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어요(오늘의 시선집 27)
정주이 시집
Regular price
$11.24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정주이 시인이 그려내는 감성의 그림, 그 이미지가 감탄을 자아낼 만하지 아니한가. 지각적 이미지들의 조화로움, 구상과 추상의 적절한 활용과 배치가 경이로울 정도다. 표현의 신선함과 낯설게 하기,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 이미저리의 효과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정주이 시인, 젊은 세대 시인들 못지않은 기교파이기도 하다.
시가 시다울 수 있는 건 역시 찰나의 예술, 감성의 세계를 마치 찰나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재주, 사물을 바라볼 때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솜씨, 추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마치 구상의 세계에서 만져질 듯 그려내는 재능, 시 속에서 만난 보편성을 따라 술술 감동의 전율로 합류케 하는 마술 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구비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 그녀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은 늘 겸허하게 자기 자신을 낮춰 말하지만, 필자가 볼 땐 타고난 시인인 듯하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 창작을 통해, 제2시집, 제3시집 연달아 펴내기를, 또 독자들에게 이미지 시의 세계로 안내하여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되는 시인으로 남아 주기를 기원해 본다(한실 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정주이 시인의 제1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중에서).
시가 시다울 수 있는 건 역시 찰나의 예술, 감성의 세계를 마치 찰나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재주, 사물을 바라볼 때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솜씨, 추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마치 구상의 세계에서 만져질 듯 그려내는 재능, 시 속에서 만난 보편성을 따라 술술 감동의 전율로 합류케 하는 마술 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구비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 그녀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은 늘 겸허하게 자기 자신을 낮춰 말하지만, 필자가 볼 땐 타고난 시인인 듯하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 창작을 통해, 제2시집, 제3시집 연달아 펴내기를, 또 독자들에게 이미지 시의 세계로 안내하여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되는 시인으로 남아 주기를 기원해 본다(한실 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정주이 시인의 제1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중에서).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정주이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정주이 시인은 1952년에 순천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 무용을 하며 꿈을 키웠고, 문예부로 활동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고 싶어 했다.
그녀는 복받치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게 '낭만과 예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또 시를 창작하는 일이 자신의 사랑이고 자신의 전부라고 얘기한다. 시를 통해 힘과 위로를 받고 아픔과 슬픔을 다독이며 눈물을 흘린다는 정주이 시인.
필자가 운영하는 한실문예창작반에 정주이 시인이 우연히 들러 같이 담소를 나누었고, 시 창작과 시 교정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얼마간의 공백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점심시간에 차를 몰고 가는데, 정주이 시인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름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대뜸 '예말이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그녀는 뒤돌아보며 반가운 미소를 띄워 주었다. 이게 인연이 되어, 그녀의 닉네임이 '예말이요'가 되었고, 같이 시 창작하는 동지가 되었다.
함께 재미나게 신나게 시 창작 활동을 하던 중, 또 다시 그녀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알고 보니,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칩거 중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따로 문학의 길을 가던 중, 어느 날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 창작 생활을 다시 재개하겠다고 했다. 반가웠다.
이후 그녀는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tv "낭만대통령의 문학 토크"에 거의 매일 한 편씩 창작 시를 보내오는 창작 열정을 선보였다.
정말 놀라운 그녀의 시 창작 열정, 끈기, 의지, 또 시 창작 표현 기법의 점진적 발전,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 등이 연신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다 월간지에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도전하여, 신인문학상으로 보란 듯이 문단 데뷔를 했고, 내친김에 시집까지 발간하기로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보람 있는 방향 설정을 하지 않았나 싶다.
행복한 박수를 보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정주이 시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감상해 보기로 하자.
가을이 익어 가는 낙엽 사이로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떨어진다
비 쏟아져 적시면
석양에 걸린 못다 한 사랑이
심한 갈증 토해낸다
허공에 걸린 붉디붉은 노을 한 자락이
고독의 언저리에 맴돌다
매듭 매듭 얽힌 추억들 쓸어낸다
손톱 밑에 핏물 어리도록
물컹해진 침묵 비틀어 짜서
기억마다 흉터 쓰다듬는다.
- [어떤 사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을의 낙엽 위에 서 있다. 거기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비 쏟아지고 그친 날은 석양을 바라보며 서산마루에 걸친 못다 한 사랑이 심한 갈증을 토해내는 걸 시리게 지켜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허공에 걸린 노을 한 자락이 고독의 언저리에 맴돌다 얽힌 추억들을 쓸어내는 것도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시적 화자는 손톱 밑에 핏물 어리도록 물컹해진 침묵을 비틀어 짜서 기억마다 흉터를 쓰다듬는 고통도 맛본다.
