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16)
조선의 수사와 의례로 본 새로운 한중관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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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는 교조적 신념이나 위력의 종속이 아닌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원제 Boundless Winds of Empire)은 중국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사(언어)와 의례'의 방식을 통해 본 새로운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로, 명나라의 자의식마저 미묘하게 변형시켜 간 조선의 지능적인 대명 외교사를 추적한다. 저자 왕쓰샹은 고 김자현 교수(미 컬럼비아대)의 제자로, 『조선 왕조의 기원』을 썼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던컨 교수(미 UCLA)의 자리를 이어받아 북미의 한국학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2025 북미아시아학회 제임스 팔레 학술상과 2024 UC버클리 한국학센터 이홍영 도서상 수상작이다.
왕쓰샹은 조선시대 외교력이 실상보다 낮게 평가되어 왔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대'라는 다소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조선왕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그 외교의 전략적·전술적 측면을 오해하게 만든다며 독자들이 현대적 관점이 아닌 당대가 품고 있던 문제의식 속에서 이해해 보길 제안한다. 조선의 사대는 과거에 대한 교조적인 신념이나 위력에 대한 종속이 아니라,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보여주는 한국의 주체성은, 최근 한국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대등사관', 즉 역사상 한국이 중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일면 비견(比肩) 가능한 나라였다는 한중관계사 연구나,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너그러운 포용력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중국의 중한관계사 연구를 반박하는 것으로, 조선과 같이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국가의 기민한 능동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조선이 그렇게 함으로써 제국 질서에서 조선의 위치를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전통 속으로 스스로를 편입시키고 그 전통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조선 측이 사대주의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는 '도덕적 제국'의 신화를 수사와 의례를 통해 반복해서 표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황제와 그 대리인들에게 조선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이야말로 제국이 되는 최선의 길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도덕적인 제국이라면 조선의 정치적 온전함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내고 구체화한 것이다.
수사와 의례를 통한 조선의 지능적인 대중국 외교
이 책의 시작점인 명나라 태조 홍무제의 등장은 고려와 조선에 실존적 위협이었다. 1394년, 조선의 국왕이 황제의 신하로 인정하는 새로운 인장과 고명을 요청했을 때, 홍무제는 "경솔함, 무례, 모욕이 섞여 있다."며 조선 사절들을 구금, 매질하거나 귀양을 보냈다. 나아가 서한 작성자인 정도전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그가 조선에 '자위성교(自爲聲敎)'를 하라고 했던 것은, 조선을 오랑캐 취급하며 조공 받을 가치도 없다며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 영락제가 베트남을 침공하고 몽골을 원정한 것처럼, 먼 옛날 한사군을 설치했듯 옛 영토 회복을 위한 군사적 침공도 할 수 있다며 위협한 것이기도 했다.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을 겪은 터에, 조선은 중국이 통일된 이상 핵심 지역인 북중국 평원과 지리적으로 이어져 있는 너무나 가까웠다. 따라서 중국에 '강대강'으로 맞설 수 없었다. 마치 코끼리와 함께 잠을 자는 것 같은 상황에서, 조선은 긴장하며 외교적으로 대응했다.
