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조용필 키드
안덕훈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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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과 함께 통과한 1980년대의 추억!
안덕훈의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사람들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되새기며 삶의 굽이굽이마다 조용필의 노래가 함께 있었음을 그려낸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총 5부로 구성해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배경으로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대중문화를 넘어 시대를 상징하며 곧 그 세대의 삶이었던 ‘가왕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 중년기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시련,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순간순간을 되새겨볼 수 있다.
안덕훈의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사람들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되새기며 삶의 굽이굽이마다 조용필의 노래가 함께 있었음을 그려낸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총 5부로 구성해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배경으로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대중문화를 넘어 시대를 상징하며 곧 그 세대의 삶이었던 ‘가왕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 중년기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시련,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순간순간을 되새겨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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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의 공연을 보러 갔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대형 스타디움에 마련된 무대에 불이 켜지고 시간여행의 시동이 걸렸다.
그의 노래가 나를 기억의 정류장에 내려놓는다.
그곳엔 오래된 얼굴들이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조용필 키드의 창
여전히 수줍다.
딱지 뒷면에 적은 조잡한 낙서
첫사랑 소녀를 훔쳐보는 곁눈질
새콤한 키스를 꿈꾸지만
새치름한 소녀는
모른 체 시치미를 뗀다.
기억의 창을 열고
남아 있는 꿈 하나
풍선에 달아 밤하늘에 띄운다.
희미해진 꿈이
까마득히 올라가
별이 되어
밤하늘에 박힌다.
조용필 키드
녹슨 우편함을 기웃거리며
너는 여전히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이것은 조용필의 이야기가 아니다
- 조용필 세대를 위한 위로와 공감, 안덕훈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
ㆍ 조용필의 노래를 BGM으로 펼쳐지는 조용필 세대의 이야기
조용필의 노래는 대중문화를 넘어 시대를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가 되었다. 70년대 산업화시기로부터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는 대중들 삶의 BGM이요 OST이다.
가왕 조용필, 그의 노래와 함께 부침을 거듭해온 세대가 있다. 이 소설은 이들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이다. 70년대 유년기를 거쳐 80년대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90년대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21세기를 맞은 세대. 이들은 이제 사회의 중견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고통스럽다.
『HELLO 조용필 키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총 5부로 구성되어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배경으로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1부 《연락선을 타고 떠난 내 형제여》에서는 70년대 서울 달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오래전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안내한다.
2부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에서 접어들면 거기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과 쓰디쓴 실연의 아픔이 있다.
3부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에서 독자들은 치열했던 80년대의 젊음을 만날 수 있다.
4부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는 힘겨웠던 90년대를 되새김한다. IMF 외환위기와 세기말, 조용필 키드는 꿈을 잃고 어디가 숲인지 늪인지 도시의 뒷골목을 헤맨다.
5부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를 향해서》 21세기 현재, 중년에 접어든 조용필 키드는 여전히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저마다의 꿈을 풍선에 달아 가만히 띄워 올린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것은 역시 조용필의 노래들이다. 조용필의 노래가 있었기에 이들은 삶은 고단하였으되 외롭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조용필 세대라면 누구나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 안덕훈은 조용필의 음악이 얼마나 가까이서 얼마나 깊이 함께 있었는지를 증언하면서도 결코 음악으로 소설의 서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소설 속의 사건들은 생생하고 보편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자라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 특히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이들이라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호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전학 온 친구,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나간 아버지, 성당의 성탄 전야제와 첫 사랑, 학사주점, 학생운동, IMF 구제 금융 등의 사건은 바로 1980년대 생들의 현대사이자 미시사이다. (작품해설 중에서)
ㆍ 386세대, 7080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선언 '조용필 키드'
저자 안덕훈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공연을 보러갔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 객석에 사람들이 형광봉을 어색하게 흔들며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따라 부른다. 후렴구에서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얽혔다. 굵은 남자 목소리에 날렵한 소프라노가 섞이더니 카랑카랑한 쉰 목소리가 엇박자로 비벼졌다. 도대체 이들 정체는 무엇일까.
