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우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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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200년 전 낙동강 굽이굽이 흐르던 선비들의 우정과 풍류
《죽우사 시집》은 19세기 초 경북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 모임 '죽우사(竹雨社)' 문인들의 한시를 엮은 번역서다. 진주 강씨, 연안 이씨 등 영남 사림의 명문가 출신이자 우산 정종로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12명의 핵심 시인들이 1816년 봄부터 가을까지 남긴 13제(題) 106수의 시를 오롯이 담아냈다.
이들의 시 모임은 단순한 문예 활동을 넘어선 세대 간의 끈끈한 연대였다. 1784년 강세백과 이경유가 주축이 된 추수사에서 출발해 1804년 죽우사로 이어졌고, 훗날 강세륜의 독려로 조카 세대가 열운사를 결성하며 50년 가까이 시맥(詩脈)을 이어 갔다. 본 시집은 그 전성기였던 죽우속사 시절의 생생한 기록이다. 절반 이상의 작품을 남긴 강세백, 이경유, 강세륜 세 사람을 필두로, 이들은 용문 서당과 소리정 등지에 모여 계절의 풍광을 노래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시집의 전반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를 짓는 풍류를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고 먼 길을 떠나는 벗과의 이별을 그린다. 하지만 이들의 시에서 이별은 절망적인 끝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매개로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다.
현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고전 번역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0년 전 선비들의 맑고 순수한 성정이 주는 청량감을 느끼는 동시에,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돕는다. 아울러 상주라는 특정 지역의 지성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도 지역 고전학의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200년 전 낙동강 굽이굽이 흐르던 선비들의 우정과 풍류
《죽우사 시집》은 19세기 초 경북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 모임 '죽우사(竹雨社)' 문인들의 한시를 엮은 번역서다. 진주 강씨, 연안 이씨 등 영남 사림의 명문가 출신이자 우산 정종로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12명의 핵심 시인들이 1816년 봄부터 가을까지 남긴 13제(題) 106수의 시를 오롯이 담아냈다.
이들의 시 모임은 단순한 문예 활동을 넘어선 세대 간의 끈끈한 연대였다. 1784년 강세백과 이경유가 주축이 된 추수사에서 출발해 1804년 죽우사로 이어졌고, 훗날 강세륜의 독려로 조카 세대가 열운사를 결성하며 50년 가까이 시맥(詩脈)을 이어 갔다. 본 시집은 그 전성기였던 죽우속사 시절의 생생한 기록이다. 절반 이상의 작품을 남긴 강세백, 이경유, 강세륜 세 사람을 필두로, 이들은 용문 서당과 소리정 등지에 모여 계절의 풍광을 노래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시집의 전반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를 짓는 풍류를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고 먼 길을 떠나는 벗과의 이별을 그린다. 하지만 이들의 시에서 이별은 절망적인 끝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매개로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다.
현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고전 번역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0년 전 선비들의 맑고 순수한 성정이 주는 청량감을 느끼는 동시에,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돕는다. 아울러 상주라는 특정 지역의 지성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도 지역 고전학의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목차
목차
죽우사 시집 서문
1제 용문에서의 기로회(龍門耆會) 11수
1. 계호(啓好) 강세은(姜世誾)의 7언 율시
2.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의 7언 율시
3. 호린(皓隣) 강세백(姜世白)의 7언 율시
4. 임하(林下) 이경유(李敬儒)의 7언 율시
5. 좌은(坐隱) 강세모(姜世?)의 7언 율시
6.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7.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8.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9.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0.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2제 용숙에서의 기로회, 소리정으로 자리를 옮기며(自龍塾耆會, 移席素履亭) 43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2.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4.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6.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7.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9.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10.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1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13.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14.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15.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16.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7.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8.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19. 임하 이경유의 7언 절구
