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
동북아 시대를 맞아, 우리의 광개토대왕릉비를 말한다
2014년 9월 29일(음력)은 광개토대왕의 능비가 건립된 지 16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양력 9월 29일에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하였고,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국민적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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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다시 우리 광개토대왕릉비를 말한다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는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의 재위 22년간(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 아들 장수왕(長壽王)이 즉위 2년(414)에 국내성(中國 吉林省 集安縣 太王鄕 太王村)에 세운 거대한 기념비이다. 이 비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고구려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가히 엄청나다 할 것이다.
특히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문의 내용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글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흐려져 판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일본 제국주의가 비문의 일부 내용을 조작, 왜곡하는 바람에 역사적 사실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 해독은 대왕릉비가 1880년 무렵 재발견된 이래 100년 넘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깊은 역사적 인식과 연구가 요구되는 비문인데 지금도 일본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모두가 일제가 저질러 놓은 조작, 왜곡의 악영향이 아닌가 한다.
2014년 9월 29일(음력)은 광개토대왕의 능비가 건립된 지 16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양력 9월 29일에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하였고,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국민적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28년 전에 출간되었던 「광개토대왕릉비 신연구」를 개정하여 「광개토대왕릉비」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을 기해 출간된 한글본 새 책이 광개토대왕과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일반의 이해와 관심을 배가시키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왜비(倭碑)가 아니라 고구려비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왜(고대일본)가 4,5세기에 백제, 신라를 지배하였고, 심지어 낙동강 유역 가야 지역에 왜의 식민지격인 이른바 임나일본부를 두어 한반도 남부를 통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이로 인하여 일본제국주의의 군부와 어용학자들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탈취하려는 일본 명치군부의 조선정벌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이것이 19세기 말의 이른바 '정한론'의 역사적인 구실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군부의 역사왜곡은 오늘날까지 일본 초,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나 대학의 역사교재에 통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한국사 조작, 왜곡사건의 발단은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스파이 사까와 중위가 가짜 탁본인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에 가지고 가서 육군참모본부와 육군대학 어용학자들에 의해 수년에 걸쳐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정리 작업하면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고의적으로 왜의 전공인 것처럼 왜에 유리하도록 조작, 왜곡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념비
오늘의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하는 정책을 펴면서 우리의 고대역사를 자기 내의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고, 일본은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인위적으로 왜곡하여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일 역사문제에서 제일 많이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광개토대왕릉비 문제이다. 일본인들은 19세기말 광개토대왕릉비를 인위적인 어떤 힘을 가해 비문을 왜곡되게 해석한 이래 지난 1세기 넘도록 고대일본인 왜(倭)가 조선반도를 지배해 왔다는 주장을 계속 펴오고 있다. 현재도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물론 대학의 역사교재에도 여전히 한국고대사의 왜곡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각종 역사교과서는 광개토대왕의 활약상이나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서술이 아예 빠져 있지 않으면 겨우 몇 줄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의 역사를 마치 중국과 일본이 그들의 역사인 것처럼 우리보다 더 활발하게 연구하고 국가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역설적인 우리의 역사인식이 정말로 통탄할 일이다.
이에 본서에서는 과거 일본인들에 의해 광개토대왕릉비에 역사에는 없는 어떤 인위적인 조작(造作)이 가했는지 여러 정황과 증거자료들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규명과 역사 정립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논거를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광개토대왕릉비의 훈적비(勳績碑)가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기념비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기념비라는 것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면 한다.
책속으로 추가
필자가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광개토대왕릉비 연구에 있어서 앞으로는 석문에만 의존하는 연구보다는 한ㆍ중ㆍ일 3국 간의 현지 실물에 의한 과학적인 조사ㆍ분석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현재의 형편으로는 탁본에 의한 금석학적(金石學的) 조사ㆍ분석에 의한 연구가 당면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 역시 성야양작이 "일본과 대한민국 연구 교류가 보다 왕성하게 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고 천명한 대로 성사되기를 기구하면서, 아울러 현재 보관자인 중국 당국은 직접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학자들에게 하루바삐 마음놓고 참관하고 조사ㆍ연구할 수 있도록 마땅히 배려해야만 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제대로 만족스러울 만한 답변을 하지 못한 점은 물론 어느 곳은 미처 언급하지 못한 점도 많다고 생각되나 후일을 기약하고자 한다.
