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시인선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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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써도,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
쓸데없어 눈부신 우리 삶의 지문들
문학동네시인선의 244번째 시집으로 안도현 시인의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를 펴낸다. 1981년에 등단, 올해로 시력 45년에 육박하는 그의 12번째 시집이다. 시는 물론 동시, 동화, 산문, 평전에 이르는 전방위적 집필을 통해 한국 시단을 넘어, 한국문학장을 대표하는 불세출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안도현. 그의 바탕이자 근간인 ‘시’를 5년 만에 한데 모은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는 긴 기다림에 보답할 만큼의 넉넉한 시편이 담겨 있어 더욱 반갑다. 오랜 타향살이를 끝낸 뒤 쓰이기 시작한 이번 신작 속엔 비로소 고향땅에서 마주한 쓸데없어 눈부신 우리 삶의 지문이, 불현듯 발견되는 생의 요체가, 무연하고도 무심하게 피어 있는 들꽃처럼 시의 길목마다 자리해 있다.
꽃밭에 들어가 돌을 골라내고 있는데 동무가 왔다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니까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쓸데없는 일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서리 오기 전에 배추나 서둘러 뽑으라 하였다
_「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부분
안도현의 시를 한 편이라도 읽어본 이라면,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그의 시와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이 된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역시 이러한 그의 시세계를 압축해놓은 문장이자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 비속함 속의 고귀함을 자유자재하게 부려놓는 그의 한끗은 ‘쓸데(모)없음’의 무가치함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목적성의 아름다움과 갸륵함에 가닿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이 세상에 시가 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 무의미한 것 속에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게 많습니다”(「인터뷰」에서)와 같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세계에서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란 없기에, 비약하자면 볼품없이 느껴지는 우리의 삶도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너와 내가 각기 다르게 의연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위안마저 건네는 듯하다.
쓸모없는 역이라고 했다 너는
쓸모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기억할 줄 아는 사람만 아픈 거지
그 사람은 밤이 철길만큼 길 거야
_「고평역」 부분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의 4부 구성 속에는 고향에서 마주한 질박한 삶의 풍경, 만날 수는 없지만 그릴 수는 있는 어머니와 북, 매번 처음인 듯 인사를 건네는 계절, 시민과 시인을 넘나드는 고뇌의 순간 들이 주를 이루며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1부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에는 절제된 감정으로 어머니를 떠올리는 나날과 그럼에도 꽃은 피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안부를 담았다. “별안간의 이별과 망각의 농도를 예측하면서”(「모래무덤」) “가늘고 연약한 것들을 위해”(「순간 정지」) “백지 위에 한 줄을”(「연민」) 쓰는, 그러다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흰목물떼새」) 하는 맑은 슬픔의 순간들을 모았다. 2부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에서는 고향 예천에서 닭을 키우고, 풀을 뽑고, 장에 나가 열무씨를 사는 등의 생활 시편들이 이어진다.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는/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나 성스러워서/ 나는 이놈의 풀을 퍼낼 바가지가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는 중”(「풀 뽑는 사람」)이라지만, 이곳에도 시는 도사리고 있기에 “시를 잘도 쓰는 후배가 벌에 쏘인 이야기를 먼저 쓰면 어떡하나 먼저 발표를 하면 어떡하나 (…) 부랴부랴 종이 위에 볼펜으로 몇 줄 적어두”(「벌에 쏘인 이야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풀 한 움큼을 들고 서서
거름더미로 가져갈까
모아서 닭장에다 던져줄까
잠시 망설였죠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죠
손톱이 없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고 밥을 먹었고요
_「손톱」 부분
3부 ‘겨울은 길고 가창오리떼는 단순하지 않다’에서는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시인의 눈에는 사라진 것일수록 더욱 선명하기에, 꽃과 단풍과 밤눈은 그때와 한결같기에 ‘물음과 묻음’ 사이를 왕복하며 “꿈의 해변에서, 곱아서 오그라든 손을 펴서/ 눈발처럼 길게”(「죽변항」) 써내려간다. “헛되어서 실한 날”(「밤눈」) 속의 “도렷하고 실다운 그 문장”(「역무원」)이 우리 역시 그가 그리는 풍경 속으로 데려갈 것이다. 4부 ‘자작나무들은 먼 북쪽을 가리켰다’에서는 과연 백석의 재림이라 일컬을 법한 담박한 시편들과 시인-시민으로서의 그의 진면모가 아로새겨져 있다. 특히 마지막 시편인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고심하는 사이/ 세계는 힘없이 허물어졌다”고, “나는 나를 최대한 줄여서 입고/ 세계에 편입되려고/ 걷고 가끔 지하철을 탔을 뿐”이라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짐짓 깊은 회한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은 “귓구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귓가에 내려앉지도 못하는 뱁새 부리 같은 말을 지껄이느라 한평생을 보냈다”(「역무원」) 하지만, “서로 생각한다는 것 때문에 서러운 날들이 있었”(「서릿고기」)다 하지만, “당신에게 내 마음을 보이고 당신이 내게 마음을 보여주시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적막강산」)라고 가까스로 덧붙이고 있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한다.
