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오늘의 시선집 31)
장헌권 시집
장헌권의 시집『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웃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먼저 뛰쳐나가 맞이하고, 그 정신을 육화하여 몸소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 장헌권 시들이 모두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현란한 시어들을 동원하지 않고도, 나지막이 호소하는 이미지 시, 그러면서도 독자들의 감성을 무섭도록 빠르게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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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특히, 1부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에는 세월호 시민상주모임 활동을 통해 얻은 육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질척한 세월의 / 슬픔 간직한 팽목항"에서 "맹골수도에 피지 못한 꽃들"을 생각하고, "노란 리본 챙겨서 / 그리움의 호주머니에 담아 / 만지작거리며"
안산으로 향한다.
때로는,
"법정까지 / 스멀스멀 밀고 들어"온 눈물바다에 몸을 적신다. "침몰한 진실을 / 끄집어내기 위해 // 말라버린 정의의 꽃 / 물 주기 위해"
오늘도 그는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순례에 나설 것이다. 이 진혼과 기다림의 노래들로 세상이 치유와 회복의 기운을 얻게 되기를 기원한다.
나희덕(시인)
시인은 자신만의 시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탐색된 세계에 대해 가장 절실한 삶의 감각과 진정성으로, 또 예리한 영감으로 시적 형상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적 울림이 있고, 감동의 전율을 독자에게 안겨 줄 수 있다. 시는 언어 이전에 시인의 삶 속에서 육화된 인품이나 체온과 같은 존재이다. 정서가 메마른 세상, 인간다운 품성이 상실된 시대에 순화된 정서를 돌려 주고 심어 주는 역할을 시인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시인, 그 고독 속에서 시인의 성찰과 사유가 나온다. 우리는 시를 통해 사물을 통찰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시는 우리에게 구원의 빛이 될 수 있고, 위안의 안식처이자 깊은 사색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상상력, 비전의 확대, 이웃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이해, 정제된 언어의 조탁, 삶의 아름다움이나 성찰을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닮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의 특질을 두루 갖춘 시를 창작해 가는 장헌권 시인에게 이 시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장헌권 시인의 다음 시집 발간까지 설렘 가득 기대해 본다. 계속해서 시집을 내는 사이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얻게 될 것이고, 한국 문학사와 세계 문학사에 굵직한 선을 긋게 되리라 믿는다.
삶 자체가 아름답고, 또 격조 높은 작품을 줄기차게 써 나가는 장헌권 시인, 참 멋지다.
[장헌권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中에서
- 한실 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 평론
장헌권 시인의 시집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하여
방송 칼럼집 [돌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개울물 소리], 영화를 마중물로 하여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영화 치유 이야기]를 비롯하여, 영화와 시를 접목시킨 시집 [시가 영화를 만나다]를 이미 펴낸 바 있는 장헌권 시인이 또 시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이 왜 이토록 반가운 것일까.
필자는 평소 장헌권 시인이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여기는 문학평론가 중 한 사람이라서, 더욱 기분 좋았던 건 아닐까.
장헌권 시인은 보배의 섬 진도에서 1957년에 태어났다.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우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 수업을, 그리고 한실 문예창작에서 10여 년간 시 창작 훈련을 각각 받았다. 질곡의 역사(1970~1980년) 중에는 제3세계 신학, 제3세계 영화를 통하여 고통당하는 민중과 함께하는 현장 신학 수업을 했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진행 중이다.
한때 농민들과 함께 장성 옥천교회(1982~1993년)를 섬겨 활성화시켰고, 이후 말씀과 영성의 치유공동체인 서정교회(1993년~현재)에서 담임목사로서 은은하고 아름다운 섬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외에도 총회 사회문제대책위원장, 광주노회 인권위원장, 광산구 인권증진위원회 위원장, 광주 기독교 협의회 NCC 인권위원장, 6.15 남측위원회 광주 공동대표, 광산구 통일 한마당 상임대표로 활동하며 인권과 통일을 위해 올곧게 살아가고 있다.
국가 정보원 대선(18대) 개입 국기 문란을 질책하기 위해 광주 국정원 앞에서 삭발 후 세월호 삼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세월호 기억과 약속을 새기기 위해 매일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문학상으로는,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충주문학관 문학상, 충주문학관 왕중왕전 우수상, 한겨레21 시 문학상, 정읍사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부산문화글판,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 등에서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자, 지금부터 멋진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장헌권 시인의 옹달샘처럼 싱그러운 시 세계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잿빛 하늘 아래 마지막 계절이 흔들리면
흰 저고리 검은 치마 걸친 외로운 그림자가 서성거린다
거칠게 깎인 단발 머리카락 눈발에 헝클어져
파랑새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삭힌 눈물 삼키며 하얀 날갯짓을 한다
세월 보타진 가슴 흰 나비 되어
신발 벗겨진 채 발뒤꿈치 들고서
눈물범벅이 되어.
