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탄생(문학동네시인선 232)
Regular price
$13.48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잎사귀는 푸른 지면(紙面)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연한 그늘 아래 들려오는 녹녹한 목소리
‘맑고 부드러운 전심’을 담은 한 권의 편지
문학동네시인선의 232번째 시집으로 문태준 시인의 『풀의 탄생』을 펴낸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올해로 시력 30년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 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서정시 가문의 적자’ ‘한국 서정시의 수사(修士)’라는 칭호에 값하는 걸출한 시세계를 우직한 소처럼 일구어나가기를 30년. 무엇보다 간결하고도 선명한, ‘운문’이라는 시의 본령에 충실한 창작으로 하여금 그는 이제 명실상부 우리 시단의 ‘서정시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신작 시집 『풀의 탄생』은 문태준 미학과 시학의 절정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전개되고 또 전회하는 그의 새 국면을 맛볼 수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고요하고도 따듯한 미풍 같은 시로 우리에게 언제나 새봄을 선물했던 시인 문태준이 『풀의 탄생』은 예외적으로 여름을 목전에 두고 선보인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서 “풀밭의 살림을 일궈 풀과 산다”는 시인의 말이자 전기적 사실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이번 시집에서는 새로운 삶과 재-생의 기운/기미로 생동하는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계절처럼 반복되지만 절대 같지만은 않은, 그래서 더 경이롭고 고마운 삶의 풍경이, 시인만의 시심과 시안을 통과하자 더없이 풍요로운 비경(?境)이 되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연하게 소생하고, 힘줄처럼 억세지고/ 가을에는 노래를 짓는”(시인의 말) “풀의 말”(「풀」) 속에 슬몃 끼워둔, 시인의 “맑고 부드러운 전심(全心)”(「작약꽃 피면」)에 우리의 귀와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어도 좋겠다.
잎사귀에 빗방울이 떨어지네
나의 여름이 떨어지네
빗방울의 심장이 뛰네
바라춤을 추네
산록(山綠)이 비치네
빗방울 속엔
천둥이 굵은 저음으로 우네
몰랑한 너와 내가 있네
잎사귀는 푸른 지면(紙面)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_「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전문
『풀의 탄생』의 4부 구성은 사계를 담은 가방이자 한 권의 편지에 다름 아니다. 이 한 권의 가방 속에는 시인이 제주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풍광도 들어 있거니와, 그곳에서는 물론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며 쓴 편지들도 고이 접혀 있다. 1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에는 흙과 필연적으로 벗삼아 살아가는 시인의 오늘과 이제는 ‘흙속’에 있는 지난날과 옛사람들, 흙 위로 피어오른 생명들을 노래하는 시편을 모았다. 이 “움직이는/ 희색(喜色)”(「뒷집」)들의 이미지와 향기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2부 ‘첫 여름날을 맞은 해바라기를 두드리러 가자’에는 여름날, 여름밤의 풍경들을 향수 어린 목소리로 담아냈다. “투명한 정오”에는 “모시옷을 입은 잠자리가/ 하얀 깨꽃에 내려앉”(「대서(大暑)」)고, “밤안개는 여름밤을 체로 쳐 곱게 내리”(「하일(夏日)」)는 연하디연한 여름날. 더불어 「거미집」 「양지여인숙 같은 물웅덩이」에서처럼 절제되어 있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태준식 엘레지 역시 이 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이 가방을 오래 메고 다녔어
가방 속엔
바닷가와 흰 목덜미의 파도
재수록한 시
그날의 마지막 석양빛
이별의 낙수(落水) 소리
백합과 접힌 나비
건강한 해바라기
맞은편에 마른 잎
어제의 귀띔
나를 부축하던 약속
희락의 첫 눈송이
물풍선 같은 슬픔
오늘은 당신이 메고 가는군
해변을 걸어가는군
가방 속에
파도치는 나를 넣고서
_「가방」 전문
3부에는 가장 멀리 떠나온 곳에서, 시인의 가장 처음이자 시원이 겹쳐 보이는 시편들을 담았다. 그리운 것과 하염없이 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대상은 더욱 선명해져 “살아생전 그 차림 그 얼굴”(「심곡심산(深谷深山)」)로 마음속에 돋을새김된다. 나아가 부의 제목이기도 한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물결 1-도래(渡來)」)라는 문장은 시인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삶의 태도이자 시를 읽는 법으로도 읽혀 더욱 의미심장하다. 4부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에는 “시간의 가건물 속에 살고 있는”(「우치(愚癡) 1-뱀허물을 보고」) 듯한 인간 삶의 덧없고도 아름다운 면면을 봄볕 아지랑이처럼 은은한 문장으로 승화한 시들을 모았다. “우리에게 때때로 슬픔이 치런치런”(「월파(越波)」) 들이차고,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과월호 같아서/ 종잇장 네 귀가 닳아 있지만”(「수선화」), 그의 시편은 우리에게 “햇살의 멜로디를”(「이제 내 옷을 짓지 말아요」) 지어 입혀주고, “서러운 일은 이제 잊어요”(「수선화」) 하며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네
