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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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난세의 격랑 속, 꼿꼿한 선비의 길을 묻다
19세기 말,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청일 전쟁, 을미사변 등 숨 가쁘게 몰아치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지식인들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했을까? 《니산 시집》은 이 혼란의 시대를 살다 간 경남 의령의 꼿꼿한 선비, 니산(尼山) 남정찬(1850∼1900)의 문집 《니산집》 권1에 수록된 한시를 정성껏 번역한 책이다.
남정찬은 영남 남인의 전통을 바탕으로 노론, 북인 등 당파를 초월해 폭넓게 교유하며 지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의 한시는 무려 142제 170수에 달할 만큼 방대하며, 화려한 기교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감회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특히 지인들과 주고받은 증답시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만시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상의 기록을 소중히 여겼다.
이 책에 실린 남정찬의 시편들은 크게 네 가지 결을 지닌다.
첫째, 무너져 가는 국권 앞에서의 비통함이다. 갑신정변 직후 지은 시에서 그는 "산에 올라 목 놓아 우니 모든 일이 서글퍼라"라며 망국의 한을 절절히 토해 냈다.
둘째, 흔들리지 않는 학문적 신념이다. 주희의 〈경재잠(敬齋箴)〉을 본받아 스스로 〈경심잠(敬心箴)〉을 지을 만큼, 그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수신(修身)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셋째, 지역 사회와 가문의 전통 계승이다. 훼철된 의양 서원을 대신해 경모재를 건립하고, 사족들을 규합해 무너져 가는 유풍을 되살리려 한 그의 고군분투가 시 곳곳에 묻어난다.
넷째, 도잠의 삶을 좇는 은일(隱逸)의 자세다. 세속적 영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며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에 자신의 굳건한 절개를 투영했다.
이 책은 경상국립대 남명학 연구소와 의령문화원이 주최한 학술 대회의 뜻깊은 결실이다. 남정찬의 동생 남정우, 남정섭, 아들 남창희 등 이른바 '남씨 3숙질'을 비롯한 가문의 방대한 문집은 의령 지역사 연구의 핵심 사료로 평가받는다.
《니산 시집》은 단순한 고전 번역을 넘어, 절망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선비의 치열한 내면 기록이다.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남정찬의 시는 100년의 시간을 건너 묵직한 가르침을 전해 줄 것이다.
난세의 격랑 속, 꼿꼿한 선비의 길을 묻다
19세기 말,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청일 전쟁, 을미사변 등 숨 가쁘게 몰아치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지식인들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했을까? 《니산 시집》은 이 혼란의 시대를 살다 간 경남 의령의 꼿꼿한 선비, 니산(尼山) 남정찬(1850∼1900)의 문집 《니산집》 권1에 수록된 한시를 정성껏 번역한 책이다.
남정찬은 영남 남인의 전통을 바탕으로 노론, 북인 등 당파를 초월해 폭넓게 교유하며 지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의 한시는 무려 142제 170수에 달할 만큼 방대하며, 화려한 기교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감회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특히 지인들과 주고받은 증답시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만시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상의 기록을 소중히 여겼다.
이 책에 실린 남정찬의 시편들은 크게 네 가지 결을 지닌다.
첫째, 무너져 가는 국권 앞에서의 비통함이다. 갑신정변 직후 지은 시에서 그는 "산에 올라 목 놓아 우니 모든 일이 서글퍼라"라며 망국의 한을 절절히 토해 냈다.
둘째, 흔들리지 않는 학문적 신념이다. 주희의 〈경재잠(敬齋箴)〉을 본받아 스스로 〈경심잠(敬心箴)〉을 지을 만큼, 그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수신(修身)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셋째, 지역 사회와 가문의 전통 계승이다. 훼철된 의양 서원을 대신해 경모재를 건립하고, 사족들을 규합해 무너져 가는 유풍을 되살리려 한 그의 고군분투가 시 곳곳에 묻어난다.