- [소녀상의 눈물꽃]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걸친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서성거린다. 잿빛 하늘 아래 마지막 계절이 흔들거리고 있다. 시대 현실이 모순적 구조 속에서 마치 마지막 계절에 직면한 것처럼 절망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때 거칠게 깎인 단발 머리카락이 눈발에 헝클어져 날린다.
시적 화자는 파랑새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삭힌 눈물을 마음 깊이 삼키며 상상의 하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아직도 파랑새 어깨는 살아 있다. 그리고 하얀 날갯짓도 꿋꿋이 살아 있다. 비록 세월에 보타진 가슴이지만, 흰 나비 되어 날고 있다. 비록 신발 벗겨진 채 발뒤꿈치 들고 서 있지만, 비록 눈물범벅이 되어 있지만, 절망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다.
시적 화자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직도 시적 화자에게는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라는 애국심이 자리하고 있고, 희망의 파랑새 어깨가 턱 버티고 있고, 진리의 하얀 날갯짓이 퍼덕이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마지막 계절이 흔들린다 할지라도, 아무리 잿빛 하늘이 짓누른다 할지라도, 아무리 외로운 그림자로 혼자된 서러움에 휩싸인다 할지라도, 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신발 벗겨지면 발뒤꿈치 들고서라도, 눈물범벅이 된 감동 어린 감성으로, 역사의 진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굳건한 의지가 시 전체에 묵직하게 깔려 있다.
장헌권 시인의 시 특성이 여기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이 짙게 자리하고 있다. 진리와 진실에서 벗어난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이미지와 상징의 그릇에 정갈히 담겨 있다.
살구꽃 봉오리만 봐도
서럽고 눈물나는
봄
입맞춤으로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살 속에
뼈도
눈물로 뒤범벅이다
봄 햇살 허리춤으로
합창하며
한 발
두 발
세 발
흥건한 슬픔의 피가
견고한 아스팔트 적셔
생명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 [삼보일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세 걸음 걷다가 한 번 절하며 나아가고 있다. 살구꽃 봉오리만 봐도 서럽고 눈물나는 봄에,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행동을 반복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 시적 화자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살 속에 뼈도 눈물도 범벅이게 만든 세상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봄 햇살 허리춤으로 합장하며 세 발자욱 나아가다가 다시 엎드려 절을 한다. 그때마다 흥건한 슬픔의 피가 견고한 아스팔트에 적신다. 아무리 견고한 아스팔트라 할지라도, 간절한 기도와 절규가 곁들인 슬픔의 피가 흥건히 적시고 또 적시면 거기에 생명의 씨앗이 움튼다. 진실의 문이 닫힌 시대 현실과 사회 구조적 모순의 벽에도 생명의 씨앗이 움트고 말리라는 메시지가 스며 있다.
이번에는 시적 화자가 기다림을 뜨개질한다. 그리고 노란 목도리를 챙겨 들고, 휘몰아치는 바람 틈으로 나아간다. 이때 겨울 하늘이 술렁거린다. 드디어 하늘도 감동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노란 목도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롯한 모든 억울한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들을 대표하는 한 영혼, 학생증을 가슴에 단 세월호 희생자의 영혼이 절뚝거리며 뒷걸음질한 세상을 밟아가며 머나먼 길을 향해 나아간다. 삭풍 속에서 저미는 가슴 떨군 채, 함께 가는 아픔끼리 아우르며 오늘도 길거리로 나와 걷고 또 걷는다. 진실이 사무쳐 안길 때까지, 진실이 통하여 하나될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장헌권 시들이 모두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웃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먼저 뛰쳐나가 맞이하고, 그 정신을 육화하여 몸소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 이게 바로 사랑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옷을 입어도 속옷까지 적셔 오는
시멘트 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발밑으로 느껴지는 척척한 시간을 만난다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마음을 뒤흔들며 늦게 온 그늘진 사람,
남루한 시인의 쓸쓸함이
수위실 담벽에 몸을 기대고 서성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해고로 가슴에 멍이 든?영혼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순결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만
허공을 가를 뿐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꽃을 ?
