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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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망국의 통한을 안고 구국(救國)과 구도(救道)의 길을 걷다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머리칼만은 자를 수 없다." 유교적 세계관이 곧 정체성이었던 구한말 유림에게 일제의 침략과 강제적인 근대화는 곧 세계의 종말과도 같았다. 쏟아지는 제국주의의 폭력 속에서 전통 문인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혹은 망명의 길을 택하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서유록(西遊錄)》은 상소와 국채 보상 운동 등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항쟁을 시도하다 끝내 해외 망명을 택한 노유(老儒) 이승희의 근대 중국 유람기다. 책에는 일흔을 앞둔 그가 1913년 겨울 중국 안동에서 출발해 1914년 봄 심양으로 돌아오기까지, 북경과 공자의 고향 곡부 등을 거친 119일간의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무려 6500리에 달하는 이 멀고 험한 길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구국'의 길이자 희미해져 가는 유교를 회복하기 위한 '구도'의 절박한 행보였다.
그러나 부모를 찾는 아이의 심정으로 당도한 공자의 땅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중화'가 지워지고 '민국'이 들어선 낯선 현실이었다. 자신의 전통 복장이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중국 공교회가 무능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좌절에 머물지 않았다.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대신, 척박한 땅을 떠도는 이주 한인들의 삶을 보듬고 독자적인 유교 공동체를 건설하는 주체적인 '실천'을 위해 다시 굳건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 책에는 신생 중화민국의 안팎을 예리하게 관찰한 시선과, 이역을 떠도는 망국 유민의 처연한 심사가 95수의 한시와 함께 곡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의암 유인석, 석주 이상룡 등 노선이 달랐던 독립운동가들과의 허심탄회한 교류, 모어를 잃어버린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위로했던 일화 등은 1910년대 재중 한인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끈끈한 독립 의지를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서유록》은 '근대'라는 격랑에 맞선 당대 유림의 실천적 지성과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빚어낸 훌륭한 한문학 작품이다. 나아가 한·중 유림의 연대 기원과 한국 독립운동사의 숨은 이면을 밝혀 줄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머리칼만은 자를 수 없다." 유교적 세계관이 곧 정체성이었던 구한말 유림에게 일제의 침략과 강제적인 근대화는 곧 세계의 종말과도 같았다. 쏟아지는 제국주의의 폭력 속에서 전통 문인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혹은 망명의 길을 택하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서유록(西遊錄)》은 상소와 국채 보상 운동 등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항쟁을 시도하다 끝내 해외 망명을 택한 노유(老儒) 이승희의 근대 중국 유람기다. 책에는 일흔을 앞둔 그가 1913년 겨울 중국 안동에서 출발해 1914년 봄 심양으로 돌아오기까지, 북경과 공자의 고향 곡부 등을 거친 119일간의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무려 6500리에 달하는 이 멀고 험한 길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구국'의 길이자 희미해져 가는 유교를 회복하기 위한 '구도'의 절박한 행보였다.
