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날이 좋은 날(문학동네시인선 256)
박판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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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적적이다
깨물면 사과 씹히는 소리가 난다"
안 좋은 날에도 소량 생산되는 기적
지극히 생활적인 오컬트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256번째 시집으로 박판식 시인의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을 펴낸다.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밤의 피치카토』(천년의시작, 2004) 이래로 기이하고 신성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왔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민음사, 2013)에서 자기 자신과 불화하는 예리한 자의식을 다루었고,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문학동네, 2022)에 이르러서는 고통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격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사 년 만에 선보이는 네번째 시집에서 그 의지는 더는 무언가를 뚫거나 거부하는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신산한 삶 속에 이미 있던 기적적인 순간을 발견하고 알아챈다. 이번에도 시인은 삶의 가장 누추하고 고통스러운 자리를 조금도 비켜가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거나 "인생은 기적적이다"(「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라는 문장들로 냉소 대신 "약간의 희망"(「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을 만들어낸다. 첫 시 「율리우스에게」 속 자살을 시도한 천재 로봇에게 건네는, "인생은 끝이 없다, 그때까지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율리우스야"라는 문장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태도를 예고한다. 완벽한 구원이나 깨달음, 값싼 위안 없이, 그저 안 좋은 날을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로.
출근을 퇴근이라고 생각하고 외래 강사 대기실에 앉아 있다
공용 책상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안 좋은 날이 좋은 날
(…)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가 있다
_「지금 막」 부분
표제는 시인이 오래 강사로 일해온 대학 대기실의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누군가 흘려 써놓은 문장에서 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문장이 그저 서랍 안에 방치되어 있다가 뒤에 온 사람에게 가닿는다는 상황 자체가 이 시집의 방법론을 요약하는 듯하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강원도 트럭 짐칸에 실려 인천 송도로 온 흰 눈 생각을 한다". 그 끝에 강원도에 내린 눈이 인천 송도에서 작은 눈사람이 되는 장면을 남겨둔다. 이렇듯 박판식 시인은 스쳐가는 삶, 이동하는 삶에서 길어올린 장면들로 인생에 대한 감각을 전달한다.
농부의 장화 앞에 세 번 엎드렸다 일어나니 눈앞에 아기 부처가 있다 다시 눈을 떠보니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고 있다 (…) 빌 것도 없고 간절한 것도 없는데 웬 부처람 눈을 감아도 볼 수가 있다 꿈속 세상 이야기는 아니다
_「배롱나무」 부분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에서 신비한 존재들은 초월의 자리에 있지 않다. "농부의 장화 앞에" 엎드렸다가 일어난 자리에 "아기 부처"(「배롱나무」)가 있고,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인비인" 같은 불교의 팔부중은 "백숙집 대기 칠판에 딸의 이름 외 3이라고 써놓고"(「용을 찾아서」) 기다리는 와중에 등장한다. 지극히 생활적인 시간 속 이웃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어느 버스의 "종점에서 귀신이" "삼만원만 달"라고 "구걸하고 있"(「곧도착」)고, "철사로 만든 갓을 쓴 저승사자"는 "외래 강사 대기실"에서 "내 앞을 지나간다"(「지금 막」). 신성한 공간 또한 생활의 눈높이에 펼쳐져 있다. "하느님이 디자인한 하늘나라 입구에는 토네트의 넘버 포틴 의자가 놓여 있"(「대기 줄」)고 "지옥의 입구는 한옥이다"(「요정의 공장」). 이 모든 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반문하는 나"는 "선녀"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녀도 자신이 보살인지 마네킹인지 모르고"(「홀짝」) 있다. 화자에게 신성이란 삶과 분리된 믿음 체계가 아니라, 고통이나 우연, 욕망과 나란히 놓인 채 삶 자체를 굴러가게 하는 인생의 원리에 가까워 보인다.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 우리는 허물을 벗고
생명 그 자체로 돌아간다
(…)
기적은 소량 생산이라 아직 희소가치가 있다
인생은 기적적이다 깨물면 사과 씹히는 소리가 난다
_「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부분