나의 비천한 가계에는
사상을 구하기 위해 월북한 큰아버지도 없고
사랑을 구하기 위해 첩을 둔 할아버지도 없다
어떻게 좋은 시를 쓸 것인가
오래 궁리했으나
나쁜 시를 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 한 편
써보지 못했다는 거
후회는 눈보라처럼 세차다
_「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부분
“가능하면 의도를 뒤로 밀쳐두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자는 마음도 눕혀두고” 그저 “시를 붙잡고 있었던” 지난 5년, “말 하나하나의 빛깔과 물기를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인터뷰」에서)은 회심 속에서 마주한 삶의 지문, 시를 살고 시와 놀고 시로 보는 이가 힘을 빼서 더욱 힘있는 71편의 시. 어떻게 써도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가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에 있다. “서로 이름을 불러보기만 해도/ 혀 밑에 연애의 침이 고”(「맨발」)이듯 “좋아요?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이 세상에는 많”(「맨발」)고, 여전히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지천이기에 그는 시를 쓰고 우리는 그의 시를 읽는다.
쓸데없어 눈부신 우리 삶의 지문들
문학동네시인선의 244번째 시집으로 안도현 시인의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를 펴낸다. 1981년에 등단, 올해로 시력 45년에 육박하는 그의 12번째 시집이다. 시는 물론 동시, 동화, 산문, 평전에 이르는 전방위적 집필을 통해 한국 시단을 넘어, 한국문학장을 대표하는 불세출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안도현. 그의 바탕이자 근간인 ‘시’를 5년 만에 한데 모은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는 긴 기다림에 보답할 만큼의 넉넉한 시편이 담겨 있어 더욱 반갑다. 오랜 타향살이를 끝낸 뒤 쓰이기 시작한 이번 신작 속엔 비로소 고향땅에서 마주한 쓸데없어 눈부신 우리 삶의 지문이, 불현듯 발견되는 생의 요체가, 무연하고도 무심하게 피어 있는 들꽃처럼 시의 길목마다 자리해 있다.
꽃밭에 들어가 돌을 골라내고 있는데 동무가 왔다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니까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쓸데없는 일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서리 오기 전에 배추나 서둘러 뽑으라 하였다
_「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부분
안도현의 시를 한 편이라도 읽어본 이라면,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그의 시와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이 된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역시 이러한 그의 시세계를 압축해놓은 문장이자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 비속함 속의 고귀함을 자유자재하게 부려놓는 그의 한끗은 ‘쓸데(모)없음’의 무가치함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목적성의 아름다움과 갸륵함에 가닿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이 세상에 시가 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 무의미한 것 속에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게 많습니다”(「인터뷰」에서)와 같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세계에서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란 없기에, 비약하자면 볼품없이 느껴지는 우리의 삶도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너와 내가 각기 다르게 의연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위안마저 건네는 듯하다.