그 보타져 가는 심정을
삭발과 소복으로 하루 하루 버티는
당신들의 눈물을 본다.
- [여름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남루한 시인이다. 그는 쓸쓸함의 가슴을 안고 수위실 담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 비옷을 입어도 속옷까지 적셔 오는 시멘트 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발밑으로 느껴지는 척척한 시간의 주인공, 그는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마음을 뒤흔들며 늦게 온 그늘진 사람이다.
과연 그는 누굴까. 바로 해고로 몸살 앓는 현대인들이다. 해고로 가슴에 멍이 든 영혼들이다. 두려움에 떨면서 순결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만 허공을 가를 뿐, 공허한 메아리만 뱅뱅 돌 뿐, 여전히 오늘도 보타져 가는 심정 안고, 삭발과 소복으로 항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 그 고통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꽃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남루한 시인은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시대의 아픔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앞에 나서서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조용히 관찰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 해고를 일삼은 자본주의 재벌의 폐해, 재벌의 뒤를 봐주고 있는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의 화살이 거세다.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미지 구현으로도, 상징의 기법으로도, 얼마든지 사회 참여의 시, 시대 현실 비판의 시를 감동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무작정 주제를 노출하여 철새처럼 지저귀는 서술식 표현이 아닌, 시적 형상화의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장헌권 시인이 멋지다.
남평역 가는 길목 감나무 사이로
호젓한 동네가 앉아 있다
마당 구석진 곳에 자리한 작두샘에서
싱싱한 물 마시며 막내꽃으로 피었다
꽃봉오리도 잊은 채 청춘도 없이
짠 바닷물 고요하게 햇볕에 말려 가면서
뽀얀 새색시 반납하고 행상과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가을비 촉촉하게 젖어들어 울먹이며 파고드는 고통
잠 못 이루는 기나긴 삭풍에 단단한 흙속에 뿌리 박혀
뒤척이는 꽃이 저려온다
온몸으로 삭힌 가슴에 서럽게 핀 눈물꽃 되어 흐른다
절룩거리며 어둠의 골짜기 지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피에타를 본다.
- [홀로 피는 꽃]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남평역 가는 길목, 감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젓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마당 구석진 곳에는 작두샘이 있었다. 그곳에서 막내로 태어난 시적 화자는 싱싱한 물을 마시며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꽃봉오리도 잊은 채 거센 파도에 휩쓸려야 했다.
젊은 시절 짠 바닷물을 햇볕에 말려가면서 격렬한 투쟁의 길을 갔다. 뽀얀 새색시를 반납한 채 독신으로 행상을 하며 공사 현장의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가을비 내리는 날에는 울먹이며 파고드는 고통 속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시적 화자는 그런 삭풍의 현실 속에서도 단단한 흙속에 뿌리 박혀 뒤척이는 꽃이 그립다. 평범하게 농민이 되어 사회 현실에는 눈, 코, 귀를 막고 그냥 살아갈 수도 있었을 세상, 하지만 눈물꽃은 그러한 삶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비록 어둠의 골짜기, 절룩거리며 걷고 있다.
그러다,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는 예수, 그 피에타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시적 화자의 무릎은 곧 성모마리아가 될 것이고, 피에타는 곧 그리스도가 될 테니까. 이 세상은 고통과 아픔에서 구원될 것이고, 화평과 진리로 평정될 테니까.
우리는 장헌권 시인의 다른 시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상징과 이미지 구현이 여기서도 잘 이뤄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야트막한 자드락길 돌고 돌아
맨 안쪽 외딴집에 살살 부는 바람 소리 벗삼아
보송보송한 외로움이 문턱에 걸터앉아 먼산을 바라본다
야위어 가는 시간은
여름 소나기 지난 후 순한 민낯 세수를 한다
송알송알 하얀 웃음은
뽀얀 그리움을 자전거에 태워
송정 장날 버스정류장에 머뭇거리는 추억들을 불러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헐거움 사이로 마실 나간다
쑥스러워 차마 말도 건네지 못한
곱디고운 얼굴에 분칠을 했지만
아련한 그리움을 꺼내어 만지는 상흔
척박한 땅에 은둔하다가
시나브로 기도하는 두 손으로
솎아주며 다독거려
영글어 가는 속살이 절절하다
마음 적셔 남몰래 흐르는 눈물
그 불그스레한 언저리에
고요 담긴 슬픔이 한올지다.
