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원익, 다스림과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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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安民) 이외의 일들은 전부 군더더기” - 오리 이원익의 『다스림과 섬김의 行』
오리 이원익 정승은 당대 문인들로부터 ‘온화하고 공손하며 공로가 많음에도 겸손한 덕을 갖춘 재상’으로 추앙받았다. 문신 출신임에도 왜란 중에 조선 최초의 도체찰사(전시에 각 도의 군권과 행정권을 총괄한 전군 총사령관)를 역임하면서, 무신과 의병 출신의 여러 장수들에 대한 이해와 지휘 통제에도 능란하였으며, 당파 간 이권 다툼과 정쟁의 각축 가운데에서도 선조 이후 광해(북인집권)와 인조(서인집권)에 걸쳐 초대 영의정으로 선임되었다. 이원익은 남4도 도체찰사로서 선조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개 백성은 오직 국가의 근본이니, 조정에서는 이 점을 절급한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 밖의 일들은 전부 군더더기(餘外)일 뿐입니다.”
이원익은 출신과 지위를 초탈하여 스스로 검약하고 신실하게 살았으며, 하늘처럼 넓은 도량이 있었고, 백성을 위해 부모처럼 자애롭게 살았으므로 당대와 후대의 임금과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원익의 군더더기 없는 안민 정책, 실리를 취하는 대외 교섭, 차별 없는 인재 등용, 전쟁의 대비와 국방력의 유지 강화(이순신을 처형으로부터 구한 것 포함), 철저한 공익 추구, 대동법의 최초 시행, 그리고 최고 권위인 임금과의 도유우불(都兪??) 등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없었던 “다스림과 섬김의 行”인 정신 유산이다.
이 책을 읽는 지금의 지도층과 국민들이 오리 이원익 정승의 학문과 사상을 알게 되어 세상의 변화 속에서 아무 탈 없이 살게 되는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또한, 이원익의 가려진 역사를 밝히 알려 전 국민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나라에 이원익의 “다스림과 섬김의 行”의 정신이 국민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는 배경 지식으로 삼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순신 구명과 군사지도” - 오리 이원익이 왜란(倭亂)을 승리로 이끌다
이원익이 왜란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여정은 안주목사(安州牧使) 부임으로 시작된다. 선조와 명량상우(明良相遇)의 군신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다. 당시 피폐했던 안주는 유능한 중신조차 기피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원익은 발령 즉시 안주로 가서 구민(救民)의 선정을 베풀어, 안주는 물론 모든 관서지방 민심을 다시 모이게 한다. 이로써 선조는 이원익의 일처리와 인품을 알게 되고 이후 임진왜란 발발 시 그를 중용한다. 이원익은 무슨 일을 맡더라도 지식과 정보에 따라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일념으로 하였다.
평양 탈환을 앞두고 이여송은 조선과 명 간의 군사동원 문제를 두고 출병하지 않고 대기만 하고 있었을 때, 이원익은 요동으로 달려가 제독을 만난다. 이원익이 제독에게 말 대신 전한 것은, 몇 달간 주도면밀하게 현지 지형에 맞춘 군사작전지도를 직접 작성하여 봉투 안에 넣고 밀봉하여 조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592년 12월 29일 평양에 도착한 조-명 연합군은 1593년 1월 6일에 공격을 개시하고, 1월 8일 적이 전원 후퇴하자 평양성에 입성하여 탈환에 성공하게 된다.
정유재란이 발발했을 때 선조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이순신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이순신의 처분을 두고 서인과 동인 간의 당쟁으로 번지게 된다. 이로써 이순신의 운명을 결정하던 어전회의에서 유성룡 마저 이순신의 처형을 막지 못하고 물러난다. 체찰사 이원익은 한산도에서 함께 한 이순신의 사람됨과 능력을 누구보다 실질적으로 알고 있었고, 홀로 이순신의 처형을 결연히 막아낸다. 이순신은 모진 문초를 당하지만 처형은 모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원익의 결단과 실행이 없었다면, 당시 이원익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정유재란의 승리도, 조선도 지금 어디로 가있었을지 몰랐을 충격적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우의정겸도체찰사(右議政兼都體察使)” - 선조와 이원익의 『명량상우(明良相遇)』와 『도유우불(都兪??)』
이원익이 공직자로 입문할 때 과거시험 주제인 명량상우(明良相遇)와 도유우불(都兪??)은 그의 평생의 기본자세로 실천된다. 도유우불(都兪??)은 임금과 신하가 동심합덕(同心合德)한 속에 서로 더불어 토론하는 말로 쓰이는 감탄사로서, 상하 관계를 떠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기록을 보면 이원익은 선조-광해-인조 임금과 함께 민유방본(民惟邦本)을, 국난 극복을, 그리고 대동(大同)을 구현하는데 평생을 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주목사 부임으로 시작된 이원익과 선조의 명량상우는 서로 흉금을 터놓고 생각을 주고받는 군신 관계가 된다. 이 책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선조와 이원익의 대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두 사람은 상황 상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번 대화를 하게 되면 그 내용과 깊이, 형제애 같은 교감까지, 상호간 도유우불을 전개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조는 이원익을 우의정 발령과 함께 전시 상황의 전권(남4도도체찰사)까지 겸하여 맡기고, 장수 문제는 물론, 병력, 전략, 군량과 정보까지 모두 이원익과 함께 상황을 판단한다. 명-일간의 외교문제 역시 좌의정 이원익을 통해서 판단하였고, 정쟁과 불신 가운데 이순신의 처형을 피하게 되는 결정까지... 선조와 이원익은 도유우불로써 정유년의 길었던 왜란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조선을 구하는 역사를 함께 써나간다.