쓸모없는 역이라고 했다 너는
쓸모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기억할 줄 아는 사람만 아픈 거지
그 사람은 밤이 철길만큼 길 거야
_「고평역」 부분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의 4부 구성 속에는 고향에서 마주한 질박한 삶의 풍경, 만날 수는 없지만 그릴 수는 있는 어머니와 북, 매번 처음인 듯 인사를 건네는 계절, 시민과 시인을 넘나드는 고뇌의 순간 들이 주를 이루며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1부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에는 절제된 감정으로 어머니를 떠올리는 나날과 그럼에도 꽃은 피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안부를 담았다. “별안간의 이별과 망각의 농도를 예측하면서”(「모래무덤」) “가늘고 연약한 것들을 위해”(「순간 정지」) “백지 위에 한 줄을”(「연민」) 쓰는, 그러다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흰목물떼새」) 하는 맑은 슬픔의 순간들을 모았다. 2부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에서는 고향 예천에서 닭을 키우고, 풀을 뽑고, 장에 나가 열무씨를 사는 등의 생활 시편들이 이어진다.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는/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나 성스러워서/ 나는 이놈의 풀을 퍼낼 바가지가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는 중”(「풀 뽑는 사람」)이라지만, 이곳에도 시는 도사리고 있기에 “시를 잘도 쓰는 후배가 벌에 쏘인 이야기를 먼저 쓰면 어떡하나 먼저 발표를 하면 어떡하나 (…) 부랴부랴 종이 위에 볼펜으로 몇 줄 적어두”(「벌에 쏘인 이야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풀 한 움큼을 들고 서서
거름더미로 가져갈까
모아서 닭장에다 던져줄까
잠시 망설였죠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죠
손톱이 없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고 밥을 먹었고요
_「손톱」 부분
3부 ‘겨울은 길고 가창오리떼는 단순하지 않다’에서는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시인의 눈에는 사라진 것일수록 더욱 선명하기에, 꽃과 단풍과 밤눈은 그때와 한결같기에 ‘물음과 묻음’ 사이를 왕복하며 “꿈의 해변에서, 곱아서 오그라든 손을 펴서/ 눈발처럼 길게”(「죽변항」) 써내려간다. “헛되어서 실한 날”(「밤눈」) 속의 “도렷하고 실다운 그 문장”(「역무원」)이 우리 역시 그가 그리는 풍경 속으로 데려갈 것이다. 4부 ‘자작나무들은 먼 북쪽을 가리켰다’에서는 과연 백석의 재림이라 일컬을 법한 담박한 시편들과 시인-시민으로서의 그의 진면모가 아로새겨져 있다. 특히 마지막 시편인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고심하는 사이/ 세계는 힘없이 허물어졌다”고, “나는 나를 최대한 줄여서 입고/ 세계에 편입되려고/ 걷고 가끔 지하철을 탔을 뿐”이라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짐짓 깊은 회한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은 “귓구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귓가에 내려앉지도 못하는 뱁새 부리 같은 말을 지껄이느라 한평생을 보냈다”(「역무원」) 하지만, “서로 생각한다는 것 때문에 서러운 날들이 있었”(「서릿고기」)다 하지만, “당신에게 내 마음을 보이고 당신이 내게 마음을 보여주시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적막강산」)라고 가까스로 덧붙이고 있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한다.
나의 비천한 가계에는
사상을 구하기 위해 월북한 큰아버지도 없고
사랑을 구하기 위해 첩을 둔 할아버지도 없다
어떻게 좋은 시를 쓸 것인가
오래 궁리했으나
나쁜 시를 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 한 편
써보지 못했다는 거
후회는 눈보라처럼 세차다
_「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부분
“가능하면 의도를 뒤로 밀쳐두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자는 마음도 눕혀두고” 그저 “시를 붙잡고 있었던” 지난 5년, “말 하나하나의 빛깔과 물기를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인터뷰」에서)은 회심 속에서 마주한 삶의 지문, 시를 살고 시와 놀고 시로 보는 이가 힘을 빼서 더욱 힘있는 71편의 시. 어떻게 써도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가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에 있다. “서로 이름을 불러보기만 해도/ 혀 밑에 연애의 침이 고”(「맨발」)이듯 “좋아요?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이 세상에는 많”(「맨발」)고, 여전히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지천이기에 그는 시를 쓰고 우리는 그의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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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안도현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2는 신성하고도 의미심장한 숫자입니다. 이번 열두번째 시집의 출간 소회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스물다섯 살에 첫 시집을 냈으니 40년 동안 12권 시집을 낸 셈이네요. 쓸데없이 너무 많이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자책도 조금 있어요. 이번 시집의 시들을 쓰면서 사실 저 혼자 은근히 신이 나기도 했어요. 시라는 어떤 규격 속에 언어를 욱여넣지 말자, 언어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보자는 심사였죠. 가능하면 의도를 뒤로 밀쳐두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자는 마음도 눕혀두고 시를 붙잡고 있었더니 가끔은 제가 쓴 시가 제게 위안도 되더군요. 여기 실린 시들을 쓰는 동안 전주에서 고향 경북 예천으로 이삿짐을 싸서 돌아왔고, 그사이 팬데믹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전 처음 오래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고, 오래 밥을 벌던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약속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나를 방치할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 시가 조금씩 오더군요.