20. 지원 강세륜의 7언 절구
21. 호린 강세백의 7언 절구
22. 대언 이승배의 7언 절구
23. 좌은 강세모의 7언 절구
24. 계호 강세은의 7언 절구
25. 임하 이경유의 5언 절구
26. 지원 강세륜의 5언 절구
27. 좌은 강세모의 5언 절구
28. 호린 강세백의 5언 절구
29. 계호 강세은의 5언 절구
30. 대언(大彦) 이승배(李升培)의 5언 절구
3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32.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33. 이열(而悅) 이학배(李學培)의 5언 율시
34.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36.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37.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3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39.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40.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41.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4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43.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3제 상령고슬 6운으로 전기의 시에 화운하며(湘靈鼓瑟六韻和錢起) 5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5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5언 고시
4. 계호 강세은의 5언 고시
5. 좌은 강세모의 5언 고시
4제 하량에서 소무를 떠나보내는 6운의 시(河梁別蘇武六韻) 5수
1. 임하 이경유의 7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7언 고시
4. 좌은 강세모의 7언 고시
5. 계호 강세은의 7언 고시
5제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읊으며(罷歸途中口號) 3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3.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6제 봉하 시회에서의 의고 이별시(鳳下社會擬古別離) 5수
1. 임옹(林翁) 이경유의 5언 고시
2. 남애(南厓) 강봉흠(姜鳳欽)의 5언 고시
3. 긍암(兢菴) 강세규(姜世揆)의 5언 고시
4. 기치(杞癡) 강세백의 5언 고시
5. 동초(桐焦) 강세륜의 5언 고시
7제 임하 댁 모임에서 연구(聯句)로 지은 노룡단가 (林下社飮聯句賦老龍壇歌) 1수 15연
8제 호린 댁 모임에서 지은 경도가(晧隣宅社飮賦競渡歌) 4수
1. 지원 강세륜의 시
2. 임하 이경유의 시
3. 긍재 이이순의 시
4. 남애 강봉흠의 시
9제 지원 댁 모임에서 지은 6언시(芝園宅?賦六言) 18수
1. 임하 이경유의 6언시(3수)
2. 호린 강세백의 6언시(3수)
3. 긍재 이이순의 6언시(3수)
4. 지원 강세륜의 6언시(3수)
5. 남애 강봉흠의 6언시(3수)
6. 순삼(舜三) 강용흠(姜龍欽)의 6언시(3수)
10제 우산 정종로가 돌아가신 후 시사를 여러 달 못했다. 대개 절구질이 멈추었다는 의미다. 백하 숙황 황반로가 이 일을 말하자 슬퍼하며 송파 이서우의 운을 골라 함께 시를 짓고 시사의 여러 군자에게 부치다(愚山喪後, 社事曠月廢. 盖?不杵之義也. 白下黃叔璜, 至話此事, 泫然拈松坡韻同賦, 寄社中諸君子) 2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백하(白下) 황반로(黃磻老)의 7언 율시
11제 모임에 가서 임하와 마주 대하노라니 슬픔과 탄식뿐이네. 시에 그리운 마음을 드러내며 함께 즉흥으로 화운하다(適小會林下相對, 悲?而已. 詩到聊思, 同率爾?和)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2제 춘방(春坊 : 세자시강원)의 부르심에 가는 지원 학사를 전송하며(送芝園學士赴春坊召命)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3제 이별하며(留別) 1수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1제 용문에서의 기로회(龍門耆會) 11수
1. 계호(啓好) 강세은(姜世誾)의 7언 율시
2.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의 7언 율시
3. 호린(皓隣) 강세백(姜世白)의 7언 율시
4. 임하(林下) 이경유(李敬儒)의 7언 율시
5. 좌은(坐隱) 강세모(姜世?)의 7언 율시
