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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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소설가가 심연의 자리에서 쓴
전 세계 평단을 낯선 경이에 빠뜨린 산문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2024년 2월 소설가 이윤 리가 자신의 문을 두드린 경찰에게 들은 첫마디다. 부드럽게 말할 방법도 없고, 잘 말할 방법도 없는 그 일은 열아홉 살 둘째 아들 제임스가 스스로 삶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윤 리에게 이것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2017년 열여섯 살이었던 첫째 아들 빈센트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 차마 헤아릴 수도 없는 상실 앞에서 저자는 세상 밖으로 숨어버리지도, 감정의 수렁 속으로 침잠하지도 않는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아들을 위한 책 한 권을 썼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애도의 기록과도 닮지 않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평단을 압도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담담하고 묵직하게 울리는 제목의 이 책은 2026년 퓰리처상, 2026년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고 2025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올해의 책 외에도 수없이 많은 목록에 등재되었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이 책을 두고 "경외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실의 고통을 말하는 책은 무수하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처럼 평단과 독자들을 흔든 것일까.
당신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된다
변명도 애도도 거부하고 심연에서 살기를 선택하다
가장 슬프면서도 또한 가장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이것이다. 두 번째로 아이를 잃게 되면 이전 경험에서 아이를 잃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이미 배워 안다는 사실.
- 본문 중에서
둘째 아들의 죽음 이후, 저자는 일상을 이어간다. 예정되어 있던 피아노 레슨에 가고, 마감이 약속된 원고를 쓴다.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정원에 구근을 심는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모두 우리가 아는 애도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는 유난히 회복이 재빠르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모습과 그의 삶이 그리는 궤적 사이의 간극은 어떤 독자에게 조심스러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국 언론은 그의 비극을 요란한 가십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책임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극복과 치유에 대한 서사도, 새로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결론도 없다. 그는 애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 말에는 흔히 슬픔의 단계를 충실히 통과하면 언젠가 터널에 끝이 있으리라는 하나의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제 상실이 만든 심연은 언젠가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가 살아갈 서식지다. 앞으로 이곳에 쭉 머물러야 하기에 서둘러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일은 그의 삶이 다할 때나 끝날 일이다. 이 책을 쓰는 것은 그 공허 곁에서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극한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
가짜 위안 대신 붙들 수 있는 단 한 가지
저자는 첫째 아들 빈센트를 잃고 『이성이 다하는 곳Where Reasons End』이라는 소설을 썼다. 자신과 떠나간 첫째 아들이 문학과 언어, 삶과 죽음을 두고 끝없이 대화하는 작품이다. 죽은 아이가 돌아와 어머니와 논쟁할 수 없기에 그 책은 소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실제로 한계에 달할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자는 그 책이 빈센트가 환영하고 사랑할만한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제임스를 위한 언어를 찾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제임스는 말이 적었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비유보다 사실을, 감정보다 논리를 편안해했다. 그래서 제임스를 위한 책은 그를 함부로 상상하지 않으려는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라 부른다. 이 책은 제임스의 방식으로 제임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슬픔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다.
심연의 자리에서 이윤 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실이다. 가짜 위로에 미혹되지 않고, 일어난 일을 다른 이야기로 바꾸지 않으며, 추론과 희망을 사실로 둔갑시키지 않는 것. 그는 이 태도를 '근본적 수용'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책에는 후회와 가정과 자책이 뒤섞인 비통한 외침 또한 없다. 만약을 가정하지도, 교훈을 길어올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도달하는 생각은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다. 그러나 삶의 가장 극한에서도 사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 그의 문장은 독자를 전혀 낯선 사유의 자리로 데려간다.