안간힘을 쓰지 않고
숨이 참 고르네
손쓸 필요가 없지
여파(餘波)도 없지
누구도 무너지지 않아
저 아래,
벙싯벙싯 웃고 있는 겨울 허공 좀 봐
_「안간힘을 쓰지 않고」 전문
문태준 시의 신묘함은 어린아이조차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 소박한 문장을 통해, 우주적인 열림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열림은 시인에게는 물론 독자에게 역시 ‘능동적 고요’를 요청한다. 한갓진 곳에서 도드라지는 무언가의 발견이 아니라, “목소리를 더 낮추고” “내 말귀는 그대로 곧 어두워져도 좋”(「멀구슬나무 아래에」)을 정도의 비워냄이 선행될 때에야, “신앙하듯”(「우리는 이대로 내려 살아라」) 바라보고 기다릴 때에야 자연은, 시는, 우리에게 비경이 보이는 자리를 겨우 내어주기 때문이리라. 이는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만 삼는 서정시와 달라지는 그만의 특유한 시적 태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무궁하고 무진한 자연 앞의 인간. 서로를 닮았고 또 전혀 닮지 않은 이 둘의 관계는 “함께 호흡하고 흐르면서 동근(同根)으로” 여길 때, “하나를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는 것을” 체감할 때 “공동의 살림”(‘인터뷰’에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시와 인간이 관계하는 법과도 참 닮았다. “말과 글자 없이도” “꼭 그 몫만큼의 어떤 전달”(「풀밭」)을 우리는 문태준의 시에서 오늘도 받고 또 배운다.
이처럼 모든 존재자가 거대한 그물처럼 서로 교섭하고 반사하고 반영하며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문태준의 시는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앞에서 살펴본 노자의 지적처럼 만물이 번성하고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상응한다. 문태준은 스스로 비움과 고요를 견지하여 우주 생명의 진경을 보고 듣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세계를 감상하는 것은 그가 초대하는 겸허한 고요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고요의 세계는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고, 자연의 비경 속에서 어느덧 우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풍요롭고 경이로운 세계이다. _홍용희, 해설에서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연한 그늘 아래 들려오는 녹녹한 목소리
‘맑고 부드러운 전심’을 담은 한 권의 편지
문학동네시인선의 232번째 시집으로 문태준 시인의 『풀의 탄생』을 펴낸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올해로 시력 30년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 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서정시 가문의 적자’ ‘한국 서정시의 수사(修士)’라는 칭호에 값하는 걸출한 시세계를 우직한 소처럼 일구어나가기를 30년. 무엇보다 간결하고도 선명한, ‘운문’이라는 시의 본령에 충실한 창작으로 하여금 그는 이제 명실상부 우리 시단의 ‘서정시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신작 시집 『풀의 탄생』은 문태준 미학과 시학의 절정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전개되고 또 전회하는 그의 새 국면을 맛볼 수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고요하고도 따듯한 미풍 같은 시로 우리에게 언제나 새봄을 선물했던 시인 문태준이 『풀의 탄생』은 예외적으로 여름을 목전에 두고 선보인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서 “풀밭의 살림을 일궈 풀과 산다”는 시인의 말이자 전기적 사실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이번 시집에서는 새로운 삶과 재-생의 기운/기미로 생동하는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계절처럼 반복되지만 절대 같지만은 않은, 그래서 더 경이롭고 고마운 삶의 풍경이, 시인만의 시심과 시안을 통과하자 더없이 풍요로운 비경(?境)이 되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연하게 소생하고, 힘줄처럼 억세지고/ 가을에는 노래를 짓는”(시인의 말) “풀의 말”(「풀」) 속에 슬몃 끼워둔, 시인의 “맑고 부드러운 전심(全心)”(「작약꽃 피면」)에 우리의 귀와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어도 좋겠다.
