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상실의 시대, 서로의 풍경이 되다(AI시대, 환대철학의 확장)
Regular price
$22.47
Sale price
Regular price
Shipping calculated at checkout.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초연결 시대, 우리는 왜 갈수록 외로운가?
-밥상에서 AI까지, 환대 철학의 확장
신자유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효율과 성과로 환산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타자를 경쟁자로 만들고 관계를 거래로 바꾼다. 과거 규율사회에서 나를 억압하는 권력자는 눈에 보이는 타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체가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내부로 옮겨왔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시작한다. 채찍을 든 감독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결정해서 일한다고 믿기에 이를 폭력이라 느끼지 못한다. 곧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노예다.
우리는 불편한 사람을 지우고 차단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나와 취향이 같거나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채웠다. 그런데 더 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점점 더 외로운가?
타자는 낯설어서 불편하다. 그리고 낯설어서 설렌다. 그런데 불편함과 설렘은 사실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러니 불편함을 밀어낼 때 우리는 기쁨이 들어올 문도 함께 닫는 셈이다.
그렇다면 밀어낸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밀어낸 타자를 다시 맞이하는 일, 저자는 그것을 환대라 부른다. 환대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더 놓고, 평상에서 한 뼘 자리를 옮겨 앉는 일처럼, 끝내 알 수 없는 사람 곁에서 계속 깨어 있는 것. 그렇게 내가 누군가의 풍경이 되고, 누군가가 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서구적 사유의 환대를 한국적 맥락으로 확장 심화시킨 역작,
『타자 상실의 시대, 서로의 풍경이 되다』!
김현경의 『사람, 조건, 환대』가 사회적 성원권으로서의 환대를 서술하고 있다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타자가 추방된 현실을 냉정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자도 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사실 우리에게는 품앗이와 두레가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라는 테두리다. '우리'라는 테두리에 속하면 한국인만의 따스한 정(情)이 있지만, 그 테두리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가가 문제다. 저자는 뜻밖의 자리에서 답을 찾는다.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지만, 누구도 내쫓지 않는 편의점과 커피숍, 밥상 공동체, 자전거와 유모차와 취객이 부딪치며 지나가는 경의선숲길. 매끄럽지 않아서 오히려 환대가 되는 자리들이다.
게다가 원혼의 한마저 환대로 풀리는 과정으로 읽어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죽은 자들의 귀환으로 다시 읽는 한강의 문학. 이것도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이다. 서구적 사유의 언어로 내려진 진단을 저자는, 한국적 맥락으로 확장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숨 쉬는 환대의 풍경을 복원한다!-품앗이에서 편의점까지
앞서 품앗이와 두레를 거론하며 '우리'라는 테두리에 갖힌 한국인의 정(情)을 지적했는데, 이는 레비나스의 무조건적인 환대와 정반대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조건을 넓혀가는 환대의 모습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냄비에 여러 숟가락이 들어가는 밥상 공동체, 평상에 한 뼘 자리를 내주는 일, 사회적 무주의(어빙 고프만)가 지켜지는 카페나 편의점,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위해 문을 대신 열어주는 것, 매끄러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추며 가까운 이웃과 대화하는 것 등등
한국적 전통에서는 귀신도 서양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대개 억울하거나 말 못 할 사연을 품은 존재다. 그래서 무당은 북을 두드리며, "무엇이 그리 원통한가?"라고 묻는다. 서양의 퇴마가 질서 회복을 위해 '악'을 없애고자 한다면, 한국의 굿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려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종교적 차원이 아니다. 평생을 산 노부부가 "살아보니 더 모르겠어, 그래서 재밌지"하는 말처럼 환대의 몸짓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처럼 저자는 '서로의 풍경이 되어주는 환대'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 우리 곁에 숨 쉬는 환대의 풍경을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희망이 섞인 한국적 실천을 다루고 있다.
-밥상에서 AI까지, 환대 철학의 확장
신자유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효율과 성과로 환산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타자를 경쟁자로 만들고 관계를 거래로 바꾼다. 과거 규율사회에서 나를 억압하는 권력자는 눈에 보이는 타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체가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내부로 옮겨왔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시작한다. 채찍을 든 감독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결정해서 일한다고 믿기에 이를 폭력이라 느끼지 못한다. 곧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노예다.
우리는 불편한 사람을 지우고 차단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나와 취향이 같거나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채웠다. 그런데 더 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점점 더 외로운가?
