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시조사랑시인선 79)
진길자 제7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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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Ⅰ. 시작하며
향목向木 진길자 시인의 작품집 『신호등』 상재上梓를 축하드린다.
시인은 벌써 여섯 번이나 작품집을 낸 바 있는 화려한 경력의 시인이다. 등단한 경력 또한 사반세기를 훌쩍 넘긴 원로급 시인이다.
시조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까다롭고 격조가 높은 예술 분야이다. 공자께서도 '시가 마음 안에 있을 때는 뜻[志]이 되지만 그 품은 뜻이 말로 나타나면 시詩가 된다.'라고 했다. 고려 중기의 시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는 '시詩는 뜻을 세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율律은 음의 배열로 맞추면 되지만 시에 심오한 뜻이 담기지 않으면 맛이 없다.'라고 했다.
시조時調는 공자나 백운거사의 말처럼 특히 깊은 뜻이 담겨야만 하는 언어 예술이다. 거기에 더해서 형식이라는 엄격한 규칙을 지켜내면서 작가가 사유하는 세계나 감정을 실어야 하므로 창작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향목 선생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현대시조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시조 작품의 예술성은 단순히 형식과 언어의 수사학적修辭學的(rhetoric) 표현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로 짜여 있는 공동체이다.
요즘 시중에 나돌고 있는 시조 작품들을 보면 어떤 사물에 대한 설명 또는 수식어의 남용으로 오히려 시조의 본질을 흐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반하여 향목 시인의 작품들은 작품에 담긴 뜻과 외형상 나타난 미학적 측면을 모두 살려낸 마술사 같은 재주를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황혼 녘을 즐기는 홍학의 춤사위와 다르지 않다.
향목 시인은 그의 등단 이력이 말해 주듯 강남문인협회 회장과 전국 여성시조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이 어렵던 시절에도 강남문인협회를 잘 이끌어 연임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다고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한국여성시조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체제를 정비하고 많은 회원을 유치하여 명실상부하게 단체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도 작품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은 필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루는 신작이라며 「꽃등심」이라는 작품을 보여줬는데 나는 그 작품을 접하는 순간 작가의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재발견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스피노자가 말했다고 알려진 '사과나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향목 시인의 창작 태도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시조를 짓는 모든 이가 시조의 정체성을 지키지 않더라도 난 오늘 창작하는 단 한 편의 평시조에 정체성을 심겠다.'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는가? 난무하는 창작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향목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사유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미학과도 물론 연관은 있겠지만 이보다도 더 심오한 뜻이 담겼을 것 같다. 말마디의 아름다움이나 낯설게 하기의 한 방편으로 언어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냈겠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작가의 철학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 상재된 100여 수의 작품도 하나같이 사유의 폭이 넓다. 특히 시조의 정체성을 흐트러짐 없이 잘 지켜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 어느 것 하나 이런 범주를 벗어난 작품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체성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의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품격을 높인다.
이제 시인이 사유하는 정신세계로 들어가서 작품 하나하나를 파헤쳐보기로 한다.
Ⅱ. 꽃밭 구경
뒤뜰의 감나무가 늦 볕을 받아 안고
연기의 법에 따라 없던 등불 내달 때면
다디단 까치밥보다 만추 향은 더욱 짙다.
-「가을 정취」 둘째 수
이 작품은 의미하는 바가 심오하다. 연기의 법칙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의미한다. 윤회의 법칙이며 반야경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연기의 법칙이란 세상 만물은 반드시 어떤 인연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감나무가 가을 햇살을 받아 안고 노랗게 잘 익은 감을 가지마다 내다는 것은 무에서[空] 나온 유[色]를 만드는 법칙에 따른 자연현상이지만 그냥 자연의 섭리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들어가서 윤회사상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반드시 언젠가는 다시 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도 역시 연기의 법칙에 따른 것뿐이다. 만남은 색[色]이요 헤어짐은 공[空]이 아닐까. 작가가 하고픈 말은 색과 공이라는 연기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시선은 감나무 가지에 달린 군침 도는 감이 아니라 존재와 소멸에 대한 연기의 법칙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종장에 '만추의 향기'라는 시어를 도입하여 독자의 시선을 묶어두고 있다.
「가을 정취」라는 평범한 소재를 요리하여 이같이 깊은 맛을 내는 글솜씨가 대단하다.
오르막 내리막길
힘겹고 버겁지만
귀를 열고 기다리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연탄이 묻은 얼굴에
백옥 같은 꽃이 핀다
-「봉사의 힘」 전문
이 작품을 접하면서 봉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이다. 강자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약자를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면 봉사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 낮은 자세는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순수해야 한다.
중장에 '귀를 열고 기다리는 할머니'라는 표현이 참 아름답다. 할머니 얼굴을 떠올리면 오르막길도 내리막길 같고 얼굴에 묻은 연탄 가루마저도 한 송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종장에서 시커먼 연탄 가루를 백옥 같은 꽃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솜씨가 비범하다. 연탄 묻은 얼굴에 피는 꽃은 검은 꽃이 아니라 목련처럼 화사하고 깨끗한 꽃이다. 검은 것이 희다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진실이 된다.
시인이 발굴한 시어 하나가 희망이 되고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어찌 보면 실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봉사라는 꽃이다. 봉사는 나눔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나눔은 삶의 가치가 된다. 나눌 때의 보람보다 크든 작든 간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천만 근 무거운 짐 양어깨를 짓눌러서
뼈마디 어긋나고 살점이 찢길망정
뿌리를 지켜내려는 그 의지가 시퍼렇다.
꺾인 절은 패배 아닌 자식 위한 부정父情이다.
눈밭에 섰다 하여 꿈까지 버렸겠나.
설한풍 몰아친다고 끓는 피가 없겠는가.
흐르는 세월 속에 상처마저 향이 되어
대대손손 전하리라 집안의 가보처럼
설산에 우뚝 선 노송은 수행하는 노승이다.
-「설산수행雪山修行」 전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셋째 수 종장에 등장한다. 작가가 눈[雪] 속에 서 있는 노송을 보고 이를 우리의 삶에 빗대어 쓴 걸작이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다. 한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가장의 책임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옛날의 아버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조상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 죽음과 맞바꾸더라도 반드시 집안의 뿌리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눈 속에 묻힌 노송의 뿌리는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렇지만 자식을 생각하면 그 뼈저린 고통은 기쁨이 된다.
후손을 이어가려는 노송의 의지는 우리 아버지의 의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수에서는 눈 맞아 꺾인 가지는 아버지의 의지가 꺾인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식 사랑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내야 하는 인내라고 생각한다. 굴복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중장에서 그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꿈을 버리지 않는 끈기와 종장에서 말하는 꽁꽁 언 몸이지만 피는 끓는다고 한다. 아버지의 피는 식어서는 안 되는 천부적 소명이다. '얼다'와 '끓는다'라는 모순된 어법(역설법: oxymoron)을 구사함으로써 작품을 더욱 맛깔나게 만들고 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이 글을 보며 어떤 절망적인 경우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셋째 수는 노송을 설산에서 수행하는 수도승으로 생각한다. 부처님도 득도하기 전에 설산에서 6년간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작가가 사유하는 세계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짐작이 간다.
하세월 살아오면서 바람에 찢기고 부러진 상처는 오직 인내와 극기로 극복해 내면 그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빛나는 훈장처럼 옹이로 박힐 것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라'는 작가의 외침이 내 귓전을 때리고 간다.
세 수로 된 연시조이면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문장이 짜임새 있고 간결한 것은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대단함을 입증하는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물안개 핀 산길 따라
발길 멈춘 노인처럼
설악에 안긴 단풍
지난날을 반추하네
성숙은 곱게 타는 것
소리 없이 지는 거다
-「단풍을 보며」 전문
초장의 '발길 멈춘 노인처럼'이라는 표현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악산 단풍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성숙'이라는 시어에 멈추어 있다. 단풍 역시 한 생애의 성숙이고 소리 없이 지는 것도 성숙이다. 작가는 자연현상 속에서 자신을 반추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단풍은 어쩌면 작가 자신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도 단풍처럼 곱게 늙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아닐까?