우리 아이들의 예민함과 독특함을 존중해서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자랄 공간을 최대한으로 마련해 주는 일이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본문 중에서
그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절대적 상실 앞에서 발견한 유일한 사랑의 방법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써온 이윤 리에게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다. 더군다나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언어도 정확하지 않다. 가슴이 찢어진다거나 산산이 부서졌다는 말조차 실제로 일어난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곳 또한 언어밖에 없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하나하나 쌓아 나간다.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을 불러오고, 문장을 하나씩 놓는다. 제임스가 좋아하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과 카뮈를 읽고, 빈센트가 좋아하던 아리아 「꽃의 이중창」을 듣는다. 자신이 싸워온 우울의 시간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는다. 빈센트의 화사한 색의 플리스 자켓을 꺼내 입는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서로 주고받던 농담과 다툼을 기록한다. 시간과 기억이 비선형적으로 교차하는 동안 빈센트와 제임스는 '두 번의 자살'이라는 하나의 비극에서 빠져나와 저마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빵을 굽고 시를 쓰고 뜨개질을 했던 빈센트, 말보다 침묵과 논리를 좋아하고 여덟 개 언어를 익혔던 제임스. 이 책은 죽은 아이들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죽음이 그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그 고요한 집념 아래 흐르는 고통의 저류를 느끼며 독자는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 왜 이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 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한 문단의 추천사로는
도무지 다 말할 수 없던 책
하반기 모든 추천사 요청을 거절하려 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을 받아들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 작업에는 예상 밖으로 많은 품이 들었다. 모든 문장의 밀도가 높아 좀처럼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없었고, 뒤표지에 들어갈 한 문단 분량으로는 도무지 읽은 것을 담을 수 없었다. 한마디도 깎아낼 수 없는 추천의 글과 함께 그는 책을 사지 않은 사람도 모두 이 글의 전문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여기 싣는다.
이윤 리는 두 번의 자살 시도 이후 회고록을 썼고, 2017년 첫째 아들이 자살한 후엔 소설을 썼으며, 2024년 둘째마저 같은 방식으로 떠난 뒤엔 두 번째 회고록인 이 책을 썼다. 상상이 불가능한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을 생면부지의 작가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왜 책을 쓰는가? 어떻게 그걸 쓸 수 있는가?
삶에서 경험과 이해는 동시적이지 않다. 십 년 전의 경험을 오늘 문득 이해하는 게 인간이다. 그 시간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헤맨다. 작가도 그렇다. 다만 그들은 무엇이건 문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걸 이해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쓰는 것이다. '비극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비극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해란 무엇인가. 답을 찾는다는 뜻인가? 저 죽음들에 대한, 정연하고 그래서 기만적인 답을? 저자는 거부한다. 답을 갈구하는 본능을 결연한 지성으로 억제한다. 이제 세상에 없는 두 아이의 내면을 추론할 권리는 엄마에게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해란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불가능의 구조를 분명히 해두는 일에 불과하다.
그런 무지의 상태에선 애도 작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저자는 다시 거부한다. 애도 같은 건 없다. 심연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단계나 방법 따윈 없다. 심연에서 그는 산다. 자식을 잃고 울다 바위가 된 니오베는 죽은 게 아니라 돌덩어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냐고? 저자는 말한다. 그게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리가 이런 것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서, 발생한 고통은 발생할 고통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미 겪은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고. 그게 필요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배운다. '고통받는' 게 아니라 '고통하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그 곁에 꼭 있어야/없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 앎이 필요한 때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추천의 말〉 전문
전 세계 평단을 낯선 경이에 빠뜨린 산문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2024년 2월 소설가 이윤 리가 자신의 문을 두드린 경찰에게 들은 첫마디다. 부드럽게 말할 방법도 없고, 잘 말할 방법도 없는 그 일은 열아홉 살 둘째 아들 제임스가 스스로 삶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윤 리에게 이것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2017년 열여섯 살이었던 첫째 아들 빈센트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 차마 헤아릴 수도 없는 상실 앞에서 저자는 세상 밖으로 숨어버리지도, 감정의 수렁 속으로 침잠하지도 않는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아들을 위한 책 한 권을 썼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애도의 기록과도 닮지 않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평단을 압도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담담하고 묵직하게 울리는 제목의 이 책은 2026년 퓰리처상, 2026년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고 2025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올해의 책 외에도 수없이 많은 목록에 등재되었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이 책을 두고 "경외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실의 고통을 말하는 책은 무수하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처럼 평단과 독자들을 흔든 것일까.
당신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된다
변명도 애도도 거부하고 심연에서 살기를 선택하다
가장 슬프면서도 또한 가장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이것이다. 두 번째로 아이를 잃게 되면 이전 경험에서 아이를 잃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이미 배워 안다는 사실.