- [복숭아의 볼우물]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야트막한 자드락길을 돌고 돌아 맨 안쪽 외딴집으로 가고 있다. 거기서 바람 소리 벗삼은 보송보송한 외로움이 문턱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점점 야위어 가는 시간을 안고 살아가는 시적 화자, 아니 외로움이 하루는 순한 민낯 세수를 한다. 모처럼 외출하는 날, 하얀 웃음이 뽀얀 그리움을 자전거에 태우고 길을 나선다. 송정 장날 버스정류장에 머뭇거리는 추억들을 불러 같이 마실 나간다. 쭈그리고 앉아 있던 헐거움도 만나고, 아련한 그리움을 꺼내어 만지는 상흔도 만나서, 척박한 땅에 은둔하다가 시나브로 기도하는 두 손도 만난다. 그 손으로 솎아주며 다독거려 영글어 가는 속살도 만난다. 마음 적셔 남몰래 흐르는 눈물도 만나고, 그 눈물의 불그스레한 언저리에 고요 담긴 슬픔도 만난다.
여기서 우리는 장헌권 시인의 현란한 이미지 구현을 만나볼 수 있다. 구상과 추상의 절묘한 배치가 특히 돋보인다. 외로움은 보송보송하고, 야윈 시간이 민낯 세수를 하고, 추억들은 버스정류장에 머뭇거리고 있고, 헐거움은 쭈그리고 앉아 있고, 아련한 그리움은 분칠을 하고 있고, 상흔은 그리움을 꺼내 만지고 있고, 눈물의 불그스레한 언저리엔 고요 담긴 슬픔이 있다.
이 얼마나 기발하고도 선명한 이미지 구현 기법인가. 이러한 이미저리가 장헌권 시들을 보다 튼실하게 보다 감동 깊게 시적 형상화 쪽으로 이끌어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그리움 앓다가 일어나
기울어져 가는 시간
창가의 슬픔으로 기대어 있다
끊을 수 없는 질긴
자투리 실
모아
한 땀 한 땀
서툴게
어둠을 뜨고 있다
촉촉해진 눈가 적셔 가며
보고픔의 대바늘로
가지각색 설움의 실뭉치 풀어 가며
손발 저려도
벌거벗은 하늘의 아가별
포근하게 올을 감싸 주는
외로운 가슴.
- [뜨개질하는 엄마] 전문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그리움을 앓다가 일어나 앉는다. 창가의 슬픔으로 기대어 있는 늦은 시간에, 뜨개질을 시작한다. 끊을 수 없는 질긴 자투리 실을 모아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떠 간다. 서툴지만 이 땅을 짓누르는 어둠을 뜨고 있다. 눈가엔 촉촉이 눈물이 서려 있다. 뜨개질은 보고픔의 대바늘로 가지각색의 설움의 실뭉치 풀어 가며 뜨고 있다. 손발이 저려도 상관하지 않고, 벌거벗은 하늘의 아가별을 위해, 외로운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옷 한 벌 뜨개질로 뜨고 있는 시적 화자, 아이를 억울하게 잃고 넋이 나가 버린 엄마, 그 외로움이 그 아픔이 그 고통이 독자들의 가슴에 깊숙이 새겨질 때까지 뜨개질은 계속 되고 있다.
시가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아주 세련된 시적 형상화로 보여 주고 있는 장헌권 시인은 이제 표현 기법의 세련미까지 고루 갖춘 듯하다.
작열하는 오후
헐거워지는 시간을
옛사랑의 그림자가
바큇살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리움 따라 흐르는
시꽃을 배달하기 위해
시심을 안장에 태우고
조용히 페달을 밟습니다
안경테 너머로 흐드러져
벌건 속살에 달라붙은
추억의 들풀이
춤을 춥니다
?
오르막길 내리막길
수그려 있는 외로움을
마구 휘어젓는
다리가 휘청거립니다
?
지칠 줄 모르는
새빨간 욕망에
수줍어 남몰래
아우성입니다.
- [자전거 타는 시인]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시인이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러 나간다. 헐거워지는 시적 화자의 시간을 옛사랑의 그림자가 바큇살을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 조용히 페달을 밟으며 길을 떠난다. 그리움을 따라 흐르는 시꽃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심을 안장에 태우고 간다.