어둠에 싸인 적막 사방으로 둘러치고
면벽 수행 중에 풍경이 울고 있다
아직도 득도를 못 해 애간장이 녹나보다
번뇌 속 바람 소린 설법인 듯 다가와서
애절한 목소리로 법당문을 두드리며
단 한 분 임을 뵈오려 문을 열라 재촉한다
-「산사에서」 전문
이 작품은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든다. 초장을 보면 '적막'에 '어둠'을 끌어들여 그 상황을 더욱 고요하게 만든다. 그때 풍경소리가 들려오면 적막은 깨지지만, 화자는 그 애절한 풍경소리마저 적막 속에 묻어버린다. 그 종소리는 부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답답함에서 애간장이 녹는 요란한 침묵이다. 풍경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또 애간장을 녹이는 것처럼 활유법으로 처리하여 더욱 생동감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
둘째 수에서는 바람 소리도 설법으로 듣는다. 법당의 문풍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다. 화자에게 어떤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이다. 종장은 더욱 애절하다. 바람까지도 법당 안에 계신 임 -부처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임은 절대적 힘을 가진 진리의 신을 말함일 것이지만 임 말씀을 듣기 위한 생명체로 인식한다.
작가의 시세계詩世界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며 유한한 인간의 사고를 아쉬워하는 그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주를 창조한 신의 위대함에 비하면 우리의 존재란 한 점 티끌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자연의 숨소리가
꽃이 되어 내게 오면
자태가 고고해서
가슴이 울렁댄다.
햇살에 눈감고 앉은 나
봄바람이 틀림없다.
-「봄날의 꽃」
초장 '자연의 숨소리'가 '꽃이 된다.'라는 비유는 논리에 안 맞는 것 같지만 깊이 음미해 보면 숨소리가 꽃이 되는 공감각적 표현으로 상당히 신선한 언어의 조합이 된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의 숨소리로 치환置換한 것이 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기쁨에 젖은 화자와 자연과 꽃과 봄바람이 모두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한 장주지몽莊周之夢과 다름이 없다. 즉 하나의 자연현상이 하나는 꽃으로, 하나는 봄바람으로, 또 하나는 작가로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라는 철학적 사고이다.
어떤 사물의 주체와 객체의 분별심이 사라져 조화를 이룬 진실한 세계에서 너와 나를 가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말로 읽힌다.
짧은 글 안에 이처럼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마다 독립성 연결성 완결성이 분명하고 문장이 쉬우면서 간결하고 함축과 상징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흐르는 물길 따라
다양한 벗 만나면서
꽃들도 피워내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말없이 청산을 키워
온갖 생명 살게 한다.
-「물」 전문
이 작품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다.
이 작품이 맛나게 읽히는 것은 의인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백미白眉는 종장이다. 물은 흘러가면서 소리를 낸다. 그런데 왜 말없이 청산을 키운다고 말하는 것일까? 화자의 마음을 열고 그 연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물은 흘러가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은 물이 없으면 한순간도 버텨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물은 단 한 번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거나 자기가 베푼 자선을 대단한 것처럼 떠벌린 적이 없다. 필요하면 먹게 두고 필요 없으면 그냥 가지고 가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다. 오직 선한 마음뿐이다. 이 큰마음이 청산까지도 키운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시적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대개 시는 비유와 상징이라 말하니까 비유라는 말에 함몰되어 엉뚱한 비유를 하기 쉬우나 시인은 그 비유를 넘어 자연의 이치를 시로 변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문장은 쉽고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작가의 겸손한 미덕을 발견한 작품이다.
햇살을 끌어안고 스스로 빛을 낸다
화사한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지만
지금은 스친 인연만 가지 끝에 매달렸다
허벅진 꽃송이가 온 세상을 다 품어도
생의 무게 버거워서 잡은 손 놓고 있나
비워서 가득 찬 자리에 봄이 와서 놀고 있다
눈부신 이름마저 놓아버린 그 순간에
스미는 바람 한 점 환생을 재촉한다
한 무리 나비가 되어 창공을 날아가네
-「아, 벚꽃」 전문
이 작품도 심오한 맛이 있다. 첫수 초장을 보면 '햇살을 끌어안고 스스로 빛을 낸 듯'이라고 함으로써 우선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벚꽃 잎이 반짝이는 것은 햇빛의 역할 때문이다. 벚꽃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햇살은 내려온다. 그런데 마치 벚꽃이 잎에 받고 안 받고 하는 선택권을 가진 것처럼, 벚꽃이 스스로 햇살을 끌어안는다고 함으로서 더욱 시적인 맛을 불러일으킨다. 백미는 역시 종장이다. '지금은 스친 인연만 가지 끝에 매달렸다.' 스쳐 간 인연을 보는 눈은 시인만이 가진 재능이다.
수많은 인파가 구경 차 지나간 것도 분명 인연은 인연이다. 불가에 말하는 인연이란 말이 또다시 다가온다. 인연因緣이란 만나고 흩어지는 연기법緣起法을 구체적이며 현상학적으로 말하는 어휘이다. 모든 만남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연기법 때문이다. 길 가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3생의 인연이 이었어야 현세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꽃잎이 떨어진 빈 가지에 스쳐 간 인연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 아니면 발굴하기 어려운 시어이다. 이런 표현 때문에 시를 지으며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짜릿하다.
둘째 수 초장 '세상을 다 품는다'라는 표현은 수많은 사람이 꽃구경을 왔다는 단순한 표현을 이렇게 멋지게 엮어낸 것이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꽃이 핀 가지는 힘에 부쳐서 허공을 잡고 있다고 한다. '허공'이란 공간을 사울로 뒤바꾼 솜씨도 보통은 아니다. 그런 데 꽃이 다 떨어진 지금은 허전하거나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사고이겠지만 작가는 비워냄을 통하여 오리려 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설적인 수사법이다. 그것도 '봄으로 채운다.'라고 하면 욕심으로 볼 수 있기에 '봄이 와서 논다'라고 슬쩍 바꾸어 표현하였다. 시조는 토씨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아마 작가는 이런 시조의 원리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 수는 죽음을 생으로 승화(환생)시키고 있다.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수한 나비로, 환생한 생명체로 인식한다. 죽음을 죽음으로 인식하면 슬프지만, 생의 연속으로 보면 환희가 된다. 그래서 날아가는 꽃잎을 보며 우리는 환호하는 것이 아닐까?
시린 세월 삭혀가며
홀로 선 고갯마루
달빛 속 외로움은
눈 속에 차가워도
초연이 돌아앉아서
기다림을 배운다.
-「겨울 나목」
이 작품은 좀 특이한 작품이다. 대개 '겨울 나목' 하면 눈에 묻힌 모습을 묘사하기 바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묘사가 아니라 인내심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초장에 '시린 세월 삭혀가며 홀로 선 고갯마루'는 어느 고목 하나가 잎을 다 떨구고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의 삶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 없다. 누구를 막론하고 시린 세월은 있었을 것이다. 중장은 초장의 허전함을 더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 감정을 더욱 확장한 모습이다. 눈 위에 내려앉은 별빛은 더욱 차고 괴괴하다. 느닷없는 표현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중장의 역할을 잘 표현한 것이다. 중장은 초장을 보완하거나 확장하는 방향으로 써야 하는 데 이에 딱 맞은 답안이다.
종장은 이제 마무리할 최종 단계이다. 즉 화자의 감정이 잘 드러나게 되어야 한다. '초연이 돌아앉아서 기다림을 배운다.'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이는 화자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겨울 나목'을 쓰고 있지만, 화자 스스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마음가짐을 슬쩍 내비친다.
누가 말하기를 '시는 삼인칭 단수 현재형이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삼인칭으로 도입된 사물은 화자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겨울 나목'은 보조관념이 된다. 초연超然은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는 태연한 자세를 말함이다. 세상만사는 조급증을 갖는다고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연함을 갖는 것은 조물주의 뜻을 따르는 행위이다.
이 짧은 단시조 한편을 통하여 작가는 지금 기다림의 미학美學을 강조하고 있다. 이규보 시인이 말한 '화자에 담긴 뜻'이 있어 더욱 깊은 맛을 느낀다.
벚꽃잎 흩뿌리는
강둑에 풀썩 앉아
지는 꽃 서러움을
먹먹하게 바라보며
한때는 모두 꽃이지,
돌아보면 꽃밭이지
-「꽃 시절」 전문
누구에게나 꽃 시절은 있었다. 비록 꽃 시절은 아니라 해도 그리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어느 시인은 '사무친 서러움도 돌아보면 꽃밭이다.'라고 노래했다. 세월은 공정한 심판관이라 누구에게나 '황혼'이라는 원하지 않는 선물 강제로 맡기고 간다. 소녀 시절에는 굴러가는 가랑잎만 보아도 웃음이 터지는 법이지만 황혼이 되면 지는 잎새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가게 마련이다.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으면 강둑에 풀썩 주저앉을까? 마음이 먹먹하다고 한다.
