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끝(한국디카시 대표시선 35)
안연옥 디카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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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하는 정동의 풍경
─ 안연옥의 디카시집 『슬픔의 끝』
시인이자 시낭송예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연옥 시인이 디카시집 『슬픔의 끝』을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디카시 대표시선으로 출간하였다. 안연옥의 『슬픔의 끝』은 4부로 나뉘어 총 56편의 시편을 수록하였다.
안연옥 시인은 2011년 《문학공간》 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강원문인협회이사, 원주문인협회낭송분과장, 한국시낭송방송협회회장, 강원여성문학인회이사, 강원디카시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작품집으로 『말을 걸어오다』(2018년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푸른 꽃잎사이 나를 숨기다』(2020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슬픔의 끝』(2025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이 있다.
안연옥의 『슬픔의끝』에서 ‘슬픔’은 산문적 설명이나 이성적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어떤 기원이나 동력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개념이나 인식의 결과가 아니며, 시인의 정동에 깊이 새겨진 채 계속 분출하는 최초의 샘물 같은 것이다. 이 디카시집의 어디에도 그 샘물의 모티프나 발생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말하자면 시인은 겉으로는 ‘그냥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세상에 ‘그냥 슬픈’ 게 어디 있나. 안연옥 시인에게 슬픔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장에서 나오는 어떤 목소리이고 행위의 에너지이며 기원이다. 시인은 슬픔이라는 정동의 다양한 변용을 건드린다. 슬픔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으며, 이런 얼굴을 하고 있고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의 분화구에서 나온 화산재처럼 삶은 슬픔의 분화구에서 나온 다양한 낙진들이다.
─ 안연옥의 디카시집 『슬픔의 끝』
시인이자 시낭송예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연옥 시인이 디카시집 『슬픔의 끝』을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디카시 대표시선으로 출간하였다. 안연옥의 『슬픔의 끝』은 4부로 나뉘어 총 56편의 시편을 수록하였다.
안연옥 시인은 2011년 《문학공간》 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강원문인협회이사, 원주문인협회낭송분과장, 한국시낭송방송협회회장, 강원여성문학인회이사, 강원디카시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작품집으로 『말을 걸어오다』(2018년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푸른 꽃잎사이 나를 숨기다』(2020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슬픔의 끝』(2025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이 있다.
안연옥의 『슬픔의끝』에서 ‘슬픔’은 산문적 설명이나 이성적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어떤 기원이나 동력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개념이나 인식의 결과가 아니며, 시인의 정동에 깊이 새겨진 채 계속 분출하는 최초의 샘물 같은 것이다. 이 디카시집의 어디에도 그 샘물의 모티프나 발생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말하자면 시인은 겉으로는 ‘그냥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세상에 ‘그냥 슬픈’ 게 어디 있나. 안연옥 시인에게 슬픔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장에서 나오는 어떤 목소리이고 행위의 에너지이며 기원이다. 시인은 슬픔이라는 정동의 다양한 변용을 건드린다. 슬픔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으며, 이런 얼굴을 하고 있고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의 분화구에서 나온 화산재처럼 삶은 슬픔의 분화구에서 나온 다양한 낙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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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곳은 화목한 집이었고
결혼식장이었으며
또한 장례식장이었고
겹겹의 슬픔이었으며 빛나는 행복이었지
- 「꽃잎의 예식」
떨어진 꽃잎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때 "화목한 집"이었고, "결혼식장"이었으며, 죽어서 그 모든 서사가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엔 "장례식장"이었다. 동일한 대상이 화목한 집→결혼식장→장례식장으로 계속 변해나가는 모습을 시인은 "겹겹의 슬픔"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목한 집과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근저를 관통하는 정동은 슬픔이다. 화목한 집은 언제까지나 그 자체로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결혼식장은 시작과 동시에 과거가 되고, 이 모든 과정은 애석하게도 장례식장을 향해 있다. 돌이켜 보면 삶의 어느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무엇이 되어감(becoming)의 과정에 있는데. 그 무엇이라는 것이 결국 슬픔의 완성인 죽음이라면, 거기에 오기까지의 다른 모든 단계 역시 슬픔의 다양한 '겹'들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판 반전을 시도한다. 그것들이 모두 "겹겹의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빛나는 행복"이었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슬픔이면서 동시에 행복이라니,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진의 꽃잎들은 분명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것들이지만 그 화려한 빨강은 죽음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거기엔 죽음일지언정 너무 아름다워서 "빛나는 행복"도 있다. 아름다운 꽃잎들은 죽음을 종말로 끝낼 수 없게 한다. 꽃잎에게 종말이란 없다. 꽃잎은 슬픔 속에서 슬픔조차도 아름답게 만드는, 슬픔 너머의 다른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떤 슬픔도 그 자체 영원히 슬픔인 것은 없다. 모든 정동엔 오로지 '무엇 되기'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시인에겐 이렇게 죽음조차도 다른 명명(naming)을 기다리는 '되기'의 과정이다.
