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복지국가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
Regular price
$32.36
Sale price
Regular price
Shipping calculated at checkout.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갈 때
독일인들은 전쟁 전에 비해 나쁘지 않은 생활수준을 누렸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인들은 나치 정권의 감시 및 폭압,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는 행정 직원도 포함해도 겨우 7,0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외에 훨씬 더 적은 규모의 보안 경찰만을 운용했을 뿐이다(훗날 공산주의 동독은 1,700만 명의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19만 명의 공식 감시 요원과 비슷한 수의 "비공식 협조자"를 운용했다. 나치 독일의 국민은 6,000만 명이었다). 1945년 4월 쾰른에 들어온 한 연합군 장교는 시민들이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옷도 잘 갖춰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전쟁 중 독일인의 생활수준은 1차 대전 당시보다 훨씬 나았고, 2차 대전 전보다도 나쁘지 않았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은 극심한 식량난과 인플레이션, 생활고를 겪었다. 히틀러는 그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독일 국민이 다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3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국민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핵심 정책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전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재무 관료들이 수차례 증세를 건의했지만 노동계층에 대한 직접 증세는 최소화되었다. 부득이 증세가 필요한 경우에는 부유층에 과세하거나 부동산 소유자에게 과세했다. 군인 가족 수당은 확대했다. 연금도 인상했고, 식량 공급은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병사들의 급여는 여러 차례 인상했고, 해외에서 자유롭게 쇼핑하고 물건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전선에 나간 병사들이 가족에게 보낸 소포는 수천만 건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버터와 커피, 초콜릿, 통조림 같은 식료품부터 향수와 비누, 실크 직물, 모피, 시계, 카메라, 의류, 은식기, 가구까지 온갖 물건이 들어 있었다. 전후 독일의 대표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렇게 회상했다. "파리에서는 향기로운 비누가, 폴란드에서는 통조림이, 노르웨이에서는 순록 햄이, 그리스에서는 건포도가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던 가운데, 독일인은 어떻게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
"홀로코스트는 약탈과 학살의 결합이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어떻게 독일인의 복지가 되었는가?
이 책은 충격적이게도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대인 학살은 단순히 인종주의적 광기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박해는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전쟁 재정이 맞물려 움직인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유대인의 재산은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몰수되었다. 은행 예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계좌로 이전되었고, 기업과 주택, 토지, 귀금속과 보석은 차례로 처분되었다. 가구와 식기, 침대와 옷가지 같은 생활용품까지도 경매에 부쳐져 독일인과 점령지 주민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점령지에서는 몰수한 유대인 재산을 국채로 전환하거나 전쟁 비용으로 편입하는 작업이 행정 절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유대인 재산을 전시 국채로 전환한 방식이 중요하다. 형식적으로는 재산을 압류한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바꾼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채권자인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독일의 재정 관료들은 그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재산은 독일의 전쟁 재정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렇게 확보된 자금은 단순히 국가 금고에 쌓여 있지 않았다. 병사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데 사용되었고, 군인 가족 지원금과 각종 사회복지 재원으로 흘러들어갔다. 독일은 그리스에서 유대인 재산을 활용해 수개월 동안 점령 비용의 약 70%를 충당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 세르비아, 폴란드 등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전쟁 자금을 마련했다. 유럽 유대인 가구에서 강제로 처분된 재산의 규모는 150억~200억 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살의 경제적 수혜자가 되었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독일인은 살해된 유대인의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들의 옷을 입었다. 유대인의 강제노동에서 나온 임금은 독일 여성과 아동을 위한 각종 지원금의 재원이 되었으며, 병사들이 점령지에서 구입한 물건의 상당수 역시 유대인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뒷받침되었다.
"전쟁은 전쟁을 먹여 살려야 한다"
유럽 전체는 독일의 거대한 금고였다
그러나 유대인 재산만으로는 독일의 전쟁과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나치는 단순히 영토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를 독일 전쟁경제의 금고이자 세금 창고로 바꾸었다.
