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여 사랑방 작은 인문학
이 책은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의 담론과 강연을 필요에 의해 정리한 것인데, 선생의 그런 학문 정신과 자세를 인연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선생의 심혈인 글을 찾아보면 되겠거니와, 이 책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2015년 올해는 선생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선생을 사모하고 그리는 이들이 이 책의 간행으로써 그것을 기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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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은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정년을 맞고, 이후 명예교수로서 연구와 탐사에 정진하다가 10년 전 돌아가신 동양사학자 ㆍ 한국학자 ㆍ 불교학자 ㆍ 서지학자 ㆍ 강화학자 ㆍ 민족학자이다. 일찍이 연희대학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제자로서 조선조 우리 학문의 정신인 강화학(江華學)을 만나고 그 성격과 틀을 바로 세웠다. 그의 학문의 정신과 방법은 방대하고 정밀하거니와, 그의 주옥같은 논저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년 후, 선생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모임인 사랑방이 형성되었다. 1990년부터 6년에 걸쳐 선생은 초기 선종사의 바른 법맥과 신라 ㆍ 고려 불교의 성격 규명을 위해 중국 학술 탐사에 나서고, 이어 그 정신을 계승한 근대 한국 불교의 경허당 연구에 매진하였다. 서여사랑방에서는 선생의 연구 주제를 자연스럽게 토론하였고, 선생은 그와 관련하여 세 차례의 강연을 가졌다. 이 책은 그런 것을 제자 조흥윤(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이 정리한 것이다.
선생이 구도자의 자세로 탐구한 것은 우리 선(禪)불교와 강화학에서 추구하던 인간의 발견 내지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해서다. 중국 ㆍ 일본의 것과는 다른 우리 선불교의 바른 정신과 그 법맥, 의상-균여-일연-매월당-경허로 계승 ㆍ 전개된 인간에 대한 가없는 연민과 봉사의 정신, 이류중행(異類中行)의 길이 그의 주된 학문 주제였다. 그것은 강화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은 강화학 250년의 내력을 "모진 핍박과 극심한 곤궁 속에서 성취한 인간의 존엄과 그 발견의 역사"로 정리한 바 있다.
이 책의 글은 선생의 담론과 강연을 필요에 의해 정리한 것인데, 선생의 그런 학문 정신과 자세를 인연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선생의 심혈인 글을 찾아보면 되겠거니와, 이 책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2015년 올해는 선생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선생을 사모하고 그리는 이들이 이 책의 간행으로써 그것을 기념하려 한다.
목차
목차
이류중행異類中行의 실종과 그 행방…………………………………………… 017
송광사 강연: 1994년 1월 21일 | 서여西餘 선생
경허당鏡虛堂의 북귀사北歸辭… ……………………………………………………… 055
충남대 강연: 서여西餘 선생
담론 노트(서여 사랑방)……………………………………………………………………… 085
1990년 8월 1일~2003년 8월 16일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과 천학川學 | 조흥윤…………………………… 201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 약보…………………………………………………………………… 225
저자
저자
ㆍ1915년 3월 4일(음력 1월 19일)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 292번지에서 조선 고종조 승지承旨를 지낸 통정대부 민직호閔稷鎬의 삼남三男으로 출생.
ㆍ1921년 : 집에서 30리 떨어진 해남 미암산 아래의 가설家設 초당학사草堂學舍에 입학하여 한학을 익힘. 이후 서울로 전학.
ㆍ1928년 3월 : 서울 주교舟橋공립보통학교 졸업.
ㆍ1928년~1933년 :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이때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선생의 수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음.
ㆍ1939년 3월 :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 특히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에게서 큰 가르침을 받음.
ㆍ1941년 12월 : 일본 대정大正대학 문학부 사학과 졸업.
ㆍ1942년 4월 : 대정대학 사학연구실의 부수副手(현 전임강사)로 근무.
ㆍ1945년 10월~1980년 2월 :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이시기 초기에 수년 간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겸직함.
ㆍ1945년~1952년 : 문교부와 국방부의 고적보존위원회 위원 역임.
ㆍ1945년 11월 : 송석하ㆍ손진태ㆍ홍순혁ㆍ박봉석ㆍ이희승ㆍ이인영ㆍ이병도ㆍ방종현ㆍ이병기ㆍ
이홍직ㆍ김두종ㆍ이재욱ㆍ조명기 등과 한국서지학회를 창설하고 간사로 활동.
ㆍ1952년 5월~1954년 10월 : 연희대학교 도서관장.
ㆍ1954년 10월~1955년 9월 : 미국 하버드대학 연경학사燕京學舍에서 객원 연구원
으로 연구. 이때 중국의 호적胡適 선생을 만남.
ㆍ1955년 11월~1963년 9월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이때 국내최초로
도서관학과를 연세대학교에 설립함.
ㆍ1960년~1964년 :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ㆍ1961년 12월~1962년 7월 :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ㆍ1970년 : 1년간 재차 하버드대학 연경학사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연구.
ㆍ1974년 4월~1977년 4월 :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 소장.
ㆍ1976년 5월 :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예루살렘 입성기入城記》 간행.
ㆍ1977년 5월~1980년 2월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원장.
ㆍ1980년 : 정년 퇴직 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ㆍ1985년 5월 : 구상ㆍ김광균ㆍ김중업ㆍ김태길ㆍ백선기ㆍ송지영ㆍ이성범ㆍ이용희ㆍ이주호
ㆍ이한기ㆍ정비석ㆍ차주환ㆍ최호진ㆍ황순원ㆍ김원룡 등과 회귀回歸 동인회를 결성
하고 동인지《回歸》를 간행하며 활동.
ㆍ1988년 3월~1989년 2월 : 국학연구원의 다산茶山 강좌를 맡아 강화학江華學 강론.
ㆍ1990년 여름 : 「초기 선종사禪宗史와 신라불교의 성격 규명」을 주제로 제 1차 촉도장정蜀道長征, 즉 중국 현지 학술탐사 실시. 이기간 중 8월 18일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사천의 학계 중진들 앞에서 「호적 선생과 당대 선종사상의 몇 가지 문제」를 강연. 이것이 뒤에 「사천강단四川講壇」이란 논문으로 발표됨. 이후 1995년 여름까지 전체 6차에 걸쳐 중국 학술탐사 진행함.
ㆍ1994년 10월 : 《강화학 최후의 광경》ㆍ《사천강단》이 우반又半에서 출판됨.
ㆍ1995년 : 위암학술상 수상.
ㆍ1995년 : 용재학술상 수상.
ㆍ1999년 7월~2005년 2월 :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ㆍ2005년 2월 1일 : 돌아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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