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묵의 처(사십편시선 14)
조재도 시집
조재도 시인의 첫 시집『공묵의 처』. 이번 시집의 특징은 “토박이말이 적어지고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다. 외로운 정서가 짙게 배여 있다는 것인데, “사막에 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 물이 없는 만큼 있을 뿐이다 / 그 없는 만큼 있을 뿐인 물기를 / 서로 빼앗아 가는 사막”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현실을 시인은 직시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와 목적에 따라” 모든 존재자들을 상품화하고 존재들의 관계를 단절하여 “사뭇 외로움에 휩쓸리게 하는” 현실 말이다. 각각의 존재자들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으면서도 함께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단절되어 살아가는 현실을 시인은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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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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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도 시인이 마주한 無人境의 세계『공묵의 처』출간
그가 마주한 '無人境의 세계
그동안 시집『그 나라』,『백제시편』,『좋은 날에 우는 사람』등을 통해 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한 단아한 서정시를 선보여 온 조재도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공묵의 처』를 작은숲 출판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은 그가 그동안 몸담고 있던 학교를 떠나 낸 첫 시집인데 "선생 하는 일이 /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아서 / 에라 모르겠다 / 손 놓아 버린 후"(「백수론」) 최근까지 시인의 근황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49편의 정서를 아우르는 말은 '無人境'이라 할 수 있다. 무인경이란 무엇인가? 어떤 경지인가? 사람의 경지, 사람의 자취가 사라진 경지?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그이 시를 보면 사람 '있음과 없음'의 경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집에서 여름은 혼자 살았다
여름이
하늘로부터 비를 데려와
흙담 옆구리를 무너뜨렸다
그 구멍 틈새로
생쥐가 까만 눈을 내밀다 사라졌다
여름은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라
그 집 헛간 구석에 던져놓은 폐목에
헝겊 쪼가리 같은 버섯을 키우고
마루턱까지 차오르게 명아주를 키웠다
빈집을 짜개놓는
매미소리
녹음을 가득 안은 여름이
그 집을 온통 휘저어 풀물 들여 놓았다
그냥 두면
한 백년 꾸벅꾸벅 졸기만 할 것 같은 그 집
능소화 마구 뻗어 오른 대문간
오줌 누는 나에게
한 세월 거저먹으려는 건달 같은 여름이
내년에도 다시 와 공으로 산다 한다
- 「여름」전문
시집 맨 앞에 실린「여름」이라는 시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폐가가 되어가는 집의 여름 풍경이다. 예전의 그의 시라면 농가에서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곡절 많은 갑남을녀가 등장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살려 쓴 토속어가 조재도 시인만의 진풍경을 이루어 그가 민중적 리얼리즘을 성취하는데 크나큰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그가 그려 보이는 세계는 그 같은 '사람'이 빠진, 무인경의 세계이다.
따라서 무인경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이자 인간의 세계이면서 투명한 이슬방울의 세계요, 가을 날 낙엽이 창문을 두드리며 가는 외로움의 세계이다. 그는 무인경의 세계를 초봄, 장난감, 낮달, 아코디언, 밤하늘 기러기 소리들을 불러들여 곡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금씩 흘러나온 밤의 시간을 통해 마주한 세계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으나 예산 문제 때문에 다 수용할 수 없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요즘이다.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히고 경분에 지친 학교 현장을 뒤로 하고 필연성을 따라 자신의 본성을 발현할 만한, 덧걸리지 않고 온전히 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다른 자리"로 들어가고 싶은 것은 이미 명예퇴직을 한 조재도 시인이나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들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 자리로 먼저 들어간 시인(그는 2012년 8월에 명퇴했다.)이 만난 세상은 무엇일까?
시집 뒤표지에 작지만 눈에 띄는 한 줄이 있다. "조금씩 흘러나온 밤의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존재'를 찾고 시를 통해 존재의 맛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는 이를 "존재의 풍미(風味)"라고 표현했다.
어머니가 뒤울 안 나무 아래 풀을 매고 있자 시인이 "뭘 거기까지 매고 그러세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어머니는 "조금 있으면 꽃 떨어질 텐디, 꽃자리 봐 주면 좋지 않간?"이라고 대답한다. 시인은 그 장면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만나고, 그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임을 깨닫는다. 그 꽃자리, 어머니 손길이 다녀간 자리에서 "환한 그늘에 소복히 떨어질" 감꽃과 앵두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 꽃자리 / 꽃 질 자리 / 꽃을 피우는 건 나무의 마음이지만 / 꽃 질 자리 봐 주는 건 / 사람의 마음"이라는 시구에서 "다른 존재들 하나하나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는 마음 씀씀이를 따라가는 손길이 미치는 자리가 얼마나 너르고 깊은지 꽃자리 보는 마음에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가 학교를 떠나 어쩌면 백수의 삶을 자처하면서 조금씩 밤의 시간들을 통해 만난 세계는 꽃자리 봐주는 어머니의 마음, "자신을 포함한 다른 존재자들과 더불어 천연의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아름다운 맛과 멋을 표현하는 귀거래사"이다. 떨어지는 꽃과 시인 자신이 같은 존재라는 인식에서 조재도 시인의 '서정'이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 뿌리를 둔 조재도의 '서정'
권덕하 시인은 해설에서 그를 "신동엽이나 박용래의 시를 읽을 때 불현 듯 살아나는 옛 고향의 푸서릿길에서 서성이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또 "산그늘 내린 것처럼 옛 시인의 실존을 사뭇 그리워하던 마음에 단박" 불어오는 산들바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중 하나이며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이끄는 길라잡이"라고 표현한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토박이말이 적어지고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다. 외로운 정서가 짙게 배여 있다는 것인데, "사막에 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 물이 없는 만큼 있을 뿐이다 / 그 없는 만큼 있을 뿐인 물기를 / 서로 빼앗아 가는 사막"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현실을 시인은 직시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와 목적에 따라" 모든 존재자들을 상품화하고 존재들의 관계를 단절하여 "사뭇 외로움에 휩쓸리게 하는" 현실 말이다. 각각의 존재자들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으면서도 함께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단절되어 살아가는 현실을 시인은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목차
여름
꽃자리
선량한 밤
모자
無色
장남감
늑대
지렁이
언감생심
초봄
투명
낮달
業
원시성
유령
絶命
흙집
여행
대안학교
정진규 1
정진규 2
눈꽃 환상
화창한 날
높이뛰기 선수들
저수지가
장마 뒤
저녁 산
찬물 한 모금
해 진 후
새벽 종소리
흰 눈이 내려 쌓인 그 나라는
밥 한 끼
외로운 사람
백수론
목숨
영원
사랑의 무중력자
사막
타이어
튀밥
슬픔의 위안
선한 마음
하얀 개
꽃과 나무
낙관주의자
비밀
아름다운 날
힘이 있다면
공묵의 처
해설 | 존재의 風味·권덕하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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