'먹먹하다'라는 말은 '어떤 감정으로 꽉 차거나 막힌 느낌'이 있을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이 시어 하나만으로 화자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종장에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모두 꽃이다. 꿈이 있고 패기가 있고 두려움을 모르던 시기였다. 화자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희망을 품는다.
시조 종장은 이처럼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한 치도 못 벗어날 발 묶인 몸이 되어
안 된다 절규하며 화마의 밥이 된 숲
하늘도 서러웠는지 온종일을 울고 있다
나부낌도 지저귐도 모두가 멈춘 자리
고요만 쌓여있어 봄 온 줄 모를까 봐
새 이웃 옮겨 심으며 벗이 되라 다독인다.
다시 온 봄소식에 고개만 갸웃갸웃
흙에 묻힌 지체에다 희망의 꿈을 싣고
봄볕을 받아먹느라 안간힘을 쏟는다
-「화마가 지난 뒤/나무 심기」 전문
해마다 원인 모를 산불이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나고 있다. 천년 고찰도 화마가 집어삼키고 있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모두 각성하고 다시는 산불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재만 남은 산자락에 4월 식목일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이 동원되기도 하고 여러 단체가 봉사자로 나서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봉사활동의 하나로 나무 심기를 하러 가서 타죽은 나무를 보며 그 심회를 시조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는 현장의 모습을 시조 형식에 맞게 설명문처럼 창작했겠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 담긴 나무의 아픔을 보고 이를 형상화한 후 시조로 엮어냈다.
첫수를 보면 우선 긴장미가 뛰어나다. 화마가 덮쳐오는 공포 속에서 나무의 긴장감을 너무나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도망갈 수도 없는 나무를 보며 누군가 발을 묶어두었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시조 창작에 절대 필요한 조미료이다. 이를 어떤 모습으로 발동시키느냐에 따라 작품성이 달라진다. 시인은 나무의 절규를 듣고 있다. 시인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귀이며 이 역시 상상력이 동원된 모습이다.
때마침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화자는 서러움이 북받친 하늘의 눈물이라고 상상한다.
둘째 수에서는 화자의 고운 마음이 엿보인다. 산새도 떠나갔고 동물도 떠나갔고 심지어 벌 나비마저 등을 돌린 삭막한 잿더미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부디 잘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화자의 간절함이 묻어 있음을 발견한다.
중장을 읽으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예년 같은 봄이면 지금 산은 살아서 청산가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이 말은 당나라 시대 동방규東方?가 지은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에서 유래된 밀이지만 산불로 재만 남은 산의 상황을 보면 지금은 봄이 와도 봄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봄이야 봄,'하면서 죽은 산을 흔들어 깨우는 애절함으로 나무를 심고 있다. 형제나 친구의 죽음을 붙들고 통곡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셋째 수는 화마를 피해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을 찬양하는 구절이다.
식물일망정 저승인지 이승인지 알 길이 없어 고개만 갸웃댄다는 표현이 기발하다. 그래도 흙에 묻힌 반신불수일망정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종장도 대단한 생명력이다.
햇볕을 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받아먹는다고 함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향목 시인은 의인법을 너무나 잘 구사하는 시인이다. 모든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어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북송北宋의 시인 소식(동파)은 '시속에 그림이 있어야 한다.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했듯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계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흘려 쓴 시 한 줄을
포기 못 한 욕망으로
고해하듯 적어놓고
마음이 마뜩지 않아
밤을 새워 다듬는다.
-「고뇌」 전문
이 작품에는 시조 한 편을 짓기 위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시 한 줄을 엮어놓고 정체성에 맞게 완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각오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특별히 필자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작품을 보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봄부터 피 터지게 울어야 국화가 피어나듯이 시조 창작 역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조는 외적 내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는다. 즉 지켜야 할 조건들이 아주 많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 완전한 자유와 멋과 품격이 있어야 하는 문학이다.
시조를 모르는 사람은 쉽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문학이다. 게다가 시에서 요구하는 상징과 비유까지 곁들여야 비로소 맛깔난 작품이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조를 창작하는 사람은 감상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감상은 독자의 몫이고 시조를 창작하는 일은 작가의 몫이다. 시조께나 쓴다고 자처하는 사람도 자칫 장의 독립성이나 완결성 연결성을 못 짚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수율이 전부는 아니다. 음수율을 맞추는 일은 초급과정이고 비유와 상징은 중급 과정이고 장의 독립성 완결성과 연결성 그리고 종장에 화자의 감정을 싣는 것은 고급과정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시인은 무엇인가 마뜩잖아 밤을 새운다고 한다. 과연 향목 시인다운 생각이다. 그 인내와 각고의 노력이 만인의 귀감龜鑑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담 넘어 허공에다 두고 간 얼굴 하나
아지랑이 사물 대듯 올봄에도 다시 와서
내 맘을 흔들고 있다, 꽃 빛 봄을 맞으라고
고운 정에 흔들리는 목마른 언덕 위에
코 버선 곱게 신고 풀밭 헤쳐 오신 임이
어느새 축제를 끝냈나, 꽃신들만 나 뒹군다.
-「봄꽃 지다」
첫수는 꽃이 피는 모습을, 둘째 수는 꽃이 지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고思考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허공에다 두고 간 얼굴' '꽃 빛 봄' '목마른 언덕' '꽃신' 같은 표현들이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올봄에도 다시 와서'라는 의인법을 구사함으로 시조를 봄꽃처럼 곱게 구사驅使하고 있다.
둘째 수 초장에 '고운 정에 흔들리는 목마른 언덕'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어느 꽃 한 송이가 메마른 언덕에서 피어있는 모습으로 봄 가뭄에 꽃은 갈증을 느낄 것이다. 꽃의 마음을 곱다고 표현하였다. 이는 작가가 사물을 관찰하는 눈매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언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생명은 유한하기에 핀 꽃은 지게 마련이다. 이미 축제는 끝나고 떨어진 꽃잎만 바람에 나뒹군다. 그러나 작가는 떨어진 꽃잎을 '봄의 요정이 신고 즐기던 꽃신'으로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신선미를 느끼게 만든다.
중장 역시 꽃을 '코 버선을 곱게 신은 임'으로 만들어 새색시의 느낌을 받도록 한 점도 매력적인 구성이다.
하늘을 배경 삼아 설치미술 차린 허공
바지랑대 높이 들려 춤추며 펄럭인다.
거룩한 어머니 손길 온 천하에 알리는 듯.
막대로 툭툭 치며 대작을 걸 때마다
한 생을 달려온 길 천만 개가 사라져도
새파란 허공을 갈라 무지개를 수놓는다
-「거장 巨匠」 전문
허공에 설치미술을 차린다는 착상이 기발하다. 작가는 여기서도 어머니를 떠올린다. 우리의 어머니 삶은 모두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의 희생은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지금 화자의 심정은 위대한 어머니를 온 천하에 알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런데 마침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가 허공에서 펄럭이는 것은 어머니의 공로를 외치는 깃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둘째 수에서 작가는 여인이 살아온 길은 다양하게 많지만, 그가 애쓴 보람은 허공에서 사라지고 마는 운명적 아픔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여인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새파란 하늘에 무지개를 수놓는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남성의 세상은 어땠을까? 아마 암흑이었을 것이다.
무지개는 희망이며 꿈이다.
굽은 길 돌아보면 훌훌 다 털고 싶다
부러진 청솔가지 향기를 품고 살듯
비상등 다시 켜놓고 헛생각을 비춘다.
햇볕에 오래 쬐면 색깔이 바래듯이
덜 익은 삶의 여정 그림자로 붙어 다녀
해 맑은 풍경소리를 가슴에다 달고 싶다
-「길을 찾다가」 전문
평생 찾아 헤매어도 못 찾는 길은 인생길이 아닐까? 살다 보면 답답한 일도 많고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가 하고 자문을 해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로는 부질없는 일에 마음이 끌려 길을 잘못 들어설 수도 있다.
이런 헛생각들이 들어올 때마다 비상등을 켜놓고 자신을 반추해보는 중이다. 중장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록 부러진 청솔가지일망정 응고된 송진은 솔향을 품고 있다. 이런 심정은 아프고 힘든 일상이지만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전에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 글귀 하나가 평생을 붙어 다닌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난다."라는 글귀였는데 이 순간 「길을 찾다가」라는 작품을 읽다 보니 새삼 그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그대로 삶의 냄새를 풍기게 마련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어느 경우든 솔향 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시인의 말처럼 부족함은 평생 따라다닌다. 오죽하면 해맑은 풍경소리를 가슴에 달고 싶을까?
