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속엔 내가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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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유도윤의 첫 시집을 읽고 나면, 손에 남는 건 감정의 이름이 아니라 사물이다. 「이사」에서는 식어가는 온기의 속도를 지켜보는 것으로 이별을 말하고, 「사진을 지우는 순서」에서는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으로, 「간수」에서는 깨진 거울로 관계의 균열을 말한다. 시인은 슬프다거나 그립다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게 하고, 그 사물이 대신 앓게 한다.
꽃은 이 시집에서 가장 배반당하는 사물이다. 「첫 꽃을 건넸던 날」에서 화자는 시드는 것이 두려워 생화 대신 조화를 건넨다. "숨결 없는 꽃이 네게 쥐어지고 / 껍데기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 시들지 않기를 바란 선택이,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은 것을 건네는 결과로 되돌아온다. 「꽃기린」에서는 그 배반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너는 내 안에서 시들지 않던 것"이라 불렀던 존재가 결국 "가시만 남은 줄기 하나가 / 너를 거름처럼 삼키고 있다"는 자리에 이른다. 꽃을 주는 행위도, 꽃으로 불리는 존재도, 이 시집에서는 끝내 온전히 피어나지 못한다.
이 시집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이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조현」의 화자는 "너 몰래 꾸민 무대 위에서" 스스로 연출한 장면을 지켜보다 "무릎 꿇고 / 이름을 잃는다." 「허명」에서는 "그날의 나는 / 네 기도를 가로채고, 숨을 틀어쥐고" 있었음을 뒤늦게 고백한다. 그리고 「간수」는 이 시집에서 가장 서늘한 반전을 감춰둔다. 처음엔 누군가 "너"를 부수고 가두는 것처럼 읽히던 시가, 마지막 연에 이르러 "결국 나였음을 / 그 고귀한 너를 깨뜨린 이는 / 처음부터 나였다"로 닫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두는 자와 갇힌 자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 이 시집 속 "나"는 종종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 시집이 드물게 온기를 허락하는 순간은 더 눈에 띈다. 「연화(蓮花)」에서 화자는 오랫동안 믿어온 길이 실은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명확하지 않아도 길은 이미 / 내 안에 나 있다"며 다시 발을 뗀다. 다만 이 시집은 그 온기조차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제목부터 온기를 약속하는 「온기를 남기고자」조차, 정작 그 온기를 "끝내 건네지 못한 채 / 멈춰 섰다"로 끝난다. 따뜻함을 주려던 순간은 있었으나, 그 온기는 시집 안에서 좀처럼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
이것이 이 시인의 출발점이었다. 감정을 이름 붙여 설명하는 대신, 사물과 이미지에 그 감정을 떠넘기고, 그 사물이 부서지거나 흐려지는 과정을, 그리고 가끔은 끝내 전해지지 못하는 온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것. 독자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어느새 슬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지막 시 「개명(?命)」에서 시인은 이름을 바꾸는 일이 곧 살아남는 일이었음을 드러내는데, 이는 시집 전체가 줄곧 물어온 질문 -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그리고 확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견디는가 - 에 대한 유일한 답처럼 보인다.
사물로 슬픔을 대신 앓게 하는 시인. 유도윤의 첫 시집은 그렇게 읽힌다.
꽃은 이 시집에서 가장 배반당하는 사물이다. 「첫 꽃을 건넸던 날」에서 화자는 시드는 것이 두려워 생화 대신 조화를 건넨다. "숨결 없는 꽃이 네게 쥐어지고 / 껍데기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 시들지 않기를 바란 선택이,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은 것을 건네는 결과로 되돌아온다. 「꽃기린」에서는 그 배반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너는 내 안에서 시들지 않던 것"이라 불렀던 존재가 결국 "가시만 남은 줄기 하나가 / 너를 거름처럼 삼키고 있다"는 자리에 이른다. 꽃을 주는 행위도, 꽃으로 불리는 존재도, 이 시집에서는 끝내 온전히 피어나지 못한다.
