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하루도 사랑
서고운 첫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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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새로운 기대주, 서고운의 시작을 알리는 첫번째 발걸음
2022년, 문학동네신인상 심사에는 오백 명이 넘는 응모자로부터 천 편이 넘는 소설이 도착했다. 본심에 오른 우수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소설이 하나 있었다. "작품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꼭 있다는 것이 특출나다고 여겨졌다"(소설가 조해진), "어쩌면 조금은 냉정한 데가 있는 인생의 진실 한 자락에 정직하게 도달하는 이 소설의 태도는 하나의 결기로 느껴졌다"(문학평론가 강지희), "수준 높게 구현된 일상과 그 속에 틈입한 동화적 사건, 그러나 동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갑갑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게 어울려 있었"(문학평론가 이지은)다는 찬사를 받은 서고운의 「숨은 그림 찾기」였다. 등단작 「숨은 그림 찾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미려하게 직조해냈던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첫 소설집 『사랑은 하루도 사랑』을 선보인다. 그간 다양한 매체에 활발하게 발표한 여러 작품 중 아홉 편을 선별해 묶은 이번 소설집은, 등단 당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사랑과 우정이 이긴다"라고 선언했던 작가의 당찬 다짐을 한 권의 빛나는 서사적 세계로 증명해낸다.
2022년, 문학동네신인상 심사에는 오백 명이 넘는 응모자로부터 천 편이 넘는 소설이 도착했다. 본심에 오른 우수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소설이 하나 있었다. "작품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꼭 있다는 것이 특출나다고 여겨졌다"(소설가 조해진), "어쩌면 조금은 냉정한 데가 있는 인생의 진실 한 자락에 정직하게 도달하는 이 소설의 태도는 하나의 결기로 느껴졌다"(문학평론가 강지희), "수준 높게 구현된 일상과 그 속에 틈입한 동화적 사건, 그러나 동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갑갑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게 어울려 있었"(문학평론가 이지은)다는 찬사를 받은 서고운의 「숨은 그림 찾기」였다. 등단작 「숨은 그림 찾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미려하게 직조해냈던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첫 소설집 『사랑은 하루도 사랑』을 선보인다. 그간 다양한 매체에 활발하게 발표한 여러 작품 중 아홉 편을 선별해 묶은 이번 소설집은, 등단 당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사랑과 우정이 이긴다"라고 선언했던 작가의 당찬 다짐을 한 권의 빛나는 서사적 세계로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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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사계절은 특별히 아름답지 않았으나
철마다 나오는 과일만은 좋았다."
숨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분홍빛으로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서고운 소설세계의 출발점인 「숨은 그림 찾기」에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순간과 더불어 사는 일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친구인 순지와 신혜는 함께 살고 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순지는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신혜는 티브이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다가 현재는 퇴사한 상태이다. 소설은 순지가 갑작스레 잠시 맡게 된 지아라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며 시작된다. 신혜가 외출한 사이, 순지는 지아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엔 평범한 아이로 보이던 지아가 순지와 신혜가 집안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분홍색으로 보"(23쪽)인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소설에 독특한 생기가 생겨난다. 지아는 침대를 조립하고 잃어버린 스패너, 어느새 사라져버린 신혜의 무지개색 스웨터 같은 물건들을 단박에 찾아낸다. 지아의 능력에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지아는 햇빛이 네모 모양으로 비쳐드는 벽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도 분홍색이에요."(24쪽) 벽 속에 순지와 신혜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걸까. 