안연옥 디카시의 동력인 슬픔의 정동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용된다. 그것은 삶과 세계의 주름들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아픔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문학이 아픔과 결핍의 앵글로 인간과 세계의 속내를 드러낸다면, 슬픔의 정동이야말로 안연옥에게는 매우 적절한 문학적 기제이다.
옛집은 단란하다
기억 속을 걸어 나오면서부터
낯선 얼굴이 되어가는 그 집
- 「알츠하이머」
이 작품에서도 안연옥 시인의 기발하고도 독창적인 발상을 만날 수 있다. 안연옥 시인은 디카시가 사진의 설명이 아니라 사진의 비유(은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시인의 비유는 때로 은유를 넘어 기상(奇想, conceit)의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상이란 일종의 확장된 혹은 과장된 은유를 말한다. 은유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면, 기상은 이질적인 것들의 거리가 워낙 멀어 이들 사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유사성을 발견할 때 발생한다. 노출 콘크리트로 보이는 단단한 벽의 실내에서 시인은 어떻게 "알츠하이머"를 읽어낼까. 심지어 사진 속의 공간은 시인이 말하는 "옛집"이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의 도시 공간이다. 이 사진 속에서 '옛집'의 단란함을 연상시키는 것은 집 자체가 아니라 화면 중앙 멀리 소실점에 아득히 모여 있는 일군의 사람들 모습이다. 이들은 아마도 가족으로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어떤 외부 공간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이 장면의 "기억 속을 걸어 나오면서부터"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것이 멀리 사라지는 기억이라는 것과 사진 속 가족의 모습이 먼 소실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발한 유사성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안연옥 시인에게 슬픔의 정동은 사태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슬픔은 개인적, 사회적 단위의 무수한 변용을 거치며 인간과 세계의 결핍을 드러내지만, 다시 슬픔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안연옥에게 슬픔은 닫힌 언어가 아니라 열린 언어이다. 시인은 출발 언어(source language)인 슬픔을 '되기'의 끝없는 과정에 밀어 넣으며 도착 언어(target language)로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슬픔을 슬픔으로 읽는 것처럼 무용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떨어져도
다시 피어난 듯
물에 몸을 잠시 맡겨본다
- 「슬픔의 끝」
디카시의 진수를 맛보려면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디카시는 사진 한 장에 5행 이내의 짧은 문자기호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진과 문자기호를 오가며 오래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넓고 깊은 세계가 자꾸 열린다. 물이 담긴 돌확 안의 꽃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본체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다.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돌확은 시신을 오색의 꽃들로 덮어 놓은 석관(石棺) 같다. 첫 행의 "떨어져도"는 '죽었어도'의 의미로 읽어도 된다. 석관 속의 꽃들은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이미 죽은 것들이지만, 마치 "다시 피어난 듯", 밝고 찬란하다. 시인은 3행에서 꽃들이 "물에 몸을 잠시 맡겨본다"라고 기술함으로써 죽은 꽃들의 회생 가능성 혹은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슬픔의 끝"이 꼭 죽음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디카시를 더 오래 들여다보면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석관 안의 죽은 꽃들은 생전에도 아름다웠지만, 죽음 이후에는 더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꿈꾸는 영혼일 수도 있다. 그 꽃들이 몸을 담고 있는 "물"은 그런 생명성의 상징이고, 몸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는 '재생(再生)'의 기호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연옥의 『슬픔의 끝』의 출발 언어는 슬픔의 정동이다. 그리고 시인에게 슬픔의 연원은 소멸이라는 이름의 죽음이다. 그러나 슬픔은 한 가지 얼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무수한 변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착 언어를 꿈꾼다. 이 디카시집의 도착 언어는 죽음과 소멸의 슬픔을 넘어 새로이 빛나는 "초록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안연옥 시인의 디카시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천천히, 오래 음미해 보자.