7080? 그건 주민번호만큼이나 건조하다. 386 혹은 486세대? 이건 정치적이기 이전에 폭력적이다. 학번 없이 살아온 이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억압이며 몰염치이다. 이들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공연장을 나서는데 문득 '조용필 키드'가 떠올랐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저자는 386세대, 7080세대라는 말 대신 '조용필세대' 즉 '조용필 키드'를 제안한다. 40대 중후반부터 오십대에 접어든 세대를 흔히 7080 또는 386세대로 지칭한다. 그러나 이 세대구분은 알맹이가 빠진 일방적이고 도식적인 세대구분이 아닐 수 없다. 한 세대를 규정하는 용어는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그들 세대가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 그리고 정서를 함축적으로 내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7080이나 386은 출생과 성장 시기만으로 세대를 규정하고 있어 동시대의 가치와 정서를 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 386이라는 세대 구분은 한편으로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며 심하게 표현하자면 폭력적이기도 하다. 60년대 생, 80년대 학번이라는 구분은 학번을 가진 사람 즉 대졸자를 전제하는 세대구분이므로 386세대라고 명명하는 순간 산업현장에서 혹은 뒷골목에서 80년대를 보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발언 기회를 상실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80년대 대학 진학률이 20% 미만에 불과하다는 통계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동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386이라는 이름은 그러한 의미에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출신이나 배경, 정치적인 견해와 이해를 넘어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코드는 오히려 동 세대가 공유해온 문화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특히 대중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음악은 한 시대를 넘어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공감 할 수 있는 코드이다. '조용필'이라는 코드는 근대화 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용필 키드'는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세대 규정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ㆍ 자신의 삶을 위로해준 가수에게 바치는 헌정사
이 소설은 가왕 조용필에게 바치는 헌정사이기도 하다. 힘겹게 살아온 중년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고단함을 잊게 해 준 묘약이었기에 『HELLO 조용필 키드』의 저자 안덕훈은 같은 세대를 대표하여 한권의 소설로서 가왕 조용필에게 헌정사를 바친다.
원로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HELLO 조용필 키드』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초상을 불러낸다. 이 초로의 남자가 자신의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를 깊은 회한과 애정으로 회상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의 한 생애를 위무하고 격려해 준 어느 가수에 대한 헌정사이기도 하다.
그 가수의 노래에는 삶의 곡진한 서사가 들어 있다. 가수의 이름은 조용필이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노래를 이야기로, 노래 사이에서 그의 호흡을 한숨과 눈물과 미소와 환희의 순간으로 변환시킨다.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어느 봄날의 분분한 꽃잎들 같다.
지금 조용필 전국투어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낙엽이 지는 이 가을 가왕 조용필 콘서트의 감동과 함께 조용필 키드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소설의 일독을 강추한다.
우리는 이제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책이 아니라 청춘으로의 여행 초대장, 추억 초대장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작품 해설
어느 잃어버린 시절의 Back Ground Music
- 청춘으로의 초대장, 『HELLO 조용필 키드』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모든 시간, 모든 삶에는 BGM이 있다.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한국 전통음악이든 상관없다. 누군가의 어떤 순간 꽂혀버린 음악은 그 시간을 대변한다. 아니, 결국 그 시간이 된다. 즐거워서이건, 쓸쓸해서이건, 슬퍼서이건, 화가 나서이건 그 순간과 정확하게 조응한 음악은 그 순간 엄습한 정서의 밀도를 더욱 높여주고 그 사건과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해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콩브레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듯 어떤 음악들은 그 순간들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신기하게도 음악은 그 시간의 공기마저도 그대로 되살려낸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 언제라도 그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음악은 시간이고 삶의 기억이다.
