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프로젝트(세계해탈을 위한)
《붓다 프로젝트》는 붓다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해법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2600여 년 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아 붓다가 된 싯다르타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서원이 담겨져 있다. 이 책에 실린 글 하나하나는 우리 스스로 붓다라는 등불을 쥐고 번뇌에서 행복으로, 허무와 불안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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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번에 민족사에서 출간한 《붓다 프로젝트》는 고따마 싯다르타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그의 가족과 제자들과의 에피소드가 감동적으로 그려지는 동시에, 붓다 당시의 사회적 모순, 갈등을 풀어가는 붓다식 해결 방법 등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대인들의 욕망, 현대 사회의 모순 등을 비판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적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의 초점은 후자에 있다. 저자 원담 스님은 약 2600년 전에 살았던 고따마 싯다르타라는 '인간'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제까지 붓다의 생애를 주제로 한 책들이 주로 붓다 개인의 수행이나 붓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면, 《붓다 프로젝트》는 붓다의 눈으로 본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의식 혁명을 이룬 혁명가 붓다가 이끄는 행복의 길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 우리 현실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붓다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가르침을 프리드리히 니체, 칼 마르크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알렉시스 토크빌 등 근현대 정치 · 철학가들의 사상과 견주고, 붓다의 삶(보살의 삶)을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가의 삶과 비교한다. 또 영화 <매트릭스>, <설국열차> 등을 예로 들어 자본주의 체제와 그 안에 사는 인간들의 삶을 통찰하기도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온갖 욕망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떠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은 사회적 조건에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둘을 함께 가꿔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세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피를 말리고, 돈 있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을 제멋대로 다루며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은 법을 뛰어넘고 힘없는 사람은 짓밟히는 사회 아닙니까? 인정이 사라지고 나눔과 섬김이 없는 사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은 사회,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배척하며 해하려는 사회가 아닙니까? 더 심각한 건 종교가 사회를 분열시키고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예의염치가 없지요. 2600년 전 싯다르타가 살았던 시대도 지금과 상황은 비슷하였기에 그가 살아갔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영감과 지혜를 줍니다." ―저자 인터뷰 중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자. 먹고살기는 더 힘들어 지고,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정이 사라지고, 권력의 맛에 취한 종교조차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더 갖고, 무엇을 더 이루고, 얼마나 더 많이 성공해야 이 허무와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 그냥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돈, 권력, 명예, 지식 등 무조건 남보다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한가?
저자 원담 스님은 "절대 다수가 불행한데 어찌 자기 홀로 행복할 수 있으랴? 타인의 불행에 포위된 자기만의 행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p.357)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담 스님이 지금의 현실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담 스님은 지금이 새로운 희망의 길을 찾아야 할 때, 우리 스스로 붓다가 되는 실험을 할 때라고 선언한다. '붓다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지극한 평화와 행복을 선물할 것이라고 말한다.
"내 의식에 깃든 탐욕, 공격성, 무지가 소멸할 때 나의 존재 자체가 평화가 된다. 그리고 그 평화는 타인을 감화시켜 평화로 인도한다."(p.268)
《붓다 프로젝트》는 붓다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해법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2600여 년 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아 붓다가 된 싯다르타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서원이 담겨져 있다. 이 책에 실린 글 하나하나는 우리 스스로 붓다라는 등불을 쥐고 번뇌에서 행복으로, 허무와 불안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 책은 한때 민중의 모든 고통과 운명을 짊어진 것 같은 책임감에 짓눌려 방황하던 사회 운동가가 출가하여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에센스로서 좌절과 원망, 허무와 불안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아트만 프로젝트 vs 붓다 프로젝트
'붓다 프로젝트'란 말은 켄 윌버의 '아트만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자 원담 스님이 만들어낸 말이다.
켄 윌버(Ken Wilber, 1949~)는 이 시대의 석학 가운데 한 사람으로, 23세에 《의식의 스펙트럼-닫힌 의식의 문을 여는 스펙트럼 심리학》을 저술한 이래 자아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란 분야를 개척하여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무경계》, 《모든 것의 역사》 등 한국에서도 그의 책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켄 윌버가 만든 용어인 '아트만 프로젝트'는 아트만(atman), 다른 말로 '영혼soul', '자아self', '에고ego'가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시공간을 무대로 인위적인 것을 창조해내는 활동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건립한 문명과 역사가 전부 아트만의 투사이며 아트만의 사업 즉 '아트만 프로젝트'의 결과이다. 그것은 '자기보존 욕구에 갇힌 에고'가 에고를 무한히 확장하여 '신적인 나神我', '우주적인 나梵我', '영원불사의 나'를 누리고자 하는 활동이었다. 전 세계의 자본주의화, 군사적 패권주의, 불평등의 심화, 환경파괴 등은 모두 이 아트만 프로젝트의 결과이다.