여기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군신들은 때때로 중국 황제의 가장 충순한 신하를 자처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가장 회피하고 싶은 이'사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기존 위계질서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일 뿐일까? 이러한 틀로서는 조선의 의례 및 수사 활동은 기껏해야 정치 이념의 부수적 반영에 불과할 것이다. 또 조선 조정이 외교적 노력의 대부분을 여기에 집중했으므로 그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조선의 주체성을 선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왕쓰샹은 200여년 동안 이어진 조선과 명의 유례없는 긴 평화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외교의 수사와 의례에 쏟은 결과이며, 이는'조선이 만든' 것이라 강조한다. '사대'와 '자소'가 고전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약소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고, 조선 또한 고전적 모델에 따라 정해진 설계도를 따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조선-명 외교 담론에서 '사대'가 공공연했던 것은 외교의 수사적 구체화의 결과로, 조선의 외교관들(과 명나라 대담자들)이 사대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규범과 선례를 만들어낸 '의도적인 산물'임을 강조한다.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와 같은 세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북미에서 한국사를 공부한 옮긴이 조일수(미 브랜다이스대 연구원)는,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북한을 제외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침략을 상상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사대'에 대한 조선과 21세기 한국의 인식 간극을 키웠다고 옮긴이 후기에서 밝힌다. 또한, 한국 학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장, 즉 중국이 처음부터 문화적인 기준에 따라 조선을 특별 대우했다거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질서가 서양이나 일본에 비해서 평화주의적이라는 주장은 조선이 사대주의에 빠졌다는 주장만큼이나 결과론적이며 실증될 수 없다며 예리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이 책이 기존의 '한중'관계사나 '중한'관계사와 다른 역사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선의 전략은 제국 건설에 참여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여기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이 빛을 발한다. 조선과 명 관계의 특성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 약자인 조선은 명나라와 단순히 일개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제국 전통'의 무게를 등에 업고 고대의 과거를 주장하는 경쟁자로 맞서는 방법을 통해 조선의 지위를 협상해 갔다. 조선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외교란 고토를 회복하려는 명나라의 야망을 물리치고, 보편적 권위의 상징에 대한 제국의 질투 어린 독점을 해소하며, 공동의 국경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고, 경제적·정치적 접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은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왕권을 보존하고 명의 주장을 제한할 수 있는 포용 전략을 모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략은 제국 건설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자신보다 20배나 큰 이웃 나라를 마주하며 거대한 힘의 차이를 실감할 때, 제국 건설 참여는 약자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제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방향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 외교의 의례 및 기록 관행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형성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를 단순하게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조선왕조의 외교 전략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역사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선례는 송나라가 아닌 요, 금, 원 비한족 왕조에서,
조공 관행은 몽골-고려 시대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13세기부터 17세기 전반까지와 동아시아 전역을 시공간으로 한다. 책의 시작은 조·명 관계의 전사(前史)를 통해 공유된 제국 전통이 어떻게 외교적 지침이나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지 보여준 다. 양국 모두 불안정했던 조선왕조로 이어진 서술에서 흥미로운 점은 조선이 취사 채택한'제국 전승'이 송나라 같은 중국식 관행이 아닌 요, 금, 원 등 북방의 비한족 왕조와의 대면에서 나왔으며, 조선-명의 조공 관행, 예를 들어, 국왕의 '교외 영접'이나 사신이 상석인 남쪽을 향해 앉는 의례 등 대부분이 몽골-고려 시대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조선 조정은 이러한 선례를 선별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도덕적 제국의 상을 그려냈고, 제국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국왕과 황제의 결정보다 그 사이를 소통했던 사신들과 통역관 같은 양국의 중개자와 그들의 수사와 의례에 초점을 맞추며, 평화 시대로 보이지만 무수한 변곡점을 맞았던 조선 전기, 200여 년에 걸친 조선과 명의 외교사를 풀어낸다. 명나라 표전문 사건, 의례 참월, 왕위 찬탈, 책봉, 여진 정벌 등 중요한 외교 사안에서 천문, 한글, 여성 악사, 기생, 선물, 난파선 처리, 금은 조공, 무기 거래, 이동의 자유, 그리고 역사 서술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사절과 관리들이 사실상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안과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사적·의례적 전략을 사용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15세기와 16세기에 등장한 '도덕적 제국'이라는 신화가 그 이후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조선이 제국과 교류하고 제국적 전통에 개입한 것이 한국사의 흐름을 변화시켰을까? 