"우리를 씻어주"는 것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 그 자체다. 인간의 삶은 고통이며 고통은 정화의 계기가 된다. 다만 이 정화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화자가 말하는 "소량 생산"이며 "희소가치가 있"는 기적은 무엇일까. 어떻게 "인생은 기적적"(「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일 수 있을까. 같은 시의 마지막 행, "과분한 은혜와도 같은 사랑이 내 인생의 차가운 그릇에 넘쳐나고 있다"에 실마리가 있다. 차갑게 식은 인생을 채우는 것은 사랑이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때로 아픔으로 온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 때문에 아프다는 건 기적"(「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더 커지고, 그 마음은 "호환, 마마, 학질 그리고 자연재해보다도 무서운 것"(「1476년 7월 22일에 나는」)이 된다. 그 무서움을 "나도 안다"고 말하는 순간, "바위에서 쌀이 쏟아"지는 기적이 "믿음도 없이 가볍게"(같은 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각개격파당하고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퇴근하고 마을버스도 타고 알람에 놀라 깨어 있는 채로 깨어난다 헛소리하듯이 밥을 먹는다 기도하듯이 화장실에 간다
부평역 앞 호객하는 알바가 붙잡지 않는다 연습은 충분히 했다
무엇을, 배고픔을 고통을 그리고 가망 없는 희망을
_「용을 찾아서」 부분
이 시집의 화자는 "인생 중독자"(「상록수」)다. '인생'이라는 말을 시집 곳곳에서 반복하지만, 그것을 말끔하게 정의하는 대신 매번 다른 질감으로 거듭 만져보기를 택한다. 인생이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일"이나 "할 수 없었지만 하려고 했던 일"로 "물결"(「네가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치는 것이다. "인생은 끝도 없는 비보호 좌회전"(「가도 가도 왕십리」)이다. "인생은 하찮은 시간 죽이기"(「가나다라마사」)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인생에 대한 시구는 「빈곤미」에서 "하늘과 땅 사이 나 홀로 외롭다"라는 문장을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영어로 되풀이하는 장면과 겹쳐 보인다. 홀로 되뇌는 목소리는 모두 어딘가 있을 상대에게 가닿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형식이다. 그 건넴의 다른 이름이 편지가 아닐까. 박판식 시인은 "수신자가 받든 못 받든 저는 열심히 [편지를] 써서 부치고 있"(미니 인터뷰)다고 말한다. '인생' 중독자 화자는 쓰고 있다. "서울살이에 실패하고 죽으려고도 해보"는 너에게, "미워하고 살되 우리 조금씩만 괴로워하자"고, "이 덧없는 시간을/ 같이 즐기고 싶"(「대구」)다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마라, 태어나면 괴롭다"고, 「마음의 편지」를 부친다. 외래 강사 대기실 서랍 속 영수증이 뒤에 온 사람에게 가닿았듯, 시인이 부친 편지들도 독자들의 안 좋은 날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지금 막」)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깨물면 사과 씹히는 소리가 난다"
안 좋은 날에도 소량 생산되는 기적
지극히 생활적인 오컬트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256번째 시집으로 박판식 시인의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을 펴낸다.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밤의 피치카토』(천년의시작, 2004) 이래로 기이하고 신성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왔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민음사, 2013)에서 자기 자신과 불화하는 예리한 자의식을 다루었고,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문학동네, 2022)에 이르러서는 고통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격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사 년 만에 선보이는 네번째 시집에서 그 의지는 더는 무언가를 뚫거나 거부하는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신산한 삶 속에 이미 있던 기적적인 순간을 발견하고 알아챈다. 이번에도 시인은 삶의 가장 누추하고 고통스러운 자리를 조금도 비켜가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거나 "인생은 기적적이다"(「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라는 문장들로 냉소 대신 "약간의 희망"(「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을 만들어낸다. 첫 시 「율리우스에게」 속 자살을 시도한 천재 로봇에게 건네는, "인생은 끝이 없다, 그때까지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율리우스야"라는 문장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태도를 예고한다. 완벽한 구원이나 깨달음, 값싼 위안 없이, 그저 안 좋은 날을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로.