순지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고민하지만 알 수 없다. 순지와 신혜에게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현관문이 있고 모기가 없는 집"(22쪽),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시시콜콜한 문제"(31쪽)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뿐이다. 과연 그 벽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복숭아 심기」에서도 서고운 특유의 환상성이 빛을 발한다. 「복숭아 심기」 속 자매 금정과 은정의 집안에는, 대대로 여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귀신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내려온다. 어느 날부터 금정은 방 한구석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춤을 추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된다. 금정과 은정은 이 귀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는 우리 집안의 대는 "상실과 기억"(164쪽)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자매를 선산으로 데려간다. 선산에 가면 금정이 보는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과연 금정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은 또 누구일까? 이처럼 「복숭아 심기」는 무섭다기보다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을 귀신의 정체를 실마리처럼 남기며 서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숨은 그림 찾기」의 순지와 신혜가 친구 관계이고, 「복숭아 심기」의 금정과 은정이 자매 사이라면, 「위드걸스」 속 인혜와 선주는 연인 관계이다. 인혜는 선주와 함께 임시 보호하던 유기견을 정식 입양하려고 한다. 가족관계를 묻는 입양 신청서 속 질문에 인혜는 사실혼 관계임을 밝히지만, 선주는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 둘의 관계를 친구 사이라고 고쳐 적는다. 그로 인해 둘의 입양 계획은 "친구끼리 사는 집에는 보내지 않는 게"(59쪽) 원칙이라는 입양 단체의 말에 가로막히고 만다. 왜 입양 신청서를 고쳐썼느냐는 인혜의 질문에 선주는 "살다보면, 그냥 견디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있"(61쪽)다는 대답을 한다. 한편 탐사 보도 프로그램 방송의 계약직 보조 작가로 일하는 인혜는 재계약이 다가오자 초조한 마음에 제보자를 직접 만나기로 한다. 인혜는 "빠 위드걸스"(43쪽)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에 대해 취재하지만, "이 땅엔 이런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50쪽) 이 사건이 화제성을 갖기는 어려울 거라고 여긴다. 인혜는 "사력을 다해 사랑을 하고 서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고군분투가 어떤 경계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흐려지"(65쪽)고 만다는 생각을 한다. "견디면서 살 수밖에 없"(61쪽)다는 선주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선주는 인혜를 사랑하는 만큼, 그 관계를 보호하고 싶었기에 입양 신청서를 고쳐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혜는 화제성이 중시되는 방송 세계의 문턱에 막혀 위드걸스 화재 참사를 방송으로 다루지 못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쉽게 좌절하지 않는 일,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곱씹고 기억하는 일이다.
기억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더 있다. 바로 「내일의 날씨」의 수미와 「월요 휴무」의 희지이다. 수미는 기후 재난으로 세상의 많은 동물이 멸종하고, 인간이 살아가기 녹록지 않은 환경으로 변해가던 시기, 그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데모를 했다. 수미가 한 데모는 사실상 지구상에서 사라진 생물들을 기억하는, "상실을 기억하"(228쪽)기 위한 움직임인 셈이었다. 「월요 휴무」의 희지는 자신과 엄마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잃어버려야 했던 것들, 이를테면 노동 투쟁의 의지나 건강 같은 것을 곱씹으며 삶에서는 "갚아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135쪽)이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서고운 소설 속 인물들은 무언가 잊지 않기 위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무언가를 기억 속에서나마 끝없이 소생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삶의 그늘 앞에서도 그들은 "움직이는 사람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은 살아남"(64쪽)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라면,
이 모든 일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는 명랑한 다짐
제철 과일처럼 상큼하고,
젤리처럼 착 달라붙는 아홉 편의 소설!
