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마차를 타고(개정판)(지혜사랑 번역선 1)
요코미츠 리이치의 소설 『봄은 마차를 타고』.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정신적 멘토인 요코미츠 리이치의 대표소설작품 선집이다. 신감각주의, 심리주의라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축으로 소설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따뜻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우리 인간들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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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요코미츠 리이치는 소설의 세계는 두 개의 축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신감각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주의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서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문체로 어린 아기와 소년, 젊은 청년인 나와 어린 조카, 아내와 나 등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관계를 묘사해 냈고, 이때에 그는 '신감각파의 선구자'로서 그 기법을 활용하게 된다. 신감각파란 우리 인간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을 말하고, 그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우리 인간들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휴머니즘이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이 사랑을 통해서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이라는 언제, 어느 때나 새로운 말이며, 영원히 낡지 않는 말이다. 아름다움 역시도 언제, 어느 때나 새로운 말이며, 영원히 낡지 않는 말이다. 하숙집 어린 아이인 큐와 빨강 여자 아이와의 동화적 사랑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아카이 기모노], 외삼촌으로서의 어린 조카에 대한 천사적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옥체], 젊은 신혼부부로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 사별死別의 아픔을 극적으로 미화시킨 [봄은 마차를 타고]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헤헤헤헤헤..."
연신 웃어대는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에 큐는 멈출 수가 없었다. 웃음소리에 부채질 당하듯 복도 끝까지 굴러가자 계단이 나타났다. 그러나 큐는 이미 주체할 수가 없었다. 큐는 다시 물구나무를 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짓단이 말려 내려와 작고 하얀 엉덩이가, "멍멍"하고 짖어댈 때마다 조금씩 내려갔다.
"에헤헤헤헤헤헤..."
여자아이는 배를 흔들며 웃었다. 그렇게 두, 세 개의 계단 내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큐의 엉덩이가 총에 맞은 새처럼 계단 아래까지 굴러 떨어졌다.
"에헤헤헤헤헤..."
계단 위에서는 여자아이의 높은 웃음소리가 천장까지 닿고 있었다.
----[아카이 기모노]에서
"그래? 내가 좋은 이름 생각해 뒀었는데 말이야. 사전 찾아가며 한 거 맞아?"
"칸와漢和 뭐라고 하는 사전 찾아봤어. 너한테 지어 달라 하자고 했는데 매형이 말을 안 듣잖아. 이상하지? 이런 이름."
"상관없어, 얼마나 예쁜 녀석이냐. 날 닮아서 역시 미인인 게야"
"그런가? 목욕탕에서 게이샤들이 있잖아, 이렇게 예쁜 아기는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거냐고 난리였어."
"너무 예뻐. 누나 고생 좀 하겠어."
----[옥체御身]에서
푸르고 푸른 바다 위에는 차츰 흰 돛이 늘어만 갔다. 바닷가의 하얀 길은 날이 갈수록 시끌벅적해졌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스위트 피 꽃다발이 곶串을 돌아 그에게로 전달되었다.
오랫동안 한풍으로 황폐해진 집 안에 처음으로 이른 봄내음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꽃가루가 잔뜩 묻은 손으로 꽃다발을 높이 받쳐 들고서 아내에게로 갔다.
"드디어 봄이 왔어."
"어머나, 예뻐라." 아내는 미소 띤 얼굴로 그 야윈 손을 꽃 앞으로 내밀었다.
"정말 예쁜 꽃이지?"
"어디서 난 거예요?"
"이 꽃은 마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제일 먼저 봄을 뿌리며 찾아온 거야."
아내는 그에게서 꽃다발을 받아 들자 양손으로 가슴 가득히 끌어안았다.
아내는 그렇게 그 화사한 꽃다발 속에 창백해진 얼굴을 파묻은 채 황홀하게 눈을 감았다.