시어들의 배치 솜씨가 놀랍다. 이미지 구현 위에 펼쳐지는 적절한 시어 배치 능력이 뛰어나다. 가을이 익어 가는 낙엽, 석양에 걸린 못다 한 사랑, 매듭 매듭 얽힌 추억들, 물컹해진 침묵 비틀어 짜서 등등의 신선한 표현이 시상의 흐름과 시적 형상화의 기둥 역할을 해주고 있다. 시는 낯설게 하기를 통한 새로운 해석, 신선한 표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듯 보여 주는 정주이 시인의 표현 기법에 먼저 눈길이 간다.
기다랗게 깔린 추억은 적요만 맴돌고
바람만 불어도 행여 님이신가 설렌다
마중 나간 그 님은 아니 오고
젖은 꽃잎만 저리 휘날린다
너울대는 그리움 지우려 해도
뜨겁게 내리는 단비에
뼛속 깊이 외로움만 자꾸 칭얼댄다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초조함이
입술 깨물며
진종일 애태우고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이
머물다 간 자리
안개 덮여 가슴 쓰리다.
- [기다림.2]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추억을 기다랗게 깔아 놓고 있다. 거기에 적요가 맴돈다. 사방이 조용하다. 그때 자그만 바람만 불어도 행여 님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마중 나간 그 자리에 님은 오지 않고 젖은 꽃잎만 휘날린다.눈앞에 너울대는 그리움을 지우려 해도 쉽지가 않다. 뜨겁게 내리는 단비에 뼛속 깊이 외로움만 칭얼대고 있다. 초조함은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고 있다. 입술 깨물어 보지만 소용없다. 진종일 애태우며 님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 그 내면이 안쓰럽다.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안개가 덮는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쓰리다.
추상(추억, 그리움, 외로움, 초조함, 가슴 쓰리다)과 구상(기다랗게 깔린, 적요, 바람, 젖은 꽃잎, 너울대는, 단비, 뼛속 깊이, 문풍지, 밀려오는, 입술 깨물며, 갈매기 치마폭, 물거품, 안개)의 조화로움, 촉각 이미지(젖은 꽃잎, 입술 깨물며, 가슴 쓰리다)와 시각 이미지(기다랗게 깔린 추억, 저리 휘날린다, 너울대는 그리움,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 안개 덮여)의 디코럼 등이 빚어내는 시적 형상화가 맛깔스럽다. 역시 시는 이처럼 이미지들과 손잡을 때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얽히고설킨 매듭
허리에 두르고
검푸른 떨림으로
시간을 내려놓는다
헐떡이는 둥지는
초침 위로 뱉어내고
덕지 덕지 물든 하얀 고백은
허허로운 불씨만
갈증으로 다독인 채
아릿한 함성을
물그림자 위에 드리운다
가까스로 얻어온 시름도
길게 자란 추억도
덧문 닫힌 상흔도
가시처럼 박혀
시린 밤 달구고 있다.
- [달 품은 어느 하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성가신 매듭을 허리에 두른 채 떨림으로 시간을 내려놓는다. 둥지는 뱉어내고, 고백은 불씨만 겨우 갈증으로 다독여 놓고, 함성을 물그림자 위에 드리운다.시름과 추억과 상흔은 가시처럼 박힌 채 시린 밤을 달구고 있다.
이 시에서 지각적 이미지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시각 이미지의 그릇에 검정(검푸른 떨림)과 하양(하얀 고백)을 배치해 놓고, 촉각 이미지(아릿한)와 청각 이미지(함성)의 결합, 구상(길게 자란)과 추상(추억)의 조화로움 등등이 빚어내는 이미지 구현이 아주 멋스럽다.
겨우내 움츠린 침묵은
깃발 흔들어대며
향기로 번져 간다
잔설 녹아든 해묵은 그리움
한 움큼 쥐고서
하얀 속살 파르르 떨구며
무언의 몸부림으로 허물 벗는다
가지에 맺힌 사연들을 쓸어안고
신비로이 꿈을 수놓는다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여유로움 흩뿌리다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 되어
아릿한 순수 온몸에 두르고
백년을 하루같이 하늘빛 머금은 잎새들은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 [백목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겨울 내내 움츠리고 있던 침묵이 깃발 흔들어대며 향기로 번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잔설 녹아든 그리움 한 움큼 쥐고서 속살 파르르 떨구며 그저 몸부림으로 허물 벗고 있는 것도 내려다본다. 그러다 사연들을 쓸어안고 꿈을 수놓는다. 하루는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잠시 여유를 즐긴다. 그러다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되어 흐르자, 순수를 온몸에 두른다. 바로 그때 하늘빛 머금은 잎새들이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보라, 시어의 현란한 배치, 그 노련한 표현 기법을! 잔설 녹아든 그리움을 한 움큼 쥐고, 무언의 몸부림이 허물 벗고,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여유로움 흩뿌리고,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 되고, 아릿한 순수를 온몸에 두르고,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등등의 표현 기법이 아주 세련되어 있다. 이미지와 상징과 의미를 시적 형상화로 빚어낼 줄 아는 솜씨, 이게 정주이 시인의 손끝에 매달려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하던 그대여
이 세상에 나 없더라도
슬퍼하지 마오
차가운 손 살포시 잡아 주던 그대여
행여 나 못 보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마오
얼어붙은 심장을
사랑으로 녹여 주던 그대여
냉가슴 숨죽이며 애써 설움 참지 마오
진한 향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대여
훗날 문득 내가 생각나더라도
아름답고 황홀했었노라고
책갈피에 고이 접어 간직하지 마오.