특히 감성의 근육이 아직 말랑거리는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은 평생 간다. 인간의 기억력은 그렇게 작동한다. 그리고 그만큼 음악의 울림이 큰 것이다. 처음의 경험은 이후 데자뷰처럼 숱하게 반복된다. 클래식이나 한국 전통음악보다는 아무래도 대중음악이 더 오래, 더 자주 기억날 것이다. 그것이 대중음악의 특징이다. 특별히 공부하거나 귀 기울이지 않아도 늘 곁에서 흘러 다니는 음악이니까, 그러다가 잊혀지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내 안으로 졸졸졸 흘러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대마다 다른 대중음악의 BGM을 갖고 있다. 7080이라는 세대의 기표가 곧장 특정한 음악을 가리키는 것만 봐도 확실하지 않은가. 영화 《건축학개론》에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강력한 장치로 사용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90년대 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낸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생들에게 조용필만큼 강력한 스타, 강력한 BGM이 있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가수, 다른 음악이 더 힘을 발휘했을 수도 있지만 19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였다.
1980년 TBC 최우수 주제가작곡상, TBC 최우수 가요상, TBC 최고 인기가수상, TBC 최고 인기가요상, 서울국제 가요제 금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작곡상 수상. 1981년 한국 연극영화대상 영화주제가 작곡상, KBS 방송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KBS 방송가요대상 골든디스크상, KBS 방송가요대상 전국 PD 선정 최우수 가수상, KBS 방송가요대상 주제가 작곡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가수왕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작곡상 수상.
아아, 이제 그만 적자.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이라고 다를까. 오죽하면 조용필이 1987년 즈음 방송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 그만 나가겠다고 선언했을까.
그때는 TV만 틀면 조용필이 나왔고, 그래야만 사람들이 좋아했다. 도처에 그의 노래가 공기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소녀들이 꺅꺅댔고, 아저씨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했다. 아줌마라고 달랐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이제는 세대마다 성별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확연히 갈리는 시대 아닌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 대중음악은 나이로 확연히 갈라져버렸다. 기성세대는 서태지가 내놓은 음악의 BPM(Beats Per Minute)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반면 신세대들은 그 음악의 BPM을 제 심장 박동처럼 호흡하며 자신들을 이전 세대와 구별했다. 조용필은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시장이 10대들에게 점령당하기 전, 국민가수라고 불린 최후의 뮤지션이었으며, 최고의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지금처럼 대중가요를 대중음악이라고 부르지 않던 시절, 그냥 유행가라고 쉽게 알던 시절 조용필이 자신의 음악으로 예술가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밴드 출신이며 록을 지향한다고 밝혔지만 그의 음악이 밴드의 음악, 록 하나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트로트도 했고, 록도 했고, 팝도 했고, 가곡도 했고, 동요도 했고, 민요도 했다. 거의 모든 유행 음악의 흐름이 그의 음악 안에 다 담겨 있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한다면 어떤 음악이든 할 수 있다는 주의였다. 그것이 대중음악인 혹은 연예인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덕분에 조용필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내놓았기 때문에 인기를 끈 것이지만 인기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조용필의 음악적 능력과 엄청난 연습 덕분이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안덕훈의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는 그렇게 1980년대를 조용필과 함께 통과한 이의 소설적 기록이다. 주인공 훈과 다른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사춘기와 청년기, 중년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시련, 기쁨과 슬픔으로 어울렁 더울렁 깊어가는 삶의 굽이굽이마다 조용필의 노래가 함께 있었음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단지 조용필의 노래가 나온다는 점이 아니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음악이 얼마나 가까이서 얼마나 깊이 함께 있었는지를 증언하면서도 결코 음악으로 소설의 서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작가와 주인공의 이름도 유사하다. 소설 속의 사건들은 생생하고 보편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자라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 특히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이들이라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호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전학 온 친구,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나간 아버지, 성당의 성탄 전야제와 첫 사랑, 학사주점, 학생운동, IMF 구제금융 등의 사건은 바로 1980년대 생들의 현대사이자 미시사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사건들을 섬세하게 복기하면서도 결코 부풀리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은 누구에게나 부끄럽기만 한 것이기 때문일까. 어느 한 순간도 완벽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인간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었음을 부끄럽고 뼈아프게 고백하는 소설은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대신 소박한 휴머니즘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영웅적이고 위대한 인물 대신 아주 특별하지 않더라도 결코 함부로 살아오지 않은 삶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을 연민하고 이해하는 소설은 그래서 읽는 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어내는 설득력이 있다.