넷째, 도잠의 삶을 좇는 은일(隱逸)의 자세다. 세속적 영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며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에 자신의 굳건한 절개를 투영했다.
이 책은 경상국립대 남명학 연구소와 의령문화원이 주최한 학술 대회의 뜻깊은 결실이다. 남정찬의 동생 남정우, 남정섭, 아들 남창희 등 이른바 '남씨 3숙질'을 비롯한 가문의 방대한 문집은 의령 지역사 연구의 핵심 사료로 평가받는다.
《니산 시집》은 단순한 고전 번역을 넘어, 절망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선비의 치열한 내면 기록이다.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남정찬의 시는 100년의 시간을 건너 묵직한 가르침을 전해 줄 것이다.
목차
목차
유연정 편액의 시
의양 서원 터에서 느낌이 있어서 2수
계유년 봄, 자동 성양 이정모와 고을의 유림들과 같이 향약계를 새로 만들고 운을 짚어 일을 기록하다
조용구 후를 모시고, 횡당에서 행음례를 했다. 이튿날 정암강 가에 나가 노닐었다
비연당에서 여러 벗과 함께 마음을 터놓다
종산재, 자동께 삼가 드리다
수오 곽성원 어른의 수연(壽宴)을 축하하는 시에 차운하다
수회재 유허에서 느낌이 있어
경모정에서 미산 강봉국 어른, 화언 조선수 군과 함께하다
송암 이정의공의 연시(延諡)시에 삼가 차운하다
본생 대인 삼의당의 생신을 축수하며
표형 현암, 성응 이재후, 삼종질 성문 이귀희가 자암정으로 미산 강씨 어른을 찾아오다
표숙 노저 박 공의 만시 2수
친구를 만나다
귀담 문극 곽후근과 수창하다
이성양, 이주여, 관겸 성일준, 박맹선 등 여러 벗님네와 같이 달빛 아래에서 탁족하다
단옷날 시조 의령군의 묘를 성묘하며
자암정에서 강미산을 모시고 춘파 강씨 어른을 추억하다
이상두 어른의 〈쌍봉정〉 시에 차운하다
경모정에서 여러 장로를 모시고 이야기하다
홍와 대형 이두훈의 〈구름 낀 산에 은거하다〉에 차운하다
수오 곽씨 어른의 만시
세명 곽경근 만시
여지 문숙 홍재학이 소를 올리고 의롭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멀리서 조문하다
임오년 봄, 훈일 이장희를 경관에서 만나 시를 짓고 소회를 논하다 2수
응서 조균호, 도인 정학인, 응중 조재학, 표제 선유 권철희, 족인 국경 남태원과 함께 경사의 인사동에 모이다
인사동 객사에서 자홍 신종익에게 수답하다
〈관수루〉에 차운하다
옛 친구에게 장난스럽게 답하다
김응동 공의 〈타농시〉 운을 뒤좇아 차운하다
호군 안흠 어른을 축수하는 시에 차운하다
아들 창희에게 주다
재종숙 남태원의 〈근소재〉 시에 차운하다
봄날 들길에서
농와 선조의 〈초당〉 시에 삼가 차운하다
갑신년 3월 19일, 느낌이 있어서
이지기 어른의 축수 시에 차운하다
종모부 하치룡 어른의 만시 3수
권병규 어른의 〈미양당〉 시에 차운하다
낮에도 문을 닫네
입춘
감회가 일어
선군 노주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차운해 흘와 이근옥 진사의 수연을 축하하다
정건화 어른이 교관에 보임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니, 차운해 삼가 축하드리다
휘운 변원규, 덕희 윤봉호, 현오 윤광은, 성노 김호귀, 효중 이우선 어른들이 나란히 찾아 주었다. 감회가 있어 시를 지어 드리다
자암정. 동계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감역 신규성의 만시