- [당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그대에게 할 말을 하고 있다. 그 동안 가슴 깊이 새겨 두고만 있었던 고백을 드디어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그대, 진정 마음 다해 사랑하는 그대이지만, 어느 땐가 헤어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만일 내가 죽어 세상을 떠난다 해도, 그대여 슬퍼하지 말라. 평소 얼어붙은 심장을 사랑으로 녹여 주던 그대여, 진한 향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대여, 냉가슴 숨죽이며 애써 설움 참지 말라. 훗날 문득 생각나 나를 떠올리거든 그저 아름답고 황홀했었노라고 책갈피에 고이 접어 간직하지 말라. 마지막 반전도 재미있다.
시상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이미지 위에 이끌어 나가는 시적 형상화, 그리고 반전의 기법이 시의 생동감을 유지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 어떠한 소재도 표현 기법 위에 빚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다림의 끝은
어디인가
아득히 머언 간절함이
기약 없는 추억 더듬으며
헤일 수 없는 메아리로 서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자리
냉기 스민 떨림이
터질 듯한 가슴 틀어잡고서
차오르는 목마름으로
짓무르는 눈꺼풀엔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 [보고픔]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기다림의 끝에 관심을 집중한다. 간절함이 추억을 더듬으며 메아리로 서 있다. 그곳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자리다. 그렇지만 기다림뿐이다. 늘 그립다. 냉기 스민 떨림만이 터질 듯한 가슴 틀어잡고 있을 뿐이다. 눈꺼풀이 차오르는 목마름으로 짓무르고 있다. 그 눈꺼풀에는 하염없이 눈물만 줄줄 흐르고 있다.
여기서 추상의 구상화가 눈에 띈다. 기다림의 끝, 아득히 먼 간절함, 기약 없는 추억 더듬으며, 냉기 스민 떨림, 차오르는 목마름 등이 한결같이 추상의 세계를 손에 잡힐 듯 구상화로 이끌고 있다. 그 덕택에 이미지의 선명함이 자리한다.
달빛 그림자는
고요 속에 잠들고
실바람 휘감는 정적은
문풍지 사이로 스쳐가고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는다.
- [새벽에]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을 안고 있다. 주위는 달빛이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달빛 그림자는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어느 순간 실바람 휘감는 정적은 문풍지 사이로 스쳐가고 있다. 또 가슴에 안긴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고 있다.
섬세한 이미지 구현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달빛 그림자가 고요 속에 잠들고, 정적은 실바람을 휘감고, 사연은 그리움으로 지새고, 그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고 등등의 표현이 아주 세련되어 있다. '달빛 그림자'와 '정적'과 '사연'이 모두 의인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달빛 그림자'(시각 이미지)가 '고요'(청각 이미지)와, '정적'(청각 이미지)이 '실바람 휘감다'(청각 이미지, 시각 이미지)와,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추상)이 '헛기침 소리'(청각 이미지)와 '놀라 돌아눕는다'(시각 이미지)와 각각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 멋스런 이미저리를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한 잔 술에 영혼 달래며
희미한 추억 살포시
즈려밟는다
공허한 마음 보듬고서
긴긴 그리움의 여정
한 올 한 올 꿰어
허기 채운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애틋함
가슴 맨 밑뿌리까지
적신다
알 듯 말 듯
침묵의 벽을 허물며
까칠한 심장
뜨겁게 태운다.
- [어쩌다 만나]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한 잔 술로 영혼을 달래며 추억을 떠올린다. 마음은 공허하지만, 그리움의 여정 한 올 한 올 꿰어 겨우 허기를 채우며 살아간다. 가슴의 애틋함은 어쩔 수가 없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감성, 그게 때로는 가슴 맨 밑뿌리까지 적시기도 한다. 알 듯 말 듯 침묵의 벽을 허무는 때도 있다. 그러면서 까칠한 심장을 뜨겁게 태우는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도 구상(한 잔 술, 즈려밟는다, 한 올 한 올 꿰어, 닿을 수 없는, 가슴 맨 밑뿌리, 벽, 까칠한 심장)과 추상(영혼, 공허한 마음, 긴긴 그리움, 허기, 애틋함, 침묵)의 절묘한 조화, 정교한 배치로 시의 이미지를 한층 선명하게 해놓고 있다.
스며드는 상념이
적막을 떠올리면
덧문 틈새 스산한 바람이
희미한 추억을 흔들어 깨우고
갈피에 접어둔 그리움이
한 겹 한 겹
밤새워 달그림자 새긴다
침묵은
저리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는데.