잎사귀에 빗방울이 떨어지네
나의 여름이 떨어지네
빗방울의 심장이 뛰네
바라춤을 추네
산록(山綠)이 비치네
빗방울 속엔
천둥이 굵은 저음으로 우네
몰랑한 너와 내가 있네
잎사귀는 푸른 지면(紙面)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_「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전문
『풀의 탄생』의 4부 구성은 사계를 담은 가방이자 한 권의 편지에 다름 아니다. 이 한 권의 가방 속에는 시인이 제주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풍광도 들어 있거니와, 그곳에서는 물론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며 쓴 편지들도 고이 접혀 있다. 1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에는 흙과 필연적으로 벗삼아 살아가는 시인의 오늘과 이제는 ‘흙속’에 있는 지난날과 옛사람들, 흙 위로 피어오른 생명들을 노래하는 시편을 모았다. 이 “움직이는/ 희색(喜色)”(「뒷집」)들의 이미지와 향기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2부 ‘첫 여름날을 맞은 해바라기를 두드리러 가자’에는 여름날, 여름밤의 풍경들을 향수 어린 목소리로 담아냈다. “투명한 정오”에는 “모시옷을 입은 잠자리가/ 하얀 깨꽃에 내려앉”(「대서(大暑)」)고, “밤안개는 여름밤을 체로 쳐 곱게 내리”(「하일(夏日)」)는 연하디연한 여름날. 더불어 「거미집」 「양지여인숙 같은 물웅덩이」에서처럼 절제되어 있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태준식 엘레지 역시 이 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이 가방을 오래 메고 다녔어
가방 속엔
바닷가와 흰 목덜미의 파도
재수록한 시
그날의 마지막 석양빛
이별의 낙수(落水) 소리
백합과 접힌 나비
건강한 해바라기
맞은편에 마른 잎
어제의 귀띔
나를 부축하던 약속
희락의 첫 눈송이
물풍선 같은 슬픔
오늘은 당신이 메고 가는군
해변을 걸어가는군
가방 속에
파도치는 나를 넣고서
_「가방」 전문
3부에는 가장 멀리 떠나온 곳에서, 시인의 가장 처음이자 시원이 겹쳐 보이는 시편들을 담았다. 그리운 것과 하염없이 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대상은 더욱 선명해져 “살아생전 그 차림 그 얼굴”(「심곡심산(深谷深山)」)로 마음속에 돋을새김된다. 나아가 부의 제목이기도 한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물결 1-도래(渡來)」)라는 문장은 시인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삶의 태도이자 시를 읽는 법으로도 읽혀 더욱 의미심장하다. 4부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에는 “시간의 가건물 속에 살고 있는”(「우치(愚癡) 1-뱀허물을 보고」) 듯한 인간 삶의 덧없고도 아름다운 면면을 봄볕 아지랑이처럼 은은한 문장으로 승화한 시들을 모았다. “우리에게 때때로 슬픔이 치런치런”(「월파(越波)」) 들이차고,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과월호 같아서/ 종잇장 네 귀가 닳아 있지만”(「수선화」), 그의 시편은 우리에게 “햇살의 멜로디를”(「이제 내 옷을 짓지 말아요」) 지어 입혀주고, “서러운 일은 이제 잊어요”(「수선화」) 하며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네
안간힘을 쓰지 않고
숨이 참 고르네
손쓸 필요가 없지
여파(餘波)도 없지
누구도 무너지지 않아
저 아래,
벙싯벙싯 웃고 있는 겨울 허공 좀 봐
_「안간힘을 쓰지 않고」 전문
문태준 시의 신묘함은 어린아이조차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 소박한 문장을 통해, 우주적인 열림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열림은 시인에게는 물론 독자에게 역시 ‘능동적 고요’를 요청한다. 한갓진 곳에서 도드라지는 무언가의 발견이 아니라, “목소리를 더 낮추고” “내 말귀는 그대로 곧 어두워져도 좋”(「멀구슬나무 아래에」)을 정도의 비워냄이 선행될 때에야, “신앙하듯”(「우리는 이대로 내려 살아라」) 바라보고 기다릴 때에야 자연은, 시는, 우리에게 비경이 보이는 자리를 겨우 내어주기 때문이리라. 이는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만 삼는 서정시와 달라지는 그만의 특유한 시적 태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무궁하고 무진한 자연 앞의 인간. 서로를 닮았고 또 전혀 닮지 않은 이 둘의 관계는 “함께 호흡하고 흐르면서 동근(同根)으로” 여길 때, “하나를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는 것을” 체감할 때 “공동의 살림”(‘인터뷰’에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시와 인간이 관계하는 법과도 참 닮았다. “말과 글자 없이도” “꼭 그 몫만큼의 어떤 전달”(「풀밭」)을 우리는 문태준의 시에서 오늘도 받고 또 배운다.