임진왜란이란 예측 불가능한 전쟁이 터졌을 때,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방어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은, 그동안 조선-명 질서의 견고함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이 명 제국에 200년 동안 투자한 것은, 유사시 명군을 소집하여 조선을 방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중원과 북방의 위협이었고, 이를 이미 막아냈기에 권근, 변계량, 신숙주, 서거정 등 15세기 조선 외교의 설계자들은 명의 원군을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결론에서 임진왜란의 발발부터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기까지 조선-명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결국 파탄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좇으며, 한중 관계의 길고 미묘하며 복합적인 흐름을 마무리한다. 미국의 절대 위치가 흔들리고 중국의 부상이 부딪치는 동아시아의 전환기를 맞아, 조선과 같이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한국이 어떻게 생존을 도모하며 미래를 열어야 할지 조선의 전략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조선 출신의 경계인들, 공녀와 환관에 주목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흥미로운 또 다른 주제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조선 출신 '경계인'들이다. 명나라에 보내졌던 친언니가 영락제를 따라 순장 당한 이후에도 오빠에 의해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던 한계란韓桂蘭(1410-1483)을 비롯한 공녀들도 있고, 정동鄭同(1415?-1483)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 출신 명나라 환관들도 나온다. 자신이 팔아넘겨졌다고 생각한 한계란은 오빠를 비롯한 친정 가족들을 저주했고, 약소국에서 태어난 데다 미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면 남성성을 잃지는 않았을 소년들은 비자발적으로 거세당해 중국으로 보내지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한계란은 조선에 있던 그녀의 친족들과 함께 조선과 명나라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선 측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조선 출신 환관들은 명나라의 사절단을 이끌고 조선을 오가며 양국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이 책을 옮긴 조일수는 "한국 학자들은 이들이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특히 환관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협조마저도 물질적인 보상을 바란 의도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탐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들은 부모의 나라마저 자신의 사익을 위해 팔아먹은 도덕적 단죄斷罪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책(7장)에서 지적하듯, 그들이 명나라 사신의 자격으로 조선에 왔음에도 때때로 조선의 왕에게 절을 올리며 본래 조선 사람임을 말한 그들의 고국에 대한 애정 표현은 실제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원제 Boundless Winds of Empire)은 중국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사(언어)와 의례'의 방식을 통해 본 새로운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로, 명나라의 자의식마저 미묘하게 변형시켜 간 조선의 지능적인 대명 외교사를 추적한다. 저자 왕쓰샹은 고 김자현 교수(미 컬럼비아대)의 제자로, 『조선 왕조의 기원』을 썼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던컨 교수(미 UCLA)의 자리를 이어받아 북미의 한국학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2025 북미아시아학회 제임스 팔레 학술상과 2024 UC버클리 한국학센터 이홍영 도서상 수상작이다.
왕쓰샹은 조선시대 외교력이 실상보다 낮게 평가되어 왔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대'라는 다소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조선왕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그 외교의 전략적·전술적 측면을 오해하게 만든다며 독자들이 현대적 관점이 아닌 당대가 품고 있던 문제의식 속에서 이해해 보길 제안한다. 조선의 사대는 과거에 대한 교조적인 신념이나 위력에 대한 종속이 아니라,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를 약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보여주는 한국의 주체성은, 최근 한국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대등사관', 즉 역사상 한국이 중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일면 비견(比肩) 가능한 나라였다는 한중관계사 연구나,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너그러운 포용력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중국의 중한관계사 연구를 반박하는 것으로, 조선과 같이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국가의 기민한 능동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조선이 그렇게 함으로써 제국 질서에서 조선의 위치를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전통 속으로 스스로를 편입시키고 그 전통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조선 측이 사대주의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는 '도덕적 제국'의 신화를 수사와 의례를 통해 반복해서 표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황제와 그 대리인들에게 조선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이야말로 제국이 되는 최선의 길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명나라가 도덕적인 제국이라면 조선의 정치적 온전함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내고 구체화한 것이다.
수사와 의례를 통한 조선의 지능적인 대중국 외교
이 책의 시작점인 명나라 태조 홍무제의 등장은 고려와 조선에 실존적 위협이었다. 1394년, 조선의 국왕이 황제의 신하로 인정하는 새로운 인장과 고명을 요청했을 때, 홍무제는 "경솔함, 무례, 모욕이 섞여 있다."며 조선 사절들을 구금, 매질하거나 귀양을 보냈다. 나아가 서한 작성자인 정도전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그가 조선에 '자위성교(自爲聲敎)'를 하라고 했던 것은, 조선을 오랑캐 취급하며 조공 받을 가치도 없다며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 영락제가 베트남을 침공하고 몽골을 원정한 것처럼, 먼 옛날 한사군을 설치했듯 옛 영토 회복을 위한 군사적 침공도 할 수 있다며 위협한 것이기도 했다.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을 겪은 터에, 조선은 중국이 통일된 이상 핵심 지역인 북중국 평원과 지리적으로 이어져 있는 너무나 가까웠다. 따라서 중국에 '강대강'으로 맞설 수 없었다. 마치 코끼리와 함께 잠을 자는 것 같은 상황에서, 조선은 긴장하며 외교적으로 대응했다.