직장 김규응의 만시 절구 2수
정원의 대나무 가지가 꺾인 것을 보며 탄식하다
가을밤 벌레 소리를 듣고
호연정,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
배움을 구하다
《논어》를 읽다
사월 초파일 연등을 보고
하늘의 도
사람의 도리
시절을 아파하며
봄날의 노래
길을 가며
정응규 어른이 시를 보내 주셨기에 그 시에 차운해 되올리다
봉서재에서 강회 뒤 여러 공들과 함께 창수하다
물계에 우거하던 가운데 고향의 벗 중언 권만희에게 부치다
봄날 고사리가 초동에게 솎아지는 것을 보고
고향집 국화를 떠올리며
책을 보다
성인의 교화
요수정에 오르다
수승대에서 퇴계 선생의 시를 읽다
심소정에서 외가의 여러 공들과 함께 짓다
군자정
장서실에 시를 짓다
승지 한치림의 만시 3수
표제 준명 권덕희를 애도하며
도정 김규한의 만시 4수
이대형 군의 벽에 걸린 고금(古琴)을 보고, 군에게 한번 탄주하기를 청하다
맑은 밤,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와서
물계에서 승지 단사 신병우, 도사 전영관과 같이 술을 마시며 읊다
영지를 읊다
진사 낙칠 이영훈을 곡하다
꿈을 기록하다
정금당,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
신 단사께 드리다
진사 이병록 어른이 장수했다고 해서 승자하시니 차운해 삼가 축하드리다
날이 개다
미양 권 어른의 만시 2수
이보회 어른의 만시 3수
안종락 어른의 만시
한경의 여관에서 강촌 허식을 만나 술을 마시며 속마음을 털어놓다
정언 김석원이 찾아오다
우연히 짓다
나를 탄식하며
본생 선고께서 의양 선원이 폐철됨을 아파해 스스로 '삼의'로 당을 이름했다. 그 뜻을 추술하다
단사께 드리다
안현 여관에서 단사와 삼가 함께하다
이우종 어른의 만시
봄날 산에 오르다
하목정. 호곡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고헌 정내석 선생 만시 3수
애산 후윤 정재규가 경모정을 찾아와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시로써 서로 수창했다
석오 권봉희가 소를 올려 직언한 일로 흑산도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어 조정으로 돌아오는 날에 시를 지어 축하하다 2수
정언 안순중의 추자도 귀양길에 부치다
이정재 후를 삼가 전별하다
만성 박치복의 만시 3수
정 교관의 만시 3수
경모정에서 여러 벗과 함께 수창하다
효효
홍와의 〈동부복거〉에 차운하다
가남 강세순 어른께 드리다
참판 장시표의 만시
장숙 신규헌을 곡하다
정태용 어른의 만시
석계 서진환의 수시(壽詩)에 차운하다
신 승지의 만시 3수
석오 권 어른의 수시(壽詩)에 차운하다
중재 이돈후를 애도하다 3수
한거
소무이계곡 가에서 애산과 함께하다
홍와와 함께 고루암에서 노닐며
망배대 아래에서 상사 경신 남정휘를 송별하다 2수
흘와 이 어른의 〈과천정〉에 차운하다
조유승 후를 모시고 명륜당에서 행음례를 하다
취해 책을 보며
산거
달밤에 무현금을 안고서
높은 산에 올라
어옹의 〈감분〉 시운을 사용하다
나의 즐거움을 즐기노라
회포를 적다
소나무
국화
느낌이 있어
경모정에서 몇몇 고을에서 온 벗들과 함께 연음을 베풀고 강설했다. 다음 날 고루암에 올라 함께 읊다
삼의공의 유사를 추모하며 감회가 있어서 3수
은찬 하재룡과 헤어지며
애산에게 올리다
순여 곽휘근의 만사
봄날 고루암에 오르다
농산 주윤 정면규에게 부치다
시절을 아파하며
경모정에서 손님과 수작(酬酌)하며
자암정 아래 푸른 벽에 적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의양 서원 터에서 느낌이 있어서 2수