----[봄은 마차를 타고]에서
요코미츠 리이치는 1923년 와세다 대학 동급생인 코지마 츠토무小島つとむ의 여동생 코지마 기미君子와 결혼했지만, 1926년 코지마 기미의 폐결핵으로 인하여 그의 아내와 사별을 하게 된다. 그의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처갓집의 강력한 반대와 어머니와 아내, 즉 고부간의 갈등 속에서 잠시도 행복할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사랑만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봄은 마차를 타고]에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글쓰기와 아내를 간병을 해야만 하는 생활 속의 고통이 담겨 있고, 하지만, 그러나 그 반대방향에서, 끝끝내 그의 아내와 사별해야만 하는 아픔이 너무나도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울지 않으며, 그 아내의 죽음마저도 '스위트피 꽃다발'로 이처럼 환하게 장식해 놓고 있는 것이다. 염세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삶을 저주하고 헐뜯어버리지만, 낙천주의자는 이 세상의 삶을 끊임없이 찬양하고 옹호하게 된다. 어차피 누구나 다같이 죽게 되는 것이고, 어차피 누구나 다같이 이러한 사별의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체험은 일상생활 중의 하나이며,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어린 아이는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을 하게 되지만, 이 세상의 삶의 이치를 깨달은 어른은 그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미화시키고 승화시키게 된다. 봄은 마차를 타고 오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그 마차를 타고 '스위트피 꽃다발'의 나라, 즉, 아름다운 천국으로 떠나가게 된다. 요컨대 우리 한국인들이 아직도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 불과하다면, 이웃 나라인 일본인들은 이처럼 성숙한 어른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봄은 마차를 타고]는 요코미츠 리이치의 '순애보'이자 그 사랑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피어난 걸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티없이 맑고 순순한 사랑, 천 년, 만 년 그 울림을 간직할 고귀하고 거룩한 사랑----. 왜, 이 [봄은 마차를 타고]가 그토록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소설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1980년대부터 요코미츠 리이치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문학적 업적은 재인정을 받게 되었고, 1987년도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초기 작품이 요코미츠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일본문단은 대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마르크스의 심판], [기계] 등이 심리소설의 걸작품이라면, 그의 유작遺作인 [미소]는 신감각주의와 심리주의가 결합된 세계적인 걸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요코미츠 리이치의 세계는 일문문학적 사건도 아니도, 아시아적 사건도 아니고, 세계적인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란 전투체제로 편성되어 있고, 언제, 어느 때나 이웃 국가를 침략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강도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국가도 그 국가의 이익을 자발적으로 양보한 적이 없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독도와 센카쿠 열도(尖閣列島,또는 조어도釣魚島), 이어도를 둘러싼 국가간의 영유권 분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 중의 하나인 일본이 자그만 바윗섬 하나를 더 차지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이 그렇고, 또한, 그토록 넓고 넓은 영토를 갖고 있는 중국이 자그만 바윗섬 하나를 더 차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이 그렇다.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은 선악을 넘어서 있고, 모든 국민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도 자기 조국의 패배를 기원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배가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을 때, 하이쿠 시인인 카지는 천재 수학자인 세이호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세이호는 일본군 장교이자 자칭 '살인광선'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해낸 천재 수학자이지만, "푸른 등나무 언덕의 이별의 칡꽃"이나 "쓰르라미여, 주객으로 보이는 칡꽃"이라는 하이쿠에 매료되어 있는 문학청년었다. 카지는 제일급의 하이쿠 시인이었고, 세이호는 그 카지를 흠모하는 문학청년이었다. 카지는 세이호가 미쳐버린 천재 수학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천재 수학자의 살인광선의 무기가 하루바삐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이호의 미소는 티없이 맑고 순진한 미소이며, 그 미소는 하나의 환상, 아니 하나의 광기 속에서만이 존재하게 된다. 그 미소를 그릴 때에는 인간의 감각으로 그려야 하지만, 다른 한편,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그 광기마저도 그 미소 속에 용해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미소]는 요코미츠 리이치의 감각주의의 소산이면서도 그의 심리주의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보다 자네의 그 광선은 무슨 색인가?"라고 카지는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저의 광선은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두워지면, 주위는 환한 푸른색이고 안쪽은 노란빛을 띠는 보통 빛의 색깔입니다. 언젠가 하늘로 쏘아 올리게 되면 꼭 지켜봐 주세요."
"저기서 하는 오늘 밤의 회의도 어쩌면 자네의 그 빛에 관한 건지도 모르겠군. 아무래도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지."
땅거미가 드리워져 오자 두 사람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세이호는 휴대품 보관소에서 돌려받은 단검을 허리에 차며 "어쩌면 1급 공적을 받을지도 모르겠어요"라며 기운차게 소매를 걷어 올렸다.
수교사를 빠져나와 어둑해진 길을 걸으며 롯뽄기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세이호는 카지 곁으로 바싹 다가와 지금껏 참고 있던 것을 토해내듯, 나직이 말했다.