시인의 겸손한 미덕美德이 읽힌다. 겸손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화자는 겸손의 미덕을 유지하려고 맑은 풍경을 달고 싶다고 한다.
우뚝 선 노송하나 솔섬을 못 떠나서
비바람 맞서 살다 등마저 굽어 있네.
한순간 마음이 짠하다, 아버지의 삶을 닮아.
그 그늘에 자란 몸이 철없이 지낸 시절
봄바람 지나가듯 순식간에 보내놓고
지금 와 노송을 보며 한세월을 다시 읽네.
-「솔섬 노을에 앉아」
향목 시인은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첫수 초장에 '노송이 솔섬을 못 떠난다.'로 시작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대개는 솔섬에 '노송하나 우뚝 섰다.'라고 시작하겠지만 의인화하여 노송이 섬을 못 떠난다는 역발상으로 시작詩作을 한다.
마침내 종장에서 그 이유가 밝혀진다. 아버지를 회상한다. 등 굽은 노송은 등이 굽은 아버지이다. 노송 한 그루에서 아버지를 찾아내는 시적 발상이 비범하다.
둘째 수에서는 철없이 굴던 자신의 어린 모습을 중첩(overlap) 시키면서 어른이 된 지금 자신을 돌아보는 문장 구성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한 생애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작가 자신이 살아온 한 생애를 노송 한 그루에서 찾아 완벽하게 매치시키는 눈매가 범상치 않음을 발견한다.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조의 미학으로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작품이다.
절로 패인 가슴에는 공허만 가득한데
옛정이 그리운 듯 새들이 찾아와서
온종일 말벗이 되어 지난 얘기 들려준다
서리꽃 핀 몸을 보고 햇살이 다가와서
앙상한 뼈마디를 쓰다듬는 아침나절
무심한 바람도 와서 가지 끝에 달려 논다.
-「고사목」 전문
이 작품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고사목"을 보고 느낀 소회이지만 우리의 삶에 빗대어 잘 지은 작품이다. 첫수 초장을 보면 '절로 패인 가슴'이라 했는데 이는 세월에 맞서 살다 보니 나무일망정 가슴앓이 때문에 생긴 상처일 것이라 상상하며 이런 표현을 끌어냈을 것이다. 이런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 산새들이 찾아와서 온종일 놀아주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그 종種을 불문하고 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하등생물이라 할지라도 어찌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겠는가.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심안心眼이다.
둘째 수는 우리의 삶을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다. '서리꽃'은 강자强者이고 '고사목'은 약자弱者이며 '햇살'은 정이 많은 선자善者이다.
마치 고통받는 약자를 선하고 덕이 많은 사람이 위로해 주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서 바람마저도 그 아픔을 달래주려고 가지 끝에 달려 논다고 한다. 작가의 선한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시조는 우리 삶에 대한 비유이다. 이 비유가 뜻이 되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느낀 바를 형상화는 잘했다 하더라도 변용의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된 작품을 내놓게 된다. 이 변용(데포르마시옹 deformation)의 과정이 매우 어렵다. 음절 수, 비유와 상징, 문장의 구성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만만한 단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조의 규칙을 단 한 곳도 어기지 않고 이처럼 훌륭한 창작을 했다는 점은 시인의 오랜 경력과 글재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힘겹게 버틴 흔적 여전히 쓸쓸해도
산성엔 봄이 와서 꽃향기를 내 뿜으며
피눈물 쏟아낸 역사 풀잎들이 들고 섰다
-「남한산성 성곽길」
남한산성은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인질로 끌려간 치욕의 현장이다.
그뿐만 아니다. 조선시대 3차에 걸친 천주교 박해로 무고한 신자들이 순교한 성지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현장을 탐방한 시인 역시 아린 가슴을 안고 이 작품을 창작했을 것이다.
초장에서 이미 그 힘들고 비참한 역사를 증언한다. 중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봄은 와서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그 꽃에는, 풀잎에는 피눈물이 묻어 있다고 상상한다. 만개한 꽃을 보면 누구나 환호하며 기뻐하겠지만 화자는 지금 기뻐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종장에서 피눈물 쏟은 역사를 풀잎들이 들고 서서 증언하며 다시는 굴욕의 역사를 짓지 말라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들고 섰다'라는 표현 하나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역사를 잊지 말라는 시위 군중이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풀잎이다.
꽃향기에 취하기보다 풀잎의 아우성을 듣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책무이며 사명이다. 작가만이 누리는 천부적 특권일 수도 있다.
이 간결한 단시조 한편에 함축된 역사가 있고 국가가 나아갈 미래가 있다. 작품성을 보더라도 시조의 특징인 숭고미나 비장미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고 시조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균제미와 작가의 감정을 절제한 아름다움까지 들어 있어 더욱 시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Ⅲ. 꽃구경을 마치고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1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일부만 발췌하여 눈여겨보았지만 여타 작품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란 생각이다. 향목 시인은 그 연륜이 말해 주듯이 작품마다 깊이가 있다. 사물의 겉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작가이다. 어떤 것은 심오한 철학이 있고 어떤 것은 사유하는 세계가 넓고 또 어떤 것은 미학적 측면을 더 고려한 작품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시조의 정체성을 이탈하고 있지 않음은 그의 필력이나 글재주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향목 시인의 창작 기법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어떤 경우라도 전통적인 시조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점이고
둘째는 사물을 보는 눈이다. 사물의 겉보다는 속을 보고 창작을 한다는 점
셋째는 문장의 구성법이다. 글이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게 운율이 만들어지고
넷째 작품마다 반드시 뜻[志]이 담기도록 한다는 점 등이다. 즉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점 등이다.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시조 창작에 임하여 주시기를 당부하며 그 기법을 널리 알려서 많은 이가 보고 배우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다시 한번 시조집 『신호등』 발간을 축하드린다.
향목向木 진길자 시인의 작품집 『신호등』 상재上梓를 축하드린다.
시인은 벌써 여섯 번이나 작품집을 낸 바 있는 화려한 경력의 시인이다. 등단한 경력 또한 사반세기를 훌쩍 넘긴 원로급 시인이다.
시조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까다롭고 격조가 높은 예술 분야이다. 공자께서도 '시가 마음 안에 있을 때는 뜻[志]이 되지만 그 품은 뜻이 말로 나타나면 시詩가 된다.'라고 했다. 고려 중기의 시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는 '시詩는 뜻을 세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율律은 음의 배열로 맞추면 되지만 시에 심오한 뜻이 담기지 않으면 맛이 없다.'라고 했다.
시조時調는 공자나 백운거사의 말처럼 특히 깊은 뜻이 담겨야만 하는 언어 예술이다. 거기에 더해서 형식이라는 엄격한 규칙을 지켜내면서 작가가 사유하는 세계나 감정을 실어야 하므로 창작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향목 선생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현대시조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시조 작품의 예술성은 단순히 형식과 언어의 수사학적修辭學的(rhetoric) 표현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로 짜여 있는 공동체이다.
요즘 시중에 나돌고 있는 시조 작품들을 보면 어떤 사물에 대한 설명 또는 수식어의 남용으로 오히려 시조의 본질을 흐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반하여 향목 시인의 작품들은 작품에 담긴 뜻과 외형상 나타난 미학적 측면을 모두 살려낸 마술사 같은 재주를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황혼 녘을 즐기는 홍학의 춤사위와 다르지 않다.
향목 시인은 그의 등단 이력이 말해 주듯 강남문인협회 회장과 전국 여성시조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이 어렵던 시절에도 강남문인협회를 잘 이끌어 연임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다고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한국여성시조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체제를 정비하고 많은 회원을 유치하여 명실상부하게 단체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도 작품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은 필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루는 신작이라며 「꽃등심」이라는 작품을 보여줬는데 나는 그 작품을 접하는 순간 작가의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재발견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스피노자가 말했다고 알려진 '사과나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향목 시인의 창작 태도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시조를 짓는 모든 이가 시조의 정체성을 지키지 않더라도 난 오늘 창작하는 단 한 편의 평시조에 정체성을 심겠다.'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는가? 난무하는 창작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향목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사유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미학과도 물론 연관은 있겠지만 이보다도 더 심오한 뜻이 담겼을 것 같다. 말마디의 아름다움이나 낯설게 하기의 한 방편으로 언어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냈겠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작가의 철학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 상재된 100여 수의 작품도 하나같이 사유의 폭이 넓다. 특히 시조의 정체성을 흐트러짐 없이 잘 지켜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 어느 것 하나 이런 범주를 벗어난 작품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체성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의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품격을 높인다.