계유년 봄, 자동 성양 이정모와 고을의 유림들과 같이 향약계를 새로 만들고 운을 짚어 일을 기록하다
조용구 후를 모시고, 횡당에서 행음례를 했다. 이튿날 정암강 가에 나가 노닐었다
비연당에서 여러 벗과 함께 마음을 터놓다
종산재, 자동께 삼가 드리다
수오 곽성원 어른의 수연(壽宴)을 축하하는 시에 차운하다
수회재 유허에서 느낌이 있어
경모정에서 미산 강봉국 어른, 화언 조선수 군과 함께하다
송암 이정의공의 연시(延諡)시에 삼가 차운하다
본생 대인 삼의당의 생신을 축수하며
표형 현암, 성응 이재후, 삼종질 성문 이귀희가 자암정으로 미산 강씨 어른을 찾아오다
표숙 노저 박 공의 만시 2수
친구를 만나다
귀담 문극 곽후근과 수창하다
이성양, 이주여, 관겸 성일준, 박맹선 등 여러 벗님네와 같이 달빛 아래에서 탁족하다
단옷날 시조 의령군의 묘를 성묘하며
자암정에서 강미산을 모시고 춘파 강씨 어른을 추억하다
이상두 어른의 〈쌍봉정〉 시에 차운하다
경모정에서 여러 장로를 모시고 이야기하다
홍와 대형 이두훈의 〈구름 낀 산에 은거하다〉에 차운하다
수오 곽씨 어른의 만시
세명 곽경근 만시
여지 문숙 홍재학이 소를 올리고 의롭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멀리서 조문하다
임오년 봄, 훈일 이장희를 경관에서 만나 시를 짓고 소회를 논하다 2수
응서 조균호, 도인 정학인, 응중 조재학, 표제 선유 권철희, 족인 국경 남태원과 함께 경사의 인사동에 모이다
인사동 객사에서 자홍 신종익에게 수답하다
〈관수루〉에 차운하다
옛 친구에게 장난스럽게 답하다
김응동 공의 〈타농시〉 운을 뒤좇아 차운하다
호군 안흠 어른을 축수하는 시에 차운하다
아들 창희에게 주다
재종숙 남태원의 〈근소재〉 시에 차운하다
봄날 들길에서
농와 선조의 〈초당〉 시에 삼가 차운하다
갑신년 3월 19일, 느낌이 있어서
이지기 어른의 축수 시에 차운하다
종모부 하치룡 어른의 만시 3수
권병규 어른의 〈미양당〉 시에 차운하다
낮에도 문을 닫네
입춘
감회가 일어
선군 노주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차운해 흘와 이근옥 진사의 수연을 축하하다
정건화 어른이 교관에 보임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니, 차운해 삼가 축하드리다
휘운 변원규, 덕희 윤봉호, 현오 윤광은, 성노 김호귀, 효중 이우선 어른들이 나란히 찾아 주었다. 감회가 있어 시를 지어 드리다
자암정. 동계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감역 신규성의 만시
직장 김규응의 만시 절구 2수
정원의 대나무 가지가 꺾인 것을 보며 탄식하다
가을밤 벌레 소리를 듣고
호연정,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
배움을 구하다
《논어》를 읽다
사월 초파일 연등을 보고
하늘의 도
사람의 도리
시절을 아파하며
봄날의 노래
길을 가며
정응규 어른이 시를 보내 주셨기에 그 시에 차운해 되올리다
봉서재에서 강회 뒤 여러 공들과 함께 창수하다
물계에 우거하던 가운데 고향의 벗 중언 권만희에게 부치다
봄날 고사리가 초동에게 솎아지는 것을 보고
고향집 국화를 떠올리며
책을 보다
성인의 교화
요수정에 오르다
수승대에서 퇴계 선생의 시를 읽다
심소정에서 외가의 여러 공들과 함께 짓다
군자정
장서실에 시를 짓다
승지 한치림의 만시 3수
표제 준명 권덕희를 애도하며
도정 김규한의 만시 4수
이대형 군의 벽에 걸린 고금(古琴)을 보고, 군에게 한번 탄주하기를 청하다