6.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7.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8.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9.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0.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2제 용숙에서의 기로회, 소리정으로 자리를 옮기며(自龍塾耆會, 移席素履亭) 43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2.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4.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6.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7.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9.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10.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11.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1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13.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14.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15.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16.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17.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18.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19. 임하 이경유의 7언 절구
20. 지원 강세륜의 7언 절구
21. 호린 강세백의 7언 절구
22. 대언 이승배의 7언 절구
23. 좌은 강세모의 7언 절구
24. 계호 강세은의 7언 절구
25. 임하 이경유의 5언 절구
26. 지원 강세륜의 5언 절구
27. 좌은 강세모의 5언 절구
28. 호린 강세백의 5언 절구
29. 계호 강세은의 5언 절구
30. 대언(大彦) 이승배(李升培)의 5언 절구
31. 임하 이경유의 5언 율시
32. 호린 강세백의 5언 율시
33. 이열(而悅) 이학배(李學培)의 5언 율시
34. 지원 강세륜의 5언 율시
35. 계호 강세은의 5언 율시
36. 좌은 강세모의 5언 율시
37. 대언 이승배의 5언 율시
38.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39.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40.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41. 좌은 강세모의 7언 율시
42. 대언 이승배의 7언 율시
43. 계호 강세은의 7언 율시
3제 상령고슬 6운으로 전기의 시에 화운하며(湘靈鼓瑟六韻和錢起) 5수
1. 임하 이경유의 5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5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5언 고시
4. 계호 강세은의 5언 고시
5. 좌은 강세모의 5언 고시
4제 하량에서 소무를 떠나보내는 6운의 시(河梁別蘇武六韻) 5수
1. 임하 이경유의 7언 고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고시
3. 지원 강세륜의 7언 고시
4. 좌은 강세모의 7언 고시
5. 계호 강세은의 7언 고시
5제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읊으며(罷歸途中口號) 3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3.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6제 봉하 시회에서의 의고 이별시(鳳下社會擬古別離) 5수
1. 임옹(林翁) 이경유의 5언 고시
2. 남애(南厓) 강봉흠(姜鳳欽)의 5언 고시
3. 긍암(兢菴) 강세규(姜世揆)의 5언 고시
4. 기치(杞癡) 강세백의 5언 고시
5. 동초(桐焦) 강세륜의 5언 고시
7제 임하 댁 모임에서 연구(聯句)로 지은 노룡단가 (林下社飮聯句賦老龍壇歌) 1수 15연
8제 호린 댁 모임에서 지은 경도가(晧隣宅社飮賦競渡歌) 4수
1. 지원 강세륜의 시
2. 임하 이경유의 시
3. 긍재 이이순의 시
4. 남애 강봉흠의 시
9제 지원 댁 모임에서 지은 6언시(芝園宅?賦六言) 18수
1. 임하 이경유의 6언시(3수)
2. 호린 강세백의 6언시(3수)
3. 긍재 이이순의 6언시(3수)
4. 지원 강세륜의 6언시(3수)
5. 남애 강봉흠의 6언시(3수)
6. 순삼(舜三) 강용흠(姜龍欽)의 6언시(3수)
10제 우산 정종로가 돌아가신 후 시사를 여러 달 못했다. 대개 절구질이 멈추었다는 의미다. 백하 숙황 황반로가 이 일을 말하자 슬퍼하며 송파 이서우의 운을 골라 함께 시를 짓고 시사의 여러 군자에게 부치다(愚山喪後, 社事曠月廢. 盖?不杵之義也. 白下黃叔璜, 至話此事, 泫然拈松坡韻同賦, 寄社中諸君子) 2수
1.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2. 백하(白下) 황반로(黃磻老)의 7언 율시
11제 모임에 가서 임하와 마주 대하노라니 슬픔과 탄식뿐이네. 시에 그리운 마음을 드러내며 함께 즉흥으로 화운하다(適小會林下相對, 悲?而已. 詩到聊思, 同率爾?和)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2제 춘방(春坊 : 세자시강원)의 부르심에 가는 지원 학사를 전송하며(送芝園學士赴春坊召命) 4수
1. 호린 강세백의 7언 율시
2. 임하 이경유의 7언 율시
3. 긍재 이이순의 7언 율시
4. 남애 강봉흠의 7언 율시
13제 이별하며(留別) 1수
지원 강세륜의 7언 율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저자
강세백 외
강세백(姜世白, 1748∼1824)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청지(淸之), 호(號)는 호린(晧隣), 별호(別號)는 기치(杞癡)다. 국포(菊圃) 강박(姜樸, 1690∼1742)의 손자요, 강필악(姜必岳, 1723∼1795)의 장남이다. 1792년 45세에 영남 유생 7000명이 모인 도산 응제(陶山應製)에서 장원 급제했다. 저서로 《진종성헌(晉宗成憲)》 4책을 남겼다. 이경유와 함께 1784년 추수사를 창시했으며, 1804년 죽우사를 결사한 주맹으로 활동한 상주 지역 시사의 대표 문장가다.
이경유(李敬儒, 1750∼1821)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임하(林下), 호(號)는 덕무(德懋), 별호(別號)는 임옹(林翁)이다. 고조부는 이옥(李沃), 증조부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 조부는 이지빈(李之彬), 부친은 강재(剛齋) 이승연(李承延)이다. 1792년 음사로 참봉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을 학문과 문학에 바쳤다. 저서로 《임하유고(林下遺稿)》와 《창해시안(滄海詩眼)》이 있다. 강세백의 지음이자 추수사, 죽우사를 결사한 주 인물로 시사 활동을 주도했다.