그러나 부모를 찾는 아이의 심정으로 당도한 공자의 땅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중화'가 지워지고 '민국'이 들어선 낯선 현실이었다. 자신의 전통 복장이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중국 공교회가 무능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좌절에 머물지 않았다.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대신, 척박한 땅을 떠도는 이주 한인들의 삶을 보듬고 독자적인 유교 공동체를 건설하는 주체적인 '실천'을 위해 다시 굳건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 책에는 신생 중화민국의 안팎을 예리하게 관찰한 시선과, 이역을 떠도는 망국 유민의 처연한 심사가 95수의 한시와 함께 곡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의암 유인석, 석주 이상룡 등 노선이 달랐던 독립운동가들과의 허심탄회한 교류, 모어를 잃어버린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위로했던 일화 등은 1910년대 재중 한인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끈끈한 독립 의지를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서유록》은 '근대'라는 격랑에 맞선 당대 유림의 실천적 지성과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빚어낸 훌륭한 한문학 작품이다. 나아가 한·중 유림의 연대 기원과 한국 독립운동사의 숨은 이면을 밝혀 줄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목차
목차
서(序)
공자 2464년 계축(癸丑, 1913) 음력 12월 초2일 계미(癸未)
12월 3일 갑신(甲申)
12월 4일 을유(乙酉)
12월 6일 정해(丁亥)
12월 8일 기축(己丑)
12월 9일 경인(庚寅)
12월 10일 신묘(辛卯)
12월 11일 임진(壬辰)
12월 12일 계사(癸巳)
12월 13일 갑오(甲午)
12월 14일 을미(乙未)
12월 15일 병신(丙申)
12월 16일 정유(丁酉)
12월 19일 경자(庚子)
12월 20일 신축(辛丑)
12월 21일 임인(壬寅)
12월 22일 계묘(癸卯)
12월 23일 갑진(甲辰)
12월 24일 을사(乙巳)
12월 25일 병오(丙午)
12월 26일 정미(丁未)
12월 27일 무신(戊申)
12월 28일 기유(己酉)
12월 29일 경술(庚戌)
12월 30일 신해(辛亥)
갑인(1914) 초하루 임자(壬子)
1월 2일 계축(癸丑)
1월 3일 갑인(甲寅)
1월 4일 을묘(乙卯)
1월 5일 병진(丙辰)
1월 7일 무오(戊午)
1월 8일 기미(己未)
1월 초 9일 경신(庚申)
1월 10일 신유(辛酉)
1월 11일 임술(壬戌)
1월 12일 계해(癸亥)
1월 13일 갑자(甲子)
1월 14일 을축(乙丑)
1월 15일 병인(丙寅)
1월 16일 정묘(丁卯)
1월 17일 무진(戊辰)
1월 18일 기사(己巳)
1월 19일 경오(庚午)
1월 21일 임신(壬申)
1월 22일 계유(癸酉)
1월 23일 갑술(甲戌)
1월 24일 을해(乙亥)
1월 25일 병자(丙子)
1월 26일 정축(丁丑)
1월 27일 무인(戊寅)
1월 28일 기묘(己卯)
1월 29일 경진(庚辰)
1월 30일 신사(辛巳)
2월 초 1일 임오(壬午)
2월 2일 계미(癸未)
2월 3일 갑신(甲申)
2월 4일 을유(乙酉)
2월 5일 병술(丙戌)
2월 초 6일 정해(丁亥)
2월 7일 무자(戊子)
2월 8일 기축(己丑)
2월 9일 경인(庚寅)
2월 10일 신묘(辛卯)
2월 11일 임진(壬辰)
2월 12일 계사(癸巳)
2월 13일 갑오(甲午)
2월 14일 을미(乙未)
2월 15일 병신(丙申)
2월 16일 정유(丁酉)
2월 17일 무술(戊戌)
2월 18일 기해(己亥)
2월 19일 경자(庚子)
2월 20일 신축(辛丑)
2월 21일 임인(壬寅)
2월 22일 계묘(癸卯)
2월 23일 갑진(甲辰)
2월 24일 을사(乙巳)
2월 25일 병오(丙午)
2월 26일 정미(丁未)
2월 27일 무신(戊申)
2월 28일 기유(己酉)
2월 29일 경술(庚戌)
2월 30일 신해(辛亥)
3월 초하루 임자(壬子)
3월 2일 계축(癸丑)
3월 초 3일 갑인(甲寅)
3월 4일 을묘(乙卯)
3월 5일 병진(丙辰)
3월 6일 정사(丁巳)
3월 7일 무오(戊午)
3월 8일 을미(乙未)
3월 9일 경신(庚申)
3월 초 10일 신유(辛酉)
3월 11일 임술(壬戌)
3월 12일 계해(癸亥)
3월 13일 갑자(甲子)
3월 14일 을축(乙丑)
3월 15일 병인(丙寅)
3월 16일 정묘(丁卯)
3월 17일 무진(戊辰)
3월 18일 기사(己巳)
3월 19일 경오(庚午)
3월 20일 신미(辛未)
3월 21일 임신(壬申)
3월 22일 계유(癸酉)
3월 24일 을해(乙亥)
3월 25일 병자(丙子)
3월 26일 정축(丁丑)
3월 27일 무인(戊寅)
3월 28일 기묘(己卯)
3월 29일 경진(庚辰)
4월 초 하루 신사(辛巳)
원문
일자별 여정 및 주요 활동
참고문헌
해설
옮긴이 후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공자 2464년 계축(癸丑, 1913) 음력 12월 초2일 계미(癸未)