- [겨울밤.1]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스며드는 상념에 잠겨 있다. 주위는 고요롭고 쓸쓸하다. 덧문 틈으로 스산한 바람이 들어와 추억을 흔들어 깨운다. 그러자, 마음 갈피에 접어둔 그리움이 한 겹 한 겹 기어 나와 밤새워 달그림자를 새긴다. 더욱 외롭다. 무슨 말인가는 하고 싶다. 하지만 말을 걸 상대가 없다. 할 수 없이 침묵한다. 그 침묵은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고 있다.
아주 섬세한 감성이 시적 형상화 되고 있다. '스며드는 상념'(추상)이 '적막'(구상)을 떠올리고, '덧문 틈의 스산한 바람'(청각 이미지)이 '희미한'(시각 이미지) '추억'(추상)을 흔들어 깨우는(시각 이미지) 장면이 만져질 듯 잘 표현되고 있다. '그리움'(추상)은 '마음 갈피에 접어'(구상, 시각 이미지) 두었건만, 이날 밤 그게 기어 나와 '한 겹 한 겹 달그림자'(시각 이미지)를 밤새워 새기고 있는 정경, '침묵'(추상)이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고'(시각 이미지) 있는 모습 등이 마치 감성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쪼그라진 빈 수레가
하얀 가운으로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으로
빠져든다
터널 뚫는 기다림에
지쳐 버린 갈증은
혈관을 타고 돌다가
따스한 열기로 척추를 일으켜 세운다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발의 허기를 달래고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쥐고서
무심한 세월은
눅눅한 밤바람에 몸을 뒤척이다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
자리에 눕는다.
- [나의 하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빈 수레에 눈길을 주고 있다. 수레는 쪼그라져 있다. 그 수레는 하얀 가운으로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다림에는 터널 뚫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지쳐 버린 갈증이 혈관 타고 돌다가 따스한 열기로 척추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시적 화자는 한 사발의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는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움켜쥔다. 곁에 있던 무심한 세월은 눅눅한 밤바람에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거리다가,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는 자리에 눕는다. 이 과정을 다 지켜본 시적 화자의 마음이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픔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시각 이미지(쪼그라진, 하얀 가운,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 혈관, 척추, 일으켜 세운다, 흐른 뒤, 한 사발, 한 움큼, 몸을 뒤척이다, 한 조각 슬어내고, 자리에 눕는다)와 촉각 이미지(따스한 열기, 차가운 침묵, 눅눅한 밤바람)와 청각 이미지(빈 수레, 침묵이 흐른 뒤, 밤바람)의 절묘한 배치, 터널 뚫는 기다림, 지켜 버린 갈증,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발의 허기,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 등과 같은 구상과 추상의 환상 궁합 등이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 구현을 거의 완벽하게 도와주고 있다.
어떠한가. 정주이 시인이 그려내는 감성의 그림, 그 이미지가 감탄을 자아낼 만하지 아니한가. 지각적 이미지들의 조화로움, 구상과 추상의 적절한 활용과 배치가 경이로울 정도다. 표현의 신선함과 낯설게 하기,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 이미저리의 효과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정주이 시인, 젊은 세대 시인들 못지않은 기교파이기도 하다.
시가 시다울 수 있는 건 역시 찰나의 예술, 감성의 세계를 마치 찰나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재주, 사물을 바라볼 때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솜씨, 추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마치 구상의 세계에서 만져질 듯 그려내는 재능, 시 속에서 만난 보편성을 따라 술술 감동의 전율로 합류케 하는 마술 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구비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 그녀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은 늘 겸허하게 자기 자신을 낮춰 말하지만, 필자가 볼 땐 타고난 시인인 듯하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 창작을 통해, 제2시집, 제3시집 연달아 펴내기를, 또 독자들에게 이미지 시의 세계로 안내하여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동의 시인으로 기억되는 시인으로 남아 주기를 기원해 본다.
다시 한 번, 늘 즐거이 또 성실하게 시 창작을 하고, 이를 꾸준히 발표하고, 때가 되면 이렇게 시집으로 펴내는 삶을 꾸려 가고 있는 정주이 시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동시에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참 멋지다.
- 무더위 속에서 간혹 소낙비를 뿌려 주는 운치 있는 칠월 마지막 날에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전 전남대 교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인, 동화작가, 화가, 아프리카tv BJ)
정주이 시인은 1952년에 순천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 무용을 하며 꿈을 키웠고, 문예부로 활동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고 싶어 했다.
그녀는 복받치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게 '낭만과 예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또 시를 창작하는 일이 자신의 사랑이고 자신의 전부라고 얘기한다. 시를 통해 힘과 위로를 받고 아픔과 슬픔을 다독이며 눈물을 흘린다는 정주이 시인.