여기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군신들은 때때로 중국 황제의 가장 충순한 신하를 자처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가장 회피하고 싶은 이'사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기존 위계질서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일 뿐일까? 이러한 틀로서는 조선의 의례 및 수사 활동은 기껏해야 정치 이념의 부수적 반영에 불과할 것이다. 또 조선 조정이 외교적 노력의 대부분을 여기에 집중했으므로 그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조선의 주체성을 선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왕쓰샹은 200여년 동안 이어진 조선과 명의 유례없는 긴 평화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외교의 수사와 의례에 쏟은 결과이며, 이는'조선이 만든' 것이라 강조한다. '사대'와 '자소'가 고전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약소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고, 조선 또한 고전적 모델에 따라 정해진 설계도를 따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조선-명 외교 담론에서 '사대'가 공공연했던 것은 외교의 수사적 구체화의 결과로, 조선의 외교관들(과 명나라 대담자들)이 사대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규범과 선례를 만들어낸 '의도적인 산물'임을 강조한다.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와 같은 세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북미에서 한국사를 공부한 옮긴이 조일수(미 브랜다이스대 연구원)는,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북한을 제외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침략을 상상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사대'에 대한 조선과 21세기 한국의 인식 간극을 키웠다고 옮긴이 후기에서 밝힌다. 또한, 한국 학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장, 즉 중국이 처음부터 문화적인 기준에 따라 조선을 특별 대우했다거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질서가 서양이나 일본에 비해서 평화주의적이라는 주장은 조선이 사대주의에 빠졌다는 주장만큼이나 결과론적이며 실증될 수 없다며 예리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이 책이 기존의 '한중'관계사나 '중한'관계사와 다른 역사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선의 전략은 제국 건설에 참여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여기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이 빛을 발한다. 조선과 명 관계의 특성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 약자인 조선은 명나라와 단순히 일개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제국 전통'의 무게를 등에 업고 고대의 과거를 주장하는 경쟁자로 맞서는 방법을 통해 조선의 지위를 협상해 갔다. 조선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외교란 고토를 회복하려는 명나라의 야망을 물리치고, 보편적 권위의 상징에 대한 제국의 질투 어린 독점을 해소하며, 공동의 국경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고, 경제적·정치적 접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은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왕권을 보존하고 명의 주장을 제한할 수 있는 포용 전략을 모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략은 제국 건설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자신보다 20배나 큰 이웃 나라를 마주하며 거대한 힘의 차이를 실감할 때, 제국 건설 참여는 약자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제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방향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 외교의 의례 및 기록 관행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형성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를 단순하게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조선왕조의 외교 전략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역사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선례는 송나라가 아닌 요, 금, 원 비한족 왕조에서,