-291쪽
광개토대왕릉비문은 우리나라 고대사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북아사의 귀중한 금석문 사료임은 말할나위없다. 이렇듯 귀중한 사적이 일찍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만주에서 세인의 관심 밖에 있다가 약 100여 년 전에 일본제국주의 육군참모본부 첩자들에 의하여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동북아 국제질서에 중대한 사건의 계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일본제국주의 군부와 관학에 의하여 능비문의 판독 작업을 하면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고의로 왜[지금의 일본]에 유리하도록 조작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광개토대왕의 재위 원년인 영락 1년[391] 이른바 신묘년기사 중에서 왜에 관한 기사를 삽입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倭"자와 "來渡海"자를 틀리게 새겨 고대일본[왜(倭)]의 역사에 유리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둘째, 영락 10년[400]의 경자년기사에서 "新羅城 城倭寇大潰城"이라고 하는 기사를 "新羅城 城倭滿倭潰城 "이라고 하여 마치 '倭'가 신라 전역에 침입하여 이들 '倭'가 신라를 궤멸시킨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왕건군이 소개한 1981년 채탁된 주운대 탁본에는 분명히 "新羅 城倭寇大潰城 "이라고 탁본되어 있다. 이는 해안 지방의 신라성에 왔던 왜구가 신라〔군〕과 고구려 원군에 의하여 크게 궤멸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주내경신의 쌍구가묵본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로써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왜가 4, 5세기에 백제ㆍ신라를 지배하였고, 심지어 낙동강 유역에 왜의 식민지격인 이른바 임나일본부를 두어 한반도를 통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이로 인하여 일본제국주의의 군부와 관학자들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탈취하는 역사적인 구실을 제공하였다. 이것이 19세기 말의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의 명분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 왜곡이 오늘날까지 일본 국사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322~323쪽
목차
목차
개정증보판 간행사
《제1부》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와 문자고석(文字考釋)
제1장 광개토대왕릉비의 건립과 재발견
-제1절 개설
-제2절 광개토대왕릉비에 관한 전설
-제3절 광개토대왕릉비의 재발견
-제4절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의 초전(初傳)
제2장 광개토대왕릉비문의 특징
-제1절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시대배경과 그 상관문제
-제2절 광개토대왕릉비 문자의 필획과 그 운용법
-제3절 광개토대왕릉비 문자의 구조
-제4절 광개토대왕릉비의 세계성
-제5절 광개토대왕릉비의 예술적 가치
-제6절 광개토대왕릉비의 역사적 가치
-제7절 소결(小結)
제3장 광개토대왕릉비문의 고석(考釋)
-제1절 고구려의 개국과 광개토대왕의 생애
-제2절 광개토대왕의 훈적
-제3절 수묘인 제도
《제2부》 광개토대왕릉비문의 문제점
제1장 이른바 신묘년 기사(辛卯年)의 위작(僞作)'왜(倭)'자고(字考)
-제1절 머리글
-제2절 이른바 신묘년기사(辛卯年記事)와 그 영향
-제3절 이른바 신묘년기사에 대한 회의(懷疑)
-제4절 역사상으로 본 '倭'의 실체
-제5절 서법상으로 본 '倭'자의 허상과 진상
-제6절 "來渡海"자와 '破'자에 대한 고증
-제7절 "破百殘倭寇新羅"설
-제8절 맺는 글
제2장 위작'倭'자고 재론
-제1절 머리글
-제2절 "倭"자의 출현과 삭제
-제3절 "倭寇"자의 원상설(原傷說)에 대하여
-제4절 맺는 글
제3장 이른바 경자년(庚子年)기사의 "위작(僞作) 왜'만왜'자고(倭'滿倭'潰考)"
-제1절 머리글
-제2절 이른바 신묘년기사에 대한 해석
-제3절 이른바 경자년기사의 "위작 倭'滿倭'潰"고
-제4절 맺는 글
부록
-부록1. 廣開土大王紀의 對外關係記事
-부록2. 주내경신 쌍구가묵본
-부록3. 국립중앙도서관 탁본
-부록4. 서울대 규정각 탁본
-부록5. 주운태 탁본
-부록6.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부사년도서관 원석 탁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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