이원익의 애민애국(愛民愛國)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탕평(蕩平)과 온 세상이 화평하게 되는 대동(大同)을 제도화하는 실천과, 균형과 중용(中庸)의 공과 사(公與私) 정신으로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배경에는 이원익이 선조와 교감하며 보여준 “도유우불의 행”이 있었기에 실현이 된 것이다.
“나의 마음부터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물자를 아끼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오리 이원익 정승, 그의 삶을 따르는 맑고 밝은 인생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완평(完平), 모든 일은 때에 따라 마음을 다하여” - 이원익의 치세어록(治世語錄)
이원익은 선조와의 대화에서, 그의 문집에, 그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평생의 신념과 행동원칙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원익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民惟邦本), 공은 공, 사는 사(公與私), 씀씀이를 절제하고 사람을 사랑하라(節用而愛人) 와 같이, 삶의 중심에 백성의 안녕을 두고 그 실천을 위하여 스스로 검약하며 공과 사에 대한 분명히 구분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 근본인 인심에 달렸다(天下萬事 以人心爲本)고 하는 그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너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원익 정승이 유고한 후 후대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밝은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고(不動心), 이로써 임금을 섬겨 서로 신뢰하였고, 신뢰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따랐으며, 이렇게 국가의 대란을 극복하였다. 모두가 그를 어진상국(賢相)이라 불렀으니, 정의를 실천하고 대의로 정성스럽게 살았다. 말과 행동이 일관되어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의 먼 훗날을 위한 장구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오랜 재상 생활에도 공사가 분명했고 검약했으며 조야는 물론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손자 이수약이 연풍현의 수령으로 부임할 때 써 준 글에서 이원익은 그의 절제와 중심을 뚜렷하게 표명하고 있다. 공인(公人)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정보(천하의 실정, 일의 실정)의 중요성과, 상벌의 원칙을 가르친다.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이익을 도모하는 것보다 중요하며, 한 가지 일을 덜어내는 것이 하나의 일을 새로 하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음을 알린다. 노련한 관리와 연로한 사람에게 널리 물어서 인정에 합하도록 가르치며, 거만을 부리지 않아야 민심을 잡을 수 있음도 가르친다. 무엇보다, 백성은 마땅히 어루만져 돌봐야 하고, 관속을 대하는 것 또한 각박하게 하지 말기를 당부하며, 마땅히 때를 따라 마음을 다하도록 이른다. 이 모든 金言은 그의 16자 유훈 “無怨於人 無惡於己 志行上方 分福下比”에 응축되어 전해진다.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 - 선조의 사서삼경 언해 작업에 대하여
나랏일을 근심하고 충성을 다하는 절개(憂國忠節)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 모두에게 필수 덕목이다. 애국심은 그 사람의 쌓은 업적 또는 하는 말이나 글을 통해서 접하고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는 시종일관되지 않거나 언행일치하지 않을 경우 신뢰를 잃게 되고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원익의 시와 글을 보면서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으며, 과연 그가 시종일관 언행일치한 인물이었음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많은 임금이 한문의 언해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중 선조의 노력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이었다. 선조는 1574년부터 1606년까지 무려 32년간 줄기차게 언해 작업을 추진하면서 백성이 쉽게 사서오경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위대한 문화 창달의 대업을 이루었다. 나아가 백성들에 알릴 교서는 물론, 절망으로부터 빠른 극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고공가(雇工歌)」와 같이, 백성과의 직접 교류를 원할 때 한문이 아닌 言文(한글)으로 소통하였다. 선조의 「고공가」에 대한 이원익의 답시인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는, ‘고공가’에서 선조가 애타게 찾고 있는 신하의 자세를 명철하게 가르치고 있다.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臣下)에게 마누라(宣祖)의 말을 왜 듣지 않느냐고 꾸중하는 한편, 마누라(선조)에게는 어른 종(영의정 이원익)을 믿으라고 풍유(諷諭)한다. 선조 승하 시 쓴 ‘녹양이 천만산들’ 시조에서는 그 어떤 사모가(思慕歌)보다도 더 애절하게 이원익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420여 년 전 한글로 작시된 이 시들을 노래하면서, 이원익이 선조를 대하면서 품게 된 그에 대한 존경과 신뢰, 동생처럼 아끼는 임금에게 충성하고픈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애절하게 슬퍼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느낄 수 있다. 현세에 와서도 이러한 마음은 여전하기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부르며 새로운 희망을 찾는 동력으로 삼고, 오리 이원익 정승을 현세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나누고 싶다.
오리 이원익 정승은 당대 문인들로부터 ‘온화하고 공손하며 공로가 많음에도 겸손한 덕을 갖춘 재상’으로 추앙받았다. 문신 출신임에도 왜란 중에 조선 최초의 도체찰사(전시에 각 도의 군권과 행정권을 총괄한 전군 총사령관)를 역임하면서, 무신과 의병 출신의 여러 장수들에 대한 이해와 지휘 통제에도 능란하였으며, 당파 간 이권 다툼과 정쟁의 각축 가운데에서도 선조 이후 광해(북인집권)와 인조(서인집권)에 걸쳐 초대 영의정으로 선임되었다. 이원익은 남4도 도체찰사로서 선조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개 백성은 오직 국가의 근본이니, 조정에서는 이 점을 절급한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 밖의 일들은 전부 군더더기(餘外)일 뿐입니다.”