조공 관행은 몽골-고려 시대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13세기부터 17세기 전반까지와 동아시아 전역을 시공간으로 한다. 책의 시작은 조·명 관계의 전사(前史)를 통해 공유된 제국 전통이 어떻게 외교적 지침이나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지 보여준 다. 양국 모두 불안정했던 조선왕조로 이어진 서술에서 흥미로운 점은 조선이 취사 채택한'제국 전승'이 송나라 같은 중국식 관행이 아닌 요, 금, 원 등 북방의 비한족 왕조와의 대면에서 나왔으며, 조선-명의 조공 관행, 예를 들어, 국왕의 '교외 영접'이나 사신이 상석인 남쪽을 향해 앉는 의례 등 대부분이 몽골-고려 시대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조선 조정은 이러한 선례를 선별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도덕적 제국의 상을 그려냈고, 제국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국왕과 황제의 결정보다 그 사이를 소통했던 사신들과 통역관 같은 양국의 중개자와 그들의 수사와 의례에 초점을 맞추며, 평화 시대로 보이지만 무수한 변곡점을 맞았던 조선 전기, 200여 년에 걸친 조선과 명의 외교사를 풀어낸다. 명나라 표전문 사건, 의례 참월, 왕위 찬탈, 책봉, 여진 정벌 등 중요한 외교 사안에서 천문, 한글, 여성 악사, 기생, 선물, 난파선 처리, 금은 조공, 무기 거래, 이동의 자유, 그리고 역사 서술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사절과 관리들이 사실상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안과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사적·의례적 전략을 사용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15세기와 16세기에 등장한 '도덕적 제국'이라는 신화가 그 이후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조선이 제국과 교류하고 제국적 전통에 개입한 것이 한국사의 흐름을 변화시켰을까? 임진왜란이란 예측 불가능한 전쟁이 터졌을 때,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방어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은, 그동안 조선-명 질서의 견고함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이 명 제국에 200년 동안 투자한 것은, 유사시 명군을 소집하여 조선을 방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중원과 북방의 위협이었고, 이를 이미 막아냈기에 권근, 변계량, 신숙주, 서거정 등 15세기 조선 외교의 설계자들은 명의 원군을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결론에서 임진왜란의 발발부터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기까지 조선-명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결국 파탄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좇으며, 한중 관계의 길고 미묘하며 복합적인 흐름을 마무리한다. 미국의 절대 위치가 흔들리고 중국의 부상이 부딪치는 동아시아의 전환기를 맞아, 조선과 같이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한국이 어떻게 생존을 도모하며 미래를 열어야 할지 조선의 전략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조선 출신의 경계인들, 공녀와 환관에 주목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흥미로운 또 다른 주제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조선 출신 '경계인'들이다. 명나라에 보내졌던 친언니가 영락제를 따라 순장 당한 이후에도 오빠에 의해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던 한계란韓桂蘭(1410-1483)을 비롯한 공녀들도 있고, 정동鄭同(1415?-1483)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 출신 명나라 환관들도 나온다. 자신이 팔아넘겨졌다고 생각한 한계란은 오빠를 비롯한 친정 가족들을 저주했고, 약소국에서 태어난 데다 미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면 남성성을 잃지는 않았을 소년들은 비자발적으로 거세당해 중국으로 보내지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한계란은 조선에 있던 그녀의 친족들과 함께 조선과 명나라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선 측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조선 출신 환관들은 명나라의 사절단을 이끌고 조선을 오가며 양국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이 책을 옮긴 조일수는 "한국 학자들은 이들이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특히 환관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협조마저도 물질적인 보상을 바란 의도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탐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들은 부모의 나라마저 자신의 사익을 위해 팔아먹은 도덕적 단죄斷罪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책(7장)에서 지적하듯, 그들이 명나라 사신의 자격으로 조선에 왔음에도 때때로 조선의 왕에게 절을 올리며 본래 조선 사람임을 말한 그들의 고국에 대한 애정 표현은 실제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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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5
연표 18
도입 한국과 제국의 전통
제국의 모습ㆍ26 | 한중관계사 속 의례와 수사ㆍ33