2. 이번 시집을 읽고 만들며 느낀 첫 소감은 '어떻게 써도,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였어요. 시를 산다고도, 시와 논다고도 느껴지는 이 감각. 작가님의 이 자유자재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 거의 평생을 아파트라는 허공의 둥지에서 살다가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땅에 착지를 하고 살게 되었어요. 마당과 텃밭과 연못과 돌담이 일상이 되다보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침마다 창을 열면 새소리가 무진장 쏟아져들어오는데, 이 새소리를 보자기에 싸서 누구에게 좀 보낼까 싶을 때가 많아요. 저는 80년대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인으로서 어떤 의무감을 지고 살았어요. 그 무게를 지금은 덜 느끼는 편인데요, 말 하나하나의 빛깔과 물기를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렇다고 도통한 척하려는 건 아니고요. 앞으로도 시를 쓰는 나보다 내게 오는 언어를 더 잘 모시고 내가 그 언어를 덜 간섭하고 잘 따라가도록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3.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라는 제목은 작가님의 시세계를 압축해놓은 문장으로도 읽힙니다. 이렇듯 비속함과 고귀함이 공존하는 삶의 지문이 시편 곳곳에 녹아 있는데요. 시가 되겠다, 고 감각하시는 순간과 그 이후의 전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시의 첫 행에서 두번째 행으로 건너가는 일이 예전에는 쉽지 않았어요. 시에 과도하게 관여하려는 욕심 때문이었죠. 시를 쓰는 시인은 그의 언어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예요. 시인이 말을 앞질러가는 경우 대체로 실패작이 나온다고 봐요. 시인은 말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생산력을 믿어야 해요.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는 것, 그 써먹을 수 없는 특징 때문에 문학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한 김현 선생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둘러보면 이 세상에 시가 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시와 시 아닌 것, 의미와 무의미를 구별하려는 못된 마음이 자본주의 사회의 유용성에 대한 집착과 유사해요. 무의미한 것 속에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게 많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그 이야기를 막 시작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 없습니다.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 저는 남의 시를 읽을 때 시인을 생각하지 않고, 시 속에 숨은 메시지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가 다른 시하고 언어가 어떻게 다른가, 그것만 살펴봅니다. 꼼꼼하게 분석적으로 읽지 않고 설렁설렁, 되도록 많이 읽으려고 합니다. 저보다 후배인 시인들의 시를 더 찾아 읽습니다.
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2는 신성하고도 의미심장한 숫자입니다. 이번 열두번째 시집의 출간 소회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스물다섯 살에 첫 시집을 냈으니 40년 동안 12권 시집을 낸 셈이네요. 쓸데없이 너무 많이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자책도 조금 있어요. 이번 시집의 시들을 쓰면서 사실 저 혼자 은근히 신이 나기도 했어요. 시라는 어떤 규격 속에 언어를 욱여넣지 말자, 언어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보자는 심사였죠. 가능하면 의도를 뒤로 밀쳐두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자는 마음도 눕혀두고 시를 붙잡고 있었더니 가끔은 제가 쓴 시가 제게 위안도 되더군요. 여기 실린 시들을 쓰는 동안 전주에서 고향 경북 예천으로 이삿짐을 싸서 돌아왔고, 그사이 팬데믹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전 처음 오래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고, 오래 밥을 벌던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약속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나를 방치할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 시가 조금씩 오더군요.
2. 이번 시집을 읽고 만들며 느낀 첫 소감은 '어떻게 써도,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였어요. 시를 산다고도, 시와 논다고도 느껴지는 이 감각. 작가님의 이 자유자재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 거의 평생을 아파트라는 허공의 둥지에서 살다가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땅에 착지를 하고 살게 되었어요. 마당과 텃밭과 연못과 돌담이 일상이 되다보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침마다 창을 열면 새소리가 무진장 쏟아져들어오는데, 이 새소리를 보자기에 싸서 누구에게 좀 보낼까 싶을 때가 많아요. 저는 80년대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인으로서 어떤 의무감을 지고 살았어요. 