결혼식장이었으며
또한 장례식장이었고
겹겹의 슬픔이었으며 빛나는 행복이었지
- 「꽃잎의 예식」
떨어진 꽃잎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때 "화목한 집"이었고, "결혼식장"이었으며, 죽어서 그 모든 서사가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엔 "장례식장"이었다. 동일한 대상이 화목한 집→결혼식장→장례식장으로 계속 변해나가는 모습을 시인은 "겹겹의 슬픔"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목한 집과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근저를 관통하는 정동은 슬픔이다. 화목한 집은 언제까지나 그 자체로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결혼식장은 시작과 동시에 과거가 되고, 이 모든 과정은 애석하게도 장례식장을 향해 있다. 돌이켜 보면 삶의 어느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무엇이 되어감(becoming)의 과정에 있는데. 그 무엇이라는 것이 결국 슬픔의 완성인 죽음이라면, 거기에 오기까지의 다른 모든 단계 역시 슬픔의 다양한 '겹'들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판 반전을 시도한다. 그것들이 모두 "겹겹의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빛나는 행복"이었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슬픔이면서 동시에 행복이라니,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진의 꽃잎들은 분명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것들이지만 그 화려한 빨강은 죽음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거기엔 죽음일지언정 너무 아름다워서 "빛나는 행복"도 있다. 아름다운 꽃잎들은 죽음을 종말로 끝낼 수 없게 한다. 꽃잎에게 종말이란 없다. 꽃잎은 슬픔 속에서 슬픔조차도 아름답게 만드는, 슬픔 너머의 다른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떤 슬픔도 그 자체 영원히 슬픔인 것은 없다. 모든 정동엔 오로지 '무엇 되기'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시인에겐 이렇게 죽음조차도 다른 명명(naming)을 기다리는 '되기'의 과정이다.
안연옥 디카시의 동력인 슬픔의 정동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용된다. 그것은 삶과 세계의 주름들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아픔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문학이 아픔과 결핍의 앵글로 인간과 세계의 속내를 드러낸다면, 슬픔의 정동이야말로 안연옥에게는 매우 적절한 문학적 기제이다.
옛집은 단란하다
기억 속을 걸어 나오면서부터
낯선 얼굴이 되어가는 그 집
- 「알츠하이머」
이 작품에서도 안연옥 시인의 기발하고도 독창적인 발상을 만날 수 있다. 안연옥 시인은 디카시가 사진의 설명이 아니라 사진의 비유(은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시인의 비유는 때로 은유를 넘어 기상(奇想, conceit)의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상이란 일종의 확장된 혹은 과장된 은유를 말한다. 은유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면, 기상은 이질적인 것들의 거리가 워낙 멀어 이들 사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유사성을 발견할 때 발생한다. 노출 콘크리트로 보이는 단단한 벽의 실내에서 시인은 어떻게 "알츠하이머"를 읽어낼까. 심지어 사진 속의 공간은 시인이 말하는 "옛집"이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의 도시 공간이다. 이 사진 속에서 '옛집'의 단란함을 연상시키는 것은 집 자체가 아니라 화면 중앙 멀리 소실점에 아득히 모여 있는 일군의 사람들 모습이다. 이들은 아마도 가족으로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어떤 외부 공간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이 장면의 "기억 속을 걸어 나오면서부터"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것이 멀리 사라지는 기억이라는 것과 사진 속 가족의 모습이 먼 소실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발한 유사성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안연옥 시인에게 슬픔의 정동은 사태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슬픔은 개인적, 사회적 단위의 무수한 변용을 거치며 인간과 세계의 결핍을 드러내지만, 다시 슬픔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안연옥에게 슬픔은 닫힌 언어가 아니라 열린 언어이다. 시인은 출발 언어(source language)인 슬픔을 '되기'의 끝없는 과정에 밀어 넣으며 도착 언어(target language)로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슬픔을 슬픔으로 읽는 것처럼 무용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떨어져도
다시 피어난 듯
물에 몸을 잠시 맡겨본다
- 「슬픔의 끝」