필자가 운영하는 한실문예창작반에 정주이 시인이 우연히 들러 같이 담소를 나누었고, 시 창작과 시 교정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얼마간의 공백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점심시간에 차를 몰고 가는데, 정주이 시인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름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대뜸 '예말이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그녀는 뒤돌아보며 반가운 미소를 띄워 주었다. 이게 인연이 되어, 그녀의 닉네임이 '예말이요'가 되었고, 같이 시 창작하는 동지가 되었다.
함께 재미나게 신나게 시 창작 활동을 하던 중, 또 다시 그녀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알고 보니,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칩거 중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따로 문학의 길을 가던 중, 어느 날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 창작 생활을 다시 재개하겠다고 했다. 반가웠다.
이후 그녀는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tv "낭만대통령의 문학 토크"에 거의 매일 한 편씩 창작 시를 보내오는 창작 열정을 선보였다.
정말 놀라운 그녀의 시 창작 열정, 끈기, 의지, 또 시 창작 표현 기법의 점진적 발전,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 등이 연신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다 월간지에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도전하여, 신인문학상으로 보란 듯이 문단 데뷔를 했고, 내친김에 시집까지 발간하기로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보람 있는 방향 설정을 하지 않았나 싶다.
행복한 박수를 보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정주이 시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감상해 보기로 하자.
가을이 익어 가는 낙엽 사이로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떨어진다
비 쏟아져 적시면
석양에 걸린 못다 한 사랑이
심한 갈증 토해낸다
허공에 걸린 붉디붉은 노을 한 자락이
고독의 언저리에 맴돌다
매듭 매듭 얽힌 추억들 쓸어낸다
손톱 밑에 핏물 어리도록
물컹해진 침묵 비틀어 짜서
기억마다 흉터 쓰다듬는다.
- [어떤 사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을의 낙엽 위에 서 있다. 거기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비 쏟아지고 그친 날은 석양을 바라보며 서산마루에 걸친 못다 한 사랑이 심한 갈증을 토해내는 걸 시리게 지켜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허공에 걸린 노을 한 자락이 고독의 언저리에 맴돌다 얽힌 추억들을 쓸어내는 것도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시적 화자는 손톱 밑에 핏물 어리도록 물컹해진 침묵을 비틀어 짜서 기억마다 흉터를 쓰다듬는 고통도 맛본다.
시어들의 배치 솜씨가 놀랍다. 이미지 구현 위에 펼쳐지는 적절한 시어 배치 능력이 뛰어나다. 가을이 익어 가는 낙엽, 석양에 걸린 못다 한 사랑, 매듭 매듭 얽힌 추억들, 물컹해진 침묵 비틀어 짜서 등등의 신선한 표현이 시상의 흐름과 시적 형상화의 기둥 역할을 해주고 있다. 시는 낯설게 하기를 통한 새로운 해석, 신선한 표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듯 보여 주는 정주이 시인의 표현 기법에 먼저 눈길이 간다.
기다랗게 깔린 추억은 적요만 맴돌고
바람만 불어도 행여 님이신가 설렌다
마중 나간 그 님은 아니 오고
젖은 꽃잎만 저리 휘날린다
너울대는 그리움 지우려 해도
뜨겁게 내리는 단비에
뼛속 깊이 외로움만 자꾸 칭얼댄다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초조함이
입술 깨물며
진종일 애태우고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이
머물다 간 자리
안개 덮여 가슴 쓰리다.
- [기다림.2]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추억을 기다랗게 깔아 놓고 있다. 거기에 적요가 맴돈다. 사방이 조용하다. 그때 자그만 바람만 불어도 행여 님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마중 나간 그 자리에 님은 오지 않고 젖은 꽃잎만 휘날린다.눈앞에 너울대는 그리움을 지우려 해도 쉽지가 않다. 뜨겁게 내리는 단비에 뼛속 깊이 외로움만 칭얼대고 있다. 초조함은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고 있다. 입술 깨물어 보지만 소용없다. 진종일 애태우며 님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 그 내면이 안쓰럽다.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안개가 덮는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쓰리다.
추상(추억, 그리움, 외로움, 초조함, 가슴 쓰리다)과 구상(기다랗게 깔린, 적요, 바람, 젖은 꽃잎, 너울대는, 단비, 뼛속 깊이, 문풍지, 밀려오는, 입술 깨물며, 갈매기 치마폭, 물거품, 안개)의 조화로움, 촉각 이미지(젖은 꽃잎, 입술 깨물며, 가슴 쓰리다)와 시각 이미지(기다랗게 깔린 추억, 저리 휘날린다, 너울대는 그리움, 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갈매기 치마폭에 떠도는 물거품, 안개 덮여)의 디코럼 등이 빚어내는 시적 형상화가 맛깔스럽다. 역시 시는 이처럼 이미지들과 손잡을 때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얽히고설킨 매듭
허리에 두르고
검푸른 떨림으로
시간을 내려놓는다
헐떡이는 둥지는
초침 위로 뱉어내고
덕지 덕지 물든 하얀 고백은
허허로운 불씨만
갈증으로 다독인 채
아릿한 함성을
물그림자 위에 드리운다
가까스로 얻어온 시름도
길게 자란 추억도
덧문 닫힌 상흔도
가시처럼 박혀
시린 밤 달구고 있다.