이이순(李?淳, 1754∼1832)
본관은 진성(眞城), 자(字)는 치양(穉養), 초자(初字)는 비언(斐彦), 호(號)는 긍재(兢齋), 후계(後溪), 만와(晩窩), 육우당(六友堂), 육우헌(六友軒), 기은(杞隱)으로 경상북도 봉화 출신이다. 퇴계 이황의 9세손으로, 이귀몽(李龜蒙, 1733∼1807)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택동(金宅東)의 딸이다. 1779년(정조 3)에 생원시에 합격해 의금부도사, 군자감주부, 은진현감 등을 지냈다. 6남 2녀 중 차남으로 6형제 중 문장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문집으로 《후계집(後溪集)》이 있다.
이학배(李學培, 1759∼1831)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이열(而悅), 호(號)는 천재(川齋)로, 창석 이준(李埈, 1560∼1635)의 7세손이다. 조부는 이지원(李知遠), 부친은 이곤직(李坤直)이며, 모친은 옥산 장씨(玉山張氏) 장지철(張趾哲)의 딸이다. 9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인은 풍산 유씨(?山柳氏) 유필천(柳必天)의 딸이다. 사위는 이정유(李挺儒)의 아들 이선기(李選基, 1785∼1859)다. 1818년(순조 18) 영남 유생들과 함께 채제공의 관작을 회복해 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릴 때, 대표 역할을 했다.
강세륜(姜世綸, 1761∼184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문거(文擧), 호(號)는 지원(芝園), 별호는 동초(桐焦)다. 국포 강박의 손자이며, 강필악의 아들이고 강세백의 동생이다. 모친은 이재후의 딸이며, 외가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딸과 손녀딸로 인해 진성 이씨 집안과 혼맥이 있다. 추수사, 죽우사의 핵심 멤버였으며, 이경유와 강세백이 죽자 1828년 강장흠과 열운사(悅雲社)로 재결성해 오랜 시사의 전통을 후진에게 잇도록 하는 데 적극 활약했다. 평생 내외직을 두루 거쳐 관직 생활을 했으며, 문집으로 《지원집(芝園集)》 8책과 61세에 종성부사로 가는 여정과 북관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한시집 《북정록(北征錄)》 1권이 있다.
강봉흠(姜鳳欽, 1762∼1828)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남애(南厓), 호(號)는 덕조(德祖)다. 모헌 강필신(姜必愼, 1687∼1756)의 손자요, 경현재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의 아들이다.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인으로 상주 봉대리에 거주했다. 이경유, 강세백, 강세륜 등과 교유하며 시를 즐겨 지었다. 분매(盆梅)를 좋아해 꽃이 피면 시를 읊었으며, 산수를 좋아해 속리산, 청량산, 희양산 등을 유람했다. 저서로 우리나라 시사(詩史)를 정리한 《남애시사(南厓詩史)》가 있다.
강세규(姜世揆, 1762∼183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공서(公敍), 호(號)는 긍암(兢菴), 긍재(兢齋)다. 통계(通谿)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으로 조부는 강현(姜, 1688∼1747)이며, 부친 강필형(姜必炯, 1722∼1793)과 성산 이씨 이석좌(李碩佐)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3남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연일 정씨 정안제(鄭安齊)의 딸과 고령 신씨 신정연(申廷淵)의 딸이다. 입재 정종로의 문하에서 도학을 전수했으며, 긍암이라는 호 역시 만년에 입재 선생에게서 받은 것이다. 저서로 《긍암집》이 있다.
강용흠(姜龍欽, 1764∼183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순삼(舜三), 호(號)는 간와(艮窩)다. 강사부(姜士孚)의 후예다.
황반로(黃磻老, 1766∼1840)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숙황(叔璜), 호(號)는 백하(白下), 평와(平窩)다. 방촌(?村) 황희(黃喜, 1363∼1452)의 후예로 상주에 거주했다. 심기당(審幾堂) 황계희(黃啓熙, 1727∼1785)의 3남 중 막내다. 형은 황신로(黃莘老, 1755∼?), 황암로(黃巖老, 1759∼1812)다. 1789년(정조 13)에 생원에 입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정종로의 문하생으로 시문과 필법에 뛰어났다. 저서로 《백하집(白下集)》이 있어 그 안에 시사 활동 중에 쓴 시를 많이 남겼다.