타자는 낯설어서 불편하다. 그리고 낯설어서 설렌다. 그런데 불편함과 설렘은 사실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러니 불편함을 밀어낼 때 우리는 기쁨이 들어올 문도 함께 닫는 셈이다.
그렇다면 밀어낸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밀어낸 타자를 다시 맞이하는 일, 저자는 그것을 환대라 부른다. 환대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더 놓고, 평상에서 한 뼘 자리를 옮겨 앉는 일처럼, 끝내 알 수 없는 사람 곁에서 계속 깨어 있는 것. 그렇게 내가 누군가의 풍경이 되고, 누군가가 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서구적 사유의 환대를 한국적 맥락으로 확장 심화시킨 역작,
『타자 상실의 시대, 서로의 풍경이 되다』!
김현경의 『사람, 조건, 환대』가 사회적 성원권으로서의 환대를 서술하고 있다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타자가 추방된 현실을 냉정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자도 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사실 우리에게는 품앗이와 두레가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라는 테두리다. '우리'라는 테두리에 속하면 한국인만의 따스한 정(情)이 있지만, 그 테두리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가가 문제다. 저자는 뜻밖의 자리에서 답을 찾는다.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지만, 누구도 내쫓지 않는 편의점과 커피숍, 밥상 공동체, 자전거와 유모차와 취객이 부딪치며 지나가는 경의선숲길. 매끄럽지 않아서 오히려 환대가 되는 자리들이다.
게다가 원혼의 한마저 환대로 풀리는 과정으로 읽어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죽은 자들의 귀환으로 다시 읽는 한강의 문학. 이것도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이다. 서구적 사유의 언어로 내려진 진단을 저자는, 한국적 맥락으로 확장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숨 쉬는 환대의 풍경을 복원한다!-품앗이에서 편의점까지
앞서 품앗이와 두레를 거론하며 '우리'라는 테두리에 갖힌 한국인의 정(情)을 지적했는데, 이는 레비나스의 무조건적인 환대와 정반대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조건을 넓혀가는 환대의 모습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냄비에 여러 숟가락이 들어가는 밥상 공동체, 평상에 한 뼘 자리를 내주는 일, 사회적 무주의(어빙 고프만)가 지켜지는 카페나 편의점,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위해 문을 대신 열어주는 것, 매끄러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추며 가까운 이웃과 대화하는 것 등등
한국적 전통에서는 귀신도 서양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대개 억울하거나 말 못 할 사연을 품은 존재다. 그래서 무당은 북을 두드리며, "무엇이 그리 원통한가?"라고 묻는다. 서양의 퇴마가 질서 회복을 위해 '악'을 없애고자 한다면, 한국의 굿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려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종교적 차원이 아니다. 평생을 산 노부부가 "살아보니 더 모르겠어, 그래서 재밌지"하는 말처럼 환대의 몸짓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처럼 저자는 '서로의 풍경이 되어주는 환대'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 우리 곁에 숨 쉬는 환대의 풍경을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희망이 섞인 한국적 실천을 다루고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경계인을 환대하면 도시도 환대의 풍경이 된다
진우라는 완벽한 유령-〈케이팝 데몬 헌터스〉
400년 전 조선시대 악공이었던 진우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다 귀마의 거짓에 속아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족을 버린 배신자'가 된 진우는 애도받지 못한 유령(spectre)으로 완전히 살지도 완전히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400년을 떠돌았다. 현재 그는 K-팝 아이돌로 위장하고 사람들을 공격한다.
루미는 악령을 퇴치하는 데몬 헌터다. 하지만 진우의 이야기를 듣고 진우의 과거를 들여다본 후 "너도 피해자였구나"라고 위로한다. 그 말을 들은 진우는 죽는다. 400년 동안 떠나지 못했던 곳을 비로소 떠난다. 떠나는 날 루미는 울며 진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 그 순간, 진우의 서사는 완성된다.
여기서 귀환하는 타자를 맞이하는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서양적 상상력에 의하면 유령은 질서를 교란하는 존재이므로 제거하거나 봉인하는 것, 그것뿐이다. 곧 유령에게 허락되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퇴치다. 반면 한국적 전통에서 굿은 전투가 아니라 통로이고, 유령을 몰아내거나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해원이다. 억울함을 풀어줌으로써 평화에 닿으려 한다.
애도의 윤리학, 환대의 윤리학-한강의 문학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동호가 묻는다. "형은 나를 버리고 도망쳤어." 1980년 5월 광주. 도청에 남은 소년과 살아남은 소년. 동호는 죽었고 진수는 살았다.