12월 3일 갑신(甲申)
12월 4일 을유(乙酉)
12월 6일 정해(丁亥)
12월 8일 기축(己丑)
12월 9일 경인(庚寅)
12월 10일 신묘(辛卯)
12월 11일 임진(壬辰)
12월 12일 계사(癸巳)
12월 13일 갑오(甲午)
12월 14일 을미(乙未)
12월 15일 병신(丙申)
12월 16일 정유(丁酉)
12월 19일 경자(庚子)
12월 20일 신축(辛丑)
12월 21일 임인(壬寅)
12월 22일 계묘(癸卯)
12월 23일 갑진(甲辰)
12월 24일 을사(乙巳)
12월 25일 병오(丙午)
12월 26일 정미(丁未)
12월 27일 무신(戊申)
12월 28일 기유(己酉)
12월 29일 경술(庚戌)
12월 30일 신해(辛亥)
갑인(1914) 초하루 임자(壬子)
1월 2일 계축(癸丑)
1월 3일 갑인(甲寅)
1월 4일 을묘(乙卯)
1월 5일 병진(丙辰)
1월 7일 무오(戊午)
1월 8일 기미(己未)
1월 초 9일 경신(庚申)
1월 10일 신유(辛酉)
1월 11일 임술(壬戌)
1월 12일 계해(癸亥)
1월 13일 갑자(甲子)
1월 14일 을축(乙丑)
1월 15일 병인(丙寅)
1월 16일 정묘(丁卯)
1월 17일 무진(戊辰)
1월 18일 기사(己巳)
1월 19일 경오(庚午)
1월 21일 임신(壬申)
1월 22일 계유(癸酉)
1월 23일 갑술(甲戌)
1월 24일 을해(乙亥)
1월 25일 병자(丙子)
1월 26일 정축(丁丑)
1월 27일 무인(戊寅)
1월 28일 기묘(己卯)
1월 29일 경진(庚辰)
1월 30일 신사(辛巳)
2월 초 1일 임오(壬午)
2월 2일 계미(癸未)
2월 3일 갑신(甲申)
2월 4일 을유(乙酉)
2월 5일 병술(丙戌)
2월 초 6일 정해(丁亥)
2월 7일 무자(戊子)
2월 8일 기축(己丑)
2월 9일 경인(庚寅)
2월 10일 신묘(辛卯)
2월 11일 임진(壬辰)
2월 12일 계사(癸巳)
2월 13일 갑오(甲午)
2월 14일 을미(乙未)
2월 15일 병신(丙申)
2월 16일 정유(丁酉)
2월 17일 무술(戊戌)
2월 18일 기해(己亥)
2월 19일 경자(庚子)
2월 20일 신축(辛丑)
2월 21일 임인(壬寅)
2월 22일 계묘(癸卯)
2월 23일 갑진(甲辰)
2월 24일 을사(乙巳)
2월 25일 병오(丙午)
2월 26일 정미(丁未)
2월 27일 무신(戊申)
2월 28일 기유(己酉)
2월 29일 경술(庚戌)
2월 30일 신해(辛亥)
3월 초하루 임자(壬子)
3월 2일 계축(癸丑)
3월 초 3일 갑인(甲寅)
3월 4일 을묘(乙卯)
3월 5일 병진(丙辰)
3월 6일 정사(丁巳)
3월 7일 무오(戊午)
3월 8일 을미(乙未)
3월 9일 경신(庚申)
3월 초 10일 신유(辛酉)
3월 11일 임술(壬戌)
3월 12일 계해(癸亥)
3월 13일 갑자(甲子)
3월 14일 을축(乙丑)
3월 15일 병인(丙寅)
3월 16일 정묘(丁卯)
3월 17일 무진(戊辰)
3월 18일 기사(己巳)
3월 19일 경오(庚午)
3월 20일 신미(辛未)
3월 21일 임신(壬申)
3월 22일 계유(癸酉)
3월 24일 을해(乙亥)
3월 25일 병자(丙子)
3월 26일 정축(丁丑)
3월 27일 무인(戊寅)
3월 28일 기묘(己卯)
3월 29일 경진(庚辰)
4월 초 하루 신사(辛巳)
원문
일자별 여정 및 주요 활동
참고문헌
해설
옮긴이 후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저자
이승희 이승희(李承熙, 1847∼1916)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퇴계학을 계승한 근대기 성리학자다. 성주 출생으로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계도(啓道), 호는 강재(剛齋)·대계(大溪)다. 1909년 북만주 한흥동에서 개척 사업에 진력할 때, 대하(大夏)로 개명하고 한계(韓溪)로 개호했다.
부친이자 스승인 한주 이진상의 학설을 이어받고 이를 발전·계승하고자 전념하던 그의 삶은, 일제의 조선 침략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곽종석 등의 문인과 함께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각국 공사관에 전달했다. 또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수백의 유생을 대표하는 소수(疏首)가 되어 '을사오적의 목을 베고 조약의 파기하라'는 내용의 상소 〈청주적신파늑약소(請誅賊臣罷勒約疏)〉를 직접 들고 상경했다. 그러나 일경의 방해로 결국 성사하지 못했고 오히려 대구 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그의 투쟁은 옥중에서도 계속되었다. 다음 해 4월 석방되었지만 끊임없는 일경의 감시가 이어지자 그는 국외 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이사이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성주 지역의 회장이 되어 활동했으며,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서한을 보내어 일본의 침략 만행을 규탄했다.