이 시집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이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조현」의 화자는 "너 몰래 꾸민 무대 위에서" 스스로 연출한 장면을 지켜보다 "무릎 꿇고 / 이름을 잃는다." 「허명」에서는 "그날의 나는 / 네 기도를 가로채고, 숨을 틀어쥐고" 있었음을 뒤늦게 고백한다. 그리고 「간수」는 이 시집에서 가장 서늘한 반전을 감춰둔다. 처음엔 누군가 "너"를 부수고 가두는 것처럼 읽히던 시가, 마지막 연에 이르러 "결국 나였음을 / 그 고귀한 너를 깨뜨린 이는 / 처음부터 나였다"로 닫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두는 자와 갇힌 자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 이 시집 속 "나"는 종종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 시집이 드물게 온기를 허락하는 순간은 더 눈에 띈다. 「연화(蓮花)」에서 화자는 오랫동안 믿어온 길이 실은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명확하지 않아도 길은 이미 / 내 안에 나 있다"며 다시 발을 뗀다. 다만 이 시집은 그 온기조차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제목부터 온기를 약속하는 「온기를 남기고자」조차, 정작 그 온기를 "끝내 건네지 못한 채 / 멈춰 섰다"로 끝난다. 따뜻함을 주려던 순간은 있었으나, 그 온기는 시집 안에서 좀처럼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
이것이 이 시인의 출발점이었다. 감정을 이름 붙여 설명하는 대신, 사물과 이미지에 그 감정을 떠넘기고, 그 사물이 부서지거나 흐려지는 과정을, 그리고 가끔은 끝내 전해지지 못하는 온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것. 독자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어느새 슬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지막 시 「개명(?命)」에서 시인은 이름을 바꾸는 일이 곧 살아남는 일이었음을 드러내는데, 이는 시집 전체가 줄곧 물어온 질문 -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그리고 확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견디는가 - 에 대한 유일한 답처럼 보인다.
사물로 슬픔을 대신 앓게 하는 시인. 유도윤의 첫 시집은 그렇게 읽힌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1부 불을 끄는 시간
이사 · 상념 · 대낮 · 사진 · 사진을 지우는 순서 · 읽히지 않는 밤 · 흐르지 않는 쪽 · 남겨두는 법 · 불면 · 말라있는 문장
2부 산책을 하다보면
연화(蓮花) · 이름을 부르지 못할 때 · 바뀌기 전에 · 희망 · 습관 · 거짓을 고하며 · 어제 한 일 · 이름을 모르는 소음 · 그 자리를 빌려 · 어느 자리 · 나는 그것을 태도라고 불렀다
3부 꽃을 좋아했던가
남겨진 시선 · 꽃기린 · 창밖 · 소외 · 허명 · 간수 · 첫 꽃을 건넸던 날 · 우연이란 시점 · 식탁에 앉아서 · 밤중의 독백 · 그날의 대답
4부 길목 어딘가에서
사고 · 너의 그날 · 지워버린 자아 · 잘 벼린 날 · 조현 · 이름이 되기 전 · 재의 방식 · 괜찮다고 했다 · 무제 · 파편의 주기
5부 서랍 위로 두자
나란히 앉아서 · 고양 · 문 앞의 장면 · 온기를 남기고자 · 정리 · 묵독을 위한 마음 · 멎은 순간 · 눈동자 속엔 내가 살지 않는다 · 끊어진 채 · 개명(?命)
에필로그
1부 불을 끄는 시간
이사 · 상념 · 대낮 · 사진 · 사진을 지우는 순서 · 읽히지 않는 밤 · 흐르지 않는 쪽 · 남겨두는 법 · 불면 · 말라있는 문장
2부 산책을 하다보면
연화(蓮花) · 이름을 부르지 못할 때 · 바뀌기 전에 · 희망 · 습관 · 거짓을 고하며 · 어제 한 일 · 이름을 모르는 소음 · 그 자리를 빌려 · 어느 자리 · 나는 그것을 태도라고 불렀다
3부 꽃을 좋아했던가
남겨진 시선 · 꽃기린 · 창밖 · 소외 · 허명 · 간수 · 첫 꽃을 건넸던 날 · 우연이란 시점 · 식탁에 앉아서 · 밤중의 독백 · 그날의 대답
4부 길목 어딘가에서
사고 · 너의 그날 · 지워버린 자아 · 잘 벼린 날 · 조현 · 이름이 되기 전 · 재의 방식 · 괜찮다고 했다 · 무제 · 파편의 주기
5부 서랍 위로 두자
나란히 앉아서 · 고양 · 문 앞의 장면 · 온기를 남기고자 · 정리 · 묵독을 위한 마음 · 멎은 순간 · 눈동자 속엔 내가 살지 않는다 · 끊어진 채 · 개명(?命)
에필로그
저자
저자
유도윤 시를 쓴다. 오랫동안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해왔으며, 잔이 식어가는 시간과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를 지켜보는 감각이 시의 바탕이 되었다. 관계 속에서 흐려지는 자아, 이름과 시선이 사람에게 가하는 힘에 대해 쓴다. 독립출판사 여온(餘溫)을 운영하며, 『눈동자 속엔 내가 살지 않는다』는 그의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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