이원익은 출신과 지위를 초탈하여 스스로 검약하고 신실하게 살았으며, 하늘처럼 넓은 도량이 있었고, 백성을 위해 부모처럼 자애롭게 살았으므로 당대와 후대의 임금과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원익의 군더더기 없는 안민 정책, 실리를 취하는 대외 교섭, 차별 없는 인재 등용, 전쟁의 대비와 국방력의 유지 강화(이순신을 처형으로부터 구한 것 포함), 철저한 공익 추구, 대동법의 최초 시행, 그리고 최고 권위인 임금과의 도유우불(都兪??) 등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없었던 “다스림과 섬김의 行”인 정신 유산이다.
이 책을 읽는 지금의 지도층과 국민들이 오리 이원익 정승의 학문과 사상을 알게 되어 세상의 변화 속에서 아무 탈 없이 살게 되는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또한, 이원익의 가려진 역사를 밝히 알려 전 국민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나라에 이원익의 “다스림과 섬김의 行”의 정신이 국민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는 배경 지식으로 삼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순신 구명과 군사지도” - 오리 이원익이 왜란(倭亂)을 승리로 이끌다
이원익이 왜란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여정은 안주목사(安州牧使) 부임으로 시작된다. 선조와 명량상우(明良相遇)의 군신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다. 당시 피폐했던 안주는 유능한 중신조차 기피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원익은 발령 즉시 안주로 가서 구민(救民)의 선정을 베풀어, 안주는 물론 모든 관서지방 민심을 다시 모이게 한다. 이로써 선조는 이원익의 일처리와 인품을 알게 되고 이후 임진왜란 발발 시 그를 중용한다. 이원익은 무슨 일을 맡더라도 지식과 정보에 따라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일념으로 하였다.
평양 탈환을 앞두고 이여송은 조선과 명 간의 군사동원 문제를 두고 출병하지 않고 대기만 하고 있었을 때, 이원익은 요동으로 달려가 제독을 만난다. 이원익이 제독에게 말 대신 전한 것은, 몇 달간 주도면밀하게 현지 지형에 맞춘 군사작전지도를 직접 작성하여 봉투 안에 넣고 밀봉하여 조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592년 12월 29일 평양에 도착한 조-명 연합군은 1593년 1월 6일에 공격을 개시하고, 1월 8일 적이 전원 후퇴하자 평양성에 입성하여 탈환에 성공하게 된다.
정유재란이 발발했을 때 선조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이순신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이순신의 처분을 두고 서인과 동인 간의 당쟁으로 번지게 된다. 이로써 이순신의 운명을 결정하던 어전회의에서 유성룡 마저 이순신의 처형을 막지 못하고 물러난다. 체찰사 이원익은 한산도에서 함께 한 이순신의 사람됨과 능력을 누구보다 실질적으로 알고 있었고, 홀로 이순신의 처형을 결연히 막아낸다. 이순신은 모진 문초를 당하지만 처형은 모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원익의 결단과 실행이 없었다면, 당시 이원익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정유재란의 승리도, 조선도 지금 어디로 가있었을지 몰랐을 충격적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우의정겸도체찰사(右議政兼都體察使)” - 선조와 이원익의 『명량상우(明良相遇)』와 『도유우불(都兪??)』
이원익이 공직자로 입문할 때 과거시험 주제인 명량상우(明良相遇)와 도유우불(都兪??)은 그의 평생의 기본자세로 실천된다. 도유우불(都兪??)은 임금과 신하가 동심합덕(同心合德)한 속에 서로 더불어 토론하는 말로 쓰이는 감탄사로서, 상하 관계를 떠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기록을 보면 이원익은 선조-광해-인조 임금과 함께 민유방본(民惟邦本)을, 국난 극복을, 그리고 대동(大同)을 구현하는데 평생을 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주목사 부임으로 시작된 이원익과 선조의 명량상우는 서로 흉금을 터놓고 생각을 주고받는 군신 관계가 된다. 이 책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선조와 이원익의 대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두 사람은 상황 상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번 대화를 하게 되면 그 내용과 깊이, 형제애 같은 교감까지, 상호간 도유우불을 전개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조는 이원익을 우의정 발령과 함께 전시 상황의 전권(남4도도체찰사)까지 겸하여 맡기고, 장수 문제는 물론, 병력, 전략, 군량과 정보까지 모두 이원익과 함께 상황을 판단한다. 명-일간의 외교문제 역시 좌의정 이원익을 통해서 판단하였고, 정쟁과 불신 가운데 이순신의 처형을 피하게 되는 결정까지... 선조와 이원익은 도유우불로써 정유년의 길었던 왜란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조선을 구하는 역사를 함께 써나간다.
이원익의 애민애국(愛民愛國)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탕평(蕩平)과 온 세상이 화평하게 되는 대동(大同)을 제도화하는 실천과, 균형과 중용(中庸)의 공과 사(公與私) 정신으로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배경에는 이원익이 선조와 교감하며 보여준 “도유우불의 행”이 있었기에 실현이 된 것이다.