- [달 품은 어느 하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성가신 매듭을 허리에 두른 채 떨림으로 시간을 내려놓는다. 둥지는 뱉어내고, 고백은 불씨만 겨우 갈증으로 다독여 놓고, 함성을 물그림자 위에 드리운다.시름과 추억과 상흔은 가시처럼 박힌 채 시린 밤을 달구고 있다.
이 시에서 지각적 이미지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시각 이미지의 그릇에 검정(검푸른 떨림)과 하양(하얀 고백)을 배치해 놓고, 촉각 이미지(아릿한)와 청각 이미지(함성)의 결합, 구상(길게 자란)과 추상(추억)의 조화로움 등등이 빚어내는 이미지 구현이 아주 멋스럽다.
겨우내 움츠린 침묵은
깃발 흔들어대며
향기로 번져 간다
잔설 녹아든 해묵은 그리움
한 움큼 쥐고서
하얀 속살 파르르 떨구며
무언의 몸부림으로 허물 벗는다
가지에 맺힌 사연들을 쓸어안고
신비로이 꿈을 수놓는다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여유로움 흩뿌리다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 되어
아릿한 순수 온몸에 두르고
백년을 하루같이 하늘빛 머금은 잎새들은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 [백목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겨울 내내 움츠리고 있던 침묵이 깃발 흔들어대며 향기로 번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잔설 녹아든 그리움 한 움큼 쥐고서 속살 파르르 떨구며 그저 몸부림으로 허물 벗고 있는 것도 내려다본다. 그러다 사연들을 쓸어안고 꿈을 수놓는다. 하루는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잠시 여유를 즐긴다. 그러다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되어 흐르자, 순수를 온몸에 두른다. 바로 그때 하늘빛 머금은 잎새들이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보라, 시어의 현란한 배치, 그 노련한 표현 기법을! 잔설 녹아든 그리움을 한 움큼 쥐고, 무언의 몸부림이 허물 벗고,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여유로움 흩뿌리고, 혀끝으로 날아든 설렘 전율 되고, 아릿한 순수를 온몸에 두르고, 졸고 있는 추억의 여백을 일으켜 세우고 등등의 표현 기법이 아주 세련되어 있다. 이미지와 상징과 의미를 시적 형상화로 빚어낼 줄 아는 솜씨, 이게 정주이 시인의 손끝에 매달려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하던 그대여
이 세상에 나 없더라도
슬퍼하지 마오
차가운 손 살포시 잡아 주던 그대여
행여 나 못 보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마오
얼어붙은 심장을
사랑으로 녹여 주던 그대여
냉가슴 숨죽이며 애써 설움 참지 마오
진한 향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대여
훗날 문득 내가 생각나더라도
아름답고 황홀했었노라고
책갈피에 고이 접어 간직하지 마오.
- [당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그대에게 할 말을 하고 있다. 그 동안 가슴 깊이 새겨 두고만 있었던 고백을 드디어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그대, 진정 마음 다해 사랑하는 그대이지만, 어느 땐가 헤어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만일 내가 죽어 세상을 떠난다 해도, 그대여 슬퍼하지 말라. 평소 얼어붙은 심장을 사랑으로 녹여 주던 그대여, 진한 향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대여, 냉가슴 숨죽이며 애써 설움 참지 말라. 훗날 문득 생각나 나를 떠올리거든 그저 아름답고 황홀했었노라고 책갈피에 고이 접어 간직하지 말라. 마지막 반전도 재미있다.
시상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이미지 위에 이끌어 나가는 시적 형상화, 그리고 반전의 기법이 시의 생동감을 유지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 어떠한 소재도 표현 기법 위에 빚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다림의 끝은
어디인가
아득히 머언 간절함이
기약 없는 추억 더듬으며
헤일 수 없는 메아리로 서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자리
냉기 스민 떨림이
터질 듯한 가슴 틀어잡고서
차오르는 목마름으로
짓무르는 눈꺼풀엔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 [보고픔]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기다림의 끝에 관심을 집중한다. 간절함이 추억을 더듬으며 메아리로 서 있다. 그곳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자리다. 그렇지만 기다림뿐이다. 늘 그립다. 냉기 스민 떨림만이 터질 듯한 가슴 틀어잡고 있을 뿐이다. 눈꺼풀이 차오르는 목마름으로 짓무르고 있다. 그 눈꺼풀에는 하염없이 눈물만 줄줄 흐르고 있다.