이처럼 모든 존재자가 거대한 그물처럼 서로 교섭하고 반사하고 반영하며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문태준의 시는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앞에서 살펴본 노자의 지적처럼 만물이 번성하고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상응한다. 문태준은 스스로 비움과 고요를 견지하여 우주 생명의 진경을 보고 듣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세계를 감상하는 것은 그가 초대하는 겸허한 고요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고요의 세계는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고, 자연의 비경 속에서 어느덧 우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풍요롭고 경이로운 세계이다. _홍용희, 해설에서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문태준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아홉번째 시집이자 3년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출간 소회와 함께 독자분께 인사 한마디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펴낸 시집보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더 들어와 있는 느낌이네요. 시를 통해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아요.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저를 보채지 않고, 바쁘게 하지도 않아요. 계절의 바뀜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해변으로 가면 앞이 캄캄한 해무와 연쇄적으로 밀려오는 겹겹의 물결을 보게 되지요. 소나기를 피하러 큰 나무 아래로 들어가거나 눈송이가 안간힘을 쓰지 않고 내리는 것을 봐요. 무지개와 반딧불이를 만나고요.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숲속에 있는 것 같아요. 듬성듬성하게, 멈추고, 쉬고, 곁을 두는 그런 시가 이번 시집 속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 같아요.
2. '시인의 말'을 보건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는 대체로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 쓰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어난 곳과도 청ㆍ장년기를 보낸 곳과도 달라진 터전이 작가님의 시작(詩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합니다.
태어난 곳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이고 그곳서 스무 살 무렵까지 살았으니까 내륙의 정서를 살갗으로 느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제주 애월읍 장전리로 내려와 산 지 다섯 해가 되었는데, 두번째 자연 속에 제 삶과 시가 있다는 생각이네요. 봉산면에서는 무속적인 것, 논밭의 일을 하는 고된 노동, 대물림되는 가난과 무너지는 공동체 같은 것이 제 시의 목소리가 되었다면 장전리에서는 생명 세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흙과 바다가 지닌 거대한 생명 세계를 접하면서 내가 다른 생명 존재와 함께 호흡하고 흐르면서 동근(同根)으로서 공동의 살림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하나를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는 것을 공부하는 거죠. 시골에 살다보니 일손은 바빠졌지만, 고요함을 그대로 지니려고 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매달리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것, 작위가 없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3. 제목 '풀의 탄생'을 비롯하여 '풀'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서정시에서 종종 등장하는 시어이지만, 이번 시집에서 쓰인 '풀'은 여느 시인과도 나아가 시인님이 써왔던 그간의 '풀'과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에 대해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으실지요?
일 년 내내 푸릇푸릇한 풀과 억센 풀과 마른 풀을 보거든요. 제 눈 속에 풀이 꽉 차 있고, 풀밭에 앉아 풀을 뽑다 해질녘이 되면 풀밭에서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는데 그때엔 제가 꼭 풀벌레 같아요. 풀은 질겨요. 동시에 풀은 부드러워요. 흥과 신명 같은 것이 있지요. 풀을 통해 생명의 근원과 본래의 면목 같은 걸 본다고 하면 이런 얘기는 좀 거창하긴 한데, 어쨌든 또 돋고 돋는 것에는 목숨의 활기와 강력한 탄력 같은 게 있는 건 분명해 보이고, 풀이든 정원의 꽃이든 곳곳의 야생화든 그것이 드러내는, 잎 나고 봉오리 맺고 꽃 피고 꽃 지는 그런 현상에는 어떤 조건과 원인이, 말미암는 것이 대개는 있다는 것. 뭐랄까요, 꽉 찬 필연이랄까요, 그런 게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작약꽃 피면」이나 「뒷집」 같은 시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시는 사실 쓰기에 쉽지 않아요. 시어를 어떻게 고를까, 시가 어떤 속도의 걸음걸이로 가야 할까, 숨이 너무 가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되고 훨씬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시와는 꽤 다르죠. 작약꽃의 개화를 통해 제 마음을 꽃피우려고 했다고 할까, 그런 생각이 「작약꽃 피면」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뒷집」도 전통적인 서정시에 가까운 자리에 있지요. 느슨한 고요, 흔들리는 고요, 회복되는 고요, 견고한 고요에 대해 생각도 했던 것 같고요. 적적한 것은 뿌리요, 겉의 활동은 잎과 가지 같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저는 매일 시를 읽어요. 틈이 생길 때마다요. 읽는 시마다 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냥 시 쓴 이의 마음을 짐작해봐요. 시를 읽으면 요즘 원평소국 핀 것 보는 것처럼, 귤꽃 핀 것 보는 것처럼 눈도 시원하고 그 향기도 좋아요. 그런데, 시를 지으면서 사는 시인은 시를 읽지 않을 수 없어요. 시가 떠나면 마른 진흙덩어리처럼 딱딱해지고 갈라지고 그렇게 될 줄 잘 아니까요.