현실에 밀착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서고운의 소설에는 재치가 가득 담겨 있다. 서고운이 지닌 유머러스한 장점이 눈부시게 발현된 표제작 「사랑은 하루도 사랑」에는 '나'의 집에 예고 없이 찾아온 동생 규리와 조카 치치가 등장한다. 규리의 남편은 빚만 잔뜩 남긴 채 잠적해버리고, 어린 치치는 '죽고 싶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나'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채 단기직을 전전하는데다, 동성의 여자친구 다연과 얼마 전 헤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절망적이기보다 리드미컬하고 산뜻하다. 홀로 치치를 종일 돌보게 된 어느 날, '나'는 치치를 데리고 광화문 대형 서점으로 향한다. 치치가 볼 만한 그림책과 문구, 인형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광화문에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이고, 서점에 가려면 집회를 가로지르는 수밖에 없다. '동성애 독재 금지' '동성애 반대' 따위의 구호들이 울려퍼지는 거리를 빠르게 지나며 '나'는 다시 다연과 만나게 되기를 꿈꾼다. 그러다 치치의 작은 손을 놓치고 만다. '나'는 엉엉 울다가, 또 잠시 얼어붙었다가 하며 치치를 찾아 헤멘다. '나'의 눈물을 오해한 사람들이 '진정한 애국 청년'이라며 치켜세우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고개를 든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무대 위에 올라가 작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치치의 해맑은 모습이다. 깜짝 놀란 '나'는 빠르게 치치에게로 달려간다. 과연 '나'의 치치 구출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소설집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두 돌이 되도록 말을 떼지 못한 조카 민지와 일시적으로 함께 살게 된 혜주의 나날을 그린 「다이빙」, 이름도 나이도 모두 거짓인 아르바이트 동료 명아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된 연지의 고민을 다룬 「너구리 온다」, 갑자기 시애틀로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미주와 그런 미주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는 덕희가 등장하는 「여름이 없는 나라」까지. 작가는 다양한 관계 속에 놓인 인물들이 함께하는 사계절이 매 순간 아름답다거나, 둘 이상이 모인다고 해서 삶의 고단한 굴레나 경제적 취약성이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름이 없는 나라」 속 덕희가 고백하듯이 "한 사람이 하나의 삶을 지탱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지탱하는 편이 낫"(252쪽)기에 함께 산다. 한 번씩 실패를 겪고 휘청이는 젊은 인물들이 "우리 이제 짜게 살지 말자"(14쪽)라며 서로에게 기대어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부적"(197쪽)이 되어주는 순간,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비로소 균형을 잡고 "조금 더 명랑"(238쪽)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현실의 절박함과 환상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아홉 편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간절한 메시지로 모인다. 비정규직 노동, 산재 피해 등 현실의 무거운 짐을 진 인물들은 결코 거창한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제대로 된 현관문이 있고 모기가 없는 집"(22쪽)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서고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위드걸스」),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공간을 잘 가꾸어나가고자 하는 열망(「너구리 온다」), 자신의 곁을 떠난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복숭아 심기」)까지. 이런 작은 마음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서고운은 이야기한다.
서고운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일은 삶의 지난함 앞에서 섣부른 구원이나 완전한 행복을 기대하는 대신,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구멍난 방충망을 테이프로 막듯 스스로의 일상을 수선해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소설집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경제적 어려움, 경력 단절, 미해결된 과거의 상처,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미세한 균열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무너지거나 포기하는 대신, 유기견과 온기를 나누고, 어린아이의 분홍빛 세계를 들여다보며 서로의 곁에 묵묵히 있는다. 서로의 품이 되어주며 보잘것없는 삶을 명랑하게 건너가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결국에는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 짓게 될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우리는 함께이기에 내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서고운의 소설은 그렇게 산뜻한 잔향을 남기며 우리의 곁을 오래도록 맴돌 것이다.
철마다 나오는 과일만은 좋았다."