안경 너머로 벌건 속살에 달라붙은 추억의 들풀들이 춤을 추고 있는 오솔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내내 수그려 있는 외로움도 만난다. 그 길 위에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리가 휘청거릴 때까지 페달을 밟는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욕망, 지칠 줄 모르는 그 새빨간 욕망, 이 때문에 의식과 추억과 감성은 아우성이다. 그래서 수줍어 얼굴을 붉히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이미 수차례 경험한 듯한 감성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지 구현이 빛을 발하고 있다. 시간과 헐거워지다, 옛사랑과 그림자, 그림자와 바큇살, 그리움과 흐르다, 시꽃과 배달하다, 시심과 안장에 태우다, 추억과 들풀, 외로움과 수그려 있다, 수줍어와 아우성, 욕망과 새빨갛다, 이렇듯 이질적인 사물을 서로 연결시켜, 적절한 보조관념의 활용으로 이미지 구현을 극대화시켜 놓고 있다. 대단한 시 표현기법의 활용이라 여겨진다.
이 정도의 시적 형상화라면,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의미, 그 어떤 사상도 소화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간다. 앞으로, 장헌권 시인의 명시 탄생이 기대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빛도 노랗고
털 빛깔도 노란 토끼
한 마리
어느 날
꽃풀
맛있게 먹으려다 그만
무서워 떨고 있는
풀을 보고
차마 먹지 못했네
배고픔이 몰려오자
할 수 없이
하나님한테 물었네
무얼
먹고
살아요?
응 나는
보리수나무 이슬 바람 한 줌
아침 햇살 마시고 살지
저도
그리 살게
해주세요.
- [하나님의 눈물]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눈빛도 노랗고 털 빛깔도 노란 토끼 한 마리다. 하루는 꽃풀을 맛있게 먹으려다 차마 먹지 못하고 그만 돌아서고 만다. 풀이 무서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끼는 배고픔이 몰려오자, 할 수 없이 하나님에게로 가서 물었다.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하나님은 말한다. 보리수나무 이슬 바람 한 줌 아침 햇살 마시고 산다고. 토끼가 잽싸게 따라붙인 한마디. '저도 그리 살게 해주세요.' 여기서, 시적 화자는 곧 시인의 인생관을 대변한다.
이게 어쩌면 인류사의 문제점인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문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에 더더욱 살아가기 힘든 세상, 일부 재물을 독식하는 욕망 때문에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빈부의 격차, 거대한 부조리와 비리가 횡행하는 사회, 불의와 억지와 모순이 팽배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폐해 등으로 점점 왜소해 가는 서민의 생활상, 이를 조용히 고발하는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숙연한 시간을 갖게 된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현실 앞에서, 겸허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추스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시, 장헌권 시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현란한 시어들을 동원하지 않고도, 나지막이 호소하는 이미지 시, 그러면서도 독자들의 감성을 무섭도록 빠르게 파고드는 시심의 힘, 이게 장헌권 시인의 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꽃잎에 촉촉한 슬픔으로
젖어 있는 어느 사월의 저녁 시간
노란 리본이 소박한 시꽃으로
절절한 사연 간직한 채 다소곳이 피어 있습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일어나 걷겠다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꺾일 줄 모르는 꼿꼿한 자존심으로
바람이 꽃잎만 건들어도 아파했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월이 오기 전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는 아이들 만나러
서둘러 가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마지막 떠나는 그 길에도
가슴에 노란 뱃지를 달고
시집을 가슴에 품고 가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대의 아내가 관뚜껑에 눈물로 쓴 흔적이 말합니다
"영원한 내 사랑
참 수행자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성자입니다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죽으면서도 내 무릎을 주물러 주셨던 당신
그 따뜻한 마음 기억하며 살게요"
이 영혼의 울림을 듣고 있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정의행 님에게 바치는 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정의행 님을 추도하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꽃잎에 촉촉한 슬픔으로 젖어 있는 어느 사월의 저녁 시간이다.
노란 리본이 소박한 시꽃으로 다소곳이 피어 있다. 절절한 사연도 곁에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일어나 걷겠다는 님은 소식이 없다. 지금 어디에 있냐고 외치는 시적 화자의 속울음 속으로 독자들도 빨려든다.
도무지 꺾일 줄 모르던 꼿꼿한 자존심으로 살아온 님, 바람이 꽃잎만 건들어도 아파할 만큼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님, 사월이 오기 전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는 아이들을 만나러 서둘러 가 버린 님, 마지막 가는 길에도 가슴에 노란 뱃지를 달고 간 님,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롯해 이 땅에 억울하게 죽어간 원한을 담은 시집을 가슴에 품고 간 님, 떠나는 순간에 아내의 절절한 사랑 고백을 받고 떠난 님, 그 님이 떠나가는 이 시간, 독자들의 가슴도 같이 울고 있다.