이제 시인이 사유하는 정신세계로 들어가서 작품 하나하나를 파헤쳐보기로 한다.
Ⅱ. 꽃밭 구경
뒤뜰의 감나무가 늦 볕을 받아 안고
연기의 법에 따라 없던 등불 내달 때면
다디단 까치밥보다 만추 향은 더욱 짙다.
-「가을 정취」 둘째 수
이 작품은 의미하는 바가 심오하다. 연기의 법칙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의미한다. 윤회의 법칙이며 반야경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연기의 법칙이란 세상 만물은 반드시 어떤 인연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감나무가 가을 햇살을 받아 안고 노랗게 잘 익은 감을 가지마다 내다는 것은 무에서[空] 나온 유[色]를 만드는 법칙에 따른 자연현상이지만 그냥 자연의 섭리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들어가서 윤회사상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반드시 언젠가는 다시 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도 역시 연기의 법칙에 따른 것뿐이다. 만남은 색[色]이요 헤어짐은 공[空]이 아닐까. 작가가 하고픈 말은 색과 공이라는 연기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시선은 감나무 가지에 달린 군침 도는 감이 아니라 존재와 소멸에 대한 연기의 법칙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종장에 '만추의 향기'라는 시어를 도입하여 독자의 시선을 묶어두고 있다.
「가을 정취」라는 평범한 소재를 요리하여 이같이 깊은 맛을 내는 글솜씨가 대단하다.
오르막 내리막길
힘겹고 버겁지만
귀를 열고 기다리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연탄이 묻은 얼굴에
백옥 같은 꽃이 핀다
-「봉사의 힘」 전문
이 작품을 접하면서 봉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이다. 강자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약자를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면 봉사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 낮은 자세는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순수해야 한다.
중장에 '귀를 열고 기다리는 할머니'라는 표현이 참 아름답다. 할머니 얼굴을 떠올리면 오르막길도 내리막길 같고 얼굴에 묻은 연탄 가루마저도 한 송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종장에서 시커먼 연탄 가루를 백옥 같은 꽃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솜씨가 비범하다. 연탄 묻은 얼굴에 피는 꽃은 검은 꽃이 아니라 목련처럼 화사하고 깨끗한 꽃이다. 검은 것이 희다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진실이 된다.
시인이 발굴한 시어 하나가 희망이 되고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어찌 보면 실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봉사라는 꽃이다. 봉사는 나눔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나눔은 삶의 가치가 된다. 나눌 때의 보람보다 크든 작든 간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천만 근 무거운 짐 양어깨를 짓눌러서
뼈마디 어긋나고 살점이 찢길망정
뿌리를 지켜내려는 그 의지가 시퍼렇다.
꺾인 절은 패배 아닌 자식 위한 부정父情이다.
눈밭에 섰다 하여 꿈까지 버렸겠나.
설한풍 몰아친다고 끓는 피가 없겠는가.
흐르는 세월 속에 상처마저 향이 되어
대대손손 전하리라 집안의 가보처럼
설산에 우뚝 선 노송은 수행하는 노승이다.
-「설산수행雪山修行」 전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셋째 수 종장에 등장한다. 작가가 눈[雪] 속에 서 있는 노송을 보고 이를 우리의 삶에 빗대어 쓴 걸작이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다. 한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가장의 책임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옛날의 아버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조상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 죽음과 맞바꾸더라도 반드시 집안의 뿌리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눈 속에 묻힌 노송의 뿌리는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렇지만 자식을 생각하면 그 뼈저린 고통은 기쁨이 된다.
후손을 이어가려는 노송의 의지는 우리 아버지의 의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수에서는 눈 맞아 꺾인 가지는 아버지의 의지가 꺾인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식 사랑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내야 하는 인내라고 생각한다. 굴복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중장에서 그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꿈을 버리지 않는 끈기와 종장에서 말하는 꽁꽁 언 몸이지만 피는 끓는다고 한다. 아버지의 피는 식어서는 안 되는 천부적 소명이다. '얼다'와 '끓는다'라는 모순된 어법(역설법: oxymoron)을 구사함으로써 작품을 더욱 맛깔나게 만들고 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이 글을 보며 어떤 절망적인 경우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셋째 수는 노송을 설산에서 수행하는 수도승으로 생각한다. 부처님도 득도하기 전에 설산에서 6년간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작가가 사유하는 세계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짐작이 간다.
하세월 살아오면서 바람에 찢기고 부러진 상처는 오직 인내와 극기로 극복해 내면 그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빛나는 훈장처럼 옹이로 박힐 것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라'는 작가의 외침이 내 귓전을 때리고 간다.
세 수로 된 연시조이면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문장이 짜임새 있고 간결한 것은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대단함을 입증하는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물안개 핀 산길 따라
발길 멈춘 노인처럼
설악에 안긴 단풍
지난날을 반추하네
성숙은 곱게 타는 것
소리 없이 지는 거다
-「단풍을 보며」 전문
초장의 '발길 멈춘 노인처럼'이라는 표현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악산 단풍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성숙'이라는 시어에 멈추어 있다. 단풍 역시 한 생애의 성숙이고 소리 없이 지는 것도 성숙이다. 작가는 자연현상 속에서 자신을 반추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단풍은 어쩌면 작가 자신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도 단풍처럼 곱게 늙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아닐까?
어둠에 싸인 적막 사방으로 둘러치고
면벽 수행 중에 풍경이 울고 있다
아직도 득도를 못 해 애간장이 녹나보다
번뇌 속 바람 소린 설법인 듯 다가와서
애절한 목소리로 법당문을 두드리며
단 한 분 임을 뵈오려 문을 열라 재촉한다
-「산사에서」 전문
이 작품은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든다. 초장을 보면 '적막'에 '어둠'을 끌어들여 그 상황을 더욱 고요하게 만든다. 그때 풍경소리가 들려오면 적막은 깨지지만, 화자는 그 애절한 풍경소리마저 적막 속에 묻어버린다. 그 종소리는 부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답답함에서 애간장이 녹는 요란한 침묵이다. 풍경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또 애간장을 녹이는 것처럼 활유법으로 처리하여 더욱 생동감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
둘째 수에서는 바람 소리도 설법으로 듣는다. 법당의 문풍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다. 화자에게 어떤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이다. 종장은 더욱 애절하다. 바람까지도 법당 안에 계신 임 -부처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임은 절대적 힘을 가진 진리의 신을 말함일 것이지만 임 말씀을 듣기 위한 생명체로 인식한다.
작가의 시세계詩世界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며 유한한 인간의 사고를 아쉬워하는 그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주를 창조한 신의 위대함에 비하면 우리의 존재란 한 점 티끌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자연의 숨소리가
꽃이 되어 내게 오면
자태가 고고해서
가슴이 울렁댄다.
햇살에 눈감고 앉은 나
봄바람이 틀림없다.
-「봄날의 꽃」
초장 '자연의 숨소리'가 '꽃이 된다.'라는 비유는 논리에 안 맞는 것 같지만 깊이 음미해 보면 숨소리가 꽃이 되는 공감각적 표현으로 상당히 신선한 언어의 조합이 된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의 숨소리로 치환置換한 것이 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기쁨에 젖은 화자와 자연과 꽃과 봄바람이 모두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한 장주지몽莊周之夢과 다름이 없다. 즉 하나의 자연현상이 하나는 꽃으로, 하나는 봄바람으로, 또 하나는 작가로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라는 철학적 사고이다.
어떤 사물의 주체와 객체의 분별심이 사라져 조화를 이룬 진실한 세계에서 너와 나를 가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말로 읽힌다.
짧은 글 안에 이처럼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마다 독립성 연결성 완결성이 분명하고 문장이 쉬우면서 간결하고 함축과 상징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흐르는 물길 따라
다양한 벗 만나면서
꽃들도 피워내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말없이 청산을 키워
온갖 생명 살게 한다.
-「물」 전문
이 작품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다.