여기서 추상의 구상화가 눈에 띈다. 기다림의 끝, 아득히 먼 간절함, 기약 없는 추억 더듬으며, 냉기 스민 떨림, 차오르는 목마름 등이 한결같이 추상의 세계를 손에 잡힐 듯 구상화로 이끌고 있다. 그 덕택에 이미지의 선명함이 자리한다.
달빛 그림자는
고요 속에 잠들고
실바람 휘감는 정적은
문풍지 사이로 스쳐가고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는다.
- [새벽에]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을 안고 있다. 주위는 달빛이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달빛 그림자는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어느 순간 실바람 휘감는 정적은 문풍지 사이로 스쳐가고 있다. 또 가슴에 안긴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고 있다.
섬세한 이미지 구현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달빛 그림자가 고요 속에 잠들고, 정적은 실바람을 휘감고, 사연은 그리움으로 지새고, 그 사연은 헛기침 소리에 놀라 돌아눕고 등등의 표현이 아주 세련되어 있다. '달빛 그림자'와 '정적'과 '사연'이 모두 의인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달빛 그림자'(시각 이미지)가 '고요'(청각 이미지)와, '정적'(청각 이미지)이 '실바람 휘감다'(청각 이미지, 시각 이미지)와, '그리움으로 지새는 사연'(추상)이 '헛기침 소리'(청각 이미지)와 '놀라 돌아눕는다'(시각 이미지)와 각각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 멋스런 이미저리를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한 잔 술에 영혼 달래며
희미한 추억 살포시
즈려밟는다
공허한 마음 보듬고서
긴긴 그리움의 여정
한 올 한 올 꿰어
허기 채운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애틋함
가슴 맨 밑뿌리까지
적신다
알 듯 말 듯
침묵의 벽을 허물며
까칠한 심장
뜨겁게 태운다.
- [어쩌다 만나]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한 잔 술로 영혼을 달래며 추억을 떠올린다. 마음은 공허하지만, 그리움의 여정 한 올 한 올 꿰어 겨우 허기를 채우며 살아간다. 가슴의 애틋함은 어쩔 수가 없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감성, 그게 때로는 가슴 맨 밑뿌리까지 적시기도 한다. 알 듯 말 듯 침묵의 벽을 허무는 때도 있다. 그러면서 까칠한 심장을 뜨겁게 태우는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도 구상(한 잔 술, 즈려밟는다, 한 올 한 올 꿰어, 닿을 수 없는, 가슴 맨 밑뿌리, 벽, 까칠한 심장)과 추상(영혼, 공허한 마음, 긴긴 그리움, 허기, 애틋함, 침묵)의 절묘한 조화, 정교한 배치로 시의 이미지를 한층 선명하게 해놓고 있다.
스며드는 상념이
적막을 떠올리면
덧문 틈새 스산한 바람이
희미한 추억을 흔들어 깨우고
갈피에 접어둔 그리움이
한 겹 한 겹
밤새워 달그림자 새긴다
침묵은
저리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는데.
- [겨울밤.1]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스며드는 상념에 잠겨 있다. 주위는 고요롭고 쓸쓸하다. 덧문 틈으로 스산한 바람이 들어와 추억을 흔들어 깨운다. 그러자, 마음 갈피에 접어둔 그리움이 한 겹 한 겹 기어 나와 밤새워 달그림자를 새긴다. 더욱 외롭다. 무슨 말인가는 하고 싶다. 하지만 말을 걸 상대가 없다. 할 수 없이 침묵한다. 그 침묵은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고 있다.
아주 섬세한 감성이 시적 형상화 되고 있다. '스며드는 상념'(추상)이 '적막'(구상)을 떠올리고, '덧문 틈의 스산한 바람'(청각 이미지)이 '희미한'(시각 이미지) '추억'(추상)을 흔들어 깨우는(시각 이미지) 장면이 만져질 듯 잘 표현되고 있다. '그리움'(추상)은 '마음 갈피에 접어'(구상, 시각 이미지) 두었건만, 이날 밤 그게 기어 나와 '한 겹 한 겹 달그림자'(시각 이미지)를 밤새워 새기고 있는 정경, '침묵'(추상)이 '수줍게 이슬의 새벽을 더듬고'(시각 이미지) 있는 모습 등이 마치 감성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쪼그라진 빈 수레가
하얀 가운으로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으로
빠져든다
터널 뚫는 기다림에
지쳐 버린 갈증은
혈관을 타고 돌다가
따스한 열기로 척추를 일으켜 세운다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발의 허기를 달래고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쥐고서
무심한 세월은
눅눅한 밤바람에 몸을 뒤척이다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
자리에 눕는다.