독자들도 님의 아내가 관뚜껑에 눈물로 쓴 흔적에 가슴을 얹고 같이 다짐한다. 참 수행자인 님, 이 시대 진정한 성자인 님, 우리 모두 끝까지 기억할게요.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한 마음 베풀었던 님, 님의 그 아름다운 흔적들이 이 땅에 고귀한 의미의 꽃으로 피어나길 빌게요.
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감성을 붙들어 놓고 감동을 주는 시의 힘, 이게 장헌권 시인의 시들에서 줄기차게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장헌권 시인의 시들 속으로 들어가 시 세계를 만나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이 짙게 자리하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지 구현을 통한 시적 형상화에 기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보조관념과 객관적 상관물의 적절하고 절묘한 배치를 통하여, 시적 형상화를 이뤄냈다는 점, 또한 되도록 낯설게 하기를 통해 새로운 해석의 영역을 확보해 놓고 있다는 점, 시상의 흐름이 막힘없이 자연스레 흐르고 있다는 점, 사회 구조적 모순을 질타하는데도 목소리를 되도록 낮추고 은은히 감성의 파노라마를 타고 흐르는 이미저리를 통해 아주 은은히 호소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설적인 주제 노출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사회적 비판을 시 속에 담고 있다는 점 등이 돋보인다고 여겨진다.
시인은 자신만의 시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탐색된 세계에 대해 가장 절실한 삶의 감각과 진정성으로, 또 예리한 영감으로 시적 형상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적 울림이 있고, 감동의 전율을 독자에게 안겨 줄 수 있다. 시는 언어 이전에 시인의 삶 속에서 육화된 인품이나 체온과 같은 존재이다. 정서가 메마른 세상, 인간다운 품성이 상실된 시대에 순화된 정서를 돌려 주고 심어 주는 역할을 시인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시인, 그 고독 속에서 시인의 성찰과 사유가 나온다. 우리는 시를 통해 사물을 통찰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시는 우리에게 구원의 빛이 될 수 있고, 위안의 안식처이자 깊은 사색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상상력, 비전의 확대, 이웃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이해, 정제된 언어의 조탁, 삶의 아름다움이나 성찰을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닮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의 특질을 두루 갖춘 시를 창작해 가는 장헌권 시인에게 이 시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장헌권 시인의 다음 시집 발간까지 설렘 가득 기대해 본다. 계속해서 시집을 내는 사이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얻게 될 것이고, 한국 문학사와 세계 문학사에 굵직한 선을 긋게 되리라 믿는다.
삶 자체가 아름답고, 또 격조 높은 작품을 줄기차게 써 나가는 장헌권 시인, 참 멋지다.
- 낭만이 쏟아지고 꽃향 찬란한 초여름, 박덕은 문학관, 박덕은 미술관에서
한실 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수필가, 동화작가, 희곡작가, 화가)
목차
목차
작가의 말
祝詩_박덕은
1장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장 - 통일을 위한 기도
3장 - 헌책방 가는 길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아껴 불러 봅니다
저자
저자
질곡의 역사(1970~1980년)를 보낼 때 제3세계 신학, 제3세계 영화를 통하여 고통당하는 민중과 함께하는 현장 신학 수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농민들과 함께 장성 옥천교회(1982~1993년)와, 말씀과 영성 그리고 치유공동체인 서정교회(1993~현재)를 섬기고 있다.
월간 문학공간(2008년) 시 부문 신인문학상으로 시인이 되었다. 정읍사문학상(2015년)을 수상했다.
총회 사회문제대책위원장과 광주노회 인권위원장 및 광산구 인권증진위원회 위원장, 광주 기독교 협의회(NCC) 인권위원장이며, 6.15 남측위원회(광주) 공동대표, 광산구 통일 한마당 상임대표로 인권과 통일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이전 국가정보원 대선(18대) 선거개입 국기문란에 광주 국정원 앞에서 삭발 후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이후 삼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상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기억과 약속의 305일 동안 희생자 305명을 위하여 매일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면서 보내고 있다.
그 동안 쓴 저서로는, 방송 칼럼집 <돌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개울물 소리>, 영화를 마중물로 하여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영화 치유 이야기>, 영화와 시를 접목시킨 <시가 영화를 만나다>,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차마 부를 수 없는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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