이 작품이 맛나게 읽히는 것은 의인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백미白眉는 종장이다. 물은 흘러가면서 소리를 낸다. 그런데 왜 말없이 청산을 키운다고 말하는 것일까? 화자의 마음을 열고 그 연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물은 흘러가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은 물이 없으면 한순간도 버텨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물은 단 한 번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거나 자기가 베푼 자선을 대단한 것처럼 떠벌린 적이 없다. 필요하면 먹게 두고 필요 없으면 그냥 가지고 가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다. 오직 선한 마음뿐이다. 이 큰마음이 청산까지도 키운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시적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대개 시는 비유와 상징이라 말하니까 비유라는 말에 함몰되어 엉뚱한 비유를 하기 쉬우나 시인은 그 비유를 넘어 자연의 이치를 시로 변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문장은 쉽고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작가의 겸손한 미덕을 발견한 작품이다.
햇살을 끌어안고 스스로 빛을 낸다
화사한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지만
지금은 스친 인연만 가지 끝에 매달렸다
허벅진 꽃송이가 온 세상을 다 품어도
생의 무게 버거워서 잡은 손 놓고 있나
비워서 가득 찬 자리에 봄이 와서 놀고 있다
눈부신 이름마저 놓아버린 그 순간에
스미는 바람 한 점 환생을 재촉한다
한 무리 나비가 되어 창공을 날아가네
-「아, 벚꽃」 전문
이 작품도 심오한 맛이 있다. 첫수 초장을 보면 '햇살을 끌어안고 스스로 빛을 낸 듯'이라고 함으로써 우선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벚꽃 잎이 반짝이는 것은 햇빛의 역할 때문이다. 벚꽃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햇살은 내려온다. 그런데 마치 벚꽃이 잎에 받고 안 받고 하는 선택권을 가진 것처럼, 벚꽃이 스스로 햇살을 끌어안는다고 함으로서 더욱 시적인 맛을 불러일으킨다. 백미는 역시 종장이다. '지금은 스친 인연만 가지 끝에 매달렸다.' 스쳐 간 인연을 보는 눈은 시인만이 가진 재능이다.
수많은 인파가 구경 차 지나간 것도 분명 인연은 인연이다. 불가에 말하는 인연이란 말이 또다시 다가온다. 인연因緣이란 만나고 흩어지는 연기법緣起法을 구체적이며 현상학적으로 말하는 어휘이다. 모든 만남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연기법 때문이다. 길 가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3생의 인연이 이었어야 현세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꽃잎이 떨어진 빈 가지에 스쳐 간 인연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 아니면 발굴하기 어려운 시어이다. 이런 표현 때문에 시를 지으며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짜릿하다.
둘째 수 초장 '세상을 다 품는다'라는 표현은 수많은 사람이 꽃구경을 왔다는 단순한 표현을 이렇게 멋지게 엮어낸 것이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꽃이 핀 가지는 힘에 부쳐서 허공을 잡고 있다고 한다. '허공'이란 공간을 사울로 뒤바꾼 솜씨도 보통은 아니다. 그런 데 꽃이 다 떨어진 지금은 허전하거나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사고이겠지만 작가는 비워냄을 통하여 오리려 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설적인 수사법이다. 그것도 '봄으로 채운다.'라고 하면 욕심으로 볼 수 있기에 '봄이 와서 논다'라고 슬쩍 바꾸어 표현하였다. 시조는 토씨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아마 작가는 이런 시조의 원리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 수는 죽음을 생으로 승화(환생)시키고 있다.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수한 나비로, 환생한 생명체로 인식한다. 죽음을 죽음으로 인식하면 슬프지만, 생의 연속으로 보면 환희가 된다. 그래서 날아가는 꽃잎을 보며 우리는 환호하는 것이 아닐까?
시린 세월 삭혀가며
홀로 선 고갯마루
달빛 속 외로움은
눈 속에 차가워도
초연이 돌아앉아서
기다림을 배운다.
-「겨울 나목」
이 작품은 좀 특이한 작품이다. 대개 '겨울 나목' 하면 눈에 묻힌 모습을 묘사하기 바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묘사가 아니라 인내심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초장에 '시린 세월 삭혀가며 홀로 선 고갯마루'는 어느 고목 하나가 잎을 다 떨구고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의 삶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 없다. 누구를 막론하고 시린 세월은 있었을 것이다. 중장은 초장의 허전함을 더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 감정을 더욱 확장한 모습이다. 눈 위에 내려앉은 별빛은 더욱 차고 괴괴하다. 느닷없는 표현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중장의 역할을 잘 표현한 것이다. 중장은 초장을 보완하거나 확장하는 방향으로 써야 하는 데 이에 딱 맞은 답안이다.
종장은 이제 마무리할 최종 단계이다. 즉 화자의 감정이 잘 드러나게 되어야 한다. '초연이 돌아앉아서 기다림을 배운다.'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이는 화자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겨울 나목'을 쓰고 있지만, 화자 스스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마음가짐을 슬쩍 내비친다.
누가 말하기를 '시는 삼인칭 단수 현재형이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삼인칭으로 도입된 사물은 화자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겨울 나목'은 보조관념이 된다. 초연超然은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는 태연한 자세를 말함이다. 세상만사는 조급증을 갖는다고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연함을 갖는 것은 조물주의 뜻을 따르는 행위이다.
이 짧은 단시조 한편을 통하여 작가는 지금 기다림의 미학美學을 강조하고 있다. 이규보 시인이 말한 '화자에 담긴 뜻'이 있어 더욱 깊은 맛을 느낀다.
벚꽃잎 흩뿌리는
강둑에 풀썩 앉아
지는 꽃 서러움을
먹먹하게 바라보며
한때는 모두 꽃이지,
돌아보면 꽃밭이지
-「꽃 시절」 전문
누구에게나 꽃 시절은 있었다. 비록 꽃 시절은 아니라 해도 그리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어느 시인은 '사무친 서러움도 돌아보면 꽃밭이다.'라고 노래했다. 세월은 공정한 심판관이라 누구에게나 '황혼'이라는 원하지 않는 선물 강제로 맡기고 간다. 소녀 시절에는 굴러가는 가랑잎만 보아도 웃음이 터지는 법이지만 황혼이 되면 지는 잎새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가게 마련이다.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으면 강둑에 풀썩 주저앉을까? 마음이 먹먹하다고 한다.
'먹먹하다'라는 말은 '어떤 감정으로 꽉 차거나 막힌 느낌'이 있을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이 시어 하나만으로 화자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종장에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모두 꽃이다. 꿈이 있고 패기가 있고 두려움을 모르던 시기였다. 화자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희망을 품는다.
시조 종장은 이처럼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한 치도 못 벗어날 발 묶인 몸이 되어
안 된다 절규하며 화마의 밥이 된 숲
하늘도 서러웠는지 온종일을 울고 있다
나부낌도 지저귐도 모두가 멈춘 자리
고요만 쌓여있어 봄 온 줄 모를까 봐
새 이웃 옮겨 심으며 벗이 되라 다독인다.
다시 온 봄소식에 고개만 갸웃갸웃
흙에 묻힌 지체에다 희망의 꿈을 싣고
봄볕을 받아먹느라 안간힘을 쏟는다
-「화마가 지난 뒤/나무 심기」 전문
해마다 원인 모를 산불이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나고 있다. 천년 고찰도 화마가 집어삼키고 있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모두 각성하고 다시는 산불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재만 남은 산자락에 4월 식목일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이 동원되기도 하고 여러 단체가 봉사자로 나서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봉사활동의 하나로 나무 심기를 하러 가서 타죽은 나무를 보며 그 심회를 시조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는 현장의 모습을 시조 형식에 맞게 설명문처럼 창작했겠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 담긴 나무의 아픔을 보고 이를 형상화한 후 시조로 엮어냈다.
첫수를 보면 우선 긴장미가 뛰어나다. 화마가 덮쳐오는 공포 속에서 나무의 긴장감을 너무나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도망갈 수도 없는 나무를 보며 누군가 발을 묶어두었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시조 창작에 절대 필요한 조미료이다. 이를 어떤 모습으로 발동시키느냐에 따라 작품성이 달라진다. 시인은 나무의 절규를 듣고 있다. 시인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귀이며 이 역시 상상력이 동원된 모습이다.
때마침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화자는 서러움이 북받친 하늘의 눈물이라고 상상한다.
둘째 수에서는 화자의 고운 마음이 엿보인다. 산새도 떠나갔고 동물도 떠나갔고 심지어 벌 나비마저 등을 돌린 삭막한 잿더미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부디 잘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화자의 간절함이 묻어 있음을 발견한다.