독일은 점령국들에게 막대한 점령비용을 부과했다. 겉으로는 독일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독일 본토의 전쟁 재정을 떠받치는 핵심 수입원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세르비아 등은 독일군의 급여와 군수품, 점령 행정비는 물론 독일이 벌이는 전쟁 자체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부담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은 청산계정clearing account이라는 국가 간 금융 시스템을 이용했다. 독일 기업들은 점령국에서 원자재와 식량, 각종 상품을 사들이면서 그 대금을 제국은행에 지불했으나, 제국은행은 이를 청산계정상의 채무로만 기록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히틀러와 재무 관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 채무를 무효화하거나 패전국들에게 떠넘길 계획이었다.
또 하나의 핵심 장치는 제국신용금고(RKK)였다.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현금 대신 RKK 증서를 지급했고, 현지 상인들은 자국 중앙은행에서 현지 화폐로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화폐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부담은 결국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떠안았다. 독일 병사들은 마치 공짜로 쇼핑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실제 비용은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 벨기에인, 그리스인이 세금과 인플레이션으로 지불했다.
점령지의 중앙은행들도 독일의 전시경제에 편입되었다. 독일이 파견한 은행감독관들은 각국 금융기관에 독일 국채를 매입하도록 강요했고, 체코에서는 전쟁 말기 은행 자산의 70% 이상이 독일 국채로 채워질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는 '적성 자산'을 프랑스 국채로 전환해 점령비용을 마련했고, 점령국들은 자국 금융시장을 독일의 전쟁 재정에 종속시키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시스템은 독일 국민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독일 병사가 프랑스에서 와인을 사고,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구입하고, 그리스에서 식량을 가져와도 독일 국고에서는 거의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비용은 모두 점령지 주민들이 부담했다. 독일 병사들이 본국으로 보낸 수천만 개의 소포와 독일 가정의 식탁에 오른 버터와 커피, 각종 소비재는 바로 이러한 금융 시스템을 통해 가능해졌다.
왜 나치는 이런 체제를 선택했는가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유럽 전체를 약탈하는 이처럼 복잡한 재정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히틀러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를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처칠처럼 국민 앞에 나서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인들에게 전쟁의 진짜 비용을 최대한 감추려 했다. 세금은 가능한 한 올리지 않았고, 생활수준은 유지하려 했으며,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독일 밖에서 조달했다. 전쟁의 부담은 독일 국민이 아니라 점령지와 유대인, 강제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독일 경제만으로는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토를 점령해야 새로운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새로운 재원을 확보해야 다시 독일 국민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치는 끊임없이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전리품, 더 많은 희생자를 필요로 하는 체제로 변해갔다. 폴란드에서 시작된 약탈은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로, 다시 발칸과 소련으로 확대되었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령지에 대한 수탈과 유대인 재산 몰수도 더욱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홀로코스트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유대인 학살은 단순히 광적인 증오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반유대주의는 나치 이념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 재산 몰수와 강제노동, 점령지 약탈은 전시경제를 유지하는 핵심 재원이 되었고, 재정 전문가와 행정 관료들은 이를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조직했다. 학살은 이념과 전쟁경제, 재정 운영이 결합한 지점에서 더욱 급속히 확대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약탈과 반인도적 범죄의 공범은 누구인가
히틀러와 친위대, 게슈타포만으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은 결코 작동할 수 없었다. 수많은 독일인은 유대인을 직접 학살하지 않았고, 강제노동자를 감시하지도 않았으며, 점령지에서 약탈을 직접 지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제공한 혜택을 누렸다. 전쟁 중에도 낮은 세금과 안정된 물가, 상대적으로 풍족한 식량 공급을 누렸고, 전선의 가족이 보내온 커피와 버터, 초콜릿, 비단과 향수, 의류와 가재도구를 받았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가구를 배정받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와 연금도 약탈과 수탈로 마련된 재정 위에서 유지되었다.