“나의 마음부터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물자를 아끼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오리 이원익 정승, 그의 삶을 따르는 맑고 밝은 인생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완평(完平), 모든 일은 때에 따라 마음을 다하여” - 이원익의 치세어록(治世語錄)
이원익은 선조와의 대화에서, 그의 문집에, 그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평생의 신념과 행동원칙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원익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民惟邦本), 공은 공, 사는 사(公與私), 씀씀이를 절제하고 사람을 사랑하라(節用而愛人) 와 같이, 삶의 중심에 백성의 안녕을 두고 그 실천을 위하여 스스로 검약하며 공과 사에 대한 분명히 구분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 근본인 인심에 달렸다(天下萬事 以人心爲本)고 하는 그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너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원익 정승이 유고한 후 후대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밝은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고(不動心), 이로써 임금을 섬겨 서로 신뢰하였고, 신뢰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따랐으며, 이렇게 국가의 대란을 극복하였다. 모두가 그를 어진상국(賢相)이라 불렀으니, 정의를 실천하고 대의로 정성스럽게 살았다. 말과 행동이 일관되어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의 먼 훗날을 위한 장구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오랜 재상 생활에도 공사가 분명했고 검약했으며 조야는 물론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손자 이수약이 연풍현의 수령으로 부임할 때 써 준 글에서 이원익은 그의 절제와 중심을 뚜렷하게 표명하고 있다. 공인(公人)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정보(천하의 실정, 일의 실정)의 중요성과, 상벌의 원칙을 가르친다.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이익을 도모하는 것보다 중요하며, 한 가지 일을 덜어내는 것이 하나의 일을 새로 하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음을 알린다. 노련한 관리와 연로한 사람에게 널리 물어서 인정에 합하도록 가르치며, 거만을 부리지 않아야 민심을 잡을 수 있음도 가르친다. 무엇보다, 백성은 마땅히 어루만져 돌봐야 하고, 관속을 대하는 것 또한 각박하게 하지 말기를 당부하며, 마땅히 때를 따라 마음을 다하도록 이른다. 이 모든 金言은 그의 16자 유훈 “無怨於人 無惡於己 志行上方 分福下比”에 응축되어 전해진다.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 - 선조의 사서삼경 언해 작업에 대하여
나랏일을 근심하고 충성을 다하는 절개(憂國忠節)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 모두에게 필수 덕목이다. 애국심은 그 사람의 쌓은 업적 또는 하는 말이나 글을 통해서 접하고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는 시종일관되지 않거나 언행일치하지 않을 경우 신뢰를 잃게 되고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원익의 시와 글을 보면서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으며, 과연 그가 시종일관 언행일치한 인물이었음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많은 임금이 한문의 언해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중 선조의 노력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이었다. 선조는 1574년부터 1606년까지 무려 32년간 줄기차게 언해 작업을 추진하면서 백성이 쉽게 사서오경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위대한 문화 창달의 대업을 이루었다. 나아가 백성들에 알릴 교서는 물론, 절망으로부터 빠른 극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고공가(雇工歌)」와 같이, 백성과의 직접 교류를 원할 때 한문이 아닌 言文(한글)으로 소통하였다. 선조의 「고공가」에 대한 이원익의 답시인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는, ‘고공가’에서 선조가 애타게 찾고 있는 신하의 자세를 명철하게 가르치고 있다.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臣下)에게 마누라(宣祖)의 말을 왜 듣지 않느냐고 꾸중하는 한편, 마누라(선조)에게는 어른 종(영의정 이원익)을 믿으라고 풍유(諷諭)한다. 선조 승하 시 쓴 ‘녹양이 천만산들’ 시조에서는 그 어떤 사모가(思慕歌)보다도 더 애절하게 이원익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420여 년 전 한글로 작시된 이 시들을 노래하면서, 이원익이 선조를 대하면서 품게 된 그에 대한 존경과 신뢰, 동생처럼 아끼는 임금에게 충성하고픈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애절하게 슬퍼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느낄 수 있다. 현세에 와서도 이러한 마음은 여전하기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부르며 새로운 희망을 찾는 동력으로 삼고, 오리 이원익 정승을 현세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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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과의 만남
옛일을 지금의 자리에서 되살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월의 흐름이 일의 맥락을 다르게 틀지어놓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때, 그 눈으로, 그 일을 살피기보다 지금 내 눈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그려지는 옛 일이 바르게 이루어진 것일 수 있을지 자못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이제의 거리가 혹 객관성을 마련할 수 있다 할지라도 바로 그러한 거리 때문에 닿을 길 없이 사라지는 온기와 냉기, 절박함과 푸근함의 잃음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일이 사람인 경우, 게다가 그 사람의 삶이 사私에 한하지 않고 공公에 이르러 펼쳐지고, 또 그래서 그 삶의 온갖 구비와 폭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삶을 서술한다는 것은 그 일이 그 사람이 만나고 행한 온갖 사람과 일에 얽힌 것이어서 마침내 이를 다듬어 한 사람의 삶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비록 그렇게 한다 해도 실은 온전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옛일을 기술해야 하고, 옛 사람의 삶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릇 '옛날'이란 '훗날'을 내다보는 거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삶의 까닭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나감'과 '다가옴'을 '지금 여기'에서 아우르며 그 삶의 뜻을 펼쳐야 할 터인즉 옛일과 옛사람의 삶을, 그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온 마음을 기울여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불가능한,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과업을 이룬 한 권의 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리 이원익, 다스림과 섬김』이 그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역사란 언제나 서술되어 가는 것이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전도 실은 무수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이 평전의 출간이 그리 별다를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책을 만나면서 남다른 감회를 가집니다. 