"순양함 네 척과 구축함 네 척을 침몰시켰습니다. 광선을 쏴서요. 저는 시간을 재고 있었는데, 4분 걸렸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어둠 속에서 칼집의 단도를 찾다가 훅하고 옆구리를 찌르듯, 세이호는 허리춤에 찬 시계를 재빠르게 재는 시늉을 해보이며 카지에게 말했다.
"그 정도였다면 발표되었을 게 아닌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두 사람은 다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돌담의 차가운 기운이 짓누르듯 밀려왔다 스쳐갔다. 어두운 마미아나의 거리는 고요한 비탈길이었고 메아리로 울리는 구두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의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정점은 바로 오늘밤이었다고 카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세이호가 하는 말을 거짓이라고 외면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한 자신을 깨닫고 씁쓸해졌다. 아니 그것보다 세이호 스스로가 벗겨내려고 하는 환상을 오히려 자신이 지지하려 했던 호의의 원인은, 오로지 그의 미소에 견인되어 왔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카지는 그것이 분하여 단칼에 그를 미친놈이라고 내쳐버리고 싶었다. 카지는 냉정해져가는 자신에게 이상하게도 불안한 전율을 느끼며 침묵에 몸을 맡겨놓은 듯 묵묵히 걸었다.
"저는 선생님." 얼마 후 다시 세이호는 카지에게 바싹 다가와 말을 꺼냈다.
"지금 저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저는 지금까지 죽는다는 것을 한 번도 두렵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왜 그런지 며칠 전부터 죽는다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세이호의 본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카지는 그렇게 느끼며 "흐음"이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조금만 더 살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인간내면의 깊은 곳이 흔들리기 시작한 목소리였다. 알아챘구나, 라고 카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세이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다시 두 사람은 말없이 얼마동안 걸었다.
"전 이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겐 아무도 없습니다."
----[미소]에서
살인광선으로 순양함 네 척과 구축함 네 척을 순식간에 침몰시켰던 청년, 대영제국을 정복하고 미국마저도 정복할 수 있는 살인광선을 개발해 냈던 청년, 아인시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모순을 너무나도 일찍암치 깨달았던 청년, 티없이 맑고 순진한 시(하이쿠)에 매료되어 있던 청년----. 이 세이호의 미소란 무엇인가? 서로가 서로를 그토록 무자비하게 적대시 하고 대량살상을 마다하지 않던 전쟁의 국면에서는 이 세이허의 미소는 다만 하나의 환상이며 광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세이호의 미소는 환상이며, 광기이고, 그것은 조국의 승리의 염원이며, 궁극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그의 미소는 시이다. 이 세상에는 시는 없고 시적인 것만이 존재한다. 시는 이데아의 세계이며, 시적인 것은 현실의 세계이다. 우리는 이 시적인 것을 통하여 그 이데아의 세계로 올라가고자 한다. 천재 수학자인 세이호는 조국의 승리를 기원하면서도 시를 쓰는 청년이다. 그는 조국의 승리를 기원하면서도 전쟁을 혐오한다. 제일급의 하이쿠 시인인 카지도 마찬가지이다. 무사는 전쟁을 사랑하지만, 시인은 전쟁을 혐오한다. 이 모순된 존재가 드디어 정신분열을 일으키게 된 것이고, 그리고 그는 끝끝내 그 정신분열증의 희생양이 되고만 것이다.
소카이사키疎開先에서 동경으로 돌아온 카지는 돌연 몸져눕고 말았다. 가끔씩 병문안 오는 다카다에게 세이호의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지만 다카다는 죽은 자식의 나이를 세어서 무엇하냐는 듯, 그저 애매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자네, 세이호의 그 미소만큼은 눈이 부셨어. 그것을 본 사람은 누구든 당하고 말지. 그것만큼은......"
미소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죽일 수도 있는 광선이라는 의미도, 카지는 함축해서 말한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세이호의 미소를 생각하면 그가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올 것도 같았다. 카지는 마치 초봄과도 같았던 세이호의 미소를 생각하면서, 어느덧 그를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원망願望하고 있는, 하나의 명석한 판단과도 닮은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라도 하듯이 세계는 점점 두 개로 갈라져 서로 밀어내는 배중률의 한 가운데에서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카지는 회전하는 선풍기의 날개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던 세이호가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보세요, 날개에서 시선을 뗀 순간, 돌고 있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저도 지금 막 날기 시작했어요. 이렇게요."
