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이탈리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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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바이마르를 탈출, 로마라는 학교에 첫발을 디딘 괴테의 첫말은, "나는 다시금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편협한 사고의 반경 속에 갇혀 지냈던 자신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식과 행동을 포함한 자아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간하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 《이탈리아 여행기(Italienische Reise)》에는 괴테의 이러한 정신적 변화와 성숙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1786년 9월 3일부터 1788년 6월 18일까지 약 22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비록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이 여행은 괴테의 표현을 빌리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괴테는 로마에 발을 디딘 순간이 제2의 출생, 진정한 재생이라고 생각했거니와,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배워 새로운 인간이 되어 돌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늘 탐구적인 자세를 견지했으며 비교적 만족스런 결과를 귀국 직전의 편지에 써 보낼 수 있었다.
괴테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고대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보는 관광지만이 아니었다. 공사다망했던 바이마르를 떠난 그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아 주고 잠자고 있던 그의 천재성을 다시 일깨워 준 장소였다. 그것은, 수년간 묵혀두었던 원고들이 현지에서 완성되거나 개작되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식물학을 위시한 자연과학의 연구에도 몰두했고 인간과 민족과 예술의 근원인 자연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다. 바이마르의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 적혀 있듯이 그는 껍질을 벗는 듯한 자각의 변화를 체험했으며, 그것은 훗날 〈파우스트(Faust)〉와 같은 대작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에너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 동기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소년 시절부터 간직했던 남국에 대한 동경심
둘째, 바이마르의 편협성에서 도피하려는 충동
셋째,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예술가 정신을 되찾고 싶은 욕구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이 세 가지 소망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괴테는 로마와 나폴리만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폴리를 찾아 그 기막힌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한 달가량이나 머물다가 시칠리아 섬까지 나아갔으며, 결국은 이탈리아 체류를 연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월 이상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괴테는 명랑하고 자유로운 나그네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했다. 1787년 6월 6일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이 위대한 세계의 학교에 1년 이상 더 체류하게 되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1786년 9월 3일부터 1788년 6월 18일까지 약 22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비록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이 여행은 괴테의 표현을 빌리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괴테는 로마에 발을 디딘 순간이 제2의 출생, 진정한 재생이라고 생각했거니와,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배워 새로운 인간이 되어 돌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늘 탐구적인 자세를 견지했으며 비교적 만족스런 결과를 귀국 직전의 편지에 써 보낼 수 있었다.
괴테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고대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보는 관광지만이 아니었다. 공사다망했던 바이마르를 떠난 그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아 주고 잠자고 있던 그의 천재성을 다시 일깨워 준 장소였다. 그것은, 수년간 묵혀두었던 원고들이 현지에서 완성되거나 개작되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식물학을 위시한 자연과학의 연구에도 몰두했고 인간과 민족과 예술의 근원인 자연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다. 바이마르의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 적혀 있듯이 그는 껍질을 벗는 듯한 자각의 변화를 체험했으며, 그것은 훗날 〈파우스트(Faust)〉와 같은 대작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에너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 동기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소년 시절부터 간직했던 남국에 대한 동경심
둘째, 바이마르의 편협성에서 도피하려는 충동
셋째,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예술가 정신을 되찾고 싶은 욕구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이 세 가지 소망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괴테는 로마와 나폴리만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폴리를 찾아 그 기막힌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한 달가량이나 머물다가 시칠리아 섬까지 나아갔으며, 결국은 이탈리아 체류를 연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월 이상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괴테는 명랑하고 자유로운 나그네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했다. 1787년 6월 6일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이 위대한 세계의 학교에 1년 이상 더 체류하게 되었다.
목차
목차
제1부 카를스바트에서 로마까지(1786년 9월∼1787년 2월)
카를스바트에서 브레너까지
브레너에서 베로나까지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로마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1787년 2월∼1787년 6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에서 헤르더에게
제3부 두 번째 로마 체류(1787년 6월∼1788년 4월)
6월의 서신
7월의 서신
보고7월
8월의 서신
9월의 서신
10월의 서신
보고10월
11월의 서신
12월의 서신
1월의 서신
로마의 사육제
2월의 서신
3월의 서신
4월의 서신
보고4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카를스바트에서 브레너까지
브레너에서 베로나까지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로마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1787년 2월∼1787년 6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에서 헤르더에게
제3부 두 번째 로마 체류(1787년 6월∼1788년 4월)
6월의 서신
7월의 서신
보고7월
8월의 서신
9월의 서신
10월의 서신
보고10월
11월의 서신
12월의 서신
1월의 서신
로마의 사육제
2월의 서신
3월의 서신
4월의 서신
보고4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1757년,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미술에 더 몰두하였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재학 당시 헤르더를 통해 호머, 오시안, 그리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1772년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나, 절망적인 사랑으로 인한 자살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1775년 카알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고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실러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실러의 죽음으로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었고, <색채론>(1810),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을 완성했다.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1757년,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미술에 더 몰두하였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재학 당시 헤르더를 통해 호머, 오시안, 그리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1772년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나, 절망적인 사랑으로 인한 자살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1775년 카알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고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실러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실러의 죽음으로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었고, <색채론>(1810),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을 완성했다.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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