그 소이연을 나열한다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어서 오히려 그 감동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으면서도 이를 조금은 다듬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들고 싶은 것은 이 평전이, 그 주인공의 귀함이나 그 시대의 중요성에 비추어 뜻밖에 소홀하여 상대적으로 늘 덮여지듯 넘어가곤 하던 것을, 드디어 그 주인공의 귀함과 그 시대의 중요성을 새삼 주목하도록 제자리에 제대로 놓게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거목은 기려도 그 뿌리를 간과하는, 그리고 대하大河는 찬탄하면서도 그 근원인 옹달샘을 일컫지 못하는, 실은 변명할 수 없는 게으름을 이 평전은 대담하게 불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만나 겪는 감동의 첫 번째 까닭입니다. 오리 이원익은 늘 그렇게 생전에 그랬듯이 역사 속에서도 조용하게 자기를 낮추고 계셨던 것인데 당신에게는 그것이 덕의 실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게으른 예우가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참회와 더불어 감동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일컬을 수 있는 감동의 까닭은 이 책의 출현이 갖는 시의적절함입니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오늘의 삶에서 저리게 아쉬운 것은 이른바 '다스림의 윤리'가 처절할 정도로 구겨지고, 때 묻고, 찢겨 있는데도 그것을 다시 펴고 씻고 꿰맬 어떤 처방도 올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다시 정치라든가 경제라든가 법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문화라든가, 더 잘게는 국방이라든가 외교라든가 지방자치라든가 하는 것으로 나누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른바 '권력'의 '성찰 없는 독선'이나 '맹목적인 자기 확장'이나 온갖 것으로 자기를 정당화하는 '치졸한 이기심'의 극한에 처해있습니다. 옳고 바른 소리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만 '발언'일 뿐, 실천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옳고 바른 발언이 소음이 되면서 우리의 현실을 더한층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 평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뭇 지금 내가 오늘의 현실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오리 이원익이 살았던 당대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의 발전'이라는 당위를 전제할 때 말이 되지 않는 판단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겠습니다만 그런데 그런 당혹스러운 착각 속에서 이 책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새삼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한 이전에 없던 인식이 일게 되는 경험을 스스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감동이 당연히 초래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어지는 감동은 '새로운 인간상의 발견'이라고 하면 겨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이른바 '새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이원익이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던, 그런데도 윤곽이 잡히지 않아 모호하기만 했던, 인간의 전형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한 인간에 대한 서술은 그 인간이 기려지는 한에서 마련되는 경우 그 주인공에 대한 양지의 서술만으로 일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도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흠은 덮고, 다듬어진 밝은 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이 그렇게 양지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 한, 한 사람에 대한 기림은 마땅히 그 그늘과 더불어 기술되어야 그 사람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평전'은 그렇게 의도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평전도 오리 이원익의 그늘과 빛을 고이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그러한 인간상을 우리는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자리를 잡게 되는 그러한 인간'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그는 이른바 '영웅으로서의 상'을 모두 배제하고 남는 '소박한, 그런데 비범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현대의 이른바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 아닐까 하는 감동을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평전이 오리 이원익의 살아있는 후손에 의하여 기획되고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진한 감동의 여운으로 이 책을 다 덮고 난 뒤에도 끊이질 않습니다. 그 어른의 직계 12대손 이병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의 삶을 마무리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자 '오리 이원익 연구'에 매진하여 마침내 학계에서 경탄해 마지않는 연구 결과를 이처럼 내놓았습니다. 후손이 선조의 덕을 입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감히 말씀드리건대 선조가 후손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레 귀함을 얻어 기림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만큼 흔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 일이 이 평전의 출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리 이원익이나 그 후손에게 두루 경하해 마지않을 일입니다. 참 부러운 일이고, 참 훌륭한 일이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칭송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며, 대를 이어 산다는 것이 무릇 이러한 것이라는 전형을 우리가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의 전형'이라고 해도 결코 넘칠 일이 아닙니다.
이 평전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감동의 울림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넘실대기만을 고대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네 공동체의 삶을, 우리의 내일의 삶을, 그리고 오늘의 삶을, 고이 다듬어 사람 사는 보람을 누리는 삶의 자리로, 그러한 사람들로, 만드는 데 커다란 힘의 보탬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
17세기 3국전쟁에서 조선을 구한 진정한 난세의 영웅, 그를 알면 지금의 동북아 정세 해법이 보인다!!
임진왜란 등 나라의 위기 때마다 중책을 떠맡은 '초가집 정승' 이원익, 왜 이 시대에는 이런 지도자가 없을까?
우리 역사에 이런 공직자는 두 번 있지 않았다!
"안민(安民)이 첫째이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한, 그러나 비범한 인물 오리 이원익 대감, 세상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64년 공직생활 중 재상만 40년을 지낸
조선조 대표 청백리가 후세에게 주는 가르침!
"백성을 살맛나게 하시라!" 왕을 바른 정치로 이끈 直言과 소신의 忠臣, 그의 일대기에서 우리가 바라마지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도가가 필요한 지금!
우리도 링컨이나 처칠 같은 국민적 영웅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민이 믿고 따르는 지도자의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빈이다. 그것도 절대적 청빈이어야 한다. 흙탕물 속에서 자란 오염된 고기를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리 이원익의 '몸에 밴 청빈함과 치적이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
오리 이원익의 생애와 치적!
오리 이원익의 청백리 정신과 관료적 리더십을 배운다.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에는 이원익의 역할이 있었다.
이원익이 대동법을 통해 세대를 걸쳐 후대에 남긴 영향력
오리 이원익의 탕평이 조선후기에 미친 초당적 교유와 정치적 기틀을 제시하였다.