진수는 "형은 왜 살았어?"라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평생 답하려 애쓴다. 그리고 동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바로 환대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게 지는 무한 책임이다. 결국 한강이 보여준 죽은 자의 환대가 산 자의 환대로 이어진다. 죽은 자를 제대로 애도하는 사람이, 산자를 제대로 환대하는 법이다.
우리가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도시의 풍경이 우리를 만든다.
세상의 풍경은 경계인들이 만든다. 왜냐면 두 세계가 만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경계인으로는 청소년, 이방인, 실직자를 들 수 있다. 청소년은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사이에 서 있다. 이 이중적 시선에서 새로운 언어가 자라나고 새로운 문화가 싹튼다. 이민자가 있는 곳에서는 두 세계는 처음으로 서로 타자로 만난다. 그것이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힘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회의 자산이며,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환대해야 할 존재다.
경계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환대다. 타자에 대한 환대다. 실직된 순간 우리 모두 경계인이 될 수 있다. 이때 경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여기 있어도 된다'는 따뜻한 환대다.
도시는 우리를 닮는다. 우리가 경계인을 환대하면 도시도 환대의 풍경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만드는 작은 선택들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환대의 건축을 향하여-망치를 든 신부
2021년 상파울루의 시 당국은 노숙인들이 고가도로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잠을 자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뾰족한 돌들을 설치하였다. 그러자 줄리우 란셀로티 신부는 망치를 들었다. 이 사건은 브라질 전국으로 번졌다.
노숙인들의 대부 란셀로티 신부는 스파이크, 경사진 바닥, 불편하게 설계된 좌석들 등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러자 2023년, 브라질 연방의회는 세계 최초로 적대적 건축 금지법을 통과시켰다.(가장 원초적인 환대) 한편 2018년 프랑스 리옹과 2021년 보스턴에서도 시민들이 공공 벤치의 팔걸이를 직접 뜯어내는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 도시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나 여기 앉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발견한 미시적 환대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를 말했고,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은 다른 류의 환대다. 한 번 서울을 가보면 다시 가고 싶어진다는 중국의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생겨난 서울병(首?病)이랄까,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이 말한 시민적 무주의(civil inattention) 곧 도시인의 무언의 예의가 지켜지는 곳이다.
첫째, 그것은 평가 없는 인정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직업이 무언지 묻지 않지만, 당신이 이 도시의 일부임을 인정해준다.
둘째, 그것은 거리를 둔 배려다. 엘리베이터에서 층 버튼을 대신 눌러주거나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처럼 도움을 주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셋째, 그것은 부담 없는 친절이다. 곧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친절이다.
이런 미시적 환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가볍고 짧고 이름 없는 환대가 도시의 결을 만들기 때문이다.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구속하지 않으며, 도움을 주면서도 관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레비나스의 질문-"나를 살인하지 말라"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과부, 고아, 이방인"이며, 윤리적으로 "가장 높은 자들"이다. 타인의 얼굴은 말한다. "너는 살인하지 말라." 레비나스는 타자를 무시하거나 대상화하고, 나의 범주로 환원하는 것, 그 모든 폭력을 일종의 살인이라 했으며, 타자에게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과부, 고아, 이방인"은 누구인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5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5%이고, 다문화 가정 학생은 16만 명으로 전체 학생의 3.3%를 차지한다.
한국 사회는 독특한 '정(情)'의 문화가 있다. 정이 들면 서로 돌본다. 하지만 이방인은 '우리'가 아니며, 정을 나눌 대상이 아니다. 레비나스의 무조건적 책임과 한국의 조건적 '정(情)'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또 한국의 서열 문화도 걸림돌이다. 나이, 학력, 직업, 출신 지역에 따라 위계가 정해져 있다. 이방인의 위치는, 백인 영어 강사가 높고, 동남아 노동자는 낮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높음'과 정반대다.