바로 대중음악 같고 조용필의 노래 같은 소설이다. 모두가 겪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들, 그만큼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유행가 같은 일들이 당시의 유행가였던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조용필의 노래를 BGM으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간을 살았고, 그 노래들을 인생의 BGM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소설은 분명 다큐멘터리 같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용필의 콘서트에 가보면 안다. 지금은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되고 배가 나온 아줌마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움과 설렘마저 낡은 것은 아니다. 조용필의 콘서트에서 만난 그들은 항상 나이를 잊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조용필 역시 그들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알고 있기에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한결같이 노래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렇게 오래도록 되새기며 삶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이제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책이 아니라 청춘으로의 여행 초대장, 추억 초대장이다.
□ 추천의 말
소설가 현기영
『HELLO 조용필 키드』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초상을 불러낸다. 이 초로의 남자는 자신의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를 깊은 회한과 애정으로 회상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의 한 생애를 위무하고 격려해 준 어느 가수에 대한 헌정사이기도 하다.
그 가수의 노래에는 삶의 곡진한 서사가 들어 있다. 가수의 이름은 조용필이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노래를 이야기로, 노래 사이에서 그의 호흡을 한숨과 눈물과 미소와 환희의 순간으로 변환시킨다.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어느 봄날의 분분한 꽃잎들 같다.
소설가 김남일
울지 말 일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준이네 엄마의 몰캉한 분 냄새가 어느 날 낯선 소문과 함께 홀연 사라지더라도, 가리봉동 제일의 미싱사가 서울 서남부 최고의 극장 간판 그림쟁이를 만나 꾸던 꿈이 영영 아련하더라도, 그리하여 마시지도 못할 블랙커피를 주문하게 했던 그날 그 소녀에 대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실, 기억이란 누구든 공유할 수 있으되 그 누구도 규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명제에 충실하다. 칠곡이나 영암, 묵호나 보령이 아니라 서울이 고향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이 말하는 고향은 그 어느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 어느 때 특정한 시간에 훨씬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산동네 위쪽에 살았든 아래쪽에 살았든 훗날 대개 '착한 비정규직' 인생이 되고 마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당대를 함께 살았던 가왕 조용필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사에 조용필이 이처럼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등장하는 소설을 달리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모여라, 조용필 키드들이여!
대형 스타디움에 마련된 무대에 불이 켜지고 시간여행의 시동이 걸렸다.
그의 노래가 나를 기억의 정류장에 내려놓는다.
그곳엔 오래된 얼굴들이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조용필 키드의 창
여전히 수줍다.
딱지 뒷면에 적은 조잡한 낙서
첫사랑 소녀를 훔쳐보는 곁눈질
새콤한 키스를 꿈꾸지만
새치름한 소녀는
모른 체 시치미를 뗀다.
기억의 창을 열고
남아 있는 꿈 하나
풍선에 달아 밤하늘에 띄운다.
희미해진 꿈이
까마득히 올라가
별이 되어
밤하늘에 박힌다.
조용필 키드
녹슨 우편함을 기웃거리며
너는 여전히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이것은 조용필의 이야기가 아니다
- 조용필 세대를 위한 위로와 공감, 안덕훈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
ㆍ 조용필의 노래를 BGM으로 펼쳐지는 조용필 세대의 이야기
조용필의 노래는 대중문화를 넘어 시대를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가 되었다. 70년대 산업화시기로부터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는 대중들 삶의 BGM이요 OST이다.
가왕 조용필, 그의 노래와 함께 부침을 거듭해온 세대가 있다. 이 소설은 이들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이다. 70년대 유년기를 거쳐 80년대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90년대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21세기를 맞은 세대. 이들은 이제 사회의 중견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고통스럽다.
『HELLO 조용필 키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총 5부로 구성되어 각 시기를 대표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배경으로 조용필 키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1부 《연락선을 타고 떠난 내 형제여》에서는 70년대 서울 달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오래전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안내한다.
2부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에서 접어들면 거기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과 쓰디쓴 실연의 아픔이 있다.
3부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에서 독자들은 치열했던 80년대의 젊음을 만날 수 있다.