새 사람과의 만남
옛일을 지금의 자리에서 되살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월의 흐름이 일의 맥락을 다르게 틀지어놓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때, 그 눈으로, 그 일을 살피기보다 지금 내 눈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그려지는 옛 일이 바르게 이루어진 것일 수 있을지 자못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이제의 거리가 혹 객관성을 마련할 수 있다 할지라도 바로 그러한 거리 때문에 닿을 길 없이 사라지는 온기와 냉기, 절박함과 푸근함의 잃음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일이 사람인 경우, 게다가 그 사람의 삶이 사私에 한하지 않고 공公에 이르러 펼쳐지고, 또 그래서 그 삶의 온갖 구비와 폭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삶을 서술한다는 것은 그 일이 그 사람이 만나고 행한 온갖 사람과 일에 얽힌 것이어서 마침내 이를 다듬어 한 사람의 삶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비록 그렇게 한다 해도 실은 온전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옛일을 기술해야 하고, 옛 사람의 삶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릇 '옛날'이란 '훗날'을 내다보는 거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삶의 까닭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나감'과 '다가옴'을 '지금 여기'에서 아우르며 그 삶의 뜻을 펼쳐야 할 터인즉 옛일과 옛사람의 삶을, 그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온 마음을 기울여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불가능한,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과업을 이룬 한 권의 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리 이원익, 다스림과 섬김』이 그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역사란 언제나 서술되어 가는 것이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전도 실은 무수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이 평전의 출간이 그리 별다를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책을 만나면서 남다른 감회를 가집니다. 그 소이연을 나열한다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어서 오히려 그 감동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으면서도 이를 조금은 다듬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들고 싶은 것은 이 평전이, 그 주인공의 귀함이나 그 시대의 중요성에 비추어 뜻밖에 소홀하여 상대적으로 늘 덮여지듯 넘어가곤 하던 것을, 드디어 그 주인공의 귀함과 그 시대의 중요성을 새삼 주목하도록 제자리에 제대로 놓게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거목은 기려도 그 뿌리를 간과하는, 그리고 대하大河는 찬탄하면서도 그 근원인 옹달샘을 일컫지 못하는, 실은 변명할 수 없는 게으름을 이 평전은 대담하게 불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만나 겪는 감동의 첫 번째 까닭입니다. 오리 이원익은 늘 그렇게 생전에 그랬듯이 역사 속에서도 조용하게 자기를 낮추고 계셨던 것인데 당신에게는 그것이 덕의 실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게으른 예우가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참회와 더불어 감동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일컬을 수 있는 감동의 까닭은 이 책의 출현이 갖는 시의적절함입니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오늘의 삶에서 저리게 아쉬운 것은 이른바 '다스림의 윤리'가 처절할 정도로 구겨지고, 때 묻고, 찢겨 있는데도 그것을 다시 펴고 씻고 꿰맬 어떤 처방도 올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다시 정치라든가 경제라든가 법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문화라든가, 더 잘게는 국방이라든가 외교라든가 지방자치라든가 하는 것으로 나누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른바 '권력'의 '성찰 없는 독선'이나 '맹목적인 자기 확장'이나 온갖 것으로 자기를 정당화하는 '치졸한 이기심'의 극한에 처해있습니다. 옳고 바른 소리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만 '발언'일 뿐, 실천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옳고 바른 발언이 소음이 되면서 우리의 현실을 더한층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 평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뭇 지금 내가 오늘의 현실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오리 이원익이 살았던 당대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의 발전'이라는 당위를 전제할 때 말이 되지 않는 판단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겠습니다만 그런데 그런 당혹스러운 착각 속에서 이 책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새삼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한 이전에 없던 인식이 일게 되는 경험을 스스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감동이 당연히 초래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어지는 감동은 '새로운 인간상의 발견'이라고 하면 겨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이른바 '새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이원익이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던, 그런데도 윤곽이 잡히지 않아 모호하기만 했던, 인간의 전형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한 인간에 대한 서술은 그 인간이 기려지는 한에서 마련되는 경우 그 주인공에 대한 양지의 서술만으로 일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도 무의미한 것만은 아닙니다. 흠은 덮고, 다듬어진 밝은 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이 그렇게 양지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 한, 한 사람에 대한 기림은 마땅히 그 그늘과 더불어 기술되어야 그 사람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평전'은 그렇게 의도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평전도 오리 이원익의 그늘과 빛을 고이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그러한 인간상을 우리는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자리를 잡게 되는 그러한 인간'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그는 이른바 '영웅으로서의 상'을 모두 배제하고 남는 '소박한, 그런데 비범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현대의 이른바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 아닐까 하는 감동을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평전이 오리 이원익의 살아있는 후손에 의하여 기획되고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진한 감동의 여운으로 이 책을 다 덮고 난 뒤에도 끊이질 않습니다. 그 어른의 직계 12대손 이병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의 삶을 마무리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자 '오리 이원익 연구'에 매진하여 마침내 학계에서 경탄해 마지않는 연구 결과를 이처럼 내놓았습니다. 후손이 선조의 덕을 입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감히 말씀드리건대 선조가 후손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레 귀함을 얻어 기림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만큼 흔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 일이 이 평전의 출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리 이원익이나 그 후손에게 두루 경하해 마지않을 일입니다. 참 부러운 일이고, 참 훌륭한 일이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칭송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며, 대를 이어 산다는 것이 무릇 이러한 것이라는 전형을 우리가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의 전형'이라고 해도 결코 넘칠 일이 아닙니다.
이 평전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감동의 울림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넘실대기만을 고대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네 공동체의 삶을, 우리의 내일의 삶을, 그리고 오늘의 삶을, 고이 다듬어 사람 사는 보람을 누리는 삶의 자리로, 그러한 사람들로, 만드는 데 커다란 힘의 보탬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
17세기 3국전쟁에서 조선을 구한 진정한 난세의 영웅, 그를 알면 지금의 동북아 정세 해법이 보인다!!