숨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분홍빛으로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서고운 소설세계의 출발점인 「숨은 그림 찾기」에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순간과 더불어 사는 일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친구인 순지와 신혜는 함께 살고 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순지는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신혜는 티브이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다가 현재는 퇴사한 상태이다. 소설은 순지가 갑작스레 잠시 맡게 된 지아라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며 시작된다. 신혜가 외출한 사이, 순지는 지아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엔 평범한 아이로 보이던 지아가 순지와 신혜가 집안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분홍색으로 보"(23쪽)인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소설에 독특한 생기가 생겨난다. 지아는 침대를 조립하고 잃어버린 스패너, 어느새 사라져버린 신혜의 무지개색 스웨터 같은 물건들을 단박에 찾아낸다. 지아의 능력에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지아는 햇빛이 네모 모양으로 비쳐드는 벽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도 분홍색이에요."(24쪽) 벽 속에 순지와 신혜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걸까. 순지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고민하지만 알 수 없다. 순지와 신혜에게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현관문이 있고 모기가 없는 집"(22쪽),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시시콜콜한 문제"(31쪽)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뿐이다. 과연 그 벽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복숭아 심기」에서도 서고운 특유의 환상성이 빛을 발한다. 「복숭아 심기」 속 자매 금정과 은정의 집안에는, 대대로 여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귀신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내려온다. 어느 날부터 금정은 방 한구석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춤을 추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된다. 금정과 은정은 이 귀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는 우리 집안의 대는 "상실과 기억"(164쪽)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자매를 선산으로 데려간다. 선산에 가면 금정이 보는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과연 금정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은 또 누구일까? 이처럼 「복숭아 심기」는 무섭다기보다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을 귀신의 정체를 실마리처럼 남기며 서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숨은 그림 찾기」의 순지와 신혜가 친구 관계이고, 「복숭아 심기」의 금정과 은정이 자매 사이라면, 「위드걸스」 속 인혜와 선주는 연인 관계이다. 인혜는 선주와 함께 임시 보호하던 유기견을 정식 입양하려고 한다. 가족관계를 묻는 입양 신청서 속 질문에 인혜는 사실혼 관계임을 밝히지만, 선주는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 둘의 관계를 친구 사이라고 고쳐 적는다. 그로 인해 둘의 입양 계획은 "친구끼리 사는 집에는 보내지 않는 게"(59쪽) 원칙이라는 입양 단체의 말에 가로막히고 만다. 왜 입양 신청서를 고쳐썼느냐는 인혜의 질문에 선주는 "살다보면, 그냥 견디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있"(61쪽)다는 대답을 한다. 한편 탐사 보도 프로그램 방송의 계약직 보조 작가로 일하는 인혜는 재계약이 다가오자 초조한 마음에 제보자를 직접 만나기로 한다. 인혜는 "빠 위드걸스"(43쪽)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에 대해 취재하지만, "이 땅엔 이런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50쪽) 이 사건이 화제성을 갖기는 어려울 거라고 여긴다. 인혜는 "사력을 다해 사랑을 하고 서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고군분투가 어떤 경계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흐려지"(65쪽)고 만다는 생각을 한다. "견디면서 살 수밖에 없"(61쪽)다는 선주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선주는 인혜를 사랑하는 만큼, 그 관계를 보호하고 싶었기에 입양 신청서를 고쳐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혜는 화제성이 중시되는 방송 세계의 문턱에 막혀 위드걸스 화재 참사를 방송으로 다루지 못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쉽게 좌절하지 않는 일,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곱씹고 기억하는 일이다.
기억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더 있다. 바로 「내일의 날씨」의 수미와 「월요 휴무」의 희지이다. 수미는 기후 재난으로 세상의 많은 동물이 멸종하고, 인간이 살아가기 녹록지 않은 환경으로 변해가던 시기, 그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데모를 했다. 수미가 한 데모는 사실상 지구상에서 사라진 생물들을 기억하는, "상실을 기억하"(228쪽)기 위한 움직임인 셈이었다. 「월요 휴무」의 희지는 자신과 엄마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잃어버려야 했던 것들, 이를테면 노동 투쟁의 의지나 건강 같은 것을 곱씹으며 삶에서는 "갚아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135쪽)이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서고운 소설 속 인물들은 무언가 잊지 않기 위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무언가를 기억 속에서나마 끝없이 소생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삶의 그늘 앞에서도 그들은 "움직이는 사람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은 살아남"(64쪽)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라면,
이 모든 일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는 명랑한 다짐
제철 과일처럼 상큼하고,
젤리처럼 착 달라붙는 아홉 편의 소설!