1. 아홉번째 시집이자 3년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출간 소회와 함께 독자분께 인사 한마디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펴낸 시집보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더 들어와 있는 느낌이네요. 시를 통해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아요.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저를 보채지 않고, 바쁘게 하지도 않아요. 계절의 바뀜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해변으로 가면 앞이 캄캄한 해무와 연쇄적으로 밀려오는 겹겹의 물결을 보게 되지요. 소나기를 피하러 큰 나무 아래로 들어가거나 눈송이가 안간힘을 쓰지 않고 내리는 것을 봐요. 무지개와 반딧불이를 만나고요.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숲속에 있는 것 같아요. 듬성듬성하게, 멈추고, 쉬고, 곁을 두는 그런 시가 이번 시집 속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 같아요.
2. '시인의 말'을 보건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는 대체로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 쓰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어난 곳과도 청ㆍ장년기를 보낸 곳과도 달라진 터전이 작가님의 시작(詩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합니다.
태어난 곳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이고 그곳서 스무 살 무렵까지 살았으니까 내륙의 정서를 살갗으로 느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제주 애월읍 장전리로 내려와 산 지 다섯 해가 되었는데, 두번째 자연 속에 제 삶과 시가 있다는 생각이네요. 봉산면에서는 무속적인 것, 논밭의 일을 하는 고된 노동, 대물림되는 가난과 무너지는 공동체 같은 것이 제 시의 목소리가 되었다면 장전리에서는 생명 세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흙과 바다가 지닌 거대한 생명 세계를 접하면서 내가 다른 생명 존재와 함께 호흡하고 흐르면서 동근(同根)으로서 공동의 살림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하나를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는 것을 공부하는 거죠. 시골에 살다보니 일손은 바빠졌지만, 고요함을 그대로 지니려고 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매달리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것, 작위가 없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3. 제목 '풀의 탄생'을 비롯하여 '풀'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서정시에서 종종 등장하는 시어이지만, 이번 시집에서 쓰인 '풀'은 여느 시인과도 나아가 시인님이 써왔던 그간의 '풀'과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에 대해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으실지요?
일 년 내내 푸릇푸릇한 풀과 억센 풀과 마른 풀을 보거든요. 제 눈 속에 풀이 꽉 차 있고, 풀밭에 앉아 풀을 뽑다 해질녘이 되면 풀밭에서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는데 그때엔 제가 꼭 풀벌레 같아요. 풀은 질겨요. 동시에 풀은 부드러워요. 흥과 신명 같은 것이 있지요. 풀을 통해 생명의 근원과 본래의 면목 같은 걸 본다고 하면 이런 얘기는 좀 거창하긴 한데, 어쨌든 또 돋고 돋는 것에는 목숨의 활기와 강력한 탄력 같은 게 있는 건 분명해 보이고, 풀이든 정원의 꽃이든 곳곳의 야생화든 그것이 드러내는, 잎 나고 봉오리 맺고 꽃 피고 꽃 지는 그런 현상에는 어떤 조건과 원인이, 말미암는 것이 대개는 있다는 것. 뭐랄까요, 꽉 찬 필연이랄까요, 그런 게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작약꽃 피면」이나 「뒷집」 같은 시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시는 사실 쓰기에 쉽지 않아요. 시어를 어떻게 고를까, 시가 어떤 속도의 걸음걸이로 가야 할까, 숨이 너무 가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되고 훨씬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시와는 꽤 다르죠. 작약꽃의 개화를 통해 제 마음을 꽃피우려고 했다고 할까, 그런 생각이 「작약꽃 피면」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뒷집」도 전통적인 서정시에 가까운 자리에 있지요. 느슨한 고요, 흔들리는 고요, 회복되는 고요, 견고한 고요에 대해 생각도 했던 것 같고요. 적적한 것은 뿌리요, 겉의 활동은 잎과 가지 같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저는 매일 시를 읽어요. 틈이 생길 때마다요. 읽는 시마다 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냥 시 쓴 이의 마음을 짐작해봐요. 시를 읽으면 요즘 원평소국 핀 것 보는 것처럼, 귤꽃 핀 것 보는 것처럼 눈도 시원하고 그 향기도 좋아요. 그런데, 시를 지으면서 사는 시인은 시를 읽지 않을 수 없어요. 시가 떠나면 마른 진흙덩어리처럼 딱딱해지고 갈라지고 그렇게 될 줄 잘 아니까요.