- 본문 중에서
둘째 아들의 죽음 이후, 저자는 일상을 이어간다. 예정되어 있던 피아노 레슨에 가고, 마감이 약속된 원고를 쓴다.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정원에 구근을 심는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모두 우리가 아는 애도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는 유난히 회복이 재빠르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모습과 그의 삶이 그리는 궤적 사이의 간극은 어떤 독자에게 조심스러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국 언론은 그의 비극을 요란한 가십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책임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극복과 치유에 대한 서사도, 새로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결론도 없다. 그는 애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 말에는 흔히 슬픔의 단계를 충실히 통과하면 언젠가 터널에 끝이 있으리라는 하나의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제 상실이 만든 심연은 언젠가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가 살아갈 서식지다. 앞으로 이곳에 쭉 머물러야 하기에 서둘러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일은 그의 삶이 다할 때나 끝날 일이다. 이 책을 쓰는 것은 그 공허 곁에서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극한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
가짜 위안 대신 붙들 수 있는 단 한 가지
저자는 첫째 아들 빈센트를 잃고 『이성이 다하는 곳Where Reasons End』이라는 소설을 썼다. 자신과 떠나간 첫째 아들이 문학과 언어, 삶과 죽음을 두고 끝없이 대화하는 작품이다. 죽은 아이가 돌아와 어머니와 논쟁할 수 없기에 그 책은 소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실제로 한계에 달할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자는 그 책이 빈센트가 환영하고 사랑할만한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제임스를 위한 언어를 찾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제임스는 말이 적었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비유보다 사실을, 감정보다 논리를 편안해했다. 그래서 제임스를 위한 책은 그를 함부로 상상하지 않으려는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라 부른다. 이 책은 제임스의 방식으로 제임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슬픔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다.
심연의 자리에서 이윤 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실이다. 가짜 위로에 미혹되지 않고, 일어난 일을 다른 이야기로 바꾸지 않으며, 추론과 희망을 사실로 둔갑시키지 않는 것. 그는 이 태도를 '근본적 수용'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책에는 후회와 가정과 자책이 뒤섞인 비통한 외침 또한 없다. 만약을 가정하지도, 교훈을 길어올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도달하는 생각은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다. 그러나 삶의 가장 극한에서도 사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 그의 문장은 독자를 전혀 낯선 사유의 자리로 데려간다.
우리 아이들의 예민함과 독특함을 존중해서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자랄 공간을 최대한으로 마련해 주는 일이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본문 중에서
그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절대적 상실 앞에서 발견한 유일한 사랑의 방법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써온 이윤 리에게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다. 더군다나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언어도 정확하지 않다. 가슴이 찢어진다거나 산산이 부서졌다는 말조차 실제로 일어난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곳 또한 언어밖에 없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하나하나 쌓아 나간다.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을 불러오고, 문장을 하나씩 놓는다. 제임스가 좋아하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과 카뮈를 읽고, 빈센트가 좋아하던 아리아 「꽃의 이중창」을 듣는다. 자신이 싸워온 우울의 시간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는다. 빈센트의 화사한 색의 플리스 자켓을 꺼내 입는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서로 주고받던 농담과 다툼을 기록한다. 시간과 기억이 비선형적으로 교차하는 동안 빈센트와 제임스는 '두 번의 자살'이라는 하나의 비극에서 빠져나와 저마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빵을 굽고 시를 쓰고 뜨개질을 했던 빈센트, 말보다 침묵과 논리를 좋아하고 여덟 개 언어를 익혔던 제임스. 이 책은 죽은 아이들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죽음이 그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그 고요한 집념 아래 흐르는 고통의 저류를 느끼며 독자는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 왜 이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 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한 문단의 추천사로는
도무지 다 말할 수 없던 책
하반기 모든 추천사 요청을 거절하려 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을 받아들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 작업에는 예상 밖으로 많은 품이 들었다. 모든 문장의 밀도가 높아 좀처럼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없었고, 뒤표지에 들어갈 한 문단 분량으로는 도무지 읽은 것을 담을 수 없었다. 한마디도 깎아낼 수 없는 추천의 글과 함께 그는 책을 사지 않은 사람도 모두 이 글의 전문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여기 싣는다.