'붓다 프로젝트'는 이런 아트만 프로젝트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에고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들이 아트만 프로젝트의 결과라면, 붓다 프로젝트는 에고가 사라질 때완성되는 고요한 평화의 경지를 추구한다. 에고를 해체(무아無我An-atman)함으로써 갈등과 초조, 애씀과 자기소모, 헛된 열정과 투쟁이 완전히 사라진 고요하고 청량한 지복을 위한 실험이 바로 '붓다 프로젝트'의 의미이다.
요컨대 '아트만 프로젝트'가 '자기(ego)'라는 울타리와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라면, '붓다 프로젝트'는 '자기(ego)'를 훌쩍 뛰어넘어 내 삶의 주인이자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깨달은 전사, 붓다가 되는 실험! 붓다 프로젝트!
우리는 무엇을 더 갖고, 무엇을 더 이루고, 얼마나 더 많이 성공해야 이 허무와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싯다르타, 이 사람을 보라! 그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다 가졌었다. 강인한 몸과 수려한 외모, 고귀한 가문과 혈통, 최고의 학문과 무예, 권력과 재력. 그런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선망하고 희구해 마지않는 모든 것을 다 소유했던 그는 정들고 안락했던 영토를 떠나 전인미답의 불모지로 탈주한다. 세계를 넘어서, 체제를 넘어서, 영토를 버리고 정신의 변경지대로 달려갔다. 그는 정신적인 파이오니아Pioneer(개척자)이며, 깨달은 전사다. 그와 함께 인류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인류가 함께 깨어나기 위한 실험! 일명 '붓다프로젝트!' (머리말 중에서)
모든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 권력, 미美, 건강을 좇는다.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집을 사고, 뷰티 제품들을 산다. 더 많이 소유해야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밤낮 없이 성실하게 살아간다. 언젠가 행복해질 나를 꿈꾸며!
그런데 《붓다 프로젝트》의 저자 원담 스님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더 소유하고, 얼마나 더 일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 허무와 불안을 벗어날 수 있는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살아가지만, 갈등과 스트레스, 상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좌절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괴로워한다. 너도나도 부자, 슈퍼스타, 권력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지만 행복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여기,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간 사람이 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 년 전에 살았던 고따마 싯다르타이다. 한 왕국의 왕세자로서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었던 그는 어느 날 모든 걸 버리고 숲으로 떠나버렸다. 도대체 뭘 보고 뭘 느꼈기에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싯다르타는 어떻게 '붓다'가 되었는가?
원담 스님은 싯다르타가 품었던 질문과 그가 자신의 삶을 걸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왜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왜 어떤 사람은 죽도록 일만하고 부림을 당해야 하는가?' (……) 시대가 바뀌고 체제가 변하여도 인간 사회는 부의 불평등,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한다. (……)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관했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잡아먹히는 자연의 질서에 가슴 애린 고통을 느꼈다. 이는 범상하지 않은 징조다. 보통 사람은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보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게 자연인 걸, 동물들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할 텐데 싯다르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p.45)
'왜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왜 어떤 사람은 죽도록 일만하고 부림을 당해야 하는가?' '붓다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궁을 벗어나 농민들이 일하는 현장을 목격한 싯다르타는 왕족 신분으로 누리는 모든 안락과 편의가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서 나오는 것임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안락한 삶이 자기가 잘나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인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부조리 즉, 지배와 피지배, 빈부격차, 계급제도의 비극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성 밖으로의 외출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슬픔, 번뇌, 좌절, 고통을 모르고 살던 '온실 속 화초'가 성 밖에서 진짜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이해로는 도대체 뚫고나갈 수 없는 '백척간두 진일보'의 상황에 처한 싯다르타!