그 무게를 지금은 덜 느끼는 편인데요, 말 하나하나의 빛깔과 물기를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렇다고 도통한 척하려는 건 아니고요. 앞으로도 시를 쓰는 나보다 내게 오는 언어를 더 잘 모시고 내가 그 언어를 덜 간섭하고 잘 따라가도록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3.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라는 제목은 작가님의 시세계를 압축해놓은 문장으로도 읽힙니다. 이렇듯 비속함과 고귀함이 공존하는 삶의 지문이 시편 곳곳에 녹아 있는데요. 시가 되겠다, 고 감각하시는 순간과 그 이후의 전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시의 첫 행에서 두번째 행으로 건너가는 일이 예전에는 쉽지 않았어요. 시에 과도하게 관여하려는 욕심 때문이었죠. 시를 쓰는 시인은 그의 언어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예요. 시인이 말을 앞질러가는 경우 대체로 실패작이 나온다고 봐요. 시인은 말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생산력을 믿어야 해요.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는 것, 그 써먹을 수 없는 특징 때문에 문학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한 김현 선생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둘러보면 이 세상에 시가 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시와 시 아닌 것, 의미와 무의미를 구별하려는 못된 마음이 자본주의 사회의 유용성에 대한 집착과 유사해요. 무의미한 것 속에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게 많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그 이야기를 막 시작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 없습니다.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 저는 남의 시를 읽을 때 시인을 생각하지 않고, 시 속에 숨은 메시지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가 다른 시하고 언어가 어떻게 다른가, 그것만 살펴봅니다. 꼼꼼하게 분석적으로 읽지 않고 설렁설렁, 되도록 많이 읽으려고 합니다. 저보다 후배인 시인들의 시를 더 찾아 읽습니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1부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
연못 위에 쓰다/ 유리 상자/ 통각(痛覺)/ 순간 정지/ 맨발/ 모래무덤/ 연민/ 마음에 대하여/ 배를 매어두는 일/ 너에게로 망명을 가고 싶은 날/ 북천/ 무릉도원에서 보낸 한철/ 배추의 깊이/ 흰목물떼새/ 산책/ 사랑가/ 간단하고 명료한
2부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새를 기다리며/ 장닭/ 벌에 쏘인 이야기/ 3월에서 5월까지/ 물소리를 필사하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북문/ 북촌/ 안부/ 유산가(遊山歌)/ 귀룽나무꽃 그늘에서/ 덧없는 감정/ 나는 모르고/ 세워둔 연못/ 손톱/ 그늘의 재봉/ 열무씨 이천원어치에 대하여/ 풀 뽑는 사람
3부 겨울은 길고 가창오리떼는 단순하지 않다
구절초/ 모란꽃/ 붉은병꽃나무/ 수학 공부/ 여우와 함께 산책을/ 고평역/ 밤눈/ 물음과 무덤/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 쓰는 소리/ 물통/ 죽변항/ 북행/ 검은 비닐봉지에 대하여/ 분홍의 방출/ 역무원/ 계산/ 눈꼽째기창에 대하여/ 먼 데
4부 자작나무들은 먼 북쪽을 가리켰다
북산/ 북당/ 꽃씨와 나/ 별서(別墅)/ 내성천 흰목물떼새 부부에 대하여/ 멀구슬나무의 이사/ 운포구곡가(雲浦九曲歌)/ 뒷목덜미-황재형 선생님께/ 적막강산-이동순의 『강제이주열차』를 읽고/ 북벌/ 서릿고기/ 화성 서쪽/ 상심/ 빵 굽는 여자/ 거의 없는 아저씨/ 잔설/ 산다경(山茶徑)/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발문|첩첩(疊疊)
김민정(시인)
1부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
연못 위에 쓰다/ 유리 상자/ 통각(痛覺)/ 순간 정지/ 맨발/ 모래무덤/ 연민/ 마음에 대하여/ 배를 매어두는 일/ 너에게로 망명을 가고 싶은 날/ 북천/ 무릉도원에서 보낸 한철/ 배추의 깊이/ 흰목물떼새/ 산책/ 사랑가/ 간단하고 명료한
2부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새를 기다리며/ 장닭/ 벌에 쏘인 이야기/ 3월에서 5월까지/ 물소리를 필사하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북문/ 북촌/ 안부/ 유산가(遊山歌)/ 귀룽나무꽃 그늘에서/ 덧없는 감정/ 나는 모르고/ 세워둔 연못/ 손톱/ 그늘의 재봉/ 열무씨 이천원어치에 대하여/ 풀 뽑는 사람
3부 겨울은 길고 가창오리떼는 단순하지 않다
구절초/ 모란꽃/ 붉은병꽃나무/ 수학 공부/ 여우와 함께 산책을/ 고평역/ 밤눈/ 물음과 무덤/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 쓰는 소리/ 물통/ 죽변항/ 북행/ 검은 비닐봉지에 대하여/ 분홍의 방출/ 역무원/ 계산/ 눈꼽째기창에 대하여/ 먼 데
4부 자작나무들은 먼 북쪽을 가리켰다
북산/ 북당/ 꽃씨와 나/ 별서(別墅)/ 내성천 흰목물떼새 부부에 대하여/ 멀구슬나무의 이사/ 운포구곡가(雲浦九曲歌)/ 뒷목덜미-황재형 선생님께/ 적막강산-이동순의 『강제이주열차』를 읽고/ 북벌/ 서릿고기/ 화성 서쪽/ 상심/ 빵 굽는 여자/ 거의 없는 아저씨/ 잔설/ 산다경(山茶徑)/ 어떻게 세계를 구할 것인가
발문|첩첩(疊疊)
김민정(시인)
저자
저자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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