맑은 밤,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와서
물계에서 승지 단사 신병우, 도사 전영관과 같이 술을 마시며 읊다
영지를 읊다
진사 낙칠 이영훈을 곡하다
꿈을 기록하다
정금당,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
신 단사께 드리다
진사 이병록 어른이 장수했다고 해서 승자하시니 차운해 삼가 축하드리다
날이 개다
미양 권 어른의 만시 2수
이보회 어른의 만시 3수
안종락 어른의 만시
한경의 여관에서 강촌 허식을 만나 술을 마시며 속마음을 털어놓다
정언 김석원이 찾아오다
우연히 짓다
나를 탄식하며
본생 선고께서 의양 선원이 폐철됨을 아파해 스스로 '삼의'로 당을 이름했다. 그 뜻을 추술하다
단사께 드리다
안현 여관에서 단사와 삼가 함께하다
이우종 어른의 만시
봄날 산에 오르다
하목정. 호곡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고헌 정내석 선생 만시 3수
애산 후윤 정재규가 경모정을 찾아와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시로써 서로 수창했다
석오 권봉희가 소를 올려 직언한 일로 흑산도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어 조정으로 돌아오는 날에 시를 지어 축하하다 2수
정언 안순중의 추자도 귀양길에 부치다
이정재 후를 삼가 전별하다
만성 박치복의 만시 3수
정 교관의 만시 3수
경모정에서 여러 벗과 함께 수창하다
효효
홍와의 〈동부복거〉에 차운하다
가남 강세순 어른께 드리다
참판 장시표의 만시
장숙 신규헌을 곡하다
정태용 어른의 만시
석계 서진환의 수시(壽詩)에 차운하다
신 승지의 만시 3수
석오 권 어른의 수시(壽詩)에 차운하다
중재 이돈후를 애도하다 3수
한거
소무이계곡 가에서 애산과 함께하다
홍와와 함께 고루암에서 노닐며
망배대 아래에서 상사 경신 남정휘를 송별하다 2수
흘와 이 어른의 〈과천정〉에 차운하다
조유승 후를 모시고 명륜당에서 행음례를 하다
취해 책을 보며
산거
달밤에 무현금을 안고서
높은 산에 올라
어옹의 〈감분〉 시운을 사용하다
나의 즐거움을 즐기노라
회포를 적다
소나무
국화
느낌이 있어
경모정에서 몇몇 고을에서 온 벗들과 함께 연음을 베풀고 강설했다. 다음 날 고루암에 올라 함께 읊다
삼의공의 유사를 추모하며 감회가 있어서 3수
은찬 하재룡과 헤어지며
애산에게 올리다
순여 곽휘근의 만사
봄날 고루암에 오르다
농산 주윤 정면규에게 부치다
시절을 아파하며
경모정에서 손님과 수작(酬酌)하며
자암정 아래 푸른 벽에 적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저자
남정찬
남정찬(南廷瓚, 1580∼1900)의 본관은 의령, 자는 덕주(德柱)·문찬(文贊), 호가 니산(尼山)이다. 그의 선조들이 영남에 터를 잡게 된 것은 남간(南簡)의 현손인 남진(南振)이 삼가 두심동에서 내려오면서부터다. 남진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재종숙 남효온(南孝溫)에게 글을 배웠는데, 갑자사화 이후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 남주(南宙)가 임진왜란 뒤에 의령으로 옮겨 거주함으로써 그 후손들이 판곡리에 대대로 거주하게 되었다. 남주의 손자 남붕익(南鵬翼)은 문학으로 뛰어났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증손 남두장(南斗章, 남정찬의 증조부)은 근면으로 가업을 일으켜 후손들에게 넉넉한 경제적 기반을 물려주게 되었다.