1908년, 일제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하자 62세의 노유 이승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게 된다. 이곳에서 이상설·안중근·유인석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 기지 및 한인 공동체 건설을 구상했다. 이윽고 1909년, 중·러 국경 지대에 위치한 밀산현 봉밀산을 기지로 낙점해 100여 가구를 정착시키고, 그곳을 한국을 다시 일으킨다는 의미의 '한흥동(韓興洞)'이라 명명했다. 운영 방식 및 자금에 대한 문제, 또 지리적 위치 등을 이유로 부득이 그곳을 나오게 된 그는 1913년 이미 안동에 정착하고 있던 동전 맹보순·대눌 노상익 형제·수파 안효제와 같은 선비 동지들과 결합해 동삼성 한인 공교회를 창설하고, 중국 공교회와의 합작을 통해 시국의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 그렇게 북경으로 떠나 지회 승인에 성공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을 확인한 그는 1914년 결국 봉천(현 선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덕흥보라는 곳에 터(약 56만여 평으로 여의도의 3분의 2 면적)를 잡고 독자적인 또 본격적인 유교 공동체 겸 독립운동 기지 구축 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해빙으로 인해 농장이 수몰되면서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생계의 모든 것을 팔고 이곳에 모인 유림과 농민들은 이 일을 계기로 급격히 흩어지기 시작했고 한인 공교회도 사실상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1년 뒤인 1916년 2월, 그는 70여 년의 생을 이역의 일승잔(日昇棧)이란 한 여관에서 마감하게 된다. 이렇게 약 9년간 이어진 그의 해외 독립운동도 종료되었다. 1977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그의 두 아들 이기원(李基元, 1885∼1982)과 이기인(李基仁, 1895∼1981) 역시 독립 유공자로 지정되었다.
부친이자 스승인 한주 이진상의 학설을 이어받고 이를 발전·계승하고자 전념하던 그의 삶은, 일제의 조선 침략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곽종석 등의 문인과 함께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각국 공사관에 전달했다. 또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수백의 유생을 대표하는 소수(疏首)가 되어 '을사오적의 목을 베고 조약의 파기하라'는 내용의 상소 〈청주적신파늑약소(請誅賊臣罷勒約疏)〉를 직접 들고 상경했다. 그러나 일경의 방해로 결국 성사하지 못했고 오히려 대구 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그의 투쟁은 옥중에서도 계속되었다. 다음 해 4월 석방되었지만 끊임없는 일경의 감시가 이어지자 그는 국외 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이사이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성주 지역의 회장이 되어 활동했으며,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서한을 보내어 일본의 침략 만행을 규탄했다.
1908년, 일제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하자 62세의 노유 이승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게 된다. 이곳에서 이상설·안중근·유인석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 기지 및 한인 공동체 건설을 구상했다. 이윽고 1909년, 중·러 국경 지대에 위치한 밀산현 봉밀산을 기지로 낙점해 100여 가구를 정착시키고, 그곳을 한국을 다시 일으킨다는 의미의 '한흥동(韓興洞)'이라 명명했다. 운영 방식 및 자금에 대한 문제, 또 지리적 위치 등을 이유로 부득이 그곳을 나오게 된 그는 1913년 이미 안동에 정착하고 있던 동전 맹보순·대눌 노상익 형제·수파 안효제와 같은 선비 동지들과 결합해 동삼성 한인 공교회를 창설하고, 중국 공교회와의 합작을 통해 시국의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 그렇게 북경으로 떠나 지회 승인에 성공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을 확인한 그는 1914년 결국 봉천(현 선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덕흥보라는 곳에 터(약 56만여 평으로 여의도의 3분의 2 면적)를 잡고 독자적인 또 본격적인 유교 공동체 겸 독립운동 기지 구축 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해빙으로 인해 농장이 수몰되면서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생계의 모든 것을 팔고 이곳에 모인 유림과 농민들은 이 일을 계기로 급격히 흩어지기 시작했고 한인 공교회도 사실상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1년 뒤인 1916년 2월, 그는 70여 년의 생을 이역의 일승잔(日昇棧)이란 한 여관에서 마감하게 된다. 이렇게 약 9년간 이어진 그의 해외 독립운동도 종료되었다. 1977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그의 두 아들 이기원(李基元, 1885∼1982)과 이기인(李基仁, 1895∼1981) 역시 독립 유공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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