싯다르타가 성 밖에서 본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치는 장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패배적 감상에 젖거나 그냥 지나쳐버린다. 우리는 "개미 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움츠리고는, 눈앞만 보고 제 앞가림만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이런 소시민적인 무력감과 소외감 밑엔 욕구 불만과 억눌린 화, 미움과 질투와 교만이 깔려 있다."(p.378)
자기 마음이 놓인 자리를 알지 못하고, 내가 사는 세계를 바로 보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것, 답을 찾지 않는 것, 이것이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싯다르타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싯다르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라는 울타리(아트만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길을 찾았던 것(붓다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저자는 우리도 붓다처럼 느껴보고, 붓다처럼 살아보자고 권한다.
"그는 일찍부터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그리고 약육강식이란 생명 일반의 실존적 부조리를 자각했어요. '나는 왕족으로 태어난 특권을 당연한 듯이 누리며 살 수는 없다. 나는 권력의 중심에 있다. 권력은 남을 강제하고, 심하면 해칠 수도 있는 폭력을 행사한다. 모든 사람과 생명은 권력자를 두려워한다. 나는 이것을 참을 수가 없다. 왜 인간이 나면서부터 이렇게 불평등한가?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잡아먹힌다. 약육강식이란 법칙이 약자의 처지에서는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가?' 다른 생명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존재의 슬픈 운명이다. 이런 세계를 욕계欲界라 한다. 싯다르타는 생명의 보편적 고통에 대한 진실(고성제苦聖諦)에 눈떴다. '고'는 개인의 실존적인 고통이면서도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이다. 권력자로 태어나 권력의 속성을 잘 알았던 싯다르타는 부조리한 사회의 변혁은 정치적 해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회구조적인 악뿐만 아니라 생명의 보편적 고통을 해결해줄 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찾아서 출가했다.
출가수행은 자기 안의 폭력성을 정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남을 해하지 말라(불상해不傷害). 남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면 차라리 네 생명을 던져라. 모든 생명을 살려주라(방생放生). 중생에 대해 무한한 자애와 연민을 일으켜라. 남을 해하려는 일체의 악의가 사라진 마음, 생명에 대한 외경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보호하며 해탈케 하리라는 숭고한 결심(보리심)을 일으켜라.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에 참여하라. 부조리한 사회를 이 한 생에 정치적으로 완전히 해결하려 든다면 좌절하고 말리라. 모든 혁명은 배신당하고 정의로웠던 권력도 부패하고 만다. 그러기에 중생구제는 한 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정진해야 할 과제가 된다." ―저자 인터뷰 중
붓다는 자신이 만든 수행 공동체 안에서 평등과 자유, 무소유와 사랑을 실천했다. 우리도 붓다처럼 자신의 행동, 말, 마음씨로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붓다라는 등불을 의지처로 삼아!
붓다 프로젝트, 내 존재 자체가 평화가 되는 것
붓다의 길과 권력의 길은 다르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하여 도를 얻고서도 카리스마를 행사하며 정신적인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 도인행세를 하는 사람은 영적인 독재자가 되고 그의 추종자들은 절대 권력을 맹종하는 영적인 신하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흔히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하는 메시아적 열정에 복받친 사람이 자기 욕망을 다 정화하기도 전에 권능을 얻게 되면 이런 종류의 인물이 되고 만다. (p.356)
붓다를 신적인 존재로 포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붓다 자신은 '정신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늘 경계했다. 붓다는 인간을 넘어선 지고한 존재, 세상을 등진 자,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저자는 싯다르타의 고행상은 경외심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불교가 염세주의와 고행주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고행은 부처님의 일생 중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고행상으로 부처님을 상징하거나 불교를 대표하게 하는 일은 유익하지 않다. 저자는 오히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설법하시는 전법륜상을 불교의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육년 고행을 버리고 청정하고 상쾌해진 몸으로 우유죽을 맛있게 먹는 붓다가 청명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의 어루만짐으로 느꼈을 지극한 행복을 상상해보자고 한다. 이를 통해 멀리 있는 것으로만 느껴졌던 지극한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일상 속에서 언제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혁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원담 스님은 말한다. 혁명은 무력이 아니라 평화로, 분노가 아니라 관용과 용기로, 체제순응이 아니라 부정과 관조로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은 정치혁명보다 더 근원적인 혁명이며 불합리한 체제 안에서 일으킬 수 있는 내적인 혁명이다. 부조리한 세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 내 존재 자체가 평화가 되는 것, 이것이'붓다 프로젝트'의 길이다!