출근을 퇴근이라고 생각하고 외래 강사 대기실에 앉아 있다
공용 책상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안 좋은 날이 좋은 날
(…)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가 있다
_「지금 막」 부분
표제는 시인이 오래 강사로 일해온 대학 대기실의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누군가 흘려 써놓은 문장에서 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문장이 그저 서랍 안에 방치되어 있다가 뒤에 온 사람에게 가닿는다는 상황 자체가 이 시집의 방법론을 요약하는 듯하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강원도 트럭 짐칸에 실려 인천 송도로 온 흰 눈 생각을 한다". 그 끝에 강원도에 내린 눈이 인천 송도에서 작은 눈사람이 되는 장면을 남겨둔다. 이렇듯 박판식 시인은 스쳐가는 삶, 이동하는 삶에서 길어올린 장면들로 인생에 대한 감각을 전달한다.
농부의 장화 앞에 세 번 엎드렸다 일어나니 눈앞에 아기 부처가 있다 다시 눈을 떠보니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고 있다 (…) 빌 것도 없고 간절한 것도 없는데 웬 부처람 눈을 감아도 볼 수가 있다 꿈속 세상 이야기는 아니다
_「배롱나무」 부분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에서 신비한 존재들은 초월의 자리에 있지 않다. "농부의 장화 앞에" 엎드렸다가 일어난 자리에 "아기 부처"(「배롱나무」)가 있고,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인비인" 같은 불교의 팔부중은 "백숙집 대기 칠판에 딸의 이름 외 3이라고 써놓고"(「용을 찾아서」) 기다리는 와중에 등장한다. 지극히 생활적인 시간 속 이웃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어느 버스의 "종점에서 귀신이" "삼만원만 달"라고 "구걸하고 있"(「곧도착」)고, "철사로 만든 갓을 쓴 저승사자"는 "외래 강사 대기실"에서 "내 앞을 지나간다"(「지금 막」). 신성한 공간 또한 생활의 눈높이에 펼쳐져 있다. "하느님이 디자인한 하늘나라 입구에는 토네트의 넘버 포틴 의자가 놓여 있"(「대기 줄」)고 "지옥의 입구는 한옥이다"(「요정의 공장」). 이 모든 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반문하는 나"는 "선녀"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녀도 자신이 보살인지 마네킹인지 모르고"(「홀짝」) 있다. 화자에게 신성이란 삶과 분리된 믿음 체계가 아니라, 고통이나 우연, 욕망과 나란히 놓인 채 삶 자체를 굴러가게 하는 인생의 원리에 가까워 보인다.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 우리는 허물을 벗고
생명 그 자체로 돌아간다
(…)
기적은 소량 생산이라 아직 희소가치가 있다
인생은 기적적이다 깨물면 사과 씹히는 소리가 난다
_「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부분
"우리를 씻어주"는 것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 그 자체다. 인간의 삶은 고통이며 고통은 정화의 계기가 된다. 다만 이 정화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화자가 말하는 "소량 생산"이며 "희소가치가 있"는 기적은 무엇일까. 어떻게 "인생은 기적적"(「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일 수 있을까. 같은 시의 마지막 행, "과분한 은혜와도 같은 사랑이 내 인생의 차가운 그릇에 넘쳐나고 있다"에 실마리가 있다. 차갑게 식은 인생을 채우는 것은 사랑이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때로 아픔으로 온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 때문에 아프다는 건 기적"(「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더 커지고, 그 마음은 "호환, 마마, 학질 그리고 자연재해보다도 무서운 것"(「1476년 7월 22일에 나는」)이 된다. 그 무서움을 "나도 안다"고 말하는 순간, "바위에서 쌀이 쏟아"지는 기적이 "믿음도 없이 가볍게"(같은 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각개격파당하고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퇴근하고 마을버스도 타고 알람에 놀라 깨어 있는 채로 깨어난다 헛소리하듯이 밥을 먹는다 기도하듯이 화장실에 간다
부평역 앞 호객하는 알바가 붙잡지 않는다 연습은 충분히 했다
무엇을, 배고픔을 고통을 그리고 가망 없는 희망을
_「용을 찾아서」 부분
이 시집의 화자는 "인생 중독자"(「상록수」)다. '인생'이라는 말을 시집 곳곳에서 반복하지만, 그것을 말끔하게 정의하는 대신 매번 다른 질감으로 거듭 만져보기를 택한다. 인생이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일"이나 "할 수 없었지만 하려고 했던 일"로 "물결"(「네가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치는 것이다. "인생은 끝도 없는 비보호 좌회전"(「가도 가도 왕십리」)이다. "인생은 하찮은 시간 죽이기"(「가나다라마사」)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인생에 대한 시구는 「빈곤미」에서 "하늘과 땅 사이 나 홀로 외롭다"라는 문장을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영어로 되풀이하는 장면과 겹쳐 보인다. 홀로 되뇌는 목소리는 모두 어딘가 있을 상대에게 가닿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형식이다. 그 건넴의 다른 이름이 편지가 아닐까. 