나치 독일은 '동의에 기반한 독재'였다. 물론 공포와 폭력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나치가 12년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체제는 수많은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 대가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면서도, 혹은 애써 외면한 채 그 혜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일상의 작은 타협과 침묵은 거대한 범죄를 떠받치는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독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특정 집단의 권리와 재산을 빼앗아 다수의 풍요를 약속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타인의 고통이 나의 안락함으로 바뀔 때, 사람은 언제 그것을 외면하기 시작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공범은 과연 누구인가.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범죄의 수혜자가 되고,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체제의 공범이 되어가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80년 전 독일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전쟁 전에 비해 나쁘지 않은 생활수준을 누렸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인들은 나치 정권의 감시 및 폭압,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는 행정 직원도 포함해도 겨우 7,0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외에 훨씬 더 적은 규모의 보안 경찰만을 운용했을 뿐이다(훗날 공산주의 동독은 1,700만 명의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19만 명의 공식 감시 요원과 비슷한 수의 "비공식 협조자"를 운용했다. 나치 독일의 국민은 6,000만 명이었다). 1945년 4월 쾰른에 들어온 한 연합군 장교는 시민들이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옷도 잘 갖춰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전쟁 중 독일인의 생활수준은 1차 대전 당시보다 훨씬 나았고, 2차 대전 전보다도 나쁘지 않았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은 극심한 식량난과 인플레이션, 생활고를 겪었다. 히틀러는 그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독일 국민이 다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3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국민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핵심 정책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전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재무 관료들이 수차례 증세를 건의했지만 노동계층에 대한 직접 증세는 최소화되었다. 부득이 증세가 필요한 경우에는 부유층에 과세하거나 부동산 소유자에게 과세했다. 군인 가족 수당은 확대했다. 연금도 인상했고, 식량 공급은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병사들의 급여는 여러 차례 인상했고, 해외에서 자유롭게 쇼핑하고 물건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전선에 나간 병사들이 가족에게 보낸 소포는 수천만 건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버터와 커피, 초콜릿, 통조림 같은 식료품부터 향수와 비누, 실크 직물, 모피, 시계, 카메라, 의류, 은식기, 가구까지 온갖 물건이 들어 있었다. 전후 독일의 대표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렇게 회상했다. "파리에서는 향기로운 비누가, 폴란드에서는 통조림이, 노르웨이에서는 순록 햄이, 그리스에서는 건포도가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던 가운데, 독일인은 어떻게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
"홀로코스트는 약탈과 학살의 결합이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어떻게 독일인의 복지가 되었는가?
이 책은 충격적이게도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대인 학살은 단순히 인종주의적 광기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박해는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전쟁 재정이 맞물려 움직인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유대인의 재산은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몰수되었다. 은행 예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계좌로 이전되었고, 기업과 주택, 토지, 귀금속과 보석은 차례로 처분되었다. 가구와 식기, 침대와 옷가지 같은 생활용품까지도 경매에 부쳐져 독일인과 점령지 주민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점령지에서는 몰수한 유대인 재산을 국채로 전환하거나 전쟁 비용으로 편입하는 작업이 행정 절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유대인 재산을 전시 국채로 전환한 방식이 중요하다. 형식적으로는 재산을 압류한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바꾼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채권자인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독일의 재정 관료들은 그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재산은 독일의 전쟁 재정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렇게 확보된 자금은 단순히 국가 금고에 쌓여 있지 않았다. 병사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데 사용되었고, 군인 가족 지원금과 각종 사회복지 재원으로 흘러들어갔다. 독일은 그리스에서 유대인 재산을 활용해 수개월 동안 점령 비용의 약 70%를 충당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 세르비아, 폴란드 등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전쟁 자금을 마련했다. 유럽 유대인 가구에서 강제로 처분된 재산의 규모는 150억~200억 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살의 경제적 수혜자가 되었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독일인은 살해된 유대인의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들의 옷을 입었다. 유대인의 강제노동에서 나온 임금은 독일 여성과 아동을 위한 각종 지원금의 재원이 되었으며, 병사들이 점령지에서 구입한 물건의 상당수 역시 유대인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뒷받침되었다.
"전쟁은 전쟁을 먹여 살려야 한다"
유럽 전체는 독일의 거대한 금고였다
그러나 유대인 재산만으로는 독일의 전쟁과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나치는 단순히 영토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를 독일 전쟁경제의 금고이자 세금 창고로 바꾸었다.
