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수레
파격 정치풍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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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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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통치의 민낯을 드러내는 버나드 쇼의 파격 정치풍자극
국민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버나드 쇼의 《사과수레》는 민주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풍자희곡이다. 작품은 국왕과 내각의 갈등이라는 설정을 통해 '국민에 의한 정부'라는 이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쇼는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선거, 여론, 자본, 언론이 결합할 때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변질되는지를 극적인 대화 속에 녹여 냈다.
이 작품은 1929년 초연되었을 때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작가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긴 서문을 덧붙여야 했다. 이는 《사과수레》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텍스트임을 보여 준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확고한 신념을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신념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권력 앞에서 타협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과 독자는 '현명한 통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쓰던 1928년 말 이전,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서(1928년)'를 썼으며 노벨 문학상(1925년)을 받았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데다 '성 조앤(1923년)' 이후 희곡을 쓰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그가 창작력을 잃은 건 아닌지를 의심하던 때였다. 그런 차에, 쇼의 작품 '므두셀라로 돌아가라(1923년)'를 처음으로 연출한 연극 기업인인 배리 잭슨 경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다음 해인 1929년에 몰번에서 쇼의 연극을 드높이기 위한 연극페스티벌을 시작하겠다면서, 새 작품을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몰번은 런던에서 서북서쪽으로 2시간, 버밍엄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릉지대인 몰번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쇼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몰번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매년 봄이면 이곳을 찾아 온천을 즐기고 휴식을 취했다. 조용한 온천 마을의 분위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즈음 쇼에게 그곳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쉬던 마을에서 자신의 연극을 해마다 상연하기 위한 축제를 시작하겠다는데, 창작력이 아직 메마르지 않은 작가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제안이 있을까?
결국 그는 6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연극이 먼 미래의 일을 담았다는 언질이 주어지지만,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군주제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았으니, 그 군주가 능력과 교양을 갖추고 자비롭기까지 하다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군주는 도대체 어떻게 길러낸단 말인가? 쇼가 가입한 페이비언 협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여성 참정권 법이 통과된 게 지난 7월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모든 성인이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겨우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영국 여성들이 이 투표권을 처음으로 행사하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민주주의의 한계를 봤다고 했으니, 진단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아직 민주주의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인류 대다수의 처지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고갱이인 표현의 자유란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작가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쇼 선생이 어떤 분인가? 그로선 눈에 뻔히 보이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원제라고 하지만 상원은 귀족의 집단이니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가진 실권도 별것 없다. 산업혁명 이후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귀족이든 평민이든 유능한 인재는 정치계에 입문하려 들지를 않는다. 실권을 가진 하원은 어떤가? 자리를 탐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너무 많다. 이들은 국리민복보다는 다음 선거에 관심이 더 많으며, 국민의 소리보다는 대기업의 요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 즉 나라의 미래를 위해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금권정치에 길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쇼로선 성인 선거권에 의한 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의 실현은 사기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제도라는 쇼의 주장을 성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옮기고 나서'에서
국민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버나드 쇼의 《사과수레》는 민주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풍자희곡이다. 작품은 국왕과 내각의 갈등이라는 설정을 통해 '국민에 의한 정부'라는 이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쇼는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선거, 여론, 자본, 언론이 결합할 때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변질되는지를 극적인 대화 속에 녹여 냈다.
이 작품은 1929년 초연되었을 때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작가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긴 서문을 덧붙여야 했다. 이는 《사과수레》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텍스트임을 보여 준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확고한 신념을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신념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권력 앞에서 타협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과 독자는 '현명한 통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쓰던 1928년 말 이전,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서(1928년)'를 썼으며 노벨 문학상(1925년)을 받았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데다 '성 조앤(1923년)' 이후 희곡을 쓰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그가 창작력을 잃은 건 아닌지를 의심하던 때였다. 그런 차에, 쇼의 작품 '므두셀라로 돌아가라(1923년)'를 처음으로 연출한 연극 기업인인 배리 잭슨 경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다음 해인 1929년에 몰번에서 쇼의 연극을 드높이기 위한 연극페스티벌을 시작하겠다면서, 새 작품을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몰번은 런던에서 서북서쪽으로 2시간, 버밍엄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릉지대인 몰번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쇼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몰번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매년 봄이면 이곳을 찾아 온천을 즐기고 휴식을 취했다. 조용한 온천 마을의 분위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즈음 쇼에게 그곳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쉬던 마을에서 자신의 연극을 해마다 상연하기 위한 축제를 시작하겠다는데, 창작력이 아직 메마르지 않은 작가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제안이 있을까?
결국 그는 6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연극이 먼 미래의 일을 담았다는 언질이 주어지지만,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군주제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았으니, 그 군주가 능력과 교양을 갖추고 자비롭기까지 하다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군주는 도대체 어떻게 길러낸단 말인가? 쇼가 가입한 페이비언 협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여성 참정권 법이 통과된 게 지난 7월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모든 성인이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겨우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영국 여성들이 이 투표권을 처음으로 행사하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민주주의의 한계를 봤다고 했으니, 진단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아직 민주주의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인류 대다수의 처지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고갱이인 표현의 자유란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작가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쇼 선생이 어떤 분인가? 그로선 눈에 뻔히 보이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원제라고 하지만 상원은 귀족의 집단이니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가진 실권도 별것 없다. 산업혁명 이후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귀족이든 평민이든 유능한 인재는 정치계에 입문하려 들지를 않는다. 실권을 가진 하원은 어떤가? 자리를 탐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너무 많다. 이들은 국리민복보다는 다음 선거에 관심이 더 많으며, 국민의 소리보다는 대기업의 요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 즉 나라의 미래를 위해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금권정치에 길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쇼로선 성인 선거권에 의한 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의 실현은 사기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제도라는 쇼의 주장을 성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옮기고 나서'에서
목차
목차
옮긴이 서문
희곡
일러두기
등장인물
제1막
막간극
제2막
서문
옮기고 나서
희곡
일러두기
등장인물
제1막
막간극
제2막
서문
옮기고 나서
저자
저자
버나드 쇼
(Bernard Shaw, 1856-1950)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이다. 20세에 런던으로 와서 1884년 페이비언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곧 책, 미술, 음악, 연극 등의 평론가를 거쳐 희곡작가가 되었다.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인간과 초인(1903)》, 《피그말리온(1913)》,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 자본주의 안내서(1928)》, 평론집 《쇼에게 세상을 묻다(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 1944)》 등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이다. 20세에 런던으로 와서 1884년 페이비언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곧 책, 미술, 음악, 연극 등의 평론가를 거쳐 희곡작가가 되었다.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인간과 초인(1903)》, 《피그말리온(1913)》,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 자본주의 안내서(1928)》, 평론집 《쇼에게 세상을 묻다(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 194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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