이승배(李升培, 1768∼1834)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대언(大彦), 호(號)는 수계(修溪)다. 수계 거사(修溪居士)라고도 하는데 시냇가에 작은 집을 짓고 스스로 자호(自號)로 삼은 것이다. 상주 청리면에 거주했으며, 월간(月澗) 이전(李?)의 7세손으로 부친은 이곤택(李坤宅)이다. 9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0세부터 시를 지었다. 부인은 광산 노씨(光山盧氏) 노필문(盧必文)의 딸이다. 저서로 《수계집(修溪集)》이 있으며, 그 안에 〈죽우시사서(竹雨詩社序)〉를 남겼다.
강세모(姜世?, 175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종모(宗謨), 호(號)는 좌은(坐隱)이다. 강필장(姜必章, 1722∼1798)의 장남으로 모친은 풍산 김씨(?山金氏) 김서대(金瑞大)의 딸이다. 동생이 강세은(姜世誾)이다. 풍산 유씨(?山柳氏) 유발(柳潑)의 맏사위로 유발에게 출계한 유심춘(柳尋春, 1762∼1834)과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강세은(姜世誾, 1780∼1835)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계호(啓好), 호(號)는 과암(過菴)이다. 강필장의 3남으로 두 형은 강세모(姜世?), 강세건(姜世?)이며 모친은 강필장의 셋째 부인 손씨(孫氏)로 보인다. 1803년 생원시에 입격했다. 아들 강성흠(姜性欽, 1805∼1864)은 죽우사를 이은 열운사의 핵심 멤버로, 낙강 시회의 시를 기록한 《낙유첩》의 서문을 통해 시사의 전통과 그 의미를 기술했다. 저서로 《과암집(過庵集)》이 일부 남아 있으며, 그중 1830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봉래외기(蓬萊外記)〉가 돋보인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청지(淸之), 호(號)는 호린(晧隣), 별호(別號)는 기치(杞癡)다. 국포(菊圃) 강박(姜樸, 1690∼1742)의 손자요, 강필악(姜必岳, 1723∼1795)의 장남이다. 1792년 45세에 영남 유생 7000명이 모인 도산 응제(陶山應製)에서 장원 급제했다. 저서로 《진종성헌(晉宗成憲)》 4책을 남겼다. 이경유와 함께 1784년 추수사를 창시했으며, 1804년 죽우사를 결사한 주맹으로 활동한 상주 지역 시사의 대표 문장가다.
이경유(李敬儒, 1750∼1821)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임하(林下), 호(號)는 덕무(德懋), 별호(別號)는 임옹(林翁)이다. 고조부는 이옥(李沃), 증조부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 조부는 이지빈(李之彬), 부친은 강재(剛齋) 이승연(李承延)이다. 1792년 음사로 참봉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을 학문과 문학에 바쳤다. 저서로 《임하유고(林下遺稿)》와 《창해시안(滄海詩眼)》이 있다. 강세백의 지음이자 추수사, 죽우사를 결사한 주 인물로 시사 활동을 주도했다.
이이순(李?淳, 1754∼1832)
본관은 진성(眞城), 자(字)는 치양(穉養), 초자(初字)는 비언(斐彦), 호(號)는 긍재(兢齋), 후계(後溪), 만와(晩窩), 육우당(六友堂), 육우헌(六友軒), 기은(杞隱)으로 경상북도 봉화 출신이다. 퇴계 이황의 9세손으로, 이귀몽(李龜蒙, 1733∼1807)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택동(金宅東)의 딸이다. 1779년(정조 3)에 생원시에 합격해 의금부도사, 군자감주부, 은진현감 등을 지냈다. 6남 2녀 중 차남으로 6형제 중 문장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문집으로 《후계집(後溪集)》이 있다.
이학배(李學培, 1759∼1831)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이열(而悅), 호(號)는 천재(川齋)로, 창석 이준(李埈, 1560∼1635)의 7세손이다. 조부는 이지원(李知遠), 부친은 이곤직(李坤直)이며, 모친은 옥산 장씨(玉山張氏) 장지철(張趾哲)의 딸이다. 9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인은 풍산 유씨(?山柳氏) 유필천(柳必天)의 딸이다. 사위는 이정유(李挺儒)의 아들 이선기(李選基, 1785∼1859)다. 1818년(순조 18) 영남 유생들과 함께 채제공의 관작을 회복해 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릴 때, 대표 역할을 했다.