남정찬은 남낙원(南洛元)과 현풍 곽씨[곽성수(郭聖洙)의 딸]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고, 백부 남귀원(南龜元)에게 입후했다. 14세(1863)에 〈신안서사부〉를 지었으며, 21세(1870)에 장남인 남창희(南昌熙)가 태어났다. 24세(1873)에 이정모(李正模) 및 향중 선비들과 주희의 향약을 전범으로 하는 향약계를 맺었다. 32세(1881)로 삼가현 감시를 거쳐 1882년(고종 19) 서울 회시에서 합격했다. 이로써 성균관에 입학해 대과 준비를 할 여건이 마련되었는데, 향리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36세(1885)에 본생부 남낙원을 모시고 삼가현 묵동리로 이주했다. 당시 삼가에는 정면규(鄭冕圭)가 은거해 강학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농산과 학연을 맺고, 삼가의 선비들과 교류했다. 37세(1886)에는 유행병이 돌아 모부인 이씨, 생모부인 곽씨, 부인 곽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40세(1889), 계배 재령 이씨[이유수(李有秀)의 딸]와 함께 의령 판곡리 옛집으로 돌아왔다.
43세(1892)에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어 다시 서울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의령으로 돌아왔다. 의금부도사직을 사직한 뒤로 남정찬은 집 뒤에 따로 건물을 지어 도잠의 유명한 시 〈음주〉의 '유연(悠然)'의 뜻을 취해 '유연정'이라 편액을 하고 도잠의 삶에 뜻을 두었다. 이후, 51세(1900)의 나이로 의령 집에서 졸해, 유연정 동쪽 발니산에 묻혔다. 남정찬의 원배는 현풍 곽씨로 2남 3녀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각각 창희(昌熙)·태희(台熙)이고, 세 딸은 각각 신영직(辛泳直)·권재채(權載采)·권재달(權載達)의 부인이 되었다. 계배는 재령 이씨로 3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기희(箕熙)·두희(斗熙)·필희(畢熙) 등이고, 두 딸은 각각 김규형(金奎馨)·노기렬(盧琪烈)의 부인이 되었다. 모두 5남 5녀다.
남정찬은 남낙원(南洛元)과 현풍 곽씨[곽성수(郭聖洙)의 딸]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고, 백부 남귀원(南龜元)에게 입후했다. 14세(1863)에 〈신안서사부〉를 지었으며, 21세(1870)에 장남인 남창희(南昌熙)가 태어났다. 24세(1873)에 이정모(李正模) 및 향중 선비들과 주희의 향약을 전범으로 하는 향약계를 맺었다. 32세(1881)로 삼가현 감시를 거쳐 1882년(고종 19) 서울 회시에서 합격했다. 이로써 성균관에 입학해 대과 준비를 할 여건이 마련되었는데, 향리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36세(1885)에 본생부 남낙원을 모시고 삼가현 묵동리로 이주했다. 당시 삼가에는 정면규(鄭冕圭)가 은거해 강학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농산과 학연을 맺고, 삼가의 선비들과 교류했다. 37세(1886)에는 유행병이 돌아 모부인 이씨, 생모부인 곽씨, 부인 곽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40세(1889), 계배 재령 이씨[이유수(李有秀)의 딸]와 함께 의령 판곡리 옛집으로 돌아왔다.
43세(1892)에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어 다시 서울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의령으로 돌아왔다. 의금부도사직을 사직한 뒤로 남정찬은 집 뒤에 따로 건물을 지어 도잠의 유명한 시 〈음주〉의 '유연(悠然)'의 뜻을 취해 '유연정'이라 편액을 하고 도잠의 삶에 뜻을 두었다. 이후, 51세(1900)의 나이로 의령 집에서 졸해, 유연정 동쪽 발니산에 묻혔다. 남정찬의 원배는 현풍 곽씨로 2남 3녀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각각 창희(昌熙)·태희(台熙)이고, 세 딸은 각각 신영직(辛泳直)·권재채(權載采)·권재달(權載達)의 부인이 되었다. 계배는 재령 이씨로 3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기희(箕熙)·두희(斗熙)·필희(畢熙) 등이고, 두 딸은 각각 김규형(金奎馨)·노기렬(盧琪烈)의 부인이 되었다. 모두 5남 5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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