레비나스도 말한다. 타자가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타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성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방인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조는 혈통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반복했다. 유전병이 축적되었고, 순혈주의는 가문을 멸망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치타는 약 1만 년 전 개체수가 급감하는 유전적 병목현상을 겪었고, 살아남은 소수에서 모든 치타가 번식했다. 결과적으로 치타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반대로 열대우림의 생태계를 보면 1헥타르에 수백 종의 나무가 자란다. 한 종이 질병에 걸려도 전체 숲은 영향받지 않는다. 다양성은 복원력(resilience)을 만든다. 1845년 단일 품종 감자만 재배하던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이 돌았다. 1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전체 인구의 25%가 사라졌다. 1492년 스페인이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한 후 금융, 의학, 과학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이들이 떠났다. 결국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반대로 이들을 받아들인 네덜란드와 오스만 제국은 번영했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살길이다. 한국인의 DNA는 북방 유목민, 남방 농경민, 해양 민족 등 다양한 집단의 혼합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수많은 한국인은 해외에서, 중국의 조선족 200만, 구소련의 고려인 50만, 일본의 재일교포 60만, 미국의 한인 250만이 이방인으로 살았다. 이 역사적 기억이 우리 안에 있다. K-culture의 성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BTS음악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다. 미국 힙합, 유럽 일렉트로닉, 일본 아이돌 문화를 흡수하고 재창조했다. 결국 순수성이 아니라 혼종성이 한국 문화의 강점이 된 셈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타자 없이 불가능하다
AI는 내가 원할 때 있고, 원하지 않을 때는 없으며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편한 관계는 없다. 그러나 타자는 나를 예측 불가능하게 해 불편하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기쁘다. 왜냐면 불편함과 기쁨은 같은 원천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원천을 막으면 둘 다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설렘을 주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오직 타자로부터 온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나를 놀라게 하는 타자로부터.
그러면 어떻게 타자를 맞이하며, 서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AI시대는 AI가 모든 것을 처리해준다. 그러므로 AI가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더 귀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불편한 타자와의 연대이고, 만남이고, 설렘이고, 기쁨이다. 결국 인간의 연대는 AGI 시대에 오히려 더 귀해진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당신이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며 당신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어떤 AI도 대체할 수 없다. 이것들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
결국 기쁨은 타자가 있어야만 온다. AGI 시대에도, 그 다음 시대에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풍경이 된다.
진우라는 완벽한 유령-〈케이팝 데몬 헌터스〉
400년 전 조선시대 악공이었던 진우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다 귀마의 거짓에 속아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족을 버린 배신자'가 된 진우는 애도받지 못한 유령(spectre)으로 완전히 살지도 완전히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400년을 떠돌았다. 현재 그는 K-팝 아이돌로 위장하고 사람들을 공격한다.
루미는 악령을 퇴치하는 데몬 헌터다. 하지만 진우의 이야기를 듣고 진우의 과거를 들여다본 후 "너도 피해자였구나"라고 위로한다. 그 말을 들은 진우는 죽는다. 400년 동안 떠나지 못했던 곳을 비로소 떠난다. 떠나는 날 루미는 울며 진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 그 순간, 진우의 서사는 완성된다.
여기서 귀환하는 타자를 맞이하는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서양적 상상력에 의하면 유령은 질서를 교란하는 존재이므로 제거하거나 봉인하는 것, 그것뿐이다. 곧 유령에게 허락되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퇴치다. 반면 한국적 전통에서 굿은 전투가 아니라 통로이고, 유령을 몰아내거나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해원이다. 억울함을 풀어줌으로써 평화에 닿으려 한다.
애도의 윤리학, 환대의 윤리학-한강의 문학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동호가 묻는다. "형은 나를 버리고 도망쳤어." 1980년 5월 광주. 도청에 남은 소년과 살아남은 소년. 동호는 죽었고 진수는 살았다.
진수는 "형은 왜 살았어?"라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평생 답하려 애쓴다. 그리고 동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바로 환대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게 지는 무한 책임이다. 결국 한강이 보여준 죽은 자의 환대가 산 자의 환대로 이어진다. 죽은 자를 제대로 애도하는 사람이, 산자를 제대로 환대하는 법이다.
우리가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도시의 풍경이 우리를 만든다.
세상의 풍경은 경계인들이 만든다. 왜냐면 두 세계가 만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경계인으로는 청소년, 이방인, 실직자를 들 수 있다. 청소년은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사이에 서 있다. 이 이중적 시선에서 새로운 언어가 자라나고 새로운 문화가 싹튼다. 이민자가 있는 곳에서는 두 세계는 처음으로 서로 타자로 만난다. 그것이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힘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회의 자산이며,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환대해야 할 존재다.
경계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환대다. 타자에 대한 환대다. 실직된 순간 우리 모두 경계인이 될 수 있다. 이때 경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여기 있어도 된다'는 따뜻한 환대다.
도시는 우리를 닮는다. 우리가 경계인을 환대하면 도시도 환대의 풍경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만드는 작은 선택들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환대의 건축을 향하여-망치를 든 신부
2021년 상파울루의 시 당국은 노숙인들이 고가도로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잠을 자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뾰족한 돌들을 설치하였다. 그러자 줄리우 란셀로티 신부는 망치를 들었다. 이 사건은 브라질 전국으로 번졌다.