임진왜란 등 나라의 위기 때마다 중책을 떠맡은 '초가집 정승' 이원익, 왜 이 시대에는 이런 지도자가 없을까?
우리 역사에 이런 공직자는 두 번 있지 않았다!
"안민(安民)이 첫째이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한, 그러나 비범한 인물 오리 이원익 대감, 세상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64년 공직생활 중 재상만 40년을 지낸
조선조 대표 청백리가 후세에게 주는 가르침!
"백성을 살맛나게 하시라!" 왕을 바른 정치로 이끈 直言과 소신의 忠臣, 그의 일대기에서 우리가 바라마지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도가가 필요한 지금!
우리도 링컨이나 처칠 같은 국민적 영웅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민이 믿고 따르는 지도자의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빈이다. 그것도 절대적 청빈이어야 한다. 흙탕물 속에서 자란 오염된 고기를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리 이원익의 '몸에 밴 청빈함과 치적이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
오리 이원익의 생애와 치적!
오리 이원익의 청백리 정신과 관료적 리더십을 배운다.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에는 이원익의 역할이 있었다.
이원익이 대동법을 통해 세대를 걸쳐 후대에 남긴 영향력
오리 이원익의 탕평이 조선후기에 미친 초당적 교유와 정치적 기틀을 제시하였다.
목차
목차
추천사 / 새 사람과의 만남(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5
서문 / 이병서 : 후손이 조상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10
제1장
태산과 같이 버티고 섰던 한 사람
19
|이원익은 누구인가|
귀하지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다
26
1567년 종각 가두시위에 나선 '대인군자'
33
제2장
부귀한 집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았으나
39
|청년 관료 시절|
승문원의 '처자정자處子正字'
41
압록강 강물에 흘려버린 단꿈
44
율곡, 오리를 알아보다
49
당쟁에 휩쓸리다
52
제3장
목민관으로 전설이 되다
71
훌쩍 말을 집어타고 부임지로 떠나다
73
뽕나무 심은 뜻은
80
한양에 돌아오다
84
제4장
임진왜란
93
|충신의 눈물로 나라를 구하다|
조선은 왜 그토록 무력했나?
95
"제가 직접 나가 싸우겠습니다!"
101
평양 공방전, 패배에서 얻은 교훈
106
이원익, 반격을 준비하다
110
평양 탈환과 이원익의 군사지도
118
제5장
전쟁의 상처를 달래고, 묵묵히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다
127
'도유우불都兪??!' 선조 '둘도 없는 이원익'을 알아보다
129
출장입상出將入相, 정승 겸 체찰사로 전국을 누비다
140
이순시과의 만남 '정승봉'의 추억
147
"안민安民이 첫째이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
155
강서의 예언 드디어 실현되다
165
도원수 권율을 파직하다
168
제6장
선조와 이원익의 정유재란 승리
173
정유재란丁酉再亂 발발, 이원익의 왜영 습격 사건
175
누가 이순신을 변호할 것인가?
181
원균의 패전, 피를 토하는 이원익
188
"나의 힘이 아니라 상국의 힘이다"(非我也 相國也)
193
정응태의 무고, 다시 연경으로 가다
199
마침내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되다. 그러나......
206
날로 소란해지는 당쟁 속에서 죽기로 결심하다
214
"이상공을 쓰지 않으면 저 또한 물러가겠습니다"
221
선조와 이원익, 왜란을 극복하고 나라를 살렸다
225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가 보여주는 명량상우와 도유우불
231
장수는 전투의 승리를 좌우하고 지도자는 전쟁의 승리를 좌우한다
240
제7장
광해준 시대, 그 빛과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245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책임
247
피바람 속에 마음은 병들고-은의겸진恩義兼盡을 주청하다
251
마침내 조선 최고의 개혁에 착수하다-대동법大同法의 시작
261
갈수록 짙어지는 음험한 기운
270
다시 작심하고 충언을 올렸으나......
277
결국 오른 귀양길에 상공우相公雨는 내리고
287
제8장
늙은 신하의 마지막 소원
303
|반정과 인조仁祖 초기|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이원익
305
용서와 화해에 앞장서다
311
다시 제도 개혁에 나서다-대동법大同法의 본격화
319
궤장 하사와 기영연 잔치, 그러나 조금씩 갈라지는 틈
324
이괄李适의 난과 그 후유증
331
또다시 '도유우불都兪??'의 꿈은 지고
345
제9장
꽃은 떨어지고, 제비는 지저귄다
351
|마지막 길|
정묘호란丁卯胡亂-마지막 봉사의 길에 나서다
353
청렴함으로 마지막 감동을 주고, 관감당觀感堂에서 꿈을 꾸다
357
제10장
후계자들, 친지들, 후손들
367
|완평의 이름을 이어가다|
정조와 정약용, 이원익의 지음知音이 되다
369
100년 동안의 개혁, 대동법의 시행에서 완성까지
374
이원익의 지인들, 이원익과 교유한 사람들
383
이원익의 후손들
393
해제
태산을 가슴에 품다ㆍ함규진
409
|이원익의 사상|
근실勤實
412
안민제일安民第一
414
청렴淸廉
416
은의겸진恩義兼盡
419
염치廉恥의 리더십
421
완평完平의 마음
422
부록
헌시獻詩
430
저자 후기
432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연보年譜
438
주석註釋
449
찾아보기(인물)
466
찾아보기(용어)
473
5
서문 / 이병서 : 후손이 조상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10
제1장
태산과 같이 버티고 섰던 한 사람
19
|이원익은 누구인가|
귀하지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다
26
1567년 종각 가두시위에 나선 '대인군자'
33
제2장
부귀한 집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았으나
39
|청년 관료 시절|
승문원의 '처자정자處子正字'
41
압록강 강물에 흘려버린 단꿈
44
율곡, 오리를 알아보다
49
당쟁에 휩쓸리다
52
제3장
목민관으로 전설이 되다
71
훌쩍 말을 집어타고 부임지로 떠나다
73
뽕나무 심은 뜻은
80
한양에 돌아오다
84
제4장
임진왜란
93
|충신의 눈물로 나라를 구하다|
조선은 왜 그토록 무력했나?