목차
목차
시인의 말
1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작약꽃 피면/ 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귤꽃/ 제비는 내게 말하네/ 동근(同根)/ 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가을에게/ 뒷집/ 돌/ 무지개/ 귤꽃이 피는 동안/ 멀구슬나무 아래에/ 겨울 정원/ 안간힘을 쓰지 않고
2부 첫 여름날을 맞은 해바라기를 두드리러 가자
하일(夏日)/ 막간(幕間) 1/ 막간(幕間) 2/ 여름밤/ 북/ 잘한 일/ 그때 그 자리에/ 오월의 무화과나무 밭에서/ 대서(大暑)/ 만시(晩時)/ 거미집/ 가방/ 양지여인숙 같은 물웅덩이/ 손거울/ 눈보라와 종소리
3부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
하귤나무에 앉은 새/ 물결 1-도래(渡來)/ 물결 2-섬/ 물결 3-삽목(揷木)/ 물결 4-징소리/ 연못과 거울 이야기/ 단추/ 유월에 보성에 가서/ 여름사람/ 청무/ 흐르는 해무/ 생가(生家)에서/ 그믐밤/ 심곡심산(深谷深山)/ 우리는 이대로 내려 살아라/ 가을날/ 스프링클러
4부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
월파(越波)/ 수선화/ 이제 내 옷을 짓지 말아요/ 풀밭/ 귤밭집/ 우치(愚癡) 1-뱀허물을 보고/ 우치(愚癡) 2-산수국 가지를 치다/ 우치(愚癡) 3-나무의자를 만들다/ 두 계절/ 모자/ 큰 눈 오시는 날에/ 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겨울달/ 봄/ 빗돌을 세우며-행방불명인 열한 살 소년에게/ 풀밭
해설|고요의 풍경
홍용희(문학평론가)
1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작약꽃 피면/ 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귤꽃/ 제비는 내게 말하네/ 동근(同根)/ 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가을에게/ 뒷집/ 돌/ 무지개/ 귤꽃이 피는 동안/ 멀구슬나무 아래에/ 겨울 정원/ 안간힘을 쓰지 않고
2부 첫 여름날을 맞은 해바라기를 두드리러 가자
하일(夏日)/ 막간(幕間) 1/ 막간(幕間) 2/ 여름밤/ 북/ 잘한 일/ 그때 그 자리에/ 오월의 무화과나무 밭에서/ 대서(大暑)/ 만시(晩時)/ 거미집/ 가방/ 양지여인숙 같은 물웅덩이/ 손거울/ 눈보라와 종소리
3부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
하귤나무에 앉은 새/ 물결 1-도래(渡來)/ 물결 2-섬/ 물결 3-삽목(揷木)/ 물결 4-징소리/ 연못과 거울 이야기/ 단추/ 유월에 보성에 가서/ 여름사람/ 청무/ 흐르는 해무/ 생가(生家)에서/ 그믐밤/ 심곡심산(深谷深山)/ 우리는 이대로 내려 살아라/ 가을날/ 스프링클러
4부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
월파(越波)/ 수선화/ 이제 내 옷을 짓지 말아요/ 풀밭/ 귤밭집/ 우치(愚癡) 1-뱀허물을 보고/ 우치(愚癡) 2-산수국 가지를 치다/ 우치(愚癡) 3-나무의자를 만들다/ 두 계절/ 모자/ 큰 눈 오시는 날에/ 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겨울달/ 봄/ 빗돌을 세우며-행방불명인 열한 살 소년에게/ 풀밭
해설|고요의 풍경
홍용희(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아침은 생각한다』, 산문집 『느림보 마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인환상, 무산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