노숙인들의 대부 란셀로티 신부는 스파이크, 경사진 바닥, 불편하게 설계된 좌석들 등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러자 2023년, 브라질 연방의회는 세계 최초로 적대적 건축 금지법을 통과시켰다.(가장 원초적인 환대) 한편 2018년 프랑스 리옹과 2021년 보스턴에서도 시민들이 공공 벤치의 팔걸이를 직접 뜯어내는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 도시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나 여기 앉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발견한 미시적 환대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를 말했고,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은 다른 류의 환대다. 한 번 서울을 가보면 다시 가고 싶어진다는 중국의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생겨난 서울병(首?病)이랄까,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이 말한 시민적 무주의(civil inattention) 곧 도시인의 무언의 예의가 지켜지는 곳이다.
첫째, 그것은 평가 없는 인정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직업이 무언지 묻지 않지만, 당신이 이 도시의 일부임을 인정해준다.
둘째, 그것은 거리를 둔 배려다. 엘리베이터에서 층 버튼을 대신 눌러주거나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처럼 도움을 주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셋째, 그것은 부담 없는 친절이다. 곧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친절이다.
이런 미시적 환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가볍고 짧고 이름 없는 환대가 도시의 결을 만들기 때문이다.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구속하지 않으며, 도움을 주면서도 관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레비나스의 질문-"나를 살인하지 말라"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과부, 고아, 이방인"이며, 윤리적으로 "가장 높은 자들"이다. 타인의 얼굴은 말한다. "너는 살인하지 말라." 레비나스는 타자를 무시하거나 대상화하고, 나의 범주로 환원하는 것, 그 모든 폭력을 일종의 살인이라 했으며, 타자에게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과부, 고아, 이방인"은 누구인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5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5%이고, 다문화 가정 학생은 16만 명으로 전체 학생의 3.3%를 차지한다.
한국 사회는 독특한 '정(情)'의 문화가 있다. 정이 들면 서로 돌본다. 하지만 이방인은 '우리'가 아니며, 정을 나눌 대상이 아니다. 레비나스의 무조건적 책임과 한국의 조건적 '정(情)'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또 한국의 서열 문화도 걸림돌이다. 나이, 학력, 직업, 출신 지역에 따라 위계가 정해져 있다. 이방인의 위치는, 백인 영어 강사가 높고, 동남아 노동자는 낮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높음'과 정반대다.
레비나스도 말한다. 타자가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타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성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방인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조는 혈통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반복했다. 유전병이 축적되었고, 순혈주의는 가문을 멸망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치타는 약 1만 년 전 개체수가 급감하는 유전적 병목현상을 겪었고, 살아남은 소수에서 모든 치타가 번식했다. 결과적으로 치타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반대로 열대우림의 생태계를 보면 1헥타르에 수백 종의 나무가 자란다. 한 종이 질병에 걸려도 전체 숲은 영향받지 않는다. 다양성은 복원력(resilience)을 만든다. 1845년 단일 품종 감자만 재배하던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이 돌았다. 1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전체 인구의 25%가 사라졌다. 1492년 스페인이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한 후 금융, 의학, 과학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이들이 떠났다. 결국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반대로 이들을 받아들인 네덜란드와 오스만 제국은 번영했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살길이다. 한국인의 DNA는 북방 유목민, 남방 농경민, 해양 민족 등 다양한 집단의 혼합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수많은 한국인은 해외에서, 중국의 조선족 200만, 구소련의 고려인 50만, 일본의 재일교포 60만, 미국의 한인 250만이 이방인으로 살았다. 이 역사적 기억이 우리 안에 있다. K-culture의 성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BTS음악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다. 미국 힙합, 유럽 일렉트로닉, 일본 아이돌 문화를 흡수하고 재창조했다. 결국 순수성이 아니라 혼종성이 한국 문화의 강점이 된 셈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타자 없이 불가능하다
AI는 내가 원할 때 있고, 원하지 않을 때는 없으며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편한 관계는 없다. 그러나 타자는 나를 예측 불가능하게 해 불편하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기쁘다. 왜냐면 불편함과 기쁨은 같은 원천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원천을 막으면 둘 다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설렘을 주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오직 타자로부터 온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나를 놀라게 하는 타자로부터.
