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의 정치이념(동학네오클래식 12)
천도교청우당론 당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이념투쟁기, 사상의 춘추전국시대인 해방정국(1945~1950) 시기에 정립된 천도교의 정치이념 서적인 『천도교의 정치이념』, 『당지』, 『천도교청우당론』을 각각 현대어로 편역하였다. 천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정치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청우당”의 이론가들이 남북 각지에서 모여 만든 최고의 천도교의 정치 이념서이자 동학의 사상과 진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 및 미래사회의 비전을 담고 있으며, 오늘의 시점으로 읽어도 우리 사회가 지향할 새로운 정치 사회 문화 체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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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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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이념투쟁기, 사상의 춘추전국시대인 해방정국(1945~1950) 시기에 정립된 천도교의 정치이념 서적인 『천도교의 정치이념』, 『당지』, 『천도교청우당론』을 각각 현대어로 편역하였다. 천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정치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청우당"의 이론가들이 남북 각지에서 모여 만든 최고의 천도교의 정치 이념서이자 동학의 사상과 진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 및 미래사회의 비전을 담고 있으며, 오늘의 시점으로 읽어도 우리 사회가 지향할 새로운 정치 사회 문화 체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동학네오클래식 제12권.
■ 출판사 서평
"사람이 곧 한울이다"와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라"
인내천(人乃天)과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대표되는 동학의 진리와 사상은 한낱 이상적인 종교이념에 불과한 것인가? 역사 이래로 '이상향'을 꿈꾸는 종교가 그것을 현실 가운데서 '실현'하고자 '운동'을 일으키는 경우 대부분의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동학의 경우도 1894년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은 결국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낸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명제는 한낱 종교적 신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도그마에 불과한가? 동학은 훗날 '천도교'라는 근대적 교단 종교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그 영육(靈肉)은 여전히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후천개벽'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이상주의 철학이며, 그런 점에서 과연 동학의 '인내천' '사인여천' 이념은 어떻게 우리 삶에서 현실화되는지 그 로드맵이 궁금해진다.
이런 점에서 해방정국 시기(1945~1950) 천도교청우당의 정치 활동은 민족 자주의 이상적 통일민주국가를 수립하고, 동학의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표출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기 ? 해방 정국
1945년 8월 15일,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공간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어쩌면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의 장이었다. 일제에의 부역자(친일파) 문제를 해결하고(반민특위), 정치이념이 백가쟁명하는 가운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한반도는 물론, 세계가 겪어 온 근대문명과 역사의 오류들을 적극 참조하는 가운데,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특히, 창도 이래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지상의 과제로 설정하고, 동학농민혁명, 3·1독립운동, 6·10만세운동과 신문화운동, 민족유일당(신간회) 운동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한민족 문명국가 수립을 추구해 왔던 동학(천도교)의 정치운동 지도자들은 이 해방정국에서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과 동학사상의 진수를 총망라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비전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단순히 '이론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북에서는 김일성이 이끄는 노동당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었던 '천도교청우당'의 실질적인 당원 학습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남에서는 당당한 정치단체[政黨]의 일원으로서 미군정 당국에 제출한 건국이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시기
실제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그러한 기회의 국면은 사실 우리 민족에게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족진영은 좌와 우는 물론 중도와 그 밖에 수많은 갈래들로 나뉘었고, 외세는 그리고 패전국인 일본조차도 한반도에 독립된 자주적 통일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적대감, 배타성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며 살인과 테러가 난무하던 해방정국이었지만, 공산주의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이념적 스펙트럼을 모두 반영하면서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에,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영도해 온 당시의 이론가, 실천가들은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절정에 다달아 있었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념적이 차원이나 현실적인 차원 모두 최고의 비전을 담아내고자 경쟁했던 이 시기에 나온 이 이념서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다시, 동학이 꿈꾸는 세상!
당시의 국가 건설 비전은 천도교청우당의 4개 강령에 집약되어 있다.
(1) 민족자주의 이상적 민주국가 건설을 기(期)함 ? 신민족주의의 구현
(2) 사인여천의 정신에 맞는 새 윤리 수립을 기함 ? 삼경[敬天 敬人 敬物]의 실현
(3) 동귀일체의 신생활에 터한 신경제 제도 실현을 기함 ? 공공시설 및 토지국유화
(4) 국민개로제(國民皆勞制)로써 일상 보국의 철저를 기함 ? 일자리 창출, 노동의 신성화
또한 당시 청우당이 제시한 국가 체제 가운데, '신민주주의'의 초석으로서의 '인민의 권리'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법률상 평등 (2)정치 경제 문화 사회 생활 전 영역에 참여권 (3)평등한 선거, 피선거권 (4)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 연구 시위 파업의 자유 (5)신체의 자유 (6)거주와 이전의 자유 (7)서신 비밀의 자유 (8)재산 사유의 권리 (9)육체적 정신적 보호를 받을 권리 (10)초등교육의 국가 부담 (11)청원 소송의 권리
다른 한편으로, 청우당의 건국이념은 '민주정치, 민주경제, 민주문화'라는 '신삼민주의(新三民主義)'라는 말로도 요약할 수 있는데, 예컨대 민주경제란 생산력 담당자(노동자, 농민)가 생산수단(공장,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경계에 구애되지 않는 당시의 이념풍토 속에서, 동학사상의 만민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제안된 경제이념이다. 물론 이러한 '급진적' 이상주의로 인하여 1948년 이후 천도교청우당은 '좌경세력'으로 낙인찍혀 남한/미군적 당국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비운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동학농민혁명(1894)이나 제국주의 체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피동적 과제 수행을 우선해야 했던 3·1독립운동과 달리 현대적인 실천과 정치의 공간에서 펼쳐낸 동학 천도교(청우당)의 "신분(계급) 타파의 사회질서, 공정배분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경제질서, 진정한 문화개벽의 달성, 사인여천의 윤리 구현" 등을 목표로 한 천도교청우당의 정치이념은 '오래된 미래로서' 한반도 통일과 통일 이후 시대의 비전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가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제1장 천도교의 정치사상과 사회적 근거
제2장 천도교의 정치사상과 이론적 근거
제3장 천도교의 정치운동사와 그 의의
제4장 천도교청우당의 출현과 그 의의
제5장 천도교의 건국이념
제6장 천도교청우당의 부활과 그 정치적 진로
제2부 당지
제1장 교회와 당의 관계
제2장 천도교의 종지·강령·목적
제3장 당강령 주해
제4장 수양문답
해제 1 / 해제 2
제3부 천도교청우당론
제1장 서론
제2장 천도교청우당의 토대
제3장 천도교청우당의 본질
제4장 천도교청우당의 목적
제5장 천도교청우당의 이념
제6장 천도교청우당의 강령
제7장 천도교청우당의 당면 정책
제8장 천도교청우당의 역사적 경험과 현 단계의 바른 정치노선
제9장 천도교청우당원의 의무
해제 / 천도교청우당, 새로운 세계를 기획하다 __임형진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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