제국 국가가 아닌 제국 전통ㆍ37
외교의 레퍼토리: 접근 방식과 출처ㆍ47
1부 | 공유된 과거
1장 위대한 자를 섬기다
사대와 유원ㆍ65 | 외교 표문ㆍ72
'제통 전승'을 인정하다ㆍ78 | 명나라 표전문 사건ㆍ86
2장 권위의 조건들
실지회복주의의 그늘ㆍ99 | 의례 참월ㆍ104
주권으로서의 '성교'ㆍ111 | 세종의 하늘ㆍ117
세종의 알파벳ㆍ123 | 세종의 악사들ㆍ129
2부 | 외교의 실천
3장 겉모습의 이면
수양의 사명ㆍ144 | 요동을 통하는 길ㆍ147 | 황제의 조정에서ㆍ152
이중적 진실ㆍ155 | 책봉을 받다ㆍ165
4장 제국의 이름으로
황실과 경쟁하다: 1459년 진가유의 사행ㆍ177
낭발아한의 죽음: 장녕의 1460년 사행ㆍ180
중개자로서의 명: 마감의 1461년 사행ㆍ186
정의로운 전쟁: 건주에 대한 공격ㆍ197
3부 | 에큐메니컬 경계
5장 제국을 구슬리다
황제의 우월감ㆍ215 | 중개인의 몫ㆍ219 | 관료의 생각ㆍ226
6장 조선을 표현하다
바다를 표류하다ㆍ244 | 변무 운동ㆍ249 | 문 밖에 서다ㆍ261
7장 의례를 다투다
불안정한 신호들ㆍ272 | 교외에서의 영접ㆍ276
왕의 면복ㆍ283 | 말로 오랑캐를 복종시키다ㆍ293
4부 | 문장의 제국
8장 눈부시게 빛나는 꽃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사행시ㆍ317 | 산수와 역사ㆍ324
동점지화인가, 동방지화인가?ㆍ331 | 『시경』의 재현ㆍ340
9장 사신의 미덕
기생을 물리치다ㆍ352 | 평판의 정치학ㆍ360
상상된 정자들ㆍ371
10장 복종하지 않는 동방
기자신화의 설화 체계ㆍ381 | 공간의 생산ㆍ388
조작된 고대ㆍ394 | 고전의 재해석ㆍ402
결론 도덕적 제국이라는 신화
임진전쟁과 그 이후ㆍ415
과거에는 '올바른 이름'이 없다ㆍ423
왕조와 통치자들 431
미주 436
참고문헌 516
옮긴이 후기 552
찾아보기 575
연표 18
도입 한국과 제국의 전통
제국의 모습ㆍ26 | 한중관계사 속 의례와 수사ㆍ33
제국 국가가 아닌 제국 전통ㆍ37
외교의 레퍼토리: 접근 방식과 출처ㆍ47
1부 | 공유된 과거
1장 위대한 자를 섬기다
사대와 유원ㆍ65 | 외교 표문ㆍ72
'제통 전승'을 인정하다ㆍ78 | 명나라 표전문 사건ㆍ86
2장 권위의 조건들
실지회복주의의 그늘ㆍ99 | 의례 참월ㆍ104
주권으로서의 '성교'ㆍ111 | 세종의 하늘ㆍ117
세종의 알파벳ㆍ123 | 세종의 악사들ㆍ129
2부 | 외교의 실천
3장 겉모습의 이면
수양의 사명ㆍ144 | 요동을 통하는 길ㆍ147 | 황제의 조정에서ㆍ152
이중적 진실ㆍ155 | 책봉을 받다ㆍ165
4장 제국의 이름으로
황실과 경쟁하다: 1459년 진가유의 사행ㆍ177
낭발아한의 죽음: 장녕의 1460년 사행ㆍ180
중개자로서의 명: 마감의 1461년 사행ㆍ186
정의로운 전쟁: 건주에 대한 공격ㆍ197
3부 | 에큐메니컬 경계
5장 제국을 구슬리다
황제의 우월감ㆍ215 | 중개인의 몫ㆍ219 | 관료의 생각ㆍ226
6장 조선을 표현하다
바다를 표류하다ㆍ244 | 변무 운동ㆍ249 | 문 밖에 서다ㆍ261
7장 의례를 다투다
불안정한 신호들ㆍ272 | 교외에서의 영접ㆍ276
왕의 면복ㆍ283 | 말로 오랑캐를 복종시키다ㆍ293
4부 | 문장의 제국
8장 눈부시게 빛나는 꽃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사행시ㆍ317 | 산수와 역사ㆍ324
동점지화인가, 동방지화인가?ㆍ331 | 『시경』의 재현ㆍ340
9장 사신의 미덕
기생을 물리치다ㆍ352 | 평판의 정치학ㆍ360
상상된 정자들ㆍ371
10장 복종하지 않는 동방
기자신화의 설화 체계ㆍ381 | 공간의 생산ㆍ388
조작된 고대ㆍ394 | 고전의 재해석ㆍ402
결론 도덕적 제국이라는 신화
임진전쟁과 그 이후ㆍ415
과거에는 '올바른 이름'이 없다ㆍ423
왕조와 통치자들 431
미주 436
참고문헌 516
옮긴이 후기 552
찾아보기 575
저자
저자
왕쓰샹 Sixiang Wang
미국 UCLA 아시아언어학부 교수.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전근대사와 근세 동아시아의 문화적·지적 상호작용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비교사적 관점에서의 근세 제국들, 과학 및 지식의 역사, 그리고 한국의 정치·문화사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문자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아카데미의 벽을 넘어 조선시대 연구자들의 교류와 협업을 장려하고 있는 The Chos?n History Society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 (원제 Boundless Winds of Empire: Rhetoric and Ritual in Early Chos?n Diplomacy with Ming China)으로, 2025 북미아시아학회 제임스 팔레 학술상, 2024 UC버클리 한국학센터 이홍영 도서상을 수상했다.
미국 UCLA 아시아언어학부 교수.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전근대사와 근세 동아시아의 문화적·지적 상호작용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비교사적 관점에서의 근세 제국들, 과학 및 지식의 역사, 그리고 한국의 정치·문화사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문자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아카데미의 벽을 넘어 조선시대 연구자들의 교류와 협업을 장려하고 있는 The Chos?n History Society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 (원제 Boundless Winds of Empire: Rhetoric and Ritual in Early Chos?n Diplomacy with Ming China)으로, 2025 북미아시아학회 제임스 팔레 학술상, 2024 UC버클리 한국학센터 이홍영 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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