깨어난 마음은 가족과 주변 인간관계를 잘 살펴 부족함이나 넘침이 없이 주의를 고루 줄 수 있다. 자기 마음의 평화가 주변으로 퍼져나가 가족과 직장, 이웃과 사회를 부드럽고 윤택하게 해준다. 이것이 '붓다와 함께 깨어나기'다.(p.12)
* 책속으로 추가 *
◆'아, 세간의 모든 중생이 생존경쟁을 하면서 서로를 해하고 다투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서 이러한 모든 괴로움을 해결할 방도를 생각해야겠다.'
열세 살 소년 싯다르타는 이런 고민에 빠진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타고난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궁을 벗어나 농민들이 일하는 현장을 목격한 그는 왕족 신분으로 누리는 자기의 모든 안락과 편의가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서 나오는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내가 누리는 안락과 편안함이 타인의 수고와 희생에 의존하고 있었구나!
안락한 내 삶이 내가 잘나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타인의 수고와 희생에 의존하는 왕궁의 호사와 행복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내가 힘들면 힘들었지, 내가 죽으면 죽었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나의 생존을 구하지 않으리라.' (……) 시대가 바뀌고 체제가 변하여도 인간 사회는 부의 불평등,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한다. 사회 물정에 눈뜨는 청소년기는 사회 부조리와 정치경제 체제의 모순이 가슴을 찌르듯이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때는 반성적 자각이 눈뜨는 시기며, 부정과 반항이 싹트는 시기다. 이 시기는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이행하는 성장 과정이기에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겹친다. 싯다르타는 사회의 실상을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연을 관찰하는 예리한 눈이 깨어났다.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관했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잡아먹히는 자연의 질서에 가슴 애린 고통을 느꼈다. 이는 범상하지 않은 징조다. 보통 사람은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보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게 자연인 걸, 동물들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할 텐데 싯다르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
'왜 생명들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가? 왜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어야만 하는가? 약한 놈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강자의 말로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하는가? 왜 '내'가 꼭 살아남아야 한단 말인가? '나'말고 다른 것, 다른 사람이 살아남으면 안 되는가? 먹거나 먹히거나, 살아남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이런 긴장과 불안, 공포와 강박감을 넘어선 평화와 안심의 길은 없는가? 왜 약육강식으로만 생존이 가능하단 말인가? 생명이 서로 해하지 않고 공존하는 길은 없단 말인가?'
싯다르타는 냉혹하고 비정해 보이는 자연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pp.43-46, <잠부나무 아래서 고뇌하는 소년> 중에서)
◆싯다르타는 열세 살 나이에 사회적 부조리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리고 약육강식이란 생명일반의 실존적 부조리를 자각한다. 싯다르타가 농경제 행사에 참관했을 때 농부가 뙤약볕 아래 힘겹게 쟁기질을 하는 광경을 보고, 자신이 누리는 안락과 호사가 백성의 노고와 희생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싯다르타는 너무나 미안하여 온몸이 떨려온다. (……) 먹이 사슬에 얽매인 삶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몫을 뺏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인간의 고통은 '먹은 죄'에서 온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다른 생명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슬픈 운명이다. 이런 세계를 일러 '욕계欲界kama-loka(욕망의 세계)'라 한다.
싯다르타는 약한 자, 낮은 자, 가난한 자의 처지에 서서 세상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생명 일반의 고통에 대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훗날 이 진실을 '고성제苦聖諦'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는 개인의 실존적인 고통이면서도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다. 이는 지상에 생존하는 생명 일반의 보편적인 고통이다. 욕계에 얽매인 중생은 고통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움직일수록 더 빠져든다.
싯다르타는 권력자로 태어났고, 권력을 사용하는 법을 다 배웠기 때문에 권력이 잘못 사용되면 어떤 고통을 가져오는지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을 해치지 말라. 남을 다치게 하지 말라. 남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 너의 몸짓 하나, 너의 말 한 마디, 너의 한 생각으로도 남을 해치지 말라. 생명을 죽이지 말라.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해치지 말고 죽이지 말라.' 이것이 바로 '남을 해하지 말라,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상처를 주지 말라'는 불상해不傷害법이다. 나아가 남에게 두려움을 주는 몸짓이나 말이나 생각조차도 일으키지 말라. 남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면 차라리 네 생명을 던져라. 네가 죽어 타인을 살릴 수 있다면 네 생명을 내려놓으라. 나아가 모든 생명을 살려주어라(방생放生). 죽게 된 상황에 빠진 생명을 구해주어라. 사람을 널리 이익 되게 하라. 생명에게 이익을 베풀어라.(pp.47-50, <남을 해치지 말라-싯다르타의 눈뜸> 중에서)
◆ "무엇보다도 먼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사람에게 가해지는 불의에 대해서 항상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다."