4부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는 힘겨웠던 90년대를 되새김한다. IMF 외환위기와 세기말, 조용필 키드는 꿈을 잃고 어디가 숲인지 늪인지 도시의 뒷골목을 헤맨다.
5부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를 향해서》 21세기 현재, 중년에 접어든 조용필 키드는 여전히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저마다의 꿈을 풍선에 달아 가만히 띄워 올린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것은 역시 조용필의 노래들이다. 조용필의 노래가 있었기에 이들은 삶은 고단하였으되 외롭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조용필 세대라면 누구나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 안덕훈은 조용필의 음악이 얼마나 가까이서 얼마나 깊이 함께 있었는지를 증언하면서도 결코 음악으로 소설의 서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소설 속의 사건들은 생생하고 보편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자라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 특히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이들이라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호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전학 온 친구,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나간 아버지, 성당의 성탄 전야제와 첫 사랑, 학사주점, 학생운동, IMF 구제 금융 등의 사건은 바로 1980년대 생들의 현대사이자 미시사이다. (작품해설 중에서)
ㆍ 386세대, 7080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선언 '조용필 키드'
저자 안덕훈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공연을 보러갔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 객석에 사람들이 형광봉을 어색하게 흔들며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따라 부른다. 후렴구에서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얽혔다. 굵은 남자 목소리에 날렵한 소프라노가 섞이더니 카랑카랑한 쉰 목소리가 엇박자로 비벼졌다. 도대체 이들 정체는 무엇일까.
7080? 그건 주민번호만큼이나 건조하다. 386 혹은 486세대? 이건 정치적이기 이전에 폭력적이다. 학번 없이 살아온 이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억압이며 몰염치이다. 이들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공연장을 나서는데 문득 '조용필 키드'가 떠올랐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저자는 386세대, 7080세대라는 말 대신 '조용필세대' 즉 '조용필 키드'를 제안한다. 40대 중후반부터 오십대에 접어든 세대를 흔히 7080 또는 386세대로 지칭한다. 그러나 이 세대구분은 알맹이가 빠진 일방적이고 도식적인 세대구분이 아닐 수 없다. 한 세대를 규정하는 용어는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그들 세대가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 그리고 정서를 함축적으로 내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7080이나 386은 출생과 성장 시기만으로 세대를 규정하고 있어 동시대의 가치와 정서를 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 386이라는 세대 구분은 한편으로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며 심하게 표현하자면 폭력적이기도 하다. 60년대 생, 80년대 학번이라는 구분은 학번을 가진 사람 즉 대졸자를 전제하는 세대구분이므로 386세대라고 명명하는 순간 산업현장에서 혹은 뒷골목에서 80년대를 보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발언 기회를 상실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80년대 대학 진학률이 20% 미만에 불과하다는 통계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동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386이라는 이름은 그러한 의미에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출신이나 배경, 정치적인 견해와 이해를 넘어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코드는 오히려 동 세대가 공유해온 문화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특히 대중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음악은 한 시대를 넘어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공감 할 수 있는 코드이다. '조용필'이라는 코드는 근대화 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용필 키드'는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세대 규정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ㆍ 자신의 삶을 위로해준 가수에게 바치는 헌정사
이 소설은 가왕 조용필에게 바치는 헌정사이기도 하다. 힘겹게 살아온 중년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고단함을 잊게 해 준 묘약이었기에 『HELLO 조용필 키드』의 저자 안덕훈은 같은 세대를 대표하여 한권의 소설로서 가왕 조용필에게 헌정사를 바친다.
원로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HELLO 조용필 키드』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초상을 불러낸다. 이 초로의 남자가 자신의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를 깊은 회한과 애정으로 회상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의 한 생애를 위무하고 격려해 준 어느 가수에 대한 헌정사이기도 하다.
그 가수의 노래에는 삶의 곡진한 서사가 들어 있다. 가수의 이름은 조용필이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노래를 이야기로, 노래 사이에서 그의 호흡을 한숨과 눈물과 미소와 환희의 순간으로 변환시킨다.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어느 봄날의 분분한 꽃잎들 같다.