그러면 어떻게 타자를 맞이하며, 서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AI시대는 AI가 모든 것을 처리해준다. 그러므로 AI가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더 귀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불편한 타자와의 연대이고, 만남이고, 설렘이고, 기쁨이다. 결국 인간의 연대는 AGI 시대에 오히려 더 귀해진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당신이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며 당신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어떤 AI도 대체할 수 없다. 이것들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
결국 기쁨은 타자가 있어야만 온다. AGI 시대에도, 그 다음 시대에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풍경이 된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 타자 상실의 시대
제1부 타자의 시선 - 거울 앞에 서다
1장 | 거울 없이는 볼 수 없는 얼굴
2장 | 스크린 너머 얼굴들
3장 | 인정 투쟁, 혹은 사랑이라는 전쟁
제2부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다-불가능성의 미학
4장 | 얼굴은 사건이다
5장 | 번역되지 않는 마음들
6장 | 차이의 반복 vs 동일성의 지옥
제3부 타자의 추방
7장 | 타자상실시대-불편함의 추방
8장 | 매끄러운 표면의 폭력
9장 | 추방의 대가
제4부 타자의 귀환
10장 | 타자의 귀환 - 케이팝 데몬 헌터스
11장 | 죽은 자들의 귀환 - 한강의 문학
12장 | 문턱을 넘어서
13장 | 귀환한 자들의 기쁨
제5부 환대, 서로의 풍경이 되다
14장 | 밥상 공동체 -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15장 | 거주의 윤리학 - 머무를 권리
16장 | 서울병 - 의도하지 않은 환대
17장 | 레드카펫을 깔다 - 너라는 존재의 입장(入場)
제6부 환대의 지평
18장 | 불가능한 환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장 | 더 정교한 유한함-AGI라는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에필로그 - 당신도 누군가의 풍경입니다
제1부 타자의 시선 - 거울 앞에 서다
1장 | 거울 없이는 볼 수 없는 얼굴
2장 | 스크린 너머 얼굴들
3장 | 인정 투쟁, 혹은 사랑이라는 전쟁
제2부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다-불가능성의 미학
4장 | 얼굴은 사건이다
5장 | 번역되지 않는 마음들
6장 | 차이의 반복 vs 동일성의 지옥
제3부 타자의 추방
7장 | 타자상실시대-불편함의 추방
8장 | 매끄러운 표면의 폭력
9장 | 추방의 대가
제4부 타자의 귀환
10장 | 타자의 귀환 - 케이팝 데몬 헌터스
11장 | 죽은 자들의 귀환 - 한강의 문학
12장 | 문턱을 넘어서
13장 | 귀환한 자들의 기쁨
제5부 환대, 서로의 풍경이 되다
14장 | 밥상 공동체 -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15장 | 거주의 윤리학 - 머무를 권리
16장 | 서울병 - 의도하지 않은 환대
17장 | 레드카펫을 깔다 - 너라는 존재의 입장(入場)
제6부 환대의 지평
18장 | 불가능한 환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장 | 더 정교한 유한함-AGI라는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에필로그 - 당신도 누군가의 풍경입니다
저자
저자
진성섭 필명 노마드
인문학 작가이자 대중 강연자. 목회 강단에서 내려와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경계를 넘고 떠나는 삶에 끌려 스스로를 '노마드'라 부른다. 그는 어디를 가든 하나의 물음을 들고 다닌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그는 우리가 타인을 통해서만 자기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시대에, 그에게 타자는 불편함의 원인이 아니라 삶에 뜻밖의 기쁨을 데려오는 존재다. 개념을 앞세우는 대신 밥상과 평상, 엄마의 얼굴 같은 구체적 장면에서 환대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유튜브 채널 '노마드'를 운영하며 공공도서관과 여러 현장에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 『콤플렉스로 읽는 그리스신화』가 있고, 『사랑은 오해다』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인문학 작가이자 대중 강연자. 목회 강단에서 내려와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경계를 넘고 떠나는 삶에 끌려 스스로를 '노마드'라 부른다. 그는 어디를 가든 하나의 물음을 들고 다닌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그는 우리가 타인을 통해서만 자기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시대에, 그에게 타자는 불편함의 원인이 아니라 삶에 뜻밖의 기쁨을 데려오는 존재다. 개념을 앞세우는 대신 밥상과 평상, 엄마의 얼굴 같은 구체적 장면에서 환대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유튜브 채널 '노마드'를 운영하며 공공도서관과 여러 현장에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 『콤플렉스로 읽는 그리스신화』가 있고, 『사랑은 오해다』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