박판식 시인은 "수신자가 받든 못 받든 저는 열심히 [편지를] 써서 부치고 있"(미니 인터뷰)다고 말한다. '인생' 중독자 화자는 쓰고 있다. "서울살이에 실패하고 죽으려고도 해보"는 너에게, "미워하고 살되 우리 조금씩만 괴로워하자"고, "이 덧없는 시간을/ 같이 즐기고 싶"(「대구」)다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마라, 태어나면 괴롭다"고, 「마음의 편지」를 부친다. 외래 강사 대기실 서랍 속 영수증이 뒤에 온 사람에게 가닿았듯, 시인이 부친 편지들도 독자들의 안 좋은 날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지금 막」)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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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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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판식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박판식 시인님께서 사 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과 함께 소회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제 시집을 거의 십 년 단위로 묶다보니 이번 네번째 시집에 사 년 만에 묶여 나오게 되어 무슨 일인가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갑자기 창작력이 폭발한 것은 아니고요. 긴 시간을 두고 발표는 했지만 시집에는 넣지 않은 몇 편의 시들과, 마치 시의 환유의 원리처럼 세상도 환유의 원리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고 쓴 시편들을 묶어서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석계(월계)에 있는 광운대에서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이고 월곶(배곧)을 지나가면 있는 인천 송도의 인천대에서는 서해대교와 서해가 보입니다. 그것은 또 인천과 속초와 서울과 부산으로 대비되는 저의 길다 하면 긴 인생의 대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과 이미 가본 길이 서로 거울로 비춰보는 느낌 같습니다.
2. 시집의 제목인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은 동명의 시(표제작)도 있고, 「지금 막」에서는 "외래 강사 대기실"의 "공용 책상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적혀 있던 문장으로도 등장합니다. 이 문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셨는지, 어떻게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보다 먼저 와 있던 책상과 의자와 서랍, 저보다 먼저 강사생활을 한 선배들의 체취가 있는 공간이 외래 강사 대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도시락 먹고 커피 마시고 다른 학과 강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인생이 참 별거 아니라는 느낌과 함께 편안한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곳을 먼저 다녀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짧고 간단한 충고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3. "인생은 끝이 없다, 그때까지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율리우스야"라는 문장으로 시집을 열어주셨는데요. 그후 인생이라는 시어는 무수히 등장합니다.("인생이라는 얇은 바다"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 "인생 중독자"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가 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인생을 먹어치워야 하는 병이기에"……) 전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에선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시어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인생이 재미있고 무섭고 때로는 지긋지긋한 게임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루마불' 게임이라는 것을 하려고 동네 아이들이 어느 집으로 몰려가는데 저는 초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게임이 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만 빼고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한다는 사실이 일깨워준 좋은 감각을 지금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지옥과도 같은 인생의 곳곳에서 진지하게 그 게임들을 즐기는 사람들을 (그런 꼴로 살고 있는 저를) 조금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내려놓을 것은 얼른 내려놓고 때로는 메야할 것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깨에 올려놓고 가야할 곳까지 가야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되도록이면 최대한 가볍고 시원하게……
4. 이번 시집에서 특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같이 들려주세요.