이윤 리는 두 번의 자살 시도 이후 회고록을 썼고, 2017년 첫째 아들이 자살한 후엔 소설을 썼으며, 2024년 둘째마저 같은 방식으로 떠난 뒤엔 두 번째 회고록인 이 책을 썼다. 상상이 불가능한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을 생면부지의 작가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왜 책을 쓰는가? 어떻게 그걸 쓸 수 있는가?
삶에서 경험과 이해는 동시적이지 않다. 십 년 전의 경험을 오늘 문득 이해하는 게 인간이다. 그 시간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헤맨다. 작가도 그렇다. 다만 그들은 무엇이건 문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걸 이해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쓰는 것이다. '비극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비극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해란 무엇인가. 답을 찾는다는 뜻인가? 저 죽음들에 대한, 정연하고 그래서 기만적인 답을? 저자는 거부한다. 답을 갈구하는 본능을 결연한 지성으로 억제한다. 이제 세상에 없는 두 아이의 내면을 추론할 권리는 엄마에게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해란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불가능의 구조를 분명히 해두는 일에 불과하다.
그런 무지의 상태에선 애도 작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저자는 다시 거부한다. 애도 같은 건 없다. 심연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단계나 방법 따윈 없다. 심연에서 그는 산다. 자식을 잃고 울다 바위가 된 니오베는 죽은 게 아니라 돌덩어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냐고? 저자는 말한다. 그게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리가 이런 것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서, 발생한 고통은 발생할 고통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미 겪은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고. 그게 필요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배운다. '고통받는' 게 아니라 '고통하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그 곁에 꼭 있어야/없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 앎이 필요한 때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추천의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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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1. 이것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2. 사실의 문제
3. 돌연 심연에 놓이다 (그리고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독자를 위한 단서)
4.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5. 직감은 서사다
6. 삶의 틀
7. 엄마의 직감이란 게 그런 것
8.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9. 현실을 새로이 인식하는 것
10. 또 다른 신생아
11. 심연이란 서식지
12.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13. 돌멩이는 바윗돌이 아니다
14. 지금과 그때, 지금 또 지금, 지금과 나중
15. 형제이자 단짝
16.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
17. 외로움이란 돌멩이
18. 제자리걸음
19. 다시, 심연
20.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21. 제임스에게는 하찮은 희극이었을 일들
22.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23.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2. 사실의 문제
3. 돌연 심연에 놓이다 (그리고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독자를 위한 단서)
4.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5. 직감은 서사다
6. 삶의 틀
7. 엄마의 직감이란 게 그런 것
8.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9. 현실을 새로이 인식하는 것
10. 또 다른 신생아
11. 심연이란 서식지
12.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13. 돌멩이는 바윗돌이 아니다
14. 지금과 그때, 지금 또 지금, 지금과 나중
15. 형제이자 단짝
16.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
17. 외로움이란 돌멩이
18. 제자리걸음
19. 다시, 심연
20.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21. 제임스에게는 하찮은 희극이었을 일들
22.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23.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이윤 리 Yiyun Li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에 면역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이오와대학교로 유학 왔다. 재학 중 유서 깊은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에 면역학 석사 학위를, 2005년에 동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집 『천년의 기도』로 그해 최고의 데뷔 작품에 수여하는 가디언지 퍼스트 북 어워드를 받았으며, 연이어 캘리포니아 북 어워드 데뷔 작품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소설상, 펜/헤밍웨이상을 받으며 영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2007년에 리는 《그랜타》의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21명에, 2010년에는 《뉴요커》의 40세 이하 최고의 작가 20명에 선정되었다. 리는 소위 천재들의 상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과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이며, 윈덤캠벨 문학상과 단편 소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하며 작가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에 면역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이오와대학교로 유학 왔다. 재학 중 유서 깊은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에 면역학 석사 학위를, 2005년에 동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집 『천년의 기도』로 그해 최고의 데뷔 작품에 수여하는 가디언지 퍼스트 북 어워드를 받았으며, 연이어 캘리포니아 북 어워드 데뷔 작품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소설상, 펜/헤밍웨이상을 받으며 영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2007년에 리는 《그랜타》의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21명에, 2010년에는 《뉴요커》의 40세 이하 최고의 작가 20명에 선정되었다. 리는 소위 천재들의 상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과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이며, 윈덤캠벨 문학상과 단편 소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하며 작가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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