독일은 점령국들에게 막대한 점령비용을 부과했다. 겉으로는 독일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독일 본토의 전쟁 재정을 떠받치는 핵심 수입원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세르비아 등은 독일군의 급여와 군수품, 점령 행정비는 물론 독일이 벌이는 전쟁 자체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부담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은 청산계정clearing account이라는 국가 간 금융 시스템을 이용했다. 독일 기업들은 점령국에서 원자재와 식량, 각종 상품을 사들이면서 그 대금을 제국은행에 지불했으나, 제국은행은 이를 청산계정상의 채무로만 기록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히틀러와 재무 관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 채무를 무효화하거나 패전국들에게 떠넘길 계획이었다.
또 하나의 핵심 장치는 제국신용금고(RKK)였다.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현금 대신 RKK 증서를 지급했고, 현지 상인들은 자국 중앙은행에서 현지 화폐로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화폐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부담은 결국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떠안았다. 독일 병사들은 마치 공짜로 쇼핑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실제 비용은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 벨기에인, 그리스인이 세금과 인플레이션으로 지불했다.
점령지의 중앙은행들도 독일의 전시경제에 편입되었다. 독일이 파견한 은행감독관들은 각국 금융기관에 독일 국채를 매입하도록 강요했고, 체코에서는 전쟁 말기 은행 자산의 70% 이상이 독일 국채로 채워질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는 '적성 자산'을 프랑스 국채로 전환해 점령비용을 마련했고, 점령국들은 자국 금융시장을 독일의 전쟁 재정에 종속시키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시스템은 독일 국민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독일 병사가 프랑스에서 와인을 사고,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구입하고, 그리스에서 식량을 가져와도 독일 국고에서는 거의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비용은 모두 점령지 주민들이 부담했다. 독일 병사들이 본국으로 보낸 수천만 개의 소포와 독일 가정의 식탁에 오른 버터와 커피, 각종 소비재는 바로 이러한 금융 시스템을 통해 가능해졌다.
왜 나치는 이런 체제를 선택했는가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유럽 전체를 약탈하는 이처럼 복잡한 재정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히틀러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를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처칠처럼 국민 앞에 나서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인들에게 전쟁의 진짜 비용을 최대한 감추려 했다. 세금은 가능한 한 올리지 않았고, 생활수준은 유지하려 했으며,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독일 밖에서 조달했다. 전쟁의 부담은 독일 국민이 아니라 점령지와 유대인, 강제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독일 경제만으로는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토를 점령해야 새로운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새로운 재원을 확보해야 다시 독일 국민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치는 끊임없이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전리품, 더 많은 희생자를 필요로 하는 체제로 변해갔다. 폴란드에서 시작된 약탈은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로, 다시 발칸과 소련으로 확대되었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령지에 대한 수탈과 유대인 재산 몰수도 더욱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홀로코스트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유대인 학살은 단순히 광적인 증오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반유대주의는 나치 이념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 재산 몰수와 강제노동, 점령지 약탈은 전시경제를 유지하는 핵심 재원이 되었고, 재정 전문가와 행정 관료들은 이를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조직했다. 학살은 이념과 전쟁경제, 재정 운영이 결합한 지점에서 더욱 급속히 확대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약탈과 반인도적 범죄의 공범은 누구인가
히틀러와 친위대, 게슈타포만으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은 결코 작동할 수 없었다. 수많은 독일인은 유대인을 직접 학살하지 않았고, 강제노동자를 감시하지도 않았으며, 점령지에서 약탈을 직접 지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제공한 혜택을 누렸다. 전쟁 중에도 낮은 세금과 안정된 물가, 상대적으로 풍족한 식량 공급을 누렸고, 전선의 가족이 보내온 커피와 버터, 초콜릿, 비단과 향수, 의류와 가재도구를 받았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가구를 배정받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와 연금도 약탈과 수탈로 마련된 재정 위에서 유지되었다.