한 편을 고르기는 어렵네요. 몇몇 중요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쓴 시들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편지」나 「대구」 「큰일 같은 작은 일」 그리고 「용을 찾아서」 같은 시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에게 쓰는 편지인 「빈곤미」나 「배롱나무」 같은 시들도 생각이 나네요. 결국 수신자가 받든 못 받든 저는 열심히 써서 부치고 있네요.
5. 마지막 시는 「배롱나무」입니다.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소교목입니다. 시집에는 아기 부처부터 하느님과 여신까지 다양한 오컬트적 존재가 생활의 풍경 가운데 등장하는데요. 시에 그들을 초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인한 감각인지 궁금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저는 〈심슨 가족〉보다는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이 재미있습니다. 가까운 누군가가 좋아하여 관심을 갖고 보니 '스누피'의 일화들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만화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가끔은 있겠지만 만화의 세계를 끌어내려 내 삶의 곳곳에서 작동하게 하는 유치함이 저에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시집을 내고 나면 가족과 함께 저 시의 배경이 되었던 1번 마을버스 종점으로 가서 그때 냇가에서 모래 뜨고 물고기와 장난치며 놀았던 기분을 새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1. 박판식 시인님께서 사 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과 함께 소회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제 시집을 거의 십 년 단위로 묶다보니 이번 네번째 시집에 사 년 만에 묶여 나오게 되어 무슨 일인가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갑자기 창작력이 폭발한 것은 아니고요. 긴 시간을 두고 발표는 했지만 시집에는 넣지 않은 몇 편의 시들과, 마치 시의 환유의 원리처럼 세상도 환유의 원리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고 쓴 시편들을 묶어서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석계(월계)에 있는 광운대에서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이고 월곶(배곧)을 지나가면 있는 인천 송도의 인천대에서는 서해대교와 서해가 보입니다. 그것은 또 인천과 속초와 서울과 부산으로 대비되는 저의 길다 하면 긴 인생의 대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과 이미 가본 길이 서로 거울로 비춰보는 느낌 같습니다.
2. 시집의 제목인 '안 좋은 날이 좋은 날'은 동명의 시(표제작)도 있고, 「지금 막」에서는 "외래 강사 대기실"의 "공용 책상 서랍 안 구겨진 영수증에" 적혀 있던 문장으로도 등장합니다. 이 문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셨는지, 어떻게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보다 먼저 와 있던 책상과 의자와 서랍, 저보다 먼저 강사생활을 한 선배들의 체취가 있는 공간이 외래 강사 대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도시락 먹고 커피 마시고 다른 학과 강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인생이 참 별거 아니라는 느낌과 함께 편안한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곳을 먼저 다녀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짧고 간단한 충고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3. "인생은 끝이 없다, 그때까지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율리우스야"라는 문장으로 시집을 열어주셨는데요. 그후 인생이라는 시어는 무수히 등장합니다.("인생이라는 얇은 바다" "인생은 우리를 씻어주고 있다" "인생 중독자" "바뀐 것 하나 없어도 인생이 달라질 때가 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인생을 먹어치워야 하는 병이기에"……) 전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에선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시어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인생이 재미있고 무섭고 때로는 지긋지긋한 게임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루마불' 게임이라는 것을 하려고 동네 아이들이 어느 집으로 몰려가는데 저는 초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게임이 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만 빼고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한다는 사실이 일깨워준 좋은 감각을 지금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지옥과도 같은 인생의 곳곳에서 진지하게 그 게임들을 즐기는 사람들을 (그런 꼴로 살고 있는 저를) 조금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내려놓을 것은 얼른 내려놓고 때로는 메야할 것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깨에 올려놓고 가야할 곳까지 가야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되도록이면 최대한 가볍고 시원하게……
4. 이번 시집에서 특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같이 들려주세요.