이것은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 쿠바의 공산주의자, 혁명가)가 사형에 처해지기 전에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다.
"모든 생명의 고통을 대신 받으리라. 내가 편안할 때 중생의 고통을 잊지 않고, 고통의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리라."
이것은 대승불교도의 발원이다. 체 게바라와 대승불교도, 이 둘은 같은 마음인가, 아닌가? 같다면 어디까지 같고, 다르다면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불교의 지혜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자각하여 그 해결을 찾는 데 주력하며, 사회구조적 각성은 인간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고통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정확히 인식할 때 고통을 없애는 사회적 실천이 가능하다. 불교수행자이며 학자인 데이비드 로이(David Loy, 1947~)는 탐욕, 분노, 무지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군산복합체', '상업미디어'의 제도화된 삼독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다국적 기업의 군산복합체가 세계인민의 빈곤과 부조리의 원인이 된다고 본 체 게바라의 관점은 공감할 만하다. 그런데 그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게릴라 투쟁을 통한 체제혁명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는 평화와 정의로운 공동체의 도래를 위해서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불자는 이런 문제 해결 방식에는 공감할 수 없다. 불자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 사용을 반대한다. 싯다르타가 선택한 문제해결 방식을 보라.
싯다르타도 게바라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 싯다르타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민중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경제 체제와 계급제도를 아예 떠났다. 왕위를 버리고 가족과 사회를 떠났다. 그는 탈체제적으로 살아가기로 작정했다. 반강권주의 · 무정부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의식주는 탁발과 타인의 호의에 의존하여 해결했다. 이것은 탈자본주의적counter-capitalistic 삶의 방식이다.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대중이 이런 나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여, 밥을 주고 옷과 거처를 제공해준다면 나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난 이 세상을 깨끗이 떠나리라. 인민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삶(정신적으로든지 물질적으로든지)은 자진해서 사라지는 것만 못하리라.'
세속의 이해관계에서 멀리 떠났기에, 그는 체제의 부조리와 세상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고의 근원적인 원인을 사회경제 체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깃든 맹목적 생존의지와 이기적 충동, 탐욕과 분노, 무지에서 찾았다. 이를 통해 무력혁명을 통한 체제전복이 아닌 방식으로, 인간이 완벽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의식의 혁명이며 체제 안에서 일으킬 수 있는 내적인 혁명이다. 혁명은 무력이 아니라 평화로, 분노가 아니라 관용과 용기로, 체제순응이 아니라 부정과 관조로 이룰 수 있다.(pp.266-269, <싯다르타와 체 게바라는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까?> 중에서)
목차
목차
1장 붓다프로젝트의 시작
인생반조와 세계반조
부부는 소울 메이트다-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전생
2장 이 사람을 보라!
싯다르타의 탄생-보디삿따의 하강
잠부나무 아래서 고뇌하는 소년
남을 해치지 말라-싯다르타의 눈뜸
열반은 허무주의인가, 현실로 체험하는 경지인가?
싯다르타는 어떻게 선정에 들었는가?-호흡 알아차리기 수행
암탉은 달걀이 또 다른 달걀을 만드는 수단이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살 길을 찾아라!
싯다르타가 설국열차를 타면 어떻게 될까?
행복한 몸에 행복한 정신이 깃드는 법-수자따의 공양
싯다르타의 마지막 유혹
오, 집짓는 자여, 그대가 보였다-싯다르타의 깨달음
성도 후 49일-연기게송
법을 설하옵소서!-하느님의 부탁
3장 세상이 불타고 있다
싯다르타는 매트릭스를 어떻게 해체할까?
귀 있는 자 들어라-초전법륜경과 무아상경
야사여, 잔치는 끝났다-길을 찾아라!
쾌락을 완전히 만족시킨다는 것이 가능한가?