중장을 읽으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예년 같은 봄이면 지금 산은 살아서 청산가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이 말은 당나라 시대 동방규東方?가 지은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에서 유래된 밀이지만 산불로 재만 남은 산의 상황을 보면 지금은 봄이 와도 봄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봄이야 봄,'하면서 죽은 산을 흔들어 깨우는 애절함으로 나무를 심고 있다. 형제나 친구의 죽음을 붙들고 통곡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셋째 수는 화마를 피해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을 찬양하는 구절이다.
식물일망정 저승인지 이승인지 알 길이 없어 고개만 갸웃댄다는 표현이 기발하다. 그래도 흙에 묻힌 반신불수일망정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종장도 대단한 생명력이다.
햇볕을 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받아먹는다고 함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향목 시인은 의인법을 너무나 잘 구사하는 시인이다. 모든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어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북송北宋의 시인 소식(동파)은 '시속에 그림이 있어야 한다.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했듯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계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흘려 쓴 시 한 줄을
포기 못 한 욕망으로
고해하듯 적어놓고
마음이 마뜩지 않아
밤을 새워 다듬는다.
-「고뇌」 전문
이 작품에는 시조 한 편을 짓기 위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시 한 줄을 엮어놓고 정체성에 맞게 완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각오가 엿보이는 작품이라 특별히 필자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작품을 보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봄부터 피 터지게 울어야 국화가 피어나듯이 시조 창작 역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조는 외적 내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는다. 즉 지켜야 할 조건들이 아주 많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 완전한 자유와 멋과 품격이 있어야 하는 문학이다.
시조를 모르는 사람은 쉽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문학이다. 게다가 시에서 요구하는 상징과 비유까지 곁들여야 비로소 맛깔난 작품이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조를 창작하는 사람은 감상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감상은 독자의 몫이고 시조를 창작하는 일은 작가의 몫이다. 시조께나 쓴다고 자처하는 사람도 자칫 장의 독립성이나 완결성 연결성을 못 짚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수율이 전부는 아니다. 음수율을 맞추는 일은 초급과정이고 비유와 상징은 중급 과정이고 장의 독립성 완결성과 연결성 그리고 종장에 화자의 감정을 싣는 것은 고급과정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시인은 무엇인가 마뜩잖아 밤을 새운다고 한다. 과연 향목 시인다운 생각이다. 그 인내와 각고의 노력이 만인의 귀감龜鑑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담 넘어 허공에다 두고 간 얼굴 하나
아지랑이 사물 대듯 올봄에도 다시 와서
내 맘을 흔들고 있다, 꽃 빛 봄을 맞으라고
고운 정에 흔들리는 목마른 언덕 위에
코 버선 곱게 신고 풀밭 헤쳐 오신 임이
어느새 축제를 끝냈나, 꽃신들만 나 뒹군다.
-「봄꽃 지다」
첫수는 꽃이 피는 모습을, 둘째 수는 꽃이 지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고思考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허공에다 두고 간 얼굴' '꽃 빛 봄' '목마른 언덕' '꽃신' 같은 표현들이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올봄에도 다시 와서'라는 의인법을 구사함으로 시조를 봄꽃처럼 곱게 구사驅使하고 있다.
둘째 수 초장에 '고운 정에 흔들리는 목마른 언덕'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어느 꽃 한 송이가 메마른 언덕에서 피어있는 모습으로 봄 가뭄에 꽃은 갈증을 느낄 것이다. 꽃의 마음을 곱다고 표현하였다. 이는 작가가 사물을 관찰하는 눈매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언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생명은 유한하기에 핀 꽃은 지게 마련이다. 이미 축제는 끝나고 떨어진 꽃잎만 바람에 나뒹군다. 그러나 작가는 떨어진 꽃잎을 '봄의 요정이 신고 즐기던 꽃신'으로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신선미를 느끼게 만든다.
중장 역시 꽃을 '코 버선을 곱게 신은 임'으로 만들어 새색시의 느낌을 받도록 한 점도 매력적인 구성이다.
하늘을 배경 삼아 설치미술 차린 허공
바지랑대 높이 들려 춤추며 펄럭인다.
거룩한 어머니 손길 온 천하에 알리는 듯.
막대로 툭툭 치며 대작을 걸 때마다
한 생을 달려온 길 천만 개가 사라져도
새파란 허공을 갈라 무지개를 수놓는다
-「거장 巨匠」 전문
허공에 설치미술을 차린다는 착상이 기발하다. 작가는 여기서도 어머니를 떠올린다. 우리의 어머니 삶은 모두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의 희생은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지금 화자의 심정은 위대한 어머니를 온 천하에 알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런데 마침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가 허공에서 펄럭이는 것은 어머니의 공로를 외치는 깃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둘째 수에서 작가는 여인이 살아온 길은 다양하게 많지만, 그가 애쓴 보람은 허공에서 사라지고 마는 운명적 아픔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여인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새파란 하늘에 무지개를 수놓는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남성의 세상은 어땠을까? 아마 암흑이었을 것이다.
무지개는 희망이며 꿈이다.
굽은 길 돌아보면 훌훌 다 털고 싶다
부러진 청솔가지 향기를 품고 살듯
비상등 다시 켜놓고 헛생각을 비춘다.
햇볕에 오래 쬐면 색깔이 바래듯이
덜 익은 삶의 여정 그림자로 붙어 다녀
해 맑은 풍경소리를 가슴에다 달고 싶다
-「길을 찾다가」 전문
평생 찾아 헤매어도 못 찾는 길은 인생길이 아닐까? 살다 보면 답답한 일도 많고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가 하고 자문을 해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로는 부질없는 일에 마음이 끌려 길을 잘못 들어설 수도 있다.
이런 헛생각들이 들어올 때마다 비상등을 켜놓고 자신을 반추해보는 중이다. 중장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록 부러진 청솔가지일망정 응고된 송진은 솔향을 품고 있다. 이런 심정은 아프고 힘든 일상이지만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전에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 글귀 하나가 평생을 붙어 다닌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난다."라는 글귀였는데 이 순간 「길을 찾다가」라는 작품을 읽다 보니 새삼 그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그대로 삶의 냄새를 풍기게 마련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어느 경우든 솔향 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시인의 말처럼 부족함은 평생 따라다닌다. 오죽하면 해맑은 풍경소리를 가슴에 달고 싶을까?
시인의 겸손한 미덕美德이 읽힌다. 겸손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화자는 겸손의 미덕을 유지하려고 맑은 풍경을 달고 싶다고 한다.
우뚝 선 노송하나 솔섬을 못 떠나서
비바람 맞서 살다 등마저 굽어 있네.
한순간 마음이 짠하다, 아버지의 삶을 닮아.
그 그늘에 자란 몸이 철없이 지낸 시절
봄바람 지나가듯 순식간에 보내놓고
지금 와 노송을 보며 한세월을 다시 읽네.
-「솔섬 노을에 앉아」
향목 시인은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첫수 초장에 '노송이 솔섬을 못 떠난다.'로 시작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대개는 솔섬에 '노송하나 우뚝 섰다.'라고 시작하겠지만 의인화하여 노송이 섬을 못 떠난다는 역발상으로 시작詩作을 한다.
마침내 종장에서 그 이유가 밝혀진다. 아버지를 회상한다. 등 굽은 노송은 등이 굽은 아버지이다. 노송 한 그루에서 아버지를 찾아내는 시적 발상이 비범하다.
둘째 수에서는 철없이 굴던 자신의 어린 모습을 중첩(overlap) 시키면서 어른이 된 지금 자신을 돌아보는 문장 구성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한 생애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작가 자신이 살아온 한 생애를 노송 한 그루에서 찾아 완벽하게 매치시키는 눈매가 범상치 않음을 발견한다.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조의 미학으로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작품이다.
절로 패인 가슴에는 공허만 가득한데
옛정이 그리운 듯 새들이 찾아와서
온종일 말벗이 되어 지난 얘기 들려준다
서리꽃 핀 몸을 보고 햇살이 다가와서
앙상한 뼈마디를 쓰다듬는 아침나절
무심한 바람도 와서 가지 끝에 달려 논다.
-「고사목」 전문
이 작품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고사목"을 보고 느낀 소회이지만 우리의 삶에 빗대어 잘 지은 작품이다. 첫수 초장을 보면 '절로 패인 가슴'이라 했는데 이는 세월에 맞서 살다 보니 나무일망정 가슴앓이 때문에 생긴 상처일 것이라 상상하며 이런 표현을 끌어냈을 것이다. 이런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 산새들이 찾아와서 온종일 놀아주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그 종種을 불문하고 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하등생물이라 할지라도 어찌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겠는가.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심안心眼이다.