- [나의 하루]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빈 수레에 눈길을 주고 있다. 수레는 쪼그라져 있다. 그 수레는 하얀 가운으로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다림에는 터널 뚫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지쳐 버린 갈증이 혈관 타고 돌다가 따스한 열기로 척추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시적 화자는 한 사발의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는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움켜쥔다. 곁에 있던 무심한 세월은 눅눅한 밤바람에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거리다가,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는 자리에 눕는다. 이 과정을 다 지켜본 시적 화자의 마음이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픔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시각 이미지(쪼그라진, 하얀 가운, 동여맨 채, 캄캄한 가죽 속, 혈관, 척추, 일으켜 세운다, 흐른 뒤, 한 사발, 한 움큼, 몸을 뒤척이다, 한 조각 슬어내고, 자리에 눕는다)와 촉각 이미지(따스한 열기, 차가운 침묵, 눅눅한 밤바람)와 청각 이미지(빈 수레, 침묵이 흐른 뒤, 밤바람)의 절묘한 배치, 터널 뚫는 기다림, 지켜 버린 갈증, 차가운 침묵이 흐른 뒤, 한 사발의 허기, 낡은 외로움 한 움큼, 설움 한 조각 슬어내고 등과 같은 구상과 추상의 환상 궁합 등이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 구현을 거의 완벽하게 도와주고 있다.
어떠한가. 정주이 시인이 그려내는 감성의 그림, 그 이미지가 감탄을 자아낼 만하지 아니한가. 지각적 이미지들의 조화로움, 구상과 추상의 적절한 활용과 배치가 경이로울 정도다. 표현의 신선함과 낯설게 하기,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 이미저리의 효과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정주이 시인, 젊은 세대 시인들 못지않은 기교파이기도 하다.
시가 시다울 수 있는 건 역시 찰나의 예술, 감성의 세계를 마치 찰나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재주, 사물을 바라볼 때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솜씨, 추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마치 구상의 세계에서 만져질 듯 그려내는 재능, 시 속에서 만난 보편성을 따라 술술 감동의 전율로 합류케 하는 마술 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구비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 그녀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시인이 아닐까.
정주이 시인은 늘 겸허하게 자기 자신을 낮춰 말하지만, 필자가 볼 땐 타고난 시인인 듯하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 창작을 통해, 제2시집, 제3시집 연달아 펴내기를, 또 독자들에게 이미지 시의 세계로 안내하여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동의 시인으로 기억되는 시인으로 남아 주기를 기원해 본다.
다시 한 번, 늘 즐거이 또 성실하게 시 창작을 하고, 이를 꾸준히 발표하고, 때가 되면 이렇게 시집으로 펴내는 삶을 꾸려 가고 있는 정주이 시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동시에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참 멋지다.
- 무더위 속에서 간혹 소낙비를 뿌려 주는 운치 있는 칠월 마지막 날에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전 전남대 교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인, 동화작가, 화가, 아프리카tv BJ)
목차
목차
정주이 시인의 제1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작가의 말
祝詩 - 박덕은
1장 - 달 품은 어느 하루
그리움 1
그리움 2
나의 고백
떠난 후에
벼랑 끝에서
유월의 숲
봄이 온 소리
내 안의 시심
섬
산행길
·
·
[중략]
·
·
황무지
물보라
달 품은 어느하루
계절끝자락
비애
일몰
시심
고독이라는 침목
2장 -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봄의 향연
인연
죽음 앞에서
나의 하루
이별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그해 겨울
·
·
[중략]
·
·
못 잊어
짝사랑
침묵
비
첫눈
황혼
3장 - 어쩌다 마나
봄 1
봄 2
여정
새벽에
우울증
다육이
어머니 1
어머니 2
죽녹원에서
사랑초
나의가을
·
·
[중략]
·
·
겨울밤 1
겨울밤 2
겨울밤 3
겨울밤 4
당신이 떠난 뒤
길목에서
얼마나 좋을까
추억
작가의 말
祝詩 - 박덕은
1장 - 달 품은 어느 하루
그리움 1
그리움 2
나의 고백
떠난 후에
벼랑 끝에서
유월의 숲
봄이 온 소리
내 안의 시심
섬
산행길
·
·
[중략]
·
·
황무지
물보라
달 품은 어느하루
계절끝자락
비애
일몰
시심
고독이라는 침목
2장 -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봄의 향연
인연
죽음 앞에서
나의 하루
이별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그해 겨울
·
·
[중략]
·
·
못 잊어
짝사랑
침묵
비
첫눈
황혼
3장 - 어쩌다 마나
봄 1
봄 2
여정
새벽에
우울증
다육이
어머니 1
어머니 2
죽녹원에서
사랑초
나의가을
·
·
[중략]
·
·
겨울밤 1
겨울밤 2
겨울밤 3
겨울밤 4
당신이 떠난 뒤
길목에서
얼마나 좋을까
추억
저자
저자
정주이
저자 정주이는
1952년 순천 출생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시 당선
한실문예창작 회원
향그런 문학회 회원
꽃스런 문학회 회원
바로 문학회 회원
효령 문학회 회원
향그런 문학회 회장
1952년 순천 출생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시 당선
한실문예창작 회원
향그런 문학회 회원
꽃스런 문학회 회원
바로 문학회 회원
효령 문학회 회원
향그런 문학회 회장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