나치 독일은 '동의에 기반한 독재'였다. 물론 공포와 폭력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나치가 12년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체제는 수많은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 대가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면서도, 혹은 애써 외면한 채 그 혜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일상의 작은 타협과 침묵은 거대한 범죄를 떠받치는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독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가 특정 집단의 권리와 재산을 빼앗아 다수의 풍요를 약속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타인의 고통이 나의 안락함으로 바뀔 때, 사람은 언제 그것을 외면하기 시작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공범은 과연 누구인가.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범죄의 수혜자가 되고,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체제의 공범이 되어가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80년 전 독일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목차
목차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서론
1부 여론 정치가의 등장
1장 '인민의 제국'이라는 꿈
2장 순응하는 독재
2부 지배와 약탈
3장 흔들림 없는 효율성으로
4장 인민을 위한 이익
5장 버팀목: 서유럽
6장 확장의 공간: 동유럽
3부 유대인 수탈
7장 국가 원리로서의 약탈
8장 독일 국방군을 위한 자금 세탁
9장 독일과 동맹국 간의 보조금
10장 금의 행방
4부 인민의 복지를 위한 범죄
11장 악의 열매
12장 투기적 정치
13장 나치 사회주의
계산에 관한 참고사항
독일이 정한 환율(1939~1945)
약어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론
1부 여론 정치가의 등장
1장 '인민의 제국'이라는 꿈
2장 순응하는 독재
2부 지배와 약탈
3장 흔들림 없는 효율성으로
4장 인민을 위한 이익
5장 버팀목: 서유럽
6장 확장의 공간: 동유럽
3부 유대인 수탈
7장 국가 원리로서의 약탈
8장 독일 국방군을 위한 자금 세탁
9장 독일과 동맹국 간의 보조금
10장 금의 행방
4부 인민의 복지를 위한 범죄
11장 악의 열매
12장 투기적 정치
13장 나치 사회주의
계산에 관한 참고사항
독일이 정한 환율(1939~1945)
약어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저자
괴츠 알리 괴츠 알리G?tz Aly
제3제국과 홀로코스트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만 상Heinrich-Mann-Preis(2002), 루트비히 뵈르네 상Ludwig-B?rne-Preis(2012) 등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왜 독일인인가? 왜 유대인인가? 평등, 시기, 인종 혐오 1800-1933Warum die Deutschen? Warum die Juden? : Gleichheit, Neid und Rassenhass 1800-1933》(2011)와 《부담스러운 자들. 안락사 1939-1945. 하나의 사회사Die Belasteten. 'Euthanasie' 1939-1945. Eine Gesellschaftsgeschichte》(2013), 《유럽, 유대인에게 등 돌리다 1880-1945Europa gegen die Juden 1880 -1945》(2017) 등이 있다. 2025년에는 나치 정권이 어떻게 평범한 독일 대중을 범죄의 공범이자 동조자로 만들었는지 그 '미세한 통치 메커니즘'을 파헤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 독일 1933 -1945Wie konnte das geschehen? Deutschland 1933-1945》를 출간했으며, 나치의 통치 기법(정보 조작, 대중 선동, 소수자에 대한 증오 유발)이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권 및 극우 포퓰리즘의 행태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작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제3제국과 홀로코스트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만 상Heinrich-Mann-Preis(2002), 루트비히 뵈르네 상Ludwig-B?rne-Preis(2012) 등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왜 독일인인가? 왜 유대인인가? 평등, 시기, 인종 혐오 1800-1933Warum die Deutschen? Warum die Juden? : Gleichheit, Neid und Rassenhass 1800-1933》(2011)와 《부담스러운 자들. 안락사 1939-1945. 하나의 사회사Die Belasteten. 'Euthanasie' 1939-1945. Eine Gesellschaftsgeschichte》(2013), 《유럽, 유대인에게 등 돌리다 1880-1945Europa gegen die Juden 1880 -1945》(2017) 등이 있다. 2025년에는 나치 정권이 어떻게 평범한 독일 대중을 범죄의 공범이자 동조자로 만들었는지 그 '미세한 통치 메커니즘'을 파헤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 독일 1933 -1945Wie konnte das geschehen? Deutschland 1933-1945》를 출간했으며, 나치의 통치 기법(정보 조작, 대중 선동, 소수자에 대한 증오 유발)이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권 및 극우 포퓰리즘의 행태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작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