둘째 수는 우리의 삶을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다. '서리꽃'은 강자强者이고 '고사목'은 약자弱者이며 '햇살'은 정이 많은 선자善者이다.
마치 고통받는 약자를 선하고 덕이 많은 사람이 위로해 주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서 바람마저도 그 아픔을 달래주려고 가지 끝에 달려 논다고 한다. 작가의 선한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시조는 우리 삶에 대한 비유이다. 이 비유가 뜻이 되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느낀 바를 형상화는 잘했다 하더라도 변용의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된 작품을 내놓게 된다. 이 변용(데포르마시옹 deformation)의 과정이 매우 어렵다. 음절 수, 비유와 상징, 문장의 구성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만만한 단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조의 규칙을 단 한 곳도 어기지 않고 이처럼 훌륭한 창작을 했다는 점은 시인의 오랜 경력과 글재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힘겹게 버틴 흔적 여전히 쓸쓸해도
산성엔 봄이 와서 꽃향기를 내 뿜으며
피눈물 쏟아낸 역사 풀잎들이 들고 섰다
-「남한산성 성곽길」
남한산성은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인질로 끌려간 치욕의 현장이다.
그뿐만 아니다. 조선시대 3차에 걸친 천주교 박해로 무고한 신자들이 순교한 성지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현장을 탐방한 시인 역시 아린 가슴을 안고 이 작품을 창작했을 것이다.
초장에서 이미 그 힘들고 비참한 역사를 증언한다. 중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봄은 와서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그 꽃에는, 풀잎에는 피눈물이 묻어 있다고 상상한다. 만개한 꽃을 보면 누구나 환호하며 기뻐하겠지만 화자는 지금 기뻐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종장에서 피눈물 쏟은 역사를 풀잎들이 들고 서서 증언하며 다시는 굴욕의 역사를 짓지 말라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들고 섰다'라는 표현 하나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역사를 잊지 말라는 시위 군중이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풀잎이다.
꽃향기에 취하기보다 풀잎의 아우성을 듣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책무이며 사명이다. 작가만이 누리는 천부적 특권일 수도 있다.
이 간결한 단시조 한편에 함축된 역사가 있고 국가가 나아갈 미래가 있다. 작품성을 보더라도 시조의 특징인 숭고미나 비장미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고 시조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균제미와 작가의 감정을 절제한 아름다움까지 들어 있어 더욱 시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Ⅲ. 꽃구경을 마치고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1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일부만 발췌하여 눈여겨보았지만 여타 작품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란 생각이다. 향목 시인은 그 연륜이 말해 주듯이 작품마다 깊이가 있다. 사물의 겉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작가이다. 어떤 것은 심오한 철학이 있고 어떤 것은 사유하는 세계가 넓고 또 어떤 것은 미학적 측면을 더 고려한 작품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시조의 정체성을 이탈하고 있지 않음은 그의 필력이나 글재주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향목 시인의 창작 기법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어떤 경우라도 전통적인 시조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점이고
둘째는 사물을 보는 눈이다. 사물의 겉보다는 속을 보고 창작을 한다는 점
셋째는 문장의 구성법이다. 글이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게 운율이 만들어지고
넷째 작품마다 반드시 뜻[志]이 담기도록 한다는 점 등이다. 즉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점 등이다.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시조 창작에 임하여 주시기를 당부하며 그 기법을 널리 알려서 많은 이가 보고 배우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다시 한번 시조집 『신호등』 발간을 축하드린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단시조
물
반가사유상
겨울 나목
콩 꼬투리
신호등
나의 봄날
꽃 시절
제주 돌담
봉사의 힘
나이가 서글퍼
봄날의 꽃
봄맞이
채송화
단풍을 보며
아파치(Apache)족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낙화 벚꽃
꽃눈
도토리묵
찻잔 속 공백
치과를 다녀와서
시상詩想을 찾으며
생강나무
부부
허기진 그리움
바위
구직
텔레비전을 끄면서
낙엽
산사 가는 길
나무의 겨울나기
가을바람
고뇌
겨울 숲
세월 속에서
시간의 흐름
큰 나무
은사시나무
겨울 연밭
소리하다
초심으로
내 가을
8월
다시 보면
어느 날
새해 떡국
쉼
비밀의 창
마음 거울
벚꽃 지다
마음의 선택
아쉬움
매화꽃 소식
나무와
나는 왜
말복쯤
오늘은
회상
우정의 신호등
진주알
남한산성 성곽길
나무 되어
적요 寂寥
강물
이월二月
삶의 모자이크
제2부 연시조
주상절리
아, 벚꽃
겨울 모습
봄꽃 지다
가을 정취
빗줄기는 타악기 ㆍ 1
거장巨匠
나팔꽃
본 모습
설산수행雪山修行
숲속에서
과메기
불타는 산을 보며
화마가 지난 뒤
산사에서
밤 풍경소리
첫봄 진달래
강남 탄천 파크 골프장
안경
입춘의 미소
큰 북소리
치자 열매
고사목
겨울밤에
나무야
절간 뜨락에서
짧은 가을
돌아보다
망초꽃
억새 단상
하얀 인생
서대문 형무소
수종사의 아침
볏짚
합장 合掌
빗줄기는 타악기 ㆍ 2
몽골의 초원
꽃의 마음
건널목에서
일상 속에
산란 채취
가을 호수
가을 엿보기
실비에 젖어
길을 찾다가
모순
솔섬 노을에 앉아
모정의 눈
맷돌
시간은
아침노을로 다시 와
에스프레소
평설: 목련이 피는 정원__김흥열
제1부 단시조
물
반가사유상
겨울 나목
콩 꼬투리
신호등
나의 봄날
꽃 시절
제주 돌담
봉사의 힘
나이가 서글퍼
봄날의 꽃
봄맞이
채송화
단풍을 보며
아파치(Apache)족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낙화 벚꽃
꽃눈
도토리묵
찻잔 속 공백
치과를 다녀와서
시상詩想을 찾으며
생강나무
부부
허기진 그리움
바위
구직
텔레비전을 끄면서
낙엽
산사 가는 길
나무의 겨울나기
가을바람
고뇌
겨울 숲
세월 속에서
시간의 흐름
큰 나무
은사시나무
겨울 연밭
소리하다
초심으로
내 가을
8월
다시 보면
어느 날
새해 떡국
쉼
비밀의 창
마음 거울
벚꽃 지다
마음의 선택
아쉬움
매화꽃 소식
나무와
나는 왜
말복쯤
오늘은
회상
우정의 신호등
진주알
남한산성 성곽길
나무 되어
적요 寂寥
강물
이월二月
삶의 모자이크
제2부 연시조
주상절리
아, 벚꽃
겨울 모습
봄꽃 지다
가을 정취
빗줄기는 타악기 ㆍ 1
거장巨匠
나팔꽃
본 모습
설산수행雪山修行
숲속에서
과메기
불타는 산을 보며
화마가 지난 뒤
산사에서
밤 풍경소리
첫봄 진달래
강남 탄천 파크 골프장
안경
입춘의 미소
큰 북소리
치자 열매
고사목
겨울밤에
나무야
절간 뜨락에서
짧은 가을
돌아보다
망초꽃
억새 단상
하얀 인생
서대문 형무소
수종사의 아침
볏짚
합장 合掌
빗줄기는 타악기 ㆍ 2
몽골의 초원
꽃의 마음
건널목에서
일상 속에
산란 채취
가을 호수
가을 엿보기
실비에 젖어
길을 찾다가
모순
솔섬 노을에 앉아
모정의 눈
맷돌
시간은
아침노을로 다시 와
에스프레소
평설: 목련이 피는 정원__김흥열
저자
저자
진길자 시인은 1998년 『시조생활』 제37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한국여성시조문학회 명예회장, 한국산림문학회 부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 자문위원, 강남문인협회 고문,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바람은 길을 안다』, 『쉬어가렴 사람아』, 『렌즈에 비친 세상』, 『모래의 여정』, 『시인의 여행가방』, 『신호등』 등이 있으며, 영역본 『풀잎의 소망』이 있다. 서울문예상, 한국시조문학상, 대은시조문학상 대상, 난대 시조공로상, 한국문협서울시문학상, 시천시조문학상, 산림문학상, 낙강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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