가라, 세상 속으로-전도선언
세상이 불타고 있다-산상설법
4장 고통의 세계에서 함께 벗어나자
최초의 절 죽림정사
오라, 비구여!-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귀의
고결한 출가자여, 은처승은 부처님 몸을 파먹는 벌레다!
마하깟사빠의 출가인연
영웅의 귀환-야소다라와의 재회
호수로 돌아온 백조-양들의 침묵을 깨우다
난다의 출가-제 이마의 화장이 마르기 전에 돌아오세요
고락등가苦樂等價 법칙-괴로운 만큼 즐겁고, 즐거운 만큼 괴롭다
부처님의 유산상속-라훌라의 출가
내 법은 바다와 같다-우빨리의 출가
잠자지 않은 눈-아누룻다
아누룻다의 50년 장좌불와
영원한 보시-수닷따 장자
기원정사의 건립
5장 진리가 그대를 치유하리라
왕에게 주는 조언-꼬살라 국왕에게
바른 식사正飮에 대한 가르침
진리대로 되라고 기도하라
꽃잎은 찬란해도 지고야 마는 것-숫도다나왕의 임종
비구니 승가의 탄생
미모로 한몫 보려 하지 말라-케마왕비
악기를 연주하듯 수행하라-소나꼴리위사 비구
부부는 서로에게 무문관이다-노부부의 인연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다
6장 이웃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니
로히니 강의 물싸움
싯다르타와 체게바라는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까?
부처님의 반전시위-사꺄족의 멸망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꼬삼비 승가의 불화
승가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법
깨달은 사람은 가르침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복 짓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행복과 파멸의 문-천신에게 하신 설법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끼사고따미의 경우
7장 절대반지를 거부하라
아난다의 갸륵한 섬김
진리의 어머니 위사카-우먼파워의 보시
고요한 사자후-아란야행자 사리뿟따
살인자도 깨달을 수 있다-앙굴리말라
제자야,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니디와 쭐라빤타까
데와닷따의 반역
절대권력자의 참회-아자따삿뚜의 경우
붓다는 왜 반지의 제왕이 되기를 거부했는가?
8장 붓다의 마지막 여로
피안을 향하여 마지막 빚을 갚다-사리뿟따의 죽음
좋은 정치는 어떤 것인가?-왓지연맹의 경우
무상한 세월의 힘에도 파괴되지 않는 보물은?-암바빨리의 진심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웨살리성
자신의 전부를 다 주시고 가신 임-쭌다의 공양
두 그루 살라 나무 아래서-법을 보는 것이 진정한 공양이다
아난다여, 너와 함께 하여 행복했노라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마지막 제자 수밧다
무엇이든 물어라-붓다의 마지막 말씀
부처님, 불 들어갑니다!
9장 세계해탈을 향해
승가의 반석을 놓다-칠엽굴 결집
아난다 존자의 경행
여시아문-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세계불교의 소통과 실용주의적 접근-일미법을 향하여
저자
저자
이 시절은 삶에서 가장 번뇌가 많았던 때였다. 두 어깨에 민중의 모든 고통과 운명을 짊어진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번민했고,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괴로웠다. 그러면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부처님의 방식으로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83년 군 제대 후 송광사로 입산 출가. 영명사永明寺에서 은거하던 정법正法 스님을 만나 사제관계를 맺고 '원담圓潭(둥근 연못)'이란 법호를 받았다. 해인사에서 사미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90년 5월 지리산 칠불사 운상선원에서 3년 결사에 들어갔다. 2년째 되던 해에 심장수술로 결사를 중단, 치료를 마친 후 의성 고운사 고금당선원에서 수행을 재개, 100일 용맹정진을 마쳤다. 1994년 백양사 운문선원 서옹西翁 선사 문하에서 참선 수행을 하며, '부처님은 어떤 수행으로 깨달았나?'라는 원초적 질문을 품고 초기불교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후 인도, 미얀마, 티베트, 미국 등지를 돌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의성 수정사水淨寺 주지를 거쳐 현재 도과선원(道果禪院, 진주시 동성동 11-14 죽향다원 3층)의 선원장으로 활동하며 붓다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기에 힘쓰고 있다. 도과선원을 통해 불교와 다도, 인문학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지성의 확장을 꿈꾸며 시민연대를 이루어 나가고며, 쇠퇴해가는 한국불교에 새로운 불꽃을 일으키고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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