현실에 밀착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서고운의 소설에는 재치가 가득 담겨 있다. 서고운이 지닌 유머러스한 장점이 눈부시게 발현된 표제작 「사랑은 하루도 사랑」에는 '나'의 집에 예고 없이 찾아온 동생 규리와 조카 치치가 등장한다. 규리의 남편은 빚만 잔뜩 남긴 채 잠적해버리고, 어린 치치는 '죽고 싶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나'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채 단기직을 전전하는데다, 동성의 여자친구 다연과 얼마 전 헤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절망적이기보다 리드미컬하고 산뜻하다. 홀로 치치를 종일 돌보게 된 어느 날, '나'는 치치를 데리고 광화문 대형 서점으로 향한다. 치치가 볼 만한 그림책과 문구, 인형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광화문에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이고, 서점에 가려면 집회를 가로지르는 수밖에 없다. '동성애 독재 금지' '동성애 반대' 따위의 구호들이 울려퍼지는 거리를 빠르게 지나며 '나'는 다시 다연과 만나게 되기를 꿈꾼다. 그러다 치치의 작은 손을 놓치고 만다. '나'는 엉엉 울다가, 또 잠시 얼어붙었다가 하며 치치를 찾아 헤멘다. '나'의 눈물을 오해한 사람들이 '진정한 애국 청년'이라며 치켜세우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고개를 든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무대 위에 올라가 작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치치의 해맑은 모습이다. 깜짝 놀란 '나'는 빠르게 치치에게로 달려간다. 과연 '나'의 치치 구출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소설집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두 돌이 되도록 말을 떼지 못한 조카 민지와 일시적으로 함께 살게 된 혜주의 나날을 그린 「다이빙」, 이름도 나이도 모두 거짓인 아르바이트 동료 명아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된 연지의 고민을 다룬 「너구리 온다」, 갑자기 시애틀로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미주와 그런 미주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는 덕희가 등장하는 「여름이 없는 나라」까지. 작가는 다양한 관계 속에 놓인 인물들이 함께하는 사계절이 매 순간 아름답다거나, 둘 이상이 모인다고 해서 삶의 고단한 굴레나 경제적 취약성이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름이 없는 나라」 속 덕희가 고백하듯이 "한 사람이 하나의 삶을 지탱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지탱하는 편이 낫"(252쪽)기에 함께 산다. 한 번씩 실패를 겪고 휘청이는 젊은 인물들이 "우리 이제 짜게 살지 말자"(14쪽)라며 서로에게 기대어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부적"(197쪽)이 되어주는 순간,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비로소 균형을 잡고 "조금 더 명랑"(238쪽)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현실의 절박함과 환상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아홉 편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간절한 메시지로 모인다. 비정규직 노동, 산재 피해 등 현실의 무거운 짐을 진 인물들은 결코 거창한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제대로 된 현관문이 있고 모기가 없는 집"(22쪽)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서고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위드걸스」),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공간을 잘 가꾸어나가고자 하는 열망(「너구리 온다」), 자신의 곁을 떠난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복숭아 심기」)까지. 이런 작은 마음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서고운은 이야기한다.
서고운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일은 삶의 지난함 앞에서 섣부른 구원이나 완전한 행복을 기대하는 대신,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구멍난 방충망을 테이프로 막듯 스스로의 일상을 수선해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소설집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경제적 어려움, 경력 단절, 미해결된 과거의 상처,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미세한 균열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무너지거나 포기하는 대신, 유기견과 온기를 나누고, 어린아이의 분홍빛 세계를 들여다보며 서로의 곁에 묵묵히 있는다. 서로의 품이 되어주며 보잘것없는 삶을 명랑하게 건너가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결국에는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 짓게 될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우리는 함께이기에 내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서고운의 소설은 그렇게 산뜻한 잔향을 남기며 우리의 곁을 오래도록 맴돌 것이다.
목차
목차
숨은 그림 찾기 7
위드걸스 37
사랑은 하루도 사랑 67
월요 휴무 113
복숭아 심기 145
너구리 온다 177
내일의 날씨 205
여름이 없는 나라 233
다이빙 267
해설 | 안서현(문학평론가)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어떤 연속체(continuum)를 상상하기 297
작가의 말 317
위드걸스 37
사랑은 하루도 사랑 67
월요 휴무 113
복숭아 심기 145
너구리 온다 177
내일의 날씨 205
여름이 없는 나라 233
다이빙 267
해설 | 안서현(문학평론가)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어떤 연속체(continuum)를 상상하기 297
작가의 말 317
저자
저자
서고운 2022년 단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한 장만 더 쓰고 한잔하러 가자』(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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