한 편을 고르기는 어렵네요. 몇몇 중요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쓴 시들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편지」나 「대구」 「큰일 같은 작은 일」 그리고 「용을 찾아서」 같은 시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에게 쓰는 편지인 「빈곤미」나 「배롱나무」 같은 시들도 생각이 나네요. 결국 수신자가 받든 못 받든 저는 열심히 써서 부치고 있네요.
5. 마지막 시는 「배롱나무」입니다.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소교목입니다. 시집에는 아기 부처부터 하느님과 여신까지 다양한 오컬트적 존재가 생활의 풍경 가운데 등장하는데요. 시에 그들을 초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인한 감각인지 궁금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저는 〈심슨 가족〉보다는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이 재미있습니다. 가까운 누군가가 좋아하여 관심을 갖고 보니 '스누피'의 일화들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만화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가끔은 있겠지만 만화의 세계를 끌어내려 내 삶의 곳곳에서 작동하게 하는 유치함이 저에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시집을 내고 나면 가족과 함께 저 시의 배경이 되었던 1번 마을버스 종점으로 가서 그때 냇가에서 모래 뜨고 물고기와 장난치며 놀았던 기분을 새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1부 날마다 새사람
율리우스에게-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만족이 아니라 싫증이다/ 큰일 같은 작은 일/ 대기 줄/ 가을 나무/ 6호실/ 용을 찾아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요정의 공장/ 새사람/ 사랑의 기쁨/ 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네가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부 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
변신/ 돌아/ 큰 아기/ 상록수/ 칠보/ 가나다라마사/ 퍼니 타임/ 그것/ 가장 얇고 투명한 생각/ 홀짝/ 7이 나오는 주사위/ 월세계/ 가도 가도 왕십리/ 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
3부 하늘과 땅 사이 나 홀로 외롭다
듣는다/ 조용하다/ 간석/ 모노폴리/ 가짜 낚시/ 선바위/ 냉기의 날/ 빈곤미/ 한몸도 너무 많다/ 제니의 하품/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틱낫한/ 마음의 편지/ 행복의 나라에 다 왔다고
4부 눈을 감아도 볼 수가 있다, 꿈이 아니다
1476년 7월 22일에 나는/ 111/ 생활의 빛/ 곧도착/ 지금 막/ 안 좋은 날이 좋은 날/ 대구/ 먹구의 앵무새/ 너의 얼굴을 꽃병에 꽂아둔다/ 용을 찾아서/ 배롱나무
발문|진심과 아름다움은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 이웃한다
|전병준(문학평론가)
1부 날마다 새사람
율리우스에게-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만족이 아니라 싫증이다/ 큰일 같은 작은 일/ 대기 줄/ 가을 나무/ 6호실/ 용을 찾아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요정의 공장/ 새사람/ 사랑의 기쁨/ 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네가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부 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
변신/ 돌아/ 큰 아기/ 상록수/ 칠보/ 가나다라마사/ 퍼니 타임/ 그것/ 가장 얇고 투명한 생각/ 홀짝/ 7이 나오는 주사위/ 월세계/ 가도 가도 왕십리/ 가져오지도 말고 가져가지도 말고
3부 하늘과 땅 사이 나 홀로 외롭다
듣는다/ 조용하다/ 간석/ 모노폴리/ 가짜 낚시/ 선바위/ 냉기의 날/ 빈곤미/ 한몸도 너무 많다/ 제니의 하품/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틱낫한/ 마음의 편지/ 행복의 나라에 다 왔다고
4부 눈을 감아도 볼 수가 있다, 꿈이 아니다
1476년 7월 22일에 나는/ 111/ 생활의 빛/ 곧도착/ 지금 막/ 안 좋은 날이 좋은 날/ 대구/ 먹구의 앵무새/ 너의 얼굴을 꽃병에 꽂아둔다/ 용을 찾아서/ 배롱나무
발문|진심과 아름다움은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 이웃한다
|전병준(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박판식 1973년 함양에서 태어났다.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밤의 피치카토』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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