디카시의 진수를 맛보려면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디카시는 사진 한 장에 5행 이내의 짧은 문자기호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진과 문자기호를 오가며 오래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넓고 깊은 세계가 자꾸 열린다. 물이 담긴 돌확 안의 꽃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본체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다.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돌확은 시신을 오색의 꽃들로 덮어 놓은 석관(石棺) 같다. 첫 행의 "떨어져도"는 '죽었어도'의 의미로 읽어도 된다. 석관 속의 꽃들은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이미 죽은 것들이지만, 마치 "다시 피어난 듯", 밝고 찬란하다. 시인은 3행에서 꽃들이 "물에 몸을 잠시 맡겨본다"라고 기술함으로써 죽은 꽃들의 회생 가능성 혹은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슬픔의 끝"이 꼭 죽음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디카시를 더 오래 들여다보면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석관 안의 죽은 꽃들은 생전에도 아름다웠지만, 죽음 이후에는 더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꿈꾸는 영혼일 수도 있다. 그 꽃들이 몸을 담고 있는 "물"은 그런 생명성의 상징이고, 몸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는 '재생(再生)'의 기호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연옥의 『슬픔의 끝』의 출발 언어는 슬픔의 정동이다. 그리고 시인에게 슬픔의 연원은 소멸이라는 이름의 죽음이다. 그러나 슬픔은 한 가지 얼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무수한 변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착 언어를 꿈꾼다. 이 디카시집의 도착 언어는 죽음과 소멸의 슬픔을 넘어 새로이 빛나는 "초록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안연옥 시인의 디카시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천천히, 오래 음미해 보자.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인디고의 심연 · 14
나침반 · 16
슬픔의 끝 · 18
미로 · 20
시간을 걷는 길 · 22
어느 때 · 24
매듭 · 26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 28
침묵의 무게 · 30
편지 · 32
뷰파인드 · 34
무서리 · 36
상심 · 38
호명 · 40
제2부
얼굴 · 44
소울메이트 · 46
숨의 경계 · 48
수포가 된 말 · 50
자정 · 52
그날 이후 · 54
시선 · 56
낯선 평화 · 58
쿼렌시아 · 60
위 내시경 · 62
기억의 정원 · 64
노스텔지아 · 66
저녁의 악보 · 68
알츠하이머 · 70
제3부
흔적 · 74
숲의 기억 · 76
침묵의 선율 · 78
어떤 화양연화 · 80
레이더 · 82
사우다지 · 84
오아시스 · 86
페르소나 · 88
파도가 멈춘자리 · 90
내면의 요새 · 92
텅빈 약속 · 94
신전 · 96
내안의 풍경 · 98
청춘 · 100
제4부
릴케의 장미 · 104
햇살의 귀환 · 106
꽃잎의 예식 · 108
우주 · 110
물의 얼굴 · 112
해방여정 · 114
봄 · 116
미완의 문장 · 118
여름 끝자락 · 120
묵음 · 122
빈 들녘 · 124
人生 · 126
끈 · 128
산책 · 130
해설
변용하는 정동의 풍경_오민석
제1부
인디고의 심연 · 14
나침반 · 16
슬픔의 끝 · 18
미로 · 20
시간을 걷는 길 · 22
어느 때 · 24
매듭 · 26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 28
침묵의 무게 · 30
편지 · 32
뷰파인드 · 34
무서리 · 36
상심 · 38
호명 · 40
제2부
얼굴 · 44
소울메이트 · 46
숨의 경계 · 48
수포가 된 말 · 50
자정 · 52
그날 이후 · 54
시선 · 56
낯선 평화 · 58
쿼렌시아 · 60
위 내시경 · 62
기억의 정원 · 64
노스텔지아 · 66
저녁의 악보 · 68
알츠하이머 · 70
제3부
흔적 · 74
숲의 기억 · 76
침묵의 선율 · 78
어떤 화양연화 · 80
레이더 · 82
사우다지 · 84
오아시스 · 86
페르소나 · 88
파도가 멈춘자리 · 90
내면의 요새 · 92
텅빈 약속 · 94
신전 · 96
내안의 풍경 · 98
청춘 · 100
제4부
릴케의 장미 · 104
햇살의 귀환 · 106
꽃잎의 예식 · 108
우주 · 110
물의 얼굴 · 112
해방여정 · 114
봄 · 116
미완의 문장 · 118
여름 끝자락 · 120
묵음 · 122
빈 들녘 · 124
人生 · 126
끈 · 128
산책 · 130
해설
변용하는 정동의 풍경_오민석
저자
저자
안연옥
2011년 《문학공간》 시 등단
경남정보대 디지털문예창작학과 재학중
한국문인협회, 강원문인협회이사, 원주문인협회낭
송분과장, 한국시낭송방송협회회장
강원여성문학인회이사, 강원디카시인협회 부회장
작품집 『말을 걸어오다』
(2018년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푸른 꽃잎사이 나를 숨기다』
(2020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슬픔의 끝』
(2025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경남정보대 디지털문예창작학과 재학중
한국문인협회, 강원문인협회이사, 원주문인협회낭
송분과장, 한국시낭송방송협회회장
강원여성문학인회이사, 강원디카시인협회 부회장
작품집 『말을 걸어오다』
(2018년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푸른 꽃잎사이 나를 숨기다』
(2020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슬픔의 끝』
(2025년 원주문화재단 문화예술 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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