑?
시사만평 7. 재테크의 달인들, 황실 재산을 스리슬쩍 빼돌리다
8장 청결―목욕탕, 이발소, 하이타이의 탄생
시사만평 8. 몸,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9장 생계형 협력자―'한일합방'을 꼭 이뤄주세요
시사만평 9. 일제 협력 단체 하나쯤 만들어야
10장 사진―렌즈는 어린이의 눈알이다
시사만평 10. 황제가 순행하는 길에 태극기 휘날리고
11장 개 규칙―민보국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시사만평 11. 앞으로는 똥에도 세금을 매기겠노라
12장 정신병―넋 나감과 넋 들어옴
시사만평 12. 경성고아원, 자선사업은 돈벌이일 뿐
13장 추첨―경품을 탐하게 하라
시사만평 13. 박물관과 박람회, 문명개화 제일이니 어서어서 가보시오
14장 일본 관광단―그 모양 원숭이와 같네
시사만평 14. 행사 동원을 거부한 학생들의 최후
15장 얼개화꾼―기생 롱운의 반격
시사만평 15. 근대식 훈장, 입신출세의 상징이 되다
에필로그 소문의 틈새 속 살아 숨 쉬던 사람들
■ 참고문헌
저자
저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은 《대한민보》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평과 당시 여러 신문의 3면 기사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사람들의 목소리와 세상살이 풍경을 그려낸다. 애틋한 시선으로 포착한 1900년대 사람들의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오늘날과 닮아 있다. 한국 근대의 원형을 모색하는 그의 연구는 지금 우리네 삶을 구체적이고 풍요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지은 책으로는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학교의 탄생》, 《사라진 직업의 역사》, 《소리가 만들어낸 근대의 풍경》, 《1898, 문명의 전환》(공저),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공저) 등이 있다. 지금은 인천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살아낸 시대와 조우할 때마다 왼쪽 가슴 어디에선가 통증이 인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견뎌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온몸이 저려온다. 그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삶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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