지금 조용필 전국투어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낙엽이 지는 이 가을 가왕 조용필 콘서트의 감동과 함께 조용필 키드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소설의 일독을 강추한다.
우리는 이제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책이 아니라 청춘으로의 여행 초대장, 추억 초대장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작품 해설
어느 잃어버린 시절의 Back Ground Music
- 청춘으로의 초대장, 『HELLO 조용필 키드』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모든 시간, 모든 삶에는 BGM이 있다.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한국 전통음악이든 상관없다. 누군가의 어떤 순간 꽂혀버린 음악은 그 시간을 대변한다. 아니, 결국 그 시간이 된다. 즐거워서이건, 쓸쓸해서이건, 슬퍼서이건, 화가 나서이건 그 순간과 정확하게 조응한 음악은 그 순간 엄습한 정서의 밀도를 더욱 높여주고 그 사건과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해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콩브레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듯 어떤 음악들은 그 순간들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신기하게도 음악은 그 시간의 공기마저도 그대로 되살려낸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 언제라도 그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음악은 시간이고 삶의 기억이다.
특히 감성의 근육이 아직 말랑거리는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은 평생 간다. 인간의 기억력은 그렇게 작동한다. 그리고 그만큼 음악의 울림이 큰 것이다. 처음의 경험은 이후 데자뷰처럼 숱하게 반복된다. 클래식이나 한국 전통음악보다는 아무래도 대중음악이 더 오래, 더 자주 기억날 것이다. 그것이 대중음악의 특징이다. 특별히 공부하거나 귀 기울이지 않아도 늘 곁에서 흘러 다니는 음악이니까, 그러다가 잊혀지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내 안으로 졸졸졸 흘러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대마다 다른 대중음악의 BGM을 갖고 있다. 7080이라는 세대의 기표가 곧장 특정한 음악을 가리키는 것만 봐도 확실하지 않은가. 영화 《건축학개론》에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강력한 장치로 사용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90년대 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낸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생들에게 조용필만큼 강력한 스타, 강력한 BGM이 있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가수, 다른 음악이 더 힘을 발휘했을 수도 있지만 19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였다.
1980년 TBC 최우수 주제가작곡상, TBC 최우수 가요상, TBC 최고 인기가수상, TBC 최고 인기가요상, 서울국제 가요제 금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작곡상 수상. 1981년 한국 연극영화대상 영화주제가 작곡상, KBS 방송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KBS 방송가요대상 골든디스크상, KBS 방송가요대상 전국 PD 선정 최우수 가수상, KBS 방송가요대상 주제가 작곡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가수왕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작곡상 수상.
아아, 이제 그만 적자.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이라고 다를까. 오죽하면 조용필이 1987년 즈음 방송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 그만 나가겠다고 선언했을까.
그때는 TV만 틀면 조용필이 나왔고, 그래야만 사람들이 좋아했다. 도처에 그의 노래가 공기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소녀들이 꺅꺅댔고, 아저씨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했다. 아줌마라고 달랐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이제는 세대마다 성별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확연히 갈리는 시대 아닌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 대중음악은 나이로 확연히 갈라져버렸다. 기성세대는 서태지가 내놓은 음악의 BPM(Beats Per Minute)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반면 신세대들은 그 음악의 BPM을 제 심장 박동처럼 호흡하며 자신들을 이전 세대와 구별했다. 조용필은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시장이 10대들에게 점령당하기 전, 국민가수라고 불린 최후의 뮤지션이었으며, 최고의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지금처럼 대중가요를 대중음악이라고 부르지 않던 시절, 그냥 유행가라고 쉽게 알던 시절 조용필이 자신의 음악으로 예술가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밴드 출신이며 록을 지향한다고 밝혔지만 그의 음악이 밴드의 음악, 록 하나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트로트도 했고, 록도 했고, 팝도 했고, 가곡도 했고, 동요도 했고, 민요도 했다. 거의 모든 유행 음악의 흐름이 그의 음악 안에 다 담겨 있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한다면 어떤 음악이든 할 수 있다는 주의였다. 그것이 대중음악인 혹은 연예인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덕분에 조용필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내놓았기 때문에 인기를 끈 것이지만 인기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조용필의 음악적 능력과 엄청난 연습 덕분이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안덕훈의 장편소설 『Hello 조용필 키드』는 그렇게 1980년대를 조용필과 함께 통과한 이의 소설적 기록이다. 