강세륜(姜世綸, 1761∼184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문거(文擧), 호(號)는 지원(芝園), 별호는 동초(桐焦)다. 국포 강박의 손자이며, 강필악의 아들이고 강세백의 동생이다. 모친은 이재후의 딸이며, 외가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딸과 손녀딸로 인해 진성 이씨 집안과 혼맥이 있다. 추수사, 죽우사의 핵심 멤버였으며, 이경유와 강세백이 죽자 1828년 강장흠과 열운사(悅雲社)로 재결성해 오랜 시사의 전통을 후진에게 잇도록 하는 데 적극 활약했다. 평생 내외직을 두루 거쳐 관직 생활을 했으며, 문집으로 《지원집(芝園集)》 8책과 61세에 종성부사로 가는 여정과 북관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한시집 《북정록(北征錄)》 1권이 있다.
강봉흠(姜鳳欽, 1762∼1828)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남애(南厓), 호(號)는 덕조(德祖)다. 모헌 강필신(姜必愼, 1687∼1756)의 손자요, 경현재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의 아들이다.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인으로 상주 봉대리에 거주했다. 이경유, 강세백, 강세륜 등과 교유하며 시를 즐겨 지었다. 분매(盆梅)를 좋아해 꽃이 피면 시를 읊었으며, 산수를 좋아해 속리산, 청량산, 희양산 등을 유람했다. 저서로 우리나라 시사(詩史)를 정리한 《남애시사(南厓詩史)》가 있다.
강세규(姜世揆, 1762∼183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공서(公敍), 호(號)는 긍암(兢菴), 긍재(兢齋)다. 통계(通谿)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으로 조부는 강현(姜, 1688∼1747)이며, 부친 강필형(姜必炯, 1722∼1793)과 성산 이씨 이석좌(李碩佐)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3남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연일 정씨 정안제(鄭安齊)의 딸과 고령 신씨 신정연(申廷淵)의 딸이다. 입재 정종로의 문하에서 도학을 전수했으며, 긍암이라는 호 역시 만년에 입재 선생에게서 받은 것이다. 저서로 《긍암집》이 있다.
강용흠(姜龍欽, 1764∼183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순삼(舜三), 호(號)는 간와(艮窩)다. 강사부(姜士孚)의 후예다.
황반로(黃磻老, 1766∼1840)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숙황(叔璜), 호(號)는 백하(白下), 평와(平窩)다. 방촌(?村) 황희(黃喜, 1363∼1452)의 후예로 상주에 거주했다. 심기당(審幾堂) 황계희(黃啓熙, 1727∼1785)의 3남 중 막내다. 형은 황신로(黃莘老, 1755∼?), 황암로(黃巖老, 1759∼1812)다. 1789년(정조 13)에 생원에 입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정종로의 문하생으로 시문과 필법에 뛰어났다. 저서로 《백하집(白下集)》이 있어 그 안에 시사 활동 중에 쓴 시를 많이 남겼다.
이승배(李升培, 1768∼1834)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대언(大彦), 호(號)는 수계(修溪)다. 수계 거사(修溪居士)라고도 하는데 시냇가에 작은 집을 짓고 스스로 자호(自號)로 삼은 것이다. 상주 청리면에 거주했으며, 월간(月澗) 이전(李?)의 7세손으로 부친은 이곤택(李坤宅)이다. 9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0세부터 시를 지었다. 부인은 광산 노씨(光山盧氏) 노필문(盧必文)의 딸이다. 저서로 《수계집(修溪集)》이 있으며, 그 안에 〈죽우시사서(竹雨詩社序)〉를 남겼다.
강세모(姜世?, 175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종모(宗謨), 호(號)는 좌은(坐隱)이다. 강필장(姜必章, 1722∼1798)의 장남으로 모친은 풍산 김씨(?山金氏) 김서대(金瑞大)의 딸이다. 동생이 강세은(姜世誾)이다. 풍산 유씨(?山柳氏) 유발(柳潑)의 맏사위로 유발에게 출계한 유심춘(柳尋春, 1762∼1834)과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강세은(姜世誾, 1780∼1835)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계호(啓好), 호(號)는 과암(過菴)이다. 강필장의 3남으로 두 형은 강세모(姜世?), 강세건(姜世?)이며 모친은 강필장의 셋째 부인 손씨(孫氏)로 보인다. 1803년 생원시에 입격했다. 아들 강성흠(姜性欽, 1805∼1864)은 죽우사를 이은 열운사의 핵심 멤버로, 낙강 시회의 시를 기록한 《낙유첩》의 서문을 통해 시사의 전통과 그 의미를 기술했다. 저서로 《과암집(過庵集)》이 일부 남아 있으며, 그중 1830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봉래외기(蓬萊外記)〉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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