95
"제가 직접 나가 싸우겠습니다!"
101
평양 공방전, 패배에서 얻은 교훈
106
이원익, 반격을 준비하다
110
평양 탈환과 이원익의 군사지도
118
제5장
전쟁의 상처를 달래고, 묵묵히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다
127
'도유우불都兪??!' 선조 '둘도 없는 이원익'을 알아보다
129
출장입상出將入相, 정승 겸 체찰사로 전국을 누비다
140
이순시과의 만남 '정승봉'의 추억
147
"안민安民이 첫째이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
155
강서의 예언 드디어 실현되다
165
도원수 권율을 파직하다
168
제6장
선조와 이원익의 정유재란 승리
173
정유재란丁酉再亂 발발, 이원익의 왜영 습격 사건
175
누가 이순신을 변호할 것인가?
181
원균의 패전, 피를 토하는 이원익
188
"나의 힘이 아니라 상국의 힘이다"(非我也 相國也)
193
정응태의 무고, 다시 연경으로 가다
199
마침내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되다. 그러나......
206
날로 소란해지는 당쟁 속에서 죽기로 결심하다
214
"이상공을 쓰지 않으면 저 또한 물러가겠습니다"
221
선조와 이원익, 왜란을 극복하고 나라를 살렸다
225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가 보여주는 명량상우와 도유우불
231
장수는 전투의 승리를 좌우하고 지도자는 전쟁의 승리를 좌우한다
240
제7장
광해준 시대, 그 빛과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245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책임
247
피바람 속에 마음은 병들고-은의겸진恩義兼盡을 주청하다
251
마침내 조선 최고의 개혁에 착수하다-대동법大同法의 시작
261
갈수록 짙어지는 음험한 기운
270
다시 작심하고 충언을 올렸으나......
277
결국 오른 귀양길에 상공우相公雨는 내리고
287
제8장
늙은 신하의 마지막 소원
303
|반정과 인조仁祖 초기|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이원익
305
용서와 화해에 앞장서다
311
다시 제도 개혁에 나서다-대동법大同法의 본격화
319
궤장 하사와 기영연 잔치, 그러나 조금씩 갈라지는 틈
324
이괄李适의 난과 그 후유증
331
또다시 '도유우불都兪??'의 꿈은 지고
345
제9장
꽃은 떨어지고, 제비는 지저귄다
351
|마지막 길|
정묘호란丁卯胡亂-마지막 봉사의 길에 나서다
353
청렴함으로 마지막 감동을 주고, 관감당觀感堂에서 꿈을 꾸다
357
제10장
후계자들, 친지들, 후손들
367
|완평의 이름을 이어가다|
정조와 정약용, 이원익의 지음知音이 되다
369
100년 동안의 개혁, 대동법의 시행에서 완성까지
374
이원익의 지인들, 이원익과 교유한 사람들
383
이원익의 후손들
393
해제
태산을 가슴에 품다ㆍ함규진
409
|이원익의 사상|
근실勤實
412
안민제일安民第一
414
청렴淸廉
416
은의겸진恩義兼盡
419
염치廉恥의 리더십
421
완평完平의 마음
422
부록
헌시獻詩
430
저자 후기
432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연보年譜
438
주석註釋
449
찾아보기(인물)
466
찾아보기(용어)
473
저자
저자
이병서
李炳瑞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경제학 학사) 및 동 대학교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하였다. 한국나이롱주식회사(현 코오롱) 영업부장을 지내고 한국특수화학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한국페인트ㆍ잉크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중소기업 UR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998년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표단으로 평양을 방문, 북한 광명성 경제연합회와의 협정 체결 과정에서 문구 하나를 놓고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뚝심을 보인 일화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사단법인 중소기업세계화정책연구회 이사장과 현재 오리이원익기념사업회 회장으로서 오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오리 이원익의 12대손, 오리에 관한 한 어느 전문가와도 토론이 가능한 식견을 갖추고 있다. 저서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국립세무대학에서 경영학기업경영론을 강의하며 펴낸 『기업경영론』, 『중세연회보』와 서집 『고헌 이병서』가 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경제학 학사) 및 동 대학교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하였다. 한국나이롱주식회사(현 코오롱) 영업부장을 지내고 한국특수화학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한국페인트ㆍ잉크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중소기업 UR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998년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표단으로 평양을 방문, 북한 광명성 경제연합회와의 협정 체결 과정에서 문구 하나를 놓고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뚝심을 보인 일화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사단법인 중소기업세계화정책연구회 이사장과 현재 오리이원익기념사업회 회장으로서 오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오리 이원익의 12대손, 오리에 관한 한 어느 전문가와도 토론이 가능한 식견을 갖추고 있다. 저서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국립세무대학에서 경영학기업경영론을 강의하며 펴낸 『기업경영론』, 『중세연회보』와 서집 『고헌 이병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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