주인공 훈과 다른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사춘기와 청년기, 중년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시련, 기쁨과 슬픔으로 어울렁 더울렁 깊어가는 삶의 굽이굽이마다 조용필의 노래가 함께 있었음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단지 조용필의 노래가 나온다는 점이 아니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음악이 얼마나 가까이서 얼마나 깊이 함께 있었는지를 증언하면서도 결코 음악으로 소설의 서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작가와 주인공의 이름도 유사하다. 소설 속의 사건들은 생생하고 보편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자라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 특히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이들이라면 다 같이 경험하고 그래서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호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전학 온 친구,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나간 아버지, 성당의 성탄 전야제와 첫 사랑, 학사주점, 학생운동, IMF 구제금융 등의 사건은 바로 1980년대 생들의 현대사이자 미시사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사건들을 섬세하게 복기하면서도 결코 부풀리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은 누구에게나 부끄럽기만 한 것이기 때문일까. 어느 한 순간도 완벽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인간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었음을 부끄럽고 뼈아프게 고백하는 소설은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대신 소박한 휴머니즘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영웅적이고 위대한 인물 대신 아주 특별하지 않더라도 결코 함부로 살아오지 않은 삶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을 연민하고 이해하는 소설은 그래서 읽는 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어내는 설득력이 있다.
바로 대중음악 같고 조용필의 노래 같은 소설이다. 모두가 겪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들, 그만큼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유행가 같은 일들이 당시의 유행가였던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조용필의 노래를 BGM으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간을 살았고, 그 노래들을 인생의 BGM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소설은 분명 다큐멘터리 같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용필의 콘서트에 가보면 안다. 지금은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되고 배가 나온 아줌마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움과 설렘마저 낡은 것은 아니다. 조용필의 콘서트에서 만난 그들은 항상 나이를 잊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조용필 역시 그들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알고 있기에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한결같이 노래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렇게 오래도록 되새기며 삶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이제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책이 아니라 청춘으로의 여행 초대장, 추억 초대장이다.
□ 추천의 말
소설가 현기영
『HELLO 조용필 키드』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초상을 불러낸다. 이 초로의 남자는 자신의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를 깊은 회한과 애정으로 회상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의 한 생애를 위무하고 격려해 준 어느 가수에 대한 헌정사이기도 하다.
그 가수의 노래에는 삶의 곡진한 서사가 들어 있다. 가수의 이름은 조용필이다. 안덕훈은 조용필의 노래를 이야기로, 노래 사이에서 그의 호흡을 한숨과 눈물과 미소와 환희의 순간으로 변환시킨다.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어느 봄날의 분분한 꽃잎들 같다.
소설가 김남일
울지 말 일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준이네 엄마의 몰캉한 분 냄새가 어느 날 낯선 소문과 함께 홀연 사라지더라도, 가리봉동 제일의 미싱사가 서울 서남부 최고의 극장 간판 그림쟁이를 만나 꾸던 꿈이 영영 아련하더라도, 그리하여 마시지도 못할 블랙커피를 주문하게 했던 그날 그 소녀에 대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실, 기억이란 누구든 공유할 수 있으되 그 누구도 규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명제에 충실하다. 칠곡이나 영암, 묵호나 보령이 아니라 서울이 고향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이 말하는 고향은 그 어느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 어느 때 특정한 시간에 훨씬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산동네 위쪽에 살았든 아래쪽에 살았든 훗날 대개 '착한 비정규직' 인생이 되고 마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당대를 함께 살았던 가왕 조용필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사에 조용필이 이처럼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등장하는 소설을 달리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모여라, 조용필 키드들이여!
목차
목차
연락선 타고 떠난 내 형제여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를 향해서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를 향해서
저자
저자
안덕훈
저자 안덕훈은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2009년 소설집 『독한 여자』 출간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2009년 소설집 『독한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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