----[미소]에서
요코미츠 리이치는 인간의 광기를 극사실주의로, 아니, 광기 자체로 묘사해낸 심리소설의 대가이다. 광기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는 그의 언어를 통해서, 그 부재의 언어를 이 세상에다가 구축해 놓게 된다. 진리는 이 세상의 삶의 이치이고, 그 진리는 무모순적이며,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리의 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이고, 우리는 그 진리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서, 미치광이가 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미친다는 것은 세계정복욕에 불타는 나폴레옹([나폴레옹과 쇠버짐])이 된다는 것이고, 미친다는 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무장한 판사([마르크스의 심판])가 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끝끝내 미친다는 것은 [기계]의 주인공인 '내'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평민의 아들이다. 나는 프랑스를 정복했다. 나는 이탈리아를 정복했다. 나는 에스파냐와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정복했다. 나는 러시아를 유린할 것이다. 나는 영국과 아시아를 유린할 것이다. 보라, 합스부르크의 딸이여!"
나폴레옹은 뜯어내듯 잠옷의 옷깃을 풀어헤쳤다. 루이자의 시선은 나폴레옹의 복부로 떨어졌다. 나폴레옹의 배는 맹조의 자수 속에서 털이 뽑힌 개처럼 고름을 흘리며 짓물러져 있었다.
"루이자, 오늘밤은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루이자는 나폴레옹의 권위에 압박당함과 동시에 그의 복부에 자수처럼 퍼져있는 독을 품은 완선에도 압박당했다. 오스트리아의 황녀, 합스부르크가의 딸은 지금 처음으로 평민의 추악함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나폴레옹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루이자는 휘장의 끝단을 밟으며 공포에 질린 눈썹을 찡그리며 뒷걸음질 쳤다. 나폴레옹은 아내의 표정에서 적의를 느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곁으로 오라, 루이자."
"폐하, 시의를 부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라니깐!"
그녀는 휘장주름 뒤로 얼굴을 숨기며 젖혀질 듯 몸을 날려 뛰어나갔다. 나폴레옹은 귀족의 딸로부터 자명하게 모욕을 당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드높던 그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미끄러지듯 도망가는 합스부르크의 딸의 뒷모습을 회랑의 경면을 통해 노려보았다.
"루이자!"
----[나폴레옹와 쇠버짐]에서
* 코르시카의 평민 출신인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 즉,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공주인 루이자를 아내로 얻고 그 열등의식 때문에 러시아의 정복에 나섰다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나폴레옹의 광기를 통하여 매우 아름답고 뛰어나게 묘사해낸 [나폴레옹과 쇠버짐]. 모든 영웅은 미치광이이며, 그 광기에 의해서 인류의 불행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활의 즐거움을 운명적으로 빼앗긴 남자, 그 운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언제나 쾌락의 초점이었던 거리의 입구에서 끊임없이 그러한 환락을 바라보며 위험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남자----, 이것이 얼마나 그를 괴로워하게 했을 것인가는 아주 단순한 상상만으로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판사는 단지 자기 자신의 단순한 적대감과 그 불순한 공포감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한 남자를 지금도 중죄로 몰고 가려고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문득문득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판사는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느끼며 섬뜩해졌다.
"무죄로 하자, 무죄다."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듯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것은 내 죄가 아니고, 마르크스의 죄다!"
----[마르크스의 심판]
* 부유한 탕자와 가난한 철도국의 건널목지기, 또는 부유한 판사와 가난한 철도국의 건널목지기의 그 계급적인 적대감을 초극하고, 자본가 계급의 허위의식을 가장 정직하고 솔직하게 반성을 하면서, 드디어, 마침내는 철도국 건널목지기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마르크스의 심판].
전에는 카루베가 그런 식으로 나를 의심했으나 이번엔 내가 누군가를 의심하는 입장이 되고 나니, 그때 내가 카루베를 바보취급하며 즐겼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야시키에게 앞으로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인가 하고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바보취급 당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고도 고쳐 생각하며 점점 야시키에게 주의를 기울여갔다.
그런데 야시키는 야시키대로 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이후 거의 나와는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너무 서둘러 궁지로 몰아버리면 자칫 그를 놓쳐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 가능한 한 느긋하게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람의 눈이란 것은 신기하게도, 같은 인식의 높이로 서성대던 시선이 일단 마주쳐 버리면 밑바닥까지 동시에 서로를 꿰뚫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광택제로 황동을 닦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넌지시 던지며 눈빛으로는 야시키에게, 방정식을 훔쳤는지 어떤지 물었더니 야시키는 야시키대로 아직은 아니라는 듯 눈을 번득였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훔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네게 들켜버려 시간이 걸리게 생겨 큰일이라 했다. 하지만 내 방정식은 아직 오점투성이라서 훔쳐본들 아무 쓸모도 없을 거라 했더니 그렇다면 내가 보고 고쳐주겠노라 했다. 그렇게 얼마간 야시키와 나는 작업을 하며 말없이 내 머릿속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점점 우리 집 사람들 중 누구보다도 야시키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에 카루베를 유정천有頂天에까지 오르게 한 뒤 비밀을 누설하도록 만든 그의 매력이 차츰 내게로 갈아타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에서
하지만 술에 취해 있었던 건 나와 야시키 뿐만이 아니라 카루베 또한 함께 취해 있었기에 그가 그 극약을 고의로 야시키에게 마시게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좋다, 가령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술기운 속에 무의식으로 작용하여 카루베가 야시키에게 중크롬산 암모니아를 마시게 했다면, 그렇다면 야시키에게 그것을 마시게 한 건 같은 이유에서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야말로 내가 야시키를 죽이지 않았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가 있단 말인가? 카루베보다 어느 누구 보다도 항상 야시키를 두려워했던 건 바로 나였지 않은가? 그가 있는 동안 늘 그가 암실에 숨어드는 것을 가장 주시하던 것도 나였지 않은가? 아니 그것보다 내가 발견 중이던 비스무트와 규산 지르코늄 화학물에 관한 방정식을 그가 훔쳤을 거라 확신하고 언제나, 누구보다, 가장 심하게 그를 원망하고 있던 것도 나였지 않았던가? 그렇다. 어쩌면 야시키를 살해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나는 중크롬산 암모니아가 놓여있는 곳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취기가 돌기 전까지 나는 자유로워진 야시키가 내일부터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온통 그의 향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살려 두면 손해를 보는 것은 카루베보다도 내가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내 머리도 이미 주인의 머리처럼 염화철에 침식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내 자신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계의 날카로운 선단이 서서히 나를 노리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누군가 이젠 나를 대신해 나를 심판해 달라.
내가 무슨 짓을 해 왔는지, 그런 것을 내게 물어 본들 나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기계]에서
요코미츠 리히치의 [기계]는 우리 인간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회의하고 있는 심리소설이며, 일본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걸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카루베와 주인공인 '나'와 야시키는 '네임 플레이트(명찰}제조소'의 직공들이며, 이 세 명의 직공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이 '삼각관계'를 그토록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그 비극적인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는 자가 되고, 감시당하는 자가 감시하는 자가 된다. 정상인이 광인이 되고 광인이 정상인이 된다. 모든 것이 다 우연인 것이다. 나는 영리한 인간이기도 하고, 바보이기도 하다. 나는 야시키를 살해한 자이기도 하고, 살해하지 않은 자이기도 하다. 우연이란 인과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무질서의 세계를 말하고, 무질서의 세계란 그 어떠한 진리도 통용될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하지만, 그러나 이 우연의 세계에서 그 우연의 쳇바퀴는 마치, 저 싸늘한 기계처럼 필연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요코미츠 리이츠의 전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누구인가라고 회의하는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를 누구인가라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고 있는 나란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가 필연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기계)에게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하게 사로잡혀 있는 어릿광대들에 지나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크미츠 리이치는 '신감각파 문학의 거장'이자 '소설의 신'이었다. 광기에 가까운 심리적 묘사를 통해서 순문학이면서도 통속문학, 즉, 진정한 순수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감각주의의 소설들을 창출해 냈다. 요코미츠 리이츠의 문학작품은 "마침내 일본 근대소설에도 이렇게 아름답고 뛰어난 작품이 출현하게 되었는가"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일본문학의 영원한 금자탑을 쌓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정신적 멘토인 요코 미츠 리이치! '소설의 신'이자 '일본문학의 거장'인 요코미츠 리이치의 대표소설작품선집!
(작가연보와 번역자의 말) 참조 요망.
목차
목차
봄은 마차를 타고ㆍㆍ19
옥체御身 ㆍㆍ43
머리 또는 배ㆍㆍ75
미 소ㆍㆍ85
나폴레옹과 쇠버짐ㆍㆍ139
마르크스의 심판ㆍㆍ161
기계ㆍㆍ191
작가 연